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의 수장 나영석 PD의 파격승진이 화제다.
내년 1월 1일부터 지금보다 한 직급 더 높은 2직급 차장으로 특별 승진한 것이다.
이는 보통 다른 PD들보다 많게는 4~5년, 적게는 2~3년 빠른 것으로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 고속 승진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나영석 PD의 파격승진 소식이 전해지면서 상대적으로 MBC [무한도전]의 김태호 PD 역시 네티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김태호 PD와 나영석 PD는 모두 당대 가장 유명한 '스타 PD'로 큰 명성을 떨친 인물들이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PD는 뒷편에 물러서 얼굴을 보이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김태호 PD와 나영석 PD는 출연진들만큼이나 얼굴이 많이 알려져 있고 유명세도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들의 발언 하나하나가 이슈가 되고, 아이디어 하나하나가 특종 거리가 될 만큼 웬만한 톱스타 못지 않은 영향력과 대중 소구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김태호 PD가 [무한도전]을 통해 리얼 버라이어티의 본류를 만들어 냈다면, 나영석 PD는 [1박 2일]을 통해 리얼 버라이어티가 어떤 식으로 진화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그들의 창작력과 기획력, 강력한 카리스마와 넘치는 재능은 한국 예능이 한 걸음 진일보하는데 큰 기여를 했고, 지난 5년여간 예능계의 양대산맥으로 자리한 유-강 체제 확립의 밑거름이 됐다.
[무한도전]의 박명수는 김태호 PD를 일컬어 "우리가 하는 행동과 이야기를 잘 포장해 리얼 버라이어티를 훨씬 더 재밌게 만드는 감각 있는 PD" 라며 한껏 추켜세웠고, [1박 2일]의 강호동은 나영석 PD에 대해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고 굉장한 추진력과 리더쉽을 갖춘, 동시대 보기 드문 천재 PD" 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함께 일하는 연기자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김태호 PD와 나영석 PD의 재능은 비범한 데가 있다.
이처럼 21세기 대한민국 예능사(史)에서 김태호 PD와 나영석 PD가 차지하고 있는 존재감은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그들은 당대의 국민 MC 유재석과 강호동을 완성시킨 능력있는 연출자인 동시에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든지 보고 즐기는 국민 예능의 기획자다. 종합편성채널이 출범하면서 30억을 베팅하며 김태호와 나영석을 데리고 오려고 기를 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김태호와 나영석의 위상을 따라잡을 예능 PD는 해당 방송사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재밌다. KBS는 나영석 PD를 이례적으로 특별 승진 시킬 정도로 각별히 챙기고 있는 반면, MBC의 김태호 PD는 애물단지로 구박받고 있다. KBS는 [1박 2일]에 상당한 제작비를 투입하는 등 아낌없이 지원을 하고 있는데, MBC는 [무한도전]의 제작비 절감을 시도하는 등 허리띠를 계속 졸라 맬 것을 강요하고 있다. 각 방송사의 간판 예능인 [1박 2일]과 [무한도전]의 대표 PD들이 '극과 극'이라 할 정도로 전혀 다른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이번 연말 연예대상에서도 극명히 드러났다. KBS는 이른바 '대상파동'이라 불렸던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1박 2일]에게 전체 대상을 돌렸을 뿐 아니라 이수근, 은지원, 엄태웅 등에게는 개인상까지 시상했다. 가능한 한 줄 수 있는 상은 모두 챙겨주려 노력한 티가 역력히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특히 KBS 예능국장은 친히 "대상은 전 출연진 뿐 아니라 나영석 PD에게도 주는 상"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허나 MBC는 달랐다. [무한도전] 전 출연진 중 유재석만이 본상인 최우수상을 받았을 뿐, 나머지는 빈 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네티즌의 실시간 투표로 이루어진 박명수-정준하의 베스트 커플상이 그나마 [무한도전] 멤버에게 돌아간 유일한 상이었다. 심지어 작년까지 유지됐던 "시청자가 뽑은 최고 프로그램상"도 이번엔 사라졌다. 우정상, 특별상까지 만들며 상을 남발한 MBC지만 정작 [무한도전]은 홀대한 것이다. 김태호 PD로선 속이 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우선 [1박 2일]과 [무한도전]이 각 방송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의 문제가 가장 크다. [1박 2일]이 속해있는 [해피선데이]의 1년 광고 수익으로 KBS 예능국 전체의 제작비가 충당 될 정도다. 연간 400억이 넘는 천문학적 수익을 올리고 있는 [해피선데이]에서 [1박 2일]의 존재는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일요일 아침 재방송 마저도 10% 이상의 시청률이 나올 정도로 광고 수익면에서 어마어마한 성과를 과시한 셈이다.
게다가 지난 5년간 KBS 예능 프로그램들은 거의 죽을 쑤다시피 했다. 특히 주중 예능은 [해피투게더]를 제외하곤 언제나 한 자릿수 시청률이었고, 주말 역시 [개콘] 빼고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KBS 예능국으로선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1박 2일]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효자 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1박 2일]처럼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잡으면서도 광고 수익마저 어마어마한 코너는 지난 10년간 전례를 찾기 힘든 케이스다.
이에 비해 MBC는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히트하면서 상대적으로 [무한도전]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월요일 [놀러와], 수요일 [황금어장], 토요일 [우결][세바퀴], 일요일 [나가수]까지 '예능 천국'이라고 할 정도로 높은 시청률의 예능이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골고루 포진하고 있는데 굳이 [무한도전]만 특별 취급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무한도전]이 MBC 간판인건 확실하지만 시청률이나 광고 수익 측면에서 다른 프로그램들과 큰 차별성이 없다는 게 MBC 내부의 공통된 속내다.
허나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아무리 그래도 MBC 예능의 상징은 [무한도전]이다. 김태호 PD를 이렇게까지 홀대할 이유는 없다. MBC가 김태호 PD와 [무한도전]을 홀대하는 이유는 올해 잇따라 발생한 방통위의 경고 조치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한도전]의 '반 정부적' 패러디와 사회현상 비틀기가 MBC 윗선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여기에 방통위의 경고가 지속되면서 [무한도전]이 '말 많고 탈 많은' 프로그램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방통위의 노골적인 견제가 표면으로 드러남으로써 김태호 PD는 제작과 기획에 있어 큰 곤욕을 치뤄야 했다. 게다가 강성 노조인 그는 MBC 윗선과도 지속적인 마찰을 빚어왔다. 2008년, 2010년 MBC 총 파업의 선봉에 서서 활동한 김태호의 전력이 MBC 고위층의 심기를 건들인 셈이다.
실제로 2010년 MBC는 총 파업에 참여했던 일선 앵커와 PD들을 경질하고 지방발령 내는 보복성 인사를 단행하면서, 김태호 PD 경질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거친 전례가 있다. 일각에선 [무한도전]과 김태호 PD를 쌍끌이 묶어 '좌편향 PD가 만드는 위험한 프로그램' 이라며 PD 퇴출과 프로그램 폐지를 건의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MBC의 보복인사는 다행히 [무한도전]에 대한 시청자들의 굳건한 충성도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으나 곧 제작비 절감, 방통위의 무차별적 경고조치 등 다른 차원의 보복으로 이어졌다. [무한도전]은 올해만 방통위 징계를 3번, 지금까지 총 10번이나 받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다. 방통위 뿐 아니라 MBC 내부에선 여전히 김태호를 '위험인물' '튀는인물' 로 경계하고 있다.
이에 비해 나영석 PD와 KBS 사측의 관계는 그리 불편한 편이 아니다. 물론 나영석 PD 역시 KBS 내부에서는 강성 노조, 진보 측 인사로 불리며 작년 10월 총파업을 진두지휘한 전력이 있다. 다만, 이 당시 KBS 새노조와 사측은 전격적으로 협상 타결에 성공해 양 측간의 상처나 감정의 골이 MBC보다 크게 남지는 않았다. 게다가 나영석 PD가 연출하는 [1박 2일]에 패러디나 사회 풍자가 들어있지 않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위와 같은 차이로 인해 나영석 PD와 김태호 PD는 서로 다른 대우를 받으며,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방송사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며, 대우도 다른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오직 단 하나, 유쾌하고 즐거운 예능을 만드는 일 뿐이다. 나영석 PD는 내년 2월 종영을 앞두고 있는 [1박 2일]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고, 김태호 PD는 지금껏 그래왔듯이 [무한도전]의 '영원한 도전'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나영석 PD 뿐 아니라 김태호 PD, 또 이 세상의 모든 PD들이 제 능력, 제 실력에 걸맞는 좋은 대우를 받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좋은 프로그램은 허투루 만들어지지 않는다. 방송사의 전폭적인 지원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만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기는 명품 예능이 탄생할 수 있다. '파격승진' 나영석 PD와 '애물단지' 김태호 PD가 보여 준 웃지 못할 극과 극의 상황이 더 이상 발견되지 않기를, 한국 예능을 사랑하는 시청자들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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