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돈은 신예 예능 MC 중 가장 주목 받는 인물이다.


[무한도전] 이라는 국민 프로그램에 이름을 올리고 스탠딩 개그맨에서 버라이어티로 성공적으로 안착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즉, 정형돈이 버라이어티에서 어떤 식으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가는 스탠딩 코미디언들에게는 상당히 의미있는 개척의 길이 될 수 있다.


이수근과 신봉선 등의 '약진' 속에 지금의 정형돈이 가야 할 MC 스타일은 과연 어떤 것일까. 단호히 말한다. 정형돈, 유재석이 아니라 박수홍을 본 받으라고.




지금껏 정형돈이 버라이어티로 전향하면서 그에게 영향을 준 MC는 두 명으로 압축된다. 첫 번째 인물은 이경규. 정형돈을 [개그 콘서트]에서 빼 내와 [상상원정대]에 꽂아 준, 정형돈에게 있어서는 인생의 스승 같은 인물이다. 정형돈이 대표적 규라인으로 꼽히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과정에 있다.


과거 강호동에게도 그러했듯이 이경규는 정형돈에게도 혹독한 'MC 훈련' 을 시켰다. 방송이 마음에 안 들면 촬영 중에도 녹화를 끊고 호통을 치기 일쑤고, 어이 없는 애드립이 튀어나오면 그 자리에서 면박을 줬다. 스탠딩 개그맨 특유의 자기 어필이 나올 때는 이경규에게 혼쭐이 났다. 정형돈의 [개콘] 탈출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러나 이경규는 정형돈에게 자기 스타일을 강요하지 않았다. 이경규의 호통 스타일은 정형돈의 색깔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경규는 정형돈이 태생적으로 간직할 수 밖에 없었던 스탠딩 개그맨의 습관과 본성을 완전히 제거하는데에만 총력을 기울였다.


버라이어티와 스탠딩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 그는 정형돈이 얼추 '버라이어티 MC' 의 냄새를 띠게 되자 그를 놓아줬다. 자신의 옆에 놔둬 봤자 그가 크게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경규와의 결별 이 후, 정형돈은 스스로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나갈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그 때 만난 이가 바로 유재석이다.


[무한도전] 의 전격 합류 이 후, 유재석은 정형돈의 롤모델로 자리매김했다. 국민 MC로서 맺고 끊음이 정확한 유재석은 버라이어티에서 스타일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정형돈에게 우상과 같은 인물이었다. [무한도전] '체인지' '지못미' 편 등 정형돈이 메인 MC로 활약한 에피소드에서 정형돈은 유재석의 MC 스타일을 충실히 모방했다.


정형돈의 '유재석 스타일 따라하기' 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적어도 그는 유재석 부재시 유재석의 빈 자리를 메울 수 있는 [무한도전] 내 가장 '진행을 잘 할 수 있는' 멤버로 사람들에게 인식 됐기 때문이다. 그것이 정형돈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게 했고, 그의 앞날을 기대하게 했다. 유재석 스타일에 대한 사람들의 호감이 그것을 모방하는 정형돈에게까지 이어진 셈이다.


허나 엄밀히 말해서 정형돈에게 유재석 스타일은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지금 그가 유재석 스타일을 따라하는 것은 오히려 그를 한계에 부딪히게 만들 수 있다. [MT왕] 에서 보여준 것처럼 정형돈은 끊임없이 유재석 스타일의 프로그램과 진행 방식을 고수하고 있지만 오히려 유재석의 자연스러움보다는 이질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더 많이 노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정형돈은 유재석으로 넘어가기 전, 박수홍 스타일을 벤치마킹 해야 한다. 박수홍은 정형돈처럼 '웃기지 못하는' MC로 낙인 찍힌 대표적 인물이다. 허나 박수홍은 사업을 하기 전까지 방송인으로서 신동엽-유재석-강호동 못지 않은 파워맨으로 꼽혔다. 회당 600의 높은 출연료와 그에 따르는 시청률은 방송사가 박수홍을 인정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박수홍은 비록 웃기지는 못하지만 '정리' 하나 만큼은 끝내주게 잘 하는 MC로 정평이 나있다. 정확한 상황정리와 게스트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이야기를 연결해 주는 능력은 천하의 유재석이나 신동엽도 감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의 천재성을 갖고 있다. 조곤조곤한 말투와 허를 찌르는 뒷끝 개그는 박수홍의 트레이드 마크로 시청자들에게 각인 됐다.


박수홍의 진행 스타일은 다소 무색무취, 개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그만큼 어느 자리에서도 제 몫을 다 해낸다. 특히 <야심만만> 으로 5년 넘게 호흡을 맞췄던 강호동과의 조합은 강호동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뽑아 내면서 프로그램을 붐업시킨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나도 웃기고 싶다' 는 이야기조차 농담으로 할 정도의 여유가 그에게는 있다.


정형돈은 바로 박수홍의 이러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형돈도 박수홍처럼 '웃기지 못하는 MC' 로 정평이 나 있고, 유재석처럼 상황을 주도하는 스타일은 더더욱 아니다. 사실상 그렇게 하기엔 내공도 부족하다. 차라리 정형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금 자신의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정돈형 MC' 쪽으로 끌고 갈 필요가 있다.


상황을 이끌어 가는 사람은 따로 두고 편집점을 잘 잡아 정리해주고 이야기를 엮어내는 내공만 길러도 정형돈은 충분히 박수홍만큼의 MC로 성공할 수 있다. 물론 박수홍 특유의 말투와 신사적 매너를 따라가기엔 부족함이 있겠지만 이것은 여태껏 그가 쌓아 온 캐릭터로 변주하면 된다. 박수홍의 '정돈형 MC' 스타일을 벤치마킹 하는 대신 정형돈 특유의 여유와 게으름으로 포장한다면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 MC가 탄생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금 유재석 스타일을 따라하는 정형돈은 너무 큰 욕심을 부리고 있다. 오르지 못할 산을 억지로 오르며 자신의 한계만을 노출시키는 것보다는 우선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버라이어티 MC로서의 기틀을 이경규가 닦아 줬다면 지금 정형돈에게 필요한 것은 박수홍 스타일을 어떻게 자신의 역할로 커버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정형돈, 유재석이 아니라 박수홍을 본 받아라. 박수홍의 과거와 현재가 바로 그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는 미래의 모습이 될 것이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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