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 에서 미실의 '절대권력' 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른바 사다함의 매화로 알려진 미실의 비장의 무기는 천문을 꿰뚫는 것이었다.


농경사회에서 천문을 읽고 비가 오는 것을 예견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임을 볼 때, 미실이 이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그러니 지금 경주에 남아있는, 선덕여왕 재위 시절 만들어 졌다는 첨성대도 이런 쪽으로 생각해 보면 그 존재가치가 상당한 것인 셈이다.


허나 과연 첨성대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동양 최고의 천문대' 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사실 첨성대는 천문대가 아니었다.




현행 국정 교과서에서는 첨성대를 '동양 최고 천문대' 로 기술하고 있다. 선덕여왕 재위시절 만들어진 첨성대야말로 신라시대가 남긴 위대한 문화 유산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역사학자들은 첨성대의 정체를 두고 설왕설래를 거듭하고 있다. 첨성대는 사실상 천문대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 상징물, 혹은 선덕여왕의 불심을 상징한 조형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첨성대를 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테지만 일반인이 보더라도 천문대인 첨성대가 성 안쪽에, 그것도 낮은 평지에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의문스럽다. 실제로 별을 관측하기 위해서 첨성대가 지어졌다면 보다 높고, 하늘에 가까운 곳으로 지어졌어야 한다.


아무리 신라시대의 과학기술이 지금 우리가 감히 '추측' 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천문대를 평지에 세우는 일은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이는 첨성대가 천문 관측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기 보다는 여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전승 기원의 의식에 필요하여 만들어 진 건설물이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선덕여왕] 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듯이 당시 삼국의 전쟁은 대단히 빈번한 것이었고, 이 전쟁에서 무속적이고 주술적인 요소는 빠질 수 없는 것이었다. 당시 첨성대는 이 주술적 의식에 가장 걸맞는 도구였으며 여왕의 제사를 빛내기 위한 종교적 상징물로 존재했다. 첨성대의 '첨성' 은 별을 관측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러러볼 첨''별 성' 즉, 별을 우러르며 제사를 지낸다는 뜻인 셈이다.





게다가 첨성대는 사람이 별을 관측하기에는 매우 불편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실제로 첨성대의 겉모습은 매우 수려하고 매끈하게 다듬어진 것에 반해 내부 석재는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교과서에 나와있는 것처럼 천문대 안에 사람이 들어가 별을 관측하려고 했다면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부였을 것이다.


또한 첨성대 남쪽으로 나 있는 문 역시 천문장비를 챙긴 사람이 사다리를 대고 드나들기에는 턱 없이 작다. 그 문으로 사람이 드나든 것은 아마 맞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천문을 관측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여왕의 제사를 돕기 위한 제관의 드나듦으로 봐야한다. 첨성대 꼭대기에서 천문을 관측하고자 했다면 긴 사다리로 바로 올라가면 될 일이지, 그 좁은 문으로 드나들 일은 없기 때문이다.


남쪽으로 나 있는 문은 여왕 혹은 제관이 그 문을 보며 북쪽을 향해 제사를 올렸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이 북쪽을 향해 기도를 올린 까닭은 드라마 [선덕여왕] 에서도 나오듯이 '북두칠성' 때문이었다. 당시 북두칠성은 영원한 삶과 극락한 장생을 뜻하는 신성한 존재로 자리하고 있었다. 즉, 신라 사람들은 북두칠성을 우러러보는 첨성대에서 무속과 주술적 의식을 담은 전승기원의 의식을 수행했던 것이다.


조선조 안정복은 [동사강목] 에서 첨성대를 일컬어 "천문을 살피고 요망스러운 기운을 살피기 위해 선덕여왕이 만들었다." 고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바로 '요망스러운 기운' 이라는 구절이다. 첨성대의 진짜 역할은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요망스러운 기운을 떨쳐 주술적 의미를 극대화 시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첨성대는 말 그대로 별을 우러르며 제천의식을 수행하는 건설물이었다. 첨성대 꼭대기에 있는 '우물 정' 자는 제천의식의 기우를 뜻함이고, 남쪽 문은 북두칠성을 살피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 건설물이 평지에 지어진 까닭 또한 수시로 제사를 지내야 하는 편의성 때문이었다. 


첨성대는 지금껏 신라시대의 뛰어난 과학성을 상징하는 문화재로 사람들에게 기억되어져 왔다. 허나 이 첨성대야말로 과학과 같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제사와 제천을 아우르는 가장 '정신적' 문화재였다. 첨성대에 숨겨져 있는,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보살피는 그 정신이야말로 지금 우리시대 가장 필요한 조상들의 가르침이 아닐까. 하늘을 꿰뚫기 전에 하늘을 보살폈던 그 아름다운 정신을 다시 재평가 할 때가 왔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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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chernar 2009.07.08 1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첨성대의 남쪽문으로 어떻게 북두칠성을 볼 수 있는지요. 북두칠성은 북쪽에 있는데요.

    설명은 잘 봤습니다만, 마지막에 하나가 걸리네요.

    • 남쪽 문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냈으니.. 2009.07.08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
      남쪽으로 나 있는 문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냈단 건
      북쪽을 보며 제사를 지냈다는 말임...

    • 2009.07.08 2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전히 헷갈리게 설명하시네요.
      '밖에서'라고 해 주셔야 헷갈리지 않죠.
      밖에서 남쪽으로 나 있는 문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내니 남쪽에 서서 북쪽을 향해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낸 거죠.

  2.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ftd montreal 2009.07.09 04: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엔 무슨 장치가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었는데여. 순전히 내생각이었음다

  3. -_- 2009.07.09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대에는 "천문"이라는 개념이 점성술이나 종교와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관계였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런 뻘글은 나오지 않았을 것인데. -_-

  4. 별보는 사람 2009.07.09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글 알리미에서 링크를 따라 왔습니다.. ^^

    천문대가 높은 지대에 지어져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건 매우 큰 구경의 광학 망원경을 이용하는 경우에나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당시는 망원경이라는 관측도구도 없었기도 하고 지금처럼 광해가 없었을테니 낮은 곳에서도 충분한 천문 관측이 가능했기 때문에 궂이 고지대로 올라가야할 이유가 없었겠지요.

    천문을 관측해서 날씨를 예보하는 건 오늘날의 기상학입니다.
    천문을 관측해서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은 점성학입니다. (엄밀히 말해 학문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러첨 현대의 천문학과 당시의 천문학이라는 것은 개념이 조금 틀리기 때문에 천문대가 아니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조금 떨어지지 않나 생각됩니다.

  5. .. 2009.07.09 1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젠가 역사스페셜에서 봤는데,
    첨성대의 존재를 정치적으로 해석했더라고요.

    대충 기억나는게
    선덕여왕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확고히하기 위해서였던가...

    뭐 이런 저런 설이 있는 거죠.
    누가 정확한 지도 알 수 없고요.

  6. 별볼일 없는사람 2009.08.26 1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시대는 가로등이나 이런조명시설이래야 없었겠죠. 그리고 그리 귀중한 첨성대를 제작하는데 관리가 편하고 중요한 위치에 새워지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제사지낸다면 하늘의 신을 우선으로 한다는대 거기에 과학이 왠말입니까.
    과학을 연구하는데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니요. 개인적으로 어이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