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이 또 '망언'을 했다.
이성미의 이야기 쇼에 게스트로 나와 "내가 여자가 끊이지 않는 것은 돈 때문이다" 라며 생각없는 발언을 던진 것이다.
그러면서 "여자가 돈 쓰는 꼴은 못 본다"는 이야기도 덧 붙였다.
조영남의 이 발언을 듣고서는 한동안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돈 쓰는 걸 못 보고, 여자가 따르는 이유를 '돈'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사람이 왜 전 부인인 윤여정에게는 그렇게 인색했던걸까?
그 알량한 돈 때문에 조강지처를 '연예계 공식 왕따'로 만들 정도로 말이다.
1973년, 조영남과 결혼을 하며 미국으로 건너갔던 윤여정은 13년 뒤인 1986년, 두 아들의 손을 잡고 초라하게 귀국하게 된다. 재주 많은 조영남이 좋아서 청춘까지 올인했던 그녀에게 남은 것은 얼마 되지도 않는 위자료와 두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 걱정 뿐이었다. 조영남이 떠나는 순간 윤여정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다.
윤여정이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오직 연예계 뿐이었다.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데뷔해 연기를 했으니, 할 줄 아는 거라곤 연기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2년 동안 떠나있던 연예계에 발 붙이기는 쉽지 않았다. 연예계는 그녀 생각보다 훨씬 더 냉혹하고 잔인했으며 차가웠다. 한 때 [장희빈][새엄마][하녀] 등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왕년의 명성은 과거의 유물일 뿐이었다.
윤여정은 자존심을 구겨가면서까지 지나가는 행인, 물건파는 아낙네 역할부터 다시 시작했다. 조영남과 살며 받았던 스트레스로 피부는 완전히 망가지고, 목소리는 허스키해 져 당시 시청자들이 뽑은 '비호감 연예인' 1위로 뽑히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달려갔고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 윤여정은 그 때를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 눈물 흘리며 참아낸 시간" 이라고 회고한다.
하지만 세상은 윤여정의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이혼녀에다가 시청자들에게 비호감 연예인으로까지 '찍힌' 여배우를 과연 누가 써주겠는가.
이런 윤여정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바로 그녀의 절친 '김수현 작가'였다. 사실 김 작가는 윤여정이 연기에 복귀한다고 했을 때 "절대 내 드라마는 하지마라."고 충고했던 사람이었다. "네가 내 드라마 하면 다른 사람들이 네가 내 덕 보는 걸로 오해한다. 넌 충분히 혼자 설 수 있는 사람이다."가 김 작가가 윤여정을 쓰지 않으려던 이유였다.
하지만 그 아무도 윤여정을 쓰려하지 않자, 김 작가는 어쩔 수 없이 윤여정을 자신의 드라마에 출연시킨다. 윤여정은 이 일을 두고 "자신과의 약속도 칼 같이 지키는 양반이 나 때문에 그것을 깨뜨린 부분에 대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는 말을 종종 하곤 했다. 이른바 김수현 사단의 사단장으로까지 불렸던 배우 윤여정의 재탄생이었다.
허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김수현이라는 든든한 우군을 만난 대신 윤여정은 연예계 '공식 왕따'가 되어야만 했다. 김수현 '빽'으로 드라마에 무임승차 한 낙하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영남이 신문 인터뷰에서 "내 재산은 이혼하면서 윤여정에게 다 줬다. 난 빈털털이다. 애들 학비도 내가 대고 있다. 윤여정이 돈 없다고 하는거 다 헛소리다" 등의 거짓말을 하면서 윤여정은 실력없는 배우에다 거짓말쟁이로까지 낙인 찍히는 형편이 됐다. 윤여정으로선 기가 막힌 일이었다. 당시의 일을 그녀는 이렇게 회고한다.
1985년 귀국 후, MBC에서 첫 출연 교섭을 받았다. 그전부터 김수현 씨는 미국 와서 내가 사는 걸 잠깐 보고 돌아가더니 내가 거미처럼 말라서 파출부 몇 몫을 하며 주부로 사는 모습을 참으로 한심해했다. 그 이는 내가 배우 일을 하기를 바랐다. 자신 없어하는 나를 등 떠밀어 내보내면서 그이가 한 말이 생각난다.
"해. 넌 할 수 잇어. 그런데 나랑은 일하면 안 돼. 그러니까 다른 사람 일 해."
"왜애애. 일하라면서 당신 꺼는 왜 하면 안 돼."
"넌 혼자서두 능력있어. 근데 니가 내 껄 하면 우리 관계 때문에 니가 내 덕 보는 걸루 누명 써. 그러니까 나랑은 일하면 안 돼."
단호했다. "우리가 뭐 불륜관곈가?" 내가 투덜거렸는데 누명 쓸 일이 바로 눈앞에 기다리고 있을 줄은 그때는 몰랐다.
1986년 나는 그이가 불투명해서 싫다던 남자(조영남)와 이혼을 했다. 그이는 [사랑과 야망]을 막 시작하는 찰나였고 연출은 최종수 씨였다. 10회 쯤인가부터 등장하는 송혜주라는 패션디자이너가 있었다. 어느 날 최종수 씨한테서 연락이 왔다. 그 역할은 윤여정 씨가 맞는데 김수현 씨가 반대한다. 친한거 맞냐는 내용이었다.
나한테 미리 못을 박았기 때문에 나는 김수현 씨가 왜 반대하는지도 알았고, 친한거 맞냐고 묻는 최종수 씨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밥 먹여주는 남자가 있었으면 당연히 그이의 뜻을 따랐을 것이다. 우리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필요에 의해서 친했던 것이 아니니까.
그런데 그 때 나는 급했다. 졸지에 늙은 소녀 가장이 돼 아이 둘을 데리고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나는 하겠다고 나섰다. 해야 했다. 자기 고집을 꺾으면서 김수현 씨는 그런 나를 참으로 가슴 아파했다. 그 때부터 나는 그이의 예언대로 온갖 누명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작가와 친한 배우, 친일파 같은 존재였고 동료 배우들은 나를 꺼려하고 옆 눈으로 보았다. 그 욕스러운 수많은 험담과 매도는 새삼스레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참 많이도 분했고 많이도 서러웠다. 나 혼자 칼을 갈았다. 언젠가는 보여주리라. 작가와 친해서가 아니라 내가 잘해서 뽑히는 배우라는 걸 반드시 보여주고 말리라.
이처럼 윤여정은 수많은 오해와 모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투쟁처럼 살아가야 했다. 윤여정이 목숨을 걸고 두 아이와 전쟁 같은 인생을 살던 때에 조영남은 후처인 백은실과 동거하고 떠들썩한 결혼을 할 만큼 풍요롭고 여유로웠다. 이건 윤여정에게 크나큰 상처이자 배신이었다.
게다가 조영남은 잊혀질만 하면 "윤여정의 결벽증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같이 살수가 없겠더라." "윤여정이 재미 없어졌다." "걔 말고 다른 여자들이 좋아진 걸 어쩌나" "걔가 너무 깐깐해서 내가 차였다" 등 사실 확인이 힘든 이야기를 언론지상에 떠들어 대 윤여정을 곤혹스럽게 했다. 가뜩이나 연예계 왕따였던 그녀는 조영남의 망언 때문에 끊임없이 주위의 수군거림에 시달려야만 했다.
하루는 조영남의 망언 때문에 너무 억울했던 윤여정이 김수현 작가에게 "내가 저 쪽한테 차인건데 저 쪽이 너무 헛소리를 한다. 억울하다."고 토로하니 김수현 작가 왈, "넌 그럼 그 못생긴 놈한테 차인게 낫니. 차라리 찬게 낫지."라며 대꾸했다는 에피소드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일화다.
"여자가 돈 쓰는 걸 못 본다." "돈 때문에 여자가 따른다" 는 조영남의 망언은 그래서 더욱 한심스럽고 그악스럽다. 숱한 여자들에게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쓴다는 사람이 정작 자기 자식을 둘이나 낳은 여자에게는 인색하기 짝이 없었고, 헤어진 뒤에도 갖가지 거짓말로 조강지처를 힘들게 했다는 건 참 기가 막힐 정도로 이해 불가한 일이다.
이성미의 말처럼 조영남은 참 매력있는 남자다. 하지만 윤여정에게 그는 '나쁜 남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한 때 사랑했던 남자에게 버림받아 미친듯이 돈을 벌어야 했고, 자존심을 버리며 연기 해야 했던 여자. 동료들에게 낙하산으로 낙인 찍히고 숱한 오해와 모함 속에서 굴욕을 겪어야 했으며 '연예계 공식 왕따'로 까지 살았던 여자. 전 남편의 망언 때문에 속앓이를 하면서도 두 아이를 위해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던 여자. 남들이 거짓말쟁이, 낙하산이라고 손가락질 해도 엄마이기에 열심히 살 수 있었다고 말하는 여자. '윤여정'.
결국 그녀는 여러 고비와 좌절을 겪으며 당대 가장 뛰어난 여배우이자 존경받는 스타로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010년 영화 [하녀]로 국내외 모든 영화제의 여우조연상을 싹쓸이 했던 그녀는 최근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좌중을 압도하는 신들린 듯한 연기로 또 한번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한 명의 여성으로서, 한 명의 아내로서, 한 명의 엄마로서 굴곡진 삶을 살았던 그녀의 연기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풍스러운 깊이가 느껴진다. '연예계 공식 왕따'에서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여배우'로 변신한 여자 윤여정! 조영남의 끊임없는 망언에 신경 쓰지 말고 올곳이 한 길을 가는 여배우가 되기를 바란다. 그녀, 화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