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예술가 낸시랭의 의상이 또 한번 화제가 되었다. 낸시랭은 2일 오후 서울 삼성동 라마다호텔에서 진행된 ROAD FC 기자회견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등장했다. 그는 "라운드 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하며 당당하게 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고양이 인형도 어깨에 걸친 채 였다. 


 낸시랭은 자칭 '행위 예술가'다. 행동으로 예술적인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기에 붙인 말일 것이다. 행위 예술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 것일까. 낸시랭은 자신이 입는 의상과 자신이 취하는 포즈가 모두 '퍼포먼스'라고 말한다. 


 그 퍼포먼스가 여타 가수들이나 배우들과 다른점은 낸시랭이 하는 행동은 일상 생활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낸시랭이 말하는 그 퍼포먼스가 얼마나 예술적인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일이다. 낸시랭이 말하는 것 처럼 그는 정말 '예술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을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예술은 예술 그 자체로 성공하기 힘들다. 그것은 사실이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든든한 스폰서가 붙지 않으면 그 예술을 성공시키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평생 단 한장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던 대화가 반고흐의 상황만 봐도 예술이 얼마나 빛을 보기 힘든 것인가 한느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 재력과 권력을 갖춘 사람들이 뒤에있다면 하루아침에도 신데렐라가 될 수 있는 것도 바로 예술계다. 하지만 이것도 기본 실력이 출중할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아무나 데려다가 예술적인 가치를 매길 수는 없는 일. 그 예술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를 포함했을 때 그런 일은 가능하고 그런 실력을 갖추려면 기본기가 탄탄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때때로는 그 예술적인 가치가 모든 대중들이 공감하는 그런 형태로 발현되지 않을 때도 있다. 허나 예술이란 몇몇의 마음을 감동시키더라도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많은 대중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본인의 독창성과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능력이 있을 때 그 예술의 가치가 더 올라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낸시랭이 스스로 지칭하는 '예술'이라는 것에는 의문부호가 따라 붙는다. 예술이 아무리 애매한 기준이라고는 하지만 낸시랭이 특이한 옷을 입고 특이한 행동을 하는 것 또한 예술이 될 수 있는가. 


 그는 말한다. "제가 제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것은 대중들이 현대 미술과 친숙해 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에요"라고. 하지만 낸시랭의 자칭 예술이라고 부르는 그 행위는 결코 대중들이 친해 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낸시랭이 행위예술가라고 불리운 몇 년동안 행위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대중들에게는 아직 친숙한 단어가 아니다. 그가 대중들에게 그 일을 친숙하게 만들지 못했다는 뜻일 것이다.  외려 낸시랭 때문에 이 부분에서 심각한 오해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 더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진정으로 자신의 몸을 활용하여 예술을 만들어 내려는 사람들이 있는 와중에 낸시랭은 자신의 몸을 '상품화'하여 그 논란을 불지폈기 때문이다. 


 낸시랭은 자신의 몸을 노출하는 것으로 그것이 예술이라 칭한다. 이번 비키니 건만 해도 그렇다. 비키니를 입고 라운드 걸이라고 소개했지만 그것에는 어떠한 예술적 가치도 발견할 수 없었다. 다만 옷을 특이하게 입은 여성, 그것도 노출을 감행한 여성이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을 뿐이다. 물론 그 안에서도 예술성을 누군가가 발견했다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그 예술성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 에게는 외려 천박한 상술로 보인다면 그것은 고급의 예술성이라 말할 수는 없다.


 낸시랭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미화시킨 자신의 의상이 여성의 성을 상품화 하고 구경거리로 삼는 그런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낸시랭은 그동안에도 외설에 가까운 사진이나 화보를 찍거나 일상적인 공간에서 노출이 심한 옷을 입어 구설수에 올랐다.그것이 예술이라 불리기를 바라는 것은 그만의 착각이다. 사실상 그가 한 일은 옷을 벗어제끼고 고양이를 어깨에 올린 것 밖에는 없다. 그런 행동에 의외성은 있을지언정 독창성과 번뜩이는 재치는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다리를 벌리고 찍은 회보에서 속옷이, 그가 직접 올린 사진에서 엉덩이 골이나 가슴골에 눈길이 갈 뿐이다.


 오히려 그의 행동은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측면마저 있다. 낸시랭은 자신이 초청받지도 않은 '베니스 비엔날레'로 가서 '산 마르코 성당' 앞에서 속옷바람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그는  '불청객으로서의 존재로 이루지 못한 꿈을 표현한 것.' 이라며 속옷을 입은 것은 그만큼 솔직한 희망을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야말로 꿈보다는 해몽이다. 그 일로 인해 성스러운 성당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자신의 나라의 이미지마저 손상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금기시해야 할 일이다. 


 예술도 시대에 맞고 시류를 타야 한다. 낸시랭의 행동이-그럴리 없겠지만-혹시라도 후대에 후한 평가를 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순간에 낸시랭의 행동이 그의 말처럼 꿈과 희망을 주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그 꿈과 희망이 단순히 벗고 돌출적인 행동을 하는 것으로 표현되어 질 수 있는지는 더더욱 의문인 것이다.



 이런 예는 또 있다. 영국에서 영국 여왕의  행렬에 거지 여왕의 나라를 세우겠다며 거지 여왕의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아무리 예술도 좋지만 지켜야 할 예의가 있는 법이다. 낸시랭은 불청객으로 거기에 서 있는 것이고 영국여왕의 행렬은 공식적인 행사다. 낸시랭은 경호원에게 수차례 제지를 당하면서도 꿋꿋이 퍼포먼스를 하는 저력(?)을 보였다. 예술이라는 것이 과연 다른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기분 나쁘게 하면서 이루어 지는 것인지를 되물어 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낸시랭은 스스로 예술도 가볍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낸시랭의 예술은 가볍지 않다.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다. 단지 불편하고 민망하고 싸구려 같아 보일 뿐이다. 그것은 낸시랭이 자신의 행동을 예술로 포장시킨 뒤, 그 주목을 끌기 위해 자신의 몸을 상품화 하고 자신의 개념없는 자신의 돌출 행동마저 상품화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으로 예술가라면 이런 행동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자신만의 독창성이나 이야기 없이 단지 자신이 벗은 몸으로, 남들마저 부끄럽게 하는 행동으로 예술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는 것은 그가 참으로 어리석어 보인다. 결국 자신이 말한 자신의 예술의 가치를 대중들이 하나도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없다면 진정으로 그가 하는 일이 가치가 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에게 구해야 한다.


 오늘도 그는 벗는다. 하지만 그것은 예술이라 불리기에 민망한, 단지 그의 주목을 위해서일 뿐이다. 말은 바로하자. 낸시랭은 행위예술가가 아니다. 단지 '노출 퍼포머'일 뿐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러하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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