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과 운명을 함께 했던 설원이 오늘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쳤다.


비담에게 미실의 뜻을 전하며 눈을 감은 그는 여태껏 [선덕여왕]에서 가장 빛나는 조연 중 한명이었다.


그런데 두고두고 아쉽다. 마무리가 너무 허무했다. '진짜 남자' 설원의 죽음이라고 하기엔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선덕여왕] 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모두 '패기' 가 넘치는 젊은이들이었다. 유신, 알천, 비담 등은 이제 갓 정치가 무엇인지, 권력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사람들이다. 덕만이 끝내 미실을 이기고 여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데에는 젊은 사람들만이 갖고 있는 패기와 열정이 가장 큰 밑천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용감무쌍함이야 말로 청춘의 특권 아닌가.


그러나 이 중에서 유독 설원랑만큼은 달랐다. 사리사욕이 없다고 할 순 없으나 그가 주군이었던 미실 곁에 끝까지 남았던 이유는 그녀에 대한 경원과 사랑, 그리고 무조건적인 존경과 충성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의 충성은 음흉하기 보다는 끝없이 순수했다. "모든 것은 미실 궁주에게 달려있다." 며 단 한번도 미실의 뜻을 의심하지 않는 설원랑의 모습은 적이라고 해도 본 받아야 할 만큼 멋있었다.


미실 곁에서 맴도는 우유부단하고 사리사욕 가득 찬 남성들과 달리 그의 결정은 언제나 자신의 주인인 미실의 뜻을 근간으로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합리적인 방향으로 선택되었다. 즉,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미실의 안위이며, 미실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덕만의 입장에서 보면 설원랑이야 말로 가장 빨리 제거해야 할 대상이지만, 미실의 입장에서 보자면 설원랑이야 말로 진정한 충신인 셈이다.


그는 비록 [선덕여왕] 에서 덕만을 괴롭히는 악역으로 등장했지만 자신이 선택한 주인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충성' 을 바친다는 점에서 진정한 화랑의 참모습을 보여줬다. 앞으로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정확히 알고 자신의 뜻 보다는 주인의 뜻을 우선하는 설원랑의 충심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성이 담보 된 충심이었기에 감동적이었다.


설원랑의 단정한 품새는 신뢰를 담보하며 차분하면서도 냉정한 말투는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포쓰를 보여줬다. 격정적일 때에는 격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차가울 때는 더 없이 차가운 그는 지금으로 따지자면 아주 괜찮은 1등 신랑감이다. 이 시대 진정한 꽃중년, 미중년이라고 할 만큼 설원랑의 성품은 매력적이었다.


아무리 악역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그가 선택한 주인과 그가 선택한 삶의 방향에서 그 누구보다 치열하고 성실하게 살아갔다. 그것이 비록 성공을 담보하는 '역사의 승리자' 의 길은 아닐지라도 한 사람의 신하로서, 한 사람의 연인으로서,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그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만큼 꽤 괜찮은 인생을 걸어갔던 셈이다.


이렇게 '괜찮은 인생' 을 살아갔던 설원이었기에 그의 마지막도 그만큼의 가치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실만큼 장엄하고 위대하게 포장되지는 않아도 미실의 뜻을 이어받아 비담을 키우다시피 한 그의 마지막이라면 어느정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덕여왕] 속 설원의 죽음은 너무나 허무했고, 너무나 초라했다. 설원의 죽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처참한 기분이었다.


설원의 마지막이 어울리는 곳은 장렬히 전쟁터에서 죽는 것이었다. 장수로서 끝까지 싸우다가 장렬한게 전사하는 모습이 가장 설원다운 멋진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장 방송에다가 촬영 지연까지 겹치면서 [선덕여왕] 은 설원의 마지막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 전쟁씬을 찍을 시간이 없었던 탓에 '말'로만 계속 전쟁을 하다보니 설원이 어떻게 싸우다, 어떻게 졌는지 보여주지 못했고 뜬금없이 기력이 쇠해 죽는 장면만 보여줬다. 황당하고 뜬금없었다.


50회 넘게 설원을 진정 '멋진 사람' 으로 만들어 놓고 죽음을 이런 식으로 초라하고 뜬금없이 만들어 놓으니 보는 사람으로서도 힘이 빠졌다. 설원이 아무리 조연이라고 해도 미실에게는 진정한 충신이요, 덕만에게는 진정한 견제자였으며, 비담에게는 진정한 조력자였는데 이러한 사람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 짓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연장방송의 '폐해' 라고 할 만큼 형편 없었다고 평하고 싶다.


[선덕여왕] 제작진은 바쁘더라도 그려낼 캐릭터는 '제대로' 그려내 줬으면 좋겠다. 말로만 전쟁을 하고, 말로만 권력 투쟁을 하고, 갑자기 필요한 인물을 허무하게 죽여버리는 행태는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부디 남은 시간동안 [선덕여왕] 이 이런 식의 실수를 하지 말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래본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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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Økii 2009.12.02 0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어제 출정하기 전 미실 영정 앞에서 눈물 흘리는 모습은 감동이었는데.. 그제 선덕여왕 앞에서 이 노장에게 기회를 달라고 할 때도 멋있었구요. 저도 전장에서 끝까지 싸우다 죽을 줄 알았는데 좀 아쉽더군요.

  2. 정말.. 2009.12.02 15: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원이 그렇게 갈 줄 몰랐아요. 설원인데..
    정말 비담의 말처럼 신국을 몇번이나 위기에서 구한 설원인데..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이건 정말 아니예요!!
    어떻게 이렇게까지 허무하게 사람을 보낼 수 있죠..ㅠㅠ

  3. Favicon of https://kmc10314.tistory.com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2.03 03: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쓰고 싶었던 말을 쓰셨네요.
    차라리 장렬하게 전장에서 1:20 이런식으로 싸우다가 전사하는게 더 보기좋았을 텐데...
    돌아오지 않겠다고 나간사람이 패전해서 돌아와서 허무하게 죽는게 아쉽군요...
    좋아하는 캐릭터였는데 선덕여왕 제작진에서너무 설원을 허무하게 보내는거 같았습니다...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