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라는 단어가 금기시 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내몬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자살방지 캠페인은 자살을 하는 사람의 수가 눈에 걱정될 만한 수준일 때 펼쳐진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사실은 이런 가설을 증명하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자살이라는 행위는 생명의 존엄성의 측면에서 볼 때 금기시 되어야 할 행위지만, 누군가는 죽는 것 보다 삶이 버거울 수 있다. 그럼에도 살라며 그들의 목숨을 연명시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강요고 폭력이다. 그런 폭력이 많은 사회일수록 오히려 자살자는 늘어난다. 그런 폭력이 필요 없는 사회, 아무도 자살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는 인식이 확산된 환경이 오히려 자살을 방지한다. 사회적인 안전망은 이런 사회를 만드는 데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죽여주는 여자>는 바로 그 지점에 주목하는 것을 넘어서, 그 죽을 권리마저 박탈당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죽여주게 잘하는 여자와 실제로 죽여주는 여자라는 중의적 표현의 제목은 다소 코믹하지만 영화의 내용은 서늘할 만큼 축축하고 암울하다.

 

 

 

 


성性을 팔며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던 소영이 죽음을 안내하는 인물이 된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긴장감을 제공한다. 영화의 배경도 계절이 변하듯, 봄에서 가을로 어두워지고 쓸쓸해지는 것이다. 소영역시 점차 여성에서 죽음의 전령으로서 변해간다. 여성으로서 어필해야 하는 초반의 박카스 할머니는 화장도 짙고 의상도 다소 화려하지만 점점 소영의 표정과 옷차림도 무채색으로 변해간다.  

 

 

 

 


이 영화는 주인공을 비롯하여 조연과 엑스트라까지 모두 소수자의 역할을 맡는다. 주인공 소영은 노인들에게 성性을 팔아가며 살아가는 일명 ‘박카스 할머니’다. 사회 르포나 시사 프로그램에서나 볼 법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지만, 나이가 젊거나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가끔씩 마주하는 현실에 혀를 끌끌찰 지언정, 그런 환경 자체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다. 그런 현실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더라도 그런 현실을 마주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한 것이다.

 

 

 

 


소영이 마주하고 사는 사람들 역시 모두 소수자다. 소영이 상대하는 노인들은 성욕을 풀 데도, 애정을 갈구할 데도 없는 외로운 이들로 그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공원을 방황하는 이들이다. 소영의 일에 휘말리는 아랫집 젊은이는 장애인이고, ‘갑’의 입장에 있어야 할 집주인마저 트렌스젠더다.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에도 팍팍한 이들이 모여 다른 노인의 비루한 삶을 종결시켜주는 것은 의미가 크다.

 

 

 

 


영화는 세 명의 노인들의 삶을 보여주는데, 그들이 죽고 싶어하는 상황에 놓인 것에 큰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만큼 그들의 삶에 동화되게 만든다. 그들이 겪는 일들을 두고 그 누구도 덮어놓고 ‘자살은 나쁜 것’이라고 이야기하기 힘든 것이다.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거나  망가져 가는 자신의 삶을 보며 도저히 스스로 끝을 낼 용기를 내지 못하는 노인들의 삶 속에서 그 삶의 종결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자 하는 것을 비난하기 힘들 지경이다. 그들이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은 꺼내서도 안 되는 불온한 생각이고, 살인은 해서는 안될 추악한 짓인 것인지에 대한 의문마저 남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삶의 종결을 내주는 사람마저 사회적인 안전망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들이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 테두리 바깥에 있고,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자신들이 해결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지만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어 도와줄 사람이 절실하다. 그래서 결국 손을 내밀게 되는 것 역시 비슷한 아픔을 공유한 소수자라는 사실은 의미가 크다.

 

 

 

 


누구나 그들의 문제점을 알고있지만 그들의 삶에 선뜻 뛰어들 수는 없다. 결국 그들은 소수일 뿐이고, 소수자의 테두리 밖에 있는 그 누구도 선뜻 그들을 향해 손 내밀지 않았다는 사실. 그 어두운 현실을 영화는 말하고자 한다. 오히려 실질적인 도움이 된 것은, 박카스 할머니로 성을 팔고 그들에게 삶의 종결을 할 도움을 준 소영 개인이었다는 것. 그것이 영화 내내 폐부를 찌르는 메시지를 전한다.

 

 

 

 


주인공 소영 역할을 맡은 윤여정은 인터뷰에서 “경험해 보지 못해 어려웠다”고 밝혔지만, 그 말이 과공비례로 느껴질 정도로 완벽한 연기로 관객을 휘어잡는다. 관객 역시, 박카스 할머니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일 터. 윤여정은 그런 사람들에게 박카스 할머니를 설득시키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최적의 연기를 펼친다. 강렬한 소재이니만큼 이야기도 촘촘하고 설득력 있게 풀어나가야 관객들의 공감도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에 미흡하면서 엉성한 개연성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개연성을 극복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윤여정의 연기의 힘이다.

 

 

 

 


영화는 깜짝 흥행을 기록하며 5만 관객을 넘어섰다. 소수지만 어쩌면 우리 바로 옆을 지나치고 있을지도 모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관객이 동감한 것이다. 영화적으로 완벽한 연출과 표현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자신이 끝낼 권리마저 박탈당한 사람들의 현실을 마주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분명히 볼만한 가치가 있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