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남 작가의 세계관은 끊임없이 한결같다. 분명 어딘가에 존재하는 인물들일 수는 있겠지만, 참으로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세상에 주인공은 고군분투해야 한다. 그렇게 이상한 인간들만 모여 있는 동네가 어딘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문영남 작가의 작품에서 인물들은 바람을 피고, 며느리를 학대하고, 누군가를 모함하기 위해 거짓말을 꾸며내고,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해 남의 상처따윈 돌아보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고, 현실에는 더 한 사람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 사람들이 저렇게 대거 등장하는 세상에서 주인공들은 점점더 어둠의 구렁텅이에 빠져든다. <장밋빛 인생>의 최진실이나 <조강지처 클럽>의 오현경은 그런 이상한 동네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순도 100%의 피해자가 되고, 심지어 최진실은 불치병에 걸리지 않으면 그런 상황을 타개할 힘조차 가지지 못하는 나약함까지 갖췄다. 오현경에게는 왕자님 캐릭터인 이상우가 등장하지만, 그 왕자님 캐릭터가 드라마의 중심은 아니다. 왕자님 따위는 오히려 문영남 월드에서는 주변인물일 뿐, 큰 매력을 발산하지 못한다. 오히려 왕자님은 상식이하의 남편(안내상)을 단죄하고 후회하게 만들기 위해 등장하는 도구적 캐릭터일 뿐이다.

 

 

 

 

 


그 이후 집필한 <수상한 삼형제> <폼나게 살거야> <왕가네 식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왕수박, 이앙금, 나대라, 엄청난 같은 억지로 짜맞춘 등장인물의 어색한 이름만큼이나 펼쳐지는 상황들은 아귀가 맞지 않고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게 짜맞춰지지만, 확실히 자극적인 MSG같은 상황이 펼쳐지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문영남작가는 절대적인 시청률로 이제까지 살아남은 만큼, 그 스타일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우리 갑순이>에서는 전작들보다 주연 배우들의 나잇대가 크게 어려졌지만, 여전히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서는 전작 못지 않은 상황들로 시청자들을 허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 갑순이>에서 신갑순 역할을 맡은 김소은은  “드라마가 막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우리 갑순이’는 막장드라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 드라마 시나리오와 대본을 받았을 때 주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라 이질감이 들지 않고 공감이 됐다”고 밝혔다. 남자 주인공 허갑돌 역할을 맡은 송재림 역시  송재림은 “이번 드라마가 막장이라고 말 할 수 없다. 솔직히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라며 “뉴스에 오히려 막장이 더 나오고 있다. 자식, 가족 사이에서 일어나면 안 될 일들이 생기고 있다”고 말하며 문영남식 드라마의 막장 논란을 부인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그 말들은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가 되었다.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칠 수 있다고 해도, 그 현실을 풀어가는 방식이 너무나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막장이 아니라면, 현실에서 일어나는 강도강간살인 등도 드라마에서 어떤 방식으로 다뤄져도 된다는 말인가. '현실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핑계 말고는 이 드라마의 막장 논란을 막을 방법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보인다.  

 

 

 

 

 


문영남 작가는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하면서 그들의 ‘취업난’에 눈을 돌렸다. 취업난으로 파생된 공무원 시험의 열풍. 공시생 신분으로서 맞닥들여야 하는 현실. 이런 것들을 이야기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런 소재를 다루는 능력에 있다. 문영남 작가는 그런 이야기들을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서 시청자들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스토리 내놓는데서  실패하며, 막장 코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를테면 허갑돌이 돈을 잃어버리는 과정이 단적인 예다. 허갑돌은 지하철에서 돈 500만원을 잃어버리는 실수를 한다. 그 돈은 가난한 그들이 동거를 결정하며 집을 얻을 보증금으로 사용될 아주 소중한 돈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요새 누가 500만원을 가방에 넣고 들고 다니는가. 핸드폰 어플만 다운받아도 계좌 이체가 가능한 것이 요즘 세상이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은행에 잠깐 들러 ATM기를 이용하면 그만이다. 그 편이 돈 거래 기록도 남고, 돈을 잃어 버릴 상황도 만들지 않는 훨씬 더 간편하고 좋은 방법이다.

 

 

 

 

 


갑돌이는 이후 또 빌린 500만원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다. 이번엔 퍽치기다. 두 번이나 같은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비판은 차치한다고 해도, 한 번 500만원을 잃어버리고도 똑같은 방식으로 돈을 운반하는 갑돌이의 지능에 의문을 제기 할 수밖에 없다. 그정도로 머리가 나쁘다면 허갑돌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 안된다. 그런 머리로는 100년이 걸려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여주인공 갑순이를 대하는 방식 역시 지나치게 고루하다. 10년을 사귀고 임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결혼, 그 이전에 동거를 생각할 만큼 요새 청춘들은 순진하지 않다. 아무도 합격하지 못한 공시생에, 당장 누구도 책임질 상황을 만들어 줄 수 없는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부담감에도 남자 친구와 어떻게든 살아보려 하는 갑순이는 도무지 현실에 있을법하지 않은 캐릭터다. 그들의 주장처럼 현실에 있다고 하여도 그런 캐릭터에 공감하는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다. 굳이 그렇게 살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간섭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겠지만, 문제는 그들이 드라마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결국 남자 주인공도 여자 주인공도 멍청이로 만들어 버린 작가는 그들에게 도무지 응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지 않는다.

 

 

 

 

 


동거 생활에도 게임으로 시간을 탕진하는 갑돌이의 모습은 여기에 기름을 붓는다. 주인공들을 대체 이렇게까지 비호감으로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싶을 지경이지만 자극을 위한 주인공들의 바보같은 행동은 끊이질 않는다. 차라리 열심히 하지만 고배를 마시고 현실에 벽에 부딪히는 청춘으로 그렸다면 그들에게 동정이라도 할 수 있을 터인데, 이야기를 뜯어보면 결국 그들은 자신의 선택으로 불행해 지고야 마는 캐릭터다. 자승자박으로 그 꼴이 된 것을 누구탓을 할까. 결국 <우리 결혼했어요>출연으로 ‘케미 커플’이라는 찬사를 들은 그들은 이 드라마에서 만큼은 ‘비호감 커플’이 되어 버렸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역시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결국 갑순이의 상상임신이었다는 설정으로 모든 상황을 정리해 버리는 작가의 방식은 너무나도 쉽고 간단하다. 그들은 이 때문에 헤어질 명분을 얻지만, 참으로 헛웃음이 나오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갑순이는 제대로 산부인과도 가보지 않고 임신을 확정지었다는 것인가. 우리 청춘이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그정도로 뭘 모르고 산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백번 양보해 서로 그렇게 참 뭘 모르는 청춘들이 있다고 치더라도, 그들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필요가 있을까. 결국 자신들이 만든 상황 속에 갇힌 결과 속에서 그들 스스로만 자신의 처지가 불쌍하다 울어대는 청춘은 누구도 공감하지 않는다. 공감이 가지 않는 주인공을 보며 희열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물론 문제는 이 뿐이 아니다. 이 드라마 속에서는 마음 놓고 응원하고 싶은 인물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도, 딸들도, 남자들도 다들 하나같이 답답하고 이상하다. 조금만 더 상식적으로 사는 인물이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을 법 한데 하나같이 뭔가 나사가 빠져있다. 그것은 작가가 인물을 보는 방식이 그런 편견과 아집, 독선으로 똘똘 뭉쳤기 때문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단순히 <우리 갑순이>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껏 그가 집필해 온 모든 드라마에서 모든 인물들은 그런 아우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막장이 아니라고 한다면, 세상에 막장 드라마는 대체 뭐가 있는지 되묻고 싶을 지경이다.

 

 

 

 

 


막장에 반응하는 시청자들이 분명히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공감이 안간다면 얘기는 다르다. 언제까지 단순한 자극만을 좇아 드라마를 만들 생각일까. <우리 갑순이>는 동시간대 꼴지를 기록했다.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기를 빈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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