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이는 것'을 당연하다 믿고 산다.


그래서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를 굉장히 두려워한다.


하지만 때때로 모든 것이 캄캄한 세상, 칠흙 같은 어둠이 편안해 질 때가 있다.


신촌 버티고 빌딩에서 체험할 수 있는 전시공연인 [어둠속의 대화]는 그래서 반가웠다.


[어둠 속의 대화]는 굉장히 특별한 경함을 선사해 준 체험 공연이다. 체험은 간단하다. 8명이 팀을 이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빛이라는 것이 없는 미로 같은 공간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길을 찾고, 물건을 추측하고, 음료수를 마시며 수다를 떤다. 일상생활에서는 별거 없는 체험이지만 빛이 없는 공간에서는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재밌는 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어둠의 공간으로 발을 내딛으면 잔디와 시원한 바람, 그리고 나무들이 우리를 반긴다. 신촌에 위치한 9층 빌딩에서 느끼는, 너무나 광활하고 드넓은 초원이다. 시각이 사라진 대신 촉각, 후각 등 다른 감각이 살아난다. 보이지 않는다는 답답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어둠이 주는 여유로움과 색다른 사색에 몸을 맡기게 된다.


미로 같은 길을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더듬거리며 걷다보면 큰 집이 나온다. 큰 집 앞에서 초인종을 띵동 눌러본다. 큰 집을 지나니 흔들다리가 나온다. 흔들다리 밑에는 시냇물이 졸졸 흐른다. 흔들다리에 올라서니 다리가 진짜 흔들거린다. 물에 빠질까봐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다. 흔들다리를 지나니 벤치가 나오고, 시장이 나온다.


시장에서 물건을 고르고, 배를 타서 외딴 섬에 도착한다. 선착장에 내리니 커피향 가득한 음료수집이 나온다. 각자 음료수를 골라 마신다. 때로는 시원한 바람을 맞기도 하고, 때로는 버스 정류장의 매퀴한 매연이 느껴지기도 한다. 산들거리는 바람소리와 서로 부딪히는 풀잎 소리를 즐기다가,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수다 소리에 나도 모르게 흥겨워지기도 한다. 어둡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어둠 속의 대화]는 보이지 않으면 답답하다는 내 편견을 완전히 산산조각 낸 특별한 체험이었다. 보이기 때문에 놓칠 수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나는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어둠이 내게 준 특별한 기분과 감정 때문에 체험하는 내내 전율에 가까운 기분을 맛보았다. 흥분, 짜릿함, 즐거움 그리고 이내 느껴지는 편안함과 안락함. 여기에 더해서 약간의 알딸딸한 기분까지. 하하하.


체험을 끝내고 나오면 "당신이 어둠속에서 본 것은 무엇입니까?" 를 묻는 캘린더가 있다. 이 캘린더에 사람들이 적는 대답은 각양각색이다. 평화, 행복, 사랑, 당신같은 단어부터 시작해서 또 다른 세상, 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깨달음 등 철학적인 이야기도 나온다. 정답은 없다. 어둠 속에서 스스로가 느낀 그것이 진짜 '정답'이다. (캘린더에 쓴 문장을 들고 사진을 찍는 공간이 있다. 찍은 사진은 홈피에서 확인 가능하다^^)


어떤 곳보다 복잡하고 정신없는 서울 신촌 한 복판에서 느껴본 아주 특별한 '어둠'.


시간이 된다면 오늘 연인의 손을 잡고, 아이의 손을 잡고, 그 특별한 어둠이 주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 어떠할지. 가격은 조금(;;) 세지만 살면서 한번 쯤 꼭 한 번 가볼만한 체험공연이기에 강추해 본다.


돈 아끼지 말고! "보이는 것 그 이상의 것을 보는" 경험에 당당히 도전해 보시길^^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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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ftcenter.tistory.com BlogIcon 이상훈 퍼실리테이터 2012.10.06 11: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둠속의 대화라는 체험전시를 알게 되어 자료를 찾다가 들어왔는데, 직접 전시 체험을 한 것 같이 소상히 정보를 제공해 주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