얼마전 여자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참으로 기분이 묘한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빨리 시집가고 싶어" 내가 왜냐고 물으니 일하기가 귀찮단다. 겉으로는 아무 말도 안했지만 속으로 참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다. 결혼을 휴식의 창구로 삼으려 하다니. 더 놀라운 것은 상당히 많은 수의 친구들이 그 말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이제 여성들도 경제권을 쥐고 있는 시대다.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도 점차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정작 여성들이 그 권리를 박차 버리려고 하다니. 단순히 귀찮다고 그렇게 함부로 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열심히 살아가려는 친구들도 많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없을 거 같던 부류의 사람이, 그것도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던 친구가 쏟아낸 그 말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남성들은 좋아서 일할까. 남성들 역시 편한 것이 좋다. 남성들에게도 돈을 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시집을 가서 일을 그만두겠다는 발상을 하는 것 자체가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뭔가 결혼 후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단지 일하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도피처로 삼으려는 그들의 대화가 심히 불편했다. 


  모든 남자가 다 마초가 아니듯, 모든 여성들도 다 된장녀는 아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단 몇가지 사례만 들어 그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행동은 없어야 한다. 내 주변에서는 듣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말을 들어 충격이었을 뿐 실제로 내 주변에는 자신의 힘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여성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러나, 공영 방송에서 참으로 황당한 실험이 방영되었다. 남성은 이래야 한다고 강요하는듯한, 너무나 불편한 실험이 말이다. 


 미술관에 놀러간 커플. 재밌게 데이트를 하던 중에 여자가 고가의 도자기를 깨뜨렸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을 몰래 카메라로 담는 것이 실험의 주요 내용이었다. 여기까지였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냥 단순한 몰래 카메라라면 반응을 재밌게 웃어 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웨딩플래너 50명이 남자친구의 반응을 '평가'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친절하게도 최악과 최고의 반응이 뽑혀 그대로 전파를 타는 웃지못할 상황이 전개되었다. 한표도 받지 못한 최악의 반응은 여자친구를 질타하는 남자친구. 화면에서 남자친구는 "그러니까 내가 만지지 말랬지!"하며 여자친구의 잘못을 채근한다. 웨딩플래너들은 아무리 실수를 했어도 여자친구를 감싸주지 않는 그런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입을 모았다.  


 반면 최고의 반응은 역시 달랐다. 남자친구는 당황하는 여자친구를 안심시키고 걱정하지 말라며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 책임감을 보였다. 물론 멋있다. 그런 남자친구라면 평생을 믿고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멋있는 것과 행동양식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남성상은 바람직하고 여자친구를 탓하는 남성상은 바람직하지 않은가? 남자라면 여성에게 무조건적인 헌신을 해야 하는가? 이건 마치 여성이면 무조건 남성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논리와도 다르지 않다. 이런 남성은 좋은 남성, 저런 남성은 나쁜 남성이라 규정짓는 그 순간, 이 방송은 한마디로 망했다. 멋있다 추켜 세워줄 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반응에 순위까지 정해놓은 그 황당함을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었다.


 반대로 남성이 도자기를 깨뜨린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 여성들도 남성들처럼 걱정하지 말라며 남자를 안심시키고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나섰을 것인가. 아니, 그 이전에 그런 여성들이 바람직한 여성이라는 잣대를 두고 남성 웨딩 플래너들이 평가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있기나 했을까. 이것은 책임감의 문제지 성역할의 문제가 아니다. 8살짜리 아이도 도자기를 깨뜨렸으면 그에 대한 마땅한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단지 남자라고 해서, 사귀고 있는 사이라고 해서 여성이 한 잘못까지 모두 뒤집어 써야 한다는 논리는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반대 상황을 가정해 보자. 예를 들어 남편이 회사에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온다. 이 때 튀어나온 남편의 한마디. "여보, 나 회사에서 정말 피곤했어." 그러자 남자 웨딩 플래너 5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최악과 최고의 아내의 반응이 나온다. 최악의 아내의 반응. "그래서 어쩌라고? 나도 일하느라 힘겹거든? 나 지금 밥하는 거 안보여? 그런 말 할 시간있음 빗자루나 잡고 청소나 해." 반면 최고의 아내의 반응은 피곤한 남편을 위해 손수 9첩 반상을 만들어 대접하며 어깨도 주물러 준다. 심지어 따듯한 물을 준비해 족욕을 해주기까지 한다. "여보, 힘들죠? 힘내세요! 화이팅!" 이런 말까지 덧붙이면 금상첨화.



 그럼 여성들은 아, 나도 저런 아내가 되어야 겠구나.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남편은 무조건 떠받들어야 되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대다수 여성들은 "여자가 무슨 하녀냐?"며 들고 일어날 것이다. 바로 그런 것이야 말로 차별이고 성역할의 고정관념이다. 여성이라고 무조건 남편을 왕처럼 떠받들 필요가 없고 남자라고 무조건 여성의 잘못을 책임져야 할 이유는 없다. 

 


 여성들도 집안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남성상을 원하지 않는것 처럼 남성들도 남성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려는 여성상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들이 스스로 남자들과 대등한 관계에 서있으려면 스스로 뭔가 자주적이고 책임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도자기를 깨뜨렸더라도 남자 뒤로 숨는 것이 아니라 남자를 안심시키고 "내가 깬 거니까 이건 내 잘못이야. 내가 책임 져야겠어"라고 말 해 줄 수 있는 여성이 훨씬 더 멋있고 의식있는 여성이다. 아니, 모든 것을 떠나서 그게 당연한 책임 논리다. 자신이 한 잘못까지 남성에게 떠넘기려 하는 여성들에 대한 성찰은 없고, 그 상황에서 책임을 진 남자들만 멋있다 하는 이런 황당한 사안을 대체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일까.



 남성과 여성은 서로 싸우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공존하고 서로 떳떳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는 존재다. 그러나 이런 황당한 실험이 계속 될 때, 우리 사회의 인식은 발전할 수 없고 우리 사회는 더욱 더 차별에 찌든 나라가 되고야 말 것이다. 무조건적인 남자와 여자의 행동양식의 규정을 이제는 벗어버릴 때도 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진정으로 책임감있고 이해심있는 모습을 보일 때만 진정한 남성 평등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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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낭만주의자 2011.11.17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극과 극은 방향만 다르지 하는 행동이 똑같다는 걸 다시금 느끼네요.

    전업주부만 있던 시절에는 자아실현을 위해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들을 두고 가정을 팽개치는 이기주의자로 규정했다면, 성공한 여성 ceo들은 자신의 성공을 포장하면서 전업주부를 두고 남자에 종속된 무능력자로 낙인 찍죠. 어느 쪽이 옳은 걸까요?

    누군가에게는 불굴의 신념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집과 독선이 될 수 있습니다. 한쪽만 보고 생각하지 마시길······.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dla2300 BlogIcon 정민진 2012.02.06 1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선의의, 그러니까 솔직하고 양심적이고 이성적인 토론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