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백야>의 주인공 조나단(김민수)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임성한의 이른바 데스노트가 시작되었다. 주연급이었던 그의 죽음에 시청자들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압구정 백야>에서는 그동안 숱하게 장화엄(강은탁 분)과 백야(박하나 분)의 연결고리를 강조하며 서로가 운명적 상대임을 암시해왔다. 그러나 복수를 포기할 수 없는 백야는 조나단과의 결혼을 강행했고 결국 결과는 조나단의 죽음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문제는 이 죽음의 과정이었다. 장화엄과 백야를 연결하려는 작가의 욕심에 죽음은 다소 황당한 형태로 나타나고 만 것이다. 백야의 친어머니이자 조나단의 양어머니인 서은하(이보희 분)가 병원에 입원하자 병원으로 향한 백야와 조나단은 갑자기 심기가 불편한 조직 폭력배와 시비가 붙는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조직 폭력배는 이전에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고 단순히 주인공을 죽이기 위해 등장했다. 그들에게 시비를 거는 과정역시 전혀 개연성이 없었다. ‘여기가 너네 집 안방이냐’는 전형적인 대사로 신혼부부에게 시비를 걸던 폭력배들은 결국 주인공을 죽이면서 자신의 역할을 모두 해낸다.

 

 

 

 

이 장면에 대한 앞뒤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죽음을 위한 죽음’에 지나지 않는 장면이었다. CCTV까지 구비되어있을 대형병원 주차장에서 아무리 조폭이라도 저런 말도 안되는 시비를 걸까 하는 의구심은 뒷전이다. 백번 양보해서 현실에서야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쳐도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이해될만한 앞뒤 정황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죽음에 그런 개연성 따위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임성한 작가는 그동안도 이런 말도 안되는 죽음으로 시청자들을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었다. 임성한 작가의 이른바 ‘데스노트’가 그 맹위를 떨친 것은 2005년 <하늘이시여>부터다. <하늘이시여>의 소피아(이숙 분)은 무려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깔깔대고 웃다가 갑자기 숨이 넘어가 죽음을 맞이하며 시청자들을 황당하게 했다. 나중에야 ‘뇌암’으로 죽은 것이라는 해명이 등장했지만 그 전후 상황을 고려해 보아도 참으로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소피아가 죽은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여주인공이 시어머니의 친딸이라는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 이 비밀을 알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작가는 이 캐릭터를 ‘웃다가 죽게’ 만든다.

 

 

 

이후에도 <아현동 마님>에서는 여주인공의 결혼식 당시 아버지가 신부입장을 하다가 죽거나 <보석비빔밥>에서는 택시를 타고 결혼식장으로 향하는 와중에 치매에 걸렸던 어머니가 죽는 등, 황당한 죽음은 이어져왔다.

 

 

 

<오로라 공주>에서 ‘데스노트’라는 말은 본격적으로 작가를 비아냥 거리기 위해 등장했다. 그간의 죽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인물들이 죽거나 하차했다. 작가는 여주인공의 아버지를 죽인 것으로 모자랐는지 이야기에서 등장인물들이 필요없어지자 갑자기 해외로 쫒아내는 등 황당한 전개를 일삼는다. 이에 갑작스럽게 하차를 통보받은 출연배우들은 ‘스케줄 조정까지 했는데 어이없고 황당하다’고 성토에 나서기도 했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주인공 중 하나인 설설희(서하준 분)이 뜬금없이 암에 걸린 것도 모자라 ‘암세포도 생명’이라는 말도 안되는 대사가 등장한 것이다. 종종 문학작품이나 대체 의학에서 암세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시각이 있기도 하지만 문제는 이 대사가 맥락과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대사였다는 점이다. 문학적이지도, 의학적이지도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등장한 대사는 작가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대사가 논란이 된 것은 암세포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있어 마치 암세포를 죽여서는 안된다고 옹호하는 발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표현이 있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사용해서는 안된다.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일들은 그만큼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모든 개연성을 깡그리 무시한채 제 고집을 내세운다.

 

 

 

드라마에서 죽음만큼 한 캐릭터를 없애기 용이한 장치는 없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것이 드라마속에 그려지는 것은 그만한 이유와 개연성을 수반해야 한다. 단순히 캐릭터를 없애기 용이하기 위해 ‘이용’되는 죽음은 작가가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줄줄이 죽거나 하차하는 주인공들의 모습 속에 죽음이라는 문제를 가볍고 제멋대로 다루는 작가의 황당한 세계관이 그대로 그려져 보는 시청자들은 허탈하기만 하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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