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공이 대한민국 대표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이하<무도>)에서 준비한 국민의원 특집은 그동안 예능에 시의성을 녹이는 구성의 연장선상에 있는 기획이다. 그동안 무한도전은 여러 분야를 폭넓게 다룬 예능으로 호평을 얻어왔다. 국민의원 특집은 아예 정치인을 섭외했다. 최근 정치인들이 <썰전>등 예능에 출연하는 경우는 왕왕 있었지만, <무도>처럼 토론 형식이 메인이 아닌 예능에의 등장은 이례적인 일이다.
물론 <무도>역시 국회의원들을 섭외한 후, 토론 형식을 채택했다. 자유한국당 김현아,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국민의당 이용주, 바른정당 오신환, 정의당 이정미 의원을 초대하여 국민대표 200명과 일자리, 주거, 육아 등 여러 주제로 논의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무도>가 과연 어떤 형식으로 정치와 예능을 결합해 낼지 궁금증이 증폭된 가운데, 난데없는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이 터졌다.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한 자유한국당 측은 당 소속인 김현의 의원 출연을 문제삼았다. 자유한국당 정준길 대변인은 “김현아 의원이 바른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하며 "사실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출연하지 않는 <무도>의 방송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또한 김현아 의원이 '당원권 정지 3년'이라는 중징계를 받은 해당행위자라는 점도 지적했다.
정당사이의 힘겨루기,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했다.
‘당원권 정지 3년’이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당원활동을 할 수 없다는 얘기인데, 당내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박탈되고, 전당대회 투표권도 행사할 수 없는 등 당내 활동이 제한되는 등 불이익을 받는다. 김현아 의원은 자유한국당의 전신 새누리당 의원들 중, ‘비박계’ 인사들이 만든 ‘자유정당’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해당 징계를 받았다.
새누리당 윤리위원회는 당시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징계 이유를 설명했다.
“당의 존재를 부정하고 공개적으로 타당 행위를 지속하는 등, 명백한 해당행위에 대한 책임과 비례대표직 유지를 위해 자진 탈당하지 않고 적반하장의 제명을 스스로 요구하는 등 비윤리적인 행위를 지속하고 있는 것을 들어 당원권 중지라는 중징계를 결정했다"
김현아 의원은 지난해 말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바른정당에 합류했지만, 새누리당에서 탈당할 경우 비례대표 의원직을 잃게 되기 때문에 새누리당에 잔류했다. 선거법에 따르면 비례대표 의원은 당을 스스로 탈당하면 의원직을 상실하지만, 소속 정당이 제명하거나 출당 조치하면 의원직을 유지하고 당을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른정당은 새누리당에 김현아 의원에 대한 탈당 권유나 제명 조치를 요구해온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그보다 한 단계 낮은 당원권 정지 조치를 통해 김 의원을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무소속 비례대표’로 만들었다.
새누리당의 결정에 대해 장제원 바른정당 대변인은 즉각 논평을 발표하고 “새누리당이 소신과 양심에 따라 정치하는 김 의원에게 비열하고 속 좁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어 “새누리당에는 아직도 ‘진박(진짜 친박근혜) 완장’을 차고 겁 없이 권력을 휘둘렀던 사람들이 몸 담고 있다”며 “그들에 대한 징계는 미적거리면서 양심에 따라 소신 있는 정치 활동을 펼치려고 하는 김현아 의원에게는 잔인한 조치를 계속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한 후,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양심 있고 젊은 정치인을 볼모로 잡지 말고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놓아달라”고 촉구했다.
한 마디로 김현아 의원의 ‘당원권 정지’는 정당 사이의 힘겨루기였던 셈이다. 어느 정당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비윤리적’이라는 잣대가 확실한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당의 입맛에 따라 얼마든지 변질될 성질의 이권 다툼이라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 프로그램도 아닌 예능에서 ‘형평성’을 논한 것은 말 그대로 코미디에 불과하다. 시장논리로 돌아가는 방송에서 ‘형평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될뿐더러 예능에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운운하는 것 또한 황당하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우리에게 불리한 취지의 방송은 방영해서는 안된다’는 뻣뻣하고 고압적인 정치인의 폐혜를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더군다나 ‘방송’을 사유물로 여기고 제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려는 정권을 보아온 국민들에게는 그 여파가 더 컸다.
방송을 좌지우지 하려는 여전한 꼰대기질, 국민들은 실망스럽다.
이에 한국PD연합회까지 나섰다. 31일 성명을 통해 "'무한도전'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철회하고 PD들과 시청자 앞에 사과하라"며 "자유한국당은 MBC가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는가. MBC의 편성과 제작을 맘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가"라고 강도 높게 비난한 것이다.
이어 "국민의원 특집에 대해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방송 통제 시도로, 그들이 방송의 독립과 공공성에 대해 전혀 개념이 없는 집단임을 여실히 드러냈다"며 "이미 녹화를 마친 자당 소속 김현아 의원의 자격 문제를 걸고 넘어졌는데, 이는 집안싸움을 거리로 들고 나와 난동을 부리는 모양새"라며 그들의 행동에 대한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국민이 원하는 법을 함께 만들어보자는 취지인데 어찌 이것이 불순하다 말인가. 자유한국당의 막말은 상식과 양심에 따라 프로그램을 만드는 PD 전체에 대한 모욕에 다름 아니다"라며 "자유한국당은 MBC가 모처럼 준비한 참신한 프로그램의 정상적인 방송을 방해함으로써 공당으로서의 위신과 품격을 스스로 저버렸다"고 말했다.
또한 "블랙리스트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훼손한 것은 박근혜 전대통령이 파면되고 구속된 주요 사유 중 하나였다. 자유한국당의 이러한 행태는 절박한 과제로 떠오른 언론개혁과 공영방송 정상화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라며 "자유한국당은 방송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무한도전'의 제작진을 비롯한 모든 PD들, 나아가 모든 시청자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분노를 여실히 드러냈다.
결국 서울 남부지방법원은 자유한국당이 MBC '무한도전', 김현아 의원을 상대로 제기한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녹화분을 먼저 접하고 이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어 이 황당한 싸움은 끝이 났고 <무도>의 영향력이 다시 한 번 증명되었지만, 자유한국당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더 이상 언급이 없었다.
입맛에 맞지 않는 출연자가 나온다고 하여 방송을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권리는 정치권에는 없다. 언론이 자유로운 나라가 훨씬 더 건강한 나라다. 아직도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구시대적 발상을 하고 있는 정당에서 우리는 어떤 희망을 봐야 할까. 이름만 바꾼다고 혁신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들이 진정으로 바꿔야 할 것은 자신들이 특권층이라는 우월의식과 다른 사람들을 좌지우지 하려 하는 ‘꼰대 의식’이다. 자유한국당은 결국 그들 스스로를 혁신하지 않으면 결국 국민들에게 또 다른 실망감을 안겨줄 정당이 될 수밖에 없음을 그들 스스로 증명한 꼴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