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와]의 기세가 매섭다.
한 때 한 자릿수로 떨어진 시청률은 10% 중반으로 회복했고, 특유의 기획 토크의 장점도 다시 살아나고 있다.
재밌는 것은 [놀러와]의 부활 시기가 은지원의 복귀와 묘하게 일치한다는 점이다.
사실 작년 연말부터 [놀러와]의 부진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시청률은 한 자릿수대로 떨어졌고, 토크쇼의 컨셉은 식상해졌으며, 단단한 시청자층이 눈에 띄게 와해됐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신동엽-이영자 콤비를 앞세운 [안녕하세요]가 매회 화제를 모으며 이슈를 선점했고, 이경규의 [힐링캠프] 역시 박근혜-문재인을 내세운 '정치인 특집'으로 화제 몰이에 성공했다. 경쟁작들의 선전에 6년차 토크쇼 [놀러와]의 위상은 한 없이 무너져 내렸다.
허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사태를 타개할만한 마땅한 '해법'이 없었단 사실이다. 당시 [놀러와]는 담당 PD가 연속으로 3번에 걸쳐 바뀌면서 상당히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고, 조규찬 등 프로그램에 어울리지 않는 패널이 출연해 분위기를 망치는 등 위상에 걸맞지 않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게다가 '해결의 책' 같은, 보기에도 쓸데 없는 이상한 코너를 마련해 심도 깊은 토크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말장난만 하다 끝나는 최악의 한 수를 두기도 했다.
[놀러와]가 극심한 부진을 겪으면서 MBC 내부에선 한 때 [놀러와] 위기설이 강력히 떠돌았고, 계속 이런 상태로 머무르다간 폐지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강경한 발언도 등장했었다. 그도 그럴것이 [안녕하세요]에 뒷덜미를 잡히며 동시간대 2위를 기록했던 [놀러와]가 심지어 만년 꼴등이었다고 생각한 [힐링캠프]에게까지 역전을 허용하며 동시간대 꼴찌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국민 MC' 유재석을 데리고 이런 성적을 내는 건 방송사 입장에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놀러와]의 슬럼프가 예상 외로 장기화되면서 제작진은 '극약처방'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세트를 모두 뜯어고치고, 코너를 재편하는 한편 조규찬을 조기에 경질하고 '역전의 용사' 은지원을 고정 패널로 섭외한 것이다. 과거 은지원은 [놀러와]의 고정 패널로 출연하며 프로그램의 일대 부흥기를 함께 한 경험이 있다. 조규찬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은지원처럼 이미 검증 된 고정 패널의 출연이 필요하다 판단한 셈이다.
재밌는 것은 은지원의 투입 시기와 맞물려 [놀러와]의 시청률 역시 다시 상승 곡선을 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기인 특집을 시작으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되찾은 [놀러와]는 4주 연속 월요일 밤 11시대를 장악하며 명실공히 '6년차 예능' 으로서의 위상을 다시금 떨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분명 고정 패널로 합류한 은지원의 역할이 만만찮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은지원의 [놀러와] 합류는 답답하고 우중충했던 기존 [놀러와]의 분위기를 완전히 일소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시종일관 분위기를 어둡고 진지하게 만들었던 조규찬과 아직은 예능이 서툰 올밴-양배추와 달리 적재적소에 기막힌 애드립을 날릴 줄 아는 은지원의 재능은 [놀러와] 부활의 큰 기폭제가 됐다. 그의 엉뚱한 말과 과장된 리액션은 유재석-김원희 콤비의 안정된 진행을 훨씬 돋보이게 만들 뿐 아니라, 의외의 웃음 포인트를 살려내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병풍 역할에 머물러 있는 올밴-양배추와 달리 은지원은 적극적으로 토크에 끼어들고, 게스트와 대화를 주고 받음으로써 메인 MC들과 적절한 보조를 맞추는데도 성공했다. 기존에는 김나영 혼자 고정 패널 몫의 90%를 차지하며 고군분투 했다면, 은지원 합류 뒤에는 김나영과 원투 펀치로 적절한 곳에 토크를 찔러 넣음으로써 토크쇼가 훨씬 풍성해지고 들을 거리가 많아졌다. 고정패널이 제 역할을 하니 유재석-김원희 콤비도 훨씬 여유롭게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이 뿐 아니라 은지원 특유의 '은초딩 캐릭터' 역시 적기에 활용되고 있다. 차마 메인 MC가 물어볼 수 없는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보고, 생각지도 못한 말 한마디로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고정패널은 오직 은지원 뿐이다. 이건 은지원이 그동안 고수해 온 '은초딩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대단히 자연스럽게 수용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듯 은지원은 때때로 유재석-김원희의 보완재 역할을 수행한다.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감초 역할에 머물러 있는 김나영과는 확실히 다른 차이점이다.
사실 은지원의 [놀러와] 고정패널 섭외는 '확실치 않은' 승부수였다. 합류 논의 당시 은지원은 [1박 2일] 시즌 2 합류를 놓고 KBS와 협상 테이블에 앉아있던 상태였고 본인 스스로도 거취를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에 대해 상당한 고민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허나 결국 그는 [1박 2일]을 하차하고 [놀러와]에 재합류 하는 것으로 자신의 예능 프로그램 라인업을 정리했다. 국민 예능 [1박 2일] 대신 침몰 직전의 [놀러와]를 선택하는 이색 결정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 결정을 한 것일까. 우선은 [1박 2일] 시즌 2에 합류했을 경우 시즌 1과의 차별점을 보여줄 수 없으리란 불안감이 자연스럽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혹시 시즌 2가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예능인으로서 받아야 할 상처가 상당할 뿐 아니라, 아무리 잘해 봤자 본전치기 밖에 안 되는 모험을 강행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이 정도에서 쿨하게 프로그램을 떠나는 게 여러모로 유리한 이점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또한 '강호동'이 없는 [1박 2일] 보다는 '유재석'이 있는 [놀러와]가 그에겐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을터다. 은지원이 [1박 2일] 원년 멤버로 프로그램에 합류했던 가장 큰 이유는 예능 멘토 강호동의 적극적인 추천과 지원 덕분이었다. 이는 거꾸로 말하자면 강호동이 은퇴한 마당에 은지원이 [1박 2일]에 계속 남을 이유가 없다는 걸 의미한다. 이에 비해 [놀러와]는 유재석이란 걸출한 국민 MC가 버티고 있다. 은지원으로선 유재석과 함께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다. 유재석은 강호동 만큼 은지원의 캐릭터와 스타일을 잘 이해하고 살려주는 MC기 때문이다.
여기에 [놀러와]가 [1박 2일] 보다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프로그램이란 점도 은지원의 선택에 영향을 끼쳤다. [1박 2일]은 말 그대로 밤을 꼴딱 새워가며 촬영을 해야 하는, 천하장사 강호동도 지쳐 쓰러질만큼 체력적으로 많은 걸 요구하는 프로그램이다. 게다가 리얼 버라이어티답게 한 시도 긴장을 놓치지 않고 예능감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시즌 2는 심지어 예능 초보 김승우, 주원 등을 이끌고 가야 하는 책임까지 있다.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비해 [놀러와]는 다소 여유롭다. 게스트가 중심이 되고, 그 속에서 양념 역할만 수행하면 된다. 녹화시간도 [1박 2일]에 비해 훨씬 짧을 뿐 아니라 주어진 책임도 한정적이다. 유재석-김원희 콤비의 진행을 보완하고, 웃음 포인트를 만들어 내는 건 이미 '예능 달인'의 경지에 올라 있는 은지원으로선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본업인 가수로서 성과를 내려면 부업인 예능에선 다소 여유를 찾을 필요가 있다. [놀러와]는 여기에 매우 적합한 조건이다. 이러한 필요충분 조건 속에 [놀러와]와 은지원은 서로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어찌되었든 [놀러와]에 있어 은지원의 합류는 부정할 수 없는 '신의 한수'였다. 은지원의 합류로 인해 고정 패널의 역할은 분명해졌고, 위계질서가 똑바로 섰다. 토크 분위기는 한층 밝게 환기 되었고, 메인 MC들의 운신의 폭 역시 넓어졌다. 이로 인해 토크는 예전보다 훨씬 풍성해지고, 웃음 포인트는 많아졌다. 은지원 한 사람이 끼친 긍정적인 효과가 [놀러와] 전체에 상당한 활력을 불어넣은 셈이다. 제작진으로선 조규찬 카드를 조기에 버리고 은지원 섭외에 공을 들인 보람이 있게 됐다.
이제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은지원 합류와 함께 시작 된 이 상승세를 어떤 식으로 유지할 것인지는 다시 제작진의 몫으로 넘어갔다. 햇수로 7년, 명실공히 MBC를 대표하는 토크쇼로 자리매김한 [놀러와]가 어떤 혁신을 통해 스스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까. 그들의 행보가 자못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