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유혹] 이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 되고 있다.


그동안 복수를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달려왔던 구은재의 상황이 민건우와의 로맨스, 민소희의 부활이라는 국면을 맞아 180도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처절하게 길바닥으로 내몰린 정회장네 식구들의 처참한 모습이 대비되면서 구은재의 복수는 거의 막바지에 다달은 것으로 보인다.


정수빈 안구파열 사건을 계기로 애리가 제 무덤을 스스로 판 가운데 구은재의 복수가 어떤 식으로 마무리 지어지게 될 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16일자 [아내의 유혹] 방송분은 희열보다는 짜증을 불러 일으켰다. 말도 안 되는 사건 전개는 둘째치고 은재에게 끊임없이 '용서' 를 강요하는 에피소드 전개가 [아내의 유혹] 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내의 유혹] 이 지금껏 4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국민 막장 드라마' 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요인은 단 한가지였다. 바로 '불륜에 대한 처절한 응징' 이라는 단순한 소재를 앞뒤 재지 않고 직접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극단의 캐릭터와 다소 무리가 있는 에피소드 전개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유혹] 은 보고 있으면 "십년 묵은 체증" 이 내려가는 카타르시스와 희열을 동반했다.


사건이 터지면 바로 다음 날에 해결됐고, '구느님' 구은재는 복수를 위해서는 어떤 일도 척척 해내는 사기 캐릭터의 진수를 보여줬다. 눈 깜짝 할 새에 200억을 도박빚으로 날려 버리게 하고, 1000억원대의 강남 땅을 1분 만에 꿀떡 먹어버리는 복수극은 가진 건 돈 밖에 없는 정회장네 식구들에게 가장 처절하고도 잔인한 복수였다. 일이 진행되면 진행 될수록 몰입도는 높아졌고, 복수의 강도도 더욱 강렬해졌다.


[아내의 유혹] 의 복수극이 최절정으로 다달은 것은 구은재의 정체가 드러나고 정회장 가문이 나락으로 떨어지던 90회였다. 이 때 구은재는 "당신은 안량한 돈을 잃었지만 나는 인생을 잃었다." 며 차갑고도 냉정한 심성을 유지했다. 정릉집과 평창동 집이 뒤 바뀔 때까지도 은재의 복수는 통쾌하고 시원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복수 그 이 후' 의 일이다. 구은재의 정체가 밝혀지고 정회장네가 재기 불능의 상태에 빠진 즈음부터 [아내의 유혹] 의 성장 동력이었던 복수에의 열망이 차갑게 식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세차장에서 갖은 모욕을 당하는 정회장과 본의 아닌 피해자가 된 고모와 수빈의 모습까지 교차되면서 오히려 구은재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변신하게 됐다.


그 뿐 아니라 "복수를 하고도 속이 시원하지 않다. 오히려 미안하다." 며 갈등하는 답답한 구은재와 "용서하는 것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용서해라." 라며 용서를 종용하는 민건우의 모습도 개운치 않다. 지금까지의 구은재라면 처절하게 밑바닥까지 떨어진 정회장 식구를 완전히 벼랑 끝으로 몰아야 한다. 복수를 후회하고, 복수의 대상을 바라보며 동정을 느끼는 것은 [아내의 유혹] 에 어울리지 않는다.


[아내의 유혹] 은 복수가 막바지에 이르른 지금에 있어 구은재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보다는 정회장네 식구들이 은재의 복수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는지, 은재의 복수가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은근히 은재가 그들을 '용서' 하고, 그들과 '화해' 할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놓고 있다. 심지어 16일 방송분에는 어렵사리 빼앗은 백미인의 땅까지 순순히 돌려 주겠다는 자비로운 '구느님' 의 답답하고 기가 막히 모습까지 목격할 수 있었다.


구은재가 정교빈 이하 정회장네 식구들을 용서하는 뉘앙스를 취하는 것은 드라마 전개 상 전혀 이해할 수 대목이다. 증오로 철철 끓어 넘쳐야 하는 구은재가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흐물흐물 거리는 것도 마음에 안 들지만 왜 선인은 반드시 악인조차 '용서' 해야 하는 것인지도 이해할 수 없다. 기왕의 복수라면 정말 처참하고 잔인하게 복수하는 건 용납될 수 없나.


독기 빠진 구은재는 시누이의 안구 파열에 오열하고, 시어머니 같지 않는 시어머니에게 "어머니" 라고 부르며 눈물 짓는 답답한 캐릭터로 돌변하고 있다. 여기에 자신의 복수를 뉘우치고 용서해야 하는 것인가 갈등하는 이상한 감정까지 끼어들면서 [아내의 유혹] 은 중심을 잃어 버리고 정처 없이 헤매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참 질기게도' 똑같은 사람인 애리라도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아내의 유혹] 에서 '어설픈 휴머니즘' 따위는 필요없다.


복수를 할거면 확실히 하고, 응징을 할거면 완벽하게 응징하면 된다. 용서니, 화해니, 동정이니 하는 것은 접어두고 [아내의 유혹] 이 지금껏 물불 가리지 않고 전개하던 '복수' 에만 집중하자. 용서를 강요하는 불편함과 짜증남 대신에 확실하 복수하는 통쾌함과 카타르시스만을 안겨주면 된다. 그것이 [아내의 유혹] 의 숙명이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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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unlover007.tistory.com BlogIcon Ruth 2009.03.17 1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후제가 드라마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시청자들이 지금까지 봐준 이유가 뭔데요? 복수는 계속 잔인하고 잔혹하게 치뤄져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를 권유하듯 강요하는 건우라는 캐릭 또 건우에 흔들리는 은재라는 캐릭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수빈과 하늘의 죄;는 정씨 가문에 속해있는 게 죄죠. 은재가 그렇게 말랑말랑했습니까? 칼갈아 왔잖아요. 오히려 이상황을 이용했어야 합니다. "어머니 전 모르는 일에요." 하는 게 아닌 "그래요. 제가 그랬어요. 어머님 자식이 다치니까 제 마음 이제 한치라도 아시겠어요?어머님 자식 다치건 가슴 아프고 제자식 둘이나 죽인건 별거 아닌가요" 했어야죠. 땅문서는 돌려주긴 왜 돌려줍니까? 우리나라 작가 이래서 문제에요.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던 냉혈적인 여주가 남주와 사랑에 빠지면 말랑말랑 바보가 됩니다. 당분간 안보려고요. 범인 밝혀지고 진짜 소희 돌아올때까지.

  2. 너무 독하면 2009.03.17 1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독하면 보기가 괴롭잖아요. 일단 중장년층 대다수 시청자에게 저런 독한 코드가 안맞기도 하고......어쩌면 복수의 코드를 사람들이 좋아한 게 아니라 누군가가 당하고 불쌍한 상황이 반전되는 그런 걸 좋아한건가 싶기도 하네요.

  3. 콩이콩이 2009.03.19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게 또 계속 복수만 하면, 드라마는 언제 끝이나겠습니까? 계속 복수를 해야하는데- 당연히 용서를 시켜야 드라마가 끝이나지, 이 드라마를 보고 "역시 복수를 하며 살아라"라고 갈치는 것도 아니고,,,,,,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너무 흥분하지 말아요~!! 그리고 이 드라마에 처음부터 작품성을 기대하진 않았잖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