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17.05.31 예능이라는 양날의 검, 여성 연예인들이 예능에서 호감이 되는 까다로운 조건
  2. 2017.05.29 막장을 예고한 <도둑놈 도둑님>, 소녀시대 서현을 연기자로 만들 수 있을까
  3. 2017.05.27 <언슬> 좋은 사람들의 좋은 예능, 아쉬운 시청률을 뛰어넘는 의미를 만들어 낼 줄이야
  4. 2017.05.26 '여왕'이 되지 못한 최강희...<추리의 여왕>에는 추리가 없다
  5. 2017.05.25 <웃찾사> 종영....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아닌, 웃음을 구걸하는 사람들
  6. 2017.05.24 <귓속말> 종영...왜 이보영과 이상윤의 존재감은 보이지 않았을까.
  7. 2017.05.23 <섬총사>...김희선은 <삼시세끼>를 뛰어넘을 새로운 뮤즈가 될까. (2)
  8. 2017.05.22 - 또 타임슬립에 반복되는 수사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널>을 볼 수밖에 없었다.
  9. 2017.05.18 <개콘>과 <웃찾사>에 서운한 정종철....코미디가 없는 코미디언의 아쉬운 푸념
  10. 2017.05.12 - <아버지가 이상해> 왕따와 동거에 대한 황당한 시선....아버지보다 자식들이 더 이상해 (1)
  11. 2017.05.08 이영애, 고소영, 권상우...작품보다 컴백한 톱스타들의 이름값이 우선시될 때 벌어지는 일
  12. 2017.05.02 재검만 다섯 번....유아인의 군입대는 어쩌다가 뜨거운 감자가 됐나.
  13. 2017.05.01 <은위> 시대를 거스를 예능이 보여주는 실패....은밀하지만 위대하지 않은 몰카의 가학성

예능에서 민낯이 드러나는 것은 양날의 검이다. 신비주의 보다 친근하고 진솔한 이미지가 대중의 호감을 얻는데 유리한 현재 연예계의 분위기 속에서 배우, 가수 할 것 없이 예능 출연은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하지만 '리얼리티'를 강조한 상황 속에서 생각보다 민낯, 혹은 대중이 민낯이라고 여기는 모습이 드러나기 쉽고 자칫 잘못하면 굉장한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예능으로 호감형 스타로 거듭날 수도 있지만 이미지가 추락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여성 연예인들이 예능에서 호감을 얻는 일은 더욱 어렵다. 얼마 전, <나 혼자 산다>에 출연했던 김슬기는 난데 없는 논란에 휩싸였다. 집들이를 한다면서 남자 6명을 불러놓고 충분한 요리를 하지 않은 점이 논란의 중심이었지만 파고들어보면 논란은 좀 더 복합적인 것이었다.

 

 

 


국민 욕동생 김슬기, 예능 출연이 독이 되다.

 

 

 


일단 그동안 '국민 욕동생'으로 불릴 정도로 거친 말투와 털털한 성격을 가진 것처럼 묘사된 김슬기의 캐릭터에 균열이 생겼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김슬기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정제된 말투로 이야기 했고, 이는 솔직하기 보다는 꾸며낸 모습으로 비춰졌다. 집들이를 계획하고도 춤을 추러 가거나 낮잠을 청하는 등의 행위도 시청자들의 눈에는 거슬리는 부분이었다. 손님을 초대하고도 책임감이 없었다는 것.

 

 

 

 

자취 7년 차라면서도 사람들이 먹을 양을 가늠하지 못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도, 자신의 식사는 정갈한 밥상으로 깔끔하게 차려 내면서도 손님들에게 즉석밥과 부족한 요리를 내온다는 것, 시끄러운 것을 싫어한다면서 차안에서 부르는 랩과 노래등 한 마디로 모순적인 김슬기의 모습 속에서 시청자들은 가식적이라는 선고를 내린 것이다.

 

 

 


 

예능에서 일어난 논란은 좀 더 치명적이다. 드라마나 무대위에서와는 달리, 좀 더 사람의 본질적인 모습에 대한 논란이기 때문이다. 예능에서 호감이 되는 일은 단순히 웃기는 것을 넘어서 사람 자체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져야 한다. 특히나 여성 예능인 들이 호감을 얻는 일은 더욱 어렵다.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다. 그렇다면 여성 예능인들이 예능에서 '호감'으로 거듭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인색하지 않고, 짜증내지 않고, 나서지도 않아야 한다

 

 

 


 

<나 혼자 산다>의 박나래가 선보인 '나래바'는 박나래의 집을 마치 술집처럼 꾸며놓은 공간이지만 이미 대중에게 유명한 장소다. 박나래는 나래바에 온 손님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어머니로부터 낙지를 공수받고 새로운 요리를 개발해 실제 술집에 버금가는 안주를 내놓는다. 초대 받은 사람들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고 박나래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행복해 한다.

 

 

 


 

넉넉하고 푸근한 이미지를 만든 박나래의 나래바는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처럼 여겨질 정도로 유명해졌고 이에 따라 박나래에 대한 호감도도 높아졌다. 요리를 잘하는 것은 물론, 아낌없이 베풀 줄 아는 배포가 큰 여성 캐릭터가 더해진 것. 이어 양세형·양세찬 형제에게 거액을 빌려준 미담등이 전해지면서 박나래에 대한 호감도는 더욱 증가했다. 김슬기에게 쏟아진 논란과는 반대되는 지점에서 박나래는 이미지를 호감으로 만들었다. 자신이 가진 재능이나 음식을 기꺼이 나눌 줄 알아야 호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예능에서 여성 캐릭터가 호감이 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열심히 해내면서도 결코 불평하거나 여우처럼 굴어서는 안된다. <진짜 사나이>의 이시영은 남성을 뛰어넘는 체력은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서 발휘하는 기지로 호감형 캐릭터가 됐다.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이 드러나는 것 쯤은 신경 쓰지도 않고,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정확하게, 또한 잘 해내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반면에 <진짜 사나이> 속에서 군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불평하거나 요행을 바라는 출연자들, 특히나 여성 출연자들은 단숨에 비호감의 낙인이 찍힌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견디고 이겨내며 자신의 몫을 충분히 다해내는 '알파 걸' 캐릭터가 예능에서도 호감형이 될 수 있고 반대의 경우에는 아주 큰 비난을 감내해야 한다.

 

 

 


잘먹어야 하지만, 가식적이어서는 안돼

 

 

 


 

여기에 잘 먹는 모습을 보이면 플러스다. 그러나 꾸며낸 듯이 먹거나 가식적으로 보여서는 안된다. <진짜 사나이>의 '여군 특집' 2기 멤버가 된 에이핑크의 보미 '제2의 혜리'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잘먹는 모습이 방송에 나가자 '혜리를 따라 한다'며 "작위적이다"라거나 "뜨고 싶어서 오버한다"는 식의 비난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로 먹을 걸 권유 했을 때 지나치게 거절해서도 안된다. 걸스데이의 소진은 인터넷 방송 <최군 tv>에 출연해 최군이 수차례 권유한 만두를 거절하여 논란의 도마위에 올랐다.

 

 


최근 화제를 모은 <윤식당>의 정유미 역시 이런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유미가 '윰블리'가 되기까지는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 드러나는 다양한 표정들, 언제나 긍정적으로 보이는 성격이 주효했다. 드라마에서 보여준 사랑스러움이 실제 성격과 연결되자 시너지는 폭발했다. 여기에 주방 보조로서 사장 역할을 맡은 윤여정의 옆에서 윤여정이 당황할 때 잡아주고, 음식 준비를 미리 해내고 필요할 때마다 윤여정을 적절히 도와주는 센스까지 갖추자 호감도는 급상승했다. 정유미는 <윤식당>이후 CF제의가 몰려드는 등, 예능 출연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리얼리티 예능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는 넉넉하고 따듯한 마음을 갖추되, 불평을 토해내서도 안되고 털털하고 무난한 성격을 가져야 하지만 너무 오버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가식적으로 보여서도 안 되며 적극적이되, 너무 나서지도 않아야 한다. 여기에 예쁘거나 사랑스러움을 갖추면 더 좋다. 이처럼 여성 캐릭터가 활용되는 방식에 있어서 '호감'이 되는 것을 넘어 성공적으로 대중에게 어필하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해야 돼는 일도 많고 안 되는 일도 많다.

 

 

 

 

물론 예능에서 보여준 모습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일은 일정부분 자신의 책임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완벽할 수 없다. 예능에서 비춰지는 모습도 카메라가 있는 상태에서 편집된 정제된 모습일 가능성도 높다. 물론 그 안에서도 자신의 캐릭터를 잘 잡아 가야 할 책임도 그들에게 있지만 작은 부분에서까지 사람 자체를 평가하고 지나친 비난을 쏟아내는 것은 다소 불합리하다. 어느정도의 합리적인 논란을 넘어 감정적인 논란으로 변질되는 것도 흔하기 때문이다.

 

 

 

 

막말캐릭터나 안웃기는 캐릭터등, 다양하게 활용되는 남성 캐릭터에 비해 여성 캐릭터에게는 지나치게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고 호감과 비호감을 너무 확연히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필요한 비난 이상을 쏟아내는 것은 아닌지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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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3일 시작한 <도둑놈 도둑님>(이하<도둑님>)에는 몇 가지 편견이 존재했다. 첫째는 주말극이라는 것. 대부분 주말 심야시간대의 작품은 ‘막장’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씨청률을 끌어올리는 데는 꼬인 출생관계, 특히 악녀로 대변되는 뚜렷한 선악구도, 당하기만 하는 주인공의 답답한 상황등이 다소 지나칠 정도로 개연성을 무시한 채 표현된다. 주말극의 주 시청층이 주부라는 점을 다분히 인식한 구성이다. <도둑님>역시 50부작에 달하는 주말극으로 방송을 시작했고, 그런 편견을 깰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존재했다.

 

 

 


두 번째는 여주인공을 맡은 서현에 대한 편견이었다. 아이돌 출신 서현은 그동안 몇 번의 연기 경험이 있지만, 대부분 비중이 크지 않은 역할로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상황은 아니었다. 긴 호흡의 주말극을 이끌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고, 아이돌 출신 연기자에 대한 편견을 깨야 한다는 부담감 또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초반부의 똑똑한 전개, 그러나 예고된 막장.

 

 

 


6회가 방영된 <도둑님>은 이런 편견을 꽤 슬기롭게 극복해가고 있다. 사실 <도둑님>의 내러티브는 복잡하지 않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정의롭고 꿋꿋한 주인공과 그에 대비되는 악한 세력의 구도는 전형적이고 단조롭다. 그러나 이런 구도를 <도둑님>은 독특한 설정으로 극복한다.

 

 

 


<도둑님>은 친일파와 독립군의 후손이라는 지점을 건드렸다. 친일파의 후손들은 대기업을 운영할 정도로 화려한 삶을 살지만, 독립군의 후손은 도둑질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처지다. 국가에 피해를 입힌 사람들의 후손이 오히려 잘 살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후손은 오히려 범죄자가 된 아이러니한 상황. 이 지점은 ‘불공정 사회’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감정을 건드리며, 드라마를 막장공식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여기에 빠른 전개가 더해지자 호평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따져보면 <도둑님>은 선악구도, 출생의 비밀 등 막장 드라마의 구성 요소를 곳곳에 배치해 놓았다. 선과 악의 대립은 지나치게 뚜렷하고 주인공들은 나름대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절대 권력 앞에 번번이 꿈을 좌절당한다.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찾아내는 정의로운 주인공과 그런 주인공을 막는 절대 권력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절대 선과 절대 악의 대결은 익숙한 설정이고, 드라마의 흐름을 무리 없이 이해시키기에 적합한 설정이다.

 

 

 


 

그러나 그만큼 캐릭터는 전형적이다. 특히 홍일권(장광 분)과 그의 딸 홍미애(서이숙 분)의 캐릭터는 그저 ‘악’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특히 홍미애의 대사는 지나치다싶을 만큼 노골적이다. 6회분에서 강소주(서주현 분)에게 “너는 밥을 따로 먹으라.”며 구박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노골적인 표정과 노골적인 대사, 그리고 노골적인 행동은 감정이입할 대상을 말그대로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독립군과 친일파라는 소재를 차용한 것은 드라마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데 유효했으나 앞으로 남은 46회동안 촘촘한 설정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막장스럽지 않게’ 가져갈 수 있을지는 의문인 것이다. 이에 대해 <도둑님>의 pd역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도둑님>의 오경훈PD는 제작 발표회에서 “처음에는 깐깐하고 진지하게 만들겠다. 그러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막장적 요소가 어느 정도 들어간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어 “현실적으로 주 시청층을 잡기 위해서는 막장 요소를 넣지 않을 수 없음을 이해해 달라. 초반의 깐깐함으로 후반부에 약간 무리하고 파격적인 설정을 이해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이돌 출신' 서현이 연기자 서주현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사실상 막장은 주말극 시청률의 중요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초반부의 탄탄함이 후반부까지 유효할 것이냐 하는 지점이다. 후반부 이야기와 마무리가 깔끔해야 드라마의 평가는 좋게 바뀔 수 있다. 방영 내내 답답한 전개를 이어가다가 후반부에 급하게 마무리되는 성질의 드라마에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다.

 

 

 


더군다나 소녀시대 출신의 서현은 서주현이라는 본명으로 연기자로서의 존재감을 알리는 중요한 시점이다. 성인 연기자로 전환되고 2회가 지난 지금, 서주현의 연기는 생각보다 안정적이다. 발음이나 발성, 표현에 있어서 주인공을 표현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  

 

 

 


그러나 막장으로 전환되었을 때, 캐릭터의 붕괴가 일어날 확률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막장극에서 ‘착한’ 주인공이 단순한 정의감으로 벌이는 일들은 때때로 답답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착하기만한 주인공은 오히려 지지율이 낮다. 막장으로 치달을수록 오히려 강렬한 분위기를 내뿜는 악역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는 경우도 흔하다. 캐릭터가 전형적일수록, 주인공에 대한 연기력의 평가 역시 높지 않은 경향이 있다. 전형적인 선악구도 속에서 정의로운 강소주 캐릭터는 사실 신선하다고 볼 수는 없다. 

 

 

 


<도둑님>은 과연, 막장의 향연 속에서도 서현을 연기자 서주현으로 인식 시킬만큼 큰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초반부의 전개가 아깝지 않도록 후반부에 대한 세심한 노력이 수반될 때만이 그런 반전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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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의 슬램덩크>(이하 <언슬>) 시즌 2는 방영 내내 5%가 채 안 되는 낮은 시청률을 기록 했다. 시즌 1의 걸그룹 콘셉트를 그대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언슬>은 신선한 예능은 아니었고, 그만큼 기대감보다는 우려스러운 지점에서 시작한 것도 사실이었다. 예상대로 시청률은 높지 않았다. 이미 한 번 만들어진 걸그룹, 그것도 꽤 성공적이었던 프로젝트를 같은 콘셉트로 반복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일인지 회의적인 시선이 몰려들었다.

 

 

 


 

시즌 1에서 걸그룹 프로젝트는 민효린의 ‘꿈’을 이뤄준다는 관점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시즌 2에서는 이미 주어진 미션으로 시작되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모두가 협력한다는 감동 코드가 사라진데다가 똑같은 설정을 멤버만 바꿔서 그대로 사용한 안일함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진정성’과 ‘화제성’을 동시에 잡은 시즌1의 걸그룹에 비해 여러모로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던 것이었다.

 

 

 

 


불리한 조건...새로운 캐릭터를 설득하기 까지

 

 

 


시즌 2에 출연하는 김숙과 홍진경을 제외하고 강예원, 한채영, 홍진영, 공민지, 전소미등이 새로 영입되었지만 시즌 1에서 보여준 케미스트리 이상을 보여줄 수 있을지 역시 의문이었다. 시즌 1의 멤버들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가며 최선을 다해 마지막 무대를 완성 시켜 가는 것이 감동을 준 것은 <언슬>을 시작하면서  쌓아놓은 그들만의 끈끈한 정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었다. 걸그룹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쯤에는 이미 그들은 모두 어느정도 친해진 상태였다.

 

 

 


시즌2가 시즌1과  비슷한 케미스트리를 발산할 수 있을까도 의문이었지만, 같은 감동이라도 비슷한 것을 두 번 볼 때의 감동은 훨씬 감소된다는 것 또한 문제였다. 콘셉트는 시즌1과 동일 했고, 시즌 1의 박진영 같은 캐릭터 강한 멘토도 등장하지 않는다. 김형석이라는 유명 작곡가가 투입되었지만 예능 캐릭터로서는 박진영만큼 존재감이 강하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런 우려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시즌이 진행될수록 시즌1과는 다른 캐릭터들이 생겨나고 출연진들의 끈끈한 유대감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완벽에 가까운 완성형 걸그룹 모델인 공민지부터, 이미 걸그룹 활동 경력이 있는 전소미등이 걸그룹 중추로서의 역할을 했고, 시즌1에서 활약한 김숙과 홍진경은 프로그램 전체의 흐름을 주도하며 곳곳에서 예능으로서의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여기에 새로운 캐릭터들이 더해지며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한채영은 처음 예능에 모습을 드러내 도도하고 도시적인 것모습과는 달리, 망가지기를 두려워 하지 않으며 털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춤과 노래가 부족했지만 주눅들지 않는 모습은 매력으로 다가왔고, 노래를 잘 모른다며 ‘나는야 케찹될거야’라는 가사를 가진 동요 ‘토마토’를 부르는 모습으로 ‘케찹 언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강예원은 성악을 전공했지만, 노래에 대한 부담감을 극복하는 캐릭터로 등장했다. 그 전부터 가지고 있던 노래에 대한 두려움과 성대가 다침으로써 더 심해진 공포증은 그가 극복해야 할 과제였고, 그 트라우마 극복 과정은 시즌 1에서는 없는 성질의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홍진영은 특유의 밝고 활발한 성격으로 모두에게 서슴없이 다가갔으며 트로트 가수의 색을 지워내고 매력적인 또 다른 목소리를 찾아낸 것은 물론, 래퍼로서의 변신까지 이뤄냈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각각 빛을 발하는 과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어쩔 수 없이 등급이 나눠지고 평가가 이뤄지는 상황 속에서도 서로 견제하거나 질투하는 모습 없이 서로에게 힘이 되는 화합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이 지점은 시즌1 때와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실력은 부족하지만 각기 다른 재능이 모여 걸그룹이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시청자들은 그들을 마음으로 응원하게 되었다.

 

 

 

 

빠른 피드백,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배려넘친 예능

 

 

 


여기에 시청자들의 의견에 대한 피드백 역시 상당히 빨랐다. 김형석 작곡가가 처음 만든 곡은 시청자들의 부정적인 반응에 의해 재빠르게 수정되었다. 새로 만들어진 곡 ‘맞지’는 기존의 걸그룹 노래와 비교해도 우위를 점할 수 있을만큼의 높은 퀄리티로 제작되었다. 여기에 멤버들의 의견이 반영된 가사는 훨씬 더 곡에 대한 몰입감을 선사했다. 의상에 대한 피드백 역시 빠르게 이루어졌다. 무대 의상의 초안이 방송을 통해 공개되자 부정적인 의견이 쏟아졌고 이를 재빠르게 수정하며 시청자들의 의견을 어느정도 반영한 것이다. <언슬>은 많은 부분에서 ‘불편함 없이’ 시청할 수 있도록 배려한 프로그램이 됐다. 빠른 피드백도 그렇지만 멤버들간의 갈등을 소재로 삼지 않고, 서로간에 신뢰와 화합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를 풀어냈다는 점이 더욱 그렇다.

 

 

 


이런 노력은 시즌1에 이어 <언슬>은 음원차트 1위 올킬이라는 기록을 다시 한 번 써내려가는 결과로 나타났다. 예능에서 만들어진 노래가 음원차트 1위에 등극하는 것을 넘어 올킬을 기록하는 일은 <무한도전> 정도의 예능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이는 시청률을 뛰어넘어 그들의 진정성이 통했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비록 시즌 1보다 걸그룹 메이킹의 화력은 약했을지 몰라도 그들은 또다른 매력을 증명하고 큰 성과를 달성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여성 캐릭터들의 조합으로 이정도의 매력을 발산했다는 것만으로도 <언슬>의 걸그룹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언슬>은 남성 중심의 예능에서 여성들의 존재감을 발견하고 그들의 성장을 목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마지막 전소미가 “왜 나는 항상 잠깐일까”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것은 이제까지 프로젝트성 그룹으로만 활동한 전소미에 대한 공감대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그들이 보여준 서로간의 우정에 설득 당했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예능도 어떤 조건만 갖춰지면 충분히 설득력 있고 감동을 전해줄 수 있음을 <언슬>은 보여주었다. 미래에는 이런 설득력을 넘어 남성 위주의 예능계를 뒤엎을만한 파급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성의 예능’이 탄생하기를 기대하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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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우와 최강희가 주연을 맡은 <추리의 여왕>은 추리라는 소재에 여성 탐정을 내세웠다. 보통 추리물이나 수사물에서는 여성의 역할이 크지 않다. 끔직한 범죄의 현장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주체는 주로 남성이다. 주로 여성은 이를 보조하거나 주변인으로만 등장한다. <추리의 여왕>은 그러나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추리의 주체가 여성이 되는 드라마다. 단순히 여성을 넘어 '흙수저'에 가까운 캐릭터다. 엘리트나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은 여성이 아닌, 뛰어난 추리력을 갖고 있으나 아무 ‘스펙’이 없는 아줌마다. 평범한 아줌마가 사건을 해결한다는 지점은 분명 수사물의 전형성을 뒤집는 설정이다. 그러나 과연 <추리의 여왕>은 추리의 과정에서 여주인공을 ‘여왕’으로 만들었을까.

 

 

 



시즌2 염두해 둔 마지막 회...적절했나?

 

 

 

 

 

 

<추리의 여왕>은 마지막회까지 통쾌한 사건의 해결을 보여주지 않는다. 여자 주인공 유설옥(최강희 분)은 부모님의 죽음, 남자 주인공 하완승(권상우)는 여자친구 서현수의 죽음의 진실이라는 해결과제가 있으나 마지막회에서도 그 사건들의 해결은 확실한 종결점을 맞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에 달해서야 신현수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건은 애매모호한 지점에서 끝이 난다.

 

 

 


이는 열린 결말과는 궤를 달리한다. 열린 결말에서도 마지막 회에서 이야기의 흐름은 마무리가 되어야 한다. 마무리 된 지점에서 주인공의 선택을 애매모호하게 남겨 놓거나 이야기가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거라는 뉘앙스를 주는 것은 열린 결말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해결하려던 사건이나 던져놓은 상황들이 종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끝이 나는 것은 중간에 끊긴 느낌을 줄 뿐이다.  

 

 

 


<추리의 여왕>의 결말은 시즌 2를 장담할 수 없는 한국 드라마 환경에서는 적절한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추리의 여왕 cp는 이에대해 “애초에 시즌2를 염두해 두고 제작했다. 여건되면 제작 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건이 되면’이라는 단어다. 한국에서는 드라마가 잘돼도 성적이 좋지 않아도 시즌 2제작이 쉽지 않다. 성적이 좋으면 드라마로 이름값이 올라간 주연 배우들을 다시 한데 모으는 것이 쉽지 않고, 성적이 나쁘면 제작 자체가 추진되지 않는다. 시즌제는 한국 드라마 환경에서 정착되기 힘든 시스템이다.

 

 

 



여왕을 만들지 못한 빈약한 추리의 과정

 

 

 

 

 

아쉬운 마무리도 마무리지만, 과연 이 드라마가 <추리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설득시키는 스토리를 선보였는가 하는 지점역시 생각해 볼 문제다. 주인공 유설옥은 뛰어난 추리력을 가지고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지만, 추리의 과정에서 그가 가진 능력에 탄복을 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추리의 흐름이 기승전결을 갖추고 유려하게 전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오히려 뛰어난 추리력 보다는 민폐가 되는 상황을 보여주는 여자 주인공은 추리의 ‘여왕’이라기 보다는 ‘시녀’ 쯤으로 묘사된다.

 

 

 


 

각종 어려움을 딛고 뛰어난 추리력을 선보이며 사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 시청자의 기대는 무참히 짓밟히고, 단순한 사실이나 작은 증거들만을 바라보는 유설옥은 추리의 ‘여왕’이라고 부르기엔 한참 모자르다. 제작진은 이를 ‘생활 밀착형 추리’라고 포장하지만, 시청자들은 추리의 과정에 대한 스토리의 빈약함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추리물에 필수적인 사건의 발생과 해결, 그리고 반전이라는 요소는 이 드라마 속에서 그다지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결국 주인공의 활약도 따라서 약해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에 이르러서까지 범인에게 납치당하거나 총을 맞는 여주인공을 구해주는 것은 결국 남자 주인공이다. 여자 주인공의 주체적인 활약이나 스스로의 능력 발휘는 이 드라마에서 확실한 포인트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결국 ‘여성은 남성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편견을 전혀 극복하지 못한 모양새다.

 

 

 


 

이는 드라마의 흐름이 ‘추리’에 초점을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드라마에 소위 ‘떡밥’이라고 부르는 수많은 해결과제를 던진다. 그러나 그런 떡밥을 던지고 시청자들을 낚시 하는 스킬은 지나치게 안일하다. 사건의 발생과 흐름, 그리고 해결의 과정에 있어서 시청자들이 예상치 못한 흐름을 전개시키지 못하고, 사건을 확장시키는데도 실패한다. 결국 마지막까지 회수되지 않는 수많은 ‘미끼’들은 드라마의 유기적인 구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는 의도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작가의 역량 부족처럼 느껴진다.

 

 

 


이런 상황속에서 이 드라마는 추리물의 장점을 잃어버린다. 시청자들이 열심히 사건을 분석하고 사건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은 이 드라마를 통해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려거든 사건의 해결점이라도 명확해야 하는데, 던져놓은 상황들을 스스로 수습하지도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설옥이 ‘여왕’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추리의 여왕>은 새로운 한국형 추리물의 탄생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여성 캐릭터 활용의 한계를 다시한 번 보여주고야 말았다. 남성을 뛰어넘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진정한 수사물의 ‘여왕’의 탄생은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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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한 엔터테이너의 끝은 비참하다. 연예인을 꿈꾸는 수많은 사람 중 스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단 1%. 나머지 99%는 대중의 뇌리에서 사라져간다. 스타의 자리는 바늘 구멍을 뚫는 것과도 같이 좁은 문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스타를 꿈꾸는 사람이 늘어만 가는 상황 속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같은 맥락으로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한 프로그램의 종영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의 종영 역시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결정된 일이다. 그러나 유독 <웃찾사>의 종영을 안타까워 하는 코미디언들의 목소리가 높다. 그 이유는 코미디언이 설 자리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SBS는 지난해 16기 공채 개그맨을 뽑은 상태였다. 현재 <웃찾사>에 출연하는 신인 코미디언들은 결국 1년도 채 채우지 못하고 방송에서 '잘릴' 위기에 처했다.

 

 

 


코미디언의 설자리, <웃찾사>가 만들어 주나

 

 

 


코미디언들은 이를 두고 '개그 의지를 꺾는 무자비한 상황'이라고 일컫는다. 방송사의 책임론도 불거졌다. 물론 SBS측이 공채를 뽑고도 제대로 활용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웃찾사>가 끊기면 <웃찾사>가 유일한 프로그램인 신인 코미디언들의 수입도 끊긴다. SBS측은 아나운서와는 달리 공채 코미디언에 대한 월급은 지급하지 않고 있다. 방송에 출연해야만 출연료를 받을 수 잇는 것이다. 코미디언들의 절박한 상황은 분명 안타깝다.

 

 

 


그러나 안타까움과는 <웃찾사>의 존속은 별개다. 신인 코미디언들을 뽑고도 활용하지 못하는 방송사의 안일한 행동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웃찾사>의 존속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웃찾사>는 2003년 공개 방청 코미디의 열풍을 타고 시작되었다. 2017년에 이르기까지 <웃찾사>는 무려 14년에 걸쳐 방영되었다. 초반에는 어느정도의 관심을 얻는데 성공했지만, 근 10년 동안 <웃찾사>를 대표하는 코너는 단 하나도 탄생하지 않았다. 시청자들의 관심은 멀어졌고, 시청률은 2%대로 떨어졌다.  TVN의 <코미디 빅리그>(이하<코빅>)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더 낮다. 채널의 이점을 생각하면 더블 스코어 정도는 시청률의 차이가 나는 셈이다. 시청률이 곤두박질 친 상황 속에서 화제성을 잡는데도 실패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마이너스 프로그램이다. 14년동안 <웃찾사>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 역시 '코미디언들의 설자리'라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없었으면 14년간 지속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인 성적이었다.

 

 

 


이미 공개 방청코미디는 트렌드가 아니다. 한때 시청률 30%를 넘기고, 꾸준히 두자리수 시청률을 유지해 왔던 <개그 콘서트>조차 시청률은 한자릿 수로 곤두박질 쳤다. 공개 방청 코미디가 대세였던 시대는 이미 한참 지났다. 슬프지만, 트렌드는 변한다. 그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은 당연하다. <웃찾사>는 포맷부터 트렌드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포맷을 변화시키거나 트렌드를 다시 찾아 오는 일이다. 그러나 <웃찾사>의 개그를 보자. 10년 전의 코미디에 비해 전해 발전하지 못했다. 분장이나 유치한 말장난, 외모 비하, 성대모사 등 이미 수차례 목격한 코미디만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웃찾사>는 이에 <코빅>의 대결 구도를 빌려와 '레전드 매치'라는 이름을 사용해 토너먼트를 진행했다. <웃찾사>만의 아이디어로 한계를 돌파해 보려 하는 것이 아닌, 타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를 도용한 셈이다. 그 안에서도 나름의 재미를 주는 코너를 개발한다면 모르지만, 포맷을 변경하고도 <웃찾사>는 이전의 매너리즘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매너리즘에 빠진 코미디, 냉정하게 말하자면 코미디언들의 직무유기다.

 

 


'콩닥콩닥 민기쌤'같은 코너를 예를 들어보자. 실제 커플이 등장하는 것으로 신선함을 만들어 보려 했지만, 그 안에서 보여주는 코미디는 전혀 신선하지 않다. 웃음 포인트는 이상한 포즈를 짓거나 우스운 표정이나 굴욕적인 소품을 착용하는 몸개그에 지나지 않는다. 의표를 찌르는 재미는 처음부터 찾을 수가 없다. '콩닥콩닥 민기쌤'을 예로 들었으나, <웃찾사>의 모든 코너가 이런 식이다. 단순히 행동을 과장하고 개인기를 펼쳐보인다고 하여 웃음이 창출되지는 않는다. 시청자들이 공감을 할 수 있는 이야기나 스토리, 그 안에 반전 요소가 적절하게 버무려진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지만 그런 기지는 <웃찾사>에서 찾아 볼 수 없다.

 

 

 


대놓고 말하자면 이는 코미디언들의 직무유기다. 대중에게 웃음을 제공할 수 없는 코미디언은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정형돈이나 김영철 처럼 '안웃기는 캐릭터'를 설득시키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그러려면 공개 코미디로는 불가능 하다. 리얼 버라이어티처럼 사람 자체의 캐릭터를 공감가게 만들고, 호감형으로 전환 시키는 캐릭터 쇼가 아닌 공개 코미디에서는 방청객을 무조건 웃겨야한다. 문제는 <웃찾사>는 채널을 고정할만큼 우습지 않다는 것이다. 우습지 않으니 화제성이 없다. 화제성이 일때는 '흑인 비하'같은 부끄러운 논란이 일 때 뿐이다. 

 

 

 


웃음이 없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활력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새 시청자들이 시청해야 할 이유가 없는 프로그램이 된 <웃찾사>는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연예인 뿐 아니라 회사에서도 일처리를 제대로 못하는 직원들은 해고 당한다. 말하자면 웃기지 못하는 코미디언들은 일을 제대로 못한 셈이다. 냉정하지만, 그게 진실이다. <웃찾사>의 폐지는 직원들의 일처리가 원할하지 않은 상황이 길게 지속되었기 때문에 회사 자체가 문을 닫은 상황이다. 억울하지만 어떡하겠는가. 부도가 난 회사는 이미 회생 불가다.

 

 

 


<웃찾사>가 아닌, 현재의 트렌드에서 코미디언들의 활용을 고민할 때

 

 


<웃찾사>의 폐지를 마냥 슬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코미디언들이 존재감을 보일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느냐 하는 지점을 고민해야 한다. 코미디언들이 재능을 뽐내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단순히 <웃찾사>의 폐지를 '반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미 <웃찾사>는 신인 코미디언 발굴의 장이 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웃찾사>로 존재감을 드러낸 코미디언들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차라리 <라디오 스타>같은 프로그램에서 한 번 큰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훨씬 더 파급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웃찾사>에서 '밥줄'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이정도면 <웃찾사>로 '코미디언의 설자리'를 운운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코미디가 없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존속은 '억지 웃음의 강요'밖에 되지 않는다. 시청자들이 외면하는 프로그램을 코미디에 대한 자긍심이 아닌, 자신의 '밥줄'이라는 이유로 존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코미디언으로서 '웃기지 못한 책임'에 대한 성찰이 없는 행동이다.

 

 

 


이제부터 그들이 고민해야 할 것은, 공개 방청 코미디의 존속이 아니라 현재의 예능 트렌드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하는 것이다. 차라리 현재의 예능 트렌드에서 코미디언들을 활용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일이다.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은 <웃찾사>의 존속이 아닌, 기회를 만드는 일이다. 물론 이익을 우선시 해야 하는 방송사에서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처럼 공채를 뽑은 책임 역시 방송사에는 존재한다. <웃찾사>를 폐지하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웃찾사>가 아닌 프로그램에서 코미디언들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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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작품 속에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으면서 권력에 저항하는 주인공들의 위기를 그리며시청자들의 뒷통수를 치는 반전으로 호평을 받던 박경수 작가의 신작 <귓속말>은 이보영과 이상윤이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면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을 수 있었다.

 

 

 


<귓속말>역시 박경수 작가의 특징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정의로운 판사였던 이동준(이상윤 분)은 정의롭다고 여겼던 판결 때문에 법정에 서지 못할 위기를 맞고 이 때문에 양심에 거스르는 판결을 내리는 조건으로 대기업 회장인 최일환(김갑수 분)이 내민 손을 잡을 수밖에 없게 된다.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 지는 지점에서 생겨난 피해자 신영주(이보영 분)는 아버지에 대한 불합리한 판결을 인정할 수 없고 복수의 칼날을 들이댄다. 선과 악, 그리고 권력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가 강렬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강약조절에 실패한 스토리..주인공들의 매력도 반감

 

 

 

 


초반부 스토리는 이동준이 받는 압박으로 흘러간다. 이동준은 신념을 버렸다는 양심에 가책을 받는 것은 물론, 신영주, 최일환의 딸 최수연(박세영 분), 최수연의 연인 강정일(권율 분)등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다.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삶이지만 그 삶은 지옥이다. 여기에서 <귓속말>의 첫 번째 오류가 생겨난다. 남자 주인공이 사방에서 받는 압박을 드라마를 시청하는 내내 숨이 막힐 정도로 몰아붙이고, 숨 쉴틈이 없는 상황 속에서 드라마는 오히려 피곤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섹스비디오’로 협박을 하는 여주인공 신영주는 초반부터 매력발산에 실패한다.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부당한 판결을 한 것에 대한 분노는 이해할 수 있지만, 신영주의 ‘막무가내 식’ 몰아붙이기는 캐릭터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소다. 상황과 현실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만들어진 계획이 아니라 상대방의 약점을 잡고 무조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라며 떼를 쓰는 모습은 여주인공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을 방해한다.

 

 

 

 

초반부의 답답한 전개를 딛고 이동준과 신영주는 서로 같은 편에 서게 되고 두 사람의 멜로는 진행되지만 드라마의 서사는 이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도록 만들지 못한다. 매회 일어나는 사건들과 반전들은 시청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기 보다는 지치게 만든다. 일이 해결될 때 쯤에 터지는 위기나 반전은 놀라움이 아닌 ‘반전을 위한 반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는 사건의 강약조절에 실패한 스토리라인의 탓이 가장 크다. 적절한 순간에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은 찬사를 받지만, 마치 패턴처럼 반복되는 반전에 대한 호기심은 일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반전에 대한 긴장감이 사라지고 의례히 이쯤에서 다른 상황이 터져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되고야만다.

 

 

 

 



주인공보다 악역에 집중되는 이야기 구조...시청포인트가 애매모호해지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을 연기하는 이보영과 이상윤의 연기마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인다. 형사 출신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보영의 말투나 액션은 캐릭터를 돋보이게 만들기 보다는 이전의 지적이고 깔끔한 이보영의 이미지에 갇혀있고, 이상윤의 심각한 표정과 낮게 깔린 목소리는 지나치다 싶을만큼 기계적으로 느껴진다. 오히려 이야기의 흐름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악역을 소화한 권율이다. 권율이 소화한 강정일이라는 캐릭터는 주인공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을 보여준다. 애인의 배신이나 아버지의 죽음등을 계기로 복잡해지는 감정의 진폭을 표현하는 권율의 연기는 ‘재발견’이라는 평가가 나올만큼 상당히 인상적이다. 

 

 

 


주인공들에 대한 매력이 반감되고 악역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가자 드라마의 중심축이 흔들린다. 악인을 처단하는 통쾌함에 초점을 맞출 수도 없고, 주인공들의 처절한 고군분투에 공감이 가지도 않는다. 이야기의 흐름이 애매모호해지면서 드라마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진다.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으나 과연 작가와 배우의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 낸 드라마인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주인공들에 대한 힘이 떨어지자 멜로라인에 대한 관심 역시 줄어든다. ‘성인의 멜로’를 보여주겠다는 포부가 무색할 정도로 두 사람이 서로에게 빠지는 상황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두 사람의 멜로에도 감정이입을 하기 힘들다. 결국 드라마는 주인공들에 대한 매력을 설명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귓속말>은 그동안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으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 냈던 박경수 작가의 작품 중, 가장 그 구성이 열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소의 억지와 개연성 부족을 드라마의 휘몰아치는 메시지와 구성력으로 극복하던 박경수 작가의 필력이 이번만큼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것이다.

 

 

 


결국 <귓속말>은 주인공을 위한 드라마가 되지 못했다. 명작이라고 부르기엔 배우들의 매력과 작가의 역량이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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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곳에 떨어진 연예인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을 담은 예능의 설정은 상당히 흔하다. 바로 얼마 전 히트한 <윤식당>이 그랬고 그 이전에 <삼시세끼>가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1박 2일>이나 <정글의 법칙>역시 그런 뉘앙스를 품고 있다.  olive tv와 tvN에서 방송을 시작한 <섬총사>는 그런 트렌드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예능이다. 침체기를 넘고 케이블에서 다시 전성기를 맞은 강호동과 가수겸 배우 정용화, 배우 김희선까지. 도무지 예측이 안가는 조합의 인물들을 섬으로 끌고 들어간다. 대체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싶지만 첫 회에서 생각보다 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힐링' 여행 예능, <삼시세끼> 뛰어넘을까

 

 


 

<섬총사>는 같은 여행 예능이지만 <1박 2일>이나 <정글의 법칙>처럼 비교적 빠른 템포로 극적인 연출로 진행되는 예능과는 달리, 나영석pd의 트레이드 마크인 ‘힐링’을 표방한 느낌이 강하다.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라는 공간은 <삼시세끼>의 어촌편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섬총사>에서는 밥을 지어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미션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도심과 멀리 떨어진 낯선 곳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자신의 취향대로 살아야 한다는 미션이 주어진다. 어떤 상황 설정이나 해야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더욱 출연자들을 난감하게 만든다.

 

 

 


그저 취향대로 살기만 하면 되지만, 그들의 취향은 사실 ‘섬’이라는 공간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산이 좋냐, 바다가 좋냐”는 질문에 “둘 다 싫다. 호텔이 좋다.”고 말하는 김희선은 이 예능의 키 포인트를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세 걸음 걸으면 차를 타야 한다는 뜻의 ‘삼보승차’가 자신의 별명이라 밝힌 김희선은 섬에서 일을 하고 뒹굴기엔 지나치게 곱고 화려하다. 인터뷰에서도 김희선은 "생선의 눈을 보지 못한다"고 말하거나 "섬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회는 먹는다"고 말하는 김희선은 어쩐지 재미있는 캐릭터다. 전혀 섬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가 섬 생활을 받아들이는 장면에는 묘한 쾌감이 있다.

 

 

 


 

<섬총사>는 도시화가 되지 않아 비교적 오염이 되지 않은 섬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들의 섬 생활을 천천히 보여주는 배경으로 삼는다. 이는 <삼시세끼>가 굳이 시골로 가 음식을 만들게 한 이유와도 비슷하다. 복잡하지 않고 단조로운 삶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삼시세끼만 걱정하게 만든 포맷은 단순했지만, 보고 있으면 묘하게 빠져드는 부분이 있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삶 속에서 삼시 세끼만 걱정하면 되는 단조로움은 시청자들에게 ‘힐링’으로 다가온 것이다.

 

 

 


<섬총사>역시 그런 부분을 놓치지 않는다. <섬총사>는 삼시세끼처럼 함께 생활하며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각자 살게 되는 집도 다르고, 서로 협력해야 하는 미션도 없다. <섬총사>는 출연자들이 익숙한 공간이 아니라 주변에 아무 것도 없어 개성을 전혀 살릴 수 없을 것 같은 공간에서 그들이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찾아내고 그들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게 만들며 캐릭터를 쌓아 나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 공간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다는 바로 그 지점이다. 그런 그들이 섬에 정을 붙이고 그 섬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일종의 ‘힐링’이라고 할 수 있다.

 

 

 


<섬총사>의 포맷, 독보적인 캐릭터의 탄생을 기대해 보아도 좋을까

 

 

 

 

첫 회의 이야기는 세 사람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그들은 섬 생활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하면서도 불편할 수밖에 없는 섬의 환경에 불안함을 드러낸다. 섬으로 향하는 그들은 아직 서로와 가까워진 상태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친해지는 과정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들은 그들의 캐릭터를 드러낸다. 김희선의 ‘오빠’라는 단어에 얼굴이 붉어지며 민망해하는 강호동이나, 허당같은 매력을 드러내는 정용화, 그리고 큰 트렁크 하나에 술을 가득 채워온 김희선까지 그들의 조합은 어울리지 않는 듯 하면서도 절묘하게 케미스트리를 만들어 내는 부분이 있다. ‘스타’를 버려야 하고 열악한 환경을 감당해야 하는 섬 생활을 그들이 받아들이면서 보여주는 소박함은 <삼시세끼>에서 보여주는 힐링의 메시지와 닮아 있다.

 

 

 


문제는 앞으로 그들의 캐릭터를 어디까지 다변적으로 활용하고, 어디까지 대중에게 설득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단순히 섬에 그들을 내려 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이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만들면서도 그들에게 지나친 개입이나 강요를 하지 않고, 그들의 캐릭터를 시청자들에게 설득시켜야 하는 작업이 성공해야 <섬총사> 역시 성공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삼시세끼>같은 예능과는 다른 궤도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이 예능이 가진 숙제다.

 

 

 


첫 방송의 캐릭터는 생각보다 매력적으로 그려졌다. 특히나 리얼 예능에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톱스타 김희선은 예능에서의 새로운 캐릭터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캐릭터에 시청자들이 열광하게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아주 작은 포인트로도 예능 캐릭터의 성패는 갈릴 수 있다. 그 종이 한 장의 차이를 <섬총사>를 통해 발견해 낼 수 있을까. 김희선이 <섬총사>의 뮤즈로 거듭나는 기적을 보이며 <섬총사>가 단순히 비슷한 ‘힐링’ 예능이 아닌 또 다른 히트작이 될 수 있을지가 궁금해 지는 첫회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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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N <터널>은 시작부터 tvN의 히트작 <시그널>의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형사들의 수사물이라는 점,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며 사건이 해결된다는 판타지적인 설정. <시그널>에서는 과거로부터 무전이 오는 무전기가 존재했다면, <터널>에는 아예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 수 있는 ‘터널’이 존재한다. 단순히 전파를 주고받았던 <시그널>과는 달리, 아예 물리적인 시공간을 초월하는 <터널>은 분명 똑같은 설정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터널>은 제작 발표회에서부터 <시그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배우들과 PD는 <시그널>을 보지 않았다고 밝혔으며, <시그널>과는 다른 작품임을 분명히 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시그널>이 화두가 된 것 자체가 <시그널>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재확인이었다. 설정은 변화했지만 ‘진화’했다고 볼 수는 없었고, 이야기는 완전히 새로울 수 없었다.

 

 

 


로맨스 드라마에 지친 시청자들이 새로운 것을 찾게 되자 특별한 소재로 호평을 얻을 수 있는 수사물은 제작 붐이 일었다. 타임 슬립 역시 다수의 드라마에 사용된 설정으로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소재가 아니었다. 설정을 어떻게 바꾸든, 이전에 반복된 형태를 피해가기는 힘들었다. 특히나 <터널>은 타임슬립과 수사물이라는 장르가 합쳐져 얼마 전 히트했던 <시그널>을 떠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반복되어 온 소재, <터널>이 <시그널>을 극복하는 법

 

 

 


<터널>은 수사물의 흐름을 굳이 거스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쇄살인’이라는 사건을 30년의 세월에 녹이면서 이야기를 긴밀하게 구성하여 긴장감을 증폭시킴으로서 이야기 구조를 촘촘하게 만드는데 주력한다. 과거와 현재의 흐름 속에서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과 살인범의 정체에 대한 반전등은 꽤 유려한 흐름으로 짜여있고, <시그널>의 그림자를 벗어던지게 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터널>이 <터널>의 이야기 만으로 가치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유기적인 구성과 흐름이다. 기존의 수사물과 완전히 흐름을 달리 하는 구성은 아니지만, <터널>이 가진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힘은 강력하다.

 

 

 


여기에 <터널>만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시선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리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사건 발생으로 인해 피해자의 입장에 서게 되고, 그로인해 피해자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여타 수사물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터널>의 주인공들은 사건과 아주 긴밀한 접점에 놓여 있다. 이를테면 김선재(윤현민 분)는 연쇄 살인사건 피해자의 가족이고 신재이(이유영 분)는 연쇄 살인마의 위협을 직접적으로 받는 존재가 되는 식이다.

 

 

 

피해자가 겪어야 하는 아픔들은 주인공들을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사건이 일어난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건이 잊혀질 때 조차, 피해자의 가족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고, 힘겨운 싸움을 계속 해 나가야 한다는 것. 그들의 아픔을 가벼이 여길 수 없다는 메시지가 이 드라마를 관통하고 있다.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단순히 나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에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또 다른 분노와 아픔을 만들어 낸다는 메시지 만으로도 <터널>의 장점은 유효하다. 

 

 

 


 


초반부의 완성도에 비해 힘이 달리는 후반부는 다소 아쉽다.

 

 


그러나 <터널>의 후반부는 초반부의 긴장감에 비해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터널>의 이야기는 대부분 과거가 아닌 미래에서 진행이 된다. 과거로부터 30년을 타임슬립한 형사 박광호(최진혁 분)은 이 드라마의 핵심요소지만,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존재로서 활용되었었을 뿐,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의 본질에 다가서는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한다.

 

 

 


작가는 30년의 터울이 있지만, 미래와 과거의 시간이 같이 흐르는 것으로 설정을 해놓는다. 이를테면 30년 후에서 5개월이 흐르면, 30년 전에서도 5개월이 흘러있는 것이다. 이 설정은 두 세계를 긴밀하게 연결하기 위한 것이다. 과거에서 무언가를 바꾸면 미래에서도 바뀌게 된다는 설정은 그동안 타임슬립 물에서 수차례 이용되어왔던 설정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가장 주요한 설정 중 하나인 이런 설정이 마지막회에서도 전혀 활용되지 못하고 끝을 맺어버린다. 과거에서 연쇄살인범 목진우(김민상 분)을 검거하면 수많은 살인을 막을 수 있음에도 그런 뉘앙스조차 풍기지 않고 드라마는 마무리 된다.

 

 

 


또한 신비로운 터널에 대한 이야기 역시 너무나 빈약했다. 어떻게 해야 과거로 돌아오고 어떻게 해야 현재로 타임슬립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조건조차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 사건이 해결되자 당연히 과거로 돌아가는 박광호의 뒷모습은 그동안 과거로 돌아가고자 해도 돌아갈 수 없었던 터널의 비밀을 다 풀어 낸 모습이었지만, 그런 이야기는 드라마 안에서 제대로 설명된 적이 없었다. 또한 박광호가 과거로 돌아가면서 2017년의 사람들이 어떻게 변했고, 어떻게 다른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의 마무리도 없었다. 해피엔딩이라고 넘어가기엔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남았다.

 

 

 


또다시 성공한 웰메이드 수사물, 시청자들은 <터널>을 인정했다.

 

 

 


 

그러나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무거운 이야기를 하면서도, 우정과 가족,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따듯한 시선을 견지한 <터널>은 타임슬립과 수사물이라는 클리셰를 사용하고도 <터널>만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비슷한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웰메이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터널>이 보여준 것이다. 5%가 넘는 높은 시청률은 이 드라마의 재미를 가늠하게 하는 부분이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마지막까지 <터널>만의 <터널>다운 이야기를 풀어낸 드라마. 또 수사물에, 또 타임슬립이라는 핸디캡을 딛고도 시청자들을 tv앞으로 모이게 했다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작품임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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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방청형 코미디의 몰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이디어의 고갈이다. <개그 콘서트>(이하<개콘>)의 성공으로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웃찾사>), <개그야>, <코미디 빅리그>등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지만, 파이가 커진 만큼 아이디어 싸움도 치열해졌다. 공개 방청 코미디는 여럿이지만 기본적으로는 프로그램의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기 어렵다. 관객이 있고, 무대 위에서 코미디언들이 공연을 하는 형식이 기본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코미디언들의 역량이나 아이디어는 공개 방청 코미디의 가장 주요한 흥행코드다. 이제까지 공개 방청 코미디의 흥행 방식 역시, 코너의 성공과 더불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 공개방청 코미디는 예전만큼 웃음을 담보하지 못하다. <개콘>이 대표적인 예다. 코너가 바뀐다 하더라도 비슷한 개그를 사용한 탓에 오랜 시간동안  반복된 패턴이 시청자들에게 읽히는 탓도 크지만 아이디어의 혁신이 없는 탓도 컸다. 한 번 비틀어 의외의 장면에서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반전이 없고, 코미디는 어느 순간 외모 비하와 자학개그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이에 정치·사회 등의 풍자를 시작했지만 1차원적인 풍자는 코미디보다는 시사에 가까웠다. SNL의 <미운우리 프로듀스 101>처럼 한번쯤 상황을 비틀어 캐릭터를 만들고 웃음을 창출하는 개그가 아닌, 상황을 그대로 재연하는 수준의 풍자는 오히려 비판을 받았다.

 

 

 

 


하락세 <개콘>....900회 특집의 게스트들 문제 있었나.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개콘>은 900회 특집을 맞았다. 하락세라지만 여전히 <개콘>은 가장 유명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이 때, 뜬금없는 논란이 터졌다. 바로 개그맨 정종철이  SNS에 “아는 동생이  ‘<개콘> 레전드19 중 8개가 형 코너라고 자랑스럽다’며 ‘그런데 형은 900회 왜 안 나왔어?’라고 묻는데 할 말이 없네요. ‘개그콘서트’는 제작진이 만드는 것은 맞지만 제작진들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라는 글을 올리면서 부터다.

 

 

 


정종철은 <개콘>전성기 시절부터 ‘옥동자’ ‘마빡이’등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 <개콘>의 부흥과 함께 한 코미디언이었다. 레전드 코너에 수차례 꼽히고도 초대받지 못한 것에 대하여 그는 서운함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다. 나중에는 임혁필이 “<개콘>과 상관 없는 유재석만 나왔다”는 코멘트를 덧붙이며 더욱 논란이 심화되었다.

 

 

 


 

그러나 정종철의 ‘개인적인 서운함’을 대중이 공감하지 못한 까닭이 있다. 물론 최근 하락세를 겪고 있는 <개콘>의 시스템 자체가 창의성을 독려하고, 코미디언들에게 기회를 제대로 제공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있다. 그러나 <개콘>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와 900회 특집 초대손님은 철저히 다른 문제다.

 

 

 


 

과거에도 <개콘>은 특집 방송에 게스트들을 많이 섭외하여 코너에 투입하고는 했다. 한마디로 이벤트성이다. 유재석등 화려한 게스트가 출연한 900회 특집은 오랜만에 두 자릿수 시청률을 넘기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유재석은 녹화 이후에도 회식과 치킨을 사비로 계산하는 등의 미담도 전해졌다. 공개 코미디의 발전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준 게스트들의 존재감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임혁필 이전에 시작된 정종철의 ‘찬물 끼얹기’는 논점의 본질부터 잘못되었다. <개콘>특집에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 분노기 때문이다. <개콘>이 어떤 게스트를 섭외하느냐는 전적으로 그들에게 달린 문제다. 정종철을 부르지 않았다고 하여 ‘예의’가 없다고 보기도 힘들다. 그런식으로 따지자면 <개콘>을 처음 시작한 김미화나 초창기 멤버인 심현섭등도 초대되지 않은 것도 문제를 삼을 수 있다. 자신이 섭외되지 않은 상황을 두고 개인적으로 실망스러울 수는 있으나, 그것을 마치 <개콘>측의 편협함이나 잘못인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명백한 논점 흐리기에 불과하다.

 

 

 


정종철은 <개콘>이 아직 전성기에 있을 무렵, 박준형과 함께 타 방송사 프로그램인 <웃찾사>로 자리를 옮겼다. <웃찾사>측에서 <개콘>의 스타였던 정종철과 박준형에 대한 화제성을 원했고, 큰 계약금을 제시했으며 그들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개콘>입장에서는 배신일 수 있는 일이다. 비슷한 공개 코미디 방식에 <개콘>의 성공을 모방한 것이 분명한 프로그램에 간판 출연자였던 그들이 덜컥 출연하는 것이 달가울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송사측은 그에 대하여 공식 입장을 내고 그들에게 서운함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 한 마디로 철저한 ‘비지니스 관계’이기 때문이다. 내심 서운하더라도 더 나은 조건으로 타 방송사로 옮긴 그들을 비난할 근거는 없다.

 

 

 


 

같은 맥락에서 그들역시 <개콘>을 비난할 권리 같은 건 없다. 초대받지 못한 것이 억울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일이다. <웃찾사>로 옮길 때는 ‘비즈니스 관계’지만 갑자기 지금은 ‘<개콘>의 개국공신’ ‘코미디언 선후배’ 관계를 따지려고 하는 것 자체가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정종철의 말처럼 ‘떠나고 싶어서 떠난 것이 아니’라 해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정이든 사회생활에서 그 디테일한 사정까지 누군가에게 이해 받을 수는 없다. 각종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해도, 어쨌든 <개콘>을 나와 새로운 길을 걸은 것은 정종철이다. 그에 대한 책임 역시 그에게 있다.

 

 

 



<웃찾사> 종영....새로운 코미디를 만들지 못한 대가

 

 



정종철은 이어 회생이 불투명한 <웃찾사> 종영에 대해서도 글을 올렸다. “부탁드리고싶습니다. 후배들의 무대를 없애지 말아 주십시오.”라는 그의 간곡한 부탁은 이번에도 힘을 얻지 못했다. 그 이유는 <웃찾사> 자체가 그만큼의 화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정종철은 “ '개그콘서트' 18년, '웃찾사' 14년. 그동안 우리는 안 해 본 형식의 코너가 없을만큼 많은 코너들을 만들었고 고민했습니다.”라며 코미디언들의 노력을 강조했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해야 한다.

 

 

 


그간 정종철은 변화하는 트렌드 속에서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다. 공개 방청형 코미디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와중에서 자신의 독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예능의 트렌드에 적합한 인물로서 성장하지 못한 것이다. <웃찾사> 14년간 사라져가는 공개 코미디의 불씨를 살릴만한 독보적인 코너 역시 탄생하지 않았다. 이제 <웃찾사>는 거의 모든 사람의 관심선상에서 멀어졌다. 폐지가 딱히 아쉬운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더 이상 <웃찾사>라는 카드를 쥐고 있을 이유가 없다.

 

 

 

 

정종철과 함께 <개콘>을 나온 박준형은 2015년 <사람이 좋다>에서 <웃찾사>로 옮긴 것에 대해 "조금 더 준비를 많이 했어야 하는 부분이고 사실을 반성을 많이 했다"면서 "개그가 규모가 조금 더 커지려면 다른 프로그램이 떴었어야 한다. 그런데 준비 없이 나왔다. 그런 것에 대한 책임이 조금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후회를 내비쳤다. 한마디로 그들의 행보에는 실수가 있었고, 그 실수는 14년 후인 지금에도 수정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이 원하는 기회는 스스로 만들어 내지 못한 것이다. 

 

 

 


공감을 얻지 못하는 개그는 사장된다. 가혹하다해도 그것이 개그계의 생리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만 해서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에게 공감을 해 줄만한 시청자들의 관심이다. 그러나 그 관심은 그들이 시청자들에게 던진 코미디가 마음을 울릴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 내지 못한 코미디에 대한 관심은, 그들의 말 조차 개인적인 푸념으로 들리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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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이상해>의 타이틀만 보면 ‘아버지’가 이 드라마속 갈등의 중심에 있을 것 같지만 그 안에서 더 중요한 갈등은 자식들이 겪는 일들이다. 첫째의 혼전임신, 둘째의 동거, 셋째의 왕따 트라우마 그리고 네 형제가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 배다른 형제까지. 이 모든 일들은 아버지의 시선보다는 자식들의 시선에서 그려진다. <아버지가 이상해>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해 이따금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그러나 가끔씩,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어떤 문제에 대한 시선은 조금 이해하기가 어렵다. 

 

 

 


집안에서 벌어지는 ‘왕따 문제’...아버지가 아니라 자식들이 이상해

 

 

 


아버지 변한수(김영철 분)가 집으로 데려온 또다른 아들 안중희(이준 분)는 가족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존재다. 물론 그는 변한수의 친아들이 아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전과자가 될 위기에 처한 이윤석이 친구 변한수의 죽음을 통해 신분을 뒤바꾼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변한수는 실제로 이윤석이고, 안중희는 과거 사망한 변한수의 아들이다. 그러나 이런 복잡한 사연을 말할 수 없는 변한수는  안중희를 아들로 받아들이고, 같이 살자는 그의 돌발 제안도 수용한다.

 

 

 


가족회의를 통해 그를 데려올지 말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네 남매는 거부감을 표시한다. 복잡한 사정을 모르는 네 남매에게 안중희는 배다른 형제일 뿐이고, 그의 존재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갑자기 벌어진 일에 대한 그들의 당황스러움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이제껏 모르고 살았던 이복 형제의 등장은 충격을 넘어서 배신으로까지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 속 착한 네 남매는 엄마 나영실(김해숙 분)의 의견을 따른다. 엄청난 갈등 끝에 나영실이 안중희를 받아들이겠다며 중심을 잡은 이후이기 때문에, 네 남매가 반대할 명분이 없는 것이다. 결국 부모님 뜻에 따르는 네 남매. 그러나 이들의 본색은 안중희가 집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시작된다.

 

 

 


 

안중희에게 쉽게 정을 줄 수 없는 그들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그들의 행동은 생각보다 조직적이고 가학적이다. 일단 네 남매가 합심하여 안중희를 무시하는 부분은 ‘왕따’와도 다를 바가 없다. <아버지가 이상해>는 그동안 셋째 변미영(정소민 분)과 김유주(이미도 분)의 관계를 통해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반된 시선을 다뤘다. 그러나 학교 때 김유주의 괴롭힘이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은 변미영조차 안중희에 대한 왕따에 암묵적으로 동참한다. 심지어 변미영은 안중희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던 상황. 안중희에 대한 불편함은 일에도 영향을 미쳐 변미영은 일터에서도 집안에서도 연신 굳은 표정으로 안중희를 피한다. 전혀 프로답지 못한 모습이다. 안중희가 수차례 관계를 개선하려 손을 내밀어 보지만, 관계의 회복은 좀처럼 쉽지 않다. 5월 7일 방영된 20회에 이르러서야 변미영은 안중희에게 사과를 했지만, 그동안 자신이 왕따 피해자였으면서도 왕따 가해자 혹은 방관자들의 행동 패턴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것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었다.

 

 

 


 

단순히 어떤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제와 합심하여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배제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모두와 친하게 지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누군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낼 권리는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의 어버이날 선물을 사는 문제에서 호의를 베풀 때 조차 “그쪽과 부담 덜고 싶은 맘 없다. 신경끄라”고 말하는 차가운 행동들은 결코 성숙한 태도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대할 거라면 애초에 그가 합가하겠다고 했을 때, 찬성표를 던져서는 안됐다. 자신들의 의견이 아닌 부모님의 결정을 존중한 것이라 해도 이런 식의 행동은 부모님의 의견에 대한 존중이라고 볼 수도 없다. 마음을 여는 것 까지는 무리일 지라도 최소한 왕따의 형식으로 한 사람의 위치가 설정되는 것은 어쩐지 좀 불편한 일이다. 가뜩이나 왕따 문제에 대한 피해자의 시선을 다룬 바 있는 드라마에서 말이다.

 

 

 


 


동거에 대한 시선....이번에도 자식들이 이상해

 

 

 


 

이런 문제점은 둘째 변미영(이유리 분)의 동거를 보는 시선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에서 아직 동거는 드러내 놓고 할 수 있는 성질의 행동양식이 아니다. 그러나 동거의 문제는 도덕적 잣대의 프레임을 씌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함께 살아가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면, 결혼만이 꼭 선택지는 아닐 수 있다. 단지 문제는 사회적인 시선이다. 동거를 한 사람들이 마치 어떤 흠결이 있는 것처럼 바라보는 시선들은 동거를 더욱 음지의 영역으로 몰고 간다. 물론 동거를 경험한 사람을 애인이나 결혼 상대자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다. 그러나 개개인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고 마치 무조건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한 것처럼 몰고 가는 시선에는 오류가 있다.

 

 

 


 

극중 변미영은 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다. 나이도 34살이고 충분히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이며, 능력도 갖추고 있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그 결정에 대하여 누군가가 비난할 권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미영은 동거 사실을 부모님은 물론 남매들에게도 숨긴다. 괜한 잡음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들통 난 동거 사실에 부모님은 역시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변미영은 순식간에 죄인 취급을 받는다. 이는 충분히 세대간의 갈등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부모님 세대가 자식의 동거, 특히 딸의 동거에 대하여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전반적인 이해가 한국사회에는 있다. 더군다나 변미영의 동거 상대는 과거 수차례 갈등이 있었던 건물주 오복녀(송옥숙 분)의 아들 차정환(류수영 분)이다. 반대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변미영은 말한다.

 

 


“이렇게까지 화내실일인지 이해가 안가요. 속이고 말한 건 잘못했어요. 하지만 제가 그렇게 죽을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어요. 동거가 왜 나빠요?  좋아하는 성인남녀가 함께 있고 싶어서 같이 지내는 게 나쁜 일은 아니잖아요. 미성년자도 아니고 30대 성숙한 성인이잖아요. 동거가 그렇게 부도덕하고 비난받아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엄마 아빠가 생각하시는 것 보다 세상이 많이 변했어요. 많은 젊은 사람들이 동거를 해요.”

 

 

 


이에 “그렇게 당당한데 왜 속였냐. 왜 처음부터 떳떳하게 밝히지 않았냐.” 고 묻는 나영실에 변미영은 “이러실까봐요. 무조건 반대하시고 중죄인 취급하시잖아요.”라며 “변해가는 가치관을 왜 인정하지 않으세요. 엄마 아빠 세대의 가치관과 우리 세대의 가치관이 달라요.” 라고 논리적으로 말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렇게 부모 가치관 무시하고 네 멋대로 살 거면 나가!” 라는 감정적인 대답이다. 이것이 바로 세대간의 갈등이다. 변미영의 말에 제대로 반박은 할 수 없으나 동거는 도저히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세대간의 갈등은 보편적인 공감대가 있지만 같은 나이 또래인 남매들이 동거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동거하다 걸렸는데 뭐가 그렇게 당당하냐”는 첫째 변준영(민진웅 분)의 시선이 대표적이다. “온 가족 극진한 배웅 받으면서 나갈 때 양심의 가책 안받았냐.”, “뭘 잘 했다고 큰 소리냐. 넌 엄마 아버지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드렸다.” 며 끊임없이 ‘감정적’인 부분을 지적한다. 동거가 왜 잘못됐는지에 대한 논리적 근거는 없고, 그저 그 일에 대해 부모님이 상처받은 상황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다. 참지 못한 변미영은 “그런 오빠는 나한테 그런 말 할 자격이나 되냐!” 고 소리친다. 변준영은 고시생 신분으로 여자친구를 혼전임신 시켜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 여기서 변준영의 대답은 가히 충격적이다. “나도 말할 주제안되지만 그래도 넌 그러면 안돼. 내가 잘못하면 그건 부모님께 큰 실망이지만 니가 잘못하면 그건 큰 배신이라고! 부모님께 네가 어떤 의미인지 몰라? 부모님이 너한테 얼마나 기대하고 의지하고 큰 자부심을 가지시는지 몰라서 그래!”라고 소리친다. 이건 ‘나는 그래도 되지만 너는 그러면 안된다’는 이중 잣대에 불과하다. 부모님의 기대를 핑계로 자신의 허물은 작은 것으로, 남의 허물은 큰 것으로 만들어 버리며 죄책감까지 심어주는 최악의 대화법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그게 얼마나 버겁고 힘든 일인줄 알아? 나만 왜! 가슴 답답하고 가슴 짓눌리게 내가 왜 다 감당해야 하냐고!” 라는 변미영의 절규가 훨씬 더 와 닿는다. 그러나 끝까지 모여 앉은 남매들이 변미영에게 ‘언니가 잘못했다. 실망이다’고 한 마음이 돼서 비난하는 것으로 장면은 끝맺어진다. 형제가 넷이나 있지만 변미영의 입장에서 공감해주고 이해해 줄 사람은 이 집에 없다. 누군가 잘못했을 때, 쌍심지를 켜고 비난하고 죄책감을 심어줄 사람들만이 가득하다. 더군다나 그들이 누군가를 비난할 자격이나 되는지조차 의문이다. 한마음 한 뜻으로 한 사람에게 가해지는 비난은 폭력적인 행동에 다름 아니다.

 

 

 

 

왕따 같은 폭력을 다루면서도 폭력적인 시선에 의외로 관대한 <아버지가 이상해>속 인간군상. 갈등이 있기에 드라마는 활력을 더 가질 수 있지만, 그 갈등에 대한 시선이 지나치게 편협하다면 그것도 문제다. 과연 이런 문제점들을 <아버지가 이상해>는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가끔씩 보이는 설정의 오류는 캐릭터마저 비호감으로 만들 여지가 있다. ‘아버지가 이상해’가 ‘자식들이 이상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인물에 대한 세심한 터치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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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드라마에는 성공적인 캐스팅이 있다. 작품 속에서 호연을 보여준 연기자는 주목을 받고 이름값이 올라간다. 그러나 반대로 이미 높은 인지도와 이름값을 지닌 배우들을 이용한 마케팅역시 무시할 수 없다. 초반 시청률은 드라마의 성패를 좌우하는데 중요한 요소다. 이 시청률을 달성하는데 톱스타들의 출연만큼 강력한 무기도 없다. 그러나 최근 브라운관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톱스타’ 마케팅이 줄줄이 실패하고 있다. 그 문제점을 짚어보았다. 

 

 

 


<사임당>... 이 시대의 '어머니상'보다 이시대의 '이영애상'

 

 

 

 

 

 

<사임당-빛의 일기>(이하 <사임당>)은 이영애가 <대장금>이후 무려 13년만에 컴백작으로 선택한 작품이었다. 그에 걸맞게 제작 규모도 컸다. 드라마 방영전부터 200억을 투자한 작품으로 화제가 되었고 억대를 뛰어넘는 이영애의 출연료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드라마로 제작된 적 없던 신사임당의 일대기 역시 어떻게 표현될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이영애는 신사임당 역할에 더 이상은 없을 정도의 캐스팅이었다. 그동안 ‘산소같은 여자’로 시작하여 우아함의 대명사가 된 이영애의 결혼과 출산 이후 작품으로서 이만큼 훌륭한 선택은 없었다.

 

 

 


그만큼 <사임당>은 이영애의 일관적인 정체성이 어떻게 발전되어 나갔느냐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다분한 작품이었다. 13년 전, 영민하고 호기심 많으며 마음이 따듯한 장금이는 현명하고 주체성이 강하며 가족을 이끌어가는 사임당이 되었다. 13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영애도 나이가 들고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다. 그러나 여전히 단아하고 우아한 모습을 간직한 이영애의 이미지는 <사임당>을 통해 고스란히 재현된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대장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다. 그만큼 공을 들인 탓인지 제작기간도 길었다. 사전제작 드라마로 2014년 기획하여 2015년 제작에 들어갔으나 방영시기를 조율하며 2017년에야 방송을 시작했던 것이다. 모든 기운이 이 드라마의 성공을 위해 모여 있는 듯 했고, <사임당>은 15%가 넘는 높은 시청률로 출발해 2회때는 16%를 넘겼다.

 

 

 


그러나 <사임당>은 그 이점을 단 한순간도 살리지 못한채, 이영애라는 톱스타의 이름값에 빚을 진 시청률을 유지하지 못하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현대와 과거의 교차 편집은 오히려 집중력을 흐트러트렸고 드라마의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 역시 촘촘하고 흥미롭게 전개되지 못한다. 이 와중에 이영애의 캐릭터 활용 역시 <대장금> 시절보다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 드라마 속 주인공 사임당에게 쏟아지는 각종 위기상황과 절체절명의 순간 속에서도 이영애는 그저 고고하고 우아한 신사임당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오히려 과거보다 지나치게 절제된 표현 방식 속에서 이영애는 사임당이 아니라 그저 이영애로서 존재할 뿐이다. 자신을 놓아버린 연기가 아닌 자신의 이미지대로 끌려가는 연기는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기에는 부족했다. 고리타분한 스토리 속에서 신사임당의 재발견이 아닌 다시 이영애의 이미지만 확인할 수 있었고 결국 이시대의 어머니상을 다시 쓰는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막대한 제작비를 회수할 중국 시장역시 ‘싸드 보복’으로 수출이 여의치 않았고, 국내에서도 드라마 <김과장> 등에 밀리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방영내내 낮은 화제성을 기록한 <사임당>은 스페셜 방송과 재편집등 초강수를 두는 와중에서도 반전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사전제작 드라마임에도 결국 2회 축소 종영이라는 굴욕을 맛보았다. 이영애의 화려한 컴백에 비해 초라한 퇴장이었다.   

 

 

 


<완벽한 아내> 용두사미된 스토리, 고소영의 존재감 없었다.

 

 

 


 

<사임당>에 이영애가 있었다면 <완벽한 아내>에는 고소영이 있었다. 고소영은 10년만에 안방극장에 출연했으나 초반 분위기를 압도하는 것은 여의치 않았다. <완벽한 아내>는 3.9%의 초라한 시청률로 출발했다. 배우로서 고소영에게 대중이 갖는 기대치가 높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부분이다.

 

 

 


그러나 <완벽한 아내>는 단순한 ‘유부녀 성공스토리’가 아니라 미스테리를 가미하며 호평을 얻었고 높은 폭은 아니지만, 시청률은 상승세를 탔다. 고소영의 연기역시 합격점을 받았다. ‘예쁜 고소영’을 포기하고 편한 복장과 힘을 뺀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호평을 끝까지 이어나가는 데는 실패했다. 후반 부 스토리가 어그러지면서 작품은 중심을 잃었다. 미스터리는 단순히 한 남자에게 집착한 한 여성의 비이성적 행동에 그쳤고, 주인공을 정신병원에 가두는 전개는 다소 뜬금없이 펼쳐졌다. 미스터리로 출발한 이야기의 흐름 자체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우리는 더 열심히 살고, 더 열심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심재복(고소영 분)의 마지막 나레이션이 가슴을 파고들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드라마의 흐름이 중구난방이 된 것과, 반전도 흥미요소도 없는 미스터리의 처리 방식은 실망감만을 안겨주었다.

 

 

 

고소영이 선택한 캐릭터 심재복에 대한 아쉬움 역시 크다. 고소영의 연기 자체는 합격점이었지만 대중의 뇌리 속에 각인될 만큼의 특별함은 없었다. 심재복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지나치게 많이 반복되어 온 소재였다. 남편의 바람을 감당하고, 연하남과의 ‘썸’ 비슷한 관계를 형성하며 어느상황에서든 꿋꿋하고 굿센 아줌마 캐릭터는 이미 익숙하게 경험해 본 것들이었다. 오히려 병적으로 누군가에게 집착하는 내면을 숨기고 웃음을 가장한 조여정의 ‘사이코 연기’가 이 드라마에서는 훨씬 더 주목할만한 포인트였다.

 

 

 


시청률은 물론이고 연기적으로도 큰 주목도가 낮았는데, 드라마마저 완성도가 높지 않았다. 결국 호평요소를 굳이 찾자면 ‘조여정의 연기력의 재발견’을 이룬 드라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어 버린 것이다.

 

 

 


<추리의 여왕>인데 추리는 없다.

 

 


최강희가 타이틀롤을 맡고, 권상우가 3년만에 선택한 드라마 <추리의 여왕>은 ‘아줌마 탐정’이라는 소재를 내세웠으나 이 드라마의 가장 특징은 ‘추리’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성공하는 드라마는 ‘추리’를 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 앞으로 전개가 어떻게 될지 궁금한 마음에 시청자들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설왕설래가 이어지는 드라마일수록 성공 확률도 높아진다. 그러나 중반이 넘은 <추리의 여왕>은 제목에 추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용에는 추리가 없다.

 

 

 


사건을 촘촘하게 만들고 그 사건이 밝혀지면서 일어나는 반전과 놀라움을 주로 삼을 것이라는 기대는 <추리의 여왕>속에서 산산이 부서진다. 일반인이 보기에도 어설픈 수사 방식은  개연성의 문제로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형사인 하완승(권상우 분)의 수사 방식은 수사방식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채로 쓰여진 듯하고 추리 천재로 나오는 주인공 유설옥(최강희 분)의 행동은 때때로 너무나 큰 민폐다.

 

 

 


이 모든 상황을 차치하고라도 추리 드라마임에도 범인을 보여주고 범인의 행적을 그대로 따라가는 방식은 시청자들이 추리 해 볼 여지도 잘라내는 방식으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식에서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다. 이미 결론까지 지어져 있고, 반전 따윈없는 추리드라마는 새로운 방식이 아니라 잘못된 방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야기는 늘어지고 전개는 답답한 상황 속에서 시청률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겨우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10%도 넘지 못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톱스타들의 출연이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다

 

 

 


톱스타들이 출연한 드라마는 화제성을 끌 수 있다는 장점이 분명하다. 특히나 중국시장이 성장하면서 중국시장에 어필할 수 있는 스타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기도 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재미있는 드라마’라는 본질이다. 지금 톱스타가 된 스타들도 한 때는 신인이었다. 그들 역시 출세작을 통해 스타가 됐다. 작품 속에서만이 배우는 빛날 수 있다. 배우의 후광을 업고 만들어진 작품의 유효기간은 아주 짧다.

 

 

 


 

드라마의 꺼져가는 불씨는 드라마의 완성도만이 살릴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드라마에 누가 출연하느냐 하는 단편적인 사실이 아니라 바로 그 드라마 자체에 있다는 사실을 톱스타들이 출연하고도 성공을 거머쥐지 못한 드라마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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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들의 군문제는 사회적인 이슈가 된지 오래다. 주요 대선 공약으로 군대관련 병사들의 월급이나 군복무 단축등이 매년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만 봐도 군대는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젊은이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 누구도 의무 입대를 원해서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젊은이들은 가장 빛나는 20대의 청춘 2년을 고스란히 저당잡힌다.

 

 

 


그러나 이런 희생에는 대가도 없다. 월급은 최저시급은커녕 거의 무의미한 수준에 불과하고 개인공간이 없는 탓에 업무가 끝나도 시달리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크다. 예를 들자면 직장 일과가 끝났는데도 일에 연관된 상사나 동료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심지어 여러명이서 함께 생활까지 해야한다.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속에서 군대 내부의 부조리를 이를 악다물고 참아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군대내의 불합리나 비리 문제는 아무리 개선하려 해도 매번 터져 나온다. 병사들의 인권에 대한 배려가 세계 최저 수준인 상황에서 병사들 스스로도 스스로를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 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유아인의 재검, 논란을 불러일으키다.

 

 


유명인의 군입대 문제가 대두되면 사람들, 특히 남성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두에게 의무인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피할 방법조차 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암울한 현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너무 쉽게 요행으로 피할 수 있는 일이 된다면 그처럼 불합리한 것도 없다. 상대적인 박탈감은 대중을 분노케 하는 가장 큰 도화선이다.     

 

 

 


유아인의 군입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 또한 대중의 그러한 시선에 근간하고 있다. 유아인은 그동안 ‘소신발언’으로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몰고 다니는 스타였다. 거침없는 그의 발언들은 때로는 ‘사이다’였으나 때로는 ‘허세’라는 비난도 뒤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아인이 소신있는 배우로 인식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발언들이 사회적인 불합리에 대한 비판의식에 근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뷰건 시상식이건 할 것 없이 특유의 화법으로 이야기 하는 유아인의 거침없는 매력은 장단점이 있었으나, 많은 사람들을 끌어 당긴 것 또한 사실이었다.  뛰어난 연기력까지 겸비한 그는 다소 거침없어도 ‘재능 있는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는 그의 가장 큰 무기이기도 했다. 실력 없이 목소리만 큰 스타는 아니었던 그의 배우로서의 행보는 단순히 그의 발언들을 허세라고 규정지을 수만은 없게 만들었다.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가진 그이지만 군 문제만큼은 어쩐 일인지 매끄럽지 못하다. 그는 86년 생으로 한국 나이로 32살이다. 이미 군입대를 미룰 수 없는 나이인 것이다. 뜨거운 화두인만큼 인터뷰 등에서 군입대 질문은 있었고 그도 그동안 ‘당연히 가겠다’며 군입대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그러나 유아인은 재차 재검을 받으며 의혹을 증폭시켰다.

 

 

 


 

이미 30살이 넘도록 군입대를 미룬 것만으로도 일반 대중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혜라면 특혜다. 군입대를 합법적으로 미룰 수는 있지만, 30이 넘도록 미루기 위해서는 마땅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에 대한 각종 서류작업이 있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군입대를 미루기 위한 방법은 대학원 입학이나 공무원 시험등,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평범하게 대학을 나와 취직을 하는 대부분의 남성들은 그런 이유를 만드는 것조차 쉬운일은 아니다.

 

 

 


유아인의 경우, 굳이 군입대를 미뤄야 할만큼의 사안이 뚜렷하지 않았기에 그가 군입대를 미룬 것에 대한 비난이 생겼다. 대중의 비난이 생겨나자 이 의혹에 대해 유아인측은 ‘골육종’이라는 병 때문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여론은 다시 돌아설 수 있었다. 그러나 재검이 5차로 장기화 되자 논란은 다시 일어났다.

 

 

 

 

다섯 번의 재검, 과연 그는 '소신대로' 행동한 것인가

 

 


군입대 판정을 위해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받아야 하는 신체검사에서는 기본적인 시력이나 혈압 검사등은 이루어지지만 전문적인 검진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골육종이라는 병은 군대 신체검사에서는 발견될 수조차 없는 종류의 병이다. 골육종은 말 그대로 뼈에 발생하는 종양으로 악성종양과 양성종양이 있다. 악성종양이라면 말 그대로 뼈에 생기는 암이기 때문에 심각한 상황이지만, 양성종양이라면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유아인이 재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골육종에 대한 진단서와 관련 서류를 지참해 제출했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아픈 상황이나 몸상태를 군측에 알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5차 재검이 뜰 정도라면, 골육종이 악성종양일 확률은 크지 않다. 악성이라면 당연히 군대를 갈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은 그렇게 명쾌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일 확률이 크다.

 

 

 


만약 양성 종양이라면 굳이 진단서를 첨부해 재검을 요청할 정도로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허리 디스크등의 여러 가지 병력이 있어도 관련 자료를 첨부하지 않으면 신체검사에서 1~2급 현역 판정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5차 재검까지 받은 것은 논란이 불거지자 “치료 받고 당연히 입대하겠다”고 밝힌 유아인의 입장과 다소 거리가 있는 행동이다. 치료를 받고 재검을 받는 방법도 있고 큰 문제가 아니라면 관련 서류를 제출하지 않고 현역 판정을 받은 후 치료를 받는 방법도 있었다.      

 

 

 


물론 현역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기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여의치 않았을 수는 있다. 그러나 요즘은 군대에 입대하고도 몸에 이상이 생기면 얼마든지 퇴소가 가능하고 치료가 목적이라면 군대를 연기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더군다나 유아인은 끊임없는 재검을 요청할 정도로 몸이 좋지 않은 상황속에서도 <시카고 타자기> (이하 <시타>)의 출연을 결정했다. 밤샘 촬영이 빈번한 한국 드라마 제작환경을 생각해 볼 때, 치료 대신 드라마를 선택했다는 것은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유아인은 주연으로서 가장 분량이 많고, 그만큼 체력소모도 크다. 군대를 미룰 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면 당연히 치료가 우선이다.

 

 

 

 

유아인의 재검이 이슈화 될수록 상황은 좋지 않게 흘러간다. 대중은 그의 군입대 결과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고, 현역 판정이 나지 않을 경우 그가 ‘꼼수를 썼다’는 의혹마저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제기 때문이다. 사실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런 분위기가 조성 되었다는 것은 그가 피하고 싶은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이 일은 모두의 관심 선상에 놓였다. 과연 유아인은 끝까지 ‘소신 배우’로서 자신이 가진 긍정적인 이미지를 지켜낼 수 있을까. 민감한 사안인 만큼 조속한 해결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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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만 모르는 상황을 설정하고 누군가를 속이는 일에는 묘한 쾌감이 있다. 공식적으로 거짓말을 해도 되는 만우절 같은 날이 생긴 것도 그런 카타르시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속이는 사람은 속는 사람의 반응을 보며 즐기고 웃을 수 있다. 그래서 ‘몰래 카메라’는 세계 어떤 방송사에서건 한 번쯤은 시도해봤을만한 콘텐츠다. 진실이 아니라는 지점에서 어떤 심각한 상황도 웃음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포인트다.

 

 

 


'몰카' 지나치게 손쉬운 예능의 접근 방식

 

 

 


한국에서도 이경규로 대표되는 몰래카메라 콘텐츠는 상당히 오랫동안 예능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는 1991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처음 방송된 이래, 수차례 리메이크됐다. 이경규를 내세운 mbc뿐 아니라 다른 방송사에서도 연예인 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반응을 보는 몰래카메라 콘텐츠는 관찰카메라, ‘스타 이런 모습 처음이야’ 등의 이름으로 숱하게 활용되었다. 또한 <런닝맨><무한도전><1박 2일>등 어느 예능에서든지 몰래카메라를 부분적으로 이용하며 출연자들의 반응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렇게 2017년 현재까지 몰래 카메라는 가장 손쉬운 예능의 접근 방식이다. 그래서일까. <진짜 사나이>가 종영한 후 방영되고 있는 <은밀하게 위대하게>(이하 <은위>)는 몰래 카메라를 전면에 내세웠다. 현재의 예능 트렌드는 몰래 카메라를 이용하여 활기를 불어넣는 수단으로 사용은 할 수 있어도 그런 형식을 전면에 내세워 목적으로 삼지는 않는다. 그러나 <은위>는 기승전결이 모두 ‘몰카’라는 형식속에서 이루어진다. 속이지 못하면, 프로그램 자체가 성립이 되지가 않는 것이다.

 

 

 


1991년 이후 16년이 지났지만 <은위>가 보여주는 몰카 프로그램의 세상은 그 때와 비교해 더 나아진 것이 없다. 스타를 섭외하고 그 스타에게 황당한 상황을 던져주고, 그 스타의 반응을 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몰카임을 알려주는 것. 이야기는 뻔하고 새로운 것이 없다. 이경규가 출연을 거절한 이유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더 큰 문제는 그 뻔한 이야기를 상쇄할만한 긴장감이나 소재도 없다는 점이다. 이야기는 고조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다가 종료되고 의표를 찌르는 의외성은 기대하기조차 어렵다.

 

 

 


몰카를 바라보는 '은밀'한 시선은 가학적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은위>는 몰카의 전형성이라고 할 수 있는 가학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동생이 사기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상황에 동석하거나(산다라 박편), 병에 걸려 생업에 지장을 받는다는 친구의 거짓말이 펼쳐지거나(박정현 편), 실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은 후, 선배 앞에서 당황하는 모습을 관찰하거나(홍진영 편) 하는 식이다. 다른 연예인들의 몰카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스토리로 흘러간다.

 

 

 


 

이 안에서 연예인들의 성품은 부각된다. 친구를 위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주어진 일을 끝까지 해내거나, 황당한 미션들을 수행해 나가는 장면들은 그들의 순수성을 목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 순수성은 조작된 것이다. 그들의 진심이 조작된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황당한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고 그 안에서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은 상대적인 약자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상황 자체를 미리 알고 있거나 중간에 눈치채지 못했다면 그들이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상황속에서 느끼는 감정은 진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느끼는 당황스럽고 슬프고 때때로 화가나기까지 하는 감정들은 이 한 마디로 정리된다. "미안, 장난이었어."

 

 

 


어떤 상황이든 조작된 상황속에서 그들이 적극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만 결론이 나는 상황에서 발을 뺄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억지스러운 상황에 사람을 던져놓고 그 반응을 구경거리 삼는 것은 관음증에 바탕을 둔 재미며 가학적인 행동이다. 몰카를 예능에 활용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될 때 그 가학성은 더 부각된다. 몰카를 통해 어떤 스토리가 설명되거나 예능의 흐름이 자연스러워 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속였다’는 쾌감만이 있는 <은위>의 기획은 지나치게 구시대적이다.

 

 

 


설득하지 못하는 몰카, 예능의 흐름을 거스르다.

 


우리는 <은위>를 보면서 몰카를 기획한 목적을 설득당하지 못한다. 몰카의 목적이 단순히 속이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그 속이는 과정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저 그들이 저런 황당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반응할까에 대한 변태적인 시선에 불과하다. 다른 목적이나 신선한 이야깃거리 따위는 없다. 그렇다고 몰카의 준비성이나 기획 방식 자체가 특별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제작비가 여의치 않은 듯, 상황은 몇 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한 작은 세트로 이루어질 뿐이고 그런 소박함은 몰카의 재미마저 몰락시킨다. 차라리 몰카의 세심한 이야기 구조로 기승전결을 만들어 몰카의 스펙타클함을 살렸다면 모르나 그저 가짜 오디션, 가짜 점쟁이, 가짜 후원 방송등의 상황만을 던져주고 예상 가능한 범주에서 일어나는 몰래 카메라는, 우리가 그동안 친구에게 쳤던 장난 이상의 희열을 선사하지 못한다. 굳이 주말 예능 채널에서 그런 장면을 봐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몰카가 주가되는 시대는 갔다. 바햐흐로 캐릭터의 시대다. 요즘 예능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이야기 구조라도 그 구조 속에서 캐릭터가 발견되고 그 캐릭터로 인한 웃음이 창출될 수 있는 환경이다. <아는 형님>의 김희철과 <은위>의 김희철이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 답은 나온다. <은위>에는 착하고 순수해 보이는 연예인들은 있어도, 예능에 적합한 캐릭터 따위는 없다. 그것이 바로 몰카의 한계다. 예능의 성공은 섣불리 담보할 수 없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의외의 대박이 터지기도 하지만 의외성이 전혀 없는 예능에서는 그런 일을 기대할 수 없다. 시작한지 5개월이 지났지만 일요일 황금시간대에도 불구하고 <은위>의 저번주 시청률은 5.2%에 불과했다. 제작진은 부인했지만 폐지설이 나오는 것도 우연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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