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기고, 능력있고, 돈 많고 배경까지 좋은 남자는 로맨틱 코미디에서 빠질 수 없는 남자 주인공의 조건이었다. 로맨틱 코미디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어떤 식으로든 판타지를 제공해야 하는 사명이 있었고 그들을 돋보이게 하기 가장 좋은 설정이 바로 ‘완벽남’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TV 속에서 그런 공식이 깨지고 있다. 완벽한 무결점 남자들 보다는 다소 결점이 많고 망가지기도 하지만 그런 모습 속에서 색다른 매력을 가진 캐릭터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종영한 드라마 <킬미힐미>의 지성은 스펙만 보면 완벽한 남자다. 천성적인 다정다감함에 재벌 2세. 게다가 스포츠도 만능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가 다중인격이라는 점이었다. 무려 7개의 인격을 연기하며 지성이 보여준 연기의 스펙트럼은 시청자들을 감탄하게 하기 충분한 것이었다. 지성은 7가지의 인격 중 단순히 거칠거나 다정한 캐릭터가 아닌, 여고생이나 구수한 사투리를 내뱉는 아저씨 캐릭터, 자살 증후군에 걸린 천재소년등 다양한 캐릭터를 변주해 내며 강렬한 인상을 뿜어냈다. 이 과정에서 지성은 박서준과 뽀뽀를 하거나 입술에 틴트를 바르는 등,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연기를 선보였다.

 

 

 

이는 경쟁작이었던 <하이드 지킬, 나>의 현빈과 대조되는 지점이었다. 현빈은 까칠남과 다정남의 경계를 오가는 이중인격을 연기했지만 그 두 캐릭터 모두 로맨틱 코미디 정석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 캐릭터에 그치고 말았다. 시청자들의 평가와 시청률 모두 <킬미 힐미>가 압승을 거두었다.

 

 

 

 

3월에 종영한 드라마 <호구의 사랑>에서 주인공의 이름은 아예 ‘호구(최우식 분)’다. 그는 능력도, 외모도, 심지어 센스도 없다. 그가 하는 것이라고는 여자들에게 이용당하다 처참히 차이는 게 일이다. 그러나 그가 가진 무기는 바로 순수한 마음. 그는 멋있지도, 능력이 있지도 않지만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강하다. 호구짓을 하고 다녀도 그가 주인공으로서 가치 있을 수 있는 이유다.

 

 

 

이런 현상은 현재도 계속 되고 있다. <냄새를 보는 소녀>의 최무각(박유천 분)의 직업은 형사지만, 그는 여자 주인공의 능력을 이용하기 위해 졸지에 만담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 과정에서 최무각은 각을 잡거나 멋있는 척을 하려 하지 않는다. 확실하게 망가지는 능청스러운 연기를 선보이며 기존의 남자 캐릭터에서 볼 수 없었던 웃음을 창출한다. 박유천의 연기력에 있어서도 재평가가 이루어진 부분이다.

 

 

 

 

<슈퍼대디 열>속 한열(이동건 분)도 마찬가지다. 그는 과거에는 촉망받는 투수였지만 부상과 첫사랑의 실패로 폐인처럼 살아간다. 딱히 목표도 없고, 하루 하로 살아가면 그 뿐이다. 그런 그가 졸지에 아버지가 된다. 첫사랑이 찾아와 아이 아빠가 되달라는 말도 안되는 제안을 하고, 아직 마음이 남은 그는 그 부탁을 끝내 뿌리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아빠로서 어설프고 어색하기만 하다. 사회성도 없고 밍숭맹숭하다. 그런 그가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성장해 가는 지점이 이 캐릭터의 포인트다. 능력남은 아니지만 그의 스토리는 드라마를 이어가는 데 전반적으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렇게 망가진 캐릭터들이 남자 주인공이 되는 지점에는 완벽에 가까운 남자들과 평범한 여자들의 사랑이야기에 염증을 느낀 시청자들의 취향이 반영되었다. 잘생기고, 돈 많고, 능력까지 있는 남자들이 여자 주인공과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다는 스토리는 이제 식상하기까지 하다. 그 스토리를 다르게 변주해 내는 것도 한계에 다달았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코믹함과 무능력을 앞세운 ‘결점 많은’ 남자 주인공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결점이 가득한 주인공들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단순히 드라마에만 존재하는 인물을 넘어서 묘하게 현실감을 갖춘 캐릭터들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고 있는 것이다.

 

 

 

완벽남의 시대는 갔다. 마음의 상처가 조금 나 있는 것을 제외하면 완벽에 가까운 남자들의 사랑이야기 보다 진정으로 망가질 줄 아는 캐릭터들이 사랑받는 시대다.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 주인공들 역시 시대에 따라 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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