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한은 노골적이다. 돌리고 순화하기 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 매를 맞는 편을 택한다. ‘암세포는 생명’이라는 대사나 ‘사람 팔자가 정해져 있다’는 식의 운명론은 임성한이 마음대로 등장인물을 죽음이나 이민으로 하차시키는 명분이 되어주었다.

 

 

 

그런 임성한이 작정하고 칭찬도 노골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압구정 백야>에 출연중인 육선지(백옥담 분)에 대한 칭찬이 쏟아지며 수많은 기사를 양산해 냈다. 임성한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대단한 논란 거리였다.

 

 

 

육선지를 연기하는 배우 백옥담은 임성한 작가의 조카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백옥담은 2007년 <아현동 마님>으로 데뷔한 이래 임성한 작품으로 데뷔한 이래 임성한 작품에만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백옥담의 커리어에서 ‘임성한’이라는 이름을 지우면 남는 것이 없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특혜였다. 물론 캐스팅 작업이 단순한 오디션이나 실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한 작가의 작품에만 출연하는 연기자에 대한 무조건 적인 신뢰는 그 연기자 스스로 쌓은 것이라기보다는 단순한 혈연 관계에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런 특혜는 <압구정 백야>에서 정점을 찍는다. 이 작품속에서 임성한은 대놓고 백옥담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런 얼굴이 질리지 않는다.’ ‘탕웨이를 닮았다’ ‘몸매가 뛰어나다.’ ‘(육선지가 입은) 웨딩드레스가 어디 것이냐.’ 등등도 모자라 ‘그녀는 예뻤다’나 ‘위 아래’를 배경음악으로 춤까지 추게 만들었다.

 

 

 

임성한 작품의 여성들은 대체로 불행하다. 주인공이면 집안이 망해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거나 복수를 꿈꾸는 독기를 품어야 하고 조연이면 사랑을 얻지 못해 불행하다. 그러나 백옥담만은 예외다. <압구정 백야>의 육선지는 모든 것을 가졌다. 사랑도, 미모도, 몸매도, 재력도.

 

 

 

단순히 이런 캐릭터가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임성한 작가의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앞뒤 없이 죽어가거나 갑작스러운 하차 압박에 시달릴 때도 백옥담만은 이런 맥락에서 자유롭다는 것에 있다. 작가의 ‘데스노트’를 유일하게 피해가는 백옥담에게 주어진 것은 일종의 편애다. 자신의 드라마의 맥락을 고려해 적절하게 백옥담에게 맞는 캐릭터를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편의에 의해 백옥담을 무조건적으로 행복해야만 하는 캐릭터로 변모시킨 것은 부자연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작가의 작품 자체가 부자연스럽지만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도 이 캐릭터는 모든 부자연 스러움의 역풍을 피해가기에 더욱 부자연스러움이 부각되는 아이러니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백옥담에게 주어진 칭찬 역시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설명이 바탕이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탕웨이를 닮았다’거나 ‘질리지 않는 얼굴’이라는 찬사는 백옥담 자체에 쏟아지는 칭찬이다. 이런 칭찬이 캐릭터 설명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그 연기자 자체를 띄우기 위한 수작에 불과하다. 이런 장면을 두고 고개를 끄덕이는 시청자는 많지 않다.

 

 

 

백옥담이 시청자들의 호감을 얻을만한 연기나 외모를 두루 갖춘 배우였다면 이런 임성한식 칭찬들이 유효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까지 시청자들의 뇌리속에 백옥담은 단순히 임성한 조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배우에게 쏟아진 과도한 칭찬은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심리 전문가들은 칭찬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타고난 외모나 두뇌에 대한 칭찬은 오히려 아이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줄 수도 있고 너무 지나친 극찬은 일종의 강요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성한의 조카사랑은 시청자들에게 하는 일종의 강요라고 볼 수 있다. 그런 강요된 칭찬으로 실소를 내뱉는 시청자들이 언제까지 임성한 드라마를 사랑해 줄 수 있을까. 그 대답이 궁금해지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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