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은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남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것은 도의와 양심상의 문제일 뿐 아니라 법적인 책임까지 물을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아이디어와 개성이 중요한 예술계에서 이런 표절 논란은 끈임 없는 논쟁거리다.

 

 

 

최근 드라마로 방영된 <지킬, 하이드, 나(이흐 <지킬>)>의 원작자 이충호 작가는 동시간대 방영되는 <킬미 힐미>가 자신의 작품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며 성토하고 나섰다. 실제로 두 작품은 남자 주인공의 ‘다중인격’을 매개로 로맨틱 코미디를 전개한다는 점에서 시작부터 비교 선상위에 올려놓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지킬>은 두가지 인격으로, <킬미 힐미>는 일곱가지 인격으로 차별화가 되지만 일단 메인 소재가 비슷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만화가들의 드라마 표절논란은 계속해서 제기되어왔다. <시크릿 가든>방영 당시 웹툰 <보톡스>의 작가 황미난 ‘시크릿 가든이 보톡스를 참고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별에서 온 그대>가 방영될 당시에는 만화가 강경옥이 <별에서 온 그대>가 <설희>를 표절했다며 법적대응을 시사 할 의지가 있음을 밝혔다. 이번에 <킬미 힐미>의 ‘아이디어 도용’건을 제기한 이충호 역시 웹툰작가다.

 

 

 

이 세 사건들의 공통점을 보면 독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일어난 표절논란이라기 보다는 원작자의 강한 문제제기로 관심을 얻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소재나 아이디어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각각의 작품들이 표절을 했다고 주장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특히 ‘이야기’의 경우라면 쉽게 표절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할리우드에서도 비슷한 장르가 부득이하게 겹치는 경우나 대놓고 대세를 따른 경우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을 모두 표절이라 단정지을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딥 임팩트>와 <아마게돈>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소재를 들고 개봉했지만 이 두 영화를 두고 아무도 표절을 운운하지 않는다. 전개 방식을 비롯한 스토리 라인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단순히 소재를 두고 표절이라는 단어를 운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실제로 <시크릿 가든>은 <보톡스>와 스토리상에서 전혀 유사한 점이 없었다. <시크릿 가든>은 남녀의 영혼이 바뀌며 벌어지는 로맨틱 코미디고 <보톡스>는 게임을 통해 만난 20대 남자와 40대 여자의 사랑이야기다. 두 작품의 몇 몇 장면이 겹칠지는 모르나, 그 장면들이 도저히 같은 느낌이라고 보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별에서 온 그대>와 <설희>는 논란이 좀 더 심화된 케이스다. 둘 다 ‘광해군 일기’의 기록을 모티브로 삼아 외계인이라는 소재를 사용했다. 불노불사의 존재를 다뤘다는 점과 몇몇 대사들의 유사성이 지적되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소재나 작품의 분위기를 놓고 보면 역시 표절이라는 단정을 내리기는 힘들다. <별에서 온 그대>는 외계인이라는 소재를 사용한 로맨틱 코미디인 반면, <설희>는 미스테리 스릴러에 가깝다. 분위기나 이야기 전개 방식에 있어서 ‘비슷하다’고 느껴질 만큼의 여지는 크지 않다. 물론 같은 사건을 배경으로 ‘외계인’이라는 설정을 사용한 것은 비슷하지만 ‘표절’로 결정나기는 힘들정도의 유사성인 것이다.

 

 

 

 

 

‘표절’은 그만큼 애매한 부분이다. 단순히 소재가 같거나 장면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표절을 운운할 수 없다. 심지어 다른 작품을 모티브로 삼았어도 스토리 라인을 창작자 본인이 다르게 전개시켰다면 ‘가져다 쓴 것’으로 본다.

 

 

 

MBC 드라마 <선덕여왕>과 <선덕여왕> 이전에 창작된 뮤지컬 대본 <무궁화의 여왕, 선덕>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기나긴 법정 싸움으로 이어졌다. 3심까지 이어진 이 사건을 살펴보면 동일한 사안을 두고 1심, 2심, 3심의 결과가 바뀌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1심에서는 드라마 <선덕여왕>의 편을 들었지만, 이에 항소한 2심에서는 드라마 <선덕여왕>의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여 연극 <무궁화의 여왕, 선덕>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3심인 대법원에서 다시 두 작품에 실질적인 유사성이나 의거관계를 인정하지 않아 <선덕여왕>측의 무죄가 확정되었다.

 

 

 

이렇듯, 누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표절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는 문제다. 더군다나 ‘하늘아래 새로운 이야기가 없는’ 현 시점에서 소재 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관계, 그리고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의 유사성까지 확보되지 않고는 쉽게 표절을 운운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더군다나 방송사를 상대로 표절논란이 승소한 경우는 김수현 작가의 <사랑이 뭐길래>를 <여우야 뭐하니>가 표절했다는 판결 정도가 유일하다. 이 경우는 그러나, 전반적인 내용 뿐 아니라 대사를 그대로 차용하는 수준의 표절강도를 보였다. 이렇듯 명백한 증거가 없이는 ‘표절’ 판정은 쉽지 않다.

 

 

 

이번 <킬미 힐미>사건 역시, 대중의 호응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지킬>의 원작자가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고 나섰지만 단순히 ‘다중인격’이라는 소재로 싸움을 걸기엔 두 드라마나 원작 사이의 유사성이 너무나 미미하다. 오히려 빈정대는 듯한 원작자의 말투나 태도가 더 논란이 된 사안이었다. 원작자 본인 역시 <지킬 앤 하이드>를 모티브로 삼은 것을 인정하면서도 남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아이디어 도용’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는 것은 의아한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다중인격이라는 소재를 본인 스스로 만들어 낸 오리지널리티라면 이런 부분이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그동안 수차례 차용되어 온 ‘다중인격’이라는 소재 하나만으로 도용을 운운하는 것은 다소 무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표절은 물론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사실상 성공한 작품을 모티브로 ‘한국판 ㅇㅇㅇ’ 라는 말까지 홍보를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판에 단순한 소재의 겹침이나 장면의 유사성으로 표절을 논하기란 힘든 일이다. 표절에 관대해져서도 안되지만 ‘표절’이라는 틀에 갇혀서 작가적 상상력이 제한을 받아서는 더욱 안된다. 이전 작품에 영향을 받지 않은 작품이 거의 없는 현 시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실질적인 네러티브의 유사성과 인물간의 갈등구조의 도용이 아닌 한, 표절 논란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자존심을 세우려 제기하는 표절 논란은 오히려 만화가들의 자존심을 깎아내렸다. 대중의 이해와 인정이 없이는 오히려 찌른 쪽이 상처를 입을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