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조의 여왕] 이 승승장구 하고 있다.
8% 한 자릿수 시청률로 시작한 뒤, 26% 두 자릿수 시청률까지 올렸으니 그야말로 '대박 중 대박' 이라 할만하다.
특히 '도시미인' 으로만 알려져 있던 김남주의 열연은 [내조의 여왕] 을 이끄는 1등 공신이라 할만하다. 그런데 때때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바로 '줌마렐라' 최진실이다.
[내조의 여왕] 은 기본적으로 '줌마렐라' 신드롬에 기초한 드라마다. 코믹한 설정, 중산층 집안의 여성이 신데렐라로 거듭나는 과정은 '줌마렐라' 신드롬의 공식과 완벽히 일치한다. 김남주 역시 그러한 '줌마렐라' 의 공식에 충실하며 20년에 가까운 연예생활을 근간으로 파격적인 변신을 한 셈이다.
그러나 김남주의 연기 변신은 사실상 '최진실' 을 근간으로 한 것이다. 날 때부터 스타였고, 영원히 대한민국의 스타로 남았던 최진실은 이혼 뒤 화려하게 '줌마렐라' 로 변신하며 최진실 신드롬의 실체를 대중에게 완벽히 확인시켰다. [장밋빛 인생] 은 최진실 복귀의 전초전이었고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은 최진실 신드롬의 재탄생이었던 셈이다.
최진실은 4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로맨틱 코미디를 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배우였다. 김희애가 불륜녀로, 채시라가 사극의 여걸로 변신할 때 최진실은 20대 때나, 30대 때나, 40대 때나 끝까지 '트렌디 드라마' 의 완벽한 여주인공으로 남았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트렌디 드라마의 여주인공이었고, 트렌디 드라마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것이 배우 최진실이었고, 최진실 신드롬의 실체였다.
만약 최진실이 지금까지 살아 있었더라면 [내조의 여왕] 의 캐스팅 1순위였을 것이다. 최진실은 이혼 뒤에 20대의 최진실과 40대의 최진실을 교묘히 혼합시켰다. 트렌디 드라마의 여왕이었으면서도 처참한 이미지 추락을 겪어야 했던 최진실은 '이혼' 과 '불륜' 이라는 두 가지 명제를 자신의 사생활과 작품에 완벽히 녹아들게 하며 배우 최진실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했다.
사생활과 작품을 교묘히 조화시키며 대중과 극적으로 화해한 최진실에게 대중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최진실이 '국민적 배우' 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도 사생활에 얽힌 추문과 상관없이 그녀가 대단히 '영리' 하게 자신을 포장하고, 줌마렐라 신드롬을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유호정, 오연수 등이 시작한 줌마렐라 공식이 최진실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다는 것은 최진실이 얼마나 완벽하게, 그리고 얼마나 철저하게 자신의 작품을 관리했느냐를 의미한다.
20대에 [질투] 를, 30대에 [별은 내 가슴에] 를 탄생시켰던 이 트렌디의 여왕은 40대에 [내마스] 를 탄생시키는 것을 통해 트렌디 드라마와 중년의 스타가 20년의 세월을 관통해 극적으로 '조우' 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내마스] 는 트렌디 드라마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스타 최진실의 이미지와 연기력을 베이스로 깔고, 청춘의 로맨스를 중년의 그것으로 대체시킴으로써 익숙하지만 또한 신선한 구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최진실이 구축해 놓은 '줌마렐라' 의 영역은 [내조의 여왕] 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김남주의 연기는 최진실의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최진실은 여전히 김남주 뿐 아니라 줌마렐라를 연기하는 중견 연기자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여전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최진실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생각하게 하는 힘이야 말로 진정한 스타 '최진실' 의 진면목이다.
줌마렐라 드라마를 시작할 때는 '최진실 법' 을 따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최진실은 죽는 그 순간까지 한국 드라마의 전형을 마련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내조의 여왕] 을 보면서 최진실을 떠올리고, 최진실의 연기를 미치도록 보고 싶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 방어적 영역,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키는 가능성이야 말로 최진실이 아니면 누구도 시도하지 못하는 여배우의 존재감이다.
최진실은 로맨틱 코미디를 주로 했던 과거 최진실의 장르적 선택에 2000년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최진실 표 '억척 주부' 를 혼합함으로써 '최진실 시대' 의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했고, [내마스] 는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키며 트렌디 드라마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확실히 보여줬다.
만약 최진실이 삶의 끈을 놓지 않고 [내마스 2]까지, 아니 적어도 [내조의 여왕] 이라도 찍었다면 한국 트렌디 드라마는 최진실과 함께 한층 더 진일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최진실의 작품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 트렌디 드라마의 희미한 잔상이고, 그 잔상이 [내마스] 와 함께 뚜렷해 졌을 때 한국 트렌디 드라마는 비로소 장르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의 빈자리를 도시미인으로 소문난 김남주가 그럴 듯 하게 채워 나가는 것은 다행인 일이지만 최진실의 빈자리는 여전히 크다. 문화 평론가 조지영의 말처럼, 그녀는 매니지먼트 기획사의 시대가 열리기 전에 나타난 마지막 신데렐라였다. 연기 경험도 일천하고, 미모 역시 뛰어나지 않았던 그녀는 그러나, 바로 그래서 시대의 히로인이 되었다.
극중에서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대부분 예비된 해피엔딩을 위한 전주곡이었지만, 2008년 10월 2일 새벽, 최진실이 홀로 흘렸을 눈물은, 끔찍한 비극으로 끝났다. 최진실을 만인의 연인이라 칭송하던 이들은 다음 날이면 그녀를 둘러싼 험하고 흉흉한 루머를 쉽게 믿어버리고 수근거렸다.
그때 마다 천국과 지옥을 왕복하던 그 여자는, 피로한 왕복 주행을 스스로 중단시켜 버렸다. 그녀는 가고 추억만 남았다.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한 여자, 쉽게 사랑 받았고, 쉽게 버림도 받았던 여자, 눈물도 웃음도 많았던 그 여자가 떠났다. 우리는 요정으로 나타나 연인이었다가 누이이자 언니였고, 아내 혹은 며느리이자 엄마가 되어 주던 사람, 언제나 돌아보면 거기 있어줄 것 같았던, 대체 불가능한 한 시대의 아이콘을 그토록 허망하게 보내고 말았던 것이다.
최진실, 국민의 배우였던 최진실. [내조의 여왕] 을 보며 그녀가 '죽도록'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