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덕혜옹주>의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덕혜옹주>는 결국 역주행으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4일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손예진의 인생연기라는 평가를 들을만큼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다소 역사왜곡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호평을 받으며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한 여인의 삶으로만 보자면 덕혜옹주의 삶은 가련하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일본으로 향해야 했고, 거기서 일본이 맺어준 일본인과 혼인을 해야 했다. 그의 딸 소 마사에 마저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야 했다. 그는 자살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행방불명됐다. 결국 조발성 치매 증상을 보이던 덕혜는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귀국조차 허락되지 않아 해방 이후에도 한참동안이나 한국땅을 밟을 수 없었다.

 

 

 

 

<덕혜옹주>의 이야기는 그 무력한 여인의 삶 속에서 왜 그 여인이 그렇게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는가를 조명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일제의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인권 짓밟기는 관객들의 분노를 고취시킨다. 이런 역사를 조명한 영화를 비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속에서 독립을 원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한국인들은 철저히 피해자일 수밖에 없고,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그런 한국인들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다. 영화를 비난하는 것은 마치, 일제를 옹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영화는 관객의 그런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덕혜옹주의 상황을 상당부분 각색했다. 처음부터 ‘이 영화는 픽션이다’라는 설명이 자막으로 떠오르지만,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한 각색이라는 점, 실명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덕혜옹주의 삶을 제대로 구현해 냈는가 하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영화는 한 여인의 가련한 삶에 포인트를 맞추면서도 그 삶을 위해 다양한 상황을 포진시킨다. 이를테면 덕혜가 조선 백성들의 삶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고자 했다거나, 독립운동가들과 접선을 통해 망명을 하려 했다거나 하는 점이다.


 

 

 

역사속 덕혜옹주는 말 그대로 아무 힘이 없었다. 또한 의지도 크지 않았다. 그 때문에 고종황제가 승하하자 일제의 바람에 휘둘린 인물이다. 자신의 삶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덕혜옹주는 힘에 부쳤다. 일제가 정해준대로 흘러가는 삶 속에서 덕혜옹주 역시, 수많은 아픔을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픔이 조선시대 독립운동가들이나 서민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 이상일 수는 없다. 영화속에서 어머니의 죽음에도 조선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덕혜의 상황도 사실이 아니다. 순종이 위독할 때, 어머니인 양귀비가 돌아가셨을 때 덕혜는 조선 땅을 밟았다. 물론 그 상황 속에서도 일제는 순종의 국장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거나 어머니의 장례에서 상복을 못입게 하는등의 억지를 부렸다. 그러나 덕혜가 조선 땅을 한 번이라도 밟아보고자 고군분투하는 영화 속 상황은 전혀 사실적이지 않다.


 

 

 

조선시대 왕가는 일제에 충분히 협조했다. 그러나 영화는 조선 왕실의 사람들을 독립을 위해 힘쓰려 한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묘사한다. 덕혜옹주의 오빠인 영친왕은 일본으로 건너갈 당시, 그 유명한 이토 히로부미를 후견인으로 삼았으며 일본에서도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인과 결혼하여 일본에서 장성으로까지 지낸 그가 굳이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할 결심을 할 리가 없었다. 영화 속에서 독립운동군을 따라 상해로 망명하려는 그의 움직임은 너무나 철저하게도 픽션이다. 더군다나 영화 속에서 나오는 이우 왕자(고수 분)의 독립운동 역시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 그가 일제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는 정황은 있지만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

 

 

 

한마디로 조선의 왕족은 조선보다 자신의 안위를 더욱 걱정한 채, 백성들을 저버렸다. 물론 누가 그 입장에 있었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수 있다. 허나 조선이 일제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 또한 지도자들의 판단 착오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그동안 권력과 지위를 무기로 수많은 특혜를 누렸다. 그런 특혜는 심지어 일제 시대에서도 계속되었다. 해방 후, 왕실 재건 운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것 또한 그들의 존재감이 그만큼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지도자나 특권층으로서의 의무는 하지 않고, 권리와 특혜만 누렸던 그들에게 국민들은 적잖은 실망감을 가져야 했다.


 

 

 

그런 현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서 정치인들을 믿을 수 있노라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친일파의 후손들은 지금까지도 권력의 중추에 있거나 경제적인 혜택을 누린다. 부끄러운 역사로 남은 일제 강점기에 대한 분노는 아직도 살아있지만, 그 일의 결과는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덕혜옹주나 영친왕을 비롯한 조선의 왕실이 과연, 그런 부끄러운 역사에서 떳떳할 수 있을까. 덕혜옹주는 일제가 주목하는 위험인물이 아니었고 한국의 왕실은 그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는 한국을 이용하기가 훨씬 더 수월했다. 그들은 백성의 고통에 지도자로서의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영화는 현실일 필요가 없다. 현실대로만 나가자면, 덕혜옹주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밋밋해질 수밖에 없다. 영화 자체로만 보자면 연기자들의 뛰어난 연기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덕혜옹주가 실존인물이라는데서 오히려 감동은 반감된다. 독립 후, 덕혜옹주가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불합리하다 주장하는 영화 속 김장한(박해일 분)의 외침은 역사적으로 볼 때, 그다지 공감가는 외침은 아니다.


 

 

 

시대에 휩쓸린 것은 덕혜옹주 뿐만이 아니다. 그의 마지막 나레이션처럼 그는 백성을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단순히 옹주라는 신분 때문에 그의 삶이 조명 받는 것일 뿐, 비참한 역사 속에서 왕실의 책임을 논하지 않는 영화는 아쉬움이 남는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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