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풀의 인기 웹툰 [26년]이 영화화 된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두 번이나 엎어진 뒤, 이번에만 벌써 세번째 도전이다.

 

영화사인 청어람은 아예 대기업 자본 없이 펀드식으로 투자를 받아 영화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7광구][마이웨이] 등 속칭 블록버스터 '망작'들은 잘도 만들면서 왜 [26년]의 영화화는 이토록 힘든 것인가.

[26년]은 이미 2008년 캐스팅 대부분을 마치고 제작에 들어가려 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촬영 열흘 전 갑자기 투자자들이 난색을 표명하며 자금을 회수해갔고 어렵사리 준비했던 [26년]의 영화화는 갑작스레 무산됐다. 당시 투자자들은 "말 못할 사정이 있어 투자하기가 힘들게 됐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야심차게 [26년] 영화화를 기획한 청어람은 물론이고 당시 캐스팅 됐던 변희봉, 김아중 등의 배우들 역시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2011년 11월 경에 [26년]의 영화화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어렵사리 투자자들을 모으고 배우들을 캐스팅하려던 찰나, 이 기획 역시 얼마 못가 엎어졌다. 또 다시 돈을 대겠다던 자본가들이 발을 뺀 것이다. 이유는 역시 "말 못할 사정이 생겨서" 였다. 충무로 내에선 [26년]의 영화화를 정권 차원에서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는 '외압설' 등의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영화 내용이 워낙 민감한지라 대기업 자본이 정부의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결국 청어람의 선택은 '국민들의 돈'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른바 다수의 사람들이 소액을 투자하는 '크라우드 펀딩'이 바로 그것이다. 대기업 자본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대중과 관객에게 제작의 한 축을 맡김으로써 쌍방향 기획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청어람과 강풀 등은 [26년] 제작에 관한 기자 회견에서 "어떤 식으로든 끝까지 간다. 영화를 반드시 만들어 관객들에게 선 보이겠다"는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이런 모습을 보노라니 참 뒷맛이 씁쓸해진다. 도대체 왜 [26년]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하는 것인가. [26년]은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전두환 암살' 이라는 파격적 스토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아직까지 생존해 있는 현직 대통령의 암살을 그린다는 점에서 민감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으나 광주 민주화 운동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이면의 어둠을 극적이면서도 스릴 있게 표현했다는데 있어 가히 걸작의 반열에 올릴만 하다.

 

그런데 이렇게 잘 만들어진 작품을 영화화 한다는데 대기업들이 돈을 투자하지 않고 있다. 투자 결정을 내렸다가 촬영 열흘 전 갑자기 돈을 회수하는 '비상식적' 행태도 서슴지 않는다.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정권 차원에서 돈줄을 막아 버리니 제작이 몇 번이나 엎어졌다. 공식적으로는 두 번이지만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일어났다 넘어졌다를 반복한 것이 바로 [26년] 영화화다. 여전히 이 나라, 이 정권은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 독재자의 눈치를 보고 있는 셈이다.

 

광주 항쟁에서 벌어졌던 무차별 학살은 전두환 정권의 가장 큰 악행이었다. 죄없는 광주 시민을 총칼과 탱크로 짓밟았고, 그들을 빨갱이 집단으로 몰아 진실을 왜곡했다. 전두환은 이 광주 학쟁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당대의 민주투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이 사건의 주범으로 몰아 사형선고까지 내리는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다. 이처럼 그들의 피와 살과, 눈물과 한 위에 세워진 것이 바로 '전두환 정권'이고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를 외치는 국민들의 눈과 귀와 입을 틀어 막아 버린 것이 또한 '전두환 정권'이다.

전두환은 단 한번도 광주 학살에 대해 반성의 기미를 내 비치지 않았다. 끝까지 오만하고 불손했으며, 그들을 기만했다. 5공 청문회 시절 국회에 등장했던 전두환은 광주 학살에 대해 "자위권 발동" 운운하며 "나는 명령한 적 없다"는 뻔뻔한 일장 연설로 국민들을 분개하게 했다. 이 말에 격분해 당시 신민당 의원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럼 그 사람들은 왜 죽었어!" 라고 소리치며, 입 다물고 앉아있는 국회의원들에게 "아직까지 전두환이 니들 상전이야!" 라며 명패를 집어던졌다. 평민당 이철용 의원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전두환에게 달려나가 "살인마 전두환! 이 개새끼야!" 라고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의 집권여당 민정당전두환의 이 발언에 박수로 화답했다. 조금의 반성도 하지 않는 전두환에게 일갈하는 이철용, 노무현에게 "조용히 해!" "예의지켜!" "말하지 말랬잖아!" 라며 면박준 것 또한 바로 민정당 의원들이었다. 무고한 시민을 짓밟으며 유례없는 학살극을 펼친 살인마를 감싸 안고, 그 살인마에게 울분을 토하는 이에게 손가락질 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속한 정당이 바로 민정당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이 민정당이 어디인가. 훗날 3당 합당으로 탄생 된 거대여당 민자당이 바로 민정당이요,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면면히 이어온 것이 또한 이 민정당이다. 지금의 집권여당 새누리당의 본산이자 뿌리가 바로 전두환 지키기에 앞장섰던 민정당인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4.19로 무너진 자유당, 10.26으로 한방에 간 공화당이 그들의 뿌리일터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동으로 표현한 사람을 버젓이 공천 명단에 올렸다가 논란이 일자 슬그머니 공천을 취소하는 정당. 선거 때만 되면 빨갱이 운운하며 색깔론을 펼치고, 민주 투사들을 죄인 취급하는 정당. 이념 논쟁 그만하자면서 누구보다 이념적인 정당.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10.26 부정선거를 저지르고 민간 불법사찰을 자행하는 정당. 독재자의 딸과 정경유착의 CEO가 당권과 대권을 잡고 싱글벙글하는 정당. 이 정당이 바로 새누리당이고, 한나라당이며, 신한국당이고, 민자당이요, 민정당이다. 

이러니 전두환 암살을 소재로 하는 영화 [26년]이 정부와 집권여당에게 달가울리 없다. [26년]은 자신들이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정조준하는 영화다. 게다가 이 영화는 자신들의 가장 큰 역사적 과오였던 광주 학살을 정면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금의 정부 입장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당연히 만들어져서도, 사람들이 봐서도 안 되는 작품인 셈이다. 한 마디로 여전히 떵떵 거리며 잘 살고 있는 '전두환 각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다. 정상적인 나라였으면 전두환 같은 사람은 사회적으로 이미 매장되었어야 하고 민정당 일파는 모두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졌어야 한다. 하지만 전두환은 여전히 엄청난 부와 권력을 누리며 여보란 듯 살고 있고, 민정당은 한나라당-새누리당을 거쳐 집권여당의 영예를 누리고 있다. 그리고 그 집권 여당의 맨 꼭대기에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지독한 독재를 했던 박정희의 딸이 자리해있다. 그것도 유력한 대선후보로 말이다. 비상식적이어도 너무 비상식적인 일이다.

이 이상하고도 망측한 나라에서 영화 [26년]의 제작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일터다. 결국 이 영화의 제작은 정권 눈치보는 대기업 자본이 아니라, 올바른 역사 의식을 갖고 사는 대다수 시민들의 몫으로 넘어왔다. 죄 지은 사람들은 독재자의 눈치를 보지만 죄 없는 시민들은 독재자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시민들이 힘을 합치고, 시민들이 돈을 모아야만 진정으로 의미 있는 영화 한 편이 탄생하게 되는 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 이라는 말을 남겼다. [26년]의 영화화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아주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시민들의 단결된 힘이 영화 제작 뿐 아니라 이번 총선, 대선에서도 그 위력을 발휘하기를 바란다. 시민들의 조직된 힘은 제대로 된 역사와 제대로 된 정의가 바로 선 사회, '행동하는 양심'이 인정받고 존경받는 진짜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2012년을 '점령'할 때가 왔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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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힘을냅시다 2012.03.29 1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속시원한 글 ..잘 읽었습니다. 이런글이 널리 읽혀져야하는데....

  2. 2012.03.31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정부의 압력이라고 그러죠 이런 글이 널리 퍼질까 무섭네요

  3. 손수경 2012.04.03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원하는 방법 안내해주세요.

  4. Favicon of http://un5166.blog.me BlogIcon 2012.06.14 1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까지만 읽습니다. 저는 굳이 따지자면 좌파에 가깝고 광주 출신이고 518하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정치 성향을 갖고있지만, 글쓴님께는 그런 이야기 듣고싶지않네요. 사실에 대한 이야기만 보고갑니다. 후원방법 찾아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