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패밀리가 떴다] 가 '대세' 를 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시청률 면에서 보자면 [해피선데이] 의 [1박 2일] 은 부동의 인기 프로그램이다. 매 회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고른 시청률이 나오는데다가 폭발적인 화제성 없이도 잔잔하게 전 연령층을 공략하면서 어느새 장수 프로그램의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1년여가 넘는 시간 동안 [1박 2일] 을 거쳐간 스타도 많았고, 수혜를 입은 스타도 많았는데 그 중 '허당 승기' 라는 별명과 함께 '이승기 열풍' 을 불고 온 이승기는 [1박 2일] 이 낳은 최고의 스타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1박 2일] 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지금 TV에는 '방송인' 이승기만 있고 '가수' 이승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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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이승기는 방송인으로서는 2008년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만 가수로서는 2004년 이후로 전혀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리메이크 앨범까지 합쳐 총 5장의 앨범을 냈고, 싱글과 디즈털 앨범까지 합치면 2004년 데뷔 이래 총 9장의 앨범을 발표한 셈이지만 '가수' 이승기의 히트곡은 그리 많지 않다. 체감으로 느껴지는 대중적 인기와 달리 '가수' 이승기의 행보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지속적인 제자리 걸음을 걸어왔다.


아직까지도 이승기는 1집 타이틀 곡인 [내 여자라니까] 에 갇혀 있다. [내 여자라니까] 를 제외한 이승기의 히트곡을 말하고자 하면 한참을 생각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지 못한 곡들이 대다수다. 그나마 2008년 호응을 얻은 [다 줄거야] 나 [여행을 떠나요] 역시 조규만과 조용필의 '대 히트곡' 을 리메이크 한 정도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리메이크 곡을 소화해 내는데 있어서 획기적인 시도나 원곡을 뛰어 넘는 실력을 보여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기본' 만 했을 뿐 만족과 불만족을 논할 대상 자체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왜 '가수' 이승기는 승승장구 하고 있는 '방송인' 이승기와는 달리 성장하지 못하고 답보하고 있나. 여기에는 단 두 가지 문제점이 작용하고 있다.


첫번째는 이승기가 가수로서 보여줄 만한 비전을 상실했다는데 있다. [내 여자라니까] 의 엄청난 성공 이후에 이승기는 [내 여자라니까] 열풍을 뛰어 넘을 만한 노래를 대중에게 선사하지 못했다. 최악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최고라고 할 수는 더더욱 없는, 그저 '그럭저럭' 들을만한 발라드 정도로 2집과 3집을 채워 넣었던 것이 이승기에게는 결정적인 실수였고, 여기에 더해 지극히 상업적인 리메이크 앨범으로 시류에 편승한 것도 문제였다.


[내 여자라니까] 가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음반 시장에서 소외 되어있던 20~30대 여성층을 적절하게 공략했던 동시에 아주 노골적이고도 파격적인 가사로 대중적 성감대를 '정면돌파' 하는 '깡' 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디오 스타] 에서 성시경이 말한 것처럼 [내 여자라니까] 를 처음 듣는 순간 남자들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쑥스러움을 느꼈지만 여자들은 열광에 가까운 호응을 보냈다. 이처럼 [내 여자라니까] 는 처음부터 공략할 계층을 설정해 놓고 어떤 방식으로 대중을 움직일지 철저하게 계산 된, 이승기만을 위한 '완벽한 상품' 이었다.


거기에 비해 2집과 3집의 곡들은 공략층도, 기획력도 두루뭉술했다. 여성층 뿐 아니라 성별을 막론하고 대중을 아우르겠다는 생각은 갸륵한데 핀트가 안 맞았다. 차라리 2집과 3집에서는 팬층을 확장하려는 노력보다는 1집에서 쌓아 놓는 음악적 자산을 확장하고 키워 나갔어야만 했다. 확실하게 이승기만이 움직일 수 있는 공략층을 만들어 놓고, 음악적 색깔을 보다 선명하게 하려고 노력했다면 2, 3집과 같이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어정쩡한 앨범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시경 같은 경우도 이승기와 비슷한 데뷔, 비슷한 길을 걸었던 케이스지만 그는 무수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1집 때 쌓아놓은 자신의 이미지를 2집, 3집에서 꾸준히 이어갔고 윤종신이라는 당대 최고의 천재 프로듀서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발라드 황태자' 로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적어도 성시경에게는 가수로서 대중에게 제시하는 '비전' 과 '발전' 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승기에게는 비전이나 발전을 발견하기 힘들다. 나름 노력을 하고 있긴 한데 앨범을 들어보면 1집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거기에 1집이 가지고 있던 이승기 특유의 개성이나 색깔도 많이 희석되어서 굳이 이승기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소화할 수 있는' 평범한 앨범으로 전락했다. 4년의 시간 동안 성장없이 정체되어 있으니 과연 비전의 상실이라 할 만 하다.


여기에 더해서 연예인 이승기의 정체성의 문제도 그를 괴롭히고 있다. 그는 '가수' 로 데뷔했지만 연기도 했고, 예능에도 고정출연하고 있다. 가수, 연기, 예능에서 모두 평균 이상의 성적을 거뒀으므로 좋게 말하면 "팔방미인" 이지만, 어떻게 보면 "색깔" 이 없는 연예인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서 [1박 2일] 이전에 그가 가수, 연기, 예능에서 폭발적인 성공을 거둔 적은 별로 없으며 이승기 자체의 존재감을 업그레이드 시킨 적은 더더욱 없었다. 이는 가수 이승기를 넘어 연예인 이승기의 정체성 문제다.


물론 여러 영역을 넘나들면서 '다양한 시도' 를 하는 건 좋다. 그런데 확고한 자기 위치는 있어야 한다. 지금 이승기를 보고 있으면 최종 목표가 '가수' 인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딱히 가수로서 자기 색깔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출연을 번복하기는 했지만 [일지매] 출연건에서 볼 수 있듯이 연기자로 진출할 의향도 있는 것 같고 [1박 2일] 속 예능인으로 살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다.


[패밀리가 떴다] 의 이효리가 예능인임에도 불구하고 '가수' 로서 여전히 자신만의 색깔을 갖고 있고, '영화인' 엄정화가 무대에서는 '가수' 엄정화로 활약하는 것과 달리 이승기는 문어발식 출연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분야에서 철저하게 이승기의 네임밸류 자체를 브랜드화 시키지 못했다. 즉, 대중적인 체감 인기는 좋은데 막상 그 인기를 지속적으로 확장 시킬만한 영역이 애매모호하니 인기가 지속적이지 않고 딱 거기서 멈춰 서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연예인으로서 상당한 전략적 오판이다.  


이승기가 [1박 2일] 의 인기에서 멈춰 서지 않으려면 가수로서 확실한 '한 방' 을 보여줘야 한다. MC 몽이 2년여의 방황 끝에 [서커스] 를 들고 나오면서 [1박 2일] 의 인기를 등에 업고 가수로서 멋지게 '재기' 한 것처럼, 이승기 역시 [1박 2일] 의 인기를 십분 활용하면서 [내 여자라니까] 를 뛰어 넘는 기획력 있는 앨범을 대중에게 선사할 줄 알아야 한다. 가뜩이나 정체성이 모호해 지는 지금 순간에 가수로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지 못한다면 이승기는 향후 몇 년간 '허당 승기' 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가 될 것이다.


물론 이승기는 젊다. 그리고 아주 재능있는 가수다. 또한 능력있는 연기자며, 센스 있는 예능인이다. 그런데 지금, 이 다재다능함이 오히려 '가수' 이승기의 자기 위치 확보에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꽤나 모순적이다. 욕심은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은데 색깔이 모호한 것이 결정적으로 이승기의 문제다.


지금껏 가수로서 걸어온 '실패' 의 길이 이승기의 '시행착오' 라고 한다면 이제는 시행착오를 넘어서 새로운 이승기를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적어도 그는 비슷한 나이 또래 가수들 중 발군의 실력과 무대매너를 갖고 있는 가수이며, 여러 장르를 막론하고 환영받을 만한 방송인이기 때문이다. 그 재능을 그저 그렇게 지금의 인기에 만족하며 소진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넘치는 끼와 재능을 펼치기 위해서는 그것을 발휘할만한 판을 짜야만하고, 판을 짜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있어야하며, 정체하지 않을만한 비전과 성실함도 필요하다. 과연 그는 [1박 2일] 의 '허당 승기' 를 뛰어넘어 온전히 '가수' 이승기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아직은 젊은, 그래서 할 수 있는 것도,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이승기의 건투를 빌어본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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