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그리고 영화/MOVIE STORY'에 해당되는 글 32건

  1. 2017.04.22 <미녀와 야수>의 엠마왓슨이 <라라랜드>를 했다면 오스카를 탈 수 있었을까? (1)
  2. 2017.04.14 ‘여혐’하는 남자들뿐 아니라 ‘왕자는 필요없다’는 여자들도 봐야 하는 영화, <히든 피겨스>
  3. 2017.02.20 박해진, 오연서..,영화 <치인트> 만찢남 만찢녀 캐스팅, 흥행 성공 할 수 있을까?
  4. 2017.02.14 러브라인 없고 능력은 출중한 엘사와 모아나가 있기까지... 디즈니 공주들의 진화 (4)
  5. 2016.12.18 <아가씨>가 아니라 <밀정>... 한국 ‘영진위’가 보여주는 고질적인 병폐
  6. 2016.10.12 자신을 파괴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사람들에 대하여-영화 <죽여주는 여자> 리뷰
  7. 2016.10.06 <무한도전>보다 실망스러운 <아수라>, 캐릭터의 개연성이 아수라장
  8. 2016.09.21 <부산행><터널><밀정>영화가 다루는 ‘사회 문제’, 시의성이 ‘흥행코드’다.
  9. 2016.08.07 <덕혜옹주> 손예진의 인생연기 뒤에 감춰진 한국 왕실의 비겁함
  10. 2016.01.19 흑인 없는 시상식, 아카데미는 정말 ‘인종차별’을 했을까 (1)
  11. 2015.08.30 <암살> <베테랑> 쌍끌이 천만의 힘, '절대 권력'의 몰락은 관객들을 춤추게 했다.
  12. 2015.04.20 빚져서 지원한 <어벤져스> 한국 촬영...2조 경제 효과에 대한 기대 보다 사대주의에 가깝다 (1)
  13. 2014.08.27 타짜2의 최승현과 신세경, 과연 조승우 김혜수를 뛰어넘을까
  14. 2014.08.08 명량, 아쉬운 영화지만 진중권의 독설은 더 아쉽다

영화 <미녀와 야수>는 원작을 재현하는데 주력한 만큼,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거나 이야기의 방향이 틀어지는 부분은 없다. 새로운 노래 세 곡과 왕자의 어린시절, 벨의 어머니 이야기 등이 추가 되었지만 큰 줄기는 옛날 애니메이션의 구성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동화적인 판타지를 추구하는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상당히 전형적인 이야기 속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해석의 여지도 크다고는 할 수 없다. 선악구도가 뚜렷하고, 이야기의 흐름이 예상 가능한 범주에서 흐르는 동안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해석 역시 전형적인 공식을 따른다. 악역은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악해야 하고 주인공은 다소 괴팍하더라도 착하고 따듯하며 정의로운 심성을 가져야 하는 동화의 공식은 그대로 적용된다.

 

 

 

 


 
착하고 똑똑한 주인공 벨(엠마 왓슨 분)의 연기 역시 해석의 여지가 크지 않다. 여기에 엠마왓슨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외모는 '미녀' 타이틀에 다른 캐스팅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들어맞는다. 그러나 엠마왓슨은 이 전형적인 연기조차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다. 이를테면 성에 처음 들어가서 야수의 모습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그렇다. 야수의 무서운 얼굴을 확인하고 놀라야 하는 장면임에도 엠마왓슨은 지나치게 감정을 자제한다. 야수에게 느끼는 두려움이 표현되어야 하는 장면에서 엠마왓슨은 그 감정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에서 첫 식사를 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마법같이 펼쳐지는 디너파티를 놀랍고 신기한 표정으로 즐겨야 하는 장면임에도 엠마왓슨의 표정은 입가에 웃음만 띈 채, 무미건조하다.

 

 

 



마지막 야수가 악역인 게스톤(루크 에반스)이 쏜 총을 맞고 쓰러져 죽어가는 장면에서 엠마왓슨의 이런 부족한 감정 표현이 절정에 달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표정을 연기해야 하는 여배우의 얼굴에서 안타깝고 슬픔에 가득 찬 느낌을 받기란 불가능하다. 눈물은 흘러내리지만 입가에는 묘한 웃음기를 띄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엠마왓슨의 감정전달은 '전형적인' 영화에서 조차 실패하고 만다. 그동안 미국 현지에서 조차 연기력 논란이 있었던 엠마왓슨이기에 여전히 성장이 요원한 연기력은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엠마왓슨은 <미녀와 야수> 이전에 영화 <라라랜드>에 출연 제안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스케줄상 출연을 고사한 여주인공 역할은 엠마스톤에게 돌아갔고 엠마스톤은 <라라랜드>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오스카 수상의 영광을 얻었다. <라라랜드>를 거절했던 엠마왓슨으로서는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쇼비지니스계에서 캐스팅의 뒤얽힘은 흔한 일이다. <미녀와 야수>의 벨 역 조차 제작단계에서는 엠마왓슨이 아닌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염두 해 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렇기에 이미 제작된 영화의 캐스팅에 대하여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엠마스톤이 오스카 트로피를 가져간 만큼 한 번쯤은 궁금해질 수 있다. 과연 엠마왓슨의 <라라랜드>는 어땠을까.

 

 

 


 
<라라랜드>는 확실히 엠마스톤이 장악하는 영화는 아니다. 독특한 스타일과 유려한 음악이 어우러져 특유의 고유한 분위기를 만드는 영화다. 영화가 특별한 까닭은 연기자들의 연기보다는 심혈을 기울인 듯한 새로운 연출에 더 큰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엠마스톤은 그 특유의 분위기에 녹아들며 이야기를 집중하게 만드는데 무리없는 연기력을 선보인다. 엄청나게 눈에 띄는 연기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작품 안에서 그 작품의 결을 살리며, 혼자 튀기 보다는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이전 베니스 영화제의 트로피를 거머쥔 것도 우연만은 아니다.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영화에서 그는 충분히 제 몫을 해냈다. 풍부한 표정과 표현은 다소 과하게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모자른 것 보다는 낫다.

 

 

 

 



<스파이더 맨>의 여자친구 역으로 알려진 엠마스톤이 오스카를 타기까지는 긴 여정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엠마스톤은 <매직 인 더 문라이트>와 <이레이셔널 맨>으로 천재 감독으로 일컬어지는 우디 앨런의 뮤즈가 되기도 하고, <버드맨>처럼 작품의 색이 짙은 영화에서 깊은 감정의 흐름을 보여주기도 했다. 영화 <헬프>에서도 피부색 차별이 당연하던 시절, 흑인들의 편에 서서 책을 집필하는 캐릭터를 맡아서 눈에 띄기 보다는 어우러지는 잔잔한 연기를 해낸다. 코미디, 로맨스, 생활연기에 이르기까지 엠마스톤은 다양한 분위기를 표현해 낼 줄 아는 배우다. 물론 모두 완벽한 연기를 보여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연기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아직 성장할 여지가 남아있지만, 특유의 스타일을 설득시키는 능력은 탁월하다.

 

 

 


<해리포터>에서 <미녀와 야수>로 이어지는 엠마왓슨의 행보는 확실히 흥행성이 있지만, 그의 화려한 외모에 비해서 역할이 전형적이라는 느낌은 지워버릴 수가 없다. 엠마스톤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엠마왓슨의 연기력은 전형적인 흐름에서조차 어딘가 경직되어 있는 느낌이다. <라라랜드>에 엠마왓슨이 출연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관객들에게 있어서는 다행한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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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chievstar.tistory.com BlogIcon 오딧세잇 2017.05.11 13: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두 사람이 각각 자신에게 맞는 영화를 잘 맡은것 같아요 ㅎ


 

인터넷 사이트 메갈리안에서 제작한 티셔츠에 적힌 "Girls do not need a prince." 라는 문구는 공감보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티셔츠를 입은 성우의 SNS 인증사진이 논란이 되며 게임업체로부터 계약해지를 당했고, 그에 동조하는 뉘앙스의 멘션을 SNS에 올린 웹툰 작가등도 테러 수준의 비난을 받았다. 

 

 

 



'일간 베스트(일베)'에 쏟아지는 시선만큼이나 부정적인 시선이 메갈리안에도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사이트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주도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단순히 성별로 규정된 소모적인 싸움, 그 싸움으로 대체 무엇을 얻었나.

 

 

 


 
메갈리안이 채택한 방식은 이른바 '미러링'이다. 일베등의 사이트에서 보이는 여성혐오와 편협하기 짝이 없는 편가르기등을 그대로 적용하여 자신들의 행동을 돌아보게 하자는 것. 그러나 그 미러링은 단순한 수단이 아닌 메갈리안의 본질이 되었다. 그들은 남성에게 폭언을 퍼붓고 날카롭게 공격하는 것을 정의로 규정한다. 여성들의 승리가 남성을 굴복시키는데서 온다고 믿는 것이다. 일베와의 차이점을 느낄 수 없는 부분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성별' 자체를 적으로 규정하고 싸우는 경우의 사례를 찾기는 힘들다. 단순히 '여성'이기 때문에, 혹은 '남성'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는 무리로 분류하는 것은 굉장한 오류다. 동성 집단에서도 얼마든지 크고 작은 사고는 일어난다. 남성이 다른 남성에게 폭언을 퍼부었다고 해서, 남성이 남성을 싫어하는 감정을 정당화하거나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여 동족혐오의 감정을 당연시 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우스운 일도 없기 때문이다.

 

 

 



남성들의 경우 대부분 직장 상사나 군대내부의 선임들에게 입는 피해는 같은 남성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여성들의 경우 역시 끊임없는 갈등의 화두는 시누이나 시어머니 같은 '시댁 식구들'이다. 그들이 갈등을 일으키는 '불합리함'의 대상은  같은 여성이다. 이런 일부 사례들을 확대시켜 남성은 남성을 혐오해야 하고, 여성은 여성을 혐오해야 한다는 프레임을 씌운다면 동의할 여성이나 남성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바로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해서 자행되는 황당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우습게도 그들의 '여혐' '남혐' 프레임은 서로를 갈망하는데서 온다. 된장녀나 김치녀같은 비하 발언을 들여다보면 그 말의 본질은 여성과의 데이트나, 사귐에 대한 이야기다. 이성간의 관계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 관계에 대한 호기심이 없었다면 이런 단어가 생길리 없었다. 이에 대항하는 '한남충' 같은 단어들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메갈이 표방하는 '왕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문구 역시 역설적으로, '왕자라는 로망'을 꿈꾸는데서 나온다. 대부분 그들의 발언들은 서로가 선택한 '연인'이나 '배우자'에 대한 실체없는 편견으로부터 비롯된다.

 

 

 



서로 그렇게 싫다면 독신주의를 고수하고 연애따위는 안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서로를 완전히 무시하지 못하고 성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대상으로 폄훼한다. 결국 서로를 완전히 놓아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가 증오스럽다면 안봐야 정상인데, 여전히 남성은 예쁘고 매력적인데 착하기까지한 여성과의 관계를 원하고, 여성들은 자신에게 헌신할 멋진 남성에 대한 판타지를 버리지 못한다. 그런 판타지를 충족시키지 못하니 서로 비난하면서도 끊임없이 서로를 갈구하는 것이다.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진정한 '페미니즘'에 관하여

 

 

 

 


 
영화 <히든 피겨스>는 숨겨진 숫자와 숨겨진 인물이라는 중의적 표현을 가진 제목을 사용했다. 이 영화는 잘 알려졌다시피 '페미니즘'에 관한 영화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단순한 페미니즘이 아니다. 여성과 남성의 차별도 물론 있지만 가장 본질적인 것은 '피부색'에 대한 차별이다. 영화는 1926년, 한 흑인 소녀의 대사로 시작한다. 단순히 숫자를 나열하는 것 같지만 그 소녀는 소수를 찾고 있다. 천재소녀 캐서린 콜먼(타라지 p. 헨슨 분)은 수학과 계산에 있어서 천재적인 지능을 타고난 흑인 여성이다. 시간은 흐르고 1961년이 되어 40대가 된 캐서린은 최첨단을 달리는 '나사'에서 일한다. 당시 흑인여성으로서는 굉장한 특혜다. 그러나 캐서린을 비롯해 그의 친구 두 명, 도로시(옥타비아 스펜서 분)와 메리(자넬 모네 분)는 흑인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질 수 없다. 

 

 

 



같은 여성이라도 백인 여성은 관리직에 있지만, 흑인 여성은 관리직을 맡은 전례는 없다는 영화속 배경은 차별의 지점이 여성보다는 피부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유는 없다. 단지 그것이 당연한 관례였기 때문이다. 흑인은 백인보다 우월할 수 없다는 인식. 지금 그런 말을 들으면 황당하지만, 그 당시엔 그런 사고방식이 통했던 것이다. 마치 남자와 여성의 편을 가르고 단순한 성별로 규정지어 서로를 물어뜯는 '이성혐오' 세태와도 닮아있다. 물론 영화속 현실은 사회적으로 그런 사고방식이 통용된다는 점에서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다. 

 

 

 

 



흑인 여성이라는 위치에 놓인 그들은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대놓고 그들에게 대들거나 싸울 수 없다. 꼭 그런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라도 정당한 이의제기조차 묵살 당한다. 백인들과 식당은 물론 화장실도 나뉘어져 있다는 것은 지금 보면 참으로 이상하지만 그 당시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뛰어난 기하학 실력을 바탕으로 운좋게 백인들의 일터에서 계산하는 임무를 맡게 된 캐서린은 처음부터 동물원의 원숭이 구경하듯 보는 경멸적인 시선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역시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지만, "미안하지만 너희가 사용하는 화장실이 어딘지는 나도 모른다."는 차가운 대답만 돌아온다. 결국 화장실 한 번을 가기위해 캐서린은 800m 떨어진 건물을 오가야 한다. 하루에 40분이라는 시간을 써 가면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는 커피 주전자 옆에는 'colored(유색인종)'라는 딱지가 붙은 작은 주전자가 새로 생긴다. 캐서린이 그 커피포트를 사용하는 것조차 못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캐서린은 그 모든 차별을 받아 들여야 한다. 스스로 그 구조를 바꾸기엔 그는 너무나도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기 때문이다. 천재적인 능력만으로는 그 편견을 깨뜨릴 수 없는 것이다. 일하는 중에도 그는 데이터의 절반을 펜으로 가린 자료를 받아야 한다. '기밀사항'은 흑인 여자에게 함부로 공개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계산이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캐서린은 그 상황도 받아들인다. 행간을 읽어 자료를 분석하고 결국 계산까지 해낸다. 이 일로 상관인 알 해리슨(케빈 코스트너 분)의 신임을 얻게 된 캐서린은 결국 정당한 자료를 넘겨 받을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첫 번 째 포인트가 있다.

 

 

 


 


캐서린을 비롯한 도로시, 메리는 모두 벽에 가로 막힌다. 도로시는 관리자 역할을 도맡아 하지만, 관리자가 될 수 없고 메리는 엔지니어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이 일을 해결하는 방식은 부당한 현실에 대한 분노나 절망이 아니다. 그들은 그 현실 속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낸다.

 

 

 



캐서린은 완벽한 계산으로 신뢰를 쌓고, 도로시는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여 새로운 IBM전산기기의 사용법을 익힌다. 메리는 자신이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필요한 수업을 듣기 위해 재판을 신청한다. 비가 오는 날, 화장실에 다녀오다 쫄딱 젖은 캐서린이 "어디갔다오냐"는 상관의 말에 "여기는 내가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없다."며 절규하는 장면은 그가 얼마나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냈는지를 알기 때문에 가슴에 와닿을 수 있다. 화장실의 '유색인종' 간판을 때려 부수는 알 해리슨은, 캐서린이 어떻게 그들을 감화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페미니즘은 단순히 '여성'의 인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히든 피겨스>는 여성이나 남성이라는 존재가 아닌 '피부색'을 주제로 페미니즘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성별이나 피부색, 어떤 기준으로든 서로를 구분짓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동등하고 가치있는 존재로서 인간을 대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바로 진정한 '페미니즘'에 대한 고찰인 것이다.

 

 

 



"내 피부색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판사님은 최초가 되실 수 있습니다."

 

 

 

 



 
밖에서는 여전히 흑인들에 대한 차별 철폐 시위가 이뤄지고 있지만 <히든 피겨스>의 주인공들은 백인들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간다.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백인 남자만 듣는 수업을 들어야 하는 메리는 '안된다'는 세상의 편견에 지지않는다. 그러나 폭력적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다. 법정에서 메리는 말한다.

 

 

 



"나사의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백인들의 학교에 가야합니다. 저는 제 피부색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건 제가 선택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판사님이 도와주신다면 할 수 있습니다. 이곳서 오늘 벌어지는 모든 심리중에 어떤 것이 100년 후 가장 중요하게 평가 받을까요. 어떤 것이 판사님을 최초의 판사로 기억되게 할까요."

 

 

 



판사 앞에서의 메리의 연설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전례는 없다. 그러나 최초가 되겠다. 혼자서는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당신이 힘을 보태준다면 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신도 최초가 될 수 있다.

 

 

 



그는 판사에게 지금 닥친 현실의 부당함과 분노를 쏟아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 그리고 그것에 필요한 판사의 도움과 그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 했을 뿐이다.  결코 그 현실에 굴복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또는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지 않고도 그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현실을 극복해 냈다.

 

 

 



우리는 부당한 일을 겪으면 벌어진 일들에 대해 분노한다. 분노해야 할 상황에서 분노는 당연한 것일 수 있지만, 그 이후의 태도를 어떻게 갖느냐는 우리의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가끔은 너무나도 쉽게 나와 다른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고 부당한 상황을 만든 사회를 원망하고 분노를 위한 분노로서 감정을 남겨두진 않는지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벌어진 일을 과장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성숙한 태도다. 그러나 그 안에서 절망하느냐, 한 걸음 더 나아가느냐는 우리의 선택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남성을 적으로 규정할 필요는 없다. 같은 맥락으로 유리천장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사회를 적으로 규정해서도 안 된다. 이 모든 편견과 역경에 맞서 싸우는 것은 누군가를 꼭 상처 입혀야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 상황 속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결코 포기하지 않으면 적어도 나를 둘러싼 세상은 바뀔 수 있다. 여성에 흑인이었던 그들이 나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비난하는 것은 너무 쉽다. 현실에 굴복하는 것에 대한 좋은 핑계가 되기 때문이다. 남혐, 여혐에 대한 설전이 오가는 것 역시, 다른 이들을 규정하고 판단할 근거 뒤에 숨으면 자신의 책임은 없어지니 얼마나 편리한가.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이라면 이 시대의 현실을 부정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현실에 대한 비난 뒤에 숨은 자신을 정당화 하지도 않는 법이다. <히든 피겨스>의 숨겨진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똑바로 현실과 마주선채, 자신의 길을 간다면 그들의 세상이 바뀌고 결국에는 그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비난을 멈추고 자신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인정할 때 나오는 엄청난 힘은 이 험난한 세상도 설득시킬 수 있는 강력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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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에 박해진이 캐스팅 되었을 때, <치인트>의 원작 웹툰의 팬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박해진은 주인공 ‘유정’역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연기자로 이미 원작 팬들의 일명 ‘가상 캐스팅’ 1순위에 꼽혔던 배우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캐스팅에서 팬들은 볼맨소리를 내뱉었다. 홍설역의 김고은이나 백인호 역의 서강준 백인하 역의 이성경 모두 원작팬들의 기대와는 다른 캐스팅이었기 때문이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의 경우, 배우의 이미지가 역할에 들어맞지 않는다면 논란을 각오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인트>의 초반부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드라마가 일단 시작되자 드라마는 드라마의 장르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치인트>를 망친 것은 캐스팅 보다는 후반부 스토리였다. 캐릭터가 붕괴되며 스토리가 무너졌고 드라마는 혹평에 직면했다. 반사전제작의 완성도를 기대한 시청자들에게 드라마 <치인트>는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그런 <치인트>가 영화로 다시 돌아온다. 원작의 막강한 인기를 바탕으로 콘텐츠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이번에는 원작자 순끼가 스토리 구성에 참여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영화화에 있어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바로 캐스팅. 드라마로 유정역을 연기했던 박해진이 또 다시 유정역할을 선택했다. 드라마에서 유정의 캐릭터가 후반부로 갈수록 붕괴되었던 까닭에 다시 한 번 이 역할을 선택한 박해진의 선택이 주목받았다. 유정 역할에 박해진 말고 다른 대안을 섣불리 생각하기 힘든 상황에서 반가운 일이었다.

 

 

 

 


그러나 박해진 이후의 캐스팅은 더욱 놀라웠다. 줄줄이 영화 <치인트>에 출연을 확정지은 배우들이 원작의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한 듯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여주인공 홍설역으로 출연을 확정한 오연서는 원작 팬들의 가상 캐스팅 명단에 자주 이름을 올렸던 배우다. 고양이같은 눈매와 긴머리등 이미지가 만화 주인공의 이미지와 상당히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이어 백인호 역의 박기웅 역시 원작 가상캐스팅 명단에 자주 등장하던 배우였다. 뿐만 아니라 백인하역의 유인영 역시 팬들의 캐스팅 후보로 자주 거론되던 배우로 이미지로 따지자면 더 이상 적역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역할과의 이미지가 일치한다.

 

 

 

 


 

일명 ‘싱크로율’이라 부르는 원작의 이미지와 배우의 이미지의 일치율이 이정도로 완벽하게 들어맞는 캐스팅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결국 가상 캐스팅은 팬들의 바람일 뿐, 캐스팅의 조건은 제작사나 방송사, 그리고 배우들의 스케줄이나 연출가의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작 팬들이 바라는 캐스팅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나 영화 <치인트>만큼은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킬만큼 싱크로율이 높다. 따라서 화제성도 높아졌다.

 

 

 

 


그러나 드라마 <치인트>에서 확인했듯,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은 싱크로율이 아니다. 물론 원작 특유의 분위기를 살리는데 캐스팅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영화의 기승전결을 잘 살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영화는 보통 두 시간 정도의 길이에서 짧으면 세시간 사이로 진행이 된다. 원작 <치인트>는 지금 4부가 진행되고 있을 만큼 길이가 길다. 그 안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뺀다고 하더라도 이야기의 흐름을 영화에 담는 것만으로 버거울 수 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만화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영화만의 독특한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 하는 것. 이건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길면 세 시간 안에 캐릭터를 설명하고 스토리를 전개시키고 이야기의 흐름을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지점은 영화를 보러 가는 관객들 중에는 원작 팬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원작 팬들을 넘어서 원작에 생소한 새로운 관객까지 끌어들일 수 있느냐 하는 지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잇다.

 

 

 


 

일단 영화 <치인트>는 원작의 팬들을 만족시킬만한 캐스팅보드를 완성한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첫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만화와 드라마가 다르듯, 영화도 완전히 다른 장르다. 만 원가량의 티켓을 사들고 극장으로 향해야 하는 이유를 영화 내에서 발견하지 못한다면 영화는 쉽게 외면당한다.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캐스팅만으로도 이미 기대감은 상승한 상황이다. 영화 <치인트>가 캐스팅 이상의 완성도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비판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과연 드라마 뿐 아니라 원작까지 뛰어넘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작품이 탄생할 수 있을까. 캐스팅만으로는 알 수 없다. 모든 것은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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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모아나>는 한국에선 230만명 정도로 다소 아쉬운 성적으로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이지만 관람한 관객들은 호평을 쏟아내고 있다. 비록 2013 년 개봉한 <겨울왕국>의 천만 신화나2016년 400만이 넘은 <주토피아>의 흥행 정도는 아니지만, <모아나> 역시 디즈니의 발전된 기술과 캐릭터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모아나>가 있기까지 디즈니 공주들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모투아나 섬의 족장의 딸로 차기 족장의 운명으로 자라난 주인공 모아나는 디즈니의 ‘혈통’ 중심 세계관을 답습하는 캐릭터다. 주인공은 이미 운명적으로 고귀할 수밖에 없는 혈통을 타고난다. 모아나는 결국, 높은 지위를 타고난 공주 캐릭터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모아나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리더가 되는 ‘금수저’가 아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의문을 품고 전통을 지키면서도 더 발전된 방향으로 섬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진정한 ‘리더’로서 그려진다. 안락한 생활을 거부하고 자신을 찾고 섬을 구하기 위한 모험을 떠나는 모아나는, 그 흔한 왕자님이나 러브라인 없이도 스스로 충분히 매력적으로 빛날 줄 아는 캐릭터다. 그러나 이런 진취적인 캐릭터가 있기까지 디즈니의 공주들은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왔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예쁘고 착한 지고지순한 여성상

 

 

 

 


눈처럼 하얀 피부에 흑단같이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디즈니 만화영화 속 백설공주는 순하고 착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순수한 아이처럼 묘사된다. 아무 이유 없이 괴롭히는 계모의 행동에도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자신을 죽이려고까지 하는 상황에서도 원망조차 하지 않는다. 숲속에서 처음 만난 난장이들과 빠르게 친해지는 친화력을 무기로 살아남은 백설공주는 결국 영화 내내 집안일만 하다가 독사과를 먹고 쓰러지지만 왕자의 키스 한 번에 깨어나 해피엔딩을 맞는 수동적 캐릭터다.

 

 

 

 


 

이는 <신데렐라>와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도 그대로 답습된다. 왕자님을 기다리며 구박받는 신데렐라나 왕자가 깨워주어야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오로라 공주는 모두 ‘구해줘요, 왕자님’을 외치며 수동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캐릭터였다.  

 

 

 

 


인어공주, 디즈니 최초의 주체적 공주 캐릭터

 

 

 

 


그에 반해 <인어공주> 속 아리엘은 자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첫눈에 반한 왕자를 만나기 위해 목소리를 포기하고 다리를 얻고, 그에게 직접 다가가는 모습은 그동안 착한 성품으로 지고지순히 기다리기만 했던 공주들과 차별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일단 현실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는 것 자체로 획기적이었다. 물속 생활 보다 육지의 생활을 동경하며 새로운 세상으로의 진출을 꿈꾸는 캐릭터는 좀 더 입체적인 캐릭터로 묘사되며 스토리에도 훨씬 활력이 생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때부터 주인공이 부르는 뮤지컬 형식의 OST 역시 반향을 일으켰는데, 조연 세바스찬이 부른 ‘under the sea'나 아리엘이 부른 ’part of your world'는 유명한 넘버다. 이 때부터 디즈니 공주 캐릭터들의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행동의 동기가 여전히 ‘사랑’과 ‘남성’에 있다는 것은 여전한 한계였다. 

 

 

 

 


벨, 쟈스민, 포카혼타스....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자신이 생각한 바를 표현할 줄 아는 당찬 여성상

 

 

 

 


 

<미녀와 야수>의 히로인 벨은 책읽기를 즐기고 모험심이 강한 캐릭터로 야수의 성에 갇히게 된 순간에도 야수와의 말싸움에서 한마디도 지지 않는 똑똑한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동안 남성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약속하며 남성의 지위에 짓눌리던 캐릭터와는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다. 잘못된 것은 확실히 잘못되었다 지적할 줄 아는 배포는 디즈니 여성상의 진화를 의미했다. 게다가 왕자에게 첫눈에 반하는 전작의 공주들과는 달리, 야수와의 감정이 점진적으로 발전되며 스토리의 변화가 생겼다는 점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알라딘>의 쟈스민 공주는 아예 도둑인 남자 주인공에 비해 높은 지위로 설정이 되어있다. 쟈스민은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모험심이 강하고 뚜렷한 주관을 가진 캐릭터로 묘사되며 단순히 알라딘과의 사랑이 아닌, 모험에 함께 동참하고 결국에는 세상을 구해내는데 일조하는 캐릭터로서 활약한다. 이 때부터 백인 위주의 캐릭터에서 유색인종의 공주들이 활약하기 시작했다는 것 또한 중요한 지점.

 

 

 


<포카혼타스> 역시 유색인종에 소수인종으로 지혜롭고 가치관이 뚜렷한 캐릭터다. 백인들로부터 부족을 지켜내는 캐릭터로서, 소수인종이 아닌 백인들이 악역으로 등장했다는 것은 획기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뮬란, 티아나, 라푼젤, ....직접 운명과 싸워 이겨낸 캐릭터

 

 

 


1998년 등장한 <뮬란>은 최초의 동양인 캐릭터로, 아버지를 대신하여 남장을 하고 군에 입대하는 대담성을 보인다. 여성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군대’는 물론, 여성은 얌전해야 한다는 영화의 시대 상황을 뛰어넘어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동등한 위치 이상의 더 뛰어난 활약을 해내는 캐릭터가 탄생한 것이다. 이에 동양인이라는 점까지 더해지며 뮬란은 디즈니 공주들의 진화에 한 획을 긋는다. 여기에 러브라인은 양념처럼 약간만 더해지며 그동안 공주들의 중요한 행동의 동기였던 ‘사랑’이 한 풀 꺾이는 모양새를 보여준다. 이 때부터 러브라인의 변화가 중점적으로 이뤄진다.

 

 

 

 


 

<공주와 개구리>의 티아나는 최초의 흑인 공주로 능동적인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간다. 티아나는 아버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레스토랑을 열고 싶다는 목표가 뚜렷하다. 부자도 아니라 열심히 일도 해야 한다. 개구리 왕자와 키스한 후 자신도 개구리가 되어버린 티아나는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험을 해야 한다. 이 때, 왕자 캐릭터가 듬직하고 멋있게 묘사되기 보다는 능글맞고 놀기 좋아하는 한량처럼 묘사된 것도 주목해 볼 만하다.

 

 

 

 


이 캐릭터는 <라푼젤>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성에 갇혀 살던 라푼젤은 공주의 지위를 스스로 되찾는 능동성을 보인다. 한 편 남자 주인공인 유진은 멋있기보다는 능글맞은 캐릭터로 그려진다. 여주인공과 어쩔 수 없이 함께 모험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도 비슷하다. 여자 주인공의 비중이 크게 늘어나고 캐릭터가 다변적으로 바뀌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싸워 이겨내려는 공주들의 모습이 정착된 순간이다.

 

 

 


 

메리다, 엘사, 모아나....독보적 능력을 갖춘 걸크러쉬 여성 캐릭터

 

 

 


시간이 흐르면서 공주들은 단순히 공주를 넘어 리더로서의 면모를 갖춘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속 활쏘기에 능한 메리다는 독보적인 능력으로 주어진 인생에 맞서는 것을 넘어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는 캐릭터다. <겨울왕국>의 엘사 역시 얼음마법을 부리는 독보적인 능력을 갖춘 캐릭터다. 자신의 능력을 제어하지 못한 엘사는 스스로 성을 벗어나 자신만의 왕국을 만드는 강수를 둔다. 그동안 착하기만 했던 공주의 캐릭터에서 벗어나 “착하게 살지 않겠다”고 외치는 엘사의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는 많은 팬들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다. 모아나역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능동적인 리더로서의 모습을 보인다. 이때부터 공주들에게 러브라인이 필요 없어졌다. 그동안 어떤 식으로든 왕자와의 사랑을 다뤄왔던 디즈니는 왕자에 대한 열망보다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캐릭터들로 이야기를 채웠다.

 

 

 

 


시대가 변하면서 디즈니 공주들의 캐릭터 역시 변화하고 있다. 단순히 왕자와 공주의 스토리가 아닌, 점차 자신의 열망과 꿈을 알고 그 목적지향적으로 변하는 캐릭터들로 이제 성에 대한 고정관념도 깨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앞으로의 디즈니 공주 캐릭터들도 더 열정적으로 변해 관객들을 만족시켜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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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heem.tistory.com BlogIcon 사이먼리 행복연구소 2017.02.15 14: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해요
    연예가센숀~~
    잘보고갑니다ㅎ

  2. Favicon of https://themusicaloffering.tistory.com BlogIcon Barroco 2017.02.16 00: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대가 흘러갈수록 이 사회가 원하는 여성에 대한 인식은 이전 세대와는 뚜렷히 구별되므로 디즈니 속 공주들이 변모하는 데에는 이러한 사회상을 잘 반영하는 게 아닐까요.

  3. Favicon of https://buya1.tistory.com BlogIcon 체질이야기 2017.02.16 0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정말 그렇네요
    걸크러쉬 공주들이 이제 대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아나 아직 보지 못했는데 보고싶어지네요^^

  4. 2017.02.21 17: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올해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꼽은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후보를 노린 출품작은 김지운 감독의 <밀정>으로 결정되었다. 영진위측은 홈페이지에 "전반적으로 연출력이 돋보이는 감독들의 영화들이 많이 있었지만, 각각의 개성과 장단점이 뚜렷해 심사위원들간의 토론이 치열했다. 그 결과 심사기준과 배점기준에 근거해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밀정'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선정이유를 밝히며 “‘밀정'은 작품의 미학적 성취도뿐 아니라 감독 및 배우의 인지도, 해외 배급 및 마케팅 능력 부분에서 두루 높은 점수를 얻었다. 부디 이번엔 좋은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하며 탈락한 작품의 관계자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밀정>을 아카데미 출품작으로 선정한 영진위의 결정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사실 일제시대를 다룬 영화는 한국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기 쉽다. <밀정>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흥행작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일제시대’를 제외하고 영화적인 이야기로 넘어가면 <밀정>의 기승전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뻔한 신파나 통쾌한 복수극의 전형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 일제시대를 표현하는 방식에서 타 영화들과는 궤를 달리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지만 그 색다름이 확실한 임팩트를 남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제시대라는 한국인 공통의 공감대와 톱스타들의 출연이 없었다면 흥행을 장담하기 힘든 스토리 라인이라 봐도 무방하다. 송강호의 연기는 명불허전이었지만 그가 출연한 타 작품에 비교해서 더 독특하고 신선한 개성을 보여주었다고 볼 수는 없다. 일제시대를 제외하고 캐릭터 구성이나 스토리 구성만 놓고 보자면 해외에서 그 이야기에 몰입하기 힘든 지점이 있다.

 

 

 

 


 

이런 후보선정이 아쉬움이 남는 것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의 선전 때문이다. <아가씨>는 다수의 해외 영화제에서 인정을 받은 것은 물론 아카데미 시상식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4대 비평가 상 중 하나인 ‘LA 비평가 협회’의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과 미술상, 두 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한국영화 최초의 성과다.

 

 

 

 


 

작년만해도 LA 비평가 협회가 외국어 영화상으로 선정한 헝가리의 <사울의 아들>은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로 오른 것은 물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작년 우리나라가 출품한 작품인 <해무>는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당시에도 <해무>가 왜 출품되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반응도 있었다. 이번에 출품한 <밀정>역시 후보 선정단계에서 탈락하며 영진위의 출품작 선정 능력에 있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동안 한국 영화의 질적·양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로 한국영화가 선정된 적이 없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아가씨>같은 작품이 있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는 작품들은 거의 거장의 작품이 아니다. <사울의 아들>을 연출한 라즐로 네메스 감독만 해도 <사울의 아들>이 그의 첫 장편 영화였을 정도. 군더더기는 떼고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아가씨>의 박찬욱 감독은 물론 거장이라 불릴만 하지만 <아가씨>는 상업주의, 동성애, 이후에 터진 스캔들등으로 영진위의 입맛에 맞기 힘든 작품이었다. 그런 요소들을 떼고 생각할 수 있는 혜안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반면 옆나라인 일본은 LA 비평가 협회상에서 애니메션 부문을 수상하고 일본에서만 1500만명 이상의 흥행을 이뤄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을 아카데미 시상식에 출품하여 후보 선정이 통과되었다.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상과 외국어 영화상을 동시에 노려보겠다는 포부다. (이미 일본은 7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장편 에니메이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밀정>을 선택한 영진위의 의도는 추측해 볼 수 있다. 한국 역사를 주제로 일제시대를 조명하고 그들이 말했듯  호감도가 높은 배우들이 출연했다. 흥행작을 다수 배출한 감독의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카데미 시상식이 그런 요소들 따위를 고려할리 만무하다. <아가씨>는 반면에, 일제시대의 이야기기는 하지만 일제시대의 만행이나 폭력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한다. <아가씨>에 출연해 인생 연기를 보여준 김민희는 파격적인 노출로 동성애 연기를 선보이고 불륜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다. ‘한국 대표작’으로써 껄끄럽게 느꼈을 여지가 다분하다. 그러나 해외에서 좋은 평가는 <밀정>이 아닌 <아가씨>에게 쏟아졌다. <아가씨>가 출품되었다면 후보작 등록은 물론, 수상까지 점쳐볼만 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더욱 크게 남는다.

 

 

 

 


영진위는 나름대로의 이유로 <밀정>을 선택했겠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작품을 선정해야 했다. 해외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것 또한 일종의 직무유기할 수 있는 것이다. 영진위는 작품 선정에 있어서만큼은 권위의식을 버리고 철저히 실리를 취할 필요가 있다. 가능성을 높여 한국영화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영진위의 목표요 존재이유기 때문이다. 후보작 출품에 대한 아쉬움 속에 한국 최초의 아카데미 후보작, 혹은 수상작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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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이라는 단어가 금기시 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내몬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자살방지 캠페인은 자살을 하는 사람의 수가 눈에 걱정될 만한 수준일 때 펼쳐진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사실은 이런 가설을 증명하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자살이라는 행위는 생명의 존엄성의 측면에서 볼 때 금기시 되어야 할 행위지만, 누군가는 죽는 것 보다 삶이 버거울 수 있다. 그럼에도 살라며 그들의 목숨을 연명시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강요고 폭력이다. 그런 폭력이 많은 사회일수록 오히려 자살자는 늘어난다. 그런 폭력이 필요 없는 사회, 아무도 자살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는 인식이 확산된 환경이 오히려 자살을 방지한다. 사회적인 안전망은 이런 사회를 만드는 데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죽여주는 여자>는 바로 그 지점에 주목하는 것을 넘어서, 그 죽을 권리마저 박탈당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죽여주게 잘하는 여자와 실제로 죽여주는 여자라는 중의적 표현의 제목은 다소 코믹하지만 영화의 내용은 서늘할 만큼 축축하고 암울하다.

 

 

 

 


성性을 팔며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던 소영이 죽음을 안내하는 인물이 된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긴장감을 제공한다. 영화의 배경도 계절이 변하듯, 봄에서 가을로 어두워지고 쓸쓸해지는 것이다. 소영역시 점차 여성에서 죽음의 전령으로서 변해간다. 여성으로서 어필해야 하는 초반의 박카스 할머니는 화장도 짙고 의상도 다소 화려하지만 점점 소영의 표정과 옷차림도 무채색으로 변해간다.  

 

 

 

 


이 영화는 주인공을 비롯하여 조연과 엑스트라까지 모두 소수자의 역할을 맡는다. 주인공 소영은 노인들에게 성性을 팔아가며 살아가는 일명 ‘박카스 할머니’다. 사회 르포나 시사 프로그램에서나 볼 법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지만, 나이가 젊거나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가끔씩 마주하는 현실에 혀를 끌끌찰 지언정, 그런 환경 자체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다. 그런 현실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더라도 그런 현실을 마주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한 것이다.

 

 

 

 


소영이 마주하고 사는 사람들 역시 모두 소수자다. 소영이 상대하는 노인들은 성욕을 풀 데도, 애정을 갈구할 데도 없는 외로운 이들로 그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공원을 방황하는 이들이다. 소영의 일에 휘말리는 아랫집 젊은이는 장애인이고, ‘갑’의 입장에 있어야 할 집주인마저 트렌스젠더다.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에도 팍팍한 이들이 모여 다른 노인의 비루한 삶을 종결시켜주는 것은 의미가 크다.

 

 

 

 


영화는 세 명의 노인들의 삶을 보여주는데, 그들이 죽고 싶어하는 상황에 놓인 것에 큰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만큼 그들의 삶에 동화되게 만든다. 그들이 겪는 일들을 두고 그 누구도 덮어놓고 ‘자살은 나쁜 것’이라고 이야기하기 힘든 것이다.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거나  망가져 가는 자신의 삶을 보며 도저히 스스로 끝을 낼 용기를 내지 못하는 노인들의 삶 속에서 그 삶의 종결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자 하는 것을 비난하기 힘들 지경이다. 그들이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은 꺼내서도 안 되는 불온한 생각이고, 살인은 해서는 안될 추악한 짓인 것인지에 대한 의문마저 남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삶의 종결을 내주는 사람마저 사회적인 안전망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들이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 테두리 바깥에 있고,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자신들이 해결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지만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어 도와줄 사람이 절실하다. 그래서 결국 손을 내밀게 되는 것 역시 비슷한 아픔을 공유한 소수자라는 사실은 의미가 크다.

 

 

 

 


누구나 그들의 문제점을 알고있지만 그들의 삶에 선뜻 뛰어들 수는 없다. 결국 그들은 소수일 뿐이고, 소수자의 테두리 밖에 있는 그 누구도 선뜻 그들을 향해 손 내밀지 않았다는 사실. 그 어두운 현실을 영화는 말하고자 한다. 오히려 실질적인 도움이 된 것은, 박카스 할머니로 성을 팔고 그들에게 삶의 종결을 할 도움을 준 소영 개인이었다는 것. 그것이 영화 내내 폐부를 찌르는 메시지를 전한다.

 

 

 

 


주인공 소영 역할을 맡은 윤여정은 인터뷰에서 “경험해 보지 못해 어려웠다”고 밝혔지만, 그 말이 과공비례로 느껴질 정도로 완벽한 연기로 관객을 휘어잡는다. 관객 역시, 박카스 할머니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일 터. 윤여정은 그런 사람들에게 박카스 할머니를 설득시키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최적의 연기를 펼친다. 강렬한 소재이니만큼 이야기도 촘촘하고 설득력 있게 풀어나가야 관객들의 공감도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에 미흡하면서 엉성한 개연성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개연성을 극복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윤여정의 연기의 힘이다.

 

 

 

 


영화는 깜짝 흥행을 기록하며 5만 관객을 넘어섰다. 소수지만 어쩌면 우리 바로 옆을 지나치고 있을지도 모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관객이 동감한 것이다. 영화적으로 완벽한 연출과 표현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자신이 끝낼 권리마저 박탈당한 사람들의 현실을 마주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분명히 볼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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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 정우성, 곽도원, 주지훈, 정만식, 김원해 등, 인기스타와 연기파 배우들이 한데 모인 <아수라>는 그 캐스팅만으로도 엄청난 기대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범죄와의 전쟁> <신세계> <내부자들>등 권력의 부조리함과 그로인해 선택에 기로에 서게 된 인간들의 민낯을 확인하는 영화들은 꽤나 흥미로운 전개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필연적인 악연과 운명에 놓인 사람들의 선택과 그 선택으로 인한 절정, 결말로 향하는 과정은 흥행을 담보할만큼 매력적인 소재다.

 

 

 

 

 


<아수라>는 개봉 전부터 또다른 범죄 느와르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던 작품이었다. 연기력으로는 이미 정평이 나있는 인물들이 캐스팅 되며 그들이 어떤 세계에서 어떤 캐릭터로 관객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갈 것인지 궁금증을 자극하며 파급력은 더욱 커졌다. 게다가 예능 <무한도전>에서 그들이 ‘연기자’로서 보여준 매력은 이런 기대감을 폭발시키는 좋은 마케팅 사례였다. <무한도전>도 신선한 재미를 잡았고, 영화 <아수라>도 충분히 홍보가 되는 상생의 마케팅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던 것이다.

 

 

 

 

 

 

 

 

예상대로 아수라는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선전했고, 9월 28일 개봉 이후 200만 관객을 쉽게 돌파했다. 그러나 흥행에 빨간불이 켜졌다. 팀버튼 감독의 영화 <미스 페러그린>에 밀리며 박스오피스 2위로 밀려난 것은 물론, 흥행 곡선도 저조해진 것이다. 손익분기점은 350만명. 손익 분기점 까지 도달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기대치에 비해 졸작이라는 혹평만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아수라>가 이야기의 흐름을 놓친 것은, 배우의 연기력에 지나치게 비중을 크게 두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연기파 배우들이 보여주는 연기는 감상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신세계>에서 황정민을, <범죄와의 전쟁>에서 곽도원을 목도한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연기가 그 캐릭터들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물론 배우의 연기 스타일은 존중되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문제는 캐릭터가 아니라 배우가 보였다는 점이다.

 

 

 

 


<아수라>의 캐릭터들은 말그대로 아수라장이다. 각각 비리를 저지르고 범죄까지 손을 대는 그들은 극의 긴장감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행동에 있어서 쉽사리 영화적인 재미를 찾기가 힘들다. 그 이유는 그들의 캐릭터 자체가 중구난방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황정민이 연기한 박성배를 보자. 안남시의 시장으로서 모든 악행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임에도 이 역할에 크게 몰입되지가 않는다. 이미 권력의 중심에 있는 인물로 묘사되는 박성배는 딱히 이유가 없는 악행을 저지른다. 물론 그가 악역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설정에 충실한 것이라는 판단 정도는 가능하다. 그러나 그 설정이 치밀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

 

 

 

 

 

 

 

악역이 악행을 저지르는데는 어떤 시발점이 필요하다. 그 자체가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라 하더라도 주인공들을 한데 묶는 사건이 일어나는 계기는 만들어 줘야 한다. 예를들자면 사이코 패스가 우연히 죽인 인물이 주인공의 약혼녀였다든가 하는 설정이나, 그 약혼녀를 죽이게 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가질 것을 다 가지고 있는 박성배가 굳이 또 다른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비리를 저지르고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강도 높은 악행을 하는 이유에 대해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포인트를 심어주는데 실패한 것이다. 이미 시장에 자리에 있어 그런 심각한 범죄에 연루되어 있지 않아도 이미 수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그가 단순히 뇌물 수수등이 아닌 도가 지나친 범죄를 저지르는데 대한 설명은 영화는 불친절할 정도로 묻어둔다.

 

 

 

 

 


다른 캐릭터들 역시 마찬가지다. 정우성이 맡은 한도경 캐릭터에는 중심이 없다. 그는 영화 전반에 걸쳐서 이리저리 휘둘릴 뿐, 분명한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다. 궁지에 몰려있는 비리 경찰이라는 것은 인지가 가능하지만 그는 권력 구조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아픈 아내를 버릴만큼 비정하지도 못하다. 이런 장면이 인간적인 고뇌로 인물에 감정이입이 되도록 묘사되었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는 시종일관 돌출 행동으로 영화의 맥락을 흐리게 만든다. 머리를 쓰고 생각을 하여 정치적으로 권력을 이용할 줄 아는 똑똑한 캐릭터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파악하여 영화의 맥락을 제공하는 역할에도 실패한 것이다. 더군다나 유일하게 정우성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어쩐지 튄다. 그가 하는 캐릭터에 몰입이 되지 못한 것은 관객 뿐 아니라 그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김차인 검사역을 맡은 곽도원의 캐릭터도 어중간하다. 차라리 이 역할이 황정민처럼 밑도 끝도 없는 성격을 가졌다면 오히려 영화적인 재미가 살아날 법도 한데 그는 어딘지 모르게 약해 보이기만 한다. 한도경과 마찬가지로 그 약한 부분이 인간적인 매력으로 그려지는데도 실패했다.    

 

 

 

 


악에 물들어가는 문선모역할을 맡은 주지훈 역시 왜 그렇게 악에 물들어 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저 그렇게 해야 영화적인 극적 장치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의 악행이 가속화 된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이 캐릭터 역시 설득력을 가지는데는 실패했다.

 

 

 

 

 


그런 캐릭터들에 대한 공감이 없이 관객들은 폭주하는 주인공들의 액션을 마주한다. 그 액션은 결론을 내기위해 점점 잔인하게 흐르지만, 그 잔인함 이면에 숨은 캐릭터들은 오히려 도구적으로 활용될 뿐이다. 영화를 본 후 그 누구도 누구의 연기와 캐릭터에 빠져들어 극장을 빠져 나오지 못한다. 남는 것은 선혈이 낭자한 검붉은 화면 뿐, 영화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데는 실패하는 것이다. 분명 뛰어난 연기와 화려한 액션을 방금 목격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누구도 확실히 제 역할을 하지 못하여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현장을 목격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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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만 관객을 돌파한 <부산행>부터, 710만을 돌파한 <터널>, 그리고 620만을 돌파하면서 현재 진행형인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밀정>까지 한국영화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속된 흥행러쉬의 비결은 한국영화의 퀄리티가 그만큼 상승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 영화들이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와 포인트를 녹여내면서 그 메시지에 공감하는 관객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문제의 시의성을 담는 것이 어느순간 흥행코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부산행>은 헐리우드식 좀비 영화를 기대한 사람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는 작품이다. 좀비 영화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액션이 있지만, 그 액션보다 다른 포인트에 중점을 두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이 <부산행>을 다른 좀비영화와 차별화하는 지점이다.

 

 

 

 

 

 

 

<부산행>은 좀비를 무조건적인 악으로 규정하고 그 안에서 생존 본능을 좇아 움직이는 인간들을 선으로 규정하는 대부분의 좀비영화는 달리, 좀비액션보다는 인간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을 피하는 게 최우선 과제이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포인트는 인간의 이기심에 있다. 좀비에게 당하는 인간들보다는 인간의 서늘한 냉정함에 관객들은 분노한다. 또한 '착한 편'으로 묘사되었던 주인공조차 좀비의 발생을 초래한 최초의 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인과율을 피할 수 없다. 우연인 듯하지만 필연인 이야기 순환의 고리와 그 안에서 눈앞에 닥친 상황을 피하려는 인간들의 고군분투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이 안에서 관객들은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가정하의 상황들에 공감을 느낀다. 좀비라는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공감을 느낄 수 잇는 이유는 그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우리들이 경험한 상황과 묘하게 겹쳐 기시감이 들기 때문이다.  정부의 언론 통제와 사건 축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대책 발표등은 당장 위험에 놓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큰 좌절로 다가온다. 결국 믿을 것은 사회의 안전망이 아닌, 개개인의 역량이다. 

 

 

 

 


이는 과거 ‘메르스’ 사건 등으로 만연해진 정부에 대한 불신이 이 이야기에 공감을 느끼게 하는 힘이라는 것은 한 편으로는 영화의 흥행에 도움이 되는 일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좀비라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놓고 그 상황을 있을법한 시선으로 그려낸 <부산행>의 천만 돌파는 한국형 좀비영화 혹은 판타지 영화의 가능성을 알린 사건이었다. 

 

 

 

 


<터널>은 이보다 더 사회의 안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깊게 파고들었다. <터널>에서는 터널 붕괴로 터널에 갇히고 만 한 남자가 그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끝내는 그 상황에  대한 무력함으로 절망을 느끼는 감정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이 이야기에서 많은 사람들은 ‘세월호’를 떠올렸다. 감독은 세월호를 의도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이 이야기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은 묘하게 관객의 감정을 그쪽으로 몰고 간다.

 

 

 

 


119에 신고하는 장면부터 구조 작업이 더뎌지는 관료적인 절차들. 결국 구조를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상황 모두가 끊임없는 절망과 어둠의 한 가운데로 주인공을 몰고 간다. 물론 이 상황에서도 영화는 블랙코미디를 놓치지 않으며 하정우의 연기를 십분 활용한다. 그러나 <터널>이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문제는 단순히 터널 붕괴의 부실공사 자체가 아니라 그 일을 불러일으키게 만든 상황들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무너진 터널에서 사람을 구출하는 이야기이지만, 오히려 그 터널이 왜 무너져야 했는가를 다시 상기시키며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 모았다.

 

 

 

 


안전 기준이 지켜지지 않고,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진행되는 공사는 마치 구조 작업에 있어서도 그대로 진행되며 관객들의 답답함을 배가 시켰다. 세월호가 일어나게 된 배경, 그리고 그에 대한 대처 모두 이 영화가 표현하는 방식과 닮아있어 관객들은 이 영화를 더욱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밀정> 역시 우리 사회에 무거운 메시지를 던진다. 단순히 일제와 그에 대항하는 의열단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제 경찰이었던 이정출(송강호)을 통해 그의 감정선을 따라가는데 중점을 맞춘다. 기승전결은 그리하여 다소 힘이 약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독특한 메시지는 더 강렬히 전달된다.

 

 

 


극중 의열단장 정채산 역할을 맡은 이병헌이 내뱉는 대사 “우리는 실패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실패가 쌓이면 그 실패를 딛고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갑니다” 라는 대사에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누군가는 친일이 그 시절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라 말하지만 누군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만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믿는 것. 그 이야기 속에서 관객들은 여전히 득세하는 친일파의 후손들을 떠 올린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역사 국정화나 위안부 합의 문제에 있어서 누군가의 권력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그 지배를 뚫고 옳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모르는’ 멍청한 인간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친일파가 아니면 빨갱이라는 이중적인 잣대 속에서 재단 당하는 ‘신념’은 때로는 참으로 부질없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개개인의 신념. 단순히 ‘어쩔 수 없었다’고 합리화를 하는 것이 아닌, 실패를 딛고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한 걸음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이 영화는 던지고 있는 것이다.

 

 

 

 


2016년. 한국 영화의 성장은 참으로 눈부시다. 한국 관객들이 한국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극장을 찾는 시대다. 이런 성장 속에서 한국영화의 흥행 코드가 바로 지금 이시대가 던지는 메시지를 담는 것임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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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 <덕혜옹주>의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덕혜옹주>는 결국 역주행으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4일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손예진의 인생연기라는 평가를 들을만큼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다소 역사왜곡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호평을 받으며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한 여인의 삶으로만 보자면 덕혜옹주의 삶은 가련하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일본으로 향해야 했고, 거기서 일본이 맺어준 일본인과 혼인을 해야 했다. 그의 딸 소 마사에 마저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야 했다. 그는 자살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행방불명됐다. 결국 조발성 치매 증상을 보이던 덕혜는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귀국조차 허락되지 않아 해방 이후에도 한참동안이나 한국땅을 밟을 수 없었다.

 

 

 

 

<덕혜옹주>의 이야기는 그 무력한 여인의 삶 속에서 왜 그 여인이 그렇게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는가를 조명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일제의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인권 짓밟기는 관객들의 분노를 고취시킨다. 이런 역사를 조명한 영화를 비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속에서 독립을 원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한국인들은 철저히 피해자일 수밖에 없고,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그런 한국인들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다. 영화를 비난하는 것은 마치, 일제를 옹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영화는 관객의 그런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덕혜옹주의 상황을 상당부분 각색했다. 처음부터 ‘이 영화는 픽션이다’라는 설명이 자막으로 떠오르지만,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한 각색이라는 점, 실명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덕혜옹주의 삶을 제대로 구현해 냈는가 하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영화는 한 여인의 가련한 삶에 포인트를 맞추면서도 그 삶을 위해 다양한 상황을 포진시킨다. 이를테면 덕혜가 조선 백성들의 삶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고자 했다거나, 독립운동가들과 접선을 통해 망명을 하려 했다거나 하는 점이다.


 

 

 

역사속 덕혜옹주는 말 그대로 아무 힘이 없었다. 또한 의지도 크지 않았다. 그 때문에 고종황제가 승하하자 일제의 바람에 휘둘린 인물이다. 자신의 삶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덕혜옹주는 힘에 부쳤다. 일제가 정해준대로 흘러가는 삶 속에서 덕혜옹주 역시, 수많은 아픔을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픔이 조선시대 독립운동가들이나 서민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 이상일 수는 없다. 영화속에서 어머니의 죽음에도 조선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덕혜의 상황도 사실이 아니다. 순종이 위독할 때, 어머니인 양귀비가 돌아가셨을 때 덕혜는 조선 땅을 밟았다. 물론 그 상황 속에서도 일제는 순종의 국장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거나 어머니의 장례에서 상복을 못입게 하는등의 억지를 부렸다. 그러나 덕혜가 조선 땅을 한 번이라도 밟아보고자 고군분투하는 영화 속 상황은 전혀 사실적이지 않다.


 

 

 

조선시대 왕가는 일제에 충분히 협조했다. 그러나 영화는 조선 왕실의 사람들을 독립을 위해 힘쓰려 한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묘사한다. 덕혜옹주의 오빠인 영친왕은 일본으로 건너갈 당시, 그 유명한 이토 히로부미를 후견인으로 삼았으며 일본에서도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인과 결혼하여 일본에서 장성으로까지 지낸 그가 굳이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할 결심을 할 리가 없었다. 영화 속에서 독립운동군을 따라 상해로 망명하려는 그의 움직임은 너무나 철저하게도 픽션이다. 더군다나 영화 속에서 나오는 이우 왕자(고수 분)의 독립운동 역시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 그가 일제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는 정황은 있지만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

 

 

 

한마디로 조선의 왕족은 조선보다 자신의 안위를 더욱 걱정한 채, 백성들을 저버렸다. 물론 누가 그 입장에 있었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수 있다. 허나 조선이 일제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 또한 지도자들의 판단 착오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그동안 권력과 지위를 무기로 수많은 특혜를 누렸다. 그런 특혜는 심지어 일제 시대에서도 계속되었다. 해방 후, 왕실 재건 운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것 또한 그들의 존재감이 그만큼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지도자나 특권층으로서의 의무는 하지 않고, 권리와 특혜만 누렸던 그들에게 국민들은 적잖은 실망감을 가져야 했다.


 

 

 

그런 현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서 정치인들을 믿을 수 있노라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친일파의 후손들은 지금까지도 권력의 중추에 있거나 경제적인 혜택을 누린다. 부끄러운 역사로 남은 일제 강점기에 대한 분노는 아직도 살아있지만, 그 일의 결과는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덕혜옹주나 영친왕을 비롯한 조선의 왕실이 과연, 그런 부끄러운 역사에서 떳떳할 수 있을까. 덕혜옹주는 일제가 주목하는 위험인물이 아니었고 한국의 왕실은 그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는 한국을 이용하기가 훨씬 더 수월했다. 그들은 백성의 고통에 지도자로서의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영화는 현실일 필요가 없다. 현실대로만 나가자면, 덕혜옹주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밋밋해질 수밖에 없다. 영화 자체로만 보자면 연기자들의 뛰어난 연기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덕혜옹주가 실존인물이라는데서 오히려 감동은 반감된다. 독립 후, 덕혜옹주가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불합리하다 주장하는 영화 속 김장한(박해일 분)의 외침은 역사적으로 볼 때, 그다지 공감가는 외침은 아니다.


 

 

 

시대에 휩쓸린 것은 덕혜옹주 뿐만이 아니다. 그의 마지막 나레이션처럼 그는 백성을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단순히 옹주라는 신분 때문에 그의 삶이 조명 받는 것일 뿐, 비참한 역사 속에서 왕실의 책임을 논하지 않는 영화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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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색 인종은 이제 아카데미 시상식을 무시해야할 때다"

미국 유명 흑인 배우인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핑킷 스미스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메시지에서 한 말이다. 그는 영화 <컨커션(concussion)>에서 열연하고도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윌스미스에 대한 분노의 표시로 오는 2월 28일로 예정된 제 88회 아카데미 시상식 불참을 선언했다.

 

 

 

 

흑인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역시 "백합처럼 흰 아카데미 시상식을 지지할 수 없다. 2년 연속으로 후보 40명 중에 유색인종이 하나도 없는 건 말이 안된다"며 불만을 표출했고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의 진행을 맡은 흑인 코미디언 크리스 록조차 자신의 트위터에 "이번 오스카는 백인들의 잔치"라며 비판에 동참했다. 자신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두고 비난을 하는 것은 한국적인 상식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의 비판에도 불구, 그는 진행자로 출연할 계획이다.

 

 

 

 

 

 

이처럼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후보작들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아카데미가 2년 연속 유색인종을 철저히 배제한 채, 백인 위주의 후보작을 선정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후보작 면면을 살펴보면 이런 비판은 일리가 있다. 남우주연상 후보, 여우주연상 후보는 물론이고 감독상과 작품상까지 전부 백인 위주로 선정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LA타임스는 후보 선정단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밝히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LA타임스는 지난 2012년 자료를 분석하여 오스카상 후보 선정단의 94%가 백인이며, 77%가 남성이고 흑인은 2%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다양성 측면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80년이 넘는 아카데미 상의 유구한 역사중 수여된 2900여개 트로피 중 흑인이 가져간 건 존 레전드까지 32번에 불과하다. 2006년 포레스트 휘태거가 남우주연상을 차지한 이래 흑인 주연상은 10년째 탄생하지 않았다. 흑인 여우주연상 수상자는 2001년 할리 베리가 유일하다. 과연 백인들 위주라는 비난이 일만하다.

 

 

 

 


 

그러나 이것이 비난 아카데미 자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가에 관해서는 좀더 심도있는 숙고가 필요하다. 일단 2015년의 영화 흥행순위를 보자. <쥬라기 월드> <스타워즈:깨어난 포스><어벤져스><마션><분노의 질주><007스펙터>등 흥행 상위 10위권 영화 중 2개의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 8개의 영화의 주연이 거의 백인이다. <스타워즈:깨어난 포스>에서 핀역을 맡은 존 보예가 정도가 흑인이지만 <스타워즈>자체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반길만한 소재는 아니다. 연기력보다는 판타지에 내용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 시리즈 물로 지금까지 반복되어온 소재라는 점 또한 시상식에서는 마이너스다. 실제로 <스타워즈>는 음악상, 시각효과상, 편집상, 음향상, 음향효과상 등 5개 부문에서 후보가 되었을 뿐, 작품상등에는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같은 작품에 나온 배우들도 흥행성에도 불구, 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그보다는 작품성과 연기력에 치중한 후보 선정이 이뤄졌는데, 그 와중에 흑인이 주인공인 영화 자체가 많지 않았다.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은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의 이드리스 엘바, <컨커션>의 윌 스미스, <헤이트풀8>의 새뮤얼 잭슨 등 흑인 배우는 모두 제외되었다는 점 역시 흥행성적과 화제성을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연기력을 중심으로 보아도 후보가 된 작품들이 결코 빠지는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작년에는 <나를 찾아줘>등이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며 논란이 되었는데 <나를 찾아줘>의 주연은 모두 백인이다.

 

 

 


인종차별로 따진다면 흑인이 아니라 동양인의 문제가 더 깊다. 역대 아카데미 수상자 중 주연상/ 조연상을 수상한 동양인은 1957년 <사요나라>의 우메키 미요시가 유일하다. 외국어 영화상이나 장편 애니메이션 상 등에서 일본인등이 수상한 적은 있지만 동양인들은 후보에 오르는 경우 자체가 거의 없다. 영화 <유스>의 주제가상이 후보에 오르며 주제가를 부른 조수미가 한국인 최초의 후보라고 화제가 된 것만 봐도 아카데미 상의 보수성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밝히는 유색인종은 '흑인'에 집중되어 있지만 아카데미 상은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탄생한 상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할리우드의 콘텐츠 자체가 백인 중심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후보에 오른 스타들이 단순히 '백인'이라서 논란이 되었지만 그들이 후보가 된 배경에 연기력과 화제성이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후보작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려운 상황. 의도적으로 흑인이 배제되었느냐 하는 점은 알 수 없지만 지금 후보에 오른 인물들을 빼고 흑인 배우를 넣는 것 역시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인종차별은 아카데미 시상식 자체가 아니라 콘텐츠 제작 자체에 있다. 실제로 2014년 <노예 12년>은 흑인들의 이야기를 다뤘음에도 아카데미 작품상을 포함하여 3관왕에 올랐다. 콘텐츠가 제대로 갖춰진 좋은 영화들은 아카데미의 주목을 받는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흑인들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 제작편수가 적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작품성과 흥행성을 고루 갖춘 영화들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 자체가 문제점이다. 인종차별이 있다면 제작환경 자체에 비판을 가해야 한다. 더군다나 단순히 흑인의 문제가 아니다. 흑인은 인종차별에 목소리를 낼 수 있을만큼의 영향력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지적하는 문제에서 동양인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단순히 '인종차별'이 아니라 '흑인차별'을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때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도 나왔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사회자도 흑인이다. 게다가 흑인들은 흑인들만의 시상식을 열 정도로 배타적인 면이 있다. 만약 백인만의 시상식이 있었다면 그것은 비판의 대상일 터다. 그러나 흑인만의 시상식이 열릴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모순일 수 있다. 약자의 입장에 있다고 하여 배타성이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차별이 있었다면 콘텐츠 제작 자체에 대한 차별을 개선하려는 노력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백인 중심의 시상식이 아니라 백인 중심의 영화 제작 환경부터 고쳐 나갈 때, 시상식은 자연히 그 중심이 이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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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supermam.tistory.com BlogIcon 요즘이야기 2016.01.20 13: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도 프리한거같지만, 차별이많네요


 

<암살>1000만을 돌파한데 이어 <베테랑>역시 천만 영화의 반열에 올랐다. 비슷한 시기에 동시에 두 편의 천만 기록이 달성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며, 두 영화 모두 한국 영화라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암살>은 개봉전부터 초호화 캐스팅에 <타짜> <전우치> <도둑들>등을 연출한 최동훈 감독이라는 이름값으로 화제몰이를 하더니, 영화의 완성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으며 1000만 흥행을 달성했다. 전지현은 이 영화로 국내최초 천만 돌파 영화에 두 편 출연한 여배우가 됐다. 그가 출연한 <도둑들>역시 최동훈 감독의 작품이었다. <암살>은 결국 <태극기 휘날리며>를 제치고 흥행순위 9위에 오르는 저력을 발휘했다.

 

 

 

 

류승완감독의 <베테랑>의 흥행은 더 놀랍다. <암살>에 비하면 화제성이 덜 했음에도 올해 최장기 1위 기록도 다시 썼으며, <암살>과 비슷한 시기에 1000만 돌파를 달성했다. <베테랑>의 놀라운 흥행에 <암살>보다 더 많은 관객을 동원할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이 쌍끌이 흥행을 이끈 두 영화를 살펴보면 두 영화의 묘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전개 방식과 내용은 전혀 판이한 두 영화지만,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살펴보면 관객들이 어떤 영화를 원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두 영화는 부당한 권력에 대한 투쟁과 그 투쟁이 성공으로 향해 가는 과정을 통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전달하는 공통점이 있다.

 

 

 

<암살>은 독립군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암살>이 집중하는 것은, 그들이 나라를 위해 얼마나 희생했느냐 혹은 일본이 어떻게 무너져 가는가에 대한 조국 독립, 나라 사랑의 이야기가 아니다. <암살>은 차라리 한 에피소드에 중점을 둔다. 바로 친일파 제거 계획이라는 거대 목표를 설정한 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 스토리의 방점을 찍었다. 이 과정에서 부각되는 것은 일본이 얼마나 악독하고 독립군이 얼마나 희생했느냐 하는 교과서적인 내용보다는 그들이 그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액션과 긴장감이다.

 

 

 

애국심을 전반적인 분위기로 과장할만 한데도 <암살>은 그 애국심을 살짝 피해감으로써 오히려 부담을 줄였다. 그러나 <암살>이 집중한 것은 비록 현실이 아닐지라도 그들이 임무를 완수하고 결국 배신자를 처단하는 마지막 카타르시스다. 그들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독립은 다른 요인에 의해 일어났지만, 그들은 끝까지 절대 권력을 처단하는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완수해 낸다.

 

 

 

 

그런 과정에서 독립이라는 명제보다는 그들이 한 사건 안에서 어떻게 권력자들을 무릎 꿇리고, 또 그 임무를 완수하고 그들을 배신했던 인물마저 처단하는 과정을 강조하면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마지막 감정을 찝찝하지 않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암살>은 이야기 구조를 사건자체 보다는 캐릭터에 맞추면서 그들 안에서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모두 완결될 수 있도록 했다. 그리하여 마치 <암살>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동선에 의해 독립 과정이 전개되고, 그들로 인해 독립의 마지막이 완결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베테랑>역시 이런 면에서 암살과 다르지 않다. 절대 악으로 설정된 것은 재벌이라는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절대 권력을 가진 자다. 그는 악독하고 비열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런 그에게 권력이 주어지자 그의 악행은 도를 넘는다. 이 역을 연기한 유아인의 연기력이 얼마나 훌륭했느냐 와는 상관없이, 조태오라는 인물은 악역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를 처단하는 과정이 즐거울 수 있는 것은 그가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절대 권력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비록 현실에서 재벌을 발밑에 무릎 꿇리는 것이 녹록치 않다 할지라도, 관객들은 그 절대 권력이 무너지는 과정을 즐긴다. 왜냐하면 영화 속에서 조태오는 단 한치도 동정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악독하기 때문이다. 그 악독함 속에 관객들은 그가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 보며 마음 놓고 속으로 비난하고 손가락질 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 구조속에서 관객들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사실 권력이 무너지든 아니든, 여전히 삶은 팍팍하고 그 권력이 무너진 자리엔 또 다른 권력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사회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악순환은 반복된다. <암살>의 카타르시스와는 다르게 독립은 미국의 힘에 의해 일어났고 <베테랑>의 희열과는 상관없이, 재벌은 쉬이 무너지지 않는다. 혹여 그런 권력이 한 두개 무너져 내린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더 나은 삶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지금 관객들은 누군가를 탓하고 싶다. 그것이 비록 영화속의 환영이라 할지라도 누군가가 무너져 내리고 세상이 조금쯤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뀐다면 자신의 삶도 바뀌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사실 삶 자체를 바꾸는 것 보다는,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의 패턴을 바꾸는 편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기회조차도 거세당한, 아니 그렇게 느끼게 만드는 사회 속에서 누군가를 지탄하고 규탄해야 속이라도 시원한 분위기마저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권력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결국 그 권력을 무너뜨리는 영화는 천만을 이뤄냈다. 대단한 성과에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면서도 그런 현실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안타까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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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2>가 지난해 3월 30일부터 서울의 마포대교, 청담대교, 상암동 DMC, 강남대로 및 의왕시 계원예술대학교 인근 등에서 촬영을 하고 출연진들이 내한했다. 한국인 배우인 수현도 영화에 등장한다. 뿐이 아니다. 한국에서 미국보다 먼저 개봉을 확정지었고, 무려 93.6%에 달하는 예매율로 놀라움을 안겼다. CGV의 목표주가는 상향 조정되었고, 흥행 성적 역시 기대가 되는 시점이다.

 

 

 

겉만 보면 모든 것이 순조롭다. 한국 촬영과 한국 팬서비스에 엄청난 공을 들이며 한국 관객 몰이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면을 살펴보면 이런 영화의 인기에는 상관없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이름에 너무 크게 반응한 한국의 ‘오버 액션’이 눈에 보인다.

 

 

 

 

<어벤져스2>가 서울 촬영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던 건 서울시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울시 측은 <어벤져스2> 촬영을 위해 진행할 수 있도록 마포대교 교통 통제는 물론 버스노선 조정, 임시 정류장 설치 등 ‘어벤져스2’ 촬영을 적극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할리우드 영화 촬영 한 번에 버스노선과 마포대교등, 주요 교통 수단등이 통제되는 경우는 전세계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들다. 물론 대한민국의 드라마나 영화 촬영시, 구청등의 협조를 구해 촬영이 이어지고 시민들을 통제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서울시’가 직접 나서 모든 계획을 진두지휘 했다는 것 자체가 ‘헐리우드’라는 이름값에 매몰되는 행위는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무려 16일 동안 이어진 촬영 기간동안 마포대교나 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은 불편을 겪어야 했다. 시민의 편의보다 영화촬영이 우선시될 수는 없는 일이다. 마포대교가 10시간 동안 통제되는 사건은 마포대교가 생긴 이래 최초의 사건이었을 정도다. 서울에 살며 서울에 세금을 내고 서울을 운영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어벤져스> 제작팀이 아니라 시민들이다. 그들의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헐리우드 영화촬영이 중요했을까 하는 지점은 분명 집고 넘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이 지원에 <어벤져스>측이 기꺼이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어벤져스>가 한국에서 제작한 부분에 대한 제작비 지원이 이뤄졌다. 외국영상물 로케이션 인센티브 제도에 따른 제작비 지원(영화진흥위원회)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제도 때문에 ‘어벤져스2’는 서울 촬영에서 사용한 제작비의 30% 가량을 현금으로 회수해갔다.

 

 

 

국내촬영에 들인 130억원 중 무려 39억원을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되돌려 받는 <어벤져스2>측의 지원금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도 최고 수준에 달한다. 더군다나 개봉일등을 앞당기는 등의 특혜를 주었다고는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도 아니다. 한국 개봉일은 미국보다는 빠르지만 핀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필리핀등 7개국 보다는 하루 늦기 때문이다. 개봉일을 조금 앞당겼다고 해서 엄청난 특혜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이다.

 

 

 

서울영상위원회 측은 “외국에서 제작비를 쓰면 일정 비율을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어벤져스2’ 같은 경우 지원 사업의 30%가 지원 대상에 해당된다. 이번 유치 과정에서도 다른 나라와 많은 경쟁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30% 지원은 합당하다고 생각했다”며 자신들의 결정이 정당했음을 주장했다.

 

 

 

물론 다른 나라도 헐리우드 영화 촬영금액을 많게는 최대 50%까지 지원해 준다. 그러나 문제는 이 금액이 원래 영화발전기금에서 충당된 비용이 아닌 관광진흥개발기금이었다는 사실이 한 매체의 취재 결과 밝혀졌다는 점이다. <어벤져스2>에 환급해줘야 할 39억원 가령은 그들이 불러일으킬 관광유발 효과를 감안하여 관광객 유치 예산으로 지급되었다고 한다. 영화 촬영이 관광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관광객 유치 예산을 퍼 부은 것.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용할 수 있는 관광객 유치 지원 예산이 17억원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측은 “올해 예산은 10억이고 전년도 이월 예산이 7억원이다. 저희가 올해 준비한 소요예산으론 부족해서 이 부분에 대해선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 중이다”고 밝혔지만 나머지 22억이 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충당되는지는 의문스러운 지점이 남았다. 빚을 지면서 까지 해외 영화에 ‘투자’도 아닌, ‘지원’을 한다는 것이 결코 이해될 수 없는 지점이다. 단순히 헐리우드 영화를 찍기 위해 전년 예산까지 다 끌어 모아도 예산이 부족한 마당에 빚까지 지며 <어벤져스2> 촬영을 유치할 필요가 있었을까. 한국영화에 쏟는 지원에 비해서도 훨씬 더 파격적인 대우였다. 헐리우드 영화도 좋지만 절대 공감가기 힘든 부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정진우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은 SBS <현장 21>인터뷰에서 “(어벤져스2 측이)여기 와서 100억원 쓰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거기다가 한국서 흥행하면 1,000억원 정도를 벌어간다. 제작비 50%를 한국서 찾아가는 것”이라며 <어벤져스2>가 갖는 특혜가 불합리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와 같은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어벤져스2>가 서울시 촬영을 하면 실질적인 경제 효과와 막대한 홍보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영진위는 ‘어벤져스2’ 국내 촬영 양해각서 체결식에서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국내 촬영으로 인해 발생하는 국내 산업에 대한 생산유발효과는 약 251억 원, 부가가치유발효과는 약 107억 원 정도일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이로 인한 고용유발효과는 약 300명(엑스트라 등 보조출연자는 제외)이 예상되며, 촬영 이후 국내 외국인 관광객 수가 약 62만 명 증가하고, 이에 따른 소비지출로 연간 약 876억 원 가량의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고 뿐만 아니라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2조 원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했다.

 

 

 

그러나 단순히 영화에 서울이 배경으로 등장한다고 해서 이정도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어벤져스> 시리즈는 히어로물에 더한 액션물에 가깝다. 배경이나 상황들도 대부분 CG로 처리된다. 배경이 중요한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요소가 되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영상을 보면서 “저곳이 히어로들이 부순 건물이구나. 저곳에 꼭 가보아야 겠다”는 마음이 들 것이라는 예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영화의 총 수익을 합쳐도 2조가 될까 말까한 상황에서 브랜드 상승으로 2조원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 또한 억지다.

 

 

 

일례로 <트랜스포머2>에서는 아예 중국이 배경이었지만, 그 영화를 보며 “중국에 꼭 가봐야 겠다”고 생각하는 관객들은 거의 없었다. 영화는 실제를 방불케 하는 CG로 만들어진 화려한 볼거리와 로봇의 캐릭터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어벤져스>도 그 맥락에서 벗어나는 영화라고 할 수 없다.

 

 

 

진정으로 관광객 유치를 하려면 관광객이 오고 싶은 나라를 만들어야 할 일이다. 각각 지역의 특색을 살리고 그 특색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며, 건물이나 이미지등을 천천히 바꿔나가야 한다. 어딜가나 똑같은 건물과 똑같은 프랜차이즈같은 풍경이나, 심각한 미세먼지등의 환경 문제부터 해결하고 볼 일이다.

 

 

 

한류 관광 상품 정도로 홍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외국인이 한국을 다시 찾고 싶은 나라라고 여기겠는가. 이 나라만의 특징이 확실하고 뚜렷해야 관광객들이 매력을 느끼고 찾아온다. 안일한 정책으로 ‘헐리우드 영화’에 집중하는 관광효과가 대체 어느정도까지 실효를 거둘지는 알 수 없으나, 빚까지 져가면서 다른 나라 영화에 지원을 하는 것은 도를 넘어선 지나친 사대주의의 단면이 아닌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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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blogandme2.tistory.com BlogIcon 블로그앤미 2015.04.21 16: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희는 메타블로그 서비스인 블로그앤미(http://blogand.me) 입니다. 블로그가 너무 멋지네요. 저희 서비스에 등록해도 될까요?


 

약 700만의 관객 몰이를 하며 흥행을 일궜던 <타짜>의 후속편, <타짜-신의손(이하 타짜2)>의 VIP 시사회가 열리며 본격적인 개봉 준비에 착수했다. 조승우와 김혜수가 주연을 맡은 <타짜>는 아직까지 회자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주연을 맡은 배우들 뿐 아니라 유해진이나 김윤석같은 배우들 역시 재조명 받은 것은 <타짜>가 만들어낸 그만의 분위기와 스토리가 그만큼 대중들의 인상에 깊게 남았기 때문이었다.

 

 

 

<타짜2>는 <타짜>의 아성을 기반으로 진행 될 수 있었다. 워낙 좋은 소재이고 허영만 화백의 탄탄한 원작이 존재하는 까닭에 <타짜>의 후속편이 제작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탄탄한 원작의 힘이 흥행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은 미지수다.

 

 

주연급의 존재감과 연기력, 전작에 미치지 못해

 

 

첫째로 <타짜2>의 주연의 존재감이 아쉽다. <타짜>는 이미 여러번의 흥행력과 연기력을 인정받은 조승우와 김혜수라는 배우가 전면에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러나 <타짜2>의 주인공은 배우로서 보다 빅뱅의 탑으로 익숙한 최승현과 충무로에서 아직 존재감이 확실하지 않은 신세경이다.

 

 

 

영화를 선택하는데는 배우의 호감도 역시 중요한 요인이다. <타짜>의 이름값을 기대하는 대중들에게 최승현과 신세경이 얼마나 어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렇기에 이들의 연기력에 대한 평가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타짜>의 성공은 주연과 조연배우 모두 주목받는 뛰어난 연기력을 보였기에 가능했다. <타짜2>에서도 김윤석과 유해진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주인공을 보조해 주는 역할이다. 최승현-신세경-이하늬가 과연 조승우와 김혜수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뛰어넘지 못한다 하더라도 동등한 역량을 선보일 수 있을지가 주요 흥행포인트다.

 

 

 

<타짜>에서 “나 이대나온 여자야.” “내 손목을 건다.” “쫄리면 뒈지시던가”등의 대사들이 유행어가 된 것 역시 그 대사를 소화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에 기반했다. 아무리 좋은 대사라도 배우가 그 대사를 살리거나 죽일 수 있다. 아직 충무로에서 검증되지 않은 주연배우들이 짊어져야 하는 것은 자신의 몫 이상을 해낸 전작의 배우들의 무게다.

 

 

<타짜>를 기대하는 관객을 만족시켜야

 

 

또한 <타짜2>의 스토리 라인 역시 <타짜>와 비슷한 수준의 흥미를 자아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타짜2>는 열심히 화투를 쳐야하는 인물들의 절박함에 집중하지만 이야기 전개는 평이하다는 편이다. 더군다나 신세경과 최승현의 러브라인이 너무 청춘 영화처럼 전개되는 바람에 <타짜>특유의 분위기를 살리는데도 실패했다.

 

 

 

허나 전체적인 그림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타짜>를 기대하고 보기에는 실망스럽지만 단순히 오락용 영화로서는 그 역할을 어느정도 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관객들이 과연 그 정도의 흥미와 재미를 흥행으로 연결시켜 줄 것이냐 하는 것이다. <타짜>라는 이름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오히려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그만큼 줄이고 볼 수 있었겠지만 <타짜>의 이름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이제 개봉만을 남겨둔 <타짜>가 과연 이런 모든 변수를 딛고 다시 한 번 흥행작이 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관객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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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취향은 제각각일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최고의 영화라 하더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아쉬운 영화일 수 있다. 최근 흥행가도를 달리며 천만 신화를 쓸 것이라 예상되는 ‘명량’도 마찬가지다. 이순신장군의 명랑해전을 바탕으로 이야기는 진행되지만 사실 서사구조의 특별함은 찾을 수 없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전반부는 지루하고 캐릭터는 이순신 장군 하나에만 집중되어 있다. 상업영화로서 명량이 가지는 특별함은 전국민적 영웅인 이순신이라는 것과 최민식이라는 걸출한 배우의 연기력, 그리고 전투 장면이 시작되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몰입감 정도다. 그러나 사실 전투장면마저도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다.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영화’라기 보다는 ‘고증’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명랑은 새로운 해석도 색다른 영화적 기법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덤덤하고 무던하다. 그래서 영화는 상업영화로서의 힘을 잃어버렸고 군데군데서 이야기가 늘어지는 구멍도 발견된다.

 

 

 

이에 진중권이 ‘졸작’이라며 독설을 날렸다. 이순신 마케팅에 힘입어 이해할 수 없는 흥행레이스를 펼치고 있다는 것이 진중권의 의견. 더불어 감독의 전작  <최종병기 활>은 괜찮았다며 코멘트를 다는 잊지 않았다.

 

 

 

 

진중권의 말은 개인의 의견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발언이다. 사실 완전히 틀린말이라 할 수도 없다. ‘이순신’이라는 성웅, 최민식이라는 연기파 배우의 호감도를 배제하고 영화자체만 본다면 이정도의 흥행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이순신 마케팅, 애국심 마케팅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진정한 명작이라면 시대와 세대, 국적을 관통해 사람들을 아우르는 특별함이 엿보여야 한다. 그러나 <명량>은 ‘한국인’에게만 통할 영화다. 대작은 아니더라도 수작이라고 부르기조차 힘들다. 물론 전적으로 이순신의 호감도에만 기대서 이런 흥행스코어가 나온다고 생각하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영화 자체의 완성도나 재미보다는 마케팅의 승리에 가깝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중권의 발언이 아쉬운 이유는 그의 화법에 있다. 영화의 완성도 때문이든 마케팅의 승리든 700만이 넘은 영화를 ‘졸작’이라 말하는 것은 그 말이 사실 진실이라 하더라도 거부감이 들게 한다. 진중권은 문화 평론가이자 교수다. 게다가 유명인이다. 그의 말에는 파장이 있다. 단순히 개인적인 의견을 올리는 일반인들과는 그 무게가 다르다. 그는 뛰어난 지식과 독설로 유명해 졌지만 SNS는 굳이 그런 토론을 벌이지 않아도 좋은 곳이다. 문화 평론가의 진심어린 평론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단순히 ‘졸작이다’는 발언은 단순한 비난이나 폄훼처럼 느껴진다. 더군다나 진중권이 인정한 <최종병기 활>은 <아포칼립토>의 표절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영화다. 졸작이라는 영화를 <최종병기 활>에 비교하는 것또한 그다지 동감이 가지는 않는 일이다.

 

 

 

 물론 진중권의 논리를 펴기 시작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반박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말은 내뱉는 순간 그 말에 대한 ‘감정’이라는 것이 생긴다. 아무리 개인적인 의견이고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극단적인 말은 때때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진중권은 2012년 심형래 감독의 <디워>를 놓고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이때는 방송에서 ‘디워 쓰리디는 재래식 변소에 대리석을 까는 격’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 물론 <디워>역시 잘만든 영화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진중권의 발언에 반발한 사람들은 극장으로 몰려갔고 영화는 700만이 넘는 흥행스코어를 기록했다. 진중권이 <디워>제작진 측에서 보낸 스파이라는 웃지못할 유머까지 등장했다.

 

 

 

사실 잘 만들어지지 못한 영화는 수없이 많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 역시 자유롭게 행해질 수 있다. 그러나 애국심 마케팅이든 어쨌든, 누군가는 재밌게 보았을 영화에 대해서 발언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졸작이다’ 라는 독설을 날린 후, 그 발언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알아서 처리하라는 식의 태도는 아쉽기만하다. 불만이 있다면 '잘만든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도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영화에 대한 비판이 비난처럼 들리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반발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렇기 때문에 진중권이라는 독설 브랜드가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영화들을 다 제쳐두고 명랑이라는 흥행작만을 향해 독설을 쏟아내는 진중권의 발언 역시 그다지 걸작이라고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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