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 논쟁/인물과 논쟁'에 해당되는 글 112건

  1. 2016.01.08 클라라, 레이양...논란만 있고 내실은 없는 '몸매마케팅'의 최후
  2. 2015.11.20 책임은 없고 권리만 있는 외국인들, 유승준과 에네스 카야는 무슨 염치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하는가
  3. 2015.06.25 맹기용에 대한 도를 넘은 비난, 대중이 그에게 화난 진짜 이유는? (5)
  4. 2015.04.16 이영애 산후조리원부터 전지현 빌딩까지…연예인 사생활 공개 불편한 이유 (1)
  5. 2015.04.09 김연아-김원중의 재결합에 쏟아진 쓸데없는 걱정, 여왕의 선택을 존중해야
  6. 2015.03.28 의미없는 이태임-예원 논란의 잘잘못 따지기, 언론의 무책임함으로 피해자만 남았다.
  7. 2015.03.14 클라라와 이태임의 전철을 밟는 유승옥, '몸매'말고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없을까?
  8. 2014.11.20 ‘김연아-김원중’ 격려 받는 결별, 김연아에게 잔혹한 대중의 관심
  9. 2014.11.04 <힐링캠프> 손연재, 스타로 소비되는 선수의 한계? 예능출연 독이되다
  10. 2014.08.19 마약 탈세 군대 폭력까지... 도 넘은 여자 연예인들의 탈선, 숨긴다고 될 일인가.
  11. 2014.03.27 함익병-황상민이 분석하는 대중문화? 도넘은 비호감 마케팅
  12. 2013.12.10 안타까운 가족사, 장윤정 엄마와 동생, 언론이 만든 괴물이 되다.
  13. 2013.12.07 김연아도 민망한 최악의 mbc중계, 선수에 대한 존중을 배워라
  14. 2013.09.09 김조광수 동성결혼, 보기 불편하면 피하고 비난 해야 할까. 인정하면 달라진다 (1)

 

 

아름다운 몸매는 분명 연예인들에게 있어서 훌륭한 자산임에 틀림없다. 대중에게 끊임없이 회자되어야 살아남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대중이 열광할만한 포인트를 하나 추가한 셈이기 때문이다.

 

 

 

클라라는 몸매를 활용하여 관심을 받은 대표적인 연예인이라고 할만하다. 클라라는 야구경기에서 딱 달라붙는 레깅스를 입고 시구를 하며 화제성을 만든 후, 활동영역을 넓혔다. 각종 화보나 예능, 드라마에까지 출연하며 관심의 중심에 섰던 그는, 소속사와의 분쟁을 겪으면서 휴지기에 들어갔다.

 

 

 

 

특이한 것은 소속사 분쟁 자체가 대중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소속사와 클라라의 진실공방은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분명히 있었으며 그들이 주고받은 메신져 내용이 공개되는 등, 대중은 그들의 싸움을 즐겼다. 툭하면 불거지는 연예인들의 소속사 문제가 이토록 화제성있는 스토리로 변질된 것은 클라라의 기존 이미지와 문제를 일으키는 방식 때문이었다.

 

 

 

클라라는 방송에서 끊임없이 소비되었지만 그 소비과정에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만들지 못했다. 언제나 화제가 되는 것은 그의 몸매가 얼마나 훌륭한지, 그가 얼마나 섹시한지에 관한 것이었고, 예능에서 예능감을 보여주지도, 드라마에서 연기력을 보여주지도 못한 채 클라라 의 몸이라는 그 자체로만 소비되었다. 더군다나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클라라의 인터뷰 내용 때문에 구라라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 그는 성추행이라는 단어로 소속사와의 분쟁을 일으켰고 그 과정에서 누가 잘못했느냐가 쟁점이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딱히 누군가의 편을 들 수 없을 만큼 소속사와 클라라의 분쟁은 그들만의 리그였고 이 과정에서 클라라가 선택한 성추행이라는 단어는 힘을 잃었다. 그런 그에게 비호감 딱지가 붙은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가 만들어낸 파급력은 딱 거기까지였다.

 

 

 

클라라가 복귀를 위해 가진 <한밤의 tv 연예>와의 인터뷰가 대중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 또한 그 때문이다. 클라라의 복귀에 기대를 걸만한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엔터테이너로서의 역량을 오직 몸매에만 집중시켰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몸매를 이용하여 몸매에 관련된 파급력을 일으키기는 보다는, 몸매라는 강점을 이용하여 예능이나 드라마 등의 출연이라는 성과를 일으켰다면 그 안에서 뭔가의 성과를 보여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클라라는 몸매를 뛰어넘는 파급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엔터테이너로서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 채 논란의 중심에 섰던 것이다.

 

 

 

클라라 만큼은 아니더라도 몸매에 집중된 마케팅을 펼치는 스타들은 구설수에 많이 오른다. 유승옥은 뛰어난 몸매를 바탕으로 화제를 모은 후, <압구정 백야>에 출연했지만 발연기 논란을 씻어내지 못했고 예정화는 몸매를 보정한 것이 아니냐는 포토샵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바로 얼마 전 방송 연예 대상에 모습을 드러낸 레이양은 김구라가 대상을 수상하는 순간 자신이 화면에 나오기 위해 현수막을 말아서 공간을 확보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들에게 이런 논란이 유독 많은 것은 클라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몸매를 딛고 일어설만한 뛰어난 엔터테이너로서의 자질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몸매를 이용하여 연예계에 진출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예능이나 드라마등 방송 출연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들이 호감형 연예인으로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출연한 방송 분량을 책임질 만큼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예능에서 하는 것도 역시 그런 몸매를 가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에 집중되어 있고, 드라마에서도 결코 장면을 책임질 만큼의 연기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런 그들의 몸매 마케팅이 몸매 그 자체로 끝날 경우, 그 수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 외모는 분명 연예인들의 강력한 무기지만 단순히 외모로 인해 시청자들이 그들을 사랑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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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이미지를 배반하고 실망감을 준 유명인들이 한국사회에서 져야 하는 십자가는 무겁다. 그들의 사생활이라 할지라도 물의를 일으킨 유명인들에 대한 단죄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되기도 한다.

 

 

유승준과 에네스 카야 역시 그들이 배반한 이미지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룬 사례다. 유승준은 바른 청년이미지로 군 입대를 꼭 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으나 미국 국적을 취득하며 한국에 무려 15년 동안 입국 금지를 당했다. 그러나 그는 최근 한국에 돌아오겠다고 수차례 언론에 자신의 처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병무청 측에서 그를 받아들일 기미가 없자 그는 마침내 자신의 입국금지를 철회해 달라는 소송을 내기에 이르렀다.

 

 

 

에네스 카야는 tvn예능 프로그램 <비정상 회담>에 출연해 터키 유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이유는 그의 유창한 한국말과 더불어 여자를 사귈 때는 결혼할 마음으로 사귄다거나 바람피우는 남자는 우리나라엔 없다는 등의 발언으로 보수적인 성격을 띤 발언을 다수 했고, 때로는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다른 패널들과 부딪치며 마치 조선시대의 사고방식을 가진 것처럼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그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의혹에 대한 파장은 그래서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신기하게도 유승준과 에네스 카야는 한국의 복귀를 타진하며 비슷한 어조의 발언을 사용했다. 유승준은 입국금지를 철회해 달라는 소송을 내며 고통받았다.”는 말로 동정심에 호소했고, 에네스 카야는 한국의 한 소속사와 계약을 맺으며 가족을 위해 싸울 것이라는 인터뷰를 했다. 이들의 말은 그들이 피해자일 경우에만 할 수 있는 말이다. 유승준의 국적 포기는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킬 만큼 거대한 파급효과를 일으켰고, 에네스 카야의 불륜 논란 역시 충분히 대중의 분노를 자아낼만한 황당한 사건이었다. 그런 그들이 자신들의 고통을 호소하고 누군가와 싸운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사과는 하겠지만 억울하다는 식의 발언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들의 국적은 모두 한국이 아니다. 유승준은 이미 미국 국적을 선택한 시점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의무를 져버렸고, 에네스 카야는 애초에 터키인이다. 그들이 한국에 돌아오고 싶어 한다면, 그들이 한국에서 누렸던 인기와 혜택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라고밖에 해석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이 누렸던 혜택은 대중이 그들에게 우호적이었을 경우에만 유효한 것이었다. 그들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이 없고, 오히려 불편함만 남았다면 그들은 오히려 마이너스의 존재일 뿐이다. 그들이 사회적으로 논란만 일으키는 존재라면 굳이 외국인을 국내에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책임은 없고 권리만 있는 그들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싸늘한 이유다.

 

 

 

유승준은 군대갈것이냐는 질문에 생각해 보겠다고 답할 수 없었다고 전했고 에네스 카야는 스스로 유생이라 한 적이 없다며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변명에 불과하다. ‘군대를 통해 자신의 바른 청년이미지를 강조한 것은 유승준이었고, ‘유생의 이미지를 활용해 인기를 언고 광고와 예능에 출연한 것은 에네스 카야였다. 그들의 문제는 그들이 상당한 이득을 누리고 있을 때는 그런 이미지를 활용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 이미지를 자신이 의도적으로 만들지 않은 것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의도적이었든 그렇지 않든, 자신들이 누리던 것이 자신들의 이미지에 일정부분 빚을 지고 있다면 그런 이미지가 짐이 되는 것 또한 그들의 몫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복귀가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것 또한 그들에게 동정한 여지가 없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언론을 이용하고 있다. 자신의 입장을 전하기 위해 유명인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활용하여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낸다. 그러나 대중이 그들을 보는 시선은 앞에서는 대중에게 사과를 하는 척 하지만 뒤에서는 언제든 뒤통수를 칠 준비가 되어있는 이중적인 사람들일 뿐이다. 그 이중성을 회복하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다. 유승준은 국적 포기를 하지 않았어야 했으며, 에네스는 여성들과의 은밀한 문자를 주고받지 말았어야 했다. 잘못을 저지르고 진정으로 용서받고 싶다면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그들의 억울함은 상대방의 감정을 생각지 않은 일방적인 밀어붙임이다. 그들이 정말로 반성하고 용서받고 싶다면 한국으로 돌아오겠다고 소송을 걸거나 싸우겠다며 전의를 불태워서는 안된다. 단 하나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 살아가는 것이다. 한국은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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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무엇을 잘못했던 것일까. ‘셰프’ 맹기용에 대한 이야기다. 훈훈한 외모에 젊은 나이로 단숨에 주목 받은 그는, 어느새 TV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것에 이어 대세 예능인 <냉장고를 부탁해>와 <나 혼자 산다>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그가 TV속에 자주 등장할수록, 그를 향한 비난의 수위는 높아졌다.

 

 

 

 

처음에는 그의 캐릭터에 그를 돋보이게 할 만한 이야기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는 받는 주목에 비해 셰프 경력은 너무 짧았고, 요리 자체보다는 외모나 스펙으로 주목을 끌었다. 실력이 검증되지 못한 그의 방송 출연은 그를 ‘요리사’ 보다는 ‘연예인’으로서 소비하게 만들었고 셰프이면서도 연예인으로서 소비되는 그의 이미지는 비난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만들어 낸 요리 또한 문제였다. 비난의 시작이었던 꽁치 샌드위치 ‘맹꽁치’를 비롯하여 그가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만든 요리들은 모두 날선 비난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되었다. 처음에는 “셰프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요리”라는 비난이 주를 이루더니 다음 요리에는 “너무 안전하고 쉬운 요리”라는 비난이, 그 다음에는 ‘레시피 표절논란’으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과거 다른 방송에서 선보였던 요리들도 ‘수준 이하’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 중 레시피 표절논란은 생각보다 논란이 커지게 되었고 맹기용이 표절한 것으로 의심되었던 레시피를 올린 한 블로거는 “표절이 아니다”라는 해명까지 했다. 이에 오히려 동정론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맹기용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급기야는 맹기용의 어머니가 인터넷에 글을 올려 ‘금수저 논란’을 해명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만큼 맹기용에 대한 비난의 수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열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맹기용의 자질 논란에서 시작된 이 비난은 나중에는 맹기용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비호감으로 변질되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방송출연을 감행하는 그에 대한 비호감지수가 상승함에 따라 비난을 위한 비난이 터져나왔다.

 

 

 

 

요리는 물론 창작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기존의 레시피를 적절하게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셰프라고 하여 언제나 새롭고 신기한 요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요리를 먹는 사람의 만족도다. 맹기용은 실제로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김풍과 박준우 기자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지만 이는 ‘상대가 너무 쉬웠다’ ‘맹기용을 띄워주기 위한 전략이다’ ‘다른 사람의 요리가 더 나았다’는 식의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이쯤되면 그가 숨만쉬어도 욕을 먹는 수준이다. 물론 어떤 인물에 대한 호불호를 결정하는 것은 개개인의 판단일 수 있다. 맹기용의 경우, 부각된 것은 실력과 경력 보다는 그를 둘러싼 배경이었고 이 점이 바로 그를 구설에 휘말리게 한 지점이었다. 셰프로서 자신을 포장하면서도 대중에게 셰프로서의 자격을 설득시키지 못한 맹기용의 책임역시 간과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비난을 위한 비난이 정당성을 얻는 것은 아니다. 이미 대중은 맹기용에게 긍정적인 시선을 던져줄 아량이 없다. 어떤 행동을 하여도 비난의 날을 세울 준비만을 하고 있다. 비난의 이유는 그저 ‘그가 맹기용이라서’이다. 그에 대한 호감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의 모든 행동에 일일이 비난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무조건 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지금 맹기용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어떤 사람 자체를 매장시키고 마녀사냥 하는 잔혹한 대중의 모습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를 비난하는 사람 중 그의 요리를 먹어 본 사람은 대다수가 아니다. 요리의 레시피만 가지고 그를 비난하는 것은 그 요리를 맹기용이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이제 그만 광기어린 비난을 멈추어야 한다. 비난을 위해 이유를 가져다 붙여 그 비난을 정당화 하려는 태도는 맹기용이 받았다는 특혜와 스펙보다 훨씬 더 불합리한 태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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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가 된 연예인들이 많은 부를 끌어 모으는 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들이 합법적으로 재산을 만들어 냈다면 누구도 그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사회다. 능력이 있다면 부를 쌓을 수 있고, 그 부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 물론 그들의 부는 대중의 인기 덕분에 만들어 졌다. 그런 까닭에 연예인들의 재산이 화제가 되는 것 또한 그들의 유명세로 치부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쏟아지는 정보가 피곤한 이유는 따로 있다.

 

 

 

스타들의 ‘통 큰’ 씀씀이가 화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소액’의 소비를 했을 때가 아니다. 그들이 건물을 샀다거나 산후조리원 VIP시설을 이용했을 때 등,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소비를 했을 때가 주를 이룬다.

 

 

 

 

 

 

최근 밝혀진 것만 해도 조재현의 350억 빌딩, 손예진의 93억 건물, 각각  380억, 250억에 달하는 김태희와 비, 장동건 고소영등 커플들의 부동산 자산 가치 순위에 유진 기태영의 21억 아파트 구입, 전지현 건물구입과 구조변경에 관한 잡음, 1200만원 이영애 산후조리원 등이다. 최근에 밝혀진 것만 이 정도이며 연예인 중 최고 부자는 누구이고 가장 비싼 집에 사는 사람은 누구인지가 끊임없이 화제가 된다. 그들의 재산이 대중의 원초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른 사람들의 수익이 얼마고, 얼마만큼의 재산을 축적했느냐 하는 것은 분명 관심이 가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단순히 이런 사실들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것은 이제 식상하기까지 하다.

 

 

 

연예인 재산 목록에 대한 모든 내용들이 단순한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숨겨진 의도는 그들의 수익에 대한 속물적인 호기심이 바탕이 되고 있다. 단순히 재산이 얼마냐로 순위를 매기고 엄청난 금액을 산후조리원에 썼다는 이유로 그 금액에 혀를 내두른다. ‘초호화’나 ‘vip'등의 수식어는 덤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에는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다. 그들이 그런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부러워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은 이만큼 잘사니 질투를 하라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들의 건물이나 산후조리원을 홍보해 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언론에서는 단순히 재산을 공개하면 그 뿐이지만 그들의 재산이 공개됨으로써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도 없다고 할 수 없고 이 정보로 인해 누군가가 이익을 얻는다고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들의 재산이 왜 그렇게 화제가 되어야 하고 대중에게 중요한 정보처럼 알려져야 할까. 그들이 탈세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범법행위를 한 것도 아니다. 자신들이 정당하게 번 수익으로 정당하게 소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구라도 그런 부를 누릴 권리가 있고 누구라도 그 권리에 대하여 왈가왈부 할 수 없다.

 

 

 

늘어난 가족을 위해 좋은 보금자리를 찾거나 아이를 낳은 산모로서 자신의 몸을 추스르는데 돈을 투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일이다. 건물을 샀다고 해도 연예 활동이외의 다른 수익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잘못이라 할 수 없다. 그들은 오히려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세입자와의 구설수에 자주 시달린다. 최근 주차장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 전지현 건물 역시, 건물주와 주변 주민들의 갈등일 뿐, 대중이 알만큼 중요한 정보는 아니다. 그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사안일 뿐이다. 그런 사안들을 통해서 불법행위를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그런 세세한 사안들이 밝혀지지 않을 그들의 권리 역시 존중받아야 할 부분은 분명히 있다.

 

 

 

그들의 재산 공개는 그들의 동의를 받고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다. 단순히 유명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자신의 재산이 대중에게 노출되고 설왕설래가 이루어지는 것은 지나친 사생활 침해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그 정보를 받고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대중들에게도 그런 사실은 일종의 공해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누군가의 재산 목록이 공개된다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 아닌지, 언론의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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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스포츠 스타로서 유례 없는 전국민적 관심을 얻은 것은 그의 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스타성 때문이기도 하다. 100년 만에 나올까 말까한 피겨 천재라는 이미지에 아름다운 선을 가진 몸매, 그리고 날이 갈수록 피어나는 외모등은 김연아의 스타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요인이었다.

 

 

 

김연아는 전 국민의 사랑을 받은 만큼이나 그의 사생활에도 지대한 관심이 쏟아졌다. ‘여왕’이라고까지 불리는 김연아가 누구를 만나는지에 관한 호기심은 상상을 초월할정도로 뜨거웠다.

 

 

 

 

결국 하키선수 김원중과의 열애설이 불거진 이후, 김연아 뿐 아니라 김원중에 대한 관심 역시 대단했다. 그가 과거에 누구를 만났는지부터 시작하여 어떤 집안의 자제인가 하는 것까지 모두 기사화 되었고 여러 가지 루머도 떠돌았다. 이런 관심은 긍적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서 김연아측이 열애설을 인정한 다음에는 더욱 김원중에 대한 대중의 여론이 악화되었다.

 

 

 

이어 결별 사실이 공표되자 오히려 그 결별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김연아는 그만큼  어떤 성역으로 치부되어 있었던 것이다. 김연아가 마주한 숱한 어려움과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올림픽 메달을 따내는 과정, 그리고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 등은 김연아의 이미지를 한층 더 고결하고 깨끗하게 정화시킨 측면이 있었다. 김연아는 수해 동안 호감도가 가장 높은 광고모델이었고 불굴의 정신을 가진 여전사이자 여왕이었다. 

 

 

 

그리고 다시금 김연아와 김원중의 재결합이 화두에 올랐다. “둘의 재결합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며 둘은 커플 악세사리를 다시 착용했다”는 관계자의 인터뷰가 방송을 통해 흘러나왔다. 대중의 여론은 다시 악화되었다. 김연아의 남자에 대한 지탄과 비난은 엄청난 수준으로 치솟아 올랐다.

 

 

 

물론 이는 김연아의 연인이 된 후, 김원중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과정 중에 김원중이 강남에서 파티를 하고 마사지 업소에 출입했다가 군부대 시간에 맞추지 못하는 바람에 징계를 받게 된 경위가 주효했다. 다수의 대중은 자신의 비난에 근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 있어서 김연아가 누군가의 허락을 구하고 그 의견에 따라야 할 의무는 전혀 없다. 김연아는 누구를 만나든지 자신의 의사대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아무리 그가 국민적인 관심을 받는 영웅이라 해도 그의 사생활은 그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지 대중이 간섭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더군다나 김연아는 이미 은퇴를 결정했다. 이제 대중의 관심에서 한 발 물러나 자신의 제 2의 삶을 계획하는 시점인 것이다. 그 삶 속에서 자신의 판단으로 선택을 하고 실수도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김원중을 선택한 김연아의 선택이 실인지 득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김연아 본인이 만족하고 행복하다면 누구도 그 선택에 대해 의견을 낼 권한 같은 것은 없다.

 

 

 

혹여나 김연아의 선택이 김연아에게 해가 될까 걱정하는 마음은 얼핏 김연아에 대한 사랑인 것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김연아에 대한 애착과 집착에 다름 아니다. 진실로 누군가가 잘 되기를 기원한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무슨 선택을 하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지지하고 응원해 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누군가를 응원하는 길이다. 누군가를 만났다고 하여 그 사람의 격이 떨어지거나 하자가 있는 선택을 한 것처럼 매도해서는 안 된다.

 

 

 

 

김연아가 행복한 결말을 맞든, 그렇지 못하든 남이 상관할 문제는 아니다. 김연아가 숱한 어려움을 뚫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듯, 설사 인생에서 실수를 한다고 해도 그 실수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다시금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실수도 의미가 있는 실수일 수 있다. 김연아가 빙판위에서 넘어졌다고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자신의 인생에서 넘어져도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실수와 실패는 인생에서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누군가를 사귀는 일이 실수와 실패였다고 그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관계란 복잡하다. 과거에 잘 풀리지 않은 연애사쯤은 누구나 한두 번쯤 있다. 그러나 그 연애가 모두 실수고 실패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만큼 배우고 성숙했다면 어떤 연애든 그만큼의 의미가 있다.

 

 

 

김연아의 결정은 존중받아 마땅한 결정이다. 김연아를 위한다고 던지는 의견이 오히려 김연아에게 비수가 되어 꽂힌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제해야 할 일이 아닌가. 누군가의 개인사에 지나친 간섭은 안하느니만 못하다. 김연아의 선택은 김연아의 것으로 남겨두자. 그것이 김연아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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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임과 예원의 욕설 논란이 점화된 후, 이태임의 사과로 마무리된 사건이 영상 유출로 다시 논란의 도마위에 올랐다. 예원의 표정과 말투를 중심으로 촬영된 영상속에서 예원은 앉은 채 “추워요?”라고 묻거나 “안돼” “아니, 아니”등의 반말을 건네는 모습이 담겼고, 이에 격분한 이태임의 말에 나중에는 급기야 욕설까지 내뱉고야만다.

 

 

 

이 일로 예원에게 쏟아진 비난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예원이 먼저 이태임의 심기를 건드릴 만큼 예의가 없었다는 의견이 쏟아졌고 마치 이제는 이태임이 예원의 언론플레이의 피해자인 것마냥 묘사되기까지 하는 형국으로 치달았다.

 

 

 

 

가장 큰 문제는 사건이 터지고 나서 있었던 예원측의 거짓된 해명이었다. 애초에 예원측은 반말을 한 적도 없고 이태임에게 수건을 건넸으며, “추우시냐, 괜찮냐”고 물어보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에대고 이태임측은 “괜찮냐는 소리는 들은 적 없으며, 예원의 말투가 그렇게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는 반박을 했다. 이 사건의 진위 여부에 많은 사람들은 누가 잘못했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을 펼쳤다. 그러나 영상을 공개하겠다는 MBC측의 입장이 있고나서 이태임은 예원에게 사과를 건넸고 예원측은 “사과해 줘서 고맙다”며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어찌되었건 시종일관 예원은 이 사건에서 피해자의 입장을 주장했고, 결국 사과를 받으며 그 입장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문제는 영상속 예원은 예원측의 주장과는 달리, 수건을 건넨적도 없으며, 괜찮냐고 물어보지도 않았고 심지어 일어서지도 않은 채, 이태임에게 반말을 건넨다.

 

 

 

그런 까닭에 네티즌들의 실체없는 분노는 예원을 향했다. 예원의 거짓말과 뻔뻔한 해명에 어이없어 하는 반응이 대부분인 것이다.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자숙하고 있는 이태임과는 달리 예원은 여전히 활발한 활동중이기에 이런 분노는 더욱 커졌다.

 

 

 

 

그러나 이일은 애초에 촬영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했다. 일하는 현장에서 갈등은 언제나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비단 연예계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공론화 시킬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촬영장에서 출연진들의 갈등이 잠시 벌어졌다고 하여 그 일을 애초에 ‘욕설 논란’으로 공론화 시키고 언론에 제보한 것이 첫 번 째 문제였다.

 

 

 

우스운 것은, 이 사건에 가해자가 이 사건에 휘말린 당사자 중에는 없다는 것이다. 이태임에게 버릇없이 굴었다는 예원조차 그가 영상 속에서 보여준 말투와 행동을 이태임을 기분 나쁘게 하기 위해 일부러 계산된 행동으로 볼 수는 없다. 이태임 역시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지만 예원의 행동으로 예상치 못한 화가 났을 수 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다.

 

 

 

 

순간의 예상치 못한 실수와 감정 폭발로 인해 벌어진 일을 ‘누가 잘못했느냐’로 초점을 맞춰가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언론은 이태임의 ‘욕설’ 논란으로 기사를 도배했으며, 진위를 캐기 위해 한 언론사는 제주도까지 날아가 주민들 인터뷰까지 따오는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사실 어느 것 하나 진실은 없었다. 이 사건에서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고, 단지 이 사건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감정이 중요했다. 현재 영상이 공개되었지만 그 상황에서 누가 잘못하고 잘했는지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 이 영상이 모든 진실을 담고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둘은 서로 조금씩 잘못했으며 서로의 기분에 상처를 냈다. 예원을 보호하기 위한 소속사의 대처 역시 과한 측면이 있었지만 ‘거짓말 논란’으로 번질 성질의 사건조차 아니었다. 애초에 이 사건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두 사람 다 피해 없이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작은 일에 불과했다. 이 사건을 키운 것은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행태다. 확실한 진위도 알지 못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낸 언론의 행동은 결국 이 작은 사건을 키우는 역할을 했고, 예원의 소속사로 하여금 처음에 보도된 ‘이태임 욕설’에 초점을 맞춰 대응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누군가를 매도하고 비난하며 잘잘못을 가리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 된 것은 일종의 광기다. 예원이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이태임 또한 해서는 안될 일을 한 것도 아니다. 그 둘의 사소한 갈등에 누군가가 꼭 가해자로 지목되고, 비난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둘의 갈등은 둘이 해결해야 하고, 풀지 못한다면 그것도 두사람의 문제일 뿐이다. 제 3자가 나설만한 사건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사소하다.

 

 

 

이 사건에 가해자가 있다면 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과 영상을 유출한 누군가, 단 두 사람에 불과한 것이다. 예원과 이태임 모두 그 무책임함으로 벌어진 상황의 피해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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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몸매는 종종 스타 마케팅의 핵심이 되고는 한다. <스타킹> 단 한 번 출연으로 단숨에 무명을 벗어나 연예계 화제의 인물로 뛰어 올랐다. 2014년 열린 ‘머슬매니아 세계 대회’에서 동양인 최초로 커머셜 모델 부분 5위 안에 들었다는 사실은 유승옥의 유명세에 부채질을 한부분이었다.

 

 

 

과연 동양인 체형을 뛰어넘는 육감적인 몸매와 비율은 세간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방송 활동을 이어나가는 유승옥의 행보는 이전 섹시스타들의 행보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레깅스 시구 한 번으로 주목을 받은 클라라나 드라마의 수영복 장면이나 영화 <황제를 위하여>에서 노출 연기가 화제가 된 이태임은 뛰어난 몸매로 주목을 받았지만 그 이후에도 몸매를 강조한 의상이나 비키니 이상의 화제성을 끌어 모으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한 번의 논란으로 너무도 쉽게 세력이 약해졌다.

 

 

 

섹시스타의 한계는 명확하다. 몸매를 위시한 수많은 기사나 화보가 쏟아지지만 그만큼 그들의 인기도 사상누각이었다. 몸매를 제외하면 다른 화제성은 현격히 떨어졌고 그들이 엔터테이너로서의 가치는 단순히 ‘몸매 감상 용’ 이상이 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몸매만이 강조되는 경우, 수많은 루머가 따라붙고 성적인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태임 역시 이런 현실에 환멸을 느낀다고 밝힌 바 있다.

 

 

 

 

시작은 뛰어난 신체적 조건이었지만 그들은 그 시작을 발판삼아 연예계에서 자신의 독보적인 커리어를 만드는데 실패했다. 몸매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그 몸매에 쏟아진 관심을 뛰어넘어 조금 더 확장된 형태의 매력을 발현시키는 것은 그만큼 쉽지가 않은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유승옥이 소비되는 방식역시 이런 화제성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 <압구정 백야>에서는 뜬금없이 유승옥이 등장해 남자 주인공을 유혹했다. 노래를 부르며 대사를 날리는 유승옥은, 그러나, 어색한 대사처리와 표정연기로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압구정 백야>가 워낙에 논란이 많은 작품이기는 하지만 이 장면 자체는 유승옥이 소비되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몸매로 화제를 모은 유승옥이 단 한 장면을 위해 등장해 드라마를 채우지만 유승옥이 보여주는 세계는 여전히 몸매에 갇혀있다. 단순한 1회성 화젯거리로 사용되지만 그에게 연기력이나 특별한 매력, 혹은 신스틸러로서의 활약은 기대되지 않는다. 단순히 화제의 인물이 드라마에 등장했다는 그 하나의 사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유승옥에게는 뚜렷한 정체성이 없다. 현재는 방송인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의 최종꿈이 배우인지, 모델인지, 피트니스 강사인지 확실치 않다. “언젠가는 빅토리아 시크릿 무대에 서보고 싶다”고 말하지만 방송에 나와 자신의 몸매를 만든 운동법을 열심히 설파하여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천생연분>같은 예능에 출연하는가 하면 <압구정 백야>에 까메오로 등장한다.

 

 

 

이런 중구난방식 출연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할 수 있다면 그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유승옥은 그런 방송활동을 통해 인지도는 쌓을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몸매’로 얻은 이미지를 다시 한 번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그 이상의 예능감도, 뛰어난 연기력도 유승옥은 갖추고 있지 못하다. 단순히 훌륭한 몸매라는 장점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클라라와 이태임이 증명했다. 몸매로 얻은 화제성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 하는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엔터테이너는 대중과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외형적 조건은 연예인에게 있어서 장점임은 확실하지만 외형적 조건으로‘만’ 화제에 오르는 연예인의 매력이 지속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실력을 갖추고 대중과 직면하거나 자신있는 분야로 확실한 자신의 커리어를 만드는 것, 둘 중 하나의 확실한 선택이 몸매로 뜬 연예인에게 있어서는 절실한 필요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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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와 김원중의 열애는 처음부터 숱한 화제를 몰고 왔다. 소치 올림픽이 끝나고 얼마 안되어 파파라치 형식으로 터진 이 열애설은 연예인도 아닌 스포츠 스타에게 심각한 사생활 침해라는 의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으며, 열애설 상대인 김원중에 대한 호기심도 증폭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김연아측이 열애설을 인정한 다음에 터졌다. 김원중에 대한 대중의 여론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김원중의 과거 연애 사실부터 집안, 현재 상황까지 모두 화제가 되며 ‘여왕’의 짝으로서 맞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화두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김원중에 대한 비난 여론은 상당히 거셌고 그가 군인 신분으로서 영외 무단이탈에 안마 업소 출입사실까지 밝혀지지 누리꾼들의 비난은 가중되었다.

 

 

 

군부대 측은 퇴폐 안마업소가 아니라는 해명을 내놓았지만 그 해명은 논란을 진화시킬 수 없었다. 결국 한 매체는 김원중이 강남에서 여성들과 함께 밤새 술파티를 벌인 것 또한 알아냈고 김원중에 대한 비난 수위는 한층 높아졌다.

 

 

 

그리고 결별 사실이 공표되자 오히려 분위기는 축하하는 분위기로 흘렀다. 김연아는 그만큼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스타였고 어떤 성역으로 치부된 것이다. 김연아가 마주한 숱한 어려움과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올림픽 메달을 따내는 과정, 그리고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 등은 김연아의 이미지를 한층 더 고결하고 깨끗하게 정화시킨 측면이 있었다. 올림픽이 끝난지 수개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김연아가 호감도 높은 광고모델이란 점만 보아도 김연아에게 느끼는 대중들의 관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연아라는 스타를 떠나, 김연아 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보다 더 잔인한 열애설은 없었다. 애초에 본인이 공개한 것도 아닌, 파파라치로 공개된 열애설에 부담감이 컸을 터인데 사귀는 내내 대중의 관심을 받은 것은 물론 상대방에 대한 비난 여론까지 감당해야 했다. 김연아에게 직접 쏟아진 악플은 아니었지만 김연아 입장에서 자신의 남자친구가 자신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악플이 달가웠을리 없다.

 

 

 

모든 대중들의 관심속에서 김원중은 절대 악이고 김연아는 절대 선으로 묘사된다. 안마방, 무단이탈, 밤샘 파티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 쏟아지는 동안 김원중이 받아야 하는 압박뿐 아니라 김연아가 받아야 하는 압박 역시 엄청난 무게로 작용하지 않았을리 없다.

 

 

 

거기다가 열애가 끝나고 나서도 김연아에 대한 축하와 함께 김원중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는 것이 김연아가 마음 편히 받아들일 성질의 축하는 아니다. 연인이 헤어지고 만나는 것은 모두 개인적인 일이다. 그 개인적인 일을 대중의 관심의 중심에 섰다는 이유 만으로 함부로 이야기 하는 것은 김연아에게 있어서도 좋은 일이 아니다.

 

 

 

진정으로 김연아를 아끼고 위한다면 김연아의 선택을 존중할 줄도 알아야 한다. 결별에 축하를 받는 김연아의 마음이 과연 편할 것인가. 김원중은 앞으로도 김연아의 전 남자친구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었고 김연아라는 성역을 건드린 죄로 비난을 감내해야 했던 인물이 되었다. 아무리 유명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스타라 해도 열애를 좌지우지 하려는 대중의 관심은 방향이 잘못되어도 한 참 잘못되었다.

 

 

 

김연아가 누구를 만나는 것이 설사 실수라 해도 그 실수를 통해 성장하고 배우는 것도 김연아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범법행위가 아니고서야 개인적인 사생활까지 대중이 침범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김연아는 만남에서 결별까지 상대에게 비난의 목소리를 듣게 한 장본인이 되었다. 그런 위치에 선 김연아가 잘못인가, 아니면 무조건적인 지지로 김연아의 연애에 왈가왈부한 대중이 잘못인가. 김연아의 결별에 대중의 지나친 관심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결별을 축하하는 팬심에 김연아가 기뻐할 지는 미지수지만, 그런 태도가 성숙한 태도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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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에 대한 지지는 설령 그 선수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하더라도 유효하다. 그러나 손연재는 무려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러나 <힐링캠프>를 통해 밝혔듯, 이어진 것은 무조건적인 찬사와 칭찬이 아니라 ‘심판매수’ ‘점수조작’ 같은 논란이었다. 손연재는 이에 대해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대중이 손연재를 보는 시선은 따듯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 국가 대표로서 우리나라 최고의 리듬체조 선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선수에게 쏟아지는 반응치고는 의외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백 퍼센트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일은 그 누구라도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최선을 다한 선수에게 박수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에 비해 손연재에 대한 의견은 언제나 갈리고 만다. 손연재 본인조차 악플 때문에 힘들었던 심경을 고백한 것은 그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음을 반증하는 셈이다.

 

 

 

 

손연재에 대한 대중 의견의 온도차가 생기는 이유는 손연재가 소비되는 방식 때문이었다. 손연재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큰 대회에서 받은 실적과 성적보다는 그의 예쁜 외모와 그로 인한 광고촬영, 예능 출연등의 부수적인 것으로부터 이어졌다. 마치 스포츠 스타가 소비되는 방식보다는 아이돌 가수가 소비되는 방식으로 손연재가 소비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손연재가 리듬체조 선수로서 보여줄 수 있는 영향력이 절대적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손연재로 인해 리듬체조라는 종목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고 인기가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리듬체조 선수라는 타이틀을 이용하여 과장된 인기를 촉발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손연재의 외모와 스타성, 그리고 상품성에 비해서 손연재를 떠받치는 리듬체조 선수로서의 기반이 탄탄하지 못할 때, 대중은 손연재를 스포츠 선수보다는 스타나 예능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손연재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내게 하는 근거가 되고야 마는 것이다.

 

 

 

손연재는 <힐링캠프>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자신의 성적에 대한 해명을 해야 하고 논란에 대한 심경을 토로해야 한다. ‘심판매수’ ‘점수조작’ ‘다이어트’ 같은 주제들을 대놓고 스포츠 선수가 해명해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런 일들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손연재의 이미지에 그런 문제들이 덧씌워 진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일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손연재의 인기는 대중에 의해 발견되고 탄생된 것이라기보다는 꾸준한 기삿거리와 광고등의 노출에 더 큰 빚을 지고 있다. 그런 문제점들을 딛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손연재의 실력이 그런 스타성에 비례하다고 인정받는 일 뿐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예능의 출연 같은 스포츠 스타로서의 외도는 오히려 독이다. <힐링캠프>에서 자신에게 쏟아지는 논란을 해명하고 악플에 대한 심경을 토로하는 일은 연예인들의 행동과 너무나도 유사하다. 지금 손연재가 연예인으로서 소비가 되는 것인지 리듬체조 선수로서 스타성을 인정받은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스포츠 선수로서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소비된 경우라면 손연재에게 악플이 쏟아질 이유가 없다. 그러나 스포츠 선수를 뛰어넘어 연예인의 범주에 들어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스포츠 선수로서의 활동이 주가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서 방송이나 광고에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이나 광고를 위해 스포츠 선수로서의 이미지를 이용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이미지는 단기적으로는 유효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손연재에게 하등 도움이 될 것이 없다.

 

 

 

손연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힐링캠프>에서의 해명이 아니다. 조금 더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고 ‘국가대표’로서의 지위를 인정받는 일이다. 아시안 게임의 금메달은 물론 축하할 일이고 대단한 일이지만, 다른 금메달리스트 보다 훨씬 더 손연재가 주목받고 칭찬 받아야 할 일을 한 것은 아니다. 다른 금메달리스트에게 쏟아지는 관심보다 이상하리만큼 많은 관심을 손연재가 받는 것은 대중의 의아함을 자아낼 뿐이다. 손연재가 진정한 지지기반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해명이 아니라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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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에게 있어서 이미지는 중요하다. 특히나 여성연예인라면 이미지에 흠집이 나면 활동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여자 연예인들의 탈선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 우리나라가 연예인들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잘못을 하고도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는 모습에는 실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가수 2ne1의 멤버 박봄은 무려 검찰에서 마약 복용혐의를 봐주기 수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구속수사가 원칙인 마약 사건을 두고 기소유예가 이루어지고 마약류를 젤리에 숨겨서 들여오는 정황이 밝혀졌음에도 가벼운 처벌도 받지 않는등, 4년 전 일이라고는 하지만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정황들이 벌어졌다. 더군다나 이 일은 무려 4년동안이나 묻혀있었다. 얼핏 쉽게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조용한 사건이다.

 

 

허나 그에대한 해명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박봄은 사건이 터진이후에도 편집 없이 예능 <룸메이트>에 등장했으며 일본으로 출국해 스케줄을 모두 소하하고 YG 콘서트에 등장하며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쯤되면 개인 차원이 아니라 소속사차원의 문제로 번진다. 소속가수에 대한 책임감이나 도덕성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오직 해명에만 급급하고 그 해명이 통하지 않게 된 지금역시 아무런 반응없이 활동을 이어나가는 행태를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소속사 차원에서 소속 연예인의 스캔들을 덮기 위해 움직였고, 그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는 행태에 많은 대중들은 더욱 실망감을 느꼈다.

 

 

또다른 사건도 있었다. 톱스타 S양의 탈세 사건이 기사화 된 것이다. 다른 연예인들의 실명이 거론되는 것과는 달리 유독 S양의 실명은 조심스럽게 다뤄졌다. 이름은 밝혀지지 않은 채, 송씨라는 최소한의 정보만이 주어졌다. 허나 실명이 밝혀졌다고 해서 그의 정체마저 밝혀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활동하고 132억을 벌 정도의 톱스타 송씨는 그다지 많지 않은 까닭에 네티즌들은 그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결국 그가 송혜교라는 사실은 누가 봐도 불을 보듯 뻔했고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송혜교라는 실명을 사용한 기사도 떴다.

 

 

그러나 문제는 이후의 대응 방식이다. 탈세라는 심각한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에 감안하면 파급력이 너무나도 약하다. 실명이 어렵게 밝혀진 것도 그렇지만, 이렇게 큰 사건임에도 불구 검색어 순위에서 조차 그의 이름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탈세보다 화보나 친분이 있는 다른 드라마 촬영 현장 방문 기사가 먼저 쏟아진다. 결국 탈세라는 엄청난 사태를 일으키고도 언론에 이름조차 제대로 오르내리지 않는 모습은 언론 통제로까지 비춰졌다.

 

 

 

심지어 송혜교는 성실 납세자로 3년간 세무조사를 피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마저 드러났다. 3년동안 계획적인 탈세를 감행했다는 사실은 송혜교의 이미지에 치명타를 남겼다. 그동안 뛰어난 외모와 더불어 성실하고 뒤에서 선행하는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톱스타이기에 송혜교의 이런 행보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정당한 해명과 사과, 그리고 재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면 비난은 있을지언정 그가 대중으로부터 이미지 회복을 꾀할 여지가 있었을 텐데 언론마저 통제하며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 급급한 모습에 그의 이미지는 오히려 더 암흑속에 갇히고 말았다. 뭔가 꺼림칙하고 뒤가 구린 구석이 있는 느낌마저 남기며 그의 탈세 혐의역시, 논란을 최소화 시키는 억제 속에서 암흑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다. 톱스타 H양의 동생의 괴롭힘으로 병사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기사가 화제는커녕 기사화마저 되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물론 톱스타 H양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안은 아니지만 톱스타 가족의 사건이라는 점 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될만한 사건이다. 더군다나 군대 내의 잇따른 괴롭힘으로 피해를 입은 병사들의 사연이 화제가 되는 지금, 화제가 되기 충분한 H양의 가족 이야기가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톱스타 H양 측에서 이런 기사가 달가울리는 없지만 이미지를 위해서 진실을 막고 숨기는 행위는 결코 바람직하게 봐줄 수 없다. 아무리 H양의 잘못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이미지를 위해 사건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이 사건은 급기야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재조명이 될 예정이다. 시사 프로그램까지 손을 댈 정도의 큰 사건이 이렇게까지 조용한 것은 분명 뭔가 미심쩍은 찝찝함을 남긴다. 가족의 일은 연예인과 상관이 없다고는 하나, 사건을 은폐 축소하는데 연예인이 앞장을 섰다는 사실은 이미지 관리를 위해 한 사람의 목숨마저 쉽게 다루어지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결코 긍정적인 모습이 아니다.

 

 

 

여배우들의 이미지 관리가 아무리 중요해도 잘못된 방식으로 이미지 관리를 하는 행태는 오히려 그들에게 마이너스다. 명백한 죄를 저질렀으면 그에 따른 대중들의 질책과 충고도 받아들이는 것이 연예인의 숙명이다. 항상 고결하고 도덕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인간이지만 잘못을 했을 때, 그 사실을 인정하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느냐, 아니면 순간의 회피만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자신의 이미지 보다는 자신이나 가족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 훨씬 더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여배우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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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종편 프로그램 <뜨거운 네모>에 함익병 원장과 황상민 교수가 합류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경규라는 걸출한 예능인이 진두지휘하는 예능인 것만 봐도 대중들의 호기심과 시선을 잡으려는 노력이 보인다. 함익병은 최근 엄청난 논란에 시달렸다. 황상민 역시 과거 ‘김연아’ 발언으로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 인물이다. 이들이 대중들의 호기심은 자극할지언정 과연 프로그램의 호응도까지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인가.

 

 

 

 

 

소신은 좋다. 누군가가 특정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는 것을 비난 하는 것도 성숙하지 못한 태도다. 누구나 의견은 다를 수 있고 자신의 실리와 신념을 따라 살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역사적 뿌리에 근거한 정당이라 하더라도 이미 대한민국에 존재하고 있는 정당을 무조건 배척하고 나라의 역적쯤으로 모는 행위도 결코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아니다. 잘못이 있다면 바로잡아야겠지만 개인의 정치적 성향은 누군가가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되는 고유의 영역이다.

 

 

 

그러나 소신발언과 망언은 다르다. 일본의 ‘위안부는 정당한 행위였고 자발적인 행위였다’는 발언이 결코 용납될 수 없고 ‘인종차별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는 발언이 결코 소신 발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함익병의 발언은 결코 소신발언이라고 할 수 없다. ‘독재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라는 발언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독재는 결코 용납받을 수 없는 행위다. 세상에 좋은 독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역시 수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는 체제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대안으로 독재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제아무리 독재자가 뛰어나고 훌륭해도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권력이 배분되는 곳에는 언제나 부패가 있고 타락이 있다.

 

 

 

 

故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을 인정한다고 치더라도 그가 저지른 수많은 잘못들마저 모두 덮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가 경제성장을 이룬 배경에는 부지런한 한국민의 근성과 시기 적절한 강대국의 원조도 뒤따랐다. 물론 그의 리더십도 한 몫 했겠지만 사회적인 분위기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의 리더십을 백번 인정해도 그가 경제성장을 독재로 이끌면서 나타난 수많은 문제점들에 대한 이야기를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그가 이끌어 낸 성과를 높게 사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그것마저 무조건 폄하하는 행위역시 바람직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대가로 그는 부당하게 많은 부를 축적했고 그 독재의 뿌리는 바로 몇 십년 전만해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그 뿌리를 계승한 인물들은 호의호식을 하며 삶을 누린다. 독재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고 또 고통을 받았다.

 

 

성공한 독재란 역사상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적인 성장을 이루면 독재도 상관없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결코 용납받을 수 없다. 독재는 옹호해서도, 옹호 받을 수도 없는 타락한 행위이고 그 불합리한 독재를 척결하기 위해 수많은 민주투사들이 생명을 걸고 싸웠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국민의 피로 이루어진 소중한 가치다. 타락하지 않은 독재가 없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고 민주주의가 훨씬 더 나은 형태의 모델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민주주의보다 더 나은 모델이 있다면 그 모델로 바꿀 수 있는 융통성은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모델에 대한 대안이 독재가 될 수는 없다. 인간은 누구나 완벽할 수 없다. 불완전한 한 사람에 의해 이끌어지는 국가나 체제가 어찌 완벽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좋은 독재'의 예가 박정히 전 대통령이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경제성장이라는 가치로 모든 것을 다 덮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독재는 나쁘지만 그의 공은 있었다'고 말하는 것과 '좋은 독재가 있다. 예를 들면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뉘앙스로 말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함익병은 선을 넘었다. 그것이 소신발언이라면 ‘성차별이 뭐가 나쁘냐. 지금까지 남자가 열심히 일해서 잘 살아오지 않았냐’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뭐가 나쁘냐. 사회의 열성분자들은 없어지는 것이 낫다.’같은 발언도 소신발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발언은 소신발언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그의 말의 모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여자는 군 복무를 하지 않기 때문에 권리도 4분의 3만 행사해야 한다.”는 말에서 그의 발언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기 시작한다. 물론 의무를 다 할 때 권리 역시 주어진다는 측면에서 일리는 있다. 그러나 이 발언은 한국의 특수한 상황과 배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언에 불과하다. 여성과 남성이 군복무를 함께 해야한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군복무를 하지 않았다고 권리를 빼앗아야 한다고 말하는 주장은 인정받을 수 없다.

 

 

 

백번 양보해 말 자체는 개인의 생각이라고 이해해 줄 수 있다 쳐도 그는 전반적인 인터뷰 내용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문재인 후보를 뽑겠다는 아들의 투표권을 제지시켰다는 발언에서 그런 추측은 어렵지 않게 가능하다. 이것도 개인의 권리를 부모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빼앗을 수 있는가 싶기는 하지만 가정사로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라면 여성은 권리를 4분의 3만 행사해야 한다면서도 여성 후보에게 투표권을 행사했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표도 군 복무를 하지 않았으므로 투표 득표율의 4분의 3만 계산해야 한다고는 왜 말하지 않는 것일까. 그건 '박근혜 대통령'이라면 예외로 적용되는 생각인 것일까. 대통령의 권리를  4분의 3만 가지지 않고 모드 가진 여성 후보를 지지하고 문재인 후보를 뽑는 사람의 자유를 억압한 그의 태도는 결코 그의 발언과 일치하지 않는다. 인물과 상황에 따라 변하는 그의 논리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나아가 그의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은 포함 해 모든 여성들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식적이지 않고 불편하기까지한 발언을 두고 그는 한 마디 사과도 없었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나 그 발언을 공공에 대고 할 때는 책임이 생긴다. 사회적인 인식과 공공의 이익에 반대되는 생각을 함부로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지켜보는 대중은 괴롭다.

 

 

 

이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한다는 황상민 교수 역시, 모순적이기로 따지자면 함익병 못지 않은 인물이다. 황상민 교수는 연세대 교수로 고려대에 진학한 김연아를 두고 도를 넘은 발언을 했다. “김연아의 교생실습은 쇼고 자격증 따려고 교생 실습한다.”는 식으로 김연아를 몰아세운 것이다. 한 번도 교생 실습 기간에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교생 실습을 수행한 김연아 측의 고소를 고려하게 만들 정도로 심한 발언이었다.

 

 

 번의 발언 실수는 용납될 수 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깨끗하게 사과하는 행위는 오히려 멋진 모습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일에 계속적인 돌을 던질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후의 황상민 교수의 태도였다. 황상민 교수는 정작 연세대 대학교의 체육 특기생들은 심지어 농구 특기생이 법학과에 재학한 일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다물었다. 나중에는 방송에서 “김연아의 고소도 쇼다. 나에게 창피를 주고 인격살인을 하려는 행위. 김연아는 나이가 들면 불행해질 확률이 높다.”고 말하거나 “학생이 자기 기분 나쁘게 했다고 교수를 고소하다니 요즘 대학 교육이 정말 엉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하는 트위터로 다시 논란에 올랐다. 다른사람들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심리학 박사의 발언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권위적이고 유치한 발언들의 향연이었다. 설사 김연아의 교생실습이 쇼였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고 자신의 인격은 보존받겠다는 태도는 마치 어린아이의 칭얼거림같은 것이었다.

 

 

 

 

끝까지 ‘미안하다’는 이야기는 없었으나 김연아측의 고소 취하로 사건은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심리학과 교수라는 직함을 달고도 자신의 심리조차 제대로 콘트롤 하지 못하며 남에 대한 비방의 강도만 높인 사람의 발언을 시청자들이 달갑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과 뜻이 맞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상식적인 사람들이라면 결코 받아들이기 힘든 발언을 일삼은 그들이 버젓이 방송에 등장하고 심지어 프로그램 안에서 최신 정보, 유행, 경향 등 대한민국의 가장 핫한 이슈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대중이 관심있어 하는 최신 트렌드를 논하는 프로에 대중의 마음의 결을 전혀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출연한다는 것은 인정하기 힘들다.

 

 

 

 

제작진이 원하는 함익병 원장과 황상민 교수의 날카롭고 예리한 분석이 과연 대중에게도 그렇게 느껴질지 참으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대중이 원하는 트렌드를 분석해야 할 사람들이 정작 대중들의 전반적인 생각과 척을 지고 있는 아이러니. 그 아이러니를 극복하지 못하면 이 프로그램의 앞날은 결코 밝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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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의 가족사가 알려지기 전까지 장윤정에 대한 이미지는 ‘행사의 여왕’ ‘걸어다니는 중소기업’등 그가 벌어들이는 수익과 그가 누리는 인기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러나 장윤정이 sbs 토크쇼 <힐링캠프>에 출연을 결정지었을 무렵 터져나온 그의 가족사는 대중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장윤정에 대한 동정론은 힘을 얻었다.

 

 

그러나 이후 다소 이해하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장윤정의 재산을 탕진했다고 알려진 장윤정의 엄마와 동생이 ‘장윤정의 주장은 거짓’이라며 장윤정을 성토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던 장윤정의 몰락에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된 만큼 장윤정 가족의 주장에 대한 관심역시 뜨거웠다. 한 종편 케이블 에서는 그들을 아예 스튜디오로 불러 입장을 낱낱이 밝히는 해프닝이 일었다.

 

그러나 대중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애초에 장윤정은 ‘가족사’라면서 말을 꺼렸고 수입을 탕진한 부분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설명을 했지만 가족들은 수입 내역을 낱낱이 공개하고 장윤정을 성토하는 식의 인터뷰를 진행해 논란을 빚은 것이다.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한 달에 1500만원 가량의 생활비를 댄 것은 장윤정이었고 어쨌든 장윤정의 힘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린 그들에게 대중의 시선이 고울 수는 없었다.

 

 

 

 

사실 그들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그들의 싸움이 확대되며 달궈진 취재경쟁이었다. 이미 지나치게 까발려진 그들의 가정사는 점차 점입가경이 되기 시작했다. 장윤정의 안티블로그가 도마 위에 올랐고 장윤정 이모가 장윤정의 엄마를 비난한 어조의 글 역시 확대 재생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의 모습은 점점 추악하게 변해갔다. 도경완 장윤정의 결혼에 ‘결혼을 약속한 다른 남자 있었다’며 재를 뿌리거나 ‘패륜녀’로 장윤정을 몰아가는 장윤정 가족의 모습은 보기 불편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장윤정의 임신 소식이 들린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장윤정 모친의 고소 소식과 함께 협박 편지까지 등장했다. 장윤정 엄마는 ‘장윤정이 자신을 중국으로 보내 죽이려 했고 장윤정 경호원의 막말과 폭행까지 당했다.’며 피해자 신분으로 경찰에 출두했다. 딸을 향한 분노를 그대로 드러낸 협박 편지는 중간 중간 욕설마저 섞여 더욱 자극적이었다. 뿐이 아니었다. 과거 장윤정의 동생인 장경영이 적은 ‘누나가 영악하다’는 내용의 SNS 글 마저 화제가 되는 등, 끊임없는 잡음은 계속 이어졌다.

 

 

이런 내용이 상당한 논란거리임에는 부인할 수 없다. 더군다나 그 내용이 막장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자극적이라면 그 화제성은 더하다. 대중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누구를 욕하건 간에 어느 정도의 쾌감을 확보한다. 마음 놓고 비난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묘하게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사실 개인의 일일 뿐이다. 장윤정측 역시 법정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으나, 장윤정이 그동안 그들이 탕진한 재산을 돌려달라는 소송이라도 하지 않는 한, 법적으로는 소규모의 민사사건에 불과하다. 모든 것을 다 제쳐놓고라도 이런 모든 내용은 누군가가 알 필요 없는 개인의 가정사일 뿐이다. 그런 가정사와 치부가 모두 공개되고 대중에게 알려져야 할 이유는 없다.

 

 

장윤정의 가족들은 이번 사건을 통해서 높은 관심을 받았고 거친 비난에 직면했다. 그들이 점점 더 악독한 모습으로 돌변할수록 대중의 관심은 높아만 간다. 그런 관심의 촉발은 그 내용이 그들을 향한 비난일지라도 그들의 노림수 중 하나에 불과하다. 끊임없는 잡음으로 장윤정의 이미지는 추락하고 마음 고생은 더욱 심해진다.

 

 

한 개인에 대한 언론의 지나친 관심은 이토록 모질고 잔인하다. 물론 큰 가십거리지만 이제 그들의 기사를 읽는 것조차 점차 불편해지고 있다. 한 가족의 ‘막장 스토리’를 여과없이 시청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제 더 이상 알아야 할 내용도 없다. 같은 주장과 이야기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 숱한 얘기들이 점점 더 과장되고 부풀려져 흘러나오고 있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법정에서 풀면 된다. 이제 그 이야기에 눈을 감고, 귀를 막아야 할 때다. 아무리 그들에게는 심각한 이야기일지라도 대중에게는 한낱 소비거리일 뿐이다. 한 가정의 개인적인 다툼이 대중의 엔터테인먼트로 변질되는 것은 한 두 번으로 족하다.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있는 소수만을 남겨두고 언론이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황당한 전개를 이제 그만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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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여왕’ 김연아가 크로아티아의 ‘골드 스핀 오브 자그레브’대회에서 부상 이후, 첫 복귀 무대를 치렀다. 쇼트 프로그램인 ‘send in the clown'을 처음으로 선보이는 자리인 만큼 대중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그 관심을 반영하듯, 김연아 경기는 전국 시청률 13%를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김연아 역시 부상의 우려 따위는 말끔히 씻어버린 채, 시즌 최고점인 73.73점으로 성공적인 복귀 신고식을 마쳤다.

 

 

그러나 문제는 mbc의 중계 행태에 있었다. mbc는 김연아의 경기를 중계 하면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행태로 시청자들을 실망시켰다. 김연아의 쇼트 프로그램인 ‘send in the clown’은 여배우가 지난날을 회상하며 그리움과 애절함으로 부르는 뮤지컬 삽입곡으로 알려져 있는데 해설자들은 ‘아버지를 그리면서 만든 곡’이라며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인 ‘아디오스 노니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선수에 대한 사전 조사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었다.

 

 

 

 

이 정도는 실수로 넘어간다고 해도 중간에 국립발레단 수석 발레 무용수가 등장하여 피겨의 한 동작을 선보이며 ‘땅 위에서도 힘든 동작’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코미디에 가까웠다. 발레랑 피겨는 엄연히 다른 종목이다. 발레 동작에서 파생된 동작이 피겨에도 분명히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종목을 동일 선상에서 놓고 비교를 하는 것은 스포츠 중계가 아닌 예능 프로그램에나 나올법한 장면이었다. 스포츠가 물론 무조건 엄숙하고 진중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다른 종목과 집적적인 비교를 하는 뉘앙스를 줄 필요는 없었다. 그런 비교 없이도 충분히 피겨선수들의 몸짓은 아름답다. 유치한 비교는 몰입도를 떨어뜨렸다.

 

 

또한 해설자들은 안도미키등 다른 참가자들의 경기에서 끊임없이 김연아를 언급하며 김연아와의 차이점들을 비교하는등의 무례를 범했다. 자국선수를 아끼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선수들을 자국선수와 비교해서 깎아내리는 것 같은 행태는 공정한 심사가 우선되어야 하는 스포츠에대한 중계의 기본중의 기본을 망각한 부분이었다. 다른 선수들에 대한 예의도 아닐뿐더러 김연아선수에 대한 존중도 아니다. 김연아가 대단하다면 김연아의 경기 내용에 대한 칭찬으로 충분하다. 다른 선수들이 등장하는 와중에 김연아를 계속 언급하면서 ‘(김연아를 빨리 봐야 하는데) 점수가 늦게 나온다’는 식의 이야기까지 꺼내는 방송사의 중계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속도가 느려서 표현력이 부족하다’는 식의 상식이하의 발언마저 수차례 등장했다. 피겨스케이팅은 속도를 겨루는 대회가 아니다. 스케이팅 스킬과 스핀등 여러 요소가 결합되어 하나의 작품이 되는 피겨스케이팅에서 속도에 대한 문제를 거듭 강조한 것은 그 종목의 기본조차 이해하지 못한 중계 태도다. 스피드가 아무리 뛰어나도 다른 부분이 취약하면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김연아 선수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뛰어난 스피드를 지녔고 그 때문에 연기가 훨씬 역동적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김연아 선수는 스피드 뿐 아닌 다른 요소까지 하나 하나 완벽하게 소화해 내기 때문에 스피드라는 부분마저 장점으로 소화 시킬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스피드가 느려서 표현력이 없다는 식의 발언은 수준이하의 발언일 뿐이다. 또한 김연아의 기준에 다른 선수들을 맞춰서는 안 된다. 김연아는 피겨 역사상 최초라고 할 정도로 뛰어난 선수다. 대한 민국은 물론, 피겨스케이팅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그런 선수를 배출하지 못했다. 한국의 열악한 피겨스케이팅 환경에서는 기적에 가까운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천재’라고 까지 불리는 선수와 다른 선수들을 비교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더군다나 모두 고된 훈련을 통해 그 자리에 섰을 선수들에게 다른 선수들은 김연아를 보기위해 빨리 지나가야 하는 하나의 과정처럼 묘사하는 것은 엄청난 실수요, 창피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경기를 마친 김연아와의 인터뷰마저 실망스러웠다. 김연아를 인터뷰하는 기자는 끊임없이 실수에 대해 물고 늘어지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설명해 달라’며 수차례 김연아에게 실수를 상기시켰다. 이 뿐이 아니다. 다소 논란이 있었던 의상에 대한 언급마저 꺼내며 ‘의상에 대한 관심이 컸다. 어떻게 선택한 것이냐, 콘셉트가 무엇이냐?’ 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다소 불편한 질문을 이어나갔다. 김연아의 평정심을 흔들려는 방해공작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런던 올림픽에서 박태환 선수의 미심쩍은 실격 처리 해프닝 후, ‘왜 실격 처리가 된 것 같냐?’며 선수의 마음을 헤집던 그 인터뷰가 떠 오를 지경이었다.

 

 

 

 

 

이런 중계 내용에 김연아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김연아의 성공적인 복귀식에 먹칠을 하는 수준 낮은 중계였던 것이다. 김연아 경기에 대한 중계는 전 국민의 관심사지만 단순히 중계권을 따오는 것이 목표일 수는 없다. 그만큼 충분한 준비와 사전조사, 그리고 다른 선수들에 대한 존중까지 겸비했을 때 만이 완벽한 중계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숙한 태도와 스포츠에 대한 존중이 없이 무조건 화제성만을 위시한 mbc의 보도는 많은 사람에게 실망을 남겼다. 이어질 프리스케이팅 에서는 이런 재앙에 가까운 실수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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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 알고 지냈던 지인이 커밍아웃을 했다. 그는 특별히 남자답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여성스럽지도 않았기에 그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는 여자친구도 사귀었고 심지어 크리스천이었다. 의심받지 않을 모든 요건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그는 그런 삶을 살며 힘들었음을 담담히 이야기했다. 겉으로는 평온을 가장했지만 내내 가슴은 왠지 모르게 두근거렸다. 알아서는 안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느낌이었다.

 

 

얼마간의 충격의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에게 미안해졌다. 나조차 그런 사람은 내 주변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동성애자들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구나. 그냥 내 옆의 누군가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나도 그들을 오해하고 있었다.

 

 

김조광수의 동성결혼이 치러졌다. 그리고 역시나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했다. 분명 일반인이 보기에는 뭔가 이상했다. 남자와 여자의 결합에 익숙한 결혼식에 남자와 남자가 등장했다. 남자이면서도 서로 여자 웨딩드레스를 입은 웨딩화보도 공개했다. 남자끼리의 스킨십과 키스도 아름답기보다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결국 결혼식장에는 오물을 투척하는 종교인까지 등장했다. 그런 행동에는 지나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결혼식을 지켜 본 사람들이 갖는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했다. 어쩌면 오물을 투척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그만큼의 불편함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그들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인정하겠지만 그런 모습을 굳이 볼 필요까지는 없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굳이 나서서 그들의 이미지를 좋지 않게 만든다는 의견도 많았다. 오히려 동성애에 대한 편견만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동성애를 인정하면 근친혼이나 동물과의 성교 역시 인정해야 하냐는 다소 과격한 목소리마저 들린다. 분명, 그만큼 이성애자들에게 있어서 동성애자의 결혼식은 낯설었다. 19살이라는 그들의 나이차 역시 부정적인 이미지에 일조했다. 결국 그들은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하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그들을 외면하지 못했다. 포털사이트에서 그들의 기사는 조회 수와 댓글 수 상위를 기록했고 엄청난 관심을 불러 모았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부정적인 반응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결혼식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인 만큼 화제성과 의외성이 있었고 대중에게도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물론 익숙치않은 광경에 뭔가 이질감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의 모습을 비난하는 것에는 동조할 수 없다. 차라리 그들이 ‘싫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솔직하다. 동성애를 인정한다면서도 동성애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인정한다는 것은 그들의 존재 자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당연한 것이라면 동성애를 이해하지 못해도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지는 말아야 한다. 결국 인정한다는 말은 거짓이다. 인정하지 못하니 불편하고 불편하니 좋지 않은 소리가 나온다. 물론 인정하더라도 그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하는 것은 익숙치 않아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불편하다는 것은 결국 어느새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에 그들을 분류하기 때문이다.

 

 

이성애는 정상이고 동성애는 비정상이라는 기준은 누가 정한 걸까. 동성애는 과거에도 존재했고 현재에도 존재하며 아마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존재는 사라진 적이 없지만 밖으로 나왔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그러나 여기에도 모순이 있다. 사람들은 동성애의 어두운 이미지를 싫어하면서도 동성애가 밝은 곳으로 나왔을 때 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여성과 백인의 결혼이 불법인 시절도 있었다. 흑인은 투표를 할 수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기득권층은 언제나 약자들을 괴롭혔다. 그리고 그것을 잘못이라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언제나 ‘비정상’과 ‘정상’의 기준을 나누는 것은 인간의 편협한 시각이다.

 

 

근친이나 동물 성교등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역사와 문화의 범주에서 보면 일본이나 일부 부족국가에서 근친혼이 성행한 사례도 있다. 그런 사례를 도덕적으로 매도하고 반인륜적이라 평가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은 문화와 환경에 따라 그렇게 변화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맥락과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근친이라는 관계는 당사자들의 선택의 문제다. 그들은 굳이 친족이 아니라도 다른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다. 그러나 동성애자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그 누가 불편하고 험난한 동성애를 선택하겠는가. 동물과의 성교는 서로간의 합의가 전제될 수 없다는 점에서 동성애와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 아동 성폭력과 같은 범죄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 합의가 있어도 아동의 판단능력이 문제가 된다. 다른 문제들을 놓고 동성애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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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결혼식을 본 우리 아이에게 무엇이라 설명해 줘야 하냐”며 비교육적이라는 의견 역시 황당하다. 오히려 교육적일 수 있다. 아이에게 “세상에는 여러 사람이 있다”고 설명해 주면 된다. “남자와 남자가 좋아하는 사람, 여자와 여자가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여자와 남자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은 이미 그 관계에 대한 선악의 판단을 내렸다는 뜻이다. 결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닌 문제에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바로 그 아이가 동성애자일 수 있다.

 

 

인정한다고 동성애자들이 늘어나지 않는다. 억압받고 핍박받는다고 동성애자들이 말살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성적 취향은 강요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이성애자들이 동성에 끌리지 않는 것처럼, 그들도 이성에 끌리지 않을 뿐이다. 그건 자연스러운 감정의 문제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를 인정함으로써 그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은 성적 기호를 선택의 문제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일어난다. 만약 그 말이 맞다면 그들 역시 동성애를 선택할 수 있는 셈이 된다. 물론 환경과 강요에 의해 취향이 결정되기도 하고 선택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인정은 강요가 아니다. 그들의 모습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오히려 폭압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을 억압하고 음지에 내몰면서 그들이 일반적인 남녀간의 결혼을 했을 때 생기는 그들의 가족등의 제 2, 제 3의 피해자들을 생각해 봐야 한다. 불편하니 조용히 있으라는 식의 태도는 절대 건강한 사고방식이 아니다.

 

 

정말 동성애가 당연시 되고 인정되는 사회라면 그들이 결혼을 하든, 손을 잡고 다니든 기사화 될 일도 없고 이상할 일도 없다. 그들이 포털사이트 메인에 뜨지 않기를 바란다면 역설적으로 그들을 인정함으로써 그들의 존재 자체를 화제성 있게 만들지 않으면 된다. 그럼 그들을 사이트 메인 화면에서 볼일도 없다.

 

 

동성애자는 존재한다. 그들도 누군가의 아이들일 것이고 누군가의 친구일 것이며 사회의 한 구성원일 것이다. 만약 절친한 친구가 동성애자라면, 우리 아이가 동성애자라면 어떡할 것인가. 그 때도 그 친구와 아이에게 더럽다고 욕하고 내 눈 앞에서 당장 사라지라고 말할 것인가. 아무에게도 피해 주지 않은 개인의 취향 문제로 한 인간에게 그렇게 상처 줄 권리가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그들이 당신에게 고백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 결코 동성애자들은 특별하지 않다. 그들은 어쩌면 아주 슬픈 눈으로 당신 옆에서 동성애에 대하여 불편해 하고 폭언을 일삼는 당신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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