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꽤 많은 뮤지컬과 연극을 봤지만 1인극을 본 기억은 없다.


막연히 1인극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였을까.


하지만 이번에 본 대학로 연극 [염쟁이 유씨]는 나의 '1인극'에 대한 편견을 와장창 깨부수어 주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1인극에 반하게 만들었다.


우선 무대에 들어서면 하얀 천 조각들이 덩그라니 끈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얀 천 뿐 아니라 하얀 옷을 입은 약간은 묘한 느낌을 주는 인형들도 발견할 수 있다. 아무렇게나 꼬아 놓은 듯한 투박하고 정스런 짚신, 나무향 가득할 것 같은 의자, 보기만 해도 요상스런 기분이 드는 병풍까지 무대는 영락없이 전통 장례 문화 그대로를 옮겨 놓았다. 가히 '염'을 하는 장소라 할 만하다.


평소엔 잘 보지도 못했던 관이 덩그러니 무대 한 가운데 있는 것도 스산한 느낌을 준다. 막이 오르면 염쟁이 유씨가 터덜터덜 걸어나온다. 이 연극은 바로 이렇게 시작한다. 염쟁이 유씨 하나만 나왔을 뿐인데 이미 무대는 꽉 찬 듯한 느낌을 준다. 이것이 1인극의 묘미라면 묘미랄까.


유씨는 집안 대대로 염을 가업삼아 살아온 염쟁이다. 자신은 가업을 이었지만 자식만큼은 '염쟁이'로 살지 않길 바라는 그는, 엄밀히 말해 그 집안의 '마지막 염쟁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삶과 죽음, 좌절과 성공, 인생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고도 통찰력 있게 꿰뚫어보는 이 시대의 노인이다. 죽음을 업 삼아 살아가면서도 그 죽음에 대해 마냥 웃을 수 만은 없는 그의 씁쓸함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염쟁이 유씨는 사람의 죽음을 지척에서 바라보며 시종일관 느끼고 생각한 바에 대해 덤덤하면서도 조용하게 털어놓는다. "사람이 꼭 한번 죽게 되는데 욕심대로 사는게 쉬운게 아니야", "죽는다는 것은 생명이 끝난다는거지,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야" 등 오랜 경험의 산 증인의 말로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인의 숨 쉴 틈을 만들어 준다.


[염쟁이 유씨]는 기본적으로 1인극이지만 캐릭터는 '염쟁이 유씨' 하나만은 아니다. 염쟁이 유씨는 때론 깡패로 나왔다가, 때론 부하로 나왔다가, 장사치 이사로, 아버지로, 아들로, 어린시절로, 작은 아들로, 며느리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1인 15역을 하는 배우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경이로울 정도로 감탄스럽다. 다행히 이런 다양한 변신은 1인극의 지루함을 없애고 신선함을 가미한다.
 

이 연극에서는 관객들도 '즉석배우'가 된다. 염쟁이가 시키는 행동을 어설프지만 따라하기도 하고, 관을 함께 옮기는 도우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소주를 나눠 마시기도 하고 기자가 되기도 하며 전통문화체험단 역할도 부여받는다. 배우만큼 관객들도 여러가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연극은 배우와 관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이 연극은 깜짝 놀랄 정도로 중요한 장례절차를 가감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직접 운반하고 천을 감는 등 작은 무대를 염집으로 둔갑시켜 염습(향탄수로 시신을 닦는 것), 반암(시신의 입에 물에 불린 쌀을 넣는 것), 소렴(시신에게 수의를 입혀 주는 것), 대렴 (대렴포로 관에 넣는 의식)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하나의 장례절차를 수행하는 염쟁이 유씨의 모습에선 스산하면서도 굳은 결기가 느껴진다. 살아가기 위해 죽은 자를 수습하는 일을 택했던 자신의 인생이지만 그는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지막 예를 갖추는 자신의 업에 대한 숭고하고도 깊은 자부심이 은연 중 드러날 정도다. 그의 말 한마디, 그의 표정 하나에는 인생에 대한 고단함이, 업에 대한 숭고한 자의식이,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롭고도 정교한 비판과 해학이 정성스레 스며들어 있다.


"죽는 것 어려워들 마시게.... 산다는 것 누군가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
 

염쟁이 유씨의 마지막 대사다. 누군가에게 정성을 다하는 삶, 결코 어렵지 않은 죽음. 이는 곧 죽는 것보다 무섭고 힘든 것, 죽는 것 보다 더 가치롭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라는 걸 역설하는 것이 아닐까.


이 연극, 1인극이라는 편견을 갖고 봤다가 정말 큰 코 다쳤다. 여태껏 본 작품들 중에 베스트로 꼽을 정도로 참으로 정겹고 배울 것이 많은 연극이다.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쟁취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웃음과 해학으로 무대의 막이 내려오는 그 순간까지 관객을 숨죽이게 만드는 연극, [염쟁이 유씨]! 지금 가족이나 연인의 손을 꼭 붙잡고 대학로로 가보시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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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아마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한다.


세대를 초월한 필독서로 읽혀지는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가 남긴 불후의 역작이자,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진정한 고전이다.


그런데 이 명작이 연극으로 만들어진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 정답은 바로 '대학로'에 있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연극 [노인과 바다]는 원작의 이야기 구성을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연극적 재미를 놓치지 않는 수작이다. 원작 자체가 다소 철학적이고 어려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해설을 덧붙여가며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라인은 지루할 틈도 없이 흥미롭게 흘러간다. 고전명작은 지루할 것 같다는 편견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연극이 연극적 재미 뿐 아니라 원작이 가지고 있는 철학과 깊이를 작은 무대 안에서 제대로 구현해 낸다는 것이다. 보통 범상한 연극이 재미를 좇다보면 의미를 잃기 쉽고, 의미를 좇다보면 재미를 잃기 쉬운데 연극 [노인과 바다]는 재미와 의미, 즐거움과 감동 어느 것 하나 치우치지 않는 고른 균형감각을 선보인다. 관객은 연극을 보고 웃고 즐기다가 어느샌가 노인의 삶이 주는 인생의 철학에 감동하고 있다. 이건 정말 짜릿하고도 놀라운 경험이다.


게다가 이 연극이 관객과 함께 호흡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데에도 큰 박수를 보낼만하다.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여러가지 장치와 구성을 통해 [노인과 바다]는 배우들 뿐 아니라 관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연극으로 변모한다. 관객이 그저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를 연출함으로써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지고, 재미는 더욱 극대화 되는 것이다. 이 연극 자체가 얼마나 치밀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 연극 한 편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노인과 바다]의 가장 큰 미덕은 배우들의 열연에 있다. 연극이라는 것이 관객이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를 여과없이 바로 지켜보는 것이기 때문에 배우들이 연기를 못하면 벌써 90% 그 연극은 망했다고 봐야 한다. 반대로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면 다소 구성 자체가 헐렁한 연극이라도 관객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다.


그런데 [노인과 바다]는 탄탄하고 치밀한 구성의 원작에 그 원작의 감동을 뛰어넘는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져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노인 역할을 맡은 정재진과 청년 역할의 박상협은 온 몸으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를 지닌 정말 멋진 배우들이다. 좁은 무대를 결코 좁게 만들지 않는 그들의 연기는 그 자체가 바로 [노인과 바다]를 상징하는 듯 소름끼치게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평가의 영역을 뛰어넘은 듯한 정재진의 노련한 연기와 열정적이고 순수한 느낌을 주는 박상협의 연기는 관객이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만큼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연극을 본 보람이 있다고 느낄 정도로 감동적이고 즐거웠다.


게다가 단초로운 무대를 여러가지 효과들과 관객과의 호흡을 통해 드넓은 바다로 만들어내는 연출력에도 박수를 보낼만 했다. 대개 여러가지 세트를 돌려가며 배경을 만들어내는 여타 작품들과 달리 [노인과 바다]는 아주 단조로운 무대 속에서 조명과 배우들의 연기, 관객들의 도움을 통해 광활하고 신비로운 대자연을 표현해낸다. [노인과 바다]의 하이라이트라고도 볼 수 있는 노인과 상어간의 투쟁은 가히 예술에 가까운 무대 묘사였음을 자부한다.


내가 본 연극 [노인과 바다]는 여러모로 의미가 큰 작품이었다.


우선은 헤밍웨이의 불후의 명작을 이렇게 아름답고도 멋지게 무대에 올렸다는 시도 자체만으로 박수를 받을만 하고, 무대에 올리면서도 원작이 가지고 있는 깊이와 철학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구현해 냈다는 것 또한 놀랍고 소름끼쳤다. [노인과 바다]를 재밌게 본 사람이든, 재미없게 본 사람이든 연극 [노인과 바다]만큼은 꼭 한 번 추천해 주고 싶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게다가 치밀한 구성과 대담하고도 탄탄한 연출력, 여기에 실력있는 배우들의 열연과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이 더해진 이 연극은 그 어떤 연극과 비교해도 결코 빠지지 않는 아주 좋은 강점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인간은 패배를 위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인간은 죽을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순 없다." 는 [노인과 바다] 속 대사처럼 결코 좌절하지 않고 이렇듯 괜찮은 연극을 만들어 낸 배우 및 제작진들의 노고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삶에 지치고 힘들어 자신의 꿈조차 닳아 없어져 버린 듯한 이 시대 청춘들에게 반드시 이 연극을 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그대, 이 연극을 보면서 좌절하고 슬퍼하지 말지어다. 삶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닐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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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rotiqe.tistory.com BlogIcon 강아지 로띠끄 2011.04.10 1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극은 아직 한번도 못봤는데...

  2. 진진냥 2011.04.16 1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나 하고 읽었는데, 역시나네요^^
    저도 이 연극을 작년에 보았죠. 2인극 연극제의 한 작품으로 나왔던 거 같은데,
    묵직하고 깊은 주제의 원작을
    이토록 유쾌하고 역동감있게 풀어낸 것에
    정말 놀랍고, 즐거웠습니다.
    물론 메시지는 마음을 울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지요.

    떠올리니 다시금 미소가 지어지네요.
    정말 강추하고픈 연극입니다 !!!



우리는 '보이는 것'을 당연하다 믿고 산다.


그래서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를 굉장히 두려워한다.


하지만 때때로 모든 것이 캄캄한 세상, 칠흙 같은 어둠이 편안해 질 때가 있다.


신촌 버티고 빌딩에서 체험할 수 있는 전시공연인 [어둠속의 대화]는 그래서 반가웠다.


[어둠 속의 대화]는 굉장히 특별한 경함을 선사해 준 체험 공연이다. 체험은 간단하다. 8명이 팀을 이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빛이라는 것이 없는 미로 같은 공간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길을 찾고, 물건을 추측하고, 음료수를 마시며 수다를 떤다. 일상생활에서는 별거 없는 체험이지만 빛이 없는 공간에서는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재밌는 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어둠의 공간으로 발을 내딛으면 잔디와 시원한 바람, 그리고 나무들이 우리를 반긴다. 신촌에 위치한 9층 빌딩에서 느끼는, 너무나 광활하고 드넓은 초원이다. 시각이 사라진 대신 촉각, 후각 등 다른 감각이 살아난다. 보이지 않는다는 답답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어둠이 주는 여유로움과 색다른 사색에 몸을 맡기게 된다.


미로 같은 길을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더듬거리며 걷다보면 큰 집이 나온다. 큰 집 앞에서 초인종을 띵동 눌러본다. 큰 집을 지나니 흔들다리가 나온다. 흔들다리 밑에는 시냇물이 졸졸 흐른다. 흔들다리에 올라서니 다리가 진짜 흔들거린다. 물에 빠질까봐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다. 흔들다리를 지나니 벤치가 나오고, 시장이 나온다.


시장에서 물건을 고르고, 배를 타서 외딴 섬에 도착한다. 선착장에 내리니 커피향 가득한 음료수집이 나온다. 각자 음료수를 골라 마신다. 때로는 시원한 바람을 맞기도 하고, 때로는 버스 정류장의 매퀴한 매연이 느껴지기도 한다. 산들거리는 바람소리와 서로 부딪히는 풀잎 소리를 즐기다가,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수다 소리에 나도 모르게 흥겨워지기도 한다. 어둡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어둠 속의 대화]는 보이지 않으면 답답하다는 내 편견을 완전히 산산조각 낸 특별한 체험이었다. 보이기 때문에 놓칠 수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나는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어둠이 내게 준 특별한 기분과 감정 때문에 체험하는 내내 전율에 가까운 기분을 맛보았다. 흥분, 짜릿함, 즐거움 그리고 이내 느껴지는 편안함과 안락함. 여기에 더해서 약간의 알딸딸한 기분까지. 하하하.


체험을 끝내고 나오면 "당신이 어둠속에서 본 것은 무엇입니까?" 를 묻는 캘린더가 있다. 이 캘린더에 사람들이 적는 대답은 각양각색이다. 평화, 행복, 사랑, 당신같은 단어부터 시작해서 또 다른 세상, 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깨달음 등 철학적인 이야기도 나온다. 정답은 없다. 어둠 속에서 스스로가 느낀 그것이 진짜 '정답'이다. (캘린더에 쓴 문장을 들고 사진을 찍는 공간이 있다. 찍은 사진은 홈피에서 확인 가능하다^^)


어떤 곳보다 복잡하고 정신없는 서울 신촌 한 복판에서 느껴본 아주 특별한 '어둠'.


시간이 된다면 오늘 연인의 손을 잡고, 아이의 손을 잡고, 그 특별한 어둠이 주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 어떠할지. 가격은 조금(;;) 세지만 살면서 한번 쯤 꼭 한 번 가볼만한 체험공연이기에 강추해 본다.


돈 아끼지 말고! "보이는 것 그 이상의 것을 보는" 경험에 당당히 도전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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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훈 퍼실리테이터 2012.10.06 11: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둠속의 대화라는 체험전시를 알게 되어 자료를 찾다가 들어왔는데, 직접 전시 체험을 한 것 같이 소상히 정보를 제공해 주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뮤지컬 [빨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뮤지컬은 내가 본 뮤지컬 중에 '단연 최고'다.


여러 뮤지컬을 봤지만 이 정도로 잘 만든 작품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2009년에 한 번, 그리고 어제 한 번 이렇게 두 번을 봤지만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었다. 그만큼 완성도가 높다는 것이다.


감동과 웃음, 눈물과 해학이 넘쳐흐르는 뮤지컬 [빨래]! 이 뮤지컬의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빨래]의 총 공연시간은 중간 쉬는시간까지 합쳐서 총 150분이다. 2시간 30분이면 웬만한 영화 한편보다 훨씬 긴 시간이다. 편안한 의자에서 거의 눕다시피 한 자세에서 보는 영화도 2시간 30분이면 엉덩이가 저릿저릿하고 힘들 때가 있는데 좁은 대학로 소극장의 불편한 의자에서 보는 뮤지컬은 오죽할까 싶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 접어둬도 좋다. 관객이 '1시간 정도 됐나?' 싶을 때쯤, 벌써 뮤지컬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만큼 이 뮤지컬은 정신없이 재밌고 흥겹다.


[빨래]의 첫 스토리는 주인공 나영이 서울의 한 옥탑방으로 이사오면서 시작된다. 투박스러운 주인 할머니, 웬지 천박해 보이는 옆집 희정엄마,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솔롱고와 마이클 등 서울의 '소시민'들이 뒤엉켜 사는 이 동네. 나영이 내 몰린 이 공간은 빨래를 널며 나영이 읊조리는 대사처럼 참 "못된 서울"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 하다.

서울살이 5년/ 여섯번째 이사/ 낡은 책상 삐걱이는 의자/ 보지 않는 소설책 지나간 잡지/ 고물 라디오 기억이 가물가물한 편지/ 그런 것들은 버리고 와요/ 버리고 버려도 늘어나는 건 세간살이 집세 그리고 내 나이/

얻어갈 것이 많아 찾아왔던 여기 / 잃어만 간다는 생각에 잠 못드는 우리 / 당신과 내가 만나고 헤어지는 동안/ 서울살이 늘어갑니다/

(.......)

서울 올 땐 꿈도 많았었는데/ 3~4년 돈벌어 대학도 가고/ 하지만 혼자 사는 엄마한테 편지 한 줄 못쓰는 내 꿈은..../내 꿈은...../

나의 꿈 닳아서 지워진지 오래/ 잃어버린 꿈 어디 어느 방에 두고 왔는지/ 기억이 안 나요


하지만 나영은 이 곳에서 사람과 부딪히고, 사람에게 상처받고, 다시 사람에게 위로받으며 성장한다. 투박해 보이기만 했던 까탈스러운 주인 할매가 사실은 남모를 아픔을 가지고 있는 정 많은 할머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옆방 희정엄마의 잔스러운 정에 감동 받을 때, 옆집 솔롱고와 은근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속삭일 때, 관객은 나영이 살아가는 "못된 서울" 속에도 서로가 서로를 보다듬고 아끼는 인간에의 애정이 살아있음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빨래]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어느 한 구석이 모자란 듯 보이는 완벽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학벌도 좋지 않고, 돈도 없고, 명예도 없다. 사회가 규정하는 잣대로 보자면 하나같이 실패한 인생을 사는 '루저'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참 착하다. 착한 사람이 살기 힘든 이 세상에서 그들은 눈부시게도 착하다. 눈물을 쏟아내는 이웃의 어깨를 토닥여줄 줄 알고, 이사 가는 이웃에게 빨래세제 하나 선물할 줄 아는 그들의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 한켠을 찌릿하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처음 "나의 꿈 닳아서 지워진지 오래/ 잃어버린 꿈 어디 어느 방에 두고 왔는지/ 생각이 안나요" 라던 나영은 그들과 부대끼고 싸우고 화해하고 사랑하면서 마지막에 다시 이렇게 노래부른다.


그대와 나/ 여기 살아 온 시간만큼/ 살아갈 시간들/ 그대 잃어버린 꿈/ 그대 두고 온 꿈 다시 꾸어요/ 다시 꾸어요/ 서울살이 여러해/ 당신의 꿈까지 그대론가/요 나의 꿈 닳라서 지워진지 오래/ 잃어버린 꿈 어디 어느 방에 두고 왔나요/

빨래처럼 흘러가는 우리의 일상이지만/ 당신의 젖은 마음 빨랫줄에 널어요/ 바람이 우릴 날려줄거예요/ 당신의 아픈 마음/ 꾹 짜서 널어요/ 바람이 우릴 날려줄거예요/ 당신의 아픈 마음/ 털털 털어서 널어요/ 우리가 말려줄게요/ 당신의 아픈 마음 우리가 말려줄게요/ 우리가 말려줄게요/


 
뮤지컬에서 음악은 등장인물의 감정과 느낌을 전달하는 대사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촘촘하게 잘 짜여진 뮤지컬이라 할 지라도 음악이 '꽝'이면 전체적으로 '꽝'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런데 놀랍게도 완벽한 극본을 자랑하는 [빨래]는 뮤지컬 넘버까지 흠 잡을데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특히 가사의 완성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노래도 좋은데 가사까지 좋으니 황홀지경이다. 


<서울살이 몇핸가요>로 시작된 뮤지컬 넘버는 <참 예뻐요><내 이름은 솔롱고입니다><빨래><비오는 날이면><내 딸 둘아>로 이어지다 <슬플 땐 빨래를 해>로 절정을 맞는다. 전체적으로 완급조절이 상당히 잘 되어 있어서 지루한 줄 모를 정도이고, 노래를 듣다보면 어느새 관객도 등장인물과 하나가 되어 같이 웃고 울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잘 만들어 진 뮤지컬 넘버의 힘인 것이다.


(작년 추석 KBS에서 방송된 뮤지컬 다큐멘터리 [서울의 달밤]에서 두 세곡의 [빨래] OST를 들을 수 있기에 동영상을 같이 올려본다. 올린 동영상만 봐도 좋겠지만 관심 있으신 분들은 [서울의 달밤]을 구해서 보시면 더 좋을 듯. 개인적으로 상당히 인상 깊게 본 다큐멘터리였다.)

 





[빨래]는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자, 가능성과 미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소시민들의 땀과 눈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멋드러진 뮤지컬을 놓치는 건 정말 아쉬운 일이다. 시간이 난다면 지금 당장 대학로 학전으로 달려가 뮤지컬 티켓을 끊기를 권해드리고 싶다. 참 못된 서울을 사는 참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지금 당신의 현재를 발견하고 반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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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오디선] 은 예전부터 꼭 찾아 봐야지 생각했던 작품 중 하나였다.


워낙 소문도 좋았고, 웰메이드라는 호평이 자자했기 때문인데 다행히 이번 주말에 시간이 닿아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오디션] 은 클럽 오디션을 보러다니며 밀린 월세조차 갚지 못하는 사고뭉치 '락 밴드' 들의 이야기다.


젊기 때문에 꿈을 꾸고, 좌절하는 청춘들의 이야기 말이다.





[오디션] 은 락 밴드가 주인공인 뮤지컬답게 콘서트와 뮤지컬의 중간지점에 와 있다. 배우들은 노래 뿐 아니라 춤과 악기까지 두루 갖추며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두 눈과 두 귀를 사로잡는 뮤직 넘버들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고, 탄탄한 스토리 라인은 국내 창작 뮤지컬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증명해준다.


그러나 이 뮤지컬에서 진짜 빛나는 것은 바로 '젊은이' 들 그 자체다.


그들은 돈 때문에 좌절하고, 오디션에 낙방해서 좌절하고,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부딪혀 좌절한다. 그러나 "걱정은 개나 줘버려!" 라며 소리치는 그들은 오뚝이처럼 일어나서 다시 도전한다. 포기라는 걸 모르는 그들의 모습은 무모하긴 하지만 절대 어리석어 보이지는 않는다. 꿈을 좇아 달려가는 청춘의 영롱함을 어찌 어리석다 할 수 있을까.


비록 [오디션] 은 여섯명의 주인공들이 '성공' 을 쟁취하는 모습까지 그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도 큰 시련에 견디기 힘들어 뿔뿔이 흩어지는 밴드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조명한다. 허나 그 모습이 그리 허무하거나 쓸쓸해 보이지는 않는 이유는 "꼭 다시 돌아올게" 라는 준철의 약속처럼 여섯 주인공들은 그 시련마저도 극복하리라는 것, 그들이 끝끝내 다시 한 자리에 모여 연주할 거라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꿈을 좇아 어른이 되고/ 조금씩 잊혀져가지/ 우리가 떠나온 그 곳/

내 꿈의 엔진이 꺼지기 전에/ 식어 버리기 전에/ 이제는 만나고 싶어/ 다른 내일을



그들에게 '좌절' 은 일종의 성장통이다.


그들이 함께 불렀던 노랫말처럼 그들은 꿈을 좇아 어른이 될테고, 곧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시련이 있더라도 그들의 꿈꾸는 엔진이 꺼지고 식어버리기 전에 다른 내일을 만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뮤지컬 [오디션] 이 끝까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젊기 때문에 좌절하고 성장할 수 있는 청춘의 열망과 꿈, 순수한 열정 그 자체였던 셈이다.


이렇듯 [오디션] 은 확고한 주제의식 속에 배꼽을 잡게 만드는 유머러스함과 수준 높은 뮤지컬 넘버를 버무린 수작 중의 수작이다. 특히 병태의 솔로곡으로 작품이 막을 내리고 여섯 멤버들이 다시 무대에 나와 관객과 함께 즐기는 '커튼콜' 은 소극장 콘서트를 방불케 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기본기 탄탄한 뮤지컬 배우들의 '쇼' 를 보며 땀방울 흥건한 멋진 '연주' 를 듣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우리 주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표현한 뮤지컬 [오디션]. 특별하지도 비범하지도 않지만 공감할 수 있어서 행복한 뮤지컬 [오디션]. 희망을 버리지 않는 젊은이들의 순수함을 직접 느끼고 싶다면,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계기를 마련해 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오디션] 을 보러가길 바란다. 그 곳에서 당신은 지금의 '나'를 바라보고, 예전의 '나'를 회상하며 깊은 울림이 있는 공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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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8.03 0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다보니 젊은이들 이야기 최인호의 고래사냥과 바보들의 행진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주인공 이름때문이었나? 글 잘 읽고 갑니다^^




잘 만들어진 연극이나 뮤지컬을 찾아보는 일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특히 요즘은 번안극 뿐 아니라 국내 순수 창작 연극이나 뮤지컬의 수준이 한껏 올라가 있어, 보기만 해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미 창작 뮤지컬의 상징이 된 [사랑은 비를 타고] 부터 시작해 [오, 당신이 잠든 사이][김종욱 찾기][루나틱] 같은 작품들은 엄지 손가락을 한껏 치켜세워도 모자랄 정도로 뛰어난 창작극들이다.


그리고 여기, 창작 연극의 지표가 된 작품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연극 [환상동화] 다.




[환상동화] 는 제목 그대로 '환상적인 동화' 의 세계를 무대 위에서 재현한다.


예사롭지 않은 세명의 광대의 등장, 그리고 이어지는 마술쇼는 처음부터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세명의 광대는 각각 '예술' '전쟁' '사랑' 을 상징한다. 예술이 최고다, 사랑이 최고다, 전쟁이 최고다 티격대던 이 광대들은 사랑과 전쟁, 그리고 예술이 녹아있는 이야기 한편을 관객에게 들려주기 시작한다. 


세 광대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시작이 바로 연극 [환상동화] 의 환상적인 무대가 시작하는 순간이다. 


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계,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예술의 이야기는 사실 그리 가벼운 소재거리가 아니다. 특히 전쟁으로 얼룩진 세계를 표현할 때 무대와 관객은 한없이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환상동화] 는 이 세가지 소재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 다소 철학적인 소재와 무거운 주제를 유머로 승화시키는 노련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경탄스럽다.


물론 이는 세 광대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 내는 탁월한 연기력에서 기반한다. 다양한 이야기와 현란한 언어들이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광대들의 고군분투는 흔들림 없이 극의 중심을 잡아나간다. 광대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사들 속에서 주제 의식은 깊어지고, 이야기는 더더욱 환상적으로 변해간다.


관객들을 웃기기도 하고, 당황하게 하기도 하면서 광대와 관객은 하나가 되고 이 순간 [환상동화] 는 더 이상 연극이 아니라 그 자체의 환상적 동화로 받아 들여진다. 어른들의, 어른들에 의한, 어른들을 위한 아름답고 환상적인 한 편의 동화말이다.


관객이 연극을 보면서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고, 배우와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은 매우 소중한 경험이다. [환상동화] 는 이런 기분 좋은 경험을 유감없이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조급하지도 서두르지도 않지만 서서히, 격정적으로 절정으로 치달아가는 세 광대의 '이야기' 는 그래서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다. 전쟁, 사랑, 예술이라는 세 가지 삶의 대명제에 이렇게 유머러스하면서도 치열하게 탐구했던 작품이 근래 대체 얼마나 있었나 다시 생각하게 될 정도다.


옛말에 '명불허전' 이라고 했다. 세상에 알려진 명성은 절대 헛되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앙코르에, 앙코르를 거듭하면서 창작 연극의 역사를 새로이 쓰고 있는 연극 [환상동화] 도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명불허전' 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촘촘히 짜여져 있는 스토리 라인, 배우들의 열연, 노련한 무대 연출,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하는 유머와 철학은 별 다섯개가 모자랄 정도로 완벽하다.


땀과 열정이 가득한 무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환상적이고도 아름다운 어른들의 동화를 보고싶은 사람이라면, 삶에 대한 철학과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꼭 봐야할 연극 [환상동화]. 지금 당장 [환상연극] 을 보러 대학로로 달려가는 것은 어떠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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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커피 이야기' 에 응모하는 글입니다.>


바야흐로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여자친구와 함께 대학로 뮤지컬을 보고 왔다.


둘 다 뮤지컬 보는 것을 워낙 좋아하고, 웬만큼 유명한 작품은 지갑이 허락하는 한 찾아보는 편이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뮤지컬을 보는 것은 빠질 수 없는 '데이트 코스' 다.


특히 나는 로맨틱 코미디 쪽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래서 고른 작품이 바로 [카페인] 이다.




내가 최고로 치는 로코물은 대학로 뮤지컬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김종욱 찾기] 다. 여태껏 여러 작품을 봐왔지만 [김종욱 찾기] 만큼 내 가슴을 설레게 한 작품도 드물다. [김종욱 찾기] 에 비견되는 작품을 하나 더 고르라면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도 좋다. [김종욱 찾기] 가 달달한 사탕 같다면,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같다.


개인적으론 [김종욱 찾기] 보단 못하지만 그래도 좋았던 [뮤직 인 마이 하트] 도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 중 하나다. (+[위대한 캣츠비] 도 로맨틱 물로 억지로 끼워 넣자면 나쁘지 않다. 로맨틱보다는 치정멜로에 가깝지만.) 여기에 한 작품을 더 더하자면 바로 이번에 선택한 뮤지컬 [카페인] 이다. [뮤직 인 마이 하트] 제작진이 만들어 낸 뮤지컬 [카페인] 은 바리스타와 소몰리에의 커피처럼 달콤하고, 와인처럼 진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2인극으로 진행 되는 이 작품은 시종일관 밝고 유머러스하며 재기발랄하게 진행된다. 


좋은 노래와 탄탄한 스토리 라인은 100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관객들을 휘어잡는 위력을 발휘한다. 기억에 남는 뮤지컬 넘버가 없다는 것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를 따지자면 아주 유려하고 부드럽다. 특히 이 뮤지컬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은은한 '커피향' 이다. 물론 실제로 커피향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커피숍처럼 꾸며진 무대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커피의 향기로움이 느껴진다.


극 중 바리스타인 여주인공 세진은 커피로 자신의 감정과 사랑을 표현한다. 소믈리에인 남주인공 지민(정민)이 와인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때는 커피와 와인이 뒤섞여 전혀 새로운 맛을 창조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 뮤지컬은 제목 그대로 '카페인' 같은 중독성과 쌉싸름한 달콤함을 자랑한다.


[카페인] 에는 여러가지 커피 이름이 등장하지만 그 중 '카푸치노' 는 특별한 역할을 한다. 카푸치노를 찾는 날은 우울하거나 기분이 다운 되어 있을 때라던 세진은 정민이 떠나가는 날 무심코 '카푸치노' 를 찾게 된다. 그리고 정민이 떠나가는 것이 그녀를 얼마나 외롭게 하는 것인지, 그리고 자신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문득 깨닫게 된다. 카푸치노는 세진에게 외로움이었고, 사랑이었으며, 이별이었고 곧 만남이기도 했다. 


"커피를 고르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기분을 알 수 있어요 / 하하. 이젠 커피도 마음대로 고르지 못하겠네요." 라던 극 중 대사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카푸치노' 만큼이나 [카페인] 에서 인상 깊었던 커피는 탄자니아 더블에이다. 정민(지민)이 떠난지 6개월이 지나고 난 뒤, 세진은 오늘의 메뉴판에 '탄자니아 AA' 를 적어 넣는다. 진한 향기만큼이나 강한 신맛을 가지고 있어 커피 마니아들에게는 인기가 좋은 탄자니아 AA의 특유의 개성처럼 세진의 사랑도 지민과의 이별을 통해 한층 진한 향기와 사랑의 달콤 쌉싸름한 신맛을 간직하게 된다.


정민(지민)이 세진에게 돌아온 날 "여기 탄자니아 AA 좀 주시겠어요?" 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그들의 사랑이 그만큼 더 깊어지고 강렬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이처럼 뮤지컬 [카페인] 은 카푸치노처럼 특별한 감정과 탄자니아 AA처럼 깊은 사랑의 의미를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하루에 1잔 이상 마시지 않으면 어쩐지 서운한 커피처럼 [카페인] 역시 로코물을 선호하는 관객이라면 반드시 봐야만 하는 중독성 있는 뮤지컬이다. 이미 여러 뮤지컬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임철형과 이번에 처음 봤지만 표정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난아의 탁월한 가창력도 [카페인] 에 중독 되게하는 이유 중 하나일터다.


커피향처럼 은은한 향기와 달콤 쌉싸름한 미묘함을 간직하고 있는 뮤지컬 [카페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금 당장 대학로로 달려가는 것이 어떠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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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tagelife.kr BlogIcon BW 2009.01.15 1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명의 배우가 허전함없이 100분의 시간을 채우는 게 쉽지 않을텐데...
    구성이나 음악이나 연기나 다 같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저도 공연보는 내내 좋은 느낌 받았던것 같아요~
    살짝 추천!

  2. jy 2009.04.21 1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뮤지컬 카페인 정말 재미있게 봤었죠,,, 당첨되서 보러가긴 했지만
    여지껏 봤던 뮤지컬중 자신있게 추천할수있는 작품인듯...

    그에비해 쓰레기같던 색즉시공이란....
    스타들의 출연에도 불구하고 (원래 그런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돈이 아깝더라구요...,,,


CATS를 관람하기 전, 나의 CATS에 대한 지식은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 설령 그 사람들이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평론가들이 아니라 할지라도 단지 음악을 즐기고 단지 내 귀에 달콤한 노래를 찾아다니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MEMORY에 국한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CATS라는, 세계 4대 뮤지컬이라는 거창한 타이틀 앞에 그 공연을 관람하기 전 나의 마음은 무던히도 설레고 떨리고 사라 브라이트만의 목소리를 통해 듣던 MEMORY의 감동을 가슴 깊은 곳에서 꺼내어 상기시키게 했다.




그러했다. CATS는, 이제껏 살아온 얼마 되지 않은 내 삶에서 가장 커다란 무대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그 곳에 그 공연장에 선택되어 초대받는 행운이, 나의 가슴을 더 부풀어 오르게 했다. 그리하여 나는 매력적인 고양이들에게 말을 걸 준비가 되어있는, 뮤지컬 마지막의 충고처럼 정중히 인사를 건낸 후 모자를 벗을 수 있는, 그러한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뮤지컬 장으로 향했던 것이었다.




단지 내 지식이 MEMORY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그러한 순수한 눈으로 고양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기에 나는, 다른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그 감동을 느끼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독이 될 수 있을 것임을 알지 못했다. CATS를 관람하기 전까지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CATS에 대해 알고 있었던 다른 사실




아, 내가 CATS에 대하여 알고 있었던 사실이 MEMORY이외의 다른 것이 하나 더 있었다. 1년에 한번 모인 고양이들 중 한명을 뽑아서 천국으로 보내주는 내용의 줄거리를 기본으로 하는 뮤지컬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설마, 설마! 그것이 줄거리의 다일줄이야! 캐릭터 소개가 끝난 다음에 어떤 우리에게 무언가 긴장감을 줄 수 있을 만한 다른 이야기들이 나올 거야, 라는 나의 다소 순진한(?)이 기대감은 처음 신비롭게 디자인된 무대를 바라보며 가슴이 두근거릴 때부터 1막이 끝날 때, 그리자벨라가 메모리를 부를 때까지 계속 되었다.



사라 브라이트만의 메모리 보다 왠지 힘이 떨어지는 메모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 노래를 처음 들을 때의 그 감동을 느껴야 한다고 나 자신에게 강요했다. "이 뮤지컬은 세계 4대 뮤지컬이고 저 배우들은 브로드웨이에서 내한한 배우들이다"라는 이 너무나 위압적인 사실은 캣츠에 다소 지루함을 느끼는 나 자신을 문화도 모르는 수준 낮은 시민으로까지 생각하게 했다.



1부가 끝나고서야, 이 공연이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그 가치가 있는 공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캣츠는 그 장면 장면들에게서 얼마나 저 고양이들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지, 마치 형식 없는 발레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얼마나 저 고양이들이 유연하게 움직이는지 하는 것들, 그리고 그 귀여운 음악들과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이 정말 가벼운 동작으로 점프할 때 느끼는 마치 써커스를 보는 것 같은 그 놀라움에 탄식해야 하는 뮤지컬이었던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캣츠는, 그들이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에 중점을 맞춰서는 안 되는 뮤지컬이다. 단지 그들의 군무가 얼마나 화려한지, 그들의 분장이 얼마나 실감나는지, 그들의 노래가 얼마나 흥겨운지 하는 것들에 대한 순간순간의 반짝임을 즐기는 그러한 뮤지컬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몰랐던 나는 영국식 억양으로 노래하고 대사하는 고양이들의 말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자막에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내가 놓치면 안 되는 내용이 설사 다음 장면에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가지고.



하지만 오히려 내가 더 공연을 즐기게 된 것은 그런 것들, 아무려면 어때! 라고 생각해 버린 2막에서 부터였다. 물론 1막보다 화려한 2막의 무대들이 내 시선을 잡아끈 탓도 있었지만 CATS의 공연을 온전히 눈으로 즐기고 고양이들에게 애정을 가지게 되기 시작하면서 공연의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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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신문기사를 보면서 한국에서 한국버젼으로 공연된 캣츠가 실패했다는 기사들을 접한 기억이 있기는 있다. 그때 당시 "왜?"라는 의문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는데 CATS가 한국 뮤지컬 배우들을 데리고 성공하기 힘든 이유는, 그들이 보여줄 그 무언가가 너무나 적기 때문일 것이다. 거의 발레수준으로 무용을 하는 외국의 그 훈련된 단원들 보다 훨씬 더 잘 해낼 한국 배우들이 얼마나 될까?



물론 이 말은 한국 뮤지컬 배우들을 폄하하거나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의 그 유연성을 따라갈 만큼의 고강도 훈련을 거친 한국 배우들이 더 많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그들의 동작은 전문적으로 무용을 배운 사람들만이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그 깊이가 있었다. 스토리가 아닌 그들의 춤에 빠져들게 해야 하는 그 난해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우리나라의 배우층은 좀 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버린 것이다.



물론 정식 발레단원을 캐스팅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기는 했지만  한국인의 정서에 더 부합하려면 그 고양이들의 캐릭터 소개는 20분쯤으로 끝내놓고 그들의 경쟁구도나 극적인 스토리를 훨씬 더 부각시켜야 한다. 그 속에서 그들이 MEMORY를 부르고 춤을 추고 과거를 추억하고 기차를 만들어 냈다면 그 감동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것이었다. 적어도 발레 공연이 아닌 뮤지컬을 기대하고 온 관객들에게는 말이다. 그리고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사람 이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배우들의 CATS가 브로드웨이 오리지널이라는 메리트 없이 성공하기란, 아무래도 힘들 것이다.



어쨌든, 솔직히 말해서 CATS가 내가 기대한 그 무언가를 가진 뮤지컬은 아니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가 "발상이 기발한 고양이들의 향연"또는 "이야기와 완벽하게 어울어지는 웅장한 음악"과 같은 신문기사 평과 미국의 토니상의 7개 부분 석권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나에게 "문화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실이 그러할지도 모르고.



하지만 나는 모차르트음악을 들으면서 오케스트라에 대해 평론하고 오페라를 보면서 가수들의 역량에 대해서 논하는 그런 교양은 처음부터 익숙치 못했다. 나는, 설사 길거리의 집시 같은 행색을 한 가수라 할지라도, 대학로의 아마츄어들이 빚어내는 다소 어설픈 조합이라 할지라도 나의 마음을 울리는 그 작은 떨림을 더 좋아한다. 그 작은 떨림들이 CATS의 웅장함과 화려함 속에서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다면, 그것 역시 그냥 나만의 속성인 것이다.



CATS가 형편없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중간 중간 탄성을 나오게 하는 그들의 춤과 화려함은 내게 잠시 꿈같은 시간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다만, 처음부터 나는 다른 것을 기대하고 갔기 때문에 내가 얻을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적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도 CATS를 보러 가는 "나 같은" 무지한 사람들을 위해서 한 가지 충고를 해주자면, 자막이 아니라 고양이들과 한번 더 눈을 마주치고, 그들의 단어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들이 몸으로 하는 이야기와 그 멜로디에 집중하면, 무리 없이 꿈의 세계로 초청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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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heysukim114.tistory.com BlogIcon *저녁노을* 2008.06.20 18: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주에 공연 옴 꼭 보고 싶네요.

    감사히 보고 가요.

  2. 바람의길 2008.06.20 2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사실 많이 지루했습니다.
    오페라의 유령이나 노틀담드파리에 비해 훨씬 다이나믹한 움직임과 주옥같은 음악이 있었지만...
    세시간 동안 그 움직임과 음악만을 감상하기엔 저의 준비가 부족했던듯 싶네요.

  3. 하늘 2008.06.21 1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만 그렇게 느낀게 아니라 다행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