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드라마 라인업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있다.


하반기 최고 기대작인 송혜교, 현빈 주연의 [그들이 사는 세상] 의 방영만을 제외한다면 어느 정도 '히트 드라마' 의 윤곽은 잡혔다고 봐야 한다.


2008년 방송 됐던 수많은 드라마들. 그 중 '당신이 반드시 봤어야 하는 세 개의 드라마' 가 있다. 당신은 이 중 몇개의 드라마를 보셨습니까?





적어도 우리 시대 김수현이라는 드라마 작가는 절대 만만하게 볼만한 인물이 아니다. 김수현 드라마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그녀의 드라마는 어디에 있든지 무시받을만한 텍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김수현은 20세기와 21세기를 반세기의 시간동안 '관통' 한 가장 대중적인 문학인이며, 그녀의 드라마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유명한 '문학작품' 에 가깝다.


2008년 김수현이 내 놓은 [엄마가 뿔났다] 는 그런 의미에서 김수현의 작품 세계를 반추해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종종 만나볼 수 있는 김수현 홈드라마의 전형적 외피를 두른 채 전혀 다른 주제의식으로 시대를 관통했다. 여전히 칼날 같은 대사와 무수한 인간 군상들이 처절하게 부딪히고 싸웠지만, 작가의식은 깊어졌고 세상을 보는 눈은 넓어졌으며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따스해졌다.


[엄마가 뿔났다] 는 국내 최초의 장수 홈드라마였던 72년 MBC [새엄마]의 방영 이 후, 견고하게 짜여져 있던 홈드라마의 장르적 한계를 완벽하게 깨부순 드라마였다. 가부장적이고 전통적인 가치를 담아내야만 했던, 그래서 극적인 코믹 아니면 완벽한 신파로밖에 흐를 수 없는 홈드라마의 한계 속에서 [엄마가 뿔났다] 는 '엄마의 안식휴가' 라는 사회적 의제와 담론을 꺼내 들었다.


여태껏 '드라마' 자체로 밖에 기능하지 못했던 홈드라마 세계에서 홈드라마의 귀재라고 할 수 있는 김수현이 새로운 가능성을 꺼내 보인것은 상당히 반가운 일이다. 사실 10여년 전 [목욕탕집 남자들] 에서도 고두심의 휴가 에피소드가 첨가된 적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에피소드 중 하나로 기능했을 뿐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아니었다. 이렇게 보자면 [엄마가 뿔났다] 는 김수현의 넓어진 작품 세계와 작가의식을 대변하는 작품인 동시에 홈드라마가 어떤 식으로 사회에 기능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줬던 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김수현의 의도대로 [엄마가 뿔났다] 가 전면에 내세웠던 '엄마의 안식휴가' 사건은 한동안 인터넷과 TV를 뜨겁게 달굴 정도의 논쟁거리가 됐다. "속이 다 시원하다." 와 "말도 안 된다." 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엄마가 뿔났다] 의 인기는 천정부지로 솟아올랐다. 홈드라마가 TV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시대의 고정관념의 대척에 서서 새로운 의제와 시대 정신을 꺼내 놓고 이를 토론과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여 생산적으로 확산한 것은 한국 드라마 50년 역사 중 아마 [엄마가 뿔났다] 가 '유일' 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을 '아름답게' 만들 순 있어도 그걸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할 수 있는 건 또 다른 분야의 재능이다. 그런 걸 커버하는 작가는 앞으로 김수현 아니고서는 정말 쉽게 나오기 힘들 것 같다." 최지은 기자의 말은 상당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 [엄마가 뿔났다] 가 던진 '엄마의 휴가' 화두는 대단히 극적이고 파격적으로 진행되는 동시에 도의와 절제의 미덕을 통해 상당한 안정감을 동반했다. 과연 김수현이 아니라면 감히 아무나 할 수 없는 구성체계다.


여기에 더해 [엄마가 뿔났다] 는 편부모 가정의 아이가 겪어야만 하는 트라우마와 그 트라우마를 가족이라는 개념으로 극복해내는 새로운 가족 문화의 형성을 류진과 신은경을 통해 그려냈다. 극단으로 치닫고자 했으면 [내 남자의 여자] 못지 않게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었던 설정임에도 신은경과 류진의 에피소드는 끝까지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다. '새엄마' 하면 흔히 떠오르는 인고와 희생의 이미지, 혹은 극악한 계모의 처참한 이미지 대신에 [엄마가 뿔났다] 는 새로운 가족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진통과 화해, 고통과 희망을 오랜 시간에 걸쳐 차분하게 풀어나갔다.


지루할 정도로 '소라' 라는 캐릭터에 모든 초점을 맞춰두고 소라를 둘러싼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 가족이라는 개념을 재정립 한 김수현의 시도는 다분희 의도적이면서도 신선하다. 30여년 전 [새엄마] 를 통해 인고와 희생의 새엄마 이미지를 답습했고, 20년 전 [사랑과 야망] 에서는 새엄마 은화과 딸 수경의 갈등을 맹장염이라는 극적인 설정을 통해 일거에 해소하는데 그쳤던 김수현이 21C에 들어서 대화와 설득의 기술을 갖추고 '새엄마' 라는 명제에 대해 전혀 색다른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했다는 사실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기 때문이다.


"영수 역시 소라를 단순히 전처의 딸이 아닌 친구이자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정하며 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러한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그 어떤 관계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이 관계 속에서 안에 담아둔 상처가 치유되어가는 소라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다." 라는 블로거 연어군(http://byignorance.tistory.com/35) 의 평가처럼 [엄마가 뿔났다] 는 서로를 인정하고 바라봐 주는 긍정적 삶의 양식이 아주 평범하고도 일상적으로 그려진, 수작 중 수작이라고 평할만 하다.


또한 [엄마가 뿔났다] 는 그동안 금기시 됐던 '노년의 사랑' 을 '엄마의 안식휴가' 못지 않은 소재로 시청자에게 선보였다. 흔히 노년의 사랑하면 주책맞고 낯 뜨거운 것으로 여기는 것이 다반사지만 [엄마가 뿔났다] 는 충복과 영숙의 만남을 그 어떤 청춘 남녀의 사랑보다 열정적으로 그려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천박해 보이거나 유치해 보이지 않고, 노년의 사랑만이 품어낼 수 있는 은근한 향기와 배려로 포장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사실이다. 더 나아가 그 황혼의 로맨스를 김수현 드라마의 '가부장' 을 상징했던 이순재가 연기했다는 사실도 새삼 놀라운 일이다.


물론 [엄마가 뿔났다] 는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기도 했다. [엄마가 뿔났다] 에서 펼쳐진 몇몇의 에피소들은 그동안 김수현이 홈드라마에서 차용했던 대부분의 에피소드를 '변형' 한 수준에서 머물렀고, 확실한 색깔과 캐릭터를 부여해야 했던 영미 부부를 '들러리' 정도의 캐릭터로 구석에 방치해 버린 것도 안타까웠다. 게다가 한자의 가출 덕분에 집안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 써야만 했던 미연의 모습은 '여자의 해방은 여자의 희생으로 이뤄진다' 는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이 김수현의 말대로 "그 또한 미연의 인생일 뿐" 일지라고 해도, 결국 이는 이 작품의 주제의식과도 같은 '엄마의 안식휴가' 라는 의제 설정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시대의 구태를 답습하는 수준에 머물렀음을 의미하는 것과 같다.


허나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마가 뿔났다] 는 '아주' 잘 만들어진 드라마다. 이 드라마에는 앞서 말한 새로운 사회적 담론이 있고, 신선한 시대 의식이 숨쉬고 있으며, 은은한 노년의 사랑과, 21C 재정립 되는 가족의 다양성, 서민만이 가지고 있는 꼿꼿한 자존심과 자기 정체성, 일상의 삶에서 느껴지는 소소한 매력과 잔잔한 웃음이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김수현의 드라마는 여태껏 '인간' 이라는 대명제에서 단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고 이는 [엄마가 뿔났다] 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역시 김수현은 김수현 이라는거다. 한국 드라마 50년, 김수현 드라마 40년. 한국 드라마가 여기까지 진일보 하는데는 딱 김수현만큼 '40년' 이 걸렸다.


『 문학과 영화에 ‘고전’이 있듯, TV 드라마에도 ‘고전’의 리스트를 정리하게 된다면, 김수현의 여러 드라마가 앞다투어 등재될 것이다. 그녀의 드라마엔 당대의 현실적 텐션이, 정중동의 위기에 선 가족관계가, 드라마적 완성도에 대한 완고한 집념이 스며 있다. 꺾인 적이 없었던 그 자존심은 TV의 권력이 되었다. 그 권력은 다른 누구도 아닌 시청자가 부여했다는 점에서 의미롭다. 재능과 노력의 황금 비율에, 근면함이라는 필살기로 무장하여 단 한 번도 대중과의 교감에 실패한 적이 없는 이 ‘장인’의 역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매거진 T)



 



'당신이 반드시 봤어야 하는 세 편의 드라마' 에서 당신은 과연 몇 편이나 봤는가?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세 편 모두 집중해서 다 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한 편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나,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베토벤 바이러스] 는? [바람의 화원] 은? [뉴하트] 는? [온에어] 는? [이산] 은? "


2008년 방영 됐던 드라마들은 대부분 썩 괜찮은 작품들이었지만 특별히 위에서 거론한 작품 세 가지는 모두 '장르적 한계' 를 새로운 방식으로 '극복' 하고, 드라마 장르에 있어 '새로운 이정표' 를 마련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에 꼽아봤다. 아마 위 세 작품은 한국 드라마 장르를 논하는데 있어서 분명한 색깔과 흔적을 남긴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지 연구 대상이 될 만한 작품으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되는 사람은 찾아봐도 좋고, 본 사람은 다시 한 번 봐도 좋다. 언제 봐도 완성도 높은 작품들인건 분명하니까! 


 ps, [베토벤 바이러스] 와 [바람의 화원] 은 종영까지 기다려 봐야 알 것 같다. [베바] 는 지금도 충분히 '봐야 할' 드라마지만 언제나 끝이 중요한 법이니까. [베토벤 바이러스] 와 [바람의 화원] 은 종영 한 뒤에 다시 정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할테니 매니아 분들은 "왜 여기에 없는거야!" 라고 신경질 내지 마시기를~!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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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랑 2008.10.19 2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 작품들을 보니 드라마가 가지는 한계가 보이네요.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무엇을'이야기 할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너무 없어요.(김수현작가를 싫어하는 이유. 새로움이나 주제에 대한 고민이 너무 없다는 점) 그러니 90년대 많이 했던 신데렐라 이야기도 형태만 달리 해서 나오고, 진부한 스토리의 이야기도 형태를 달리해서 나오고...... 개인적으로 2008년에 했던 드라마 중에서는 쾌도홍길동이 기억에 남네요. 솔직히 완성도도 떨어지고, 투박했지만, 적어도 그 드라마는 '무엇을'이야기 할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담겨있었으니까요.(우리 나라식 현대사극인 퓨전사극에 대한 도전과 형식미에 파격적 실험도 있었구요. 개인적으로는 성공이라고 보기는 어려워보이지만;;)

  2. 대단하다! 2008.10.20 0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엄뿔 밖에 못 봤지만 이글을 보니까 다 보고 싶어진다. 대단한 글이다.
    쓰레기 연예블로거기자들만 있는 줄 알았더니 이정도로 엄청난 글을 쓰는 기자도 있구나.
    마음만 먹으면 이런글 쓸수 있다는 뽄때를 보여준거 같다.
    대단하다!

  3. 2008.10.20 2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mbc 달콤한 인생.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네요. ㅠ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라고 보기 전부터 싫어하시는 분들 많더라구요..

    결코 불륜을 얘기하려는 들마가 아닌데 ㅠ

  4. 흠... 2008.10.29 0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뿔 분석의 맨 마지막 문장은 명백하게 강명석씨의 '트리플 크라운' 작년 드라마 결산 글 가운데 <내 남자의 여자>에 대한 코멘트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왔네요. 인용했으면 인용했다고 표시를 하시는게 공식적 글쓰기의 기본적 매너이자 양심이라고 생각합니다만...

  5. Favicon of http://www.microtop10.com BlogIcon 애독자 2008.11.05 1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이크로탑텐에서 보고 왔습니다.
    와...짧은 글이 아닌데 끝까지 집중해서 읽게 되네요. 정말 잘쓰세요.~~
    뉴스레터도 구독하고, 블로그에도 자주 오겠습니다. ^^

  6. 공부하는 학생 2009.04.18 0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평 길지만 눈에 쏙 드러오고 공감가는 부분도 있고 저와는 다른 의견도 계시네요..
    앞으로도 많은 글과 의견 부탁드립니다. 저도 새로운 부분을 많이 배운것 같아 뜻깊네요.

  7. Favicon of http://www.farmvillecheatcodessecrets.com BlogIcon farmville cheat codes 2011.05.24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이것은 매우 좋은 품질의 문서가되었습니다. 원칙적으로 제가 아주 좋은 문서를 생성하려면이 방법대로 진정한 노력과 함께 너무 * 시간을 보내는 생산하고 싶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내가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 제 배우자와 나는 많은 일을 지연 분명히 성취 가지 마세요. 아픔을 시작에 대한 추가적인 대안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