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이하<풍문>)>이 표면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절대 갑’의 세계다. 법무법인 ‘한송’의 대표인 한정호(유준상 분)과 최연희(유호정 분)은 태생부터 왕자와 공주였고 자신들의 왕국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가 누군가에 의해 침해당하거나 어그러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일종의 강박증 환자들이다. 겉으로는 “요즘 세상에 귀족이 어디있겠냐.”며 호탕한 웃음을 지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인간의 급을 나누고 그 급에 맞추어 남들을 조종하려는 성향이 다분한 것이다.

 

 

 

그들 세계에 들어온 이방인 서봄(고아성 분)은 그래서 그들에게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평균도 안 되는 집안 형편의 막되먹은 아가씨가 그들의 세상을 어그러뜨리려 하는 것을 눈 뜨고 바라볼 수만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부터 서봄네 집안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예상치 못한 아들의 혼인신고 강행에 어쩔 수 없이 서봄을 받아들인 후에도 결코 그 집안과는 섞이지 않으려는 강경한 의지를 보인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스토리다. 재벌가에 시집을 오게 된 여주인공과 그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 그리고 그 둘을 반대하는 시댁. 그러나 <풍문>은 이 스토리를 평범하게 보아 넘기지 않는다. 재벌의 사연에 집중하는 한 편, 그들의 시선을 고깝고 강압적인 것으로만 그리지 않는 것이다.

 

 

 

‘절대 갑’ 위치에 있는 그들은 언제나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일은 그들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격식’과 ‘예의’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던 한정호가 밥상을 뒤엎는 장면은 그들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내보이는 한 편, 그들 역시 인간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극명하게 꼬집는다.

 

 

 

 

이상한 것은, 시청자들이 집중하는 포인트가 이 절대 갑의 시선이라는 점이다. 주로 을의 입장에서 시청하게 되는 여타 드라마들과는 달리, 이 드라마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것은 바로 한정호와 최연희다. 그들은 위선적이지만 그렇다고 패악을 부리지는 않는다. 그들이 스스로 만든 굴레에 갇혀서 적나라한 말을 쏟아 내거나 속에 있는 화를 분출할 수 없는 그들의 입장은 갑들도 갑들 나름의 고충이 있음을 암시한다.

 

 

 

이 와중에 오히려 눈에 거슬리는 것은 ‘을’의 태도다. 서봄의 부모인 서형식(장현승 분)과 김진애(윤복인 분)는 철저한 을일 뿐이지만 더 잃을 것이 없기에 오히려 자존심을 버리지 못한다. 그들은 갑의 위치에 있는 한인상(이준)의 부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은근히 그들에게 바라는 것이 생기고야 만다. “서봄의 교육을 책임지겠다” “큰 딸의 취직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 “빚을 갚아 주겠다”는 제안에 얼굴에 화색이 돌며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며 “감사하다”고 말하는 그들은 결국 속에 있는 속물 근성을 내보이고 만다.

 

 

 

그러나 “과수원을 운영하며 전원생활을 하라”는 제안에는 난색을 표한다. 그 말을 엿들은 서봄은 눈물까지 흘린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받기를 원하지만 그 원하는 모든 것들이 자신들의 뜻대로 흘러가 주기를 바란다. 갑의 입장은 생각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취하는 것만이 목표인 것이다. 물론 그들이 먼저 요구를 하거나 제안을 꺼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받을 것은 받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자존심은 오히려 ‘을의 갑질’을 떠 올리게 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서봄이나 한인상이 아닌, 한정호다. 계획을 세우고 모든 일을 총괄하는 듯 하지만 결국은 화가 난 나머지 밥상을 집어 던지고 난간을 넘어가다가 가랑이가 끼이는 우스꽝 스러운 모습을 연출하는 그는 미워할 수 없는 '갑'이다. 존재감과 연기력은 물론, 코미디까지 책임지고 있는 그의 활약에 오히려 시청자들은 그의 입장에서 드라마를 바라보게 된다.

 

 

 

 

이 드라마가 무서운 것은 철저히 갑의 입장을 그리면서도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마냥 피해자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사정과 생각이 있고 그로인해 나타나는 행동들은 처절하리만큼 인간적이다. 그 인간적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들을 지켜보면서 시청자들이 발견하는 것은 자신 안의 속물근성이다. 어느 순간 시청자들은 ‘갑’이 주겠다고 한 수많은 이익들과 ‘을’이 포기해야 하는 것들 사이에 저울질을 시작한다. 현실적인 손해와 이익이 얼마만큼 계산기를 두드린 후, 오히려 을의 철없음을 개탄하게 된다.

 

 

 

이런 손익 계산 자체가 내 안의 속물근성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을 행동이다. 결국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과 우리 모두 본질은 ‘인간’일 뿐이고 그 안의 위선도 속물근성도 모두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다는 메시지다.

 

 

 

이 드라마의 모든 것은 클리셰의 전복이다. 그 안에서 갑과 을의 관계도 전복된다. 이 모든 전복들이 얽히고 설키는 과정에서 터져나오는 웃음들은 그만큼의 쾌감을 동반한다. <풍문으로 들었소>가 범상치 않은 드라마인 이유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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