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쇼트트랙의 전설' 안현수가 결국 러시아 국가대표로 '금메달'을 사냥했다.

 


국내에서의 선수 생활이 요원해지자 러시아 행을 택한 뒤, 결국 러시아 국가대표로 귀화해 한국 선수들을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일까. 대한민국을 '버리고', 러시아를 '택한' 그를 열렬히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말이다.


우리나라는 여태껏 쇼트트랙 종목을 동계올림픽의 '금밭'이라고 불러왔다. 지금에야 김연아 같은 우수한 피겨 스케이트 선수도 나오고 스피드 스케이트도 효자 종목이 됐지만, 전통적인 강세 종목은 누가 뭐래도 쇼트트랙이었다. 1992년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에서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딴 이래 남녀, 장단거리 할 것 없이 세계 최강 라인업을 구축했던 대한민국 쇼트트랙은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수많은 전설들을 낳았다.


그 중 한 명의 선수가 바로 안현수다. '국가대표 에이스' 김동성의 뒤를 이어 혜성 같이 등장한 안현수는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영웅으로서 엄청난 전성기를 구가했다. 특히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 그는 1000m, 1500m 개인과 5000m 계주에서 금메달, 5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해 이 대회 쇼트트랙 남자부 전종목에서 메달을 따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대한민국의 스포츠 선수로는 올림픽 대회에서 한 번에 가장 많은 메달을 딴 기록이다.


이처럼 안현수의 존재는 곧 '한국 쇼트트랙의 상징' 과도 같았다. 그랬던 그가 2011년 현재, 대한민국 국적을 버리고 러시아 시민권을 취득한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금메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러시아의 금메달을 위해 달린다고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버린' 그가 야속하기는커녕 도리어 미안해진다. 안현수라는 좋은 선수가 제대로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한 현실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한체대 출신인 그는 한체대와 비한체대 출신으로 나눠져 있는 쇼트트랙 세계에서 혹독한 '파벌 논란'을 겪었다. 쇼트트랙을 둘러싼 파벌 싸움은 안현수를 궁지로 내몰았고, 그가 제대로 연습할 시간과 공간조차 허락치 않았다. 비한체대 파는 어떻게든 한체대 소속이었던 안현수를 쇼트트랙 팀에서 내쫓으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동계올림픽의 제왕이었던 그에게 쇼트트랙 협회가 남겨준 것은 "왕따" 라는 지독한 낙인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쇼트트랙 선수로서 최선을 다했다. 2007년 세계선수권 대회를 재해하고, 2008년 여러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등 '쇼트트랙 황제'의 면모를 마음껏 과시했다. 그러나 그 지독한 파벌싸움을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안현수의 우승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안현수의 명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견제는 더욱 심해졌고 왕따는 더욱 가혹해졌다. 파벌싸움의 상처가 더더욱 깊어진 것이다.


이러한 파벌 싸움의 결과는 결국 안현수의 2010 벤쿠버 동계 올림픽 출전권을 박탈하기에 이른다. 2008년 심각한 부상을 당해 재활에 힘썼던 안현수는 2008년 말 부상에서 어느정도 회복해 기량을 되찾아 가고 있었으나 빙상연맹에서 예정보다 빨리 국가 대표 선발전을 치뤘고 안현수는 부상에서 채 낫지 않은 불완전한 몸으로 선발전에 참가, 결국 9위의 성적에 머무르며 올림픽 출전권을 박탈당했다.


안현수 측은 "기회를 달라"며 강력히 반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2010년 올림픽 출전의 영광을 고스란히 반납해야만 했다. 2010년 벤쿠버 동계 올림픽의 쇼트트랙 선수는 피겨나 스피드 스케이트에 비해 기대치 보다 낮은 성적을 거둬 또 한 번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러한 파벌 싸움으로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안현수는 결국 러시아 행을 택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제 2의 선수생활'을 준비하고 있다.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자신의 조국에 처참히 버림 받아야만 했던 올림픽 영웅은 끝내 조국을 버리는 것을 통해 부활의 기회를 얻게 된 셈이다. 그래서 그가 러시아 국가대표를 택하는 것에 대해 비난하고도, 욕하고 싶지도 않다.


안현수가 대한민국을 버리기 전에, 대한민국이 그를 먼저 버렸다. 안현수가 대한민국을 위해 뛰려하기도 전에, 대한민국이 그를 먼저 뛰지 못하게 했다. 우리가 더 이상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에게 말하고 싶다. 소치에서 꼭 금메달을 따라고. 금메달을 따서 그 잘난 쇼트트랙 파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라고. 대한민국이 그를 버린 것을 후회하게 만들고, 대한민국이 그를 못 뛰게 한 것을 한스럽게 만들라고. 멋지게 복수해서 진짜 '안현수' 다운 모습을 보여주라고.


쇼트트랙을 사랑해서 쇼트트랙을 탔고, 쇼트트랙으로 영광과 좌절을 모두 맛본 멋진 남자, 안현수. 그가 대한민국을 위해 뛰든, 러시아를 위해 뛰든 그는 영원한 2006년 토리노의 영웅이며,우리나라 쇼트트랙의 자랑스런 전설이자 상징이다. 안현수의 건투를 빈다. 그의 목에 다시금 빛나는 금메달이 걸리는 그 날까지.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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