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드라마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그동안 흥행불패 신화를 자랑하던 소재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이상기류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단연 MBC <구암 허준>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서 있다.

 

 

 이 작품들은 지난 50년간 시청자들의 한결 같은 사랑을 받아온 허준과 장희빈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음에도 한 자릿수 시청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새로울 것 없는 구암 허준’, 차별화에 실패하다

 

 

우리에게 <동의보감>의 저자로 잘 알려진 허준의 일생은 1975MBC 일일극 <집념>을 시작으로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네 번이나 리메이크 된 소재다. 이 중 76년 영화 <집념>을 제외한 세 편의 드라마는 모두 MBC에서 제작했는데, 그 중에서도 1999년 전광렬 주연의 <허준>60%를 넘나드는 공전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폭발적 인기를 구가한 작품이다. 대중의 뇌리에 허준=전광렬이란 등식이 아로새겨진 시점도 바로 이 때부터다.

 

 

당시 <허준>은 드라마가 하나의 사회현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작품이었다. 전국의 한의원이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 것은 물론이거니와 원작인 이은성 소설 <동의보감>이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매실의 효능이 극 중에서 소개되자 이례적인 매실 품귀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기에 주연을 맡은 전광렬을 비롯해 이순재, 황수정, 임현식 등이 연말 연기대상을 싹쓸이하며 한 몫 거들었다. 그야말로 허준 신드롬이 전국을 강타한 것이다.

 

 

<구암 허준>의 한계는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구암 허준>의 주 시청자 타겟층은 이미 14<허준>을 통해 허준이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경험한 세대다. 한 마디로 구침지희, 구안와사, 반위 등 허준의 하이라이트 격인 장면들에 사실상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암 허준>이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전작에서 보지 못한 한 방이 있어야 하는데, 원작이 있는 상태에서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의 <허준> 스토리에서 크게 더하거나 뺄 것이 없다면, 이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정도 밖에 없다. 첫 번째는 작가가 창의적으로 원작을 각색하고, 연출이 최선을 다해 이를 뒷받침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구암 허준>은 이 부분에서 철저히 실패했다. <구암 허준>의 최완규 작가와 김근홍 PD14년 전에도 <허준>의 작가였고, 연출진이었기 때문이다.

 

 

아역 부분이 추가 됐기는 했지만 <구암 허준>의 캐릭터,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 연출방향 등이 <허준>과 거의 동일한 이유다. 제작진까지 그대로 갖다 쓴 마당에 새로운 이야기와 색깔이 나올 리 만무하다. 심지어 과거 임현식의 대사 중 하나였던 줄을 서시오!”까지 정은표가 똑같이 따라하는 상황이다. 시청률에 급급했던 MBC가 너무 안전한 선택을 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 버린 것이다.

 

 

두 번째는 배우로 승부를 보는 방법이 있다.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다 했고, 제작진의 역량 역시 비슷하다면 승부처는 역시 배우들의 면면이다. “허준=전광렬이라는 등식만 깰 수 있다면, 시청자들에게 차별화 된 느낌을 선사할 수 있다. 허나 <구암 허준>은 이 부분에서도 아쉬움을 남긴다. <허준>의 주연 배우들과 비교했을 때, 전체적으로 무게감이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허준 역의 김주혁, 유의태 역의 백윤식 등은 빼어난 연기력을 자랑하는 배우들이다. 그러나 커리어나 흥행력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봤을 때 이들이 전광렬과 이순재의 잔상을 완전히 떨쳐내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타이틀롤 김주혁의 경우 2005<프라하의 연인>을 제외하고는 TV 드라마로 성공한 전례가 없다. 시청률을 끌어 올릴만한 역량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뜻이다.

 

 

결국 <구암 허준>은 별반 달라진 것 없는 스토리, 신선함이 떨어지는 제작진, 무게감이 부족한 배우들로 인해 전작인 <허준>과 차별화에 실패하며 그저 그런작품으로 전락해 있다. 지금껏 허준이 사랑 받았던 이유는 같은 원작을 다르게 포장해 가며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덕분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작의 성공전략을 그대로 답습했던 <구암 허준>의 실패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새로운 장옥정’, 차별화 강박증에 시달리다

 

 

<구암 허준>이 너무 똑같아서 탈이라면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반대로 너무 달라서 탈이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그 동안 악녀로 묘사되어 온 장희빈을 조선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이자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는 여성으로 재해석했다. 장희빈 캐릭터가 이렇다보니 연적인 인현왕후와 최숙빈은 악역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랜 시간 패턴화 된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선악 구도를 180도 뒤집어 버린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지난 50년간 장희빈은 조선 최고의 악녀로, 인현왕후는 인고와 희생의 성녀로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그런데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이를 완전히 부정하면서 시작한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강지처를 내 쫓은 첩이 사실은 착하고 매력 있는 여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극본과 연출이 전적으로 뒷받침 돼야 한다. 나름의 설득력을 갖추고 진득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대중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야만 극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다. 그러나 <장옥정, 사랑에 살다> 제작진은 새로운 것을 보여주겠다는 욕심이 지나쳤던 나머지 이런 기본적인 부분들을 너무 간과하고 말았다. 이 작품이 시간이 갈수록 대중에게서 멀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희빈이 유명 패션 디자이너라는 둥, 조선판 패션쇼가 열린다는 둥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설정을 대거 집어넣는 시도는, 미안하지만 극에 대한 괴리감만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제작진은 퓨전 사극 속 픽션의 일부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장희빈 이야기를 익히 잘 알고 있는 시청자들 입장에서 이 같은 말이 곧이곧대로 들릴 리 없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그려내는 장희빈을 도저히 받아들일 자신이 없는 시청자들의 선택은 결국 하나다. 채널을 다른 곳에 돌리고 마는 것이다.

 

 

아무리 소설이 원작이라고 할지라도 드라마는 드라마다워야 한다. 드라마가 극단의 대중문화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설정이 파격적이라면 스토리는 어느 정도 대중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끌고 가야 신선함과 편안함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 더욱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장희빈의 이야기를 새롭게 재해석하고자 한다면 신중하고 유려한 접근은 필수 적이다. 새로운 것도 좋고, 차별화도 좋지만 우선 대중 친화적인 이야기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할 시점이다.

 

 

물론 주연을 맡은 김태희의 책임도 적지 않다. 명색이 ‘9대 장희빈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까지 연기력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한 드라마의 타이틀롤로서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다. 장희빈은 지금껏 김지미, 윤여정, 이미숙, 전인화, 정선경, 김혜수 등 당대의 명배우들이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연기한 캐릭터다. 이런 중차대한 캐릭터를 맡았다면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처럼 <장옥정, 사랑에 살다>장희빈이라는 흥행 불패 소재를 꺼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을 배려하지 않은 생소한 설정과 공감대를 잃어버린 무리한 스토리라인, 주연 배우의 연기력 부족 논란 등이 발목을 잡으며 동시간대 꼴찌로 추락하고 말았다.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갈등이 본격화 되면서 회생할 여지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한 번 빼앗긴 기세를 다시 되찾아 오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뼈를 깎는 자기 혁신이 요구된다.

 

 

허준과 장희빈, 너무 높은 전작의 벽

 

 

전혀 차별화 되지 못한 <구암 허준>과 너무 차별화 되어 걱정인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공통점은 전작의 벽이 너무 높고 공고하다는 사실이다. ‘허준장희빈이라는 흥행 불패 소재로 시청자들의 기대치는 하늘 높이 올라가 있는데, 정작 작품은 이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니 실망감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동안 허준과 장희빈이 쌓아올린 장구한 흥행의 역사가 오히려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모양새다.

 

 

만약 이번에 <구암 허준><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동시에 저조한 시청률로 퇴장하게 된다면 허준과 장희빈을 다룬 작품 중 최초로 흥행에 실패한 작품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과연 이 두 작품은 막판 뒤집기에 성공하며 흥행 불패 신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갈 길이 구만리인 지금, 제작진과 출연진의 고민이 그 어느 때보다 깊어지고 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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