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역사를 담보한다고 하나, 사극은 팩션이다. 그리고 여기서 팩트 보다는 픽션이 훨씬 더 중요한 부분이다. <조선왕조 500년>같은 프로그램이 아니고서야 드라마는 다큐처럼 만들 수 없다. 재미가 있어야 하고 시청률이 나와야 한다. 결말은 설령 정해져 있을지언정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과 위기는 대부분 창작이라고 봐야 옳다. 그래서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한 두줄 정도밖에 등장하는 인물이 대장금이라는 인물로 탄생되기도 하고 아예 새로운 역사관을 배경으로 한 창작사극도 용서될 수 있다.

 

 드라마는 역사와 같을 수 없다. 드라마 속에서는 얼마든지 인물의 재해석이 이루어진다. 그걸 용납할 수 있는 이유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드라마의 고증 부족이나 역사 왜곡 논란이 고개를 들지만 그래도 시청률이라는 강력한 이유 앞에서, 드라마는 역사를 그대로 재현해 내기 위해 노력하는 역사 교과서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역사 드라마의 특징과 상관 없이, 시작도 전에 <기황후>는 역사왜곡 논란에 시달렸다. 기황후라는 인물과 충혜왕이라는 인물을 각각 남녀 주인공으로 내세워 드라마로 기획한 mbc는 끊임없는 역사왜곡 논란에 급기야 충혜왕을 가상의 인물인 왕유로 이름을 교체하며 역사 왜곡 문제를 피해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충혜왕이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으며 극심한 여성편력에 계모벌인 여인을 강간하는 등의 파렴치한 행위도 버젓이 행한 인물이라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바로 타이틀롤인 기황후에 대한 왜곡의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기황후는 몽고에 공녀로 팔려간 후, 뛰어난 미색으로 다이 몽고의 황제인 혜종의 눈에 들어 제 2황후가 된 후, 세도 정치를 펼친 인물이다. 후에 그가 실권을 장악하고 그의 아들을 황태자의 자리에 오르게 하였으며 고려의 풍습을 원나라에 유행시키기도 하였다. 하지원은 인터뷰에서 “기황후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 기황후는 한국 역사에 등장하는 최초의 글로벌 여성이다. 기황후의 수많은 업적과 운명적인 삼각관계 스토리가 흥미진진할 것”이라며 드라마에 대한 기대를 부탁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재해석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는 인물이다.

 

허나 기황후는 단순히 글로벌한 여성으로 업적을 남긴 인물이라 할 수 없다. 기황후가 권력을 잡은 후에는 오히려 원나라로 보내는 고려의 공물의 양이 늘었으며, 그의 오빠인 기철은 그 권력을 바탕으로 탐관오리가 되어 방탕한 생활과  수탈을 일삼았다. 후에 공민왕의 반원 개혁정책으로 기철이 목숨을 잃자 기황후는 군사 1만명을 이끌고 고려를 공격케 하였다. 단지 출신이 고려일 뿐, 고려의 황후도 아닐뿐더러 결국 고려에 대한 도움은커녕 공격을 일삼은 인물인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역사에서 보자면 위인 보다는 원수에 가깝다.  

 

제작진은 이에 대해 '기황후의 이후 얘기는 다루지 않는다. 기황후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서 끝맺을 예정'이라며 논란을 불식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런 해명은 논란의 불씨만 더 지폈다. 역사적인 인식부족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주인공이 악녀인 드라마도 있다. ‘장희빈’만 해도 수차례 리메이크 되며 그의 정치 싸움과 악행을 드라마 전면에 그려냈다. 그러나 하지원과 제작진의 인터뷰에서도 드러나듯, <기황후>는 드라마 주인공으로서 사악하고 탐욕스럽게 그려지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미색을 바탕으로 황후가 된 후 고려를 침략한 사람이 글로벌 리더가 되고 주체적인 삶을 산 여인으로 표현된다는 것은 큰 문제가 된다. 게다가 기황후는 자신의 입지와 권력을 위해 악행을 행사한 매력적인 인물도 아니다. 그는 고려에 명백히 피해를 주었고 심지어 고려에 수탈 비슷한 행위까지 서슴지 않은 인물인 것이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재해석의 여지가 있는 인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인물이 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의 일본 장수나 친일파를 두고 ‘그들의 선택은 한국에 도움이 되었다.'는 식의 식민사관이나 6.25의 북침을 옹호하는 내용을 담은 드라마가 용납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단순히 출신성분이 고려라는 이유만으로 기황후를 미화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일까. 이런 모든 논란에도 제작진은 충혜왕 이상의 설정을 교체하지 않았다. 이렇게 된 바에야 아예 판타지 사극으로 방향을 틀어도 됐을 터인데 제작진은 설정을 포기하지 않으며 해명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하지원은 이제까지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여배우로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커리어를 만들었다. 액션신을 마다하지 않고 고된 연습량을 모두 소화하며 자신이 맡은 역할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는 호감형 배우로 인식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역사 인식의 부재로 인한 역사 왜곡 드라마라는 오명을 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하지원이 짊어져야 할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타이롤로서 하지원이 <기황후>의 역사왜곡 논란을 모두 극복하고 자신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또 하나의 작품으로서 <기황후>를 무사히 끝마칠 수 있을까. 초반부터 극심한 논란이 예상되는 가운데 그 여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