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은 2004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7조 때문인데 조선일보 주장처럼 광화문 네거리에 ‘김일성 만세’라고 부르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는 헌법에 나와 있는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이를 억압하겠다는 뜻이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없는 한 표현의 자유는 인정해야 하는데도 이를 막아야 한다는 보수언론의 주장은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발언을 두고  그가 북한을 찬양했으니 서울 시장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논리로 퇴진 운동을 벌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가혹한 잣대가 이윤석에게 쏟아졌다. 이윤석은 야당을 두고 “야당은 전라도당이나 친노당이라는 느낌이 있다. 저처럼 정치에 별로 관심 없던 사람들은 기존 정치인이 싫다.”는 발언을 해 구설수에 올랐다. 그러자 “뚜렷한 근거 없이 ‘전라도당’, ‘친노당’ 으로 규정하면서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겼다”는 이유로 그의 하차를 요청하는 글이 게시판에 줄을 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화제가 되었다.

 

 

 


 

여당이 경상도를 텃밭으로 한만큼, 야당이 전라도를 텃밭으로 한 세력이라는 사실은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심지어 야당 소속 정치인들조차 스스로를 그렇게 칭하는 판국에 ‘전라도당’이라고 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비난했다는 공식으로 엮는 것은 피해의식이다. 기존정치인들이 야덩 여당 할 것 없이 그저 서로 편을 가르고 싸우는데만 급급한 모습으로 다가온 것은 이란 지역감정도 한 몫을 했다. 단순히 야당만을 비판하는 뉘앙스로 말했다고 이런 폭력적인 시선의 도화선이 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처음에는 ‘친노당’ ‘전라도당’이라는 발언으로 문제를 삼던 야당 지지자들은, 비난의 근거가 부족했는지 나중에는 이윤석의 과거 발언까지 끌어다가 ‘이윤석이 친일파를 옹호했다’는 논리로 이윤석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윤석은 당시 방송에서 “친일파 청산 실패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가 안타까워했다”며“다만 지금 와서 환부를 도려내고 도려내다 보면 위기에 빠질 수 있으니까 상처를 보듬고 아물도록 서로 힘을 합쳐야 하는 게 중요하다”는 발언을 했다. 이윤석은 ‘친일파 청산 실패는 안타까운 일’이라는 전제를 두고, 현재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친일파 세력을 무조건 청산하기 보다는 상처가 남지 않는 범위에서 힘을 합치는 것이 좋다는 논리를 폈다. 이 발언을 두고 ‘친일이다’라고 규정짓는 것은 박원순 시장의 발언을 두고 ‘친북이다’라고 규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말에 동조할 수 없고 불코해다고 하더라도 그 발언을 아예 못하게 막으려 하는 것은 피해의식이고 폭력에 다름아니다. 이정도의 발언조차 하지 못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인가?

 

 

 

야당은 그렇게도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자신들의 의견을 마음대로 표현할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야당을 지지하는 세력 역시 그런 논리에 동조한다. 그러나 어떤 발언은 해도 되고, 어떤 발언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그들 스스로 그들의 모순을 드러내는 것과도 다름이 없다. 어쨌든 우리나라는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다. 현재 많은 정치인들과 유수의 유지들의 조상이 친일파였다는 것은 그 사실을 대변한다. 그러나 이제와서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그들의 모든 권리를 박탈한다고 한다면 그 또한 사회적인 파장이 엄청난 일이 될 수 있다. 이윤석은 그런 파장을 우려하는 뉘앙스로 말했을 뿐, ‘친일을 허용해야 한다’는 식의 발언을 한 적이 없다. 그런 발언에서 ‘친일 옹호’라는 뉘앙스를 찾아내는 것은 비약일 뿐이다.

 

 


 

물론 그 말에 불쾌함을 느껴서 그의 안티가 된다면, 그것도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그런 말 자체를 할 수 없도록 입을 틀어막으려 하는 것은 그들의 우매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다. 자신들은 얼마든지 상대를 비판할 수 있지만 상대방은 자신을 비판할 수 없다는 논리, 개인의 정치적 소신마저 가지면 안 된다는 논리는 그들이 그토록 주장하는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정권이 했던 짓과도 닮아있다.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 시선에의해 희생되지 않았던가. 남들을 그렇게 똑같은 시선으로 보면서 자신들은 그런 시선을 끔직히도 경계하는 것은 편협한 이중성에 불과하다. 거칠고 날카로운 것은 언제나 부드럽고 포근한 것을 이기지 못한다. 그들이 상대방을 인정하고 품을 수 있는 시선을 가질 때, 비로소 야당에 쏟아지는 인식과 시선역시 달라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남들을 인정할 줄도 모르면서 자신들이 성숙하다고 생각하는 것 만큼 비성숙한 일도 없기 때문이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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