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야심차게 기획하고 있는 [주병진 쇼]가 드디어 그 윤곽을 드러냈다.


유재석의 [해피투게더]에 맞서 MBC가 내놓은 히든카드인 [주병진 쇼]는 '예능황제' 주병진의 첫 TV 복귀작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와중에 [주병진 쇼]의 섭외 게스트 리스트가 공개됐다. 첫 회 게스트로 박찬호가 확정된 가운데 두번째 게스트로 거론되는 이는 다름아닌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이거야말로 처음부터 제 무덤 파는 최악의 선택이 아닌가 싶다.

 


[주병진 쇼]가 MBC 예능국에서 가지고 있는 상징성은 예상 외로 어마어마하다. MBC 예능의 상징이자 대한민국 예능 MC의 원조격인 주병진의 첫 컴백작이자, 목요일 심야 예능의 제왕 [해피투게더]에 맞선 최후의 히든카드이기 때문이다. MBC는 주병진을 이 시간대에 모시기 위해 무진 애를 썼고, 이 프로그램을 향후 목요일 심야 예능 판도를 바꿀 결정적 전환점으로 평가하고 있다.


주병진으로서도 [주병진 쇼]의 성공은 절실한 측면이 있다. 무려 14년만에 방송에 복귀하는 만큼 컴백 결과가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좋다. 게다가 상대는 예능계에서 독보적 위치를 구가하고 있는 유재석이다. 유재석의 아성을 조금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다면 주병진 컴백은 화려하다 못해 휘황찬란해 진다. 주병진이 [주병진 쇼]에 '올인'하다시피 한 이유다.


그런데 이게 웬걸. 프로그램을 잘 꾸며야겠다는 욕심이 너무 과했던 탓인지 엉뚱한 인물이 섭외 게스트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바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다. 물론 [주병진 쇼]는 정통 토크쇼로서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TV 스타보다는 사회적 명사를 위주로 프로그램을 꾸미겠다는 의지를 여러번 피력한 바 있다. 허나 박근혜 전 대표의 출연은 제 살 깎아먹기식 자충수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전 대표의 출연이 '최악의 자충수'인 이유는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박근혜의 '개인사'에 대해 물어볼 여지가 크지 않다. 토크쇼라는 것은 진실한 소통을 바탕으로 한다. 강호동이 이끌었던 [무릎팍 도사]가 5년여가 넘는 시간동안 큰 사랑을 받을수 있었던 까닭은 이 프로그램이 게스트의 진실한 속마음까지 능란하게 끄집어 낼 줄 알았기 때문이다. '듣기만 하는' 토크가 아니라 '쌍방향'으로 소통하면서 미처 대중이 몰랐던 부분까지 끄집어 내야 하는 것이 현재 [주병진 쇼]가 해내야 할 과제다.


그런데 박근혜에게는 그런 쌍방향 소통을 기대할 여지가 크지 않다. 물론 딱딱한 정치인 박근혜가 아니라 소박하게 요가를 하고 산책을 하는 등 인간으로서의 박근혜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이건 너무 뻔한 구성이다. 이런 구성이면 시청자들의 흥미를 잡아당기기에 충분치 않을뿐더러, 진실한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건 더더욱 힘들다.


그렇다고 주병진이 박근혜의 '인생사', 다시 말해서 육영수 암살, 박정희 암살, 육영재단 경영권 분쟁 등과 같은 것에 대해 물어볼 수 있을 것인가. 친박 대 친이, 한미 FTA문제, 4대강 사업, 복지문제, 안철수 등판 등과 같은 정치 현안에 대해 물어볼 수 있을 것인가. 물어볼 수도 없을 뿐더러 물어본다해도 '정치인다운' 원론적 대답만 돌아올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이 토크쇼가 강점으로 내세운 진실한 토크는 실종될 수 밖에 없다. 고작 정치인 박근혜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시청자들이 만족할거라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심각한 착각이다.


둘째, 시기가 좋지 않다. 내년은 총선과 대선이라는 굵직굵직한 선거가 모두 포진되어 있는 해다. 게다가 박근혜는 정부 여당의 유력 대선 주자다. 이런 시기에 박근혜가 TV 예능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 자체가 자칫 정치행보로 비춰질 수 있다. [주병진 쇼] 자체가 마치 '박근혜 홍보쇼' 같은 모습으로 포장됨으로써 정치색에 휘말릴 수도 있단 이야기다. 이건 갓 시작하는 프로그램 입장에서 대단히 부담스런 상황이다.


또한 현재 정치권은 한미 FTA 비준, 야권통합, 여당쇄신, 박근혜 신당설, 보수 신당 출범 등의 각종 이슈로 크나큰 내홍을 겪고 있다. 이러한 각종 정책현안과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철저히 말을 아끼고 있는 박근혜가 TV 토크쇼에 나와 시시콜콜한 잡담을 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 중의 코미디다. 이런 식의 코미디는 보고 싶지 않다. 국민적 여론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박근혜의 등장이 가져다 줄 순기능은 그리 크지 않은 셈이다.


셋째, 시청률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나와도 시청률이 바닥을 기는 시대다. 박근혜가 나온다고 별반 달라질 것이 없다. 프로그램의 초반 스타트는 프로그램의 자체 경쟁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잣대다. 그렇다면 될수록 상큼하고 깨끗하게, 긍정적 기대를 걸 수 있을만큼의 시청률은 뽑아줘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박근혜 섭외는 철저히 실패한 한 수다.


목요일 심야 11시대 예능의 주 시청자층은 10~30대로 포진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 서울시장 선거 동향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이 시청자층은 반 한나라당 성향이 매우 강할뿐더러, 박근혜에 대한 반감도 상당하다. 50~60대들에게 박근혜는 여전히 '영애'이고 '공주'일지 몰라도, 10~30대에게 박근혜는 한나라당 의원이자 박정희의 맏딸일 뿐이다. 이 시간대 주 시청자층에게 박근혜가 먹히지 않는다는 건, 다시 말해 시청률에서도 필패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물론 [주병진 쇼]가 시청률을 포기하는 대신 박근혜와 진실한 소통을 이어나갈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와의 토크는 이도저도 안 될 공산이 크다. 잘못 하다간 토크도 최악, 시청률도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이건 [주병진 쇼] 론칭에 공을 들였던 MBC에게도, 주병진에게도 크나큰 불행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대한민국의 거물 정치인으로서 방송사가 탐내는 아주 '매력적인 카드'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허나 박 전 대표의 출연은 긍정적인 측면보다 오히려 부정적인 측면을 더욱 부각시킴으로써 프로그램의 정체성 논란, 정치색 논란 등 불필요한 논란만을 야기할 것이다. 특히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이런 식의 이슈성 섭외는 자제하는 것이 좋다.


12월 1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주병진 쇼]가 부디 '정신'을 차리고 프로그램의 기본이 무엇인지, 토크쇼의 근간이 무엇인지, 그리고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검토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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