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희의 연기력은 그가 작품을 할 때마다 도마 위에 올랐다. <용팔이> 제작발표회에서부터 김태희가 "연기력 논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당시 김태희는 "스스로 노력해서 변화한 모습으로 대중의 애정 어린 지적을 다 받아들이고 발전의 계기로 삼겠다"는 현명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그의 연기력에 대한 논란을 해결하는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었다. 실질적으로 변화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저 공허한 울림에 지나지 않게 될 수도 있는 대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태희는 확실히 변화했다. 다소 경직된 표정과 감정 표현을 느낄 수 없는 대사톤으로 '머리로 연기하는 질리는 연기' 라는 평을 받았던 과거의 김태희가 아니었다. <용팔이>에서는 확실히 김태희의 연기력 논란을 불식시킬만큼 김태희의 발전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김태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삼년 간이나 식물인간이 되어 있다가 깨어나는 여주인공 한여진 역할을 맡았다.

 

 

 


한여진은 식물인간에서 깨어나 자신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끌고 갔던 사람들에게 복수의 칼날을 겨눈다. 남자 주인공과의 러브라인도 빠지지 않는다. 김태희는 화려한 외모는 물론, 이전보다 한층 자연스러운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에게 합격점을 받는데 성공했다. 표독스러운 연기는 물론, 멜로 연기까지 감정의 극과 극을 오가는 와중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감정표현을 제대로 해 낸 김태희의 역량이 발전되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런 김태희의 역량을 확인했다는 희열과는 상관없이, <용팔이>는 김태희의 대표작으로 남기에 부끄러운 작품이 되고 있다. 2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도 이 드라마의 허술함을 채워주지 못한다.

 

 

 

 


<용팔이>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중구난방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캐릭터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주인공 '용팔이(주원 분)'다. 이야기가 후반부로 흐를수록 이미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용팔이'가 아니라 '한여진'이 된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원이 연기하고 있는 주인공 김태현(용팔이)는 김태희에게 '복수하지 말라'고 종용하는 것 말고는 더 이상 하는 일이 없다. 극 초반,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고 조직폭력배, 경찰등과의 추격전에 액션신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매력적인 주인공은 사라진지 오래다. 동생이 수술을 받고 건강해졌다는 설정이 등장하자마자 갑자기 이 캐릭터는 천사병에 걸린 듯, 김태희에게 '용서하라'며 착한 척을 한다.

 

 

 


물론 동생이 나았다는 설정으로 캐릭터의 심경변화가 왔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도 목적을 위해서 한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캐릭터였다. 그런 그가 원래 착했던 것처럼 여주인공의 복수를 말리는 모습은 도저히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변화다. 이런 변화가 '동생의 건강'을 빌미로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이 캐릭터가 위선적이라는 증거다. 자신이 이전에 한 일은 '동생 때문'으로 이해 받을 수 있고, 한여진이 하는 복수는 단순히 억눌러야 할 감정으로 치부해야 하는 것인가. 간간히 등장하는 노골적인 PPL처럼 거슬리기 짝이 없는 남자 주인공의 변화다.


 

 

 

채정안이 맡은 이채영역할 역시 이런 급변하는 캐릭터를 이해시키지 못한 대표적인 예다. 한 때 한도준(조현재 분)을 지독히도 증오하던 이 캐릭터는 이제는 한도준을 사랑하는 처지가 됐다. 그 이유가 더욱 가관이다. '한도준이 불쌍해서'. 사실 한도준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악한 짓을 많이 한 캐릭터다. 그런 악행 때문에 이채영은 한도준을 증오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한도준은 자신이 했던 악행에 비하면 죽음이라는 결말을 맞은 것도 별로 놀랍지 않다. 그런 그가 갑자기 불쌍해졌다는 감정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것일까. 그에 대한 설명이 없어도 너무 없다. 아니, 설명을 충분히 했다 하더라도 이런 설정은 이해하기 힘들다.

 

 

 

 


이렇게 캐릭터가 튀니 스토리도 튄다. 한도준은 가장 악독한 인물임에도 어느 순간 갑자기 불쌍하고 동정받아야 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복수하는 한여진이 외려 악녀처럼 묘사된다. 이런 중구난방된 스토리를 잡아줄 구심점이 없는 것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다.

 

 

 


 

초반 신선하고 몰입도 높은 전개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용팔이>는 더 이상 없다. 이제는 대체 어디까지 이 이야기가 망가질 수 있느냐가 더 궁금해질 지경이다. 드라마가 이지경이 되니 가장 아쉬운 것은 스타성에 비해 대표작이 없다는 평을 들었던 김태희다.

 

 

 


김태희는 그동안 해왔던 작품들이 참패를 하거나 상대 배우의 그늘에 가리거나 연기력 논란에 시달려오며 '김태희'하면 떠오르는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겨우 연기력 논란을 벗어난 <용팔이>조차 김태희가 대표작으로 내세우기에는 너무도 실망스러운 작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김태희의 대표작을 만드는 일은 다음 기회로 남겨둬야 될 듯 하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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