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일일사극 <구암 허준>이 연일 최저 시청률을 기록하며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8, 시청률 6.7%(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동일)을 기록하며 첫 방송을 시작한 <구암 허준>255%대 시청률로 떨어진 이래 좀처럼 반전의 기회를 찾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한때 MBC의 야심작이라고까지 평가 받았던 <구암 허준>은 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일까.

 

 

 

 

김재철이 허준에 집착했던 이유

 

 

<구암 허준>26일 방문진에 의해 해임된 김재철 전 MBC 사장의 야심작이었다. 20121130, MBC 51주년 창사 기념식에 참석한 김재철은 혁신은 계속 되어야 한다”, “하다 못해 분식집도 혁신을 해야 살아남는 것처럼 MBC도 혁신을 해야 한다.”는 말을 쏟아내며 채널 경쟁력 강화를 강조했다. 심지어 내년에 시청률 1등을 하지 못하면 그만둘 각오를 하고 있다는 극단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공식적으로 <구암 허준>의 제작을 천명했다. “2013년에는 <뉴스데스크> 이 후 공영성을 강화한 드라마가 편성될 것이다. 현재 <허준> 시즌 2가 준비 중이라며 소문으로만 떠돌던 <허준> 리메이크 설을 사실로 확인시켜 준 것이다. 그러면서 현재 9시대 시청률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만 20133~4월이 되면 1등이 가능하리라 보고 있다<허준> 시즌 2에 대한 기대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김재철의 발언 이 후, <허준>의 리메이크 제작은 급물살을 탔다. <선덕여왕>의 김근홍 PD, <허준>의 최완규 작가가 손을 잡았고 김주혁, 백윤식, 박진희, 남궁민 등이 합류하며 힘을 보탰다. 정식 명칭으로 <구암 허준>이 확정되고 318일이 첫 방송 날짜로 결정된 것 역시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김재철을 위시한 방송사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단기간 내에 상당한 규모의 위용을 구축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사실 MBC<구암 허준> 편성은 여러 가지로 무리수인 측면이 있었다. 현행 방송법 시행령은 오후 7시부터 11시 사이 주시청시간대에 특정 방송 분야의 프로그램이 편중돼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MBC<구암 허준>을 편성하면 140분 가까운 시간을 드라마에 내주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는 타 방송사에 비해 약 40분이나 많은 시간이다. 방송법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면키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재철이 <구암 허준> 제작을 강행한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단연 시청률 때문이다. 전통적인 강자인 KBS 9시 뉴스와 경쟁하기에는 드라마가 가장 경쟁력 있는 장르인데다가, 과거 64.2%라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한 <허준>의 리메이크라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손색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9시대 일일 드라마를 처음 시도하면서 지극히 안전한 선택을 한 셈이다.

 

 

게다가 허준은 75<집념>을 시작으로 <동의보감>(1991), <허준>(1999)까지 MBC가 창사 이래 무려 세 번이나 드라마화 한 소재다. 그만큼 제작 노하우는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궁합도 좋았다. 앞서 방송 된 세 작품 모두 작품성, 흥행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성과를 얻었다. 이런 측면에서 김재철에게 허준은 수렁에 빠진 MBC 9시대를 건져낼 유일한 구세주였던 셈이다.

 

 

 

 

구암 허준왜 부진한가

 

 

그러나 김재철의 호언장담과 달리 <구암 허준>의 성적은 동시간대 꼴찌에 머물고 있다. 방송 2주차에 접어들었지만 제대로 된 상승 동력을 찾지 못한 채 시청자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는 추세다. KBS 1TV 9시 뉴스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동시간대 타 방송사 프로그램에도 뒤쳐져 동시간대 꼴찌를 기록 중이다. 100억이 넘는 제작비가 무색해 지는 순간이다.

 

 

MBC의 야심작 <구암 허준>은 왜 부진한 것일까. KBS 9시 뉴스의 강세는 단연 첫 번째 이유로 꼽아야 한다. 지난 40년간 시청자들에게 9시 시간대는 뉴스 타임이었다. 이를 뿌리째 흔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구암 허준>이 아무리 경쟁력 있는 드라마라고 할지라도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을 단기간에 바꾼다는 건 쉽지 않다. 앞선 시간대에 방송하는 <MBC 뉴스데스크>가 죽을 쑤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9시 시간대에 사극을 보는 것이 너무 부담스럽다는 것도 부진의 이유 중 하나다. 모름지기 일일극은 한두 번 걸러서 봐도 이야기와 캐릭터가 단번에 파악될 만큼 단순한 구조여야 한다. 그래야 중간이라도 새로운 시청층이 유입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암 허준> 같은 사극은 연속적으로 보지 않으면 긴장감이 떨어지고 내용 파악이 어려운 장르다. 시청자들이 중간에 유입될 확률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처음부터 본 시청자라고 할지라도 드라마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매일 같은 시간대에 TV 앞에 앉는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에 치이고, 시간에 치이는 보통의 현대인들에게 이는 너무 불친절한 요구다. MBC가 시청자들의 생활 패턴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했더라면 이런 식의 무리한 편성은 아마 하지 못했을 것이다.

 

 

드라마 주 시청층인 30~50대 여성들이 사극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젯거리다. 일상생활을 가벼운 터치로 그려내는 홈드라마에 익숙한 주부들에게 사극의 무겁고 진지한 진행은 편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주부 시청자 대부분은 7시대 MBC <오자룡이 간다>, 8시대 KBS <힘내요 미스터 김>을 시청하고 9시대는 남편이 뉴스를 볼 수 있도록 채널권을 양보하고 있다. 충성도 높은 주부 시청자들을 규합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 셈이다.

 

 

편성에 따른 외적 문제 뿐 아니라 작품 내적으로 원작의 그늘이 너무 큰 것 역시 넘어야 할 산이다. <구암 허준>의 원작인 1999년 작 <허준>은 공전의 히트를 친 드라마다. 안 본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서 <구암 허준>으로선 원작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줘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완전히 신선한 것이 아니라면 <허준>을 잊지 못하는 시청자들이 <구암 허준>에 흥미를 느끼기는 힘들다.

 

 

주연배우들의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허준 역의 김주혁은 국민배우 반열에 올라있는 전광렬의 위상에 못 미치고, 유의태 역의 백윤식 또한 이순재에 비하면 무게감이 다소 부족하다. 극이 진행 되면서 점차 나아지기는 하겠지만 대중의 구미를 확 당길만한 연기자가 없다는 것이 초반 시청률 확보에는 분명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구암 허준>은 안팎의 기대와 달리 잘못된 편성전략, 주 시청층 공략 실패, 시청 패턴에 대한 이해 부족, 작품 내적 문제 등 여러 가지 약점을 노출하며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MBC의 야심작에서 졸지에 애물단지로 내몰린 지금, 과연 <구암 허준>5%대 시청률에서 벗어나 김재철의 공언대로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자리에 올라설 수 있을까. 김재철이 떠나며 마지막으로 남긴 <구암 허준>이 훗날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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