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에 해당되는 글 19건

  1. 2017.04.29 아이유를 누르고 1위한 라붐....뮤직뱅크가 아니라 조작뱅크? 가요프로의 몰락에는 이유가 있다.
  2. 2017.04.28 복귀하는 신정환,..예능에 출연하는 불편한 얼굴은 ‘악마의 시청률’을 이끌 것인가.
  3. 2017.04.26 주연보다 주목받는 월화극 사이코패스들의 공통점
  4. 2017.04.22 <미녀와 야수>의 엠마왓슨이 <라라랜드>를 했다면 오스카를 탈 수 있었을까? (1)
  5. 2017.04.20 <효리네 민박>으로 네 번째 리얼리티, 이효리라는 브랜드의 특별함.
  6. 2017.04.18 고삐풀린 SNL, 정치풍자 코미디를 통해 본 언론이 정치와 결탁하면 안되는 이유
  7. 2017.04.17 <아버지가 이상해>가 학교폭력 피해자를 다루는 방식, 또다른 폭력은 아닐까.
  8. 2017.04.14 ‘여혐’하는 남자들뿐 아니라 ‘왕자는 필요없다’는 여자들도 봐야 하는 영화, <히든 피겨스>
  9. 2017.04.14 스펙을 극복하지 못하는 '추리의 여왕'?....주인공은 왜 굳이 ‘주부’여야 했을까.
  10. 2017.04.13 <살림남>속 백일섭이 보여주는 우리시대 아버지의 초상
  11. 2017.04.10 변화하라, 겸손하라 그리고 포기하지 말아라...배우 김영애가 남기고 간 메시지
  12. 2017.04.09 <도봉순>, 결국 힘이 쎈 여자 주인공도 스스로 영웅이 되지 못하나.
  13. 2017.04.08 비슷한데 다른 <윤식당>의 마력, 현실을 벗어난 판타지에 빠져들다.
  14. 2017.04.07 tvN의 희망 <시카고 타자기>, 상반기 최대 화제작이 되기 위한 관전포인트?

4월 28일 방영된 <뮤직뱅크>의 1위 후보는 아이유와 걸그룹 라붐이었다. 음원 줄세우기를 통해 ‘음원 퀸’의 자리가 건재함을 과시하며 컴백과 동시에 1위 후보가 된 아이유는 지난 ‘스물 셋’ 앨범에서는 가요 프로그램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음악 방송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아이유 컴백에 대한 화제성은 물론 컴백과 동시에 1위를 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은 팬들의 관심을 촉발했다. 반면 라붐의 ‘휘휘’는 이미 음원차트에서 차트 아웃된 상황이었다. 그동안 음원순위나 인지도등 라붐의 파급력 역시 크다고 할 수 없었다. 인기 걸그룹에 비해 아직 존재감이 약한 라붐이 1위 후보가 된 것 조차 의아한 상황. 그러나 반전이 일어났다. 그 라붐이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라붐은 음원과 시청자 선호도에서는 아이유에 크게 뒤졌지만 방송점수와 음반점수에서 아이유를 크게 앞지르며 1위를 거머쥐었다. 물론 아이유는 이제 막 앨범을 내고 방송을 시작한 상황이라 방송점수가 높지 않고, 음반 발매 전 선공개 곡이었던 ‘사랑이 잘’로 1위 후보에 오른 까닭에 음반 판매가 집계되지 않아 0점으로 처리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안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라붐의 1위 수상은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인지도 낮은 라붐, 28000장 음반 판매의 비밀?

 

 

 

 


일단 라붐의 ‘휘휘’가 대중 친화적인 곡이 아니라는 점이 그렇다. 단순히 <뮤직뱅크> 1위 결과 점수를 분석해보아도 그렇다. 음원 순위도 그렇지만 시청자 선호도 점수 ‘0’점 이라는 점만 봐도 이 곡에 대한 반응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라붐은 팬덤이 큰 그룹도 아니다. 라붐의 팬미팅은 100명을 모집했지만, 단 130명만이 신청하여 경쟁률이 낮았다. 보통 10: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인기 걸그룹의 팬사인회에 비해 팬덤이 크지 않다는 점을 증명하는 일이다. 노래조차 대중에게 생소한 느낌이 더 크다.  

 

 

 

 


생소한 느낌이 강한 까닭에 어떻게 집계되었는지 알 수 없는 방송점수도 의아하지만 그 부분은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대중적인 인기는 물론 열렬한 팬이 없는 상황에서 앨범 판매량이 급증했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보통 앨범은 팬들의 공동구매와 대중적인 관심이 집중되는 첫 주에 가장 많이 팔린다. 더군다나 지금 가수의 팬이 아닌 일반 대중들은 앨범 구매욕구가 크지 않고 음원으로 듣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팬들의 화력이 그만큼 중요한 시대가 됐다. 그 화력은 앨범이 발매된 초반부에 가장 집중되는 경향이 짙다. 가수를 띄우기 위해서는 초반 물량 공세가 주효하기 때문이다.

 

 

 

 


 

라붐은 음원 순위에 있어서 차트 10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성적으로 출발했다. 현재 음반 판매량과 비슷한 판매량을 보이는 가수들이 음원 차트에서 상위권에 랭크된 것과는 다른 모양새였다. 이런 상황에서 음반만큼은 처음부터 예약구매가 3000장이 넘으면서 한터 음반 차트 1위에 등극했다. 전작 ‘푱푱’의 총 판매가 3000장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하루에 수천장의 판매고는 엄청난 상승세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초동(첫 주 앨범 판매량)이 400장이 최고였던 라붐은, 하루 판매량이 점차 늘어나며 대박을 넘어 메가 히트에 가까운 앨범 판매량을 이뤄냈다. 17일 발매후 23일까지 앨범 판매량이 무려 28000장에 달한 것이다. 온라인 판매가 집계되지 않고 오프라인 판매만 집계되는 주말 판매순위만 한정한다면, 한터가 집계를 시작한 2008년 이후 여가수 음반판매 1위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트와이스의 기록도 넘어섰다. 꾸준한 히트곡을 내온 여자친구는 총판매량에서 라붐에 뒤지는 상황까지 펼쳐졌다. 이는 2008년 이후 등장한 모든 여가수들 중, 총판매량이 33위에 랭크되는 기적적인 상황이었고, 1위곡도 없이 이정도의 성과를 낸 전례는 없었다.

 

 

 


공감대 얻지 못한 순위차트, 조작논란만이 남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영향력을 발휘할만한 근거가 지나치게 빈약했다는 것이다. 2014년 데뷔 후, 단 한번도 1위곡을 내지 못한 것은 물론, 음원 순위 상위권에서 찾아보기도 힘들었던 라붐이 음반이 불황인 상황에서도 작은 팬덤의 열세를 극복하고 28000장이 넘는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것에 대한 의구심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곧 사재기가 아니냐는 의혹이 터져 나왔다. 아이유를 누르고 음악 방송 1위를 차지하자 비난은 더욱 거세게 불었다.

 

 

 

 

단순히 라붐이 1위를 했기 때문에 쏟아진 비난은 아니다. 1위를 만들어 가는 상황에 있어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 지나치게 허술한 방식으로 1위가 결정되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전에도 <뮤직뱅크>는 트와이스와 AOA의 순위를 뒤바꿔 발표하며 집계 오류를 인정한 바 있다. 그 이외에도 <뮤직뱅크>의 ‘조작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만큼 순위 자체에 신뢰성을 갖기 힘들다는 뜻이다. 이런 반응은 순위에 대한 신뢰보다는 사재기나 조작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1위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오히려 강하다는 뜻이다.

 

 


이런 조작방송이 더 쉬워진 것은 음악방송이 그들만의 리그가 되었기 때문이다. 음악방송의 시청률은 1%대로 해당 가수의 팬들이 아니면 거의 본방사수를 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팬이라 할지라도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지지하는 가수의 무대만 따로 감상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기며 굳이 여러 가수들이 나오는 방송을 지켜볼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나 시청률을 떠나서 가요 프로그램 자체를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없게 만든 것에 제작진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한 1위에 의미가 없어지자 순위 발표에는 긴장감이 없어졌다. 또한 전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닌 아이돌 위주의 차트는 지나치게 편향된 모양새로 흘러갔다. 무대를 제대로 만들거나 노래를 제대로 들려줘야 한다는 의지도 프로그램 내부의 고민보다는 가수들의 능력에 더 크게 기대고 있다. 관심의 중심에서 멀어진 가요 프로그램 순위에는 논란만이 남았을 뿐이다.

 

 

 


공감대는 사라지고 조작 의혹만 불거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가요 프로그램의 순위는 가요 프로그램의 몰락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부끄러운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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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과 ‘뎅기열 논란’을 일으킨 신정환의 복귀가 결국 결정되었다. 그동안 수차례 복귀설이 있었으나 끊임없이 복귀를 부정해 왔던 신정환이 7년만에 드디어 복귀를 인정하고 소속사를 통해 복귀 의사를 밝혔다. 신정환은 “많이 그리웠고 후회도 많았다. 저의 경솔하고 미숙했던 행동으로 불편하셨던 많은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늘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신중하게 최선을 다하겠다. 어려운 결정임에도 손을 내밀어준 (주)코엔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복귀를 공식 인정했다.

 

 


 


긍정적이지 않은 여론, 오히려 그 때문에 방송가는 신정환을 환영한다.

 

 

 


신정환의 복귀에 여론은 긍정적이지 않다. 물의를 일으키고 거짓말 논란까지 더해진 신정환의 이미지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박 혐의로 자숙을 한 뒤 복귀 후 대중에게 사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같은 혐의를 일으키고 그 사실을 덮기 위해 ‘뎅기열’이라는 꼼수를 쓴 신정환의 태도에 많은 시청자들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부정적인 여론이든 긍정적인 여론이든 일단 여론의 관심을 획득했다는 점이다. 그가 9월에 아빠가 되는 것까지 화제가 될 정도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시장논리에 따른다면, 신정환 복귀는 여전히 뜨거운 화두고 그로 인한 화제성을 획득하는 것만으로도 타진해 볼 여지가 있는 일이다. 그것이 수차례 복귀설이 났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신정환은 예능계에서 특유의 화법으로 예능감을 인정받은 바 있다. 화제성에 예능감까지 더해지는 소재를 방송가에서 선호하지 않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기업이 가능한 여러 루트로 수익성을 확대시켜야 하듯,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화제성을 잡아야 하는 것이 방송의 기본이다.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관심이 없는 상황보다는 부정적인 관심이라도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이 훨씬 더 긍정적이다.

 

 

 

신정환의 경우 역시 화제성만으로도 방송가가 탐낼 소재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최근 추세는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 희화화 시키며 개그소재로 삼는 것이 비일비재 할 정도로 바뀌었다. 오히려 과거의 잘못을 통해 새로운 개그코드가 생겨나는 것이다.

 

 

 


물론 그런 현상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여론도 크지만, 이전처럼 잘못을 숨기기보다는 드러내는 식으로 정면승부가 가능해졌다는 점 자체로 방송가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 만큼은 분명하다. 잘못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자신의 잘못을 희화화 하며 웃기는 ‘셀프 디스’는 하나의 트렌드로 변모했다. 신정환 역시 잘못을 저지르기는 했으나 그런 트렌드에 부합하는 캐릭터로서 활용될 여지도 높다.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그의 복귀를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악마의 재능'이 성공적인 복귀를 이끌지는 않는다.

 

 


그러나 복귀 당시의 화제성과 이후의 활약은 별개의 문재다. 도박혐의 이후 자숙기간을 가진 탁재훈은 복귀 당시, ‘악마의 재능’이라 불리며 큰 화제를 모았고 각종 쇼프로의 진행을 맡았다. 그러나 현재 그 악마의 재능은 대중의 마음을 다시 홀리는 데는 실패했다. 탁재훈은 <SNL>과 <인생술집>에서 하차했고, 진행을 계속 맡고 있는 케이블 스카이 드라마 채널의 <주크버스>는 주목도가 낮다.

 

 

 


탁재훈의 가장 큰 패착은 트렌드를 읽지 못했다는 점이다.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고 교묘히 비트는 탁재훈의 입담은 그의 가장 큰 무기였으나 단순히 그 무기만으로 살아남을 수는 없었다. SNL에서 대본 숙지 논란이나, 지각논란은 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없었다. 자숙기간 전에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던 그이기에 불성실한 이미지를 반전시키고 예능인으로서의 호감도를 쌓는 일에 있어서 실패한 것은 크나큰 패착이었다. 또한 예능에서 탁재훈만의 감수성을 대중에게 설득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진행에 있어서 의외성을 주고 예능감을 뚜렷하게 각인 시킨 것이 아니라, 여전히 예전 스타일에 한정되어 있는 입담으로 오히려 상황과 맥락에 맞지 않는 진행 방식을 보였다는 것은 예능인으로서 그에게 보내는 신뢰감에 타격을 입혔다. 논란을 일으킨 후, 복귀의 성패 여부는 단순히 ‘악마의 재능’에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탁재훈의 경우 뿐 아니라 자숙후 복귀한 노홍철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복귀 후 여러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으며 승승장구 했으나 여전히 존재감은 미미하다. 그것은 그의 진행방식이나 캐릭터가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곳에서 쓰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홍철은 확실히 프로그램의 활력소는 될 수 있지만 차분하게 이끌고 남의 캐릭터를 살려줘야 하는 진행방식에서는 다소 부적절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그런 그의 복귀 이후 성적은 처참할 지경이다. 하나의 캐릭터로서 튀는 <무한도전>같은 프로그램은 노홍철과 잘 맞지만, 진행력을 보여줘야 하는 프로그램에서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캐릭터의 호감도는 프로그램과 함께 증가한다

 

 


도박등의 논란을 일으키고 자숙기간을 가졌지만 복귀가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던 케이스도 있다. 이를테면 이수근같은 경우가 그렇다. 이수근의 성공에는 <아는 형님>의 역할이 컸다. 종편인 JTBC라는 열세를 극복하고 5% 이상의 시청률을 올린 <아는 형님>은 최근 가장 트렌디한 예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게스트를 불러놓고 게스트에 집중하기 보다는 멤버들끼리 각각의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아는 형님>은, 매회 큰 웃음을 선사하며 프로그램의 호감도를 증가시켰다. 이 안에서 이수근은 감초 캐릭터, 꽁트 캐릭터로 상황을 비틀어 반전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담당하며 웃음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수근은 프로그램의 호감도와 더불어 성공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복귀한 연예인의 화제성이 유효한 기간은 짧다. 프로그램과 예능인의 성격이 잘 들어맞아 프로그램의 호감도가 증가할 때, 그 복귀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신정환의 복귀 프로그램으로 거론된 <라디오 스타>는 신정환이 끼어들지 않아도 이미 제 구실을 하고 있다. 제작진 역시 신정환과 접촉을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이미 신정환 없이도 자리를 잡은 프로그램에서 신정환으로 인해 프로그램의 활력이 살아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신정환의 복귀가 성공적이려면, 그의 캐릭터에 따른 존재감으로 프로그램을 성장시킬 수 있는 자리를 택하는 행보가 필요하다. 과연 신정환은 공백기를 따돌리고 자신의 캐릭터를 다시 한 번 대중에게 설득시켜 대중의 진정한 환호를 받게 될 수 있을까. 그 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복귀는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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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은 갈등을 유발하고 드라마의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 중 하나다. 각종 악역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지금 방영되고 있는 월화드라마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이하<역적>), <완벽한 아내><귓속말>에 등장하는 악역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악역들은 조금 특별하다. ‘사이코 패스’에 가까운 캐릭터로 주인공 이상의 존재감을 발휘하는 큰 위력을 가진 캐릭터들이기에 그렇다. 사실상 세 드라마 모두 악역의 힘으로 밀어 붙이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역적>-가장 강력한 적, 사이코 패스 연산군

 

 

 


<역적>은 삼사 월화 드라마 중 가장 스토리의 결이 매끄럽다. 사극이지만 시의성을 반영하여 권력에 대항하는 힘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감정을 파고드는 부분이다. 영웅이 되어가는 홍길동(윤균상 분)은 백성에 대한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살리고자하고 그런 백성들의 반란을 폭동으로 여기는 연산군(김지석 분)은 절대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으로 대표되며 절대 악으로 묘사된다.

 

 

 


그동안 연산군은 수많은 드라마에서 되풀이되어온 캐릭터다.  폐비 윤 씨의 사사,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등 드라마를 수놓을 수 있는 극적인 사건들이 충분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김지석의 연산군은 광폭한 폭군으로 수없이 묘사되었던 연산군의 계보를 잇고 있지만, 단순히 어떤 계기로 인해 폭군이 되었다기 보다는 애초에 보편적인 감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이코 패스’ 기질이 있는 것처럼 묘사된다.

 

 

 


‘인간 사냥’을 통해 홍길동의 몸을 부수는 연산군의 표정에는 죄책감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인간을 사냥하며 짐승취급하는 연산군의 모습은 그의 내면이 짐승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서늘하고 소름끼치는 감정표현으로 김지석은 악역임에도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평을 들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을 놀이 취급 할 만큼의 사이코 패스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와중에서도 자신의 위치가 무너질까 두려워 초조한 왕의 심리가 극적으로 표현되며 김지석의 연산군은 드라마 후반부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완벽한 아내>-막장으로 달리는 스토리 안에서도 소름끼치는 ‘사이코’

 

 

 


이 드라마는 후반부로 갈수록 제목이 왜 <완벽한 아내>인지 조차 모호한 스토리로 뒷심을 잃어버렸지만, 이은희 역할을 연기하는 조여정만큼은 끝까지 연기의 중심을 놓치지 않는다. 이은희는 극 초반부터 웃음을 가장하고 있지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캐릭터로서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조여정은 이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를 시청자들에게 설득시킨 일등 공신이었다. 주인공 심재복(고소영 분)의 이혼에 기뻐하며 혼자 웃으며 춤을 추거나, 웃음 뒤에 언뜻 보이는 서늘한 무표정은 이 캐릭터의 심리 상태를 제대로 표현해 낸 것이었다.이은희의 정체를 숨기면서도 그 캐릭터가 안에 숨겨진 정상적이지 않은 자아를 표현해 내는데 조여정은 더할나위 없는 적역이었다.

 

 

 


이은희는 주인공 심재복 보다 훨씬 더 주목도가 높은 캐릭터다. 이은희가 벌이는 사건이 이 드라마에 가장 큰 중심 축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갈수록 정신병원에 심재복과 이은희를 가두며 다소 어이없는 전개로 흘러간 것은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 안에서도 조여정은 소름끼치는 연기력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뇌리에 각인된다. 불안한 정신상태로 다른 사람을 상처입히며 즐거워 하는 ‘사이코’ 캐릭터는 <완벽한 아내>의 최고의 수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귓속말>-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이코’

 

 

 


이보영, 이상윤 주연에 박경수 작가가 집필하여 화제가 된 <귓속말>은 작가의 색채가 짙게 배어 나오지만 전작들에 비해 부족한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사건은 사건의 꼬리를 물고 연속적으로 터지지만 반복되는 위기 상황 속에서 긴장감은 오히려 줄어든다. 사건을 터뜨리는 부분에서 강약 조절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탓이다.

 

 

 


특히 이보영이 연기하는 신영주 캐릭터에는 오류가 많다.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고, 불치병까지 걸린 마당에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것은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너무 앞뒤없이 사건에 덤벼드는 탓에 오히려 사건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고 만다. 뚜렷한 대책이나 계획 없이 무작정 달려드는 여자 주인공의 행동은 오히려 시청자들의 호감도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는 것은 악역 캐릭터인 강정일(권율 분)과 최일환(김갑수 분)이다. 강정일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는 인물로, 자신이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빼앗기자 점차 괴물이 되어간다. 어떻게 보면 사랑 때문에 누군가를 위해 저지른 악행으로 시작된 일이지만, 그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고 그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이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에 분노하는 모습은 결코 인간적이지 않다.

 

 

 


그러나 악역 악역의 심리와 고뇌를 놓치지 않는 스토리 라인 덕분에 ‘섹시한 악역’으로서 평가받으며 주목을 받고 있다. 강정일을 연기하는 권율 역시, 이 드라마로 그동안의 순수하고 착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연기 변신을 인정받는 호연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두 드라마에서 보다 감정적으로 절제된 캐릭터지만  어쩌면 주인공보다 더욱 주목받는 악역이다.

 

 


그 뒤에 있는 절대 악 최일환은 <귓속말>에서 가장 큰 사건을 만들어 내는 최종보스격 악의 축이다. 최일환은 신영주의 아버지 사건을 조작한데 이어서 이제는 강정일의 유일한 혈육이었던 강유택(김홍파 분)마저 살해했다. 자신의 이익과 성공을 위해서라면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는 그의 캐릭터가 주는 무게감은 드라마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

 

 

 


강정일이 괴물이라면 최일환은 악마에 비견된다. 김갑수의 뛰어난 명불허전 연기력은 캐릭터의 존재감을 더욱 키우며 절대권력을 가진 가장 강력한 벽으로서의 역할을 확실하게 표현해 낸다.

 

 

 


주연보다 주목받는 악역, 공통점이 있다.

 

 

 


지금 주목받고 있는 악역들은 단순히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갖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감정을 쏟아내며 악행과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 악역이 아닌,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감정을 포기한 캐릭터들이다. 자신들이 잘못을 하지만 그 잘못이 실제로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남들의 고통에 대한 이해는 없으며 자신이 처한 고통은 참지 못하는 ‘사이코 패스’ 성격의 캐릭터들이 대세로 떠오른 것이다.

  

 

 

 

이런 악역들이 드라마 안에서 주목받고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연기자의 인기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시청자들이 그들에게 현실적인 감정이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생활에 마주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닌, 드라마 안에서 존재하는 무지막지한 ‘사이코’ 캐릭터들은 ‘역할’로서 각인될 수 있다. 그런 캐릭터를 소화해 내는 배우들에 대한 찬사 역시 경험해 보지 못한 영역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에 대한 놀라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악역에 힘을 지나치게 실어준 나머지 스토리 구조상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역시 적지 않다. 주인공의 존재감이 약해지는 것은 물론 캐릭터의 붕괴역시 일어날 수 있다. 주목받는 악역을 만들어 내는 것 보다 그 캐릭터를 스토리 안에서 어떻게 잘 공존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드라마에서 먼저 선행되어야 할 고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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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녀와 야수>는 원작을 재현하는데 주력한 만큼,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거나 이야기의 방향이 틀어지는 부분은 없다. 새로운 노래 세 곡과 왕자의 어린시절, 벨의 어머니 이야기 등이 추가 되었지만 큰 줄기는 옛날 애니메이션의 구성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동화적인 판타지를 추구하는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상당히 전형적인 이야기 속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해석의 여지도 크다고는 할 수 없다. 선악구도가 뚜렷하고, 이야기의 흐름이 예상 가능한 범주에서 흐르는 동안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해석 역시 전형적인 공식을 따른다. 악역은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악해야 하고 주인공은 다소 괴팍하더라도 착하고 따듯하며 정의로운 심성을 가져야 하는 동화의 공식은 그대로 적용된다.

 

 

 

 


 
착하고 똑똑한 주인공 벨(엠마 왓슨 분)의 연기 역시 해석의 여지가 크지 않다. 여기에 엠마왓슨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외모는 '미녀' 타이틀에 다른 캐스팅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들어맞는다. 그러나 엠마왓슨은 이 전형적인 연기조차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다. 이를테면 성에 처음 들어가서 야수의 모습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그렇다. 야수의 무서운 얼굴을 확인하고 놀라야 하는 장면임에도 엠마왓슨은 지나치게 감정을 자제한다. 야수에게 느끼는 두려움이 표현되어야 하는 장면에서 엠마왓슨은 그 감정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에서 첫 식사를 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마법같이 펼쳐지는 디너파티를 놀랍고 신기한 표정으로 즐겨야 하는 장면임에도 엠마왓슨의 표정은 입가에 웃음만 띈 채, 무미건조하다.

 

 

 



마지막 야수가 악역인 게스톤(루크 에반스)이 쏜 총을 맞고 쓰러져 죽어가는 장면에서 엠마왓슨의 이런 부족한 감정 표현이 절정에 달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표정을 연기해야 하는 여배우의 얼굴에서 안타깝고 슬픔에 가득 찬 느낌을 받기란 불가능하다. 눈물은 흘러내리지만 입가에는 묘한 웃음기를 띄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엠마왓슨의 감정전달은 '전형적인' 영화에서 조차 실패하고 만다. 그동안 미국 현지에서 조차 연기력 논란이 있었던 엠마왓슨이기에 여전히 성장이 요원한 연기력은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엠마왓슨은 <미녀와 야수> 이전에 영화 <라라랜드>에 출연 제안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스케줄상 출연을 고사한 여주인공 역할은 엠마스톤에게 돌아갔고 엠마스톤은 <라라랜드>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오스카 수상의 영광을 얻었다. <라라랜드>를 거절했던 엠마왓슨으로서는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쇼비지니스계에서 캐스팅의 뒤얽힘은 흔한 일이다. <미녀와 야수>의 벨 역 조차 제작단계에서는 엠마왓슨이 아닌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염두 해 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렇기에 이미 제작된 영화의 캐스팅에 대하여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엠마스톤이 오스카 트로피를 가져간 만큼 한 번쯤은 궁금해질 수 있다. 과연 엠마왓슨의 <라라랜드>는 어땠을까.

 

 

 


 
<라라랜드>는 확실히 엠마스톤이 장악하는 영화는 아니다. 독특한 스타일과 유려한 음악이 어우러져 특유의 고유한 분위기를 만드는 영화다. 영화가 특별한 까닭은 연기자들의 연기보다는 심혈을 기울인 듯한 새로운 연출에 더 큰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엠마스톤은 그 특유의 분위기에 녹아들며 이야기를 집중하게 만드는데 무리없는 연기력을 선보인다. 엄청나게 눈에 띄는 연기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작품 안에서 그 작품의 결을 살리며, 혼자 튀기 보다는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이전 베니스 영화제의 트로피를 거머쥔 것도 우연만은 아니다.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영화에서 그는 충분히 제 몫을 해냈다. 풍부한 표정과 표현은 다소 과하게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모자른 것 보다는 낫다.

 

 

 

 



<스파이더 맨>의 여자친구 역으로 알려진 엠마스톤이 오스카를 타기까지는 긴 여정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엠마스톤은 <매직 인 더 문라이트>와 <이레이셔널 맨>으로 천재 감독으로 일컬어지는 우디 앨런의 뮤즈가 되기도 하고, <버드맨>처럼 작품의 색이 짙은 영화에서 깊은 감정의 흐름을 보여주기도 했다. 영화 <헬프>에서도 피부색 차별이 당연하던 시절, 흑인들의 편에 서서 책을 집필하는 캐릭터를 맡아서 눈에 띄기 보다는 어우러지는 잔잔한 연기를 해낸다. 코미디, 로맨스, 생활연기에 이르기까지 엠마스톤은 다양한 분위기를 표현해 낼 줄 아는 배우다. 물론 모두 완벽한 연기를 보여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연기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아직 성장할 여지가 남아있지만, 특유의 스타일을 설득시키는 능력은 탁월하다.

 

 

 


<해리포터>에서 <미녀와 야수>로 이어지는 엠마왓슨의 행보는 확실히 흥행성이 있지만, 그의 화려한 외모에 비해서 역할이 전형적이라는 느낌은 지워버릴 수가 없다. 엠마스톤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엠마왓슨의 연기력은 전형적인 흐름에서조차 어딘가 경직되어 있는 느낌이다. <라라랜드>에 엠마왓슨이 출연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관객들에게 있어서는 다행한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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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가 JTBC <효리네 민박>을 통해 컴백과 함께 예능에도 복귀한다. <이효리의 오프더 레코드> <이효리의 골든 12> <이효리의 X언니>에 이어 이효리 타이틀을 단 리얼리티만 벌써 네 번째다. 이효리의 리얼리티가 무려 네 번이나 제작될 수 있었던 것은 이효리라는 브랜드의 특별함을 증명하는 일이다.

 

 

 


 

이효리의 이번 컴백은 무려 4년만이다. 오랜만의 컴백인 까닭에 정규앨범과 더불어서 예능 컴백을 결정한 이효리가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감은 상승하고 있다. 그동안 이효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해왔다. 핑클로 데뷔한 이래, 가장 성공한 솔로 댄스 여가수라는 평가를 얻고, 가요대상은 물론 예능 대상을 수상할 정도의 파급력을 보인 이효리는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무후무할 정도의 톱스타였다. 

 

 

 


 


대중의 기대를 영리하게 배신해 온 이효리


 

 

이런 이효리의 성공 뒤에는 섹시함과 소박함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통해 대중의 기대를 영리하게 배신하는 전략이 있었다. <해피투게더>에서 신동엽과 쟁반 노래방을 진행하며 재치있는 언변을 선보이며 대중을 웃음짓게 한 이효리가 무대 위에서는 ‘10분 안에 남자를 꼬시겠다’며 섹시 여가수로서의 존재감을 발휘한다. 그 이전에 핑클에서는 '내 남자친구에게' ‘영원한 사랑’등으로 대변되는 귀엽거나 청순한 이미지였던 이효리가 그 이미지를 부정하고 철저하게 섹시 아이콘이 된 것 또한 ‘이효리’이기에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핑클의 이미지를 부정하고, 예능인 이효리의 이미지를 배반했지만 또 다른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낼 줄 알았던 이효리에게 대중은 열광했다. 가는 곳마다 이효리 효과를 몰고 다니며 23살이라는 나이에 최고 전성기를 맞은 이효리는 이후로도 독보적인 여가수와 패션 아이콘으로서, 동시에 친근한 예능인으로서 소비된다. 스타인 동시에 옆집 언니 누나 같은 친근함을 모두 설득시킨 이효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화 되었다.


 

 

 

이효리의 리얼리티는 그런 이효리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톱스타의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그 안에서 이효리가 보여줄 예능감에 대한 기대를 동시에 하게 만든 만큼, 이효리는 리얼리티에서 제작진과 시청자가 기대하는 모든 것을 충족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이었다. 다소 아쉬운 가창력이 논란이 될 때도 있었고, 춤을 기가 막히게 잘 추는 댄서라 부르는 데도 한계가 있었지만 이효리는 항상 이효리 자체로 인정받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단 하나의 무기가 아닌 다양한 무기로 이효리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트렌드세터이자 엔터테이너였기 때문이다.

 

 

 


 


'이효리'라는 또 하나의 브랜드


 

 

사실 이효리의 성공은 이효리의 표현력 이전에 이효리의 외모에도 큰 빚을 지고 있었다. 무대에서는 굴곡진 몸매를 강조한 의상을 입고 섹시한 춤을 추던 이효리가 옆집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여자로 변해 맨얼굴을 드러내고 농담을 툭툭 던지는 모습은 그동안 어떤 섹시스타도 하지 않던 신선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효리의 스타성은 ‘섹시한’ 여성이 ‘웃기기까지 했을 때’ 가능한 것이었다. 이효리가 '섹시한' 가수가 아니었다면, 이효리가 재치가 없었다면 이 두가지 이미지를 동시에 추구하며 대중의 관심을 붙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두가지 이미지를 동시에 내세울 수 있는 캐릭터는 이효리가 유일무이 했다. 이효리는 그렇게 이효리 자체의 브랜드로 소비되었다. 이효리가 특정한 가수나 예능인이라고 한정짓기 보다는 어느 영역을 구분지을 수 없는 엔터테이너로서의 소비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있었던 ‘이효리’ 타이틀을 단 리얼리티 예능이 세 번이나 있었던 것은 그 브랜드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이효리는 달라졌다. 이효리는 이제 채식을 이야기하고 동물 보호를 이야기한다. 상업 광고에도 출연하지 않는다. 스타나 부자가 아닌 평범한 남자와 결혼을 했고, 서울과 멀리 떨어진 제주도로 훌쩍 떠났다. 활동을 할 때는 여전히 ‘섹시한’ 이효리였지만, 그를 대변하는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변화된 이효리, 스타가 아닌 진실한 소통을 보여줄까. 



 

 

 

세 번의 리얼리티가 진행될 동안 이효리도 변화를 거듭해 왔으나, 세 번의 리얼리티 속 이효리는 언제나 스타였다. <오프 더 레코드> 속에서는 이효리라는 톱스타의 은밀한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이 주효했고, 소셜테이너로서 나선 <골든 12> 속에서도 '힐링'이라는 메시지 보다는 이효리의 패션이나 이효리가 사는 곳, 이효리가 만나는 유명인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컸다. <x언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효리가 해당 프로그램에서 아이돌 그룹 스피카의 스타일부터 트레이닝까지 담당할 수 있었던 것은 이효리라는 독보적인 이름에 대한 가치가 있기에 가능했다.


 

 

 

<효리네 민박>은 그러나, 그런 이효리가 이상순과 함께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민박집을 차린다’는 콘셉트부터 그간의 스타 이효리를 내세운 방송이랑은 방향을 달리한다. 좀 더 포근하고 따듯한 콘셉트로 ‘소통’과 ‘화합’에 강점을 둔 것이다. 이효리의 변화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효리에 대한 호기심은 아직 유효하고, 오랜만에 만나는 이효리라는 브랜드는 아직 대중에게 있어서 소구력을 유발하는 일이다. 이효리는 이번에도 무대위의 이효리와 예능의 이효리를 동시에 출범시키며 또다시 이미지의 배반을 꾀한다. 과연 이번에도 대중의 기대를 영리하게 배반하며 ‘여전히 이효리’ ‘역시 이효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그의 컴백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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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패러디의 조건은 무엇일까. 첫째로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극소수만 아는 사건이나 인물을 패러디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에서 한국 대통령을 패러디해도 미국 사람들을 웃길 수는 없다. 반대로 오바마 대통령이나 트럼프를 한국에서 패러디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 사람의 특징이나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한국 사람들 역시 전반적인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한마디로 패러디는 ‘대체로 알만한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둘째로 의외성이 있어야 한다. 일단 패러디는 화제성 있는 사건을 다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미 다른 곳에서 사용된 소재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패러디에는 이야기를 살짝 비틀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재치나 반전이 꼭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통쾌함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단순히 누군가를 따라하는 것을 넘어서 통렬한 풍자와 비판을 가미한다면 카타르시스는 커질 수 있다.

 

 

 



활발했던 정치 패러디, 그러나 암흑기는 찾아왔다.

 

 

 


SNL(saturday night live)은 패러디로 사는 프로그램이다. 한 주간에 화제가 됐던 모든 것들을 패러디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 공감에 대한 관심을 자양분 삼아 성장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위클리 업데이트’같은 코너가 마련되어 있는 것 또한 최신 이슈에 민감한 SNL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미국에서 출발한 이 프로그램은 전 세계로 수출이 됐는데, 유독 한국 SNL 만큼은 패러디의 성역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여의도 텔레토비’등 활발했던 패러디가 정권 출범 이후 자취를 감춘 것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던 방송사의 상황을 직감하게 해준다. 정치풍자는 완전히 사라졌고, 대통령 패러디도 자취를 감췄다. tvN의 모회사인 CJ e&m에 정치적인 압력을 받았던 것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14일 sbs 대선토론회에서 한 기자는 “세계 언론자유지수가 역대 최저 70위까지 추락했다”며 공영방송에 대한 반감과 불신을 지적했다. “대선 후보로서 공영방송의 점수를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후보들은 대부분 낮은 점수를 주며 공정한 언론을 만들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단순히 추측이 아니라, 언론 장악이 있었고 그런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단순히 시사프로그램이 아닌, 코미디 프로그램에까지 들이댄 칼날은 정권의 치졸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SNL은 코미디 프로그램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이 사태로 아주 큰 타격을 입은 프로그램 중 하나다. 정치풍자가 사라지자 뻔한 패러디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한국에는 정치인들을 직접적으로 패러디하며 코너로 만들 정도의 과감한 프로그램은 거의 없었다. SNL은 금기를 깨고 권력자들에 대한 날이 선 풍자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또한 ‘텔레토비’를 이용하여 캐릭터를 만들거나, 보모를 뽑는 오디션이라는 설정으로 대선주자들을 패러디한 인물들을 내세워 대선 토론을 패러디하는 등 패러디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공감대는 물론 의외성과 통쾌함을 다 잡아내며 화제에 올랐다. 단순히 성대모사나 흉내내기가 아닌 성격과 특징, 그리고 그들이 했던 발언들에 대한 해학은 SNL을 특징짓는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연예인 '디스' 정치 풍자만큼의 호응이 없었던 이유는?

 

 

 

 

 

 

그러나 이런 정치풍자가 사라지자 SNL은 연예인에 집중한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인들에대한 패러디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 쉽기 때문이다. 잘못을 저지른 연예인들을 ‘디스’하거나  잘못을 저질러 자숙기간을 거친 연예인들이 호스트로 출연해  자신의 잘못을 희화화 하는 ‘셀프디스’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잘못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개그 소재로 삼는 것은, 곧 유행처럼 번졌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점점 차갑게 돌아서고 있었다.

 

 

 


그 이유는 마치 연예인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진지한 반성이나 성찰보다는 가벼운 농담거리로 전락시키는 행동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의 잘못에 대해 입을 꾹 다문채 아무 말도 못하는 강압적인 분위기나 잘못을 모른 척 하는 행태보다는 낫지만, 자신이 한 잘못들에 대한 가벼운 농담은 때때로 불쾌했던 것이다. 정치인에 대한 패러디의 무게와 연예인들의 패러디의 무게는 같을 수 없었다. 정치는 사회 전반에 걸친 중요한 사안이지만 연예인들은 재미와 흥미에 국한되어 있는 인물이다. 정치에 대한 패러디는 사회에 대한 패러디와 맞물려 있지만, 연예인에 대한 디스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 이들이 사회적인 문제를 저지르고, 그 문제를 희화하 하자 풍자와 해학이 아닌, 그 잘못은 단순한 웃음거리가 되고 만것이다.  통쾌함도 풍자도 해학도 없는 패러디는 결국 잘못을 가볍게 넘기려는 연예인들의 이미지 메이킹에 불과했다.

 

 

 


 

‘셀프디스’뿐 아니라 전반적인 연예인 디스 역시 빛을 잃어버린 것은 마찬가지였다. 정치인의 잘못된 행동에는 입을 다물고, 그 대체제로 선택한 것이 연예인이라는 것은 강자에게는 몸을 사리고 약자에게는 칼날을 들이대는 전형적인 행동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SNL의 패러디는 자유로운 영역이 아니라 한정된 영역에서만 가능했고, 몸을 사린 개그는 외면 받기에 충분했다. 연령대가 15세로 낮춰지면서 섹시코미디 역시 순화할 수밖에 없었던 SNL은 전반적으로 침체기를 걸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활력을 찾은 SNL, 언론의 자유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다

 

 


그러나 최근 SNL은 다시 활력을 찾았다. 바로 박근혜 정권이 퇴진하고 나서 부터다.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SNL은 다시 정치 패러디를 쏟아냈다. 이번에는 <프로듀스 101>과 <미운 우리새끼>(이하 <미우새>)를 패러디해 ‘미운우리 프로듀스 101’이란 코너를 만들어 냈고, 정치인들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이어갔다. 반응은 뜨거웠다. 단순한 성대모사가 아닌, 코미디에 섞인 시의성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마음 속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립싱크 파문으로 퇴출된 JYD 여가수 컴백 문제”같은 식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풍자 역시 서슴지 않는다. 가장 눈여겨 볼 점은 정치 풍자를 젊은 감각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단순히 정치인의 말을 인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살짝 비틀어내는 능력은 SNL만의 장점으로, <개그콘서트>등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한 단계 높은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젊은 층이 보는 <프로듀스 101>같은 아이돌 오디션등과 인기있는 <미우새>을 이용해 정치를 어렵고 지루한 것에서 젊은 층이 공유할만한 이야깃거리로 바꾸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정치적 사건을 비틀어 내 웃음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SNL의 시도는 신선함을 제공한다. 이렇듯 SNL의 패러디가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성역없는 개그’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속박이 아닌 자유가 프로그램 하나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통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왜 언론이 정권과 결탁하면 타락할 수밖에 없는지는 시사 프로그램도 아닌 SNL만 봐도 증명이 되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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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갈등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인물간의 대립은 드라마에서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 속에서도 여러 가지 갈등관계가 나온다. 형제자매간의 갈등, 부모와의 갈등, 연인과의 갈등, 직장에서의 갈등 등, 뜯어보면 모든 관계는 갈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모든 갈등 중, 가장 비중있게 다뤄지는 갈등 중 하나는 바로 변미영(정소민 분)과 김유주(이미도 분)의 갈등이다. 그들의 악연은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유주는 학창시절 변미영의 뚱뚱한 몸을 약점 삼아 괴롭혔던 학교폭력 가해자다. 변미영은 소심한 성격 탓에 제대로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고, 그 시절은 고스란히 아픈 기억으로 남는다. 동창회에서 김유주의 모습을 보고 잘못이라도 한 사람처럼 도망치듯 자리를 뜨는 쪽은 변미영이다.

 

 

 

 

 

 

동창회 정도로 끝이 난다면 다행이지만 악연은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변미영이 힘겹게 취직한 회사에 바로 김유주가 있었기 때문. 직속 상사는 아니지만, 김유주는 이미 팀장이다. 인턴으로 겨우 회사 생활을 시작한 변미영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다. 김유주는 여전히 변미영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존재고 피해자지만 피해야 하는 쪽은 또다시 변미영이다. 살을 뺀 변미영을 못알아 보던 김유주가 변미영을 알아보자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김유주는 여전히 뚜렷한 이유 없이 변미영을 못마땅해 하며 변미영 앞에서 대놓고 신경을 긁거나 부당한 일을 시키거나 하며 변미영을 괴롭힌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픈 과거, '사이다'를 위해서라기엔 가혹하다

 

 

 


학창시절 이후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변미영은 여전히 김유주의 발아래 놓여있다. 단순히 사회적 위치 때문이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그렇다. 그 때 당했던 일에 대한 트라우마는 현재도 영향을 미친다. 변미영은 김유주의 얼굴만 봐도 가슴이 떨린다. 당한 건 변미영이지만 피하는 쪽도 변미영이다. 그것은 약육강식의 법칙이라기엔 지나치게 가혹하다. 

 

 

 


 

드라마는 이런 상황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바로 변미영의 오빠 변준영(민진웅 분)을 통해서다. 김유주는 변준영과 사귀고 있는 상태고, 급기야 임신까지 한다. 중간에 변준영의 거짓말로 인해 사이가 위태로워지지만 뱃속의 아이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하게 만드는 매개채로 사용되고 김유주와 변준영은 결국 결혼을 결심한다. 변미영과 김유주의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이런 전개는 나중에 김유주에게 변미영 측이 던질 통쾌한 한방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변미영의 언니인 변혜영(이유리 분)은 변미영과 다르게 당당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을 줄 알며, 누구에게도 주눅 들지 않고 독설을 내뱉는 캐릭터다. 막내 동생 변라영(류화영 분) 역시 천방지축에 할 말 다하는 캐릭터로 설정되었다. 변미영의 상황을 알면 시원한 탄산음료를 들이키는 느낌의 통쾌한 한 방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런 통쾌함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학교 폭력 희생자에 대한 드라마의 시선은 안타깝다. 김유주가 변미영의 집으로 인사를 온 날, 두 사람은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처음으로 인지하게 되지만 변미영은 가족들에게 진실을 말할 수 없다. 변준영이 김유주를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유주가 임신했기 때문인 탓이 더 크다. 작가는 김유주의 임신으로 두 사람이 앞으로 가족이 될 수밖에 없다는 복선을 깐다. 그것이 바로 한국 가족 드라마의 정서고, <아버지가 이상해>는 바로 그 정서를 답습할 수밖에 없는 가족극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고통받는 피해자, 극복은 개인의 몫인가?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김유주를 받아들이면 앞으로 변미영은 끊임없이 고통받을 것이다. 김유주를 마주쳐야 할 때마다 오는 떠올리기 싫어도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과 고통의 시간들을 변미영에게 감당케 하는 것은 지나친 폭력이다. 물론 드라마는 이 둘의 분위기를 점점 화해 모드로 변모시켜 나갈 것이다. 그러나 용서라는 것은 그리 함부로 다룰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아무리 김유주가 후에 개과천선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 해도 가족이 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과 친하게 지내야 하는 상황이 억지로 형성되는 것만큼 불편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용서했다는 뜻이 곧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뜻은 아니다. 용서와 관계는 별개의 문제다. 용서를 했다고 하여 친하게 지내야 할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다.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문제라면 더더욱 그렇다.

 

 

 


아무리 다 잊자고 해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과거고, 사과를 해도 저질렀던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김유주가 오빠와 결혼을 원하면서 칼자루를 쥔 쪽은 변미영이 되었지만, 변미영은 여전히 피해자다. 자신이 어떤 일을 당했고 얼마나 힘들어야 했는지 가족에게조차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억울하다고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피해자는 점점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고 만다.

 

 

 

 

 

 

누군가가 희생해야 한다면, 사과를 하는 쪽이 희생을 해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억지로 하는 사과는 진심어린 사과가 아니다. 김유주가 그렇다. 변준영과 변미영의 관계를 알기 바로 몇 시간 전만해도 김유주는 변미영을 부당하게 괴롭히며 ‘갑질’을 서슴치 않았다. 관계를 알고 나서 바로 돌변한 김유주의 친절은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소름이 끼칠 뿐이다. 진정어린 사과를 할 거라면 변미영이 원하는 사과를 해야 한다. 변미영은 “원하는 것이 뭐냐”는 김유주의 질문에 “너랑 가족이 되지 않는 거.”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그 뜻을 존중해 줘야 진정한 사과가 될 수 있다. “그건 못하지만 미안한 건 미안해”라고 얘기해 봤자 목적을 위한 사과가 될 뿐이다.


 

 

 

 


용서와 화해의 강요, 제 3자가 아닌 당사자에게는 폭력이다.

 

 


용서도 좋고 화해도 좋다. 그러나 학교 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를 한데 모아두고 가족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가. 실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친구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가족 관계도 끊길 수 있는 중차대한 일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 두 사람의 관계를 결국에는 화해할 수밖에 없는 뉘앙스로 몰고 간다. 그것이 과연 학교 폭력 피해자에게는 얼마나 끔찍한 악몽인지는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감정을 변미영이 극복해야 할 과제처럼 몰고간다. 가족들에게 말을 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혼자 갈등하며 김유주를 상대해야 하는 쪽은 변미영이다. 김유주를 마주칠 때마다 혼자서 마음을 진정시켜야 하는 것도 물론 변미영이고 반격을 한 번 할 때마다 큰 결심을 해야 하는 것도 변미영이다.

 

 

 


이런 일이 있다면 당연히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서로의 마음을 공감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가족이다. 변미영과 김유주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가족의 무관심 나아가 학교의 잘못된 시스템과 분위기가 만든 사회적인 문제다. 그러나 이 문제를 오롯이 떠안아야 하는 것은 변미영 개인이고, 결국 그를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변미영이다.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다.

 

 

 


학교 폭력 가해자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 누가 치졸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드라마는 용서를 납득할만한 계기를 만들 것이다. 그러나 ‘용서해야만 하는’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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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사이트 메갈리안에서 제작한 티셔츠에 적힌 "Girls do not need a prince." 라는 문구는 공감보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티셔츠를 입은 성우의 SNS 인증사진이 논란이 되며 게임업체로부터 계약해지를 당했고, 그에 동조하는 뉘앙스의 멘션을 SNS에 올린 웹툰 작가등도 테러 수준의 비난을 받았다. 

 

 

 



'일간 베스트(일베)'에 쏟아지는 시선만큼이나 부정적인 시선이 메갈리안에도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사이트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주도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단순히 성별로 규정된 소모적인 싸움, 그 싸움으로 대체 무엇을 얻었나.

 

 

 


 
메갈리안이 채택한 방식은 이른바 '미러링'이다. 일베등의 사이트에서 보이는 여성혐오와 편협하기 짝이 없는 편가르기등을 그대로 적용하여 자신들의 행동을 돌아보게 하자는 것. 그러나 그 미러링은 단순한 수단이 아닌 메갈리안의 본질이 되었다. 그들은 남성에게 폭언을 퍼붓고 날카롭게 공격하는 것을 정의로 규정한다. 여성들의 승리가 남성을 굴복시키는데서 온다고 믿는 것이다. 일베와의 차이점을 느낄 수 없는 부분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성별' 자체를 적으로 규정하고 싸우는 경우의 사례를 찾기는 힘들다. 단순히 '여성'이기 때문에, 혹은 '남성'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는 무리로 분류하는 것은 굉장한 오류다. 동성 집단에서도 얼마든지 크고 작은 사고는 일어난다. 남성이 다른 남성에게 폭언을 퍼부었다고 해서, 남성이 남성을 싫어하는 감정을 정당화하거나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여 동족혐오의 감정을 당연시 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우스운 일도 없기 때문이다.

 

 

 



남성들의 경우 대부분 직장 상사나 군대내부의 선임들에게 입는 피해는 같은 남성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여성들의 경우 역시 끊임없는 갈등의 화두는 시누이나 시어머니 같은 '시댁 식구들'이다. 그들이 갈등을 일으키는 '불합리함'의 대상은  같은 여성이다. 이런 일부 사례들을 확대시켜 남성은 남성을 혐오해야 하고, 여성은 여성을 혐오해야 한다는 프레임을 씌운다면 동의할 여성이나 남성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바로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해서 자행되는 황당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우습게도 그들의 '여혐' '남혐' 프레임은 서로를 갈망하는데서 온다. 된장녀나 김치녀같은 비하 발언을 들여다보면 그 말의 본질은 여성과의 데이트나, 사귐에 대한 이야기다. 이성간의 관계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 관계에 대한 호기심이 없었다면 이런 단어가 생길리 없었다. 이에 대항하는 '한남충' 같은 단어들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메갈이 표방하는 '왕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문구 역시 역설적으로, '왕자라는 로망'을 꿈꾸는데서 나온다. 대부분 그들의 발언들은 서로가 선택한 '연인'이나 '배우자'에 대한 실체없는 편견으로부터 비롯된다.

 

 

 



서로 그렇게 싫다면 독신주의를 고수하고 연애따위는 안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서로를 완전히 무시하지 못하고 성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대상으로 폄훼한다. 결국 서로를 완전히 놓아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가 증오스럽다면 안봐야 정상인데, 여전히 남성은 예쁘고 매력적인데 착하기까지한 여성과의 관계를 원하고, 여성들은 자신에게 헌신할 멋진 남성에 대한 판타지를 버리지 못한다. 그런 판타지를 충족시키지 못하니 서로 비난하면서도 끊임없이 서로를 갈구하는 것이다.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진정한 '페미니즘'에 관하여

 

 

 

 


 
영화 <히든 피겨스>는 숨겨진 숫자와 숨겨진 인물이라는 중의적 표현을 가진 제목을 사용했다. 이 영화는 잘 알려졌다시피 '페미니즘'에 관한 영화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단순한 페미니즘이 아니다. 여성과 남성의 차별도 물론 있지만 가장 본질적인 것은 '피부색'에 대한 차별이다. 영화는 1926년, 한 흑인 소녀의 대사로 시작한다. 단순히 숫자를 나열하는 것 같지만 그 소녀는 소수를 찾고 있다. 천재소녀 캐서린 콜먼(타라지 p. 헨슨 분)은 수학과 계산에 있어서 천재적인 지능을 타고난 흑인 여성이다. 시간은 흐르고 1961년이 되어 40대가 된 캐서린은 최첨단을 달리는 '나사'에서 일한다. 당시 흑인여성으로서는 굉장한 특혜다. 그러나 캐서린을 비롯해 그의 친구 두 명, 도로시(옥타비아 스펜서 분)와 메리(자넬 모네 분)는 흑인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질 수 없다. 

 

 

 



같은 여성이라도 백인 여성은 관리직에 있지만, 흑인 여성은 관리직을 맡은 전례는 없다는 영화속 배경은 차별의 지점이 여성보다는 피부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유는 없다. 단지 그것이 당연한 관례였기 때문이다. 흑인은 백인보다 우월할 수 없다는 인식. 지금 그런 말을 들으면 황당하지만, 그 당시엔 그런 사고방식이 통했던 것이다. 마치 남자와 여성의 편을 가르고 단순한 성별로 규정지어 서로를 물어뜯는 '이성혐오' 세태와도 닮아있다. 물론 영화속 현실은 사회적으로 그런 사고방식이 통용된다는 점에서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다. 

 

 

 

 



흑인 여성이라는 위치에 놓인 그들은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대놓고 그들에게 대들거나 싸울 수 없다. 꼭 그런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라도 정당한 이의제기조차 묵살 당한다. 백인들과 식당은 물론 화장실도 나뉘어져 있다는 것은 지금 보면 참으로 이상하지만 그 당시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뛰어난 기하학 실력을 바탕으로 운좋게 백인들의 일터에서 계산하는 임무를 맡게 된 캐서린은 처음부터 동물원의 원숭이 구경하듯 보는 경멸적인 시선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역시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지만, "미안하지만 너희가 사용하는 화장실이 어딘지는 나도 모른다."는 차가운 대답만 돌아온다. 결국 화장실 한 번을 가기위해 캐서린은 800m 떨어진 건물을 오가야 한다. 하루에 40분이라는 시간을 써 가면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는 커피 주전자 옆에는 'colored(유색인종)'라는 딱지가 붙은 작은 주전자가 새로 생긴다. 캐서린이 그 커피포트를 사용하는 것조차 못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캐서린은 그 모든 차별을 받아 들여야 한다. 스스로 그 구조를 바꾸기엔 그는 너무나도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기 때문이다. 천재적인 능력만으로는 그 편견을 깨뜨릴 수 없는 것이다. 일하는 중에도 그는 데이터의 절반을 펜으로 가린 자료를 받아야 한다. '기밀사항'은 흑인 여자에게 함부로 공개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계산이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캐서린은 그 상황도 받아들인다. 행간을 읽어 자료를 분석하고 결국 계산까지 해낸다. 이 일로 상관인 알 해리슨(케빈 코스트너 분)의 신임을 얻게 된 캐서린은 결국 정당한 자료를 넘겨 받을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첫 번 째 포인트가 있다.

 

 

 


 


캐서린을 비롯한 도로시, 메리는 모두 벽에 가로 막힌다. 도로시는 관리자 역할을 도맡아 하지만, 관리자가 될 수 없고 메리는 엔지니어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이 일을 해결하는 방식은 부당한 현실에 대한 분노나 절망이 아니다. 그들은 그 현실 속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낸다.

 

 

 



캐서린은 완벽한 계산으로 신뢰를 쌓고, 도로시는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여 새로운 IBM전산기기의 사용법을 익힌다. 메리는 자신이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필요한 수업을 듣기 위해 재판을 신청한다. 비가 오는 날, 화장실에 다녀오다 쫄딱 젖은 캐서린이 "어디갔다오냐"는 상관의 말에 "여기는 내가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없다."며 절규하는 장면은 그가 얼마나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냈는지를 알기 때문에 가슴에 와닿을 수 있다. 화장실의 '유색인종' 간판을 때려 부수는 알 해리슨은, 캐서린이 어떻게 그들을 감화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페미니즘은 단순히 '여성'의 인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히든 피겨스>는 여성이나 남성이라는 존재가 아닌 '피부색'을 주제로 페미니즘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성별이나 피부색, 어떤 기준으로든 서로를 구분짓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동등하고 가치있는 존재로서 인간을 대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바로 진정한 '페미니즘'에 대한 고찰인 것이다.

 

 

 



"내 피부색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판사님은 최초가 되실 수 있습니다."

 

 

 

 



 
밖에서는 여전히 흑인들에 대한 차별 철폐 시위가 이뤄지고 있지만 <히든 피겨스>의 주인공들은 백인들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간다.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백인 남자만 듣는 수업을 들어야 하는 메리는 '안된다'는 세상의 편견에 지지않는다. 그러나 폭력적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다. 법정에서 메리는 말한다.

 

 

 



"나사의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백인들의 학교에 가야합니다. 저는 제 피부색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건 제가 선택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판사님이 도와주신다면 할 수 있습니다. 이곳서 오늘 벌어지는 모든 심리중에 어떤 것이 100년 후 가장 중요하게 평가 받을까요. 어떤 것이 판사님을 최초의 판사로 기억되게 할까요."

 

 

 



판사 앞에서의 메리의 연설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전례는 없다. 그러나 최초가 되겠다. 혼자서는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당신이 힘을 보태준다면 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신도 최초가 될 수 있다.

 

 

 



그는 판사에게 지금 닥친 현실의 부당함과 분노를 쏟아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 그리고 그것에 필요한 판사의 도움과 그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 했을 뿐이다.  결코 그 현실에 굴복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또는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지 않고도 그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현실을 극복해 냈다.

 

 

 



우리는 부당한 일을 겪으면 벌어진 일들에 대해 분노한다. 분노해야 할 상황에서 분노는 당연한 것일 수 있지만, 그 이후의 태도를 어떻게 갖느냐는 우리의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가끔은 너무나도 쉽게 나와 다른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고 부당한 상황을 만든 사회를 원망하고 분노를 위한 분노로서 감정을 남겨두진 않는지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벌어진 일을 과장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성숙한 태도다. 그러나 그 안에서 절망하느냐, 한 걸음 더 나아가느냐는 우리의 선택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남성을 적으로 규정할 필요는 없다. 같은 맥락으로 유리천장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사회를 적으로 규정해서도 안 된다. 이 모든 편견과 역경에 맞서 싸우는 것은 누군가를 꼭 상처 입혀야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 상황 속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결코 포기하지 않으면 적어도 나를 둘러싼 세상은 바뀔 수 있다. 여성에 흑인이었던 그들이 나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비난하는 것은 너무 쉽다. 현실에 굴복하는 것에 대한 좋은 핑계가 되기 때문이다. 남혐, 여혐에 대한 설전이 오가는 것 역시, 다른 이들을 규정하고 판단할 근거 뒤에 숨으면 자신의 책임은 없어지니 얼마나 편리한가.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이라면 이 시대의 현실을 부정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현실에 대한 비난 뒤에 숨은 자신을 정당화 하지도 않는 법이다. <히든 피겨스>의 숨겨진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똑바로 현실과 마주선채, 자신의 길을 간다면 그들의 세상이 바뀌고 결국에는 그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비난을 멈추고 자신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인정할 때 나오는 엄청난 힘은 이 험난한 세상도 설득시킬 수 있는 강력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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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의 여왕>의 주인공 유설옥(최강희 분)은 놀라운 추리실력을 가졌지만, 그 특출 난 능력을 발휘하고 살 기회가 없었던 인물이다. 누군가의 학력이나 사회적 위치는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기준이 된다. 명문대나 대기업이라는 간판은 한 사람의 가치를 다시 평가하게 만든다. 금수저라는 말이 유행한 것 또한 '스펙'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됐다. 가끔은 비아냥을 가장하기도 하지만 '금수저'에 대한 단어에 숨겨져 있는 것은 ‘금수저’에 대한 호기심과 부러운 시선이다. 이런 현상 역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라는 가치가 그 사람의 삶 전반을 평가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군가의 삶에 대한 행복도는 그 사람의 인간관계나 인격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받지만, 제 3자가 누군가를 평가할 때는 막연히 그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 많을수록, 지위와 명예가 높을수록,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할 것이라고 여긴다. 반대로 이것은, 더 가지지 못한 자들은 상대적으로 박탈감에 시달리고 불행을 끊임없이 상기하며 살아갈 것이라는 편견을 뜻하기도 한다.

 

 

 



스펙을 속여야 추리를 할 수 있는 주인공의 현실

 

 

 

 



유설옥은 그런 편견을 그대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결혼 8년차 주부. 학력은 고졸이다. 거기에 시누이와 시어머니의 지독한 시집살이까지. 남편이 검사라는 멀쩡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유설옥에게 오히려 그 타이틀은 버거운 짐이다. 남편에 비해 스펙이 없는 유설옥은 집안에서 제 목소리 한 번 내기 어려운 존재기 때문이다. 유설옥의 희생은 남편이 검사가 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실제로 스펙을 가진 것은 남편이고 유설옥은 그저 별볼일 없는 아줌마일 뿐이다.

 

 

 


그런 유설옥에게도 특기가 있었으니, 바로 추리력이다. 추리소설은 물론, 각종 범죄학 전공서적과 흥미로운 사건들에 대한 기사 스크랩까지. 한때 형사가 꿈이었던 유설옥은 돈 주고도 배우거나 살 수 없는 방대한 양의 지식과 간접경험을 쌓았다. 물론 이것은 학위가 없는 한, 단순한 취미일 뿐 결코 인정받을 수 있는 스펙은 아니다.

 


그런 유설옥과 엮이는 형사 하완승(권상우 분)은 처음에는 유설옥의 추리를 무시하지만, 유설옥이 정리한 자료들을 본 후에야 ‘범죄한 박사냐’고 묻는다. 유설옥은 ‘뭐, 비슷한.’이라고 대답하며 대답을 얼버무린다. ‘심리학?’이라고 다시 묻는 하완승에게 ‘뭐….’라며 말끝을 흐리자, 유설옥을 심리학 박사로 오해한 하완승은 그제야 그의 추리를 새겨듣게 된다. 결국 ‘고졸’ 학력의 여성이 가진 한계로는 누군가를 설득시키는 일조차 쉽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그토록 염원했던 사건 현장에 투입되어 추리를 시작하는 유설옥의 가슴은 설렌다. 클리셰라도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인물의 뛰어난 능력 발휘는 충분히 흥미롭다. 내용 전개는 크게 새롭지 않지만, 여성 탐정이라는 소재는 한국에서 좀처럼 사용되지 않은 소재이기도 하다. 아줌마에, 고졸. 이 모든 편견을 뛰어넘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유설옥의 모습은 꽤 특별하게 다가온다.

 

 

 



유설옥의 마이너스 스펙, 잘못된 순간에 활용되는 우를 범하다

 

 

 


그러나 드라마는 유설옥의 이 평범함 속에 숨겨진 비범함을 증명하는 데 시간을 할애해도 모자른 순간에 유설옥을 현실로 끌어내린다.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울리는 시어머니의 전화가 대표적인 예다. 추리에 점점 몰입하는 유설옥은 강하게 주장하여 증거 자료를 확인하거나, 취조실까지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여주인공이 그런 억지를 부린 후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포인트는 여주인공의 멋진 능력 발휘의 순간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이 모든 기대를 산산이 부수며 여주인공을 ‘민폐형’ 캐릭터로 전락시킨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댁에 매여살 수밖에 없는 여성의 캐릭터는 구태의연하다. 자신의 권리나 요구조건을 관철 시키지 못하는 며느리는 이미 수없이 경험한 캐릭터의 변주에 불과한 것이다. 아니, 구태의연함을 신선하게 풀지 못한 탓이 더 크다.  능력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걸림돌을 만들어 긴장감을 주려는 속셈이었겠지만, 문제는 이런 여주인공의 현실이 공감보다는 답답함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굳이 유설옥의 스펙이 발목을 잡는 장면이 추리의 한 가운데 일 필요는 없는 일이다. 드라마가 4회동안 진행되는 동안 주인공의 스펙에 대한 편견은 이미 깨진 후다. 그러나 다시 등장한 유설옥의 시어머니라는 마이너스 '스펙'은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포인트를 잡지 못한 엉성한 긴장감, 과연 '몰입도의 여왕'이 될 수 있을까.

 

 



<추리의 여왕>의 포인트는 바로 ‘추리’에 있다. 추리라는 소재를 살리지 못하면 이 드라마의 긴장감을 보장할 수 없다. 시집살이나 스펙에 대한 한계등은 어디까지나 양념이다. 그 양념을 활용하여 완성시켜야 하는 것은 바로 주인공이 하는 추리의 기승전결이다. 그 세부사항이 얼마나 잘 조율되느냐에 드라마의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추리의 여왕>은 ‘추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살인사건이라는 심각한 상황속에서 울리는 전화벨과, 코믹함으로 넘어가는 설정은 엉성한 사건 구조를 메우기 위한 장치지만, 오히려 추리과정에 대한 엉성함을 더 돋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사건의 긴박함이나 이야기의 반전등에 힘을 싣지 못하고, 여주인공의 주변 상황에 힘을 빼앗기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야기는 점점 긴박해지기 보다는 느슨해지고 피곤해지며 사건의 해결은 다음주로 넘어간다. 이런 이야기 구조는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추리의 여왕>에서 시청자들은 ‘추리’를 보기를 원한다. 그 추리란, 긴박함과 반전으로 시청자들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을 정도의 몰입력을 갖춰야 한다.  영국 드라마 <셜록>에 많은 매니아들이 열광한 이유를 생각해 보라. 사건에 맞닥뜨린 주인공은 독특한 캐릭터로 사건을 해결하는데 온 힘을 기울인다. 그리고 한 사건의 호흡은 2회를 넘기지 않는다. 자칫 늘어지면 추리극은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추리극은 보통 드라마 보다 훨씬 더 긴밀하고 치밀한 구성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잡다한 이야기를 빼고 번잡스럽지 않은 추리극을 <추리의 여왕>으로 보게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까. 시청자는 주인공의 긴박한 ‘추리’의 현장에 동화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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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혼’이라는 신조어가 나온 것은 우리 시대의 결혼관이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보여주지만, 왠지 가슴 한 편에 씁쓸한 감정을 남긴다.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의 졸혼은 이혼은 하지 않지만, 배우자와의 관계를 지속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졸업이라는 거창한 단어가 포함된 말이지만 말처럼 끝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를 동반한 시원섭섭함으로 다가오는 단어는 아니다.  

 

 

 

 

 

 

 

예능 <살림하는 남자들>(이하<살림남>)에 나오는 백일섭은 졸혼 이라는 단어를 친숙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 졸혼이라는 단어는 그의 생각과 가치관에서 출발하여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백일섭은 <살림남> 기자간담회에서 “졸혼이라는 단어를 몰랐다.”고 밝혔다. 이어서 “어느 날 갑자기 기자한테 전화가 와서 '졸혼하셨군요' 하길래 그때서야 알았다. 자꾸 그런 기사가 나서 여성분들한테 미움을 사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졸혼 얘기가 조심스러웠는데 졸혼을 또 좋아하는 분들이 있어 다행스럽다. 오늘을 끝으로 졸혼 얘기는 그만하겠다"고 말하며 오히려 졸혼이라는 단어에 대한 부담감을 나타냈다.

 

 

 


백일섭의 <살림남>속 모습은 졸혼으로 포장되지만 뜯어보면 별거와 다를 바가 없다. <살림남> 속 백일섭의 모습은 그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 70살이 넘었지만, 여전히 혼자서 밥을 챙겨먹고 설거지를 하는 일 조차 어색하기만 한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혼자라서 자유로운’ 인생이 아니다.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삶의 의미를 다시 찾기 위해 배우자와 합의되어 이루어진 성숙한 관계라기보다는 서로 악화된 관계 속에서 더 이상 혼인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의 결말처럼 보인다. 혼자 살지만 여전히 며느리의 도움이 필요한 그는,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한다기 보다는 가부장시대의 안타까운 결말을 보여주는 듯 하다.

 

 

 

 

지난 5일 방송에서 백일섭은 아내와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딸과도 2년 째 교류가 끊겼음을 밝혔다. 아들과 만나 술을 마시던 중, ‘온가족이 모여 고기를 먹는 것이 소원’이라는 아들의 말에 눈물을 흘리는 백일섭의 모습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나도 가슴이 많이 아프고 미칠 것 같다. 네 마음 안다.”는 말 끝에 나온 '행복하자, 사랑한다'는 백일섭의 말은 그가 지금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발언이다. 그 말을 통해 그도 이런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백일섭은 <살림남> 기자 간담회에서도 지금 상황에 대한 소회를 이야기한다.

 

 

 


“나는 백년해로를 포기하고 (집을) 나왔지만 부부가 백년해로를 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특히 좋든 나쁘든 부부간에 대화를 많이 해야 오래 같이 살 수 있는데 우리 부부는 애초부터 대화가 너무 없어서 결국 혼자 살게 된 것 같아요. 내가 워낙 바쁘고 술 한잔 마시고 늦게 들어오고 또 아침 일찍 (촬영하러) 나가야 했거든. 지금은 그 부분을 가장 많이 반성하고 있어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해를 바라지만, 가족은 오히려 너무 가깝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무심해지기 쉬운 존재다. 같은 공간에서도 서로와 멀어지고 서로에게 상처만이 되는 가족간의 관계가 생각보다 빈번히 일어난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 갈등이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결국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등을 돌리는 사태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집을 나와서 생활해 보니까 그동안 내가 너무 사랑이라는 것을 몰랐고 사랑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강아지 제니를 입양해 함께 생활한 지 두 달 됐는데 제니가 내 행동반경을 먼저 읽는 것을 보면 또 하나의 가족이 생긴 것 같아요. 같이 살 때보다 아들, 며느리와 대화도 많아지는 등 사이가 좋아졌고 ‘살림남2’에 함께 출연 중인 정원관, 일라이의 모습을 보면서 사랑을 다시 배워 가고 있습니다.”

 

 


백일섭의 말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그 소중함에 대하여 무심하다. ‘가족이니까’ 당연한 관계가 아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끊임없이 환기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아버지들에게 그런 사고방식은 익숙하지 않다. 항상 무뚝뚝한 얼굴로, 따듯한 말 한마디 걸 줄 모르고 집안일이나 아이 양육에도 참여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한다. 자신을 위해 따듯한 밥을 만드는 부인의 수고로움 따위는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치부하고, 아이들과도 대화보다는 설교와 강요로 일관하기 일쑤다. 평소에 유대관계를 쌓지 못한 상태에서 들리는 설교는 오히려 반항심을 자극하고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히게 만든다.

 

 

 


백일섭의 경우 역시, 그런 아버지들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해석된다. 예전 <꽃보다 할배>에서 부인이 만들어 준 장조림을 걷어차던 모습은 지금까지도 그의 가부장적인 모습을 대변하는 모습이다. <살림남>에서도 며느리가 나와 그 장면을 언급하며 “그런 것이 아니다.”고 해명을 해 보지만, 어디까지나 며느리는 관계가 틀어진 당사자인 부인이나 딸의 입장은 아니다. 그 때문에 여론은 쉽게 돌아서지 않는다. 그런 단편적인 모습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결국 백일섭 스스로도 인정했듯, 오랜 기간 동안 가족 구성원 사이의 소통의 부재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당연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백일섭에게 며느리에게 주었던 '힘들지? 사랑한다'는 편지를 아내에게도 주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라고 해서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백일섭이 가족관계가 소원해 질동안 열심히 일한 것 또한 혼자만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백일섭 역시 가족의 생계를 아직도 책임지고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결국 살던 집을 나와야 했던 것은 백일섭이다. 아버지의 그런 고생과 희생에 대한 고마움이 희석되는 것은, 가족들과 나누지 못한 마음 때문이다. 가족을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하고, 권위를 내세워야 하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따듯하게 보듬어야 할 인격체로서 대했다면, 오히려 남편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권위는 자연스럽게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백일섭은 '졸혼'으로 포장된 별거를 한 상태다. 

 

 


<살림남>은 ‘살림하는 남자’라는 소재를 삼았다. 남자의 육아, 남자의 살림, 남자의 처가 방문등이 예능의 소재가 되는 것은,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남자들이 그런 일을 하는데 익숙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소외된 아버지들의 모습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익숙하지 않음을 핑계로 외면하고 부정했던 일들이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백일섭처럼 따로 사는 집도 있지만 같은 집안 내에서 본인이 설 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시대의 아버지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졸혼이라는 신 풍속도를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배우자는 선택할 수 있지만, 저절로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자녀들은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법적으로 가족이 되지만, 그 관계는 법적으로 규정할 수도 없고, 저절로 성장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하는 작은 배려. 던지는 따듯한 말 한마디 같은 것들. 그런 작은 것들이 모여서 서로의 유대를 만든다는 단순하고 간단한 진리. 가족이기에 그 진리를 잊어버리기 십상이지만, 가족 구성원 누구라도 그 진리를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살림남>속 백일섭에게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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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두고 아까운 건 연기 뿐.”

 

 

 


죽기 전, 연합뉴스와 마지막으로 가진 인터뷰에서 배우 김영애는 그렇게 말했다. 죽는 순간에도 연기자였던 김영애. 김영애라는 인간의 삶에는 여러 차례의 굴곡이 있었지만 그의 연기만큼은 굴곡없이 항상 인상적이었다. 한 배우에게 그런 굴곡없는 연기를 볼 수 있단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1971년 M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이래, 마지막 작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을 마칠 때까지 김영애는 자신이 맡은 바를 뛰어넘어, 주연이든 조연이든 상관없이 대중의 뇌리에 남는 연기를 펼쳐냈다. 죽어가는 순간에도 연기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은 그의 삶은 배우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변화하라.

 

 

 

 

 

 

 

"누구의 엄마보다는 배우 김영애로 보이는 역할이 많았고, 내 목소리를 내는 역할이 많았죠. 그것이 사실 배우로서는 복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어떤 면에서는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Osen인터뷰, 2009)

 

 

 


나이가 들어가면서 배우의 역할은 ‘누군가의 엄마’로 한정되기 쉽다. 그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표현할 수 있는 배역이 줄어들고 한정되는 것은 배우로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김영애 역시 ‘엄마’로서 해야 하는 역할이 주어졌지만, 김영애라는 배우는 ‘국민 엄마’ 같은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없다. 드라마 <로열패밀리>에서 그룹 최대 주주인 철의 여인으로 분할 때도, <황진이>에서 최고의 춤꾼 백무로 분할 때도, 영화 <카트>에서 비정규직의 현실을 처절하게 보여줄 때도 김영애는 ‘엄마’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엄마로서가 아니라 그 곳에 꼿꼿이 선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거기 있다고 소리칠 줄 아는 배우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엄마이기도 했다. 영화 <애자>나 <변호인>에서 김영애는 철저히 엄마로서의 모성애를 보여준다. 그러나 누군가의 엄마여도 그 애처로움과 슬픔을 처절하게 표현해 낼 줄 아는, 김영애는 엄마도 인간이라는 진리를 깨우쳐주며 단순한 배경이 아닌 이야기의 긴장감의 정점에 서 있었다. 백 편이 넘는 작품을 할 동안 김영애는 한 번도 규정된 적이 없었다. 어떤 역할을 맡겨도 완벽하게 표현해 낼 줄 아는 그의 연기 스펙트럼은 철저한 갑에서부터,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밑바닥까지 포괄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그의 다양한 이미지의 변화는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모든 역할에 들어맞는 타고난 연기자였을 것 같지만 그에게도 캐스팅 논란은 있었다.

 

 

 


"시대극 '형제의 강'이 1996년 작품인데, 내가 도회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미스 캐스팅이란 소리가 나왔어요. 나한테는 연기의 폭을 넓힌 작품입니다. 어머니상을 구축한 작품이고요. 작품도 좋았고 연기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연합뉴스 인터뷰)

 

 

 


도회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김영애는 드라마 <형제의 강>에서 편견 섞인 시선에 직면했지만 드라마가 끝날 때 쯤엔 김영애는 가장 큰 감동을 준 배우 중 하나로 기억된다. ‘어머니’로서의 역할 역시 김영애에게 있어서는 나이듦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또다른 변신이었던 것이다.

 

 

 


정체되지 않고, 어느 역할이든, 어느 곳에서든 마다하지 않은 연기의 열정이 그를 귀부인으로, 춤꾼으로 비정규직으로 그리고 국밥집 아줌마로, 또 엄마로 만들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배우의 메시지는, 우리에게도 정체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겸손하라.    

 

 

 

 

 

 

“배우는 이미 한번 만들어진 것에 옷을 입히는 역할이에요. 그런데 작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배우들은 겸손해야 합니다. 운 좋게 좋은 배역 만나서 명예를 얻는 거잖아요. 배우가 그리 잘났나? 아니에요. 좋은 배우, 좋은 역할은 모두가 같이 만드는 거에요. 그러니 늘 겸손해야 해요." (연합뉴스 인터뷰)

 

 

 


최고의 연기를 펼쳤던 작품 <황진이>에 대해 말하며 연기를 못할 까봐 두려웠다고 밝히며 김영애는 이렇게 말했다. 주인공 ‘황진이’보다 훨씬 더 큰 존재감을 보였던 연기자가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아닌 두려움으로 출발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항상 새로운 대본을 받고, 이전에 했던 타성에 젖은 연기가 아니라 새로운 연기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낮은 자리에서  노력하는 자세가 김영애의 완벽한 연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대배우라는 타이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잘났다고 교만하지 않고 모두와의 조화를 만드는 것을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놓은 김영애의 태도는 깊은 울림을 준다. 주목 받는 연기를 펼친 것 조차 자신이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라 ‘운이 좋게’ 좋은 배역을 만나 명예를 얻은 것이라는 김영애. 성공을 거머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과 힘을 과신하기 십상이지만 사실은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행운이 있었음을 잊지 않는 것. 그런 겸손함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포기하지 말아라.

 

 

 

 

 

김영애가 마지막 작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을 찍을 당시에는 이미 췌장암이 재발하여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그의 연기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김영애는 “연기만이 나를 살게 한다”고 말하며 <월계수> 출연을 강행했다. 사망 두달전인 2월까지도 촬영에 매진한 것이다.

 

 

 


 

이후 김영애는 2015년 이미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황이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당시 췌장암이 재발해 <부탁해요 엄마> 출연을 포기한 것도, 3~4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선고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영애는 연기에 대한 집념과 열정으로 2년을 더 살아냈다. 이후에도 <닥터스> <마녀보감>에 출연하며 연기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만 살아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던 그는, “몸부터 챙기라”는 주변의 걱정에도 “연기 안 할 때 아프고, 오히려 연기할 때는 몸이 좋다”며 웃어 보였다.

 

 

 


김영애의 후배 이정은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영애가 '앞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당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드라마 같진 않구나'였다"고 전하기도 했다. 김영애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수차례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현실과 이야기 속의 죽음이 같을 수는 없다. 김영애는 그 순간에도 자신이 한 연기를 되돌아 보았다.

 

 

 


이정은은 이어 "죽음을 앞에 두고도 선생님은 '내 연기가 부족했구나'라고 하셨다"며 김영애개 "죽는 순간까지도 연기를 생각하셨다"고 말했다. 죽는 순간까지 연기자로서 삶을 마감한 김영애. 안타까운 것은 연기뿐이라는 그의 말은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이 가진 것을 불사르는 모습에 신도 감동해 그에게 2년이라는 삶을 선물로 준 것은 아니었을까. 

 

 

 


그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배우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삶을 어떻게 대하며 살아가야 할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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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쎈여자 도봉순>(이하 <도봉순>)은 출연 배우들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키며 성공신화를 썼다. JTBC최고 시청률이라는 기록은 그 성공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이 성공에 대한 빚은 누구보다 배우에게 지고 있다. 박보영과 박형식 커플이 만드는 케미스트리는 이 드라마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특히 박보영의 이미지로 도봉순이란 캐릭터는 가장 적절하게 표현된다.

 

 

 

 


작고 귀여운 박보영이 괴력을 발휘해 불의와 맞서는 모습은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박보영의 이미지와 합쳐져 큰 재미를 만들어 낸다. 깜찍한 모습을 하고 악당들을 혼내주는 여성 캐릭터는 ‘도봉순’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박보영과 박형식의 케미스트리가 이 드라마의 시청률을 대부분 견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는 대체로 가벼운 터치로 흐른다. 크게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배우의 매력에 빠져들다보면 한 시간은 금방 흐른다. 드라마의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박보영과 박형식의 이미지는 큰 역할을 했다. 군데 군데 비어있는 <도봉순>의 이야기 구조속에서도 이 둘의 합은 시청률을 끌어 올릴 수 있는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제작진의 ‘역량부족’은 배우로 커버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게 드러난다. 

 

 

 

 


사실 <도봉순>은 처음부터 이런 기미가 보였다. 도봉순이 슈퍼맨처럼 ‘힘이 센’ 캐릭터라는 설정은 신선했지만 그 설정을 활용하는 방식이 문제였다. 도봉순의 발휘하게 만드는 설정들은 작위적이고, 가장 메인 줄기가 되는 사건인 ‘도봉동 살인사건’은 드라마에 녹아들기 보다는 별개의 사건처럼 다뤄진다. 사건은 유기적인 구성으로 치밀하게 짜여있기 보다는 그저 사건을 위한 사건처럼 느껴지고, 그렇기 때문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데는 실패한다.

 

 

 

 

 

도봉순과 안민혁(박형식 분)과의 러브라인 역시 결코 자연스럽지 못하다. 극 초반 부 안민혁이 아무런 경험도 없는 도봉순에게 경호업무를 제안하는 것부터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도봉순은 실제로 안민혁이 수차례 다치거나 위험에 처할 동안 제대로 된 경호를 하지 못한다.

 

 

 

 

그런 도봉순에게 ‘같이 자자’며 집으로 끌고 오거나, 함께 누워 “엄마는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고 했다”고 고백하는 장면도 상당히 뜬금이 없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설정들로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를 만들려고 하지만 에피소드의 흐름은 뚝뚝 끊긴다. 대사도 진부하고 캐릭터의 의외성도 없다. 단순히 ‘힘 센’ 도봉순이라는 설정을 제외하면 이 드라마를 흥미롭게 만드는 설정 자체가 부족한 것이다.

 

 

 


처음부터 도봉순이 ‘갑질’을 한다며 투덜거리지만, 안민혁은 도봉순의 부적절한 행동이나 요구사항들을 크게 문제삼지도 않는다. 오히려 확인되지 않은 실력으로도 ‘기획팀’에 넣어달라거나 하는 부당한 요구를 하는 쪽은 도봉순이다. 이쯤되면 갑질은 도봉순이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 과정에서도 '티격태격'을 위한 '티격태격'이라는 문제점은 도드라진다.

 

 

 


 

이런 구멍들을 매워 온 것은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그들은 사랑스러운 매력을 통해 드라마의 분위기마저 사랑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문제는 후반부로 갈수록 배우로도 채워지지 않는 스토리의 허술함이다.

 

 

 


일단 코믹함을 살리고자 넣은 조직폭력배나 일진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는 쓸데없이 길기만하다. 드라마의 구성이 유기적이지 못하니 따로노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도봉동 살인사건의 범인 김장현(장미관 분)의 이야기는 가장 황당한 부분이다. 도봉순의 능력이면 충분히 범인을 제압할 수 있음에도, 범인은 높은데서 떨어지거나 공격을 당해도 불사신처럼 멀쩡하다. 차라리 범인도 ‘특수능력 사용자’라면 이해가 가능하지만,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인 범인이 불사신처럼 살아나고 도망다니는 모습은 긴장감 보다는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다. 경찰들의 수사 역시 너무나 안일하다. 범인 수사 자체도 지나치게 지지부진했지만 시체가 발견되지도 않은 상황 속에서 ‘수사 종결’을 내리는 경찰들의 모습을 공감하기란 어려웠다.

 

 

 


‘판타지’와 ‘개연성’은 분명히 다르다. 드라마라서 용서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이다. 현실적이지 않은 판타지 않에서도 작가가 부여한 세계관이나 설정이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 바로 개연성이다. 그러나 <도봉순>은 그 개연성을 명백히 놓쳤다.

 

 

 

 


이 과정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바로 ‘힘쎈여자’ 도봉순의 캐릭터다. 도봉순은 원더우먼처럼 악을 심판하고 세상을 구하는 영웅 캐릭터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는 캐릭터임에도 결국 그의 행동 동기는 개인적인 이익과 주변사람의 안녕이라는 지점에서만 강조된다. 가장 큰 아쉬움은 그런 힘을 가지고도 결국 남자 주인공의 도움을 받아야만 해결이 되는 사건의 종결이다. 힘을 잃은 도봉순은 결국 안민혁이 구해줘야 하고, 위기 상황속에서 힘을 다시 찾는 것도 안민혁의 사랑 때문에 가능하다. 자신이 가진 힘을 주체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도봉순의 캐릭터는 점차 매력마저 잃어간다. 그것은 아무리 사랑스러운 박보영이라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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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나영석이다. 그리고 그가 또 이서진을 섭외했다. 새롭게 합류한 윤여정도 이미 <꽃보다 누나>의 메인 출연자로, <삼시세끼>의 게스트로 호흡을 맞춰본 캐릭터다. 아르바이트 생으로 등장하는 신구도 마찬가지다. 새롭게 정유미가 합류했지만 얼마나 새로운 그림이 나올까 싶었던 <윤식당>. 그러나 <윤식당>은 뭔가 다르다. <꽃보다> 시리즈나 <삼시세끼>가 전해주는 느낌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같은 제작진에 같은 출연진, 또 ‘음식’이라는 소재를 사용했지만 어떻게 <윤식당>은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을까.

 

 

 


느림의 미학 나영석식 화법에서 오는 긴장감

 

 

 


빠른 템포로 정신없이 진행되는 요즘 예능의 특징과는 다르게, 나영석의 예능은 ‘느림의 미학’을 강조한다. 주로 여행이나 음식을 소재로 사용하는 나pd는 여행 예능에서라면 풍경과 그 장소의 분위기를 전달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여행자들이 느끼는 감정을 강조한다. 음식 예능에서는 천천히 음식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 과정에서 오는 따듯함이나 정, 수고로움을 느끼게 만든다. 그 과정 속에서 캐릭터를 탄생시키는 능력은 나pd의 독보적인 영역이다. 가끔은 어떤 느낌이나 분위기를 강조하려는 나머지, 다소 강요하는 느낌이 있을 때도 있지만, 따듯한 시선을 통해 그런 단점쯤은 상쇄된다.  

 

 

 


<윤식당>역시 그런 분위기는 유지된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아름다운 풍광은 이야기의 양념처럼 버무려지고 손님이 없다가 붐비는 식당의 모습을 가감 없이 담아내며 ‘지켜보는 예능’을 완성해 간다. 손님이 붐빌 때 식당을 운영하는 이서진, 윤여정, 정유미, 나중에 합류한 신구까지 바빠서 정신이 없어지는 장면마저 빠른 템포라고 할 수는 없다. 그저 그들의 감정을 따라가며 식당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데 주목할 뿐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 과정에서 묘한 긴장감이 생겨난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시청자들은 <윤식당>의 성공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손님이 없어 걱정하는 출연진들의 모습을 보며 얼른 손님이 찾아오길 바라게 되고 정신없이 요리를 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그들이 행여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요리를 손님들이 먹고, 음식에 대한 평가를 내릴 때는 어떤 평가가 나올지 긴장하게 된다. 그 평가가 좋을 때는 따라서 기분이 좋다. 딱히 ‘한국음식’에 대한 자랑스러움이나 애국심을 강조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감정이 그렇게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차분한 이야기의 진행을 통해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만들고, 그 캐릭터에 시청자들이 애정을 쏟게 만든 결과다. <윤식당>은 비록 실제 식당이 아니지만, 시청자들은 그 식당이 성공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능을 지켜보게 된다. 신기한 일이다.

 

 

 


음식 예능이지만, <삼시세끼>와 궤를 달리 하는 화법과 캐릭터.

 

 

 


<윤식당>은 불고기라는 메뉴를 메인으로 한 식당에 대한 이야기로, 음식에 관한 이야기지만 <삼시세끼>와는 다르다. 출연자들이 음식을 먹고 음미하는 주체가 되지 않고, 그 곳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주방을 맡은 윤여정은 딱히 요리를 할 줄 모르는 캐릭터다.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프로그램을 위해 다른 셰프들에게 전수받은 불고기 뿐이다. 어떤 요리가 탄생할까에 대한 기대감같은 건 이 프로그램에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음식을 접하는 사람들의 반응이나 행동은 충분히 예능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출연자들이 만든 요리지만 그 요리가 다른 사람에게도 맛있게 느껴진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시청자들은 따라서 뿌듯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윤식당>이 출연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각자의 역할이다. 요리를 만드는 윤여정과 그를 보조하는 정유미. 그리고 총무겸 서빙을 맡은 이서진, 그리고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설정이 주어진 신구까지,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통해 그들이 가진 특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걱정이 많고 툴툴대는 듯하지만 재치있고 인간적인 매력의 윤여정, 때로는 엉뚱하지만 싹싹하고 밝은 정유미,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총괄하는 책임을 진 이서진. 또 가장 연장자지만 가장 낮은 자리에서 부드러운 매력을 뽐내는 신구까지. 그들의 조합은 생각보다 큰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특히 이서진은 이곳에서 <꽃보다 할배>나 <삼시세끼>로 나영석 예능에 익숙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프로그램들과는 또 다른 캐릭터가 주어진다. 가이드를 맡았던 <꽃보다 할배>나 음식을 할 줄 몰라 사실상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삼시세끼>와는 달리 <윤식당>의 이서진은 경영학과 출신이라는 장점을 살려 총무로서의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실질적인 운영자로서의 마인드로 단가를 계산하고 얼만큼의 수익이 날지를 예상하며, 장사 계획을 짜는 그의 모습은 <윤식당>을 좀 더 그럴 듯한 실제의 공간으로 만든다. 똑똑하면서도 현실적인 그의 성격은 그 자리에 맞춤형으로, 그 위치에서 이서진만큼 잘해낼 수 있는 적역을 찾기가 힘들다고 느껴질 정도다. 다시 한 번 이서진을 캐스팅 한 이유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여기에 분위기를 발랄하고 상큼하게 만드는 정유미의 조합은 예상치 못한 재미를 만들어낸다. 수차례 정유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는 나영석의 혜안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각기 다른 성격을 지녔지만 조화로움을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나영석표 마법이다.

 

 

 


 

진짜가 아니라 가능한 편안함.

 

 


이런 편안한 분위기는 사실 그들이 실질적으로 ‘매출’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 윤여정은 요리만, 정유미는 보조만, 이서진는 총무만, 신구는 알바만 하면 되는 상황속에서 그들은 실질적인 이익을 따질 필요가 없다. 손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은 그냥 아쉬울 뿐,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며 식당이 철거되는 순간에도 그들은 아쉬울 뿐, 다른 식당은 제작진이 찾고, 인테리어까지 알아서 끝내버린다.

 

 

 


‘이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식당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들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그저 발리의 아름다움과 손님의 반응에 집중할 수 있다. 식당운영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더욱 전쟁같고 힘든 ‘생계’가 걸린 일이지만 그들은 잠시동안의 경험으로 그 일을 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이 그 자리에서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면, 리얼리티는 살지 몰라도 이야기가 좀 더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느리고 편안한 나영석식 화법에 그런 양념은 적절하지 않다. 나영석 예능을 통해 우리는 아마도 잠시 휴가를 떠나 음미할 수 있는 편안함의 판타지, 바로 그것을 느끼고 싶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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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타자기>는 그동안 시청률 부진에 시달렸던 tvN드라마에 한줄기 단비 같은 드라마가 될 수 있을까. 그동안 tvN이 야심차게 준비해왔던 드라마들이 시청률 부진에 시달리면서 <시카고 타자기>에 거는 기대는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도깨비>이후 tvN 로맨스 드라마의 시청률은 아쉬움을 넘어 처참한 수준이었다. <내성적인 보스> <내일 그대와>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등의 드라마가 모두 1%대의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연속으로 굴욕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tvN로맨스 드라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시카고 타자기>인 것이다.


일단 반응은 긍정적이다. 호감도 높은 작가와 배우를 기용했기 때문에 방영 전부터 화제성이 높다. <시카고 타자기>의 관전포인트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유아인, 임수정...배우에 대한 신뢰.

 

 

 


<시카고 타자기>의 남자 주인공 한세주 역을 맡은 유아인은 연기파 배우로 성장했다. 드라마 <밀회><육룡이 나르샤>를 비롯하여 영화 <베테랑>이나 <사도>등에서 보여준 유아인 연기의 스펙트럼은 젊은 배우의 에너지를 간직한 동시에 노련함을 보여주었다. 자신만의 연기세계를 대중에게 설득시킨 ‘연기자’ 유아인은 강력한 흥행코드다.

 

 

 


유아인이 역할을 선택하는 방식은 특이하다. 젊은 배우에게 있어서 주로 스타성을 위시한 로맨틱 코미디등이 인기를 얻는데 유리한 반면, 유아인은 단순히 ‘멋진’ 배역이 아닌, 일탈을 일삼거나 내면의 갈등을 겪는 캐릭터를 주로 표현했다. <밀회>에서는 무려 20살 연상의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역할을 맡았고, <베테랑>에서는 재벌 3세 역할을 맡았지만, 로맨틱함과는 거리가 먼 타락한 소시오 패스에 가까웠다. <사도>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과 분노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사도세자 역을 소화했다.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원 역시, 로맨스보다는 정치적으로 피 터지는 싸움을 해야 하는 캐릭터였다.

 

 

 

 

유아인의 또다른 특징은 작품안에서  혼자만 주목받기 보다는 상대방의 호흡을 통해 성장해 왔다는 것이다. <밀회>의 김희애, <베테랑>의 황정민, <사도>의 송강호, <육룡이 나르샤>의 김명민등은 연기적인 테크닉과 표현력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프로들이다. 유아인 혼자서 튀기보다는 주변인물들과 조화를 통해 자신의 에너지를 분출시킨다. 

 

 

 

 


<시카고 타자기>에서는 임수정이 있다. 임수정 역시 각종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연기’에 대한 욕심을 표현해 온 배우다. 특히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보여준 변신은 임수정이 가진 연기의 폭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연기력에 대한 불평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임수정에 대한 신뢰 역시 유아인 못지않게 크다. 더군다나 <미안하다 사랑한다>이후 무려 13년 만의 드라마 출연이라는 점에서 화제성은 더욱 크다. 임수정이 표현하는 여주인공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될까에 대한 호기심이 커지는 시점이다.  유아인과 임수정이 만나 어떤 시너지를 보여줄지가 관전 포인트다. 더군다나 유아인의 군 입대 전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 또한 이 작품을 봐야 할 이유다.

 

 

 


<해품달> <킬미힐미>...작가에 대한 신뢰

 

 

 



<시카고 타자기>를 집필하는 진수완작가는 그동안 <경성스캔들><해를 품은 달><킬미 힐미>를 통해 대중의 호평을 거머쥔 작가다. 유아인과 임수정 역시 출연 이유로 ‘대본을 보고 반했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작품성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진수완작가는 이야기 구조를 탄탄하게 쌓아가며 대중과 소통할 줄 아는 작가다. 이야기의 흐름을 유려하게 이끌어 가며 탄탄한 ‘매니아 층’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시카고 타자기>에서도 그런 진수완 작가의 필력이 그대로 드러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배우들이 자신이 출연한 작품에 대한 애정을 쏟는 것은 당연하지만, 애초에 배우들이 먼저 나서서 작품전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대본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특히 임수정은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다’라고 말하며 대본을 극찬했다. ‘뭔가 다르다’는 자신감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신선함과 호평이 꼭 대중성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일단 초반의 분위기는 잘 형성했으나, 이 드라마가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유아인은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를 두고 “전형성을 완전히 깨트린 캐릭터”고 평가했으다. 그러나 전형성이란 것은 양날의 검이다. 시청자들은 지나치게 새로운 이야기에 적응을 힘들어 하는 경향이 있다. 시청률이 낮지만 호평을 받는 작품들의 대부분은 시청자들의 중간 유입이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설정이 치밀할수록 드라마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전후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진수완작가 역시 <해를 품은 달>을 제외하고는 호평에 비해 다소 아쉬운 시청률을 기록한 것도 사실이다. 시청률 부진의 늪에 빠진 지금의 TVN에 있어서는 대중성을 잡는 목표가 절실하다. 과연 ‘전형성을 탈피한’ 로맨스인 <시카고 타자기>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지점이 한가지 우려스러운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상반기 tvN 최고 화제작 <시카고 타자기>.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잡는 웰메이드 드라마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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