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15.11.29 남편찾기는 거들뿐…<응답하라 1988> 우리 곁에 언제나 ‘가족’ (2)
  2. 2015.11.28 이병헌, <내부자들>, 성공적 ...스캔들에 대한 ‘면죄부’ 획득 가능할까?
  3. 2015.11.27 “상 잘 주죠?” ... 대종상과 다른 청룡의 이미지 메이킹 뒤에는 김혜수가 있었다. (2)
  4. 2015.11.26 <님과 함께> 윤정수 김숙- <우결>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신개념 커플
  5. 2015.11.25 스토리보단 소지섭? ‘톱스타 마케팅’으로 <오마비>가 살아남는 법
  6. 2015.11.23 <마리텔>은 예능인의 무덤? '소통 사망꾼' 정준하... 잘하는 것 하지 않은 결정적 패착
  7. 2015.11.22 <무도> 광희의 캐릭터는 ‘자존심 세우기’...광희의 시계는 촉박하다.
  8. 2015.11.21 여성 게스트들은 어디에...삼시세끼 어촌편은 왜 ‘남자의 예능’이 되었을까. (5)
  9. 2015.11.20 책임은 없고 권리만 있는 외국인들, 유승준과 에네스 카야는 무슨 염치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하는가
  10. 2015.11.20 <슈스케7>의 예견된 몰락, '컨텐츠 없는' 오디션의 비참한 최후 (2)
  11. 2015.11.13 <마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물’ 택한 문근영에게 박수를!
  12. 2015.11.12 진정성이 훼손된 <언프리티 랩스타>, 래퍼들도 금수저 시대? (1)
  13. 2015.11.10 길태미부터 땅새까지...역사를 뛰어넘은 상상력, <육룡이 나르샤>에 날개를 달았다 (1)
  14. 2015.11.08 이보다 더 솔직할 수 없는 <SNL>, 논란 정면 돌파한 이태임의 한 방 (1)

<응답하라 1988 (<이하 <응팔>)>의 이야기는 단순히 쌍팔년도 세대를 대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대 한 마을에 한데 모인 사람들이 나누는 관계는 보편적인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응팔> 의 감성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힘이 있다. <응팔>은 1988년도를 단순히 그 시절의 추억을 떠 올리게 하는 배경적인 요소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 시절에도 살아가기 바쁜 사람들은 있었고, 이웃과의 교류가 없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1988년도에는 사람들이 조금 더 순수했고, 서로를 이해했으며, 마음으로 사랑했다는 판타지는 1988 특유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1988년도에는 한 동네 사람들이 가족처럼 지내는 것이 어색하지않았다 해도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것에 어찌 좋은 점만 있으랴. 가끔은 ‘오지랖’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선을 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응팔>이 주목하는 지점은 그런 지점이 아니다.

 

 

 


<응팔>은 마을 공동체는 고사하고 한 가족조차 해체되고 와해되기도 하는 현대 사회속에서 작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 곁에는 누가 있느냐고. 남에게 신경쓰지도 않고 간섭받지도 않는 것이 정말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느냐고. 

 

 

 

 


각박한 세상이라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를. 세월이 흘러도 엄마는 엄마고, 친구는 친구다. 그 의미 자체가 변할 수는 없다. 시집가서 남편을 여읜 딸이 자신을 찾아온 엄마가 자신을 걱정할까봐 옷을 차려입고 이웃집에서 물건들을 빌려 자신을 위장하지만, 결국 엄마를 속이지는 못한다. 몰래 돈봉투를 놓고 간 엄마의 진심은 딸을 울리고, 전화를 붙잡고 부르는 엄마, 라는 한마디에 목이 메여 온다. 그 감정이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아직 엄마가 우리에게 주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진심은, 남이 시켜서 억지로 내뱉는듯한 ‘사랑한다, 아들아’라는 한 마디로 묵직하게 전해진다. 주고도 주고도 또 주고 싶은 부모의 진심을 모른다면, 그 한마디는 그런 울림을 전달할 수가 없다.

 

 

 


심장 수술을 하고도 오히려 동생이 흘린 코피를 걱정하며 힘겹게 내뱉는 “코피는 괜찮아?”라는 한 마디는 꾸며지지 않은 평범한 한마디지만 가족의 진심을 느끼게 하는 찡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응팔>은 그간의 시리즈가 그랬듯, 여주인공 성덕선(혜리분)의 남편 찾기라는 소재를 넣었다. 그러나 사실 그 남편의 정체는 그다지 모호한 형태로 그려지지 않는다. 남편은 90%이상의 확률로 김정환(류준열 분)이다. 그가 아니라면 그것 자체로 스토리에 전반적인 영향을 끼칠만큼 큰 반전이 될 것이다. <응답하라> 시리즈 제작진의 특성상 결코 그런 모험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응팔>에는 분명 로맨스도 있지만, <응팔>은 그 로맨스를 이야기 하고자 하는 드라마는 아니다. 매회 주인공들은 아버지가 되었다가, 어머니가 되었다가 그리고 자식이 되기도 한다. 이웃의 숟가락 개수까지 아는 공동체 속에서 그 가족의 범위는 이웃으로 확장된다. <응팔>이 정말 하고자 하는 말은 이웃으로 확장된 가족이라는 형태 안에서 벌어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다. 결국 서로를 보듬고 품어주는 따듯한 마음. 인간이 찾고 갈구하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이라는 보편적 진리다. 그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1988년도를 소환하고 사람들의 캐릭터를 만들어 낸 <응팔>의 스토리텔링은 그 진리를 특별하고 아름답게 만든 매개체가 되었다.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부딪치지만 가족은 가족이라는 것.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당신의 인생은 어쩌면 더 행복해 질지 모른다는 것. 서로 사랑하고 마음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것. <응팔>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런 따듯한 생각을 들게 한다. 왜냐하면 <응팔>이 내내 말하고 있듯, 결국 돌아올 곳은 가족의 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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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은 그동안 숱한 스캔들에도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 같은 톱스타였다. 바람둥이라는 소문이 떠돌았고 크고 작은 애정 관계가 드러나기도 했지만 이민정과 결혼을 한 시점까지 이병헌은 스타인 동시에 연기파배우라는 흔치 않은 배우로 대중에게 다가선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결혼 후 휘말린 스캔들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그에게 심상치 않은 상흔을 입힐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엄밀히 그는 협박을 받은 피해자였지만 대중은 그를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가정을 두고 다른 여성과의 관계를 도모한 파렴치한이라는 이미지는 한국 연예인에게 있어서 씻을 수 없는 오점이었다. 그가 상대 여성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까지 공개됐고 그 사건에 대한 각종 패러디와 조롱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병헌은 스타였다. 한국 배우 중 드물게 헐리우드에까지 진출해 세계적인 스타들과 작품을 찍은 그에게는 아직 작품활동의 기회가 남아있었고 그렇기에 기사회생의 기회 역시 열려있었다. 스캔들 이후에도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협녀, 칼의 기억>등 그가 출연한 영화가 개봉했다. 그러나 흥행은 녹록치 않았고 그에대한 조롱은 오히려 심해졌다. 흥행 실패는 마치 이병헌의 과오처럼 해석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이미지의 회복은 불가능한 일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부자들>이 개봉했다. <내부자들>의 개봉 전에도 이병헌에 대한 우려섞인 질타는 끊이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다른 주연 배우들의 인터뷰에 등장하는 것 조차 긍정적인 일이 아니었다. 이병헌은 영화의 마이너스 요인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내부자들>의 개봉 이후, 평가는 뒤집혔다. <내부자들>은 마치 이병헌을 위한 영화와도 같았다. 조승우와 백윤식등 다른 주연 배우들 역시 상당한 호연을 펼치지만 이병헌이 연기한 안상구 역할의 매력은 그들을 뛰어넘는 측면이 존재한다.

 

 

 

안상구는 고위층의 비리나 떳떳치 못한 행동에 대한 뒤처리를 담당해 주는 안상구를 연기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망친 고위층에게 피의 복수를 하는 캐릭터다. 그러나 그의 행동의 동기는 어설픈 정의가 아니다. 자신이 받은 만큼 돌려주려는 분노에서 기인한다. 오히려 그의 현재 이미지에서 적절한 캐릭터 설정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정의로운 캐릭터를 맡았다면 오히려 대중에게 반감을 심어줄 수 있는 노릇이다.

 

 

 

캐릭터 자체에 대한 매력도도 상당하지만 그 캐릭터를 살린 것 역시 이병헌이다. 영화가 끝날 때쯤에 생각나는 것은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아니라 그가 연기한 안상구다. 난다긴다하는 연기파 배우 속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단연 두드러졌고 그를 배우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윤태호 작가의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한 흥미로운 시나리오 역시 관객이 이병헌에게 집중하게 하지 않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관객은 어느새 이병헌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미지가 아닌 영화의 내러티브에 자연스럽게 몰입한다. 영화의 흐름 속에서 이병헌의 스캔들을 떠올릴 여지는 점점 줄어든다. 이병헌에 대한 비호감만으로 영화를 보지 않기엔 영화가 주는 재미가 크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그리고 이병헌의 연기 자체에 대한 평가는 상당하다. 그가 과거에 저지른 스캔들은 영화의 흥행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병헌은 <내부자들>로 인해서 자신에게 족쇄처럼 채워져 있단 비난을 한 방에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내부자들>의 흥행이 의미가 있는 것은 이병헌 이라는 배우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점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병헌이 출연한 영화가 흥행했다는 것이 아닌, 이병헌을 활용한 영화가 흥행했다는 지점은 대단히 괄목할만한 부분이다. 쇼비지니스계 역시 이익으로 움직이는 집단이다. 이병헌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판단이 들면 이병헌의 입지는 다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도 흥행의 숫자는 다른 말을 하고 있다. <내부자들>로 이병헌은 기사회생의 발판은 물론, 호평까지 얻어냈다.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자신의 강점을 살린 전략은 통했다. 대중은 아직도 이병헌의 스캔들을 기억한다. 아마도 그 사건은 그를 평생 따라다닐 만큼 강력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스캔들을 기억하는 대중들도 <내부자들>을 본다. 이런 추세라면 역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중 최고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중은 쉽게 잊지는 않지만, 배우가 좋은 작품에서 자신의 몫을 해낼 때 쉽게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 다시 한 번 증명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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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제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대종상이 파행으로 치닫은 가운데 청룡영화제의 행보에 관심이 쏠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종상의 파국이 얼마 안 있어 열린 청룡상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된 것이었다.

 

 

 

 

일단 수상 후보 대부분이 참석했다는 것만으로도 청룡영화제의 이미지는 달라졌다. 당연히 배우들이 참석하는 줄 알았던 시상식에 주요 후보들이 대거 참석하지 않았고, 시상식의 백미라고 할 있는 남우·여우주연상 배우들 조차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은 촌극이었다. 대리 수상조차 수상자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 올라가서 친분은 없지만 잘 전해드리겠다’ ‘민망하다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시상식을 여는 의미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참가자에게만 상을 주겠다는 그들의 아집은 철회되었지만, 철회되지 않았더라면 더욱 우스운 꼴이 나고 말았을 것이었다. 주연상 시상은 아예 할 수 조차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청룡 영화상에 대부분의 스타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괄목할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종상과는 다르게 청룡이 배우들에게 어느 정도의 권위를 획득했다는 뜻에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청룡상은 조선일보라는 거대 스폰서에 의해 운영된다. 대종상이 여러 파벌로 나뉘어 서로간의 이익분쟁으로 치닫았다는 보도가 있었던 것과는 달리, 청룡상은 조선일보와 스포츠조선이라는 구심점이 존재했다. 이 안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는 존재하겠지만, 거대 자본이 뒤에 버티고 있으니 훨씬 더 탄탄하고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했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청룡은 그런 장점을 살려 청룡영화제의 이미지 메이킹에 집중한다. 수상후보들을 선정하고 가장 공정한 상을 수여한다는 이미지는 청룡이 만들어낸 가장 뛰어난 마케팅 전략이다. 그들은 이런 이미지를 의외의 수상을 통해 만들어냈다. 작년 영화 독립영화 <한공주>로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천우희의 눈물이 감동적이었던 까닭은 천우희가 유명배우도 아니었고 <한공주>가 엄청난 흥행을 한 영화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흥행성이나 유명세에 흔들리지 않고 상을 수여한다는 이미지를 청룡영화제는 은연중에 획득했다.

 

 

 

이 밖에도 황정민의 숟가락 소감은 화제가 되며 각종 패러디와 광고에까지 활용되었고 2000년 이미연, 2001년 장진영, 2004년 이나영등 신선하고 파격적이지만 흥행성적이나 인기에 상관없는 수상 결과를 발표하여 화제몰이를 했다. 그만큼 시상식의 가장 중요한 지점을 청룡영화상은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상을 준다는 자체보다도 그 상이 얼마나 공정성 있는 결과로 결정되는지,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해 어떤 파급력이 있는지에 관한 지점을 짚어낸 것이다. 실제로 공정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은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것만은 틀림없다.

 

 

 

 

그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가장 훌륭한 역할을 해낸 것이 바로 김혜수였다. 김혜수는 청룡영화제의 진행을 22년간이나 맡았다. 이제 청룡의 얼굴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예전부터 김혜수가 청룡영화제에 어떤 드레스를 입고 등장할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정도였고 안정적이고 재치 있는 진행은 늘 호평을 받았다.

 

 

 

천우희가 수상을 하고 흘리는 눈물에 공감하여 같이 눈물을 흘리거나 영화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모습등은 그에 대한 호감도로 이어졌고 나아가 청룡영화제의 이미지를 결정하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혜수와 함께 청룡영화제의 진행을 맡았던 정준호는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김혜수는 후보에 오른 모든 작품을 다 본다며 그의 준비성과 성실함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이번 청룡영화제 역시 이정현이라는 의외의 수상결과가 있었다. 올해 최고의 활약을 보인 유아인의 남우 주연상 역시 공감이 갔지만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독립영화에 출연한 이정현의 수상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심지어 이정현은 가수로서 더 성공했던 배우다. 역대 영화제들은 유독 가수 출신 후보들에게 박한 평가를 내렸다. 가수 출신으로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엄정화의 상복이 유독 시상식에서만큼은 꽤 오랫동안 없었던 점을 상기해 보면 그런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이정현의 수상은 독립영화와 가수 출신이라는 두 가지 요건을 거스른 결과다. 그렇기 때문에 파격과 전진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수상 결과가 계속 나타나는 가운데 김혜수가 던진 한마디는 귀에 꽂힌다. “참 상 잘주죠?”. 시청자들이 시상식에서 기대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상을 잘 주는 시상식. 그래서 공감도 가고 재미도 있는 시상식. 바로 그런 시상식을 원한다. 그 가운데서 22년간 청룡의 안주인 자리를 지켜온 김혜수가 인정한 청룡의 시상법은 대종상과 비교되어 확실한 우위를 점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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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류의 프로그램은 이미 시청자들의 관심을 얻기에는 지나치게 식상한 형식이다. <우결>을 시초로 한 가상연애프로그램은 꾸준하게 거의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어 왔고 그결과 이야기에는 한계가 생겼다 . <우결>조차 2008년 처음 제작된 후 지금까지 방영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에 대한 호감도 보다는 염증을 느낀다. 가상연애라는 설정은 처음에는 신선하게 다가오지만 결국 프로그램을 위한 비즈니스일 뿐이다. 비즈니스가 끝나면 출연진들은 언제 둘 사이에 무엇이 있었냐는 듯, 각자의 자리로 너무도 태연히 돌아간다.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출연진도 극히 드물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가상현실로 판타지가 시작되지만 동시에 그 가상현실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느껴지는 허망함도 배가된다.

 

 

 

 

그들의 감정을 진실로 포장하지만 실로 무엇보다 가식적인 둘의 관계는 시청자들을 기만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커플들이 일정 정도 이상의 실제 연인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그들의 캐릭터를 찾을 때, 시청자들의 관심은 다시 쏠린다. 가상임을 알면서도 믿고싶은 이율배반적인 심리를 자극하는 것이다. <우결>이 계속 제작될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그들에게 관심을 쏟는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그들은 결국 더이상의 발전된 관계로 나아갈 수 없는 숙명적 한계가 있다. 그들의 연인같은 달콤함을 오래 즐기기에는 그 맛은 너무나도 인위적이고 부담스럽다.

 

 

 

 

이런 상황속에서 <님과 함께2-최고의 사랑(이하<님과 함께>)에 김숙과 윤정수가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쏟아지는 반응은 기존 <우결>류 프로그램 안의 커플들에게 쏟아지던 관심과는 차별화 된다. 기존 커플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그들의 실제 연인같은 케미스트리에서 기인했다. 그러나 김숙과 윤정수 커플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상황과 개그, 그리고 독특한 설정에서 관심이 촉발된다. 그들은 식상해진 커플 예능을 비웃기라도 하듯, 트렌디하고 새로운 커플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것이다.

 

 

 

 

김숙과 윤정수의 방식은 기존과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애초에 자신들이 비지니스 커플임을 공언한다. 서로가 이상형도 아니며 끌리지도 않는다는 말을 대놓고 하고 서로 사랑에 빠지거나 필요 이상의 스킨십을 할 경우,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조항을 넣는다. 그 조항에 화색을 보이는 것은 파산신청을 한 전력이 있는 윤정수다. 윤정수는 나 돈 없어.’ 라는 말을 대놓고 김숙에게 하며 자신의 처지를 개그로 만든다. 이보다 더 솔직할 수는 없다.

 

 

 

 

 

김숙은 더 하다. 김숙은 실질적으로 이 커플의 방향을 조정하고 있는 인물이다. “어디 남자가 돈을 내냐.”며 허세 가득한 남자들이나 할 말을 하거나 살림은 남자에게 떠맡기려는 모습은 묘하게 풍자적이다. 오히려 깔끔한 윤정수에 비해 늘어놓길 좋아하는 김숙은 이야기를 진행시키는데 있어서 특유의 개그감을 선보이며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캐릭터다.

 

 

 

 

대놓고 쇼윈도 부부를 자처한 그들은 그들이 만남이 프로그램 때문이며 더 이상 발전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애써 부인하려 하지 않음으로써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때린다. ‘이 모든 것이 설정이다를 애써 감추고 부정하려 하는 <우결>류의 얄미운 가식은 이들 커플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솔직함은 도저히 커플 예능에서 상상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통했다. <님과 함께>가 기다려지는 프로그램이 될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그들은 인터뷰에서조차 상대를 알았다면 출연 안 했을 것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자칫 위험 발언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비지니스 커플의 이야기를 개그로 승화시킨 것은 그들의 능력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님과 함께>의 현재 시청률은 2%대지만 공중파에서 방영되고 있는 <우결>3~4%의 시청률을 올리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리 낮은 시청률이라 할 수 없다. 더군다나 <님과 함께>의 윤정수-김숙 커플이 <님과 함께>의 화제성은 물론, 트렌디한 이미지까지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은 괄목할만하다. ‘가상이지만 진심이라는 이미지는 연인을 연기하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돌아서는 꽃미남 꽃미녀들이 아니라 김숙과 윤정수처럼 만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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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분위기는 좋았다. 소지섭과 신민아라는 톱스타 캐스팅에 1위를 수성하고 있던 <육룡이 나르샤><오마이 비너스(이하 <오마비>)> 첫회 방영시간에 야구중계로 결방까지 되었다. 결방이 아니었더라도 아직 13%대의 시청률로 1위를 이어가고 있는 <육룡이 나르샤>에는 충분히 도전장을 내밀어 볼만 했다. 비슷한 소재를 사용한 <그녀는 예뻤다>가 좋은 성적을 거둔 것 역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요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뚜껑이 열린 <오마비>는 다소 진부한 스토리와 함께 7%대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아쉬운 출발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오마비>9%를 넘기며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다. <화려한 유혹>은 이미 잡았고, <육룡이 나르샤>의 벽을 뚫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팽배하다. <육룡이 나르샤>는 탄탄한 스토리를 자랑하지만 사실상 중간에 시청층이 유입되어 즐기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까닭에 가볍고 통통 튀는 <오마비>의 약진이 예측되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오마비>의 흥행 포인트는 무엇인가.

 

 

 

 

정해진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로맨틱 코미디는 그 이야기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로맨틱 코미디의 이야기가 특별해지기 위해서는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테면 <별에서 온 그대>는 외계인 캐릭터를, <! 나의 귀신님>에서는 빙의라는 소재를 쓴 것도 캐릭터 구축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최근 성공리에 막을 내린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인 <그녀는 예뻤다>에서도 하다못해 폭탄녀의 변신 과정을 그려내며 캐릭터를 살려냈다.

 

 

 

<! 마이 비너스>역시 <그녀는 예뻤다>와 유사한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예전에는 퀸카였던 여주인공이 역변을 했고, 다시 예전의 미모를 찾게 된다는 소재다. 이런 변신의 소재는 이미 드라마나 영화에서 수십 번 도 더 사용된 진부하고 식상한 소재다. 그러나 <그녀는 예뻤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재는 아직도 유효하다. 그러나 이 소재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망가진 여자 주인공에게 시청자들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그것이다.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여주인공의 처지를 부각시켜야 한다. <그녀는 예뻤다>의 황정음은 폭탄 머리를 하고 얼굴에는 빨간 주근깨를 그렸다. 직장은 구하지 못한데다가 나이는 서른을 넘었다. 출근 첫날부터 앞에 떨어진 껌을 자신의 앞니라고 착각하는 장면은 박장대소를 터뜨리게 한다. 황정음은 김혜진으로 분해 더 이상 망가질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 첫사랑을 직장상사로 만나 온갖 모멸적인 말들을 견뎌내야 하는 것은 덤이었다. 드라마 속 김혜진은 못났고 불쌍하고 처절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오히려 여주인공을 돋보이게 했다. 그 속에 캐릭터가 살아났기 때문이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며 자신이 맡은 일을 억척스럽게 해내는 김혜진에게 시청자들은 동정표를 던졌고, 폭탄머리와 주근깨가 빼곡한 얼굴은 오히려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초반의 이런 캐릭터 설정은 후반부의 흔들리는 전개 속에서도 시청률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되어 주었다.

 

 

 

그러나 <! 마이 비너스>속에서 신민아가 맡은 강주은이라는 역할은 다르다. 살이 쪘지만 신민아의 사랑스러운 얼굴과 반짝이는 피부는 그대로다. 까놓고 말해서 그 정도면 일상생활에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의 몸매라고 봐도 무방하다. 신민아는 일단 비주얼로 시청자들을 설득시키지는 못했다. 비주얼 뿐만이 아니라 그의 상황에도 큰 공감이 가지 않는다. 빚이 있는 것으로 설정은 되었다지만 그의 직업은 엄연한 변호사다. 번듯한 로펌에서 일하는 그가 하는 에 대한 고민들을 공감하기에는 그는 너무 세련됐다. 그가 살을 빼는 데 있어 공감하게 할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다. 15년 사귀었던 남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그 남자와 사귀는 여자는 예전에 자신의 동창인데다가 로펌의 부대표라는 사실이 더해지지만 강주은이라는 여자가 겪는 끔찍한 현실 속에 동화되지는 않는다. 그저 살이 쪘어도 이미 예쁜 신민아의 얼굴에만 시선이 고정될 뿐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사랑스러운 신민아보다는 오히려 소지섭이 연기하는 김영호 캐릭터를 부각시킨다. 그리고 '여주인공 변신 류' 스토리의 정석을 따르지 않고도 둘 사이의 로맨스를 처음부터 강조하며 기사회생했다. 강주은을 위기에서 구해주는 백마탄 왕자라는 설정은 진부하긴 하지만 소지섭이라는 개성강한 배우의 열연에 힘입어 매력도가 120%로 증가했다. 여성 시청자들이 환호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자 주인공의 존재감역시 소지섭의 사랑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신민아의 사랑스러움으로 극복되었다. 살 때문에 겪어야 하는 굴욕이 와 닿지 않는 상황에서도 드라마의 분위기는 고조된 것이다. 물론 스토리 자체에 문제점이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배우들의 매력을 강조한 전략은 통했다.

 

 

 

<오마비>의 이야기는 갈 곳이 정해져 있다. 그 정해진 이야기 구조 안에서 시청자들이 갈구하는 것은 남녀 주인공의 케미스트리다. <오마비>가 끝까지 그들의 매력을 고갈시키지 않고 발산이 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지만 동시간대 1위를 기대해 볼만하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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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명수에 이어 <마이리틀텔레비젼(이하 <마리텔>)>에 출연한 정준하에 대한 반응도 싸늘하게 식었다. 정준하는 <무한도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리텔>에 섭외 될 당시, “내가 거기를 가서 무엇을 하겠냐.” 며 부담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준하의 <마리텔>은 가장 기대되는 섭외 중 하나였다. 그 이유는 이미 박명수의 <마리텔> 출연이 웃음 사망꾼이라는 웃지못할 별명만 얻은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준하의 <마리텔> 섭외가 그만큼 의외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리텔>은 현재 방영되는 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젊은방송이라고 할 수 있다. 요새 트렌드가 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전체의 문화라고 볼 수 없는 인터넷 방송을 공중파로 끌어들였고, 자막으로 표현되는 소위 드립들도 젊은 층의 감성으로 편집된다. 방송 중 노잼’ ‘꿀잼’‘꿀노잼등의 단어가 채팅창에 난무하는 것 자체가 인터넷에 익숙치 않은, 혹은 인터넷 방송에 익숙치 않은 세대들의 문화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인터넷 방송은 공중파 방송이랑은 상당한 괴리감이 있다. 일단 형식과 틀을 만든 후, 그 틀에 맞춘 진행을 해야하는 공중파와는 달리 인터넷은 즉각적인 소통을 전제로 해야 하기 때문에 그 틀에서 좀 더 자유롭다. 인터넷 방송을 하는 일명 ‘bj'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즉각 파악하고 그 반응을 토대로 방송의 내용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불특정 다수에게 열려있는 TV와는 달리, 인터넷 방송은 좀 더 시청층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 제한된 시청층은 오히려 방송 콘텐츠의 범위를 넓힌다. 예를 들면 먹는 방송이라는 뜻인 먹방은 공중파로 넘어오기엔 너무 빈약한 콘텐츠다. 그러나 음식을 쌓아놓고 먹기만 하는 bj들의 방송은 가장 인기가 높은 컨텐츠 중 하나다. 게임을 중계하거나 본인이 하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송이 가능한 것 역시 인터넷이라는 공간적인 특징 때문이다. 애초에 그런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들만이 접속하기 때문이 좀 더 콘텐츠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이 인터넷 방송의 매력이다.

 

 

 

정준하의 패착은 이런 인터넷 방송을 파악하지 못한데서 시작한다. 그가 들고 나온 콘텐츠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인터넷 방송은 무얼 하든지 자신이 잘 하는것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들이 볼 때는 이해 할 수 없는 콘텐츠도 어떤 이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울 수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적인 네티즌들의 관심사를 공략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방법이다. 이미 <무도>로 한차례 화제가 되었기는 하지만 굳이 인터넷 방송을 켜고 정준하를 지켜보기 위해 그 자리를 찾아간 누리꾼들은 이미 인터넷 콘텐츠에 익숙한 시청층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정준하가 잘하는 것, 이를테면 먹방같은 콘텐츠였다. 이제까지 <마리텔>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사람들도 김구라같은 예능인보다는 백종원, 이은결, 차홍, 이말년등, 자신의 전문 분야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말년이 이 방송을 대체 왜 보는 거냐고 신기해 하듯 던진 한마디는 인터넷 방송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준하는 방송말미 먹으라고 보내준 자장면마저 굳이 먹지 않고 면발을 자신의 얼굴에 던지는등, 잘못된 방식으로 인터넷 방송에 접근했다. 그 접근 자체가 인터넷 방송에 익숙치 않은 정준하의 연구 부족에서 온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의 부재다. 인터넷 방송은 생방으로 네티즌이라는 관중을 놓고 진행되는 만큼 무엇보다 던지고 받는 이야기가 중요하다. 이미 정준하의 <마리텔> 출연은 <무한도전>이라는 방송을 타고 화제가 된 터였다. 그 화제성은 인터넷 방송망 서버다운이라는 관심으로 증명되었다. 그러나 정준하는 자신이 준비해 온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정준하의 고집은 대중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의 문제점은 대중이 원하지 않는 콘텐츠를 밀어 붙인데 있다. 사실 재미가 없단 것은 다음 문제다. 인터넷 방송에 참가한 누리꾼들이 보길 원하는 것은 좀 더 누리꾼들과 가까이 호흡하고 자신의 방송을 살려보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었다. 재미가 없는 것은 다음 문제다. 그러나 정준하는 자신이 방송 자체의 퀄리티를 살리려는 노력 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대중에게 강요했다. 옆에 앉은 서유리의 서포트에 정색을 하거나 네티즌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 듯한 태도는 그의 결정적인 실수였다.

 

 

 

애초에 내키지 않은 출연을 결정해야 했던 정준하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자신이 잘 모르는 영역에 서야 했던 정준하의 부담감도 분명 상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정준하가 필요 이상의 비난을 들어야 했던 것은 재미가 없었다는 그 자체 보다는 그의 태도에서 기인한다. 정준하는 이번 <마리텔>의 출연을 통해 그가 단순히 익숙치않은 분야에서 헤맸다는 것 이상의 반성이 필요하다. 자신이 받은 비난이 억울할지언정 그 비난을 타산지석 삼아서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연예인의 숙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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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돈이 불안장애 증세로 모든 방송에서 당분간 잠정하차 한다고 밝히자 우려 섞인 시선이 쏟아진 프로그램이 바로 <무한도전(이하<무도>)>이다. 이미 길과 노홍철의 하차로 홍역을 치른적이 있는 <무도>는 콘텐츠의 다양성을 확보하는데 있어서 캐릭터의 활용이 부족하다는 점을 밝히고 공개적으로 식스맨선발대회를 개최했다. 이는 과거 전진이나 길등 제작진이 섭외했던 멤버들이 시청자들의 질타어린 시선에 쏟아졌던 경험에 비추어 식스맨의 선발과정을 공식화하면서 새로운 멤버에 대한 시청자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 식스맨의 선발과정 조차 순탄치 않았다. 첫째로 식스맨의 선발과정이 지나치게 길게 편성되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무려 5주에 걸쳐서 방영된 식스맨 특집은 처음에는 신선했지만 나중에는 식스맨이 누가 될지에 대한 기대보다 식스맨이 언제 끝날지에 대한 지루함으로 이어진 것도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선정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 후보들의 검증이 실질적인 <무도> 특집 내에 투입된 후 이뤄진 활약이 아닌 토론이나 자기 PR 식으로 이어지면서 식스맨을 검증하는 과정이 생략되었고, 시청자 투표가 간접적으로는 영향을 미쳤으나 최종 결과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지 않으면서 전반적인 공감을 이끌어 내는 데는 성공했다고 볼 수도 없다. 중간에 논란이 일어 식스맨을 포기한 장동민같은 경우의 수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식스맨을 선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만큼 <무도>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상승시킬 요인이 필요했다는 뜻이었다. 새로운 멤버가 들어와도 모자를 판에 정현돈의 하차는 무도에 애정이 있는 시청자들의 탄식을 불러일으킨 요인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식스맨 특집에서 논란을 뚫고 선정된 광희의 활약이 미미하다는 지점이 이런 우려를 더욱 증폭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광희에게는 <무도>에 젊은 피를 공급할 수 있는 인물인 동시에 재미를 선사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광희가 선택되고 무려 7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광희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광희의 개그 스타일은 공격형이다. 누군가 자신에게 불리한 말을 던지면 발끈하고 자신보다 관심을 받는 다른 사람에게 질투를 드러내는 식이다. 공격형 개그 스타일에는 항상 쿨타임이 필요하다. 열을 낸 만큼 망가지고 만만한 모습을 보여서 강약을 조절해야 그 개성은 캐릭터로 존중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광희는 아직 강약 조절에 서툴다. <무도>에 융화되기 위한 부족한 내공은 불안함으로 드러나고 자신이 받는 악플에 대한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표현된다. 프로그램 자체에 녹아들지 못한 광희는 시청자들에게는 자존심을 세우기만하고 욕은 먹기 싫어하는 다소 이기적인 캐릭터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니 광희의 개그는 융화되기 보다는 흐름을 끊는 역할을 하고만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캐릭터마저 포기하면 정말 광희는 무한도전에서 한마디도 할 수 없다. 엄청난 딜레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사실 광희가 아닌 그 누가 식스맨에 선정 됐어도 <무도>의 새로운 멤버 자리를 꿰찬 사람에 대한 반대급부는 만만치 않았을 것임은 분명하다. 과거 무임승차 했다고 평가받은 길에 대한 설득을 <무도>측이 꽤나 오랜 시간 했다는 것을 상기해 보면 광희에 대한 현재의 평가는 어떻게 보면 성장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문예능인도 아닌 광희에게는 다소 가혹한 현실이기도 하다. 사실 <무도>의 모든 멤버가 큰 재미를 선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초창기 멤버로서 <무도>의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융화되고 멤버간의 합 역시 훨씬 더 부드럽게 맞출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무도> 멤버들의 입지 역시 하루아침에 만들어 진 것은 아니다. 현재 하차를 결정하며 <무도>의 캐릭터 부족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던 정형돈 조차 초반에는 재미없는 캐릭터의 오명을 썼다. 그러나 이 재미없음을 캐릭터로 만든 것 역시 <무도>였다. 못 웃기는 캐릭터는 그 자체로 캐릭터화 되었고 미존개오등의 별명을 획득하며 점차 정형돈은 <무도>에 없어서는 안 될 캐릭터의 축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형돈이 내가 MC계의 사대천왕이라고 말하거나 내가 너를 스타로 만들어 줄게같은 발언들을 던져도 그 말들은 개그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정형돈은 재미없는 캐릭터에서 대세 캐릭터로 자연스럽게 전환하며 자신의 개그 포인트를 찾았고 숨겨졌던 예능 본능을 성공적으로 발현했다. 그 결과 정형돈은 유재석을 제외한 타 멤버들과는 다르게 메인 진행자로서의 입지를 다지며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중이었다. 그런 그의 인기의 이면에 불안장애가 있었다는 것은 그래서 놀라운 일이었다.

 

 

 

정형돈조차 이런 과정을 거쳤지만, 문제는 광희에게 정형돈과 같은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광희는 군 문제에 직면해 있다. 광희 또래의 연예인들이 대거 군입대를 했고, 광희 역시 1년 남짓한 시간 안에 군입대를 결정해야 할 위치에 있다. 7개월 동안 찾지 못한 캐릭터를 앞으로 1년 안에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함은 여전히 광희를 괴롭히는 요소다. 최악인 것은 광희가 군입대를 해도 아무도 광희의 부재를 아쉬워 하지 않는 상황이다. 과연 광희는 한정된 시간 안에 자신의 캐릭터를 대중에게 설득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 여정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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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의 예능에는 어느 순간 게스트가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요소가 되었다. 출연하는 게스트들은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환기하고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최근 나영석 예능의 특징은 웃음에 대한 강박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어떤 상황 속에서 누군가가 보여줄 수 있는 일상적인 반응에 예능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한정된 자금을 사용해 여행을 떠나거나 직접 밥을 만들어 먹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실제 사람의 본성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그 본성 중, 매력적인 포인트만을 잡아 적절한 편집을 통해 그들의 매력을 시청자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관찰하는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상황에 공감을 한다.

 

 

 

그리하여 나영석표 예능에 출연하는 출연진들은 그다지 부담감이 없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그것이 일상적인 모습이 되고 호감으로 포장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시세끼>에 출연하는 옥택연이나 손호준은 예능적인 가치가 있는 캐릭터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들은 그대로도 건실하고 튼튼한 청년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게스트로 등장한 최지우나 박신혜 역시 웃음을 만들어 낸 공로보다는 꼼꼼하고 섬세한 손길로 일을 마다하지 않는 성실함으로 호감이 된다.

 

 

 

 

최근 여성 캐릭터의 활용은 심심치 않게 나영석 예능의 특징이 되고 있다. <삼시세끼-정선편>에서는 박신혜, 최지우, 김하늘, 보아등 여성 게스트들이 대거 등장했다. 여자캐릭터가 낄 공간이 없을 것 같은 <꽃보다 할배>에서 조차 최지우가 이서진을 보좌하는 역할로 따라나섰다. 나영석은 여자 캐릭터들을 이용해 남자 출연진들과 미묘한 관계를 포착해 낸다. 노골적으로 그들의 관계를 강조하지는 않지만 은근하게 그들 사이의 을 타는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다. 여기서 나영석의 탁월한 능력은 그 관계가 부담스럽지는 않으면서 적당히 설레는 정도의 강도로 적적하게 표현된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그리하여 그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삼시세끼-어촌편>에는 유독 남자 게스트들이 등장한다. 이번 시즌에 등장한 게스트만 봐도 박형식, 이진욱등 남자들의 향연이었다. 마지막 게스트로는 윤계상이 등장할 것으로 알려지며 결국 <삼시세끼-어촌편>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는 이번에도 없을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시세끼-어촌편>의 반응은 뜨겁다. 최근 등장한 이진욱은 잘생긴 외모에 4차원적인 행동으로 예능적인 캐릭터를 한껏 살려내며 고정 출연을 원하는 여론까지 일었다. 오히려 <삼시세끼-어촌편>에서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영석은 <삼시세끼> 예능속에서 가족의 정체성을 부여한다. 이를테면 요리를 잘하고 깔끔한 차승원은 엄마, 낚시를 해 물고기를 잡아오고 불을 피우는 일을 맡은 유해진은 아빠, 그들의 심부름을 도맡으며 보조하는 손호준은 자식이라는 식이다.

 

 

 

<삼시세끼-정선편>에서는 가족의 정체성이 직계보다는 사촌 지간 정도로 설정되어있다. 이서진과 옥택연은 아버지와 자식 느낌이 아닌. 약간은 서먹한 삼촌과 조카 정도의 사이로 그려진다. 누구도 요리에 능숙하지 않고 집안일에 수완을 보이지는 않지만 상황이 주어지니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엄마나 할머니가 없는 공간에서 어색해 어쩔 줄 모르는 집안일에 서툰 남자처럼 묘사된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성 게스트의 존재는 반가운 일이다. 그들이 서툰 섬세한 부분을 어루만져주고 아직 미혼인 그들에게 설렘도 줄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삼시세끼-어촌편>은 이미 완성된 가족의 형태다. 차승원이 기혼이라는 사실을 굳이 상기할 필요도 없이, 차승원의 꼼꼼함과 요리 실력은 이미 보통의 서툰 남자는 물론, 웬만한 여성까지 뛰어넘었다. 유해진 역시 그런 차승원과 합이 잘 맞기 때문에 굳이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 반가울 것도 없다. 차승원과 유해진의 캐릭터 상 여성이 등장해 러브라인을 형성하기도 애매하다. 오히려 여성 캐릭터의 등장은 나름대로 제대로 잡혀있는 그들의 매커니즘을 깰 수도 있는 위험요소다. 오히려 독특한 남성 캐릭터가 등장해 실질적인 게스트역할을 해 주는 것이 가족의 그림을 깨지 않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영석은 비슷한 콘셉트로 정선편과 어촌편을 만들었지만 서로 다른 캐릭터들의 장점을 정확히 파악해 다른 이야기를 만들었다. 나영석표 예능이 연타 홈런을 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콘셉트를 사용하든지 적재적소에 캐릭터를 사용할 줄 아는 나영석의 현명함이 믿고보든 나영석표 예능을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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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이미지를 배반하고 실망감을 준 유명인들이 한국사회에서 져야 하는 십자가는 무겁다. 그들의 사생활이라 할지라도 물의를 일으킨 유명인들에 대한 단죄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되기도 한다.

 

 

유승준과 에네스 카야 역시 그들이 배반한 이미지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룬 사례다. 유승준은 바른 청년이미지로 군 입대를 꼭 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으나 미국 국적을 취득하며 한국에 무려 15년 동안 입국 금지를 당했다. 그러나 그는 최근 한국에 돌아오겠다고 수차례 언론에 자신의 처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병무청 측에서 그를 받아들일 기미가 없자 그는 마침내 자신의 입국금지를 철회해 달라는 소송을 내기에 이르렀다.

 

 

 

에네스 카야는 tvn예능 프로그램 <비정상 회담>에 출연해 터키 유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이유는 그의 유창한 한국말과 더불어 여자를 사귈 때는 결혼할 마음으로 사귄다거나 바람피우는 남자는 우리나라엔 없다는 등의 발언으로 보수적인 성격을 띤 발언을 다수 했고, 때로는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다른 패널들과 부딪치며 마치 조선시대의 사고방식을 가진 것처럼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그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의혹에 대한 파장은 그래서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신기하게도 유승준과 에네스 카야는 한국의 복귀를 타진하며 비슷한 어조의 발언을 사용했다. 유승준은 입국금지를 철회해 달라는 소송을 내며 고통받았다.”는 말로 동정심에 호소했고, 에네스 카야는 한국의 한 소속사와 계약을 맺으며 가족을 위해 싸울 것이라는 인터뷰를 했다. 이들의 말은 그들이 피해자일 경우에만 할 수 있는 말이다. 유승준의 국적 포기는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킬 만큼 거대한 파급효과를 일으켰고, 에네스 카야의 불륜 논란 역시 충분히 대중의 분노를 자아낼만한 황당한 사건이었다. 그런 그들이 자신들의 고통을 호소하고 누군가와 싸운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사과는 하겠지만 억울하다는 식의 발언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들의 국적은 모두 한국이 아니다. 유승준은 이미 미국 국적을 선택한 시점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의무를 져버렸고, 에네스 카야는 애초에 터키인이다. 그들이 한국에 돌아오고 싶어 한다면, 그들이 한국에서 누렸던 인기와 혜택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라고밖에 해석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이 누렸던 혜택은 대중이 그들에게 우호적이었을 경우에만 유효한 것이었다. 그들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이 없고, 오히려 불편함만 남았다면 그들은 오히려 마이너스의 존재일 뿐이다. 그들이 사회적으로 논란만 일으키는 존재라면 굳이 외국인을 국내에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책임은 없고 권리만 있는 그들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싸늘한 이유다.

 

 

 

유승준은 군대갈것이냐는 질문에 생각해 보겠다고 답할 수 없었다고 전했고 에네스 카야는 스스로 유생이라 한 적이 없다며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변명에 불과하다. ‘군대를 통해 자신의 바른 청년이미지를 강조한 것은 유승준이었고, ‘유생의 이미지를 활용해 인기를 언고 광고와 예능에 출연한 것은 에네스 카야였다. 그들의 문제는 그들이 상당한 이득을 누리고 있을 때는 그런 이미지를 활용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 이미지를 자신이 의도적으로 만들지 않은 것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의도적이었든 그렇지 않든, 자신들이 누리던 것이 자신들의 이미지에 일정부분 빚을 지고 있다면 그런 이미지가 짐이 되는 것 또한 그들의 몫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복귀가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것 또한 그들에게 동정한 여지가 없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언론을 이용하고 있다. 자신의 입장을 전하기 위해 유명인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활용하여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낸다. 그러나 대중이 그들을 보는 시선은 앞에서는 대중에게 사과를 하는 척 하지만 뒤에서는 언제든 뒤통수를 칠 준비가 되어있는 이중적인 사람들일 뿐이다. 그 이중성을 회복하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다. 유승준은 국적 포기를 하지 않았어야 했으며, 에네스는 여성들과의 은밀한 문자를 주고받지 말았어야 했다. 잘못을 저지르고 진정으로 용서받고 싶다면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그들의 억울함은 상대방의 감정을 생각지 않은 일방적인 밀어붙임이다. 그들이 정말로 반성하고 용서받고 싶다면 한국으로 돌아오겠다고 소송을 걸거나 싸우겠다며 전의를 불태워서는 안된다. 단 하나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 살아가는 것이다. 한국은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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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K 시즌7(이하<슈스케7>)>가 그 어느때 보다 초라한 막을 내렸다. 최초의 여성 우승자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관심몰이가 이어졌고  케빈오의 반전 우승으로 끝났지만 여기에 쏟아지는 관심은 미미한 수준인 것이다. 오히려 <슈스케7> 방영 내내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신예영과 방송사측의 진실공방이었다. 신예영 측은 왜곡된 편집과 계약 강요를 주장했고 방송사인 Mnet측은 사실 무근을 주장하면서도 물의를 일으킨데 대한 사과를 했다. 그러나 이 진실공방에 숨겨진 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진실공방으로 인해 대중이 <슈스케>에 갖는 이미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것이었다.

 

 

 

이미 대중의 시선에서 <슈스케>는 비호의 대상이 아니다. 시즌 초반 뛰어난 참가자들이 대거 출연할 것이라는 티저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듯 해 보였으나, 결국 참가자들에 대한 실망으로 시즌이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오디션 자체에 대한 불신이다. 그 불신은 오디션에 대한 애정의 결여로 인해 나타난다. 우승자가 누구든, 과정이 어떻든 시청자들에게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오디션에 내려진 사형선고와도 다름없다.

 

 

 

 

<슈스케>는 일곱 번의 시즌이 방영되는 동안 논란이 유독 심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논란 자체는 프로그램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단지, 논란이 프로그램의 인기에 상응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잠식하는 형태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그러나 사실 <슈스케>의 몰락은 예견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바로 전 시즌인 <슈스케 6>는 악평보단 호평을 들었던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우승자에 대한 관심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초라했다. 우승자 곽진언이나 준우승자 김필의 이름은 여전히 대중적이지 못하다. 호평을 받은 시즌조차 이런데 역대 최악의 시즌으로 불리는 <슈스케 5>는 말할 것도 없다. 이제 <슈스케>는 그 생명력을 다했다.

 

 

 

 

비단 <슈스케>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미 오디션 프로그램은 대세에서 멀어진지 오래다. 그나마 살아남은 프로그램이라 하면 <K팝스타>정도를 들 수 있는데, <K팝스타>조차 대형 기획사의 오디션이라는 특장이 없었다면 시즌이 거듭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사실 <K팝스타>역시 이하이나 악동뮤지션을 배출하던 시절과는 관심의 농도가 다르다. 벌써 시즌3와 시즌4의 우승자인 버나드박이나 케이티김의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지경에 이르렀다. 단순히 시간이 흘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우승할 당시에도 예전과 같은 파급력을 몰고 오지는 못했다. 그들이 추후에 성공을 거둔다 하여도 그것은 오디션의 힘이라기보다는 기획사의 기획력이라 볼 수 있다.

 

 

 

신선하고 특별하며, 음악성까지 갖춘 괴물같은 참가자라도 발견되지 않는 한, 오디션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유형의 인물들은 이미 시청자에게도, 심사위원에게도 낯설지 않다. 심사위원들은 매시즌 주구장창 ‘대단하다’ ‘천재다’ ‘감동이다’ 같은 단어들을 남발하지만 그것들이 시청자들의 감정과 동화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재능을 ‘포장’하는 기술이 아니라 실질적인 천재를 만나는 일은 이미 익숙해져버린 오디션의 방식 속에서 점점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이 와중에도 성공한 기획이라면 <쇼미더머니>나 <언프리티 랩스타> 등, 힙합 장르 오디션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힙합 장르의 오디션은 프로들의 장에 가깝다. 그들은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다 하더라도 대부분 참가자들은 대형 기획사의 연습생이고 이미 뛰어난 실력으로 유명한 래퍼들이다. 게다가 힙합 오디션의 성공은 힙합이라는 컨텐츠의 승리라고 보아야 한다. 서로의 약점을 공격하는 ‘디스 배틀’이라든가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랩’이라는 장르에 대한 환호지 오디션 자체에 대한 열광은 아니다.

 

 

 

 

이미 오디션은 한 물 간 것으로 여겨진다. 노래를 다루는 방식은 좀 더 재밌어지고 교묘해져야 한다. 이를테면 복면을 쓰고 노래를 한다거나, 실제 가수와 똑같은 목소리로 노래한다거나 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트렌드는 노래에서도 반전을 가미한 쪽으로 틀어졌다. 단순히 누가 누가 더 잘하는가 하는 식의 레파토리는 이제 너무나도 식상하다. 그 식상함을 날리기 위해서는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한 참가자가 필요한데, 그 참가자들을 확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말하자면 <슈스케>류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컨텐츠 싸움에서 밀린 셈이다. 장르에 대한 구심점도, 노래를 가르는 방식에 대한 특별함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잘하기는 하지만 ‘극찬할 수준’인가 싶은 참가자들을 놓고 심사위원들끼리 하는 감탄과 경외는 오히려 오디션을 더 촌스럽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야 만다. 오디션의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공개적인 오디션으로 더 이상 ‘스타 탄생’이 어려운 이 시점에서, 기획사의 비공개 오디션이 아닌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굳이 싫다는 사람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착각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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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이 온전히 드라마의 중심이 되지 않는다. 드라마의 중심은 연쇄 살인마의 정체’. 한 회를 놓치면 다음 회에 집중하기도 힘들다. 결국 시청률은 최하위를 기록했다. 드라마 <마을-아라아치의 비밀(이하 <마을>)>의 이야기다.

 

 

 

문근영은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 월 화요일은 <육룡이 나르샤>를 보고 수 목요일은 <마을>을 보셨으면 좋겠다는 말로 시청률에 대한 갈망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영화 <사도>에서 부부 역할을 맡았던 유아인과의 관계를 빗댄 재치 있는 한 마디였지만 한동안 드라마 성적이 좋지 않았던 문근영이었기에 그 발언을 허투루 들을 수는 없었다. 동시에 문근영은 장르물을 좋아한다.”<마을>을 선택한 이유에 개인적인 취향이 있었음을 드러냈다.

 

 

 

 

뚜껑을 열고 보니 <마을><그녀는 예뻤다>는 물론, <장사의 신-객주 2015>에도 밀리는 것은 물론 5%대의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청률면서는 아쉬운 성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마을>은 문근영의 도전 정신만큼은 빛나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마을>은 로맨틱 코미디도, 사극도 아니다.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그 사건의 중심에 다가갈수록 긴장감이 배가되는 미스터리극이다. 마을은 처음부터 촘촘한 이야기의 결을 설명해 나간다. 원어민 교사로 마을에 오게 된 한소윤(문근영 분)이 시체를 발견하고, 그 시체의 정체를 파악하는 과정부터 왜 그 시체가 생길 수밖에 없었는가에 관한 궁금증을 배가시켜나간다. 이야기는 한 순간의 몰입도 보다는 전체적인 맥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여타 드라마들과는 달리 사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간에 유입된 시청층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처음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장면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몰입 하며 드라마에 집중했던 시청자들이라면 <마을>은 충분한 긴장감과 놀람의 연속이다.

 

 

 

문근영은 이 과정에서 주인공 한소윤의 감정선을 시청자들에게 설득시키는 역할을 한다. 두려운 표정과 겁에 질린 눈빛은 한소윤의 심리상태를 몇 마디의 대사보다 훨씬 더 적절하게 표현해 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문근영은 자신이 온전히 극을 이끌어 가는 역할을 선택하는 대신, 드라마의 일부로서 자신의 역량을 펼쳐낸다. 그리고 문근영이 드라마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마을>을 처음부터 시청한 시청자들은 사건에 훨씬 더 집중하며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다. 주인공으로서의 존재감을 놓치지 않는 데는 문근영의 연기력이 한 몫을 단단히 했다고 할 수가 있다.

 

 

 

문근영은 죽은 김혜진(장희진 분)의 죽음에 다가갈수록 초반 모든 상황을 무심하게 받아들이던 캐릭터에서 공포와 분노를 표현하는 다채로운 감정을 쏟아내고 있다. 그 안에서 문근영은 이야기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사건의 실체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 실체는 결코 가볍지 않다. 폐쇄된 공간처럼 느껴지는 아라아치라는 마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체는 순박하고 따듯한 시골 주민이 아니다. 김혜진의 죽음에는 모두가 책임이 있고 관련이 있다. 그들은 직접 김혜진을 죽인 범인은 아닐지언정 한 여자의 일생을 비참하고 절망스럽게 만든 공범들이다.

 

 

이 이야기 속에는 단순한 범인 찾기 작업만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마을>은 한 마을에서 벌어진 따돌림과 배척. 그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를 입은 비참한 여인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문근영은 그 안에서 그 이야기를 관조하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해 낸다. 이미 사람은 죽었고, 문근영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사람을 구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 아픈 진실에 공감하게 만드는 것도 문근영의 역할이다.

 

 

 

문근영은 안주대신 실험과 도전을 택했고, 그 실험과 도전은 시청률이나 화제성으로 보았을 때는 성공적이라 말하기 힘들다. 그러나 문근영에게 있어서는 배우로서 한 발작 나아가는 성장의 한 걸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도>에서도 비중이 적은 역할을 택했듯, <마을>에서도 문근영은 두드러지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커진 존재감은 문근영의 내공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마을>의 시청률은 아쉽지만 문근영 같은 배우가 있기에 새로운 시도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점에서 문근영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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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et <언프리티 랩스타>가 사전계약 논란에 휩싸였다. Mnet측은 “Mnet 측에서 헤이즈, 트루디, 캐스퍼, 애쉬비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것은 맞다. 소속사가 없는 네 명에 대해 추후 인터뷰나 초상권 문제시 관리하는 정도"라는 다소 황당한 해명을 내놓았다. 그 말 자체가 이미 사전계약을 했다는 의미와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인큐베이팅개념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관리를 받는 참가자들과 다른 참가자들에 대한 차별을 예상케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Mnet의 실책이 드러난다.

 

 

 

<언프리티 랩스타>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누군가가 특혜를 입거나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고 판단될 시, 긴장감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단순한 지례짐작이나 추측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미 <언프리티 랩스타>는 대형 기획사 출신의 참가자, 이를테면 JYP의 유빈이라든지 스타쉽 엔터테인먼트의 효린, 그리고 YG의 수아등을 세미파이널까지 끌고 간 상황이다. 이미 대형기획사 출신 참가자들에 대한 특혜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던 가운데 터진 사전 계약 논란은 치명적이다. 애초에 결말이 정해진 각본이 있었다는 의구심이 중폭되기 때문이다. 그 의구심을 불러일으킬만하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 오디션 판을 짜는 방송사가 해야할 일이다. Mnet측은 그 기본을 지키지 못한 우를 범하고 말았다.

 

 

 

<언프리티 랩스타>의 참가자인 예지는 미친개라는 랩에서 다음과 같은 가사를 썼다.

 

 

 

 

애초에 짜놓은 각본 드라마 / 그 안에서의 난 그저 주인공을 빛낼 들러리일뿐 / 근데 누가 날 주연으로 바꿔놨어 / 그건 언프리티도 회사도 아닌 진짜 나였어 / 잘봐 결국 지금이건 나를 위한 드라마 / 뗏다 붙였다 너내 맘대로 다 해봐 / 마지막까지 난 절대 복종안해 / 미친개 미친개

 

 

 

예지는 <언프리티 랩스타2>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참가자 중 하나로 주목받았지만 탈락 후 패자 부활전에서 겨우 살아남는 등의 부침을 겪었다. 순조롭게 세미파이널까지 올라간 트루디나 수아에 비해 예지의 탈락이 시청자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프로그램 내부에서 어떤 특혜가 있었다는 판단이 가능하고 예지가 쓴 가사 속에서 그 의혹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언프리티 랩스타>는 기로에 섰다. 트루디의 실력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그는 태도 논란을 겪은 참가자였다. 그의 우승으로 프로그램이 마무리 된다 해도 시청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결말은 아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사전계약논란이 인 인물 중 하나인 트루디에게 우승컵이 돌아간다면 그런 논란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미 세미파이널에서 예지와 트루디가 경합을 벌이기 때문에 둘 중 하나는 결승에 올라갈 수 없다. 이 둘은 참가자 중 가장 뛰어난 래퍼로 평가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둘 중 하나가 우승을 못하면 다른 여성 래퍼들의 우승을 납득하기는 어렵다. 분위기상 트루디가 이긴다고 해도 박수를 받기 힘들며 예지가 이긴다고 해도 긴장감은 떨어진다. 그렇다고 트루디와 예지가 아닌 제 3자에게 우승컵이 돌아간다면 그것또한 시청자가 납득하기 힘든 결말이다.

 

 

 

이미 관객 투표마저 조작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피하기 힘든 상황이다. 사전계약 논란은 이미 시작부터 저 앞에서 출발한 금수저 논란과 다를바 없다. 무엇보다 공정해야 하는 오디션이라는 상황 속에서 그런 금수저를 미리 제공했다는 의혹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아무리 그 논란을 축소시키려 해도 이미 시청자들의 감정은 상한 후다. 그런 논란을 극복하고 뛰어난 여성 래퍼를 찾겠다는 취지의 오디션 프로그램으로서 권위를 찾을 수 있을까. 그 여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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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의 이야기는 그다지 흥미를 돋우는 소재라고는 할 수 없다. 이미 수차례 드리미에서 반복된 내용인데다가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는 이미 겨우 작년에 <정도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방영된 터였다. 정도전과 이방원을 증심으로 한 <육룡이 나르샤>개 얼마나 더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김영현-박상현 콤비는 우려를 가볍게 비웃으며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성공하고야 만 것이다. 숱한 드라마들을 성공시키며 쌓아온 그들의 내공은 이야기의 결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며 대중을 사로잡는 매력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육룡이 나르샤>는 조선건국 자체보다는 그 건국을 이뤄내는 과정에 방점을 찍는다. 이는 결과가 정해져 있는 사극에서는 필연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다. 그 정해진 결말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 결말에 도달하는 방식을 어떻게 표현해 내느냐에 따라 시청 포인트가 생기기 때문이다. 작년 드라마 <정도전>은 조선 건국 뒤에 숨은 정치세력의 이야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육룡이 나르샤> 역시, 정도전과 이방원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육룡이 나르샤>는 ‘정치’에 상상력을 풍부하게 곁들였다. 그리고 그 상상력은 작가가 만들어 낸 매력적인 캐릭터로 거듭났다.

 

 

 

 


이야기의 중심은 정도전(김명민 분)과 이방원(유아인 분)에게 맞춰져 있지만 그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과정에서의 긴장감은 특별한 상상력이 가미된 인물로부터 파생된다. 이를테면 악역인 길태미(박혁권 분)는 실존 인물인 임견미를 모티브로 탄생된 캐릭터 이지만 훨씬 더 입체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무술에 뛰어나고 잔혹한 성품을 지녔지만 치장을 좋아하는 다소 이율배반적인 모습은 그의 캐릭터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교태 가득한 말투를 사용해 자신이 가진 개성을 드러내거나 논어를 인용하고 스스로 탄복하는 모습은 그의 캐릭터를 미워할 수만은 없게 만들었고, 시청자들의 지지를 획득해 냈다. 눈화장이 화제가 되자 그의 스타일리스트가 눈화장 비법을 공개한 일화도 있다.

 

 

 


길태미와 함께 드라마의 웃음 포인트를 책임지는 인물은 바로 무사 무휼(윤균상 분)이다. 무휼 역시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캐릭터다. 이방원의 부하가 되는 이 캐릭터는 고려의 운명보다는 자신의 가족이 더 소중한 인물로 자유롭고 장난기 넘치는 소년같은 인물로 묘사된다. 그 덕에 이 인물은 무거워 지는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방원에게 끈덕지게 자신의 출세를 요구하는 모습에는 시선이 고정되고야 만다.

 

 

 

 


 

반면 땅새(변요한 분)는 웃음이 아닌, 드라마의 분위기를 책임진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바람같은 검객’이라는 인물 소개에서도 느낄 수 있듯, 바람같이 떠돌며 이야기꾼으로 자신을 위장하고 있지만 그는 사실은 마음 한 구석에 분노를 감추고 있는 뛰어난 무사다. 그에게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백성들의 원한이 사무쳐 있고 자신이 지키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런 세상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원통함이 자리잡고 있다. 한 순간에 바뀌는 눈빛으로 변요한은 <미생>에 이어 역대급 캐릭터를 다시 한 번 만났다는 평을 들으며, 뛰어난 연기로 캐릭터를 살리고 있다.

 

 

 

 


 

그의 동생인 분이를 연기하는 신세경 역시 가상인물이지만 신세경이 이제껏 맡았던 역할들 중 단연 눈에 띄는 캐릭터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어디서건 주눅들지 않는 성격의 분이는, 이 드라마 로맨스의 가장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의연하게 자신의 길을 갈줄 아는 매력적인 성격에 이방원과의 로맨스로 또 다른 재미를 형성하는 것은 그동안 조선 건국을 주제로 한 드라마들이 갖지 못한 매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했지만 이런 가상인물들이 어우러진 탓에 이야기는 풍성해졌다.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떤 갈등이 생기고 그 갈등이 어떻게 해소되는지를 보여주며 <육룡이 나르샤>는 엄청난 몰입도를 선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같은 결말을 향해 가지만 그 결말이 나오는 과정을 제대로 요리해 낸 <육룡이 나르샤>의 과감한 도전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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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저 맘에 안들죠?’라는 한 마디는 올해를 통틀어 가장 유행한 문장이 되었다. 이태임과 예원의 촬영장 갈등에서 비롯된 사건은 사실 알려지지 않았다면 조용히 끝날 일이었지만 한 기자에 의해 기사화가 되고 이후 사건을 찍은 미방분 테이프가 유출되면서 초미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애초에 이태임의 욕설이 부각되었던 사건은 예원의 다소 예의 없는 표정과 말투, 결정적으로 언니 저 맘에 안들죠?’라는 한 마디로 인해 전세가 역전되었다. 그 전에는 무조건적인 피해자로서 자신을 포장하던 예원측의 입장이 한 번에 뒤집어지는 순간이었고 이는 대중의 관심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솔직하지 못했던 예원에 대한 대중의 실망감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태임에게 모든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태임 역시 먼저 흥분해 욕설을 퍼부은 책임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태임은 이 사건의 피해자처럼 묘사되기 시작했다. 이태임 역시 그동안 힘들었지만 이제는 괜찮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마치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는 뉘앙스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SNL에 이태임이 등장한다고 했을 때, 이태임이 어떻게 그 사건을 해석할지는 궁금한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예원을 가해자로 놓고 자신이 피해자로 나타나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그의 SNL은 독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미 이태임과 예원의 사건은 여러 형태로 패러디가 되고 웃음거리로 쓰인 후였다. 심지어 SNL에서 조차 패러디한 이 사건을 다시 무대위로 불러낸다는 것은 식상할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이태임은  내가 더 잘못했다. 아직도 피해를 입고 있을 예원씨에게 미안하다.”며 자신을 낮추고 들어갔다. 이어진 꽁트 역시 예원보다는 이태임 자신에게 맞춰져 있었다. 군에 입대하기 위한 인성검사에서 떨어진다거나, 할머니 분장을 한 정이랑에게 얻다 대고 반말이냐, 왜 눈을 그따위로 뜨냐.”는 비난을 듣는 식이었다. 이태임의 SNL언니, 저 맘에 안 들죠?’에 포인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태임이 했던 욕설과 행동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수많은 패러디가 있었던 상황이지만 이태임 자신이 스스로 패러디를 주도했다는 것도 신선했지만, 남의 잘못이 아닌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확실히 인지한 패러디는 대중이 훨씬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개그로 승화되었다. 이런 개그는 대중이 그 사건에 대해 불편하고 심각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때는 불가하다. 상황상 그 사건의 시간이 많이 지났고 이태임은 그 사건에 대하여 이전에도 수차례 사과를 했으며, 예원의 거짓말로 이태임 역시 피해를 입은 사실이 있기 때문에 이런 개그는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개그가 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태임이 이 개그를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낮아지면서 자신의 잘못을 대중에게 한 번 더 유쾌한 방법으로 사과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태임의 SNL출연은 플러스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잘못을 저지른 후 그 잘못을 어떻게 수습하는가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적절한 사과가 필수다. 그리고 억울한 부분이 있을지라도 자신이 낮아질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태임은 이런 기반 위에서 적절한 사과의 한 방을 날린 셈이다. 그가 한 것은 회피나 변명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솔직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솔직함은 대중이 그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결국 변명이 아닌 사과를 제대로 한 이태임의 결정은 옳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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