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아마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한다.


세대를 초월한 필독서로 읽혀지는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가 남긴 불후의 역작이자,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진정한 고전이다.


그런데 이 명작이 연극으로 만들어진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 정답은 바로 '대학로'에 있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연극 [노인과 바다]는 원작의 이야기 구성을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연극적 재미를 놓치지 않는 수작이다. 원작 자체가 다소 철학적이고 어려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해설을 덧붙여가며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라인은 지루할 틈도 없이 흥미롭게 흘러간다. 고전명작은 지루할 것 같다는 편견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연극이 연극적 재미 뿐 아니라 원작이 가지고 있는 철학과 깊이를 작은 무대 안에서 제대로 구현해 낸다는 것이다. 보통 범상한 연극이 재미를 좇다보면 의미를 잃기 쉽고, 의미를 좇다보면 재미를 잃기 쉬운데 연극 [노인과 바다]는 재미와 의미, 즐거움과 감동 어느 것 하나 치우치지 않는 고른 균형감각을 선보인다. 관객은 연극을 보고 웃고 즐기다가 어느샌가 노인의 삶이 주는 인생의 철학에 감동하고 있다. 이건 정말 짜릿하고도 놀라운 경험이다.


게다가 이 연극이 관객과 함께 호흡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데에도 큰 박수를 보낼만하다.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여러가지 장치와 구성을 통해 [노인과 바다]는 배우들 뿐 아니라 관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연극으로 변모한다. 관객이 그저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를 연출함으로써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지고, 재미는 더욱 극대화 되는 것이다. 이 연극 자체가 얼마나 치밀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 연극 한 편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노인과 바다]의 가장 큰 미덕은 배우들의 열연에 있다. 연극이라는 것이 관객이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를 여과없이 바로 지켜보는 것이기 때문에 배우들이 연기를 못하면 벌써 90% 그 연극은 망했다고 봐야 한다. 반대로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면 다소 구성 자체가 헐렁한 연극이라도 관객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다.


그런데 [노인과 바다]는 탄탄하고 치밀한 구성의 원작에 그 원작의 감동을 뛰어넘는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져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노인 역할을 맡은 정재진과 청년 역할의 박상협은 온 몸으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를 지닌 정말 멋진 배우들이다. 좁은 무대를 결코 좁게 만들지 않는 그들의 연기는 그 자체가 바로 [노인과 바다]를 상징하는 듯 소름끼치게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평가의 영역을 뛰어넘은 듯한 정재진의 노련한 연기와 열정적이고 순수한 느낌을 주는 박상협의 연기는 관객이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만큼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연극을 본 보람이 있다고 느낄 정도로 감동적이고 즐거웠다.


게다가 단초로운 무대를 여러가지 효과들과 관객과의 호흡을 통해 드넓은 바다로 만들어내는 연출력에도 박수를 보낼만 했다. 대개 여러가지 세트를 돌려가며 배경을 만들어내는 여타 작품들과 달리 [노인과 바다]는 아주 단조로운 무대 속에서 조명과 배우들의 연기, 관객들의 도움을 통해 광활하고 신비로운 대자연을 표현해낸다. [노인과 바다]의 하이라이트라고도 볼 수 있는 노인과 상어간의 투쟁은 가히 예술에 가까운 무대 묘사였음을 자부한다.


내가 본 연극 [노인과 바다]는 여러모로 의미가 큰 작품이었다.


우선은 헤밍웨이의 불후의 명작을 이렇게 아름답고도 멋지게 무대에 올렸다는 시도 자체만으로 박수를 받을만 하고, 무대에 올리면서도 원작이 가지고 있는 깊이와 철학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구현해 냈다는 것 또한 놀랍고 소름끼쳤다. [노인과 바다]를 재밌게 본 사람이든, 재미없게 본 사람이든 연극 [노인과 바다]만큼은 꼭 한 번 추천해 주고 싶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게다가 치밀한 구성과 대담하고도 탄탄한 연출력, 여기에 실력있는 배우들의 열연과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이 더해진 이 연극은 그 어떤 연극과 비교해도 결코 빠지지 않는 아주 좋은 강점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인간은 패배를 위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인간은 죽을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순 없다." 는 [노인과 바다] 속 대사처럼 결코 좌절하지 않고 이렇듯 괜찮은 연극을 만들어 낸 배우 및 제작진들의 노고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삶에 지치고 힘들어 자신의 꿈조차 닳아 없어져 버린 듯한 이 시대 청춘들에게 반드시 이 연극을 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그대, 이 연극을 보면서 좌절하고 슬퍼하지 말지어다. 삶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닐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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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rotiqe.tistory.com BlogIcon 강아지 로띠끄 2011.04.10 1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극은 아직 한번도 못봤는데...

  2. 진진냥 2011.04.16 1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나 하고 읽었는데, 역시나네요^^
    저도 이 연극을 작년에 보았죠. 2인극 연극제의 한 작품으로 나왔던 거 같은데,
    묵직하고 깊은 주제의 원작을
    이토록 유쾌하고 역동감있게 풀어낸 것에
    정말 놀랍고, 즐거웠습니다.
    물론 메시지는 마음을 울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지요.

    떠올리니 다시금 미소가 지어지네요.
    정말 강추하고픈 연극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