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의 '히로인' 미실이 결국 눈을 감았다.


'선덕여왕' 이라는 네 글자가 무색할 정도로 50회에 이르는 긴 시간을 "미실의 천하" 로 만들었던 그녀가 50부를 마지막으로 사라진다고 하니 어쩐지 가슴 한 켠히 허해지는 느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너지지 않는 꼿꼿한 자존심으로 자신을 지켰고 죽는 그 순간까지 아름다웠던 그녀, 미실. 오늘 그녀가 남겼던 수많은 명대사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자.





"전선의 병력은 아니됩니다.
전선에서의 힘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은 곧 신국이 무너지는 것을 뜻합니다."



전선의 병력을 빼서 전세를 한 번에 뒤집자는 측근들의 말에 미실이 단호히 대응하는 부분이다. 미실이 권력만 탐했던 일개 권력자였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을 미실은 너무나도 '당연히' 하고 있다. 자신의 안위나 자신의 권력보다 신국의 안위가 먼저인 여자, 자신이 무너지는 것은 감수해 낼 수 있어도 신국이 무너지는 것은 볼 수 없었던 여자. 그 여자가 바로 '미실' 이었다.




"신국? 주인? 니가 뭘 알아.
사다함을 연모했던 마음으로 신국을 연모했다.

연모했기에 갖고 싶었을 뿐이야.
합종이라 했느냐? 연합? 덕만...너는 연모를 나눌 수 있더냐?"



합종과 연합을 통해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라는 덕만의 제안을 뿌리치며 미실은 "연모를 나눌 수 없다" 고 말한다. 그녀가 꿈꿨던 것은 천년만년 이어지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니었다. 사다함을 사랑했던 그 순수한 마음, 그 순수한 마음이 40년간 신국을 통치할 수 있게 했고 신국의 권력자로 자리매김 할 수 있게 했다.


그녀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정치인은 아니었으나 신국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연모했던 진정한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유일하게 살 수 있었던 '덕만의 손' 을 뿌리쳤다. 연모하는 신국을 덕만에게 빼앗기는 것보다 차라리 죽음으로 신국의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 그것이 바로 미실의 길이었을테니까.





"결국 이기지 못하더라도 너희가 쉽게 이기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째서요?"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미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강한 여자' 였다. 부러지면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는 않는 여자, 그래서 벼랑 끝에 내몰리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고 싶지 않아하는 여자. 이길 가망성이 없으니 덕만의 휘하로 들어오라는 아들의 말을 매몰차게 거절하며 그녀는 단 한마디의 말로 자신의 생각을 대변한다. "그럴 이유가 없다."





한 마디의 대사도 없었지만 아들의 뺨을 쓰다듬는 어미의 절절한 모정을 물씬 느낄 수 있었던 장면이다. 자신이 버렸기에 끝끝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조차 해 줄 수 없었던 아들, 그런 아들의 뺨을 쓰다듬으며 미실은 자신의 마지막 운명을 바라본 것은 아닐까. 그리고 자신의 운명과 너무나도 '똑' 닮아있는 아들의 얼굴에서 너무나도 처절한 연민의 정을 느낀 것은 아닐까. 그녀의 떨리는 손길이야말로 백 마디 말보다 미실의 모정, 연민, 슬픔, 애환을 모두 담아낸 최고의 '대사' 였다.





"말씀해 보십시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마무리...마무리요."



덕만, 비담과 헤어지고 난 뒤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한 미실은 설원에게 진심의 한 마디로 털어 놓는다. '마무리'. 옥처럼 찬란히 부서지리라던 그녀는 이 때 되도록 자신의 죽음이 허무하거나 추접해지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가장 찬란하고, 가장 아름다운 자신의 '마무리' 를 구상하게 된다. 한 시대를 풍미한 여걸의 담담하고도 속 깊은 속내가 드러나는 대사였다.


 


"그만 할래요."


너무나도 담담하고 차분한 말, "그만 할래요." 단 한번도 포기를 몰랐고, 단 한번도 멈추지 않았던 그녀의 입에서 나왔던 이 다섯 글자는 백 마디 말보다 가슴을 울렸고, 천 마디 말보다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이 말은 그녀 스스로 자신에게 내린 사형 선고이자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는 일종의 '항복' 이었기 때문이다. 


미실 스스로 그토록 갈구하고 연모했던 신국이 오히려 그녀 때문에 무너지고 있음을 그녀는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신국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 아름다운 '퇴장' 을 위해 그 동안 욕심냈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내려 놓아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가장 '미실다운 선택', 진정한 '신국의 주인' 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었을테니까. 





"싸울 수 있는 날엔 싸우면 되고, 싸울 수 없는 날엔 지키면 되고,
지킬 수 없는 날엔 후퇴하면 되고,

후퇴할 수 없는 날엔 항복하면 되고 항복할 수 없는 날엔.....
항복할 수 없는 날엔 그 날 죽으면 그만이네.

오늘이....그 날입니다."



설원에게 자신의 '죽음' 을 예고하는 말.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으면서도 결의에 넘쳐 우아함을 잃지 않는 미실의 모습은 진정 신국을 지배했던 위대한 여걸의 최후라 할 만 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명령, 말, 행동, 약속 모두 마지막입니다. 다 따르세요."



미실을 따라 함께 죽겠다는 설원에게 미실은 절대 그렇게 하지 말라며 마지막 명령을 내린다. 미실은 처음부터 자신이 모든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 생각이었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털 끝 하나 다치게 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특히 평생 자신만을 은애했고, 자신만을 바라봤던 진정한 충신인 설원에게는 더욱더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을터다. 그래서 그녀는 말한다. 설원 당신만은 죽지 말라고. 내가 하는 마지막 명령, 말, 행동, 약속을 모두 따르라고 말이다.






"약해진거 아닙니다. 여러 단계의 계획을 세웠고, 이제 마지막 단계를 실행할 뿐입니다.
설원공께는 미안합니다."



설원에게 자신의 마지막 명령을 전하는 미실. 그리고 평생을 함께했던 설원에게 미안함을 표시하는 미실. 이 미안하다는 말 속에는 설원에 대한 사랑과 그간의 충성에 대한 깊은 고마움, 그리고 훗날의 짐을 또 다시 설원에게 맡겼다는 미안함이 동시에 섞여 있는 것이 아닐까. 미실의 곁에는 정말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미실이 진정 믿고 의지할 수 있었던 사람은 단 한명 '설원' 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이란 아낌없이 빼앗는 것이다.
연모, 대의, 그리고 이 신라. 어느 것 하나 나눌 수 없는 것이다.
난 사람을 얻어 나라를 가지려 했다. 헌데 넌, 나라를 얻어 사람을 가지려 하는구나.
사람이 목표인 것은 위험한 것이다."



독약을 먹고 아들인 비담을 마주한 자리에서 그녀는 아들에게 '마지막 충고' 를 한다. 사랑 때문에 아들이 다치지 않기를, 많은 것을 공유하려다 도리어 빼앗기지 않기를, 작은 것이 아니라 큰 것을 추구하기를, 사람이라는 간사한 존재를 믿지 말고 자기 자신만을 믿기를 그녀는 에둘러 아들에게 항변한다. 그러나 사실 아들에게 남겼던 이 말은 아들을 위한 말이 아니라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마지막 위안' 은 아니었을까.


아낌없이 빼앗지 못해서 실패할 수 밖에 없었고, 너무 많은 것을 차지하려다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신국을 얻고자 했으나 결국 사람조차 얻지 못했던 그래서 끝끝내 스스로의 목숨을 내놓을 수 밖에 없었던 기구한 운명. 그 운명에 대한 미실 스스로의 '반성' 이 아들에 대한 걱정과 충고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덕만이는...아직인 것이냐."


미실이 마지막으로 '기다렸던' 인물은 바로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 '덕만' 이었다. 미실과 덕만은 왕위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라이벌 이전에 서로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나가는 '협력자' 였다. 경륜과 노련함이 부족한 덕만은 미실의 정치관과 확고한 가치를 통해 현실 정치의 세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고, 고작 황후만을 고집했던 미실은 덕만의 꿈과 이상을 지켜보며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했다.


그녀들은 경쟁을 통해 서로를 자극했고, 토론과 타협을 통해 그녀들만의 정치관을 확립했다. 그녀들의 경쟁이야말로 피와 살육이 난무하는 권력다툼을 넘어선 진정한 '선의의 경쟁' 이었던 샘이다. "미실, 당신이 없었다면 난 아무것도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라던 덕만의 말처럼 미실이 있었기에 지금의 덕만이 있고, 덕만이 있었기에 미실 역시 찬란히 부서질 수 있었다. 어쩌면 미실은 마지막으로 덕만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신국을 부탁한다." 고.






[선덕여왕] 이 그려낸 '미실' 이라는 정치가는 확고한 자기 주관과 철저한 정치 철학을 가진 진정 노회한 정치인이었다. 사람을 다룰 줄 알고, 적절히 자신을 포장할 줄 알며, 민중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알았던 그녀는 진실한 정치인은 아니었으나 백성들이 가장 믿고 따를만한 '거대한 정치인' 은 맞았다. 여성이었고, 진골이라는 한계 속에서도 많은 것을 시도했고 많은 것을 이룩했던 그녀야말로 진정 "신국의 주인" 이 될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닐까.


50회 분에서 덕만은 이런 말을 한다. "나 아주 잠깐, 미실에게서 왕을 봤어. 진정한 왕을"


신국을 사랑했고, 백성을 연모했으며,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나라를 이끌어 가고자 했던 사람. 사욕을 버리고 국익을 선택하며, 스스로가 깨질지언정 국가가 무너지는 것만은 막고자 했던 사람. 열정적이고, 패기 넘쳤으며, 노련했고, 철두철미했던 사람. 황폐하고 초라했지만, 스스로를 고귀하고 우아하게 만들 줄 알았던 사람. 뜨겁고 강렬했지만 차갑고 냉철했던 사람. 황량하고 메말랐지만 사람의 본질을 꿰뚫었던 사람.


그랬던 사람, 그랬던 여자, 그랬던 정치가. "미실"


그래서 나 역시 덕만처럼 그녀의 '마지막' 에서 신국의 왕을 봤다. "진정한 왕" 을.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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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왕을 보다 2009.11.11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글 저또한 어제 선덕여왕 50회를 보고 쉽게 잠들지 못했습니다.

  2. Favicon of http://monora.tistory.com/ BlogIcon 로자린느 2009.11.11 1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의 감동이 다시금 느껴져요,, 잘봤어요,

  3. 익명 2009.11.11 2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 2009.11.11 2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을 너무 미화하는듯 선덕여왕재밌게는 보고있지만 그래도 역사극인데 너무 역사왜곡이 심한거 같네요 미실이 여자시청자들한테 인기가 많으니 작가가 더 미실을 멋있게 보이려고 한듯 하여튼 훌륭한 인물도 아니었던 미실에 이렇게 열광하는거 자체가 좀 손발이 오그라드네요

    • BlogIcon 흠... 2009.11.11 2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 역사 역시....사극에 따라오는 꼬리표는 역사를 왜곡하는 거겠지요 드라마는드라마로써 끝을내라고 해도 따라오는게 왜곡 음...........미실은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야설 입니다....역사라...언제부터 우리나라사람들이 역사에 관심이있었는지요? 일본이 독도문제삼으면 그때 잠깐일어 서고 끝이 아님니까?역사를 사랑하시나봐요? ㅋㅋ 우리나라는 친일파가 설치고 다니는 그런 나라입니다 역사 역사 참 따질려면 나라를 뒤집어 엎어야죠

    • .... 2009.11.11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뭔가 착각하시는듯 그냥 사극이면 걍 재미로 생각하고 볼수있을지 모르지만 선덕여왕 <-- 이런씩으로 역사속 인물에 대해서 드라마를 만드는거라면 최대한 거짓은 없어야한다고 봅니다 이건 역사극이지 홍길동 같은 소설이 아니잖습니까

    • ......; 2009.11.11 2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드라마를 역사를 배우는 교과서라고 생각하시는건지요..

      드라마자체가 희극화 해야하는 특성이있습니다.
      드라마는 미실은 죽고 덕만은 여왕이 된다는 역사속 사실에서
      살을 덧붙여 이야기를 만들어가는것입니다.

      드라마는 '선덕여왕'이라는 인물의 역사를 재해석한것이죠.
      여기서 역적사실을 보고싶으시면 다큐를 보시는걸 추천합니다.

  5. 익명 2009.11.11 2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뭐여....니네 둘 2009.11.11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나 한번 써보고 씨부렁 대라. 저게 역사 다큐 냐? 드라마지...한심한것들 꼭 동네 중국집에서 정통 중국요리는 말이야 하면서 어쩌고 저쩌고 하고 떠드는것 같아 내가 손발이 오그라든다.

  7. 사욕에 젖은 한 정치가의 최후 2009.11.11 2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의 최후를 보며 훌륭한 정치가이라 평한다면 히틀러 또한 그러하지 아니하겠는가...
    정치는 정의이고, 신의이고 또한 그 중심에 국민이 있다....

    덕만공주(선덕여왕) 대사중에서.......
    “미실은 하늘도 두려워하지 않아. 오히려 백성을 두려워하지. 그래서 백성의 말을 듣는 것도 두려워하는 거야. 그러나 난 누군가의 말을 듣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 나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말들이, 질문들이 나를 결정할 거야. (…) 앞으로도 백성은, 세상은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할 꺼야. 난 언제나 두려워하지 않고 그 질문들을 들을 거고 최선을 다해서 답을 찾을 거야.” (30회 중)

    미실역을 완벽히 소화해낸 ... 연기자 고현정으로 기억하시길...

    미실...그녀가 지금 현실에 나타난다면...그것은 재앙!

  8. 글 너무 잘 봤습니다. 2009.11.11 2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너무 잘 봤는데요... 저,..미실은 귀족은 맞습니다만.. 진골이 아닌 '대원신통' 이라해서 성골,진골의 남자아이를 생산 해 주는 왕비부족 입니다. 미실의 어머니, 할머니도 대원신통귀족 였고 유일한 모계로 이뤄졌다고 화랑세기에 나옵니다.

  9. 익명 2009.12.08 1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0. ㅋㅋㅋ 2009.12.24 1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감동 받는 마지막 장면이었어요 연기에 힘을 다하신 고현정님께 감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