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원 권에 당당하게 자리한 사임당은, 훌륭한 인품을 지닌 어머니,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진가를 인정받은 인물이다. 유관순처럼 역동적인 삶을 살다 간 인물은 아니지만, 그 시대의 흐름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해내면서도 예술가적 면모를 보인 그의 삶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여성단체에서는 오만원권 화폐에 신사임당이 선정된 당시, 그의 삶이 가부장적인 가치관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여성상이라며 반발하기도 했지만 신사임당이 가부장적인 시대의 여성으로서 기대되는 역할을 하였다 하여 주체적인 삶을 살지 않았다 할 수는 없다. 어머니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내면서도 그 안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드러낸 신사임당의 생애 역시 존경받을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런 신사임당의 이야기가 드라마로 우리 곁을 찾았다. 배우 이영애가 무려 13년 만에 선택한 드라마로 방영 전부터 엄청난 화제를 몰고 온 <사임당-빛의 일기>(이하 <사임당>)이 그것이다. 1, 2회 연속방영으로 첫회부터 15%, 2회는 16%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사임당>은 초반 화제성을 잡으며 그동안의 홍보가 헛되지 않게 했다. 그러나 <사임당>을 통해 신사임당이 현시대의 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드라마에서는 영웅이 필요하다. 여전히 불합리하고 답답한 현실을 뻥 뚫어 줄 카타르시스를 전해 줄 허구의 인물은 짧은 시간이나마 마음의 위로가 되어 준다. <낭만닥터 김사부>(이하 <낭만닥터>)의 김사부(한석규 분)은 최근 그런 카타르시스를 가장 잘 보여주는 캐릭터였다. 불합리에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정의로운 편에 서는 그의 모습 속에서 시청자들은 그를 마음 놓고 응원하고 매순간 그의 승리를 바랐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거대 권력이나 높은 자리를 꿰찬 이들에게 목소리를 높이기 힘든 사람들의 대리만족일 수도 있었지만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는 해내야 할 일을 하는 것을 지켜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그런 포인트를 캐치한 <낭만닥터>는 20%가 넘는 높은 시청률로 종영할 수 있었다. 시청자들의 속을 뻥 뚤어주었다는 호평은 덤이었다.

 

 

 


<사임당>은 <낭만닥터>보다 훨씬 더 유리한 고지에서 첫회를 시작했다. 신사임당이라는 인물 자체가 이미 대중에게는 친숙한데 비해 드라마로 집중조명된 적이 없는 인물이어서 관심이 생기는 데다가 이영애라는 배우가 출연한 것만으로도 이미 화제성은 담보되었다. 또한 사전제작으로 완성도를 높일 시간이 충분했던 것도 플러스 요인이고 200억이라는 풍부한 제작비 속에서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홍보를 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사임당>은 오히려 실패하기가 더 힘든 성공의 요소가 다분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1, 2회에서 보여준 ‘사임당’의 모습이 시청자들이 원하는 ‘영웅’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가 하는 지점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사임당>은 이영애가 <대장금>이후 처음 출연한 드라마다. 이영애는 그동안 결혼을 했고, 쌍둥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그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이영애의 미모는 화면에서 여전히 빛이 난다. 그러나 우아하고 아름다운 이영애의 외모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드라마는 몰입도를 잃어간다. 제작진은 <대장금>과 비교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말하지만, 적어도 <대장금>과 같은 재미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이라면 실망감을 표출할 수밖에 없다.

 

 

 


<사임당>이 들고 나온 장르는 특이하게도 ‘타임슬립’이었다. 제작진은 ‘타임슬립’이 아니라 ‘평행우주’라고 항변하지만 드라마를 지켜본 시청자들은 과거로 돌아간 서지윤(이영애 분)이 사임당(이영애 분)으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타임슬립’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워킹맘으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남편의 사업실패와 어처구니 없는 누명을 뒤집어 쓰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 서지윤의 삶을 과거의 사임당의 삶과 교차 전개 시켜 과거 사임당에게 현대적인 의미를 찾아보려는 의도였겠지만 오히려 드라마의 구성은 어디서 본듯한 전개만이 계속되며 신선함을 잃어갔다.사임당과 워킹맘의 연결이 그다지 자연스럽지도 않은데다가 이야기의 구성 역시 흥미를 자아내기엔 지나치게 진부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막대한 제작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PPL이 필수고, 현대의 이야기 속에서 PPL을 사용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차라리 아예 사극으로 방향을 틀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위기가 닥치는 방식도 진부했지만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나는 것은 당위성과 필연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수 백년 된 그림을 아무렇지도 않게 서지윤의 손에 줘어주는 그림 주인의 행동은 도저히 상식적이라고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주인공에게는 닥친 행운에도 개연성이라는 것이 있어야 했지만 그 개연성을 찾는데 실패한 모양새였던 것이다. 결정적으로 이영애의 연기는 군데 군데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기까지 하다. 그동안 가졌던 휴식기가 오히려 독이 되었던 것인지, <대장금> 때보다 우아해진 현모양처 이영애는 어찌된 일인지 그 때보다 매력적이지 못하다. 과연 부당함과 사회의 부조리함에 맞서 싸우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사임당>으로 표출해 내어 <대장금>때처럼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었다. 너무나도 유명한 사임당의 이야기를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 될 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위기가 수차례 찾아 오는 동안, 드라마에서 숨을 쉬어갈 구성이 없었다는 점 또한 아쉬운 점이었다. 큰 위기가 닥치고 서지윤은 그 안에서 고군분투 하지만 이야기는 사건을 위한 사건을 나열하는데 그치고 만다. 서지윤이 아닌 이영애를 주목하는 동안 주변 인물들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린 느낌이라면 설명이 가능할까. 이영애의 매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지만 스토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빛나야 할 매력이 오히려 너무 큰 사건들과 주인공 중심의 사건 속에서 묻혀 버리고 만 것이다.

 

 

 

 


과연 이런 문제점들이 극복될 수 있을 것인가. 제작비와 이영애의 브랜드를 생각해 볼 때 <사임당>은 실패해서는 안되는 드라마다. 그러나 이미 배우의 이름에 드라마의 퀄리티가 따라오지 못한 예를 우리는 많이 목도해 왔다. 과연 <사임당>은 제 2의 대장금은 아니라도 체면치레는 할 수 있을 것인가. 다음 이야기의 전개에 성패가 달렸겠지만 첫 단추는 어긋나 있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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