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뚫고 하이킥]의 시청률이 말 그대로 '지붕을 뚫고' 있다.


김병욱 표 시트콤의 저력이 발휘되면서 [거침없이 하이킥]의 아류작이라는 꼬릿표를 떨쳐 버리고 전혀 새로운 시트콤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하이킥' 이라도 [거침없이 하이킥]과 [지붕뚫고 하이킥]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아니, 오히려 [거침없이] 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간 것 같은 느낌이다.




[거침없이 하이킥] 으로 맛 본 '실패'


[거침없이 하이킥]은 김병욱이 [귀엽거나 미치거나]로 치욕스러운 '조기 종영' 을 당한 뒤에 이를 악물고 만든 컴백작이었다.  김병욱 PD로서는 연출가로서 생명이 걸린 중요한 시점이었고,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그렇기 때문에 [거침없이 하이킥] 은 처음부터 '빵빵' 터뜨리는 재미가 있었다. 마치 융단폭격과 같은 엄청난 에피소드를 한 회에 두 개씩 배치함으로써 사람들을 정신 없이 웃게 만들고 그것을 통해 대중적인 흥행을 이끌어 냈던 것이다.


여기에 사람들을 배꼽 잡게 웃게 만들기 위해서 김병욱이 선택한 것은 파격적인 에피소드, 그리고 그 에피소드를 현실감 있게 만드는 우스꽝스럽과 과장된 캐릭터였다. 이순재, 나문희, 박해미, 정준하, 최민용, 김범 등 [거침없이 하이킥] 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는 일상 생활에서는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비현실적인 희화화를 거친 인물들이었으며 이는 곧 말투, 대사, 행동으로 이어지며 [거침없이 하이킥] 의 비현실적 에피소드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승화시키는데 일조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바로 문제가 발생했다. 매 회마다 빵빵 터뜨려 주는 것은 좋은데 김병욱 특유의 '현실 밀착형' 시트콤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지나치게 시청률을 의식한 멜로 라인이 무차별 적으로 첨가됨으로써 이야기가 점점 산으로 갔고 치밀하게 구상했던 유미네 가족의 미스테리 사건 역시 시간 부족을 이유로 제대로 구현하지 못함으로써 [거침없이 하이킥] 은 당초 김병욱이 기획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야 말았다.


김병욱이 [거침없이 하이킥] 을 끝내면서 두고두고 아쉬워 했던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기획 당시의 뚝심을 지키지 못하고 시청자 의견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는 것, 코믹-멜로-미스테리 등 여러 가지 장르에 한꺼번에 도전하다 보니 오히려 중심을 잃어고 이도저도 아니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 희화화와 과장된 캐릭터의 난무가 현실 세계의 웃음 코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우를 저질렀다는는 것에 대해 그는 상당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김병욱, [지붕뚫고 하이킥] 에 '일상성' 을 부여하다


그랬던 그가 [거침없이 하이킥] 의 후속격인 [지붕뚫고 하이킥] 을 들고 나온다 했을 때,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침없이 하이킥] 은 김병욱 스스로 상당한 자기 비판을 했던 작품이기에 차기작을 들고 나온다고 해도 '하이킥 시리즈' 를 이어 나갈거라고 예상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병욱은 예상 외로 '하이킥' 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거침없이 하이킥] 에서 저질렀던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지붕뚫고 하이킥] 은 한 마디로 김병욱에게는 '설욕전' 이었던 셈이다.


[지붕뚫고 하이킥] 을 시작하면서 김병욱이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은 '멜로' 부분 이었다.


전작 [거침없이 하이킥] 이 무리한 멜로라인으로 망가졌음을 간파하고 있던 그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사각관계' 멜로를 설정하되 억지스럽거나 무리한 에피소드는 지양하고 최대한 자연스러운 러브스토리를 구사하려 노력했다. [지붕뚫고 하이킥] 의 멜로라인이 답답하다 못해 지지부진한 모습까지 보이는 이유는 최대한 일상성을 반영하며 속도 조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킥]처럼 한꺼번에 펼쳐 놓고 수습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드느니 오히려 천천히 하나씩 구상해 풀어 놓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 김병욱의 생각인 셈이다.


여기에 그는 [지붕뚫고 하이킥] 의 캐릭터들에게 최대한 '현실성' 을 부여하려 노력했다. 장르가 시트콤이기 때문에 캐릭터가 과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는 캐릭터의 과장성을 충분히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듯한 모습으로 곱게 '포장' 했다. 오현경이 박해미만큼 강렬하지 않고, 김자옥이 나문희만큼 우스꽝스럽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빵빵' 터뜨리는 대신에 캐릭터 자체를 절제시킴으로써 극 자체가 판타지한 코믹으로 변질되는 것을 애초부터 방지한 것이다.


대신 김병욱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아주 '민감한' 문제들을 스토리와 캐릭터에 부여했다. '하층민' 세경 가족과 '상류층' 순재네의 계급갈등,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남성들을 대변하는 정보석의 무능력함, 막무가내 해리와 그를 방치하는 어른들의 무관심, 학벌 중심의 사회에서 '서운대'생으로 살아가는 황정음의 고군분투, 인맥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인사채용 에피소드, 인형뽑기로 풍자하는 도박의 위험성 등은 현실 세계의 문제와 맞닿아 있음으로해서 오히려 생명력을 얻게 됐다.




[지붕뚫고 하이킥], [거침없이 하이킥] 을 넘어서다


김병욱이 [지붕뚫고 하이킥] 에서 끝까지 고수하고 있는 두 가지 명제는 '절제' 와 '일상' 이다. 과장과 희화화 된 에피소드를 포기하는 대신 절제되고 정돈 된 에피소드를 펼쳐 놓음으로써 기획의도를 충실히 구현하고, 일상의 결을 포착하는 에피소드를 자연스럽게 집어 넣는 유려함을 더함으로써 [거침없이 하이킥] 과 확연한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지붕뚫고 하이킥]은 [거침없이 하이킥]의 단점을 최대한 보완하면서 김병욱 특유의 색깔을 가장 잘 살리고 있는 수작이다. 에피소드 자체가 시트콤의 말초적 재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제기로 이어지고, 문제제기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주제의식까지 드러내는 노련미는 과연 김병욱 표 시트콤이라 극찬할 만 하다.


옛말에 '형만한 아우 없다' 는 말이 유독 '하이킥' 시리즈에는 통하지 않는 듯, [지붕뚫고 하이킥]은 이미 [거침없이 하이킥]의 작품성을 뛰어 넘어 김병욱 시트콤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 [지붕뚫고 하이킥]이 끝까지 흔들림 없는 구성을 유지하며 좋은 작품으로 남을 수 있기를, 그리고 김병욱이 이 작품을 통해 제대로 설욕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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