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버리는 다소 파격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서영이(이보영)에게 대놓고 돌을 던질 수 없었던 이유는 가족이라는 굴레에 갇힌 고통이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는 함부로 재단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무게로 다가올 때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서영의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도박판을 전전했으며 허황된 꿈만 늘어놓으며 일도 제대로 하지 않은 캐릭터였다. 그렇기에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서 일하던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에 서영이 그에게 책임을 물은 것 또한 결코 부당하지 않은 설정이었다. 학교마저 포기해야 했던 서영의 입장에서 그의 아버지는 차라리 없었으면 더 좋았을 존재에 불과했다. 그 정도라면 서영이가 가족을 포기하는 과정이 그다지 황당무계한 것만은 아니었다. 패륜, 반인륜 같은 극단적인 단어들로 서영의 행동을 몰아세우는 여론이 오히려 지나치다 싶었을 만큼 서영이의 행동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시작하고 삼개월여가 지난 지금 <내 딸 서영이>는 지금 높은 시청률과 상관없이 드라마의 갈등구조의 구성에 문제를 보이고 있다. 갈등이 높을수록 시청률은 고공 행진을 거듭하고 있지만 드라마의 흐름을 촘촘하게 연결하지 못하고 얼기설기 짜인 틈을 노출하며 막장에 가까운 코드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찬란한 유산>과 <49일>등을 집필한 작가의 작품이라 보기 힘들 정도다.

 

<내 딸 서영이>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갈등의 기둥이 되는 메인스토리에 있다. <내 딸 서영이>는 여러 개개인들의 일상생활이나 관계의 부딪침에서 갈등이 파생되는 여타 가족극과는 달리 서영이가 재벌 2세와 결혼을 하면서 숨긴 과거가 들통날까봐 전전긍긍하는 내적 갈등이 드라마의 중추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 갈등을 위해 <내 딸 서영이>에서 우재(이상윤)는 처음부터 서영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서영과의 결혼이 빨리 진척되어야 서영이의 위기가 닥치고 그 위기는 곧 재미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영과 우재는 다른 드라마의 주인공들에 비해 서로가 연결되기 까지 밀당이나 위기가 현저히 적었다. 그 때문에 서로의 관계가 진전되는 설렘이나 긴장감을 담보하지 못했고 결국 이 드라마가 택한 갈등의 구축점이 바로 서영이의 비밀로 파생되는 문제들이다. 모든 인간관계의 갈등마저 서영이의 이 비밀 때문에 파생된다.

 

 

서영의 아버지인 삼재(천호진)는 서영의 선택을 존중하며 우재에게 자신의 정체가 들통 날까 노심초사한다. 서영의 동생 상우(박해진)는 서영의 시동생인 미경(박정아)과 사랑에 빠지지만 누나의 비밀로 인해 그 사랑을 스스로 포기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 그리고 우재는 벌써 몇 주 째 서영의 비밀을 알아채고 서영과 냉전 상황을 만든다.

 

하지만 이 과정의 설득력이 과연 치밀하게 계산되었는가 하는 점에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서영은 판사를 할 정도로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자신에게 헌신적이던 남편의 변화가 자신의 거짓말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나에게 할 말이 없냐”는 물음에도 "이서영에게 실망했다”는 직설화법에도 자신의 가장 큰 딜레마인 가족을 연결시키지 못한다. 사실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드라마 속에서 서영은 너무도 상처받은 얼굴로,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다. 우재가 그 사실을 알았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더라도 지나치다.

 

물론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다. 현실은 픽션보다 기이하다 했던가. 현실 역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할 수 있다. 그러나 드라마 안에서는 납득할만한 인물이 있고 감정이 있고 행동이 있어야 한다. 그 구조는 마치 추리소설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관객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변명은 서영이의 행동에 통하는 논리가 아니다. 서영이의 성격과 감정, 행동이 모두 불일치하고 있는 가운데 TV앞에 모인 이들을 전혀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캐릭터의 행동은 이유가 있다. 서영이의 비밀이 탄로가 나고 그 사건이 해결되는 순간, 이 드라마가 지켜 온 갈등의 근간이 모두 사라져버리는 결론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갈등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등장인물들 전원이 하나의 사건에 절절히 매달린 결과다. 이것은 제작진의 명백한 실수다. 새로운 갈등 구조를 만들 여력이 되지 않을 정도로 서영이 거짓말은 이 드라마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 그 비밀이 해결되면 결국 해피엔딩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드라마는 벌써 몇 주 째 서영이가 비밀을 고백할까 안할까 하는 동어반복의 스토리가 되고 있다. 드라마 스스로 자가당착의 불길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높은 시청률을 견인하는 가장 큰 갈등구조가 결국 인물들을 유연하게 행동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우재의 캐릭터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유준상에 이은 제 2의 국민남편이라는 애칭까지 들었던 이 캐릭터는 이제 서영을 괴롭히는 것 말고는 다른 관심사가 없어 보인다. 물론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의 배신이라는 점에서 우재의 감정이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방식이 너무나 치졸하고 비열하다. 서영에게 화가 나 있지만 왜 화가 났는지는 말해주지 않고 서영을 계속 떠보고 비난하고 상처 주며 서영을 마치 싫증난 장난감처럼 다룬다. 때때로 지능적이기까지 하다. 마치 서영을 괴롭히기 위해 삼일 밤낮을 준비한 것 같다. 단순한 무시와는 다르다. 설사 이해한다고 치더라도 이런 캐릭터에서 매력을 느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랑하는 아내가 부모님을 숨겼다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정도는 알아볼 수 있음에도 우재는 그 과정이 아닌 단지 아내의 거짓말 그 자체에 집중하며 서영이 도저히 감당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을 정도로 괴롭게 몰아갈 뿐이다. 이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비단 드라마속의 서영뿐이 아니다.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시청자 역시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서영의 비밀 때문에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는 전혀 매력적이지 못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서브 주인공격이라 할 수 있는 상우와 미경 커플 역시 지나친 집착으로 망가지는 미경의 모습을 부각시킨 탓에 결국은 ‘미저리 커플’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몰래 주거침입까지 감행하는 여자는 처절하긴 해도 결코 사랑스럽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할 수 없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그 과정을 풀어내는 모습이 지나쳤다. 드라마 안의 커플의 눈물이 애절함이 아닌 집착으로 다가온다면 그 모습을 성공적이라 평하긴 어렵다.

 

<내 딸 서영이>는 주말 드라마 황금 시청률을 담보하는 방송사의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고 있다. 시청률은 여전히 높다. 그러나 드라마 속의 모순점은 결국 왠지 모를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만다. 서영을 이해하고 싶었던 초반과는 달리 지금 서영이에게는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줄 수 없다. 시청자들이 답답한 드라마, 이해 할 수 없는 드라마,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는 결국 막장이다. 서영이가 막장이라는 덫을 벗어나 웰메이드 드라마가 될 수 있을까. 이 드라마의 마지막이 궁금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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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mashi07.tistory.com BlogIcon 뽀글헤드 2012.12.27 06: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처음엔 재미없다가 요즘에 재밌던데요.. ㅎㅎ
    서영이 캐릭에 별로 공감이 안되다가 지금은 공감도 되고 왠지 슬프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