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의 목적이 8년의 무명시절을 청산하는 것이었다면 그 목적은 훌륭하게 달성되었다. 이제 클라라는 대중에게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뿐인가. 이제 어느정도의 화제성마저 담보하는 연예인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클라라는 구설수에 올랐다. 이번에는 거짓말 논란이었다. 클라라가 방송에서 말이 바뀌는 모습을 포착한 누리꾼들의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는 곧 기사화 되었으며 해명이 이어졌다. 클라라에게 쏟아진 관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분명 클라라는 대중에게 자신을 각인 시키는데는 성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라는 거짓말 하는 이미지를 씻어내지 못했다. 클라라는 해명글에서 조차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예능의 재미를 우선한 것 뿐이다. 한국 정서를 이해 못한 것”이라는 그의 변명은 시청자들의 심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발언일 뿐이었다.

 

 

물론 예능에서는 재미와 웃음을 우선한 과장이 수반된다. 그들의 말이 모두 진실일 필요도 없다. 그러나 클라라의 경우, 예능적인 맥락에서 해석될 성질의 발언들이 아니었다. 예능을 위한 상황에서 나온 발언인지 아닌지를 시청자들이 인지하고 있느냐 하는 것에 따라 발언들은 다르게 해석된다.

 

 

클라라에게 쏟아진 질문은 클라라의 신상에 관련된 일이었다.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질문들, 이를테면 연예인과 사귄적이 있느냐, 치맥을 좋아하느냐 요가를 배운적이 있느냐 하는 간단한 것이었다. 이 질문에서 예능의 재미를 이끌어 내려고 한다면 단순히 그렇다 아니다의 말이 아니라 의외성을 던져주어 시청자들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웃음 포인트를 잡았어야 했다. 그러나 클라라의 대답은 단순했다. 좋다, 싫다, 그렇다, 아니다로 대답하는 단순한 대답에서 클라라가 말한 예능의 분위기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거짓을 말하려거든 적어도 일관성이 있어야 했다. 같은 질문에 달라지는 대답과 말과 행동이 다른 상황에 놓인 클라라에 황당함을 느끼는 대중들에게 “예능을 이해하지 못한 너희 잘못”이라고 훈계하는 클라라의 해명은 더 큰 파장만을 남겼다.

 

 

 

 

또한 이 논란은 한국의 정서를 운운할 문제가 아니었다. 클라라는 예능에 출연했지만 꽁트나 연기를 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토크쇼에 출연한 것이었다. 어느 나라에서건 토크쇼에서 돌출 행동이나 거짓된 행동이 용납되는 경우는 없다. 어느 나라에서건 단순한 말실수로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스타의 자리다. 단지 예능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해대고 상황에 따라 말이 바뀌는 것이 용납되는 것이 단순히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대중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한국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해서라는 해석은 부적절한 해석이었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오히려 클라라는 영국과 미국 등의 토크쇼 환경에서는 재미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거짓이 용납된다고 말한 셈이 됐다. 결국 클라라의 말에 동의는 어려웠다.

 

 

 

클라라는 왜 이렇게 거짓을 말하고, 해명도 자기 위주인 걸까. 그건 클라라가 어떻게든 주목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연예인에게 있어서 주목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클라라의 방식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클라라는 자신감이 넘친 나머지 그것이 자만심이 되어 버렸다. 클라라는 언제나 끊임없이 자신과 남들을 비교하고 자신이 더 우월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와 비교당한 연예인만 해도 이보영, 유이, 박은지 등이다. “난 이보영 보다 남자를 더 잘 유혹할 수 있다” “나한테 달리기 지신 분” “이 사람이 섹시한가?” 등 클라라의 발언에는 항상 클라라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보다 내가 낫다는 전제가 깔려있었다. 그리고 그건 역설적으로 자신감이 아닌, 자괴감이다. 진정한 자신감은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자존감은 나만큼 남들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한다. 남들의 매력도 인정하고 받아 주되, 자신의 매력 역시 깎아 내리지 않는 것에서 진정한 매력은 발현된다. 그러나 클라라의 경우, 자신은 톱스타가 집착할 만큼 우월하고, 누구보다도 더 섹시하며, 뛰어난 조건을 지닌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할 뿐이다. 섹시하고 귀여우며 인기있는 이미지에서 조금도 망가지지 않으려는 클라라의 이미지가 거슬리니 그가 한 작은 실수도 사람들은 용납할 수 없다. 거짓을 말했다는 논란이 이렇게까지 확장된 것 역시 그가 한 발언들이 자신을 감싸면서 남을 깎아내리는 불편함을 수반했기 때문이었다.

 

 

클라라는 불안하다. 자신이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지적하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린다. 그동안의 무명의 세월을 보상받으려는 듯, 자신이 가진 것들을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한다. 그러나 진정한 매력은 그 사람이 알아 달라고 소리치지 않아도 자연히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이다. 클라라는 오히려 자신감이 없으니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또 그 과정에서 자신을 높이려 한다. 그렇게 비교하는 매력은 결코 오래 갈 수가 없다. 그런 식의 단순 비교는 결국 무너진다.

 

 

그도 그만의 매력이 있다. 그 부분을 더 개발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거짓말을 하고 남들을 찍어 누르면서 돋보이려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클라라의 매력보다 그의 거짓에 더 집중하고 그를 깎아내리려 한다. 그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만의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그 부분을 스스로 존중하며 다른 사람들 역시 그런 가치를 지닌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 배려가 수반되어야 사람들은 불편함을 가중시키지 않을 수 있다.

 

 

클라라는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불안한 것인지도 모른다. 뛰어난 몸매와 외모를 지니고는 있지만 그 밖에 자신의 매력이 없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킬만한 엔터테이너적 역량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에 누구보다 튀고 나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강박관념은 클라라 본인에게 하등 도움이 될 것이 없다. 그런 강박관념을 벗고 진정한 자신의 매력을 찾으려 노력할 때, ‘구라라’라는 수치스러운 별명이 아닌 대중들이 호응하는 진정한 클라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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