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라 미풍아>(이하 <미풍아>)는 26.3%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했다. 그동안 답답함을 배가 시키는 일명 ‘고구마 전개’로 시청자들은 매회 비난을 쏟아냈지만 시청률로만 보자면 성공적인 결과다. 결말마저 권선징악인가 싶을 정도로 어이없는 전개가 이어졌지만 시청률만큼은 확실하게 잡은 것이다.

 

 

 

 


이 드라마를 통틀어 가장 큰 활약을 보인 것은 바로 악역 박신애 역을 맡은 임수향이었다. 임수향은 배우 오지은이 8주 정도의 부상을 입음에 따라 대타로 투입되었는데, 사실상 <미풍아>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신애는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부자 할아버지 김덕천(변희봉 분)이 손녀를 찾으려 하자 자신이 진짜 손녀인 척 연기하며 그 자리를 탐내는 전형적인 악역이다.

 

 

 

 


‘북한’이라는 소재를 굳이 사용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전형적인 출생의 비밀에 평면적인 인간관계를 답습한 <미풍아>는 결국 뻔한 이야기 속 캐릭터의 힘으로 시청률을 올리는 데 성공한다. 특히 중간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긴장감을 조성한 김미풍(임지연 분)의 생부 김대훈(한갑수 분)의 캐릭터는 감칠맛을 제공하며 드라마의 시청률을 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마청자를 연기한 이휘향은 명불허전 연기로 악역 캐릭터를 살린다. 그러나 여전히 드라마의 전반적인 상황에 가담해 악행을 벌이는 것은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박신애일 수밖에 없다. 임수향은 모든 계략과 음모를 꾸미고 그 안에서 자신이 벌인 일들을 수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드라마 전반을 장악한다. 실질적으로 갈등의 구심점인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주인공 김미풍의 존재감이다. 김미풍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수동적인 캐릭터다. 그가 하는 일은 그저 가만히 있는 것 뿐이다. 단지 친손녀라는 혈통 때문에 그가 불쌍하고 착한 캐릭터가 되지만 사실상 거의 능력이 없는 캐릭터로 비춰질 뿐이다. 박신애가 꾸미는 어설픈 계략에도 갈대처럼 흔들리는 주체성 없는 캐릭터로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당하기만 한다. 가만히 있다가 이장고(손호준 분)와 연애만 하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막장드라마에는 ‘악녀’가 있다. 주인공이 착한척을 하고 있는 사이, 모든 일을 주체적으로 꾸미고 갖고 싶은 것을 가지려 노력한다. 나쁜 짓을 벌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주인공보다 훨씬 더 노력파다. 임수향은 대타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활약을 보여주며 드라마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보다 더욱 주목받는 캐릭터로 임수향의 재발견을 만들어냈다.

 

 

 

 

막장드라마의 악역은 이제 더 이상 착한 주인공의 반대급부에 지나지 않는 캐릭터가 아니다. 오히려 답답한 드라마의 전개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캐릭터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을 연기한 이유리는 그해 연말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연민정은 답답한 드라마의 전개 속에서 답답한 행동을 고집하는 주인공 장보리(오연서 분)보다 훨씬 더 매력있는 캐릭터였다. 주인공이 할 말도 못하고 엉뚱한 행동으로 속을 답답하게 만들 때, 연민정의 극악무도한 악행은 오히려 훨씬 더 주체적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노력파처럼 보였다. 여기에 연민정의 캐릭터를 연구하고 발전시킨 이유리의 연기는 이목을 집중시켰다.

 

 

 

 


연민정이 있기전에 <왔다! 장보리>를 집필한 김순옥 작가의 전작에 신애리가 있었다. <아내의 유혹>에서 주인공과 대결구도를 보여준 신애리(김서형 분)는 매회 소리지르며 분노하는 연기, 악행을 숨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연기를 펼치며 시청자들의 눈에 들었다. 김서형이 보여준 연기는 드라마의 막장 구조속에서도 엄청난 파급력을 자랑하며 각종 패러디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막장 드라마속에서 악역이 주목받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막장 드라마 속 주인공은 원칙을 고수하지만 답답하고 눈치가 없다. 착한 것을 넘어 바보같은 행동으로 이야기를 더 답답하게 만들고, 할 말을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조차 찾지 못한다. 반면 악역을 맡은 인물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주면서 대비되는 행동을 보인다.

 

 

 

 


 

그러나 이 적극적인 행동은 도무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 포인트다. 일단 출생의 비밀 자체가 주변에서 그리 빈번히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거짓말을 숨기기 위해 범죄에 가까운 악행을 저지르는 악역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라고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그들을 ‘캐릭터’로서 대할 수 있다. 그들 때문에 분노하기도 하고 어이없어 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악행에 현실과 같은 감정의 동화가 되지는 않는다. 악역의 캐릭터로서 그들을 대하게 될 뿐이다.

 

 

 

 


이 연기를 잘 해내면 배우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얄미운 시누이나 시어머니, 혹은 은근히 짜증나게 만드는 친구 같은 캐릭터들은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지만 이렇게 대놓고 악행을 저지르겠다고 덤비는 캐릭터는 오히려 한 발자국 떨어져 감상하게 된다. 오히려 그 악행을 눈치채지 못하는 주인공에게 손가락질을 하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답답한 막장드라마 속, 단 한 회의 해피엔딩을 위해 참아주고 당해주는 주인공보다 그 주인공이 가진 것을 뺏기위해 고군분투하는 악역이 더 주목받는 것이 우연만은 아닌 것이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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