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의 ‘소격동’이 음원차트를 올킬 시키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역시 서태지의 힘은 강력했다. 서태지 작곡에 아이유의 보컬이라는 점에서부터 음원차트 등장 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키더니 결국 음원차트를 점령하며 ‘명불허전’임을 입증한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아이유와의 콜라보레이션이 유효했다. 아이유는 그동안 음원에서 강세를 보이는 몇 안 되는 여성 솔로 가수였다. 함께 작업할 여성 가수로서 이만큼 적절한 선택은 없었다. 결국 화제성은 음원차트 올킬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서태지의 컴백은 예전같은 분위기를 자아내지 못했다. 일련의 사건들은 서태지의 위상을 떨어뜨렸고 그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리고 아이유 카드는 훌륭하게 통했다. 일단 서태지의 컴백의 시작점은 화려하다.

 

 

 

 

그러나 난데없는 표절 시비가 붙었다. 영국밴드인 처치스(Chvrches)의 ‘더 마더스 위 셰어the mothers we share'와 비슷한 구조라는 의견이 제시된 것이다. 서태지 측은 ‘표절이 절대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 문제에 대한 본질은 표절 자체가 아니라 대중들이 느끼는 감정에 있다.

 

 

 

서태지가 이처럼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은 그가 언제나 선구자적인 음악을 해 왔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난 알아요’시절부터 그 시절에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랩과 빠른 비트의 힙합을 선보였으며 그 이후로도 꾸준히 하드코어등의 장르를 선보이며 서태지의 역사를 썼다.

 

 

그러나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그의 음악이 아닌 그의 사생활이 밝혀지며 대중들의 따가운 시선에 직면하게 된 것이었다. 이 와중에서 ‘난 알아요’등의 표절 시비가 따라왔지만 사실 이는 부수적인 내용이었다. 그에게는 이지아와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배우 이은성과의 재혼이 더 큰 이미지의 훼손을 불러일으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그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신비주의였다. 그의 신비주의가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실제 그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톱스타로 명성을 얻은 후에도 그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비해 그의 사생활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그는 ‘잠정 은퇴’를 한 후 미국으로 떠났고 그를 둘러싼 소문만 무성하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오히려 이는 그의 신비주의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했다. 늙지 않는 그의 신비스러운 외모 역시 이런 그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공헌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소문이 아닌 진실에 있었다. 이지와의 소송 사건이 알려지면서 밝혀진 그의 사생활은 그동안 그가 구축해온 ‘영원한 소년’ 혹은 ‘문화 대통령’의 칭호를 배반하는 것이었다. 한 가수에게 ‘대통령’이라는 칭호가 붙을 정도라는 것은 그가 가진 영향력을 대변하는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에 대한 이미지에 대한 환상과 기대가 존재한다는 점을 인지해야만 했다. 실제 대통령은 아니지만 대통령에게 기대되는 위신과 체면이 그에게도 적용되었던 것이다. 이미지로 만들어진 별명은 많은 사람들에게 불릴수록 그 영향력이 커지고 그만큼의 역할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서태지의 사생활은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그것과는 달랐다.대통령이 제 책임을 못하면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듯, 서태지에게도 어느새 칭찬보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소격동’의 표절 논란도 예전의 서태지였다면 인기에 따른 단순한 역풍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서태지에게는 그에게 비난할 ‘거리’를 만들어 주는 일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문화 대통령의 위상이 떨어지면서 그를 폄하하는 목소리는 그에게 더 큰 흠집을 만들게 된 것이었다.

 

 

 

 

아이유와의 콜라보레이션도 서태지에 대한 찬양과 칭찬 보다는, 아이유라는 콘텐츠에 서태지가 묻어간다는 식으로 해석이 된다. 그만큼 그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유와 서태지의 소격동은 음원차트를 올킬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후다. 서태지가 들고 나올 타이틀의 성과가 ‘소격동’ 못지않을 경우 그에게 쏟아지는 이런 분위기는 더욱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서태지의 음악은 예전만큼 대중적이지 못하다. 서태지의 위상이 예전보다 떨어진 이유도 있지만 이미 서태지 때와는 다른 음악의 유통구조가 발생했고 더 이상 대중이 접하기 어려운 새로운 음악도 없다. 또한 설사 서태지가 새로운 스타일의 곡을 선보인다해도 서태지가 선보이는 새로운 음악은 비주류에 가깝다. 다른 음악을 접하기 어려운 90년대에는 충격이었던 서태지의 음악은 이제는 그냥 ‘다른’음악의 한 종류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태지의 브랜드가 흠집이 난 것은 치명타다. 그는 이제 왕년의 서태지가 아닌 것이다.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가. 그 치명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태지의 음악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그의 앨범 활동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는 것. 단순히 한 번의 올킬이 아닌, 꾸준히 서태지 브랜드가 통한다는 증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그의 이미지 전환이 필요하다. 그가 진정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이용한 마케팅을 펼칠 줄 안다면 알을 깨고 나와도 여전히 매력적인 ‘서태지 자신’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대중들이 기억하는 것은 ‘신비주의를 배반한 서태지’뿐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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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dino.tistory.com BlogIcon 아디노 2014.10.03 10: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분석 내용에 공감해요. 아이유라서 들었지 들으면서 시끄럽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