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꽤 많은 뮤지컬과 연극을 봤지만 1인극을 본 기억은 없다.


막연히 1인극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였을까.


하지만 이번에 본 대학로 연극 [염쟁이 유씨]는 나의 '1인극'에 대한 편견을 와장창 깨부수어 주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1인극에 반하게 만들었다.


우선 무대에 들어서면 하얀 천 조각들이 덩그라니 끈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얀 천 뿐 아니라 하얀 옷을 입은 약간은 묘한 느낌을 주는 인형들도 발견할 수 있다. 아무렇게나 꼬아 놓은 듯한 투박하고 정스런 짚신, 나무향 가득할 것 같은 의자, 보기만 해도 요상스런 기분이 드는 병풍까지 무대는 영락없이 전통 장례 문화 그대로를 옮겨 놓았다. 가히 '염'을 하는 장소라 할 만하다.


평소엔 잘 보지도 못했던 관이 덩그러니 무대 한 가운데 있는 것도 스산한 느낌을 준다. 막이 오르면 염쟁이 유씨가 터덜터덜 걸어나온다. 이 연극은 바로 이렇게 시작한다. 염쟁이 유씨 하나만 나왔을 뿐인데 이미 무대는 꽉 찬 듯한 느낌을 준다. 이것이 1인극의 묘미라면 묘미랄까.


유씨는 집안 대대로 염을 가업삼아 살아온 염쟁이다. 자신은 가업을 이었지만 자식만큼은 '염쟁이'로 살지 않길 바라는 그는, 엄밀히 말해 그 집안의 '마지막 염쟁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삶과 죽음, 좌절과 성공, 인생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고도 통찰력 있게 꿰뚫어보는 이 시대의 노인이다. 죽음을 업 삼아 살아가면서도 그 죽음에 대해 마냥 웃을 수 만은 없는 그의 씁쓸함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염쟁이 유씨는 사람의 죽음을 지척에서 바라보며 시종일관 느끼고 생각한 바에 대해 덤덤하면서도 조용하게 털어놓는다. "사람이 꼭 한번 죽게 되는데 욕심대로 사는게 쉬운게 아니야", "죽는다는 것은 생명이 끝난다는거지,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야" 등 오랜 경험의 산 증인의 말로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인의 숨 쉴 틈을 만들어 준다.


[염쟁이 유씨]는 기본적으로 1인극이지만 캐릭터는 '염쟁이 유씨' 하나만은 아니다. 염쟁이 유씨는 때론 깡패로 나왔다가, 때론 부하로 나왔다가, 장사치 이사로, 아버지로, 아들로, 어린시절로, 작은 아들로, 며느리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1인 15역을 하는 배우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경이로울 정도로 감탄스럽다. 다행히 이런 다양한 변신은 1인극의 지루함을 없애고 신선함을 가미한다.
 

이 연극에서는 관객들도 '즉석배우'가 된다. 염쟁이가 시키는 행동을 어설프지만 따라하기도 하고, 관을 함께 옮기는 도우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소주를 나눠 마시기도 하고 기자가 되기도 하며 전통문화체험단 역할도 부여받는다. 배우만큼 관객들도 여러가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연극은 배우와 관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이 연극은 깜짝 놀랄 정도로 중요한 장례절차를 가감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직접 운반하고 천을 감는 등 작은 무대를 염집으로 둔갑시켜 염습(향탄수로 시신을 닦는 것), 반암(시신의 입에 물에 불린 쌀을 넣는 것), 소렴(시신에게 수의를 입혀 주는 것), 대렴 (대렴포로 관에 넣는 의식)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하나의 장례절차를 수행하는 염쟁이 유씨의 모습에선 스산하면서도 굳은 결기가 느껴진다. 살아가기 위해 죽은 자를 수습하는 일을 택했던 자신의 인생이지만 그는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지막 예를 갖추는 자신의 업에 대한 숭고하고도 깊은 자부심이 은연 중 드러날 정도다. 그의 말 한마디, 그의 표정 하나에는 인생에 대한 고단함이, 업에 대한 숭고한 자의식이,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롭고도 정교한 비판과 해학이 정성스레 스며들어 있다.


"죽는 것 어려워들 마시게.... 산다는 것 누군가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
 

염쟁이 유씨의 마지막 대사다. 누군가에게 정성을 다하는 삶, 결코 어렵지 않은 죽음. 이는 곧 죽는 것보다 무섭고 힘든 것, 죽는 것 보다 더 가치롭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라는 걸 역설하는 것이 아닐까.


이 연극, 1인극이라는 편견을 갖고 봤다가 정말 큰 코 다쳤다. 여태껏 본 작품들 중에 베스트로 꼽을 정도로 참으로 정겹고 배울 것이 많은 연극이다.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쟁취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웃음과 해학으로 무대의 막이 내려오는 그 순간까지 관객을 숨죽이게 만드는 연극, [염쟁이 유씨]! 지금 가족이나 연인의 손을 꼭 붙잡고 대학로로 가보시는 건 어떨지.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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