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2008년 2월 7일) 방송 된 드라마 [아현동 마님] 에서 놀랍게도 자사 프로그램인 [무한도전] 을 비판하는 대사가 '쌩뚱 맞게' 튀어 나왔습니다. 우선 [아현동 마님] 에서 나온 [무한도전] 관련 대사부터 살펴 보도록 하죠.
a: 요즘 남자 연예인들 웃기지 않아요?
b: 왜?
a: 헬기아래에서 그물잡는데 떨어지지도 않는거 무서워서 저러는거 보면 억지고 쓴웃음만 나와.
c: 그럼 안보면 되지.
a: 저도 안 보다가 채널 틀다 본거에요. 아무튼 시청자 생각은 못해.
[무한도전]을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이 대사가 어떤 에피소드를 나타내는지 한 번에 눈치 챌 수 있었을 겁니다. 바로 '동해가스전' 특집 중 무한도전 멤버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웃기기까지' 합니다. 첫번째 재밌고 웃기는 것은 MBC 드라마가 MBC 예능 프로그램을 은근히 씹었다는 것이고 두번째 재밌고 웃기는 것은 이 드라마를 쓰는 사람이 바로 임성한 작가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다름 아닌 임성한 작가가 [무한도전] 을 두고 '억지' 에 '쓴웃음' 운운하다니요. 문득 이런 명언이 생각납니다.
"네 자신을 알라."
임성한 작가가 [무한도전] 보고 쓴웃음이니, 억지니, 보기 싫으면 보지 말라느니 하는 말은 모두 다 어이없는 자가당착입니다. 임성한 작가야말로 드라마를 통해 쓴웃음에 억지를 보여주고 더 나아가 생각 없고 개념 없는 대사로 유명한 진정한 '억지 작가' 아니던가요? 멀리 갈 것도 없지요. 최근 시청자들의 엄청난 항의에 골머리를 썩었던 [아현동 마님] 속 대머리 쇼야 말로 갈데까지 간 억지쇼에 쓴웃음쇼였으니까요. 아니, 쓴웃음이라도 나왔으면 다행이었겠지만 그 조차도 나오지 않았으니 어쩌면 이거야 말로 진정한 전파 낭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한 기자는 임성한 작가의 이 '대머리 씬' 을 보고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 는 평가를 하기도 했는데 기자의 말대로 이 '대머리 씬' 이 임성한 작가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진짜 본색이라면 임성한 작가가 [무한도전] 을 운운하며 작가라는 위치로 은근히 비꼬고 깔아뭉개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습니다. 한 마디로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격' 이고, '임성한 작가의 눈에는 임성한 드라마' 같은 일만 보이는 격입니다.
비단 이번 [아현동 마님] 사건 뿐 아니라 그 전부터 임성한 드라마에서는 줄곧 직업을 비하하거나 여성을 비하하는 대사가 돌발적으로 튀어나왔고 작가의 잘못된 가치관이나 고정관념을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설파' 하는 듯한 충격적인 발언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 때마다 임성한 작가는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이라는 말로 교묘하게 사건의 본질을 흐려버렸고 그런 발언들을 통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시청률을 높이는 '야비하다면 야비한' 흥행 파워를 발휘했었더랬죠. 그것이 윤리적, 도덕적으로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는진 상관 없습니다. 임성한 드라마의, 그리고 임성한 작가의 궁극적 목표는 그저 '시청률 상승'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기사 입양아를 '개구멍받이' 로 표현하고, 수도 없이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행위도 바로 그런 목적이 없다면 정상적으로 나올만한 표현은 아니겠죠. 과연 이런 작가를 진정한 드라마 작가로 평가할 수 있는지, 이런 작가가 쓰는 드라마를 진정한 드라마로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시청률의, 시청률을 위한, 시청률에 의한...'시청률' 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비판하고 깔아 뭉개고 짓밟을 수 있다는 교묘한 잔인성과 가증스러운 교활함. 임성한 드라마를 보며 가끔씩 인간 세계 같지 않은 소름을 느끼는 것도 바로 이런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돕니다.
과거 박진형 기자가 쓴 "임성한, 드라마 작가 자격 없다." 라는 기사에선『임씨는 지금도 자신이 처한 처지에 대해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비판해 왔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순진을 가장한 무식인지 일부러 외면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아니다. 공중파 방송에서 그것도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드라마의 작가로서 어떻게 시청자들을 대해야 하는지 임씨는 감을 못 잡고 있는 것 같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지금의 임성한 작가의 현실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 정확한 지적입니다.
박진형 기자가 임성한 작가를 드라마 작가로 인정할 수 없었던 이유에는 '무자비한 상업화, 방송국의 사유화, 온갖 소재로 드라마를 엽기적으로 만드는 엽기성, 억지스러운 스토리 전개, 시청자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무례함' 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임성한 작가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임성한 작가만의 '개성' 이자 '특성' 입니다. 아니, 바꿔 말하자면 '치명적 단점' 이자 결정적인 '결격사유' 입니다.
또한 임성한 드라마 속에서는 등장 인물을 바라보는 애정이나 사랑은 발견할 수 없고 그저 욕망과 아귀다툼만이 숨쉬고 있습니다. 임성한 작가의 전작이었던 [하늘이시여] 가 방송되던 당시 문화평론가 강명석씨는 [하늘이시여] 를 '섬뜩한 모성' 이라고 표현하면서,
『 이 드라마에서는 오직 모성과, 그들이 택한 ‘좋은 남자’들만 가치가 있다. 배득과 미향은 자경의 결혼을 방해하지만, 그들의 남편과 동생은 흔쾌히 결혼을 돕는다. 여자의 적은 여자고, 남자들은 다 착하다. 그런 남자와 자식을 맺어주려는 노력은 어떤 것도 죄가 아니다.
임성한 작가는 전작 ‘왕꽃 선녀님’에서처럼 입양아를 ‘개구멍받이’라 부르는 패악을 저지르지 않을 뿐, 오직 어머니들의 친자식에 대한 욕망만으로 드라마를 이끌어가면서 숱한 논란을 일으킨 전작들보다 더 불편한 가족 이기주의를 보여준다.
과거 홍파와 영선의 결혼을 반대해 모든 문제의 발단이 됐던 란실이 이젠 둘을 맺어주겠다며 가볍게 “옛날 일은 사과하면 되지”라고 말하고, 그토록 악독한 배득마저 결혼하는 자경을 애틋한 눈길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용서 받는 모습은 정말 섬뜩하다.
그러나 더 섬뜩한 건 드라마 밖의 현실이다. 그 어떤 짓을 해도 ‘자식 때문에’라면 모든 게 이해되는 드라마가 시청률 30%를 넘기는 사회. 우리는 ‘하늘이시여’를 통해 차마 말하지 못했던 섬뜩한 욕망을 발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누구도 가족에 대한 욕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인간에겐 솔직하지 않은 게 차라리 나은 것도 있는 법이다. 그건 위선이 아니라 최소한의 품위다.』
라는 말로 임성한 드라마를 정면에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냉철한 분석가이자 중립적 비평가로 소문난 강명석씨가 '섬뜩' '불편' '악독' 이란 말로 임성한 드라마를 격렬하게 공박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임성한 드라마의 본질이라는 것은 어쩌면 [아현동 마님] 에서 보여 준 '대머리 씬' 의 그것에서 한치 앞도 벗어나지 못한 섬뜩하고 불편한 '막장' 그 자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강명석씨 뿐 아니라 임성한 작가에 대한 문화평론가들의 '불편한 시선' 들은 수없이 발견됩니다. 대중문화 평론가 이영미씨는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에서는 상당히 이상한 설정과 시선들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전파를 타 그대로 시청자들의 머릿 속에 유입되는 것이 문제』 라며 임성한 드라마의 파격성에 부정적 의견을 보였고 정석희 씨 역시 『임성한 드라마에 나오는 수 많은 인간들은 납량특집이 따로 없을 정도로 무섭다. 애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 임성한 드라마의 인간들은 어색하다 못해 측은하기까지 하다.』 는 비평을 한 적이 있지요.
그 뿐인가요. 문화평론가 김현진씨는 『 임성한의 드라마는 정녕 독한 년들의 향연이다. <하늘이시여>에도 자경이 붙잡고 생난리를 치는 자경이 새엄마나, 제 배 아파 낳은 자식들의 시엄마 친엄마 노릇까지 하려는 자경이 엄마 보면 말 그대로 하늘이시여… 하는 탄식이 자동으로 나온다. 지독한 년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움찔한다. 그녀들이 무서운 이유는 자기 행동에 한 치의 의심도 없다는 것이다. 의심 없는 사람처럼 무서운 게 뭐가 있을까.
고민 없는 인간처럼 강력한 게 뭐가 있을까. 다 갖고 말 거야, 전부 다, 다, 다! 그래서 살다 보면 지독하고, 자본주의에 너무나 잘 순응한, 부자 오빠를 꼬셔 부자 아빠로 만들려는 의지가 충천한 여자들을 보면 나는 힐끔 놀라고 마는 것이다.차마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는 못하지만 당신, 혹시 임성한… 정녕 그 나라에서 오셨나요? 정녕 그 나라에서 온 여자분인가요, 네?』 라며 임성한 드라마와 '독한 년' 들의 향연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청자들 뿐 아니라 문화 평론가까지 경악하게 만들고, 온갖 억지 설정에 비하 발언으로 여태껏 드라마를 이끌어 온 작가가 다른 프로그램을 보고 '억지' 운운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 우습디 우스운 말장난이 아닌가요?
적어도 임성한 작가가 그렇게 비꼰 [무한도전] 속에선 임성한 드라마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교활한 가증과 위선, 섬뜩하고 무서운 독함, 욕망과 허영 따위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임성한 작가의 눈에는 [무한도전] 의 모습이 억지고 쓴 웃음이었을테지만 그래도 그들이 임성한 드라마의 사람들보다 아름다운 이유는 우리 곁에서 우리와 같이 웃고 떠들고 무서워하는 진짜 '우리의 모습' 이기 때문입니다. 인간답지 않은 인간들로 가득 찬 그녀의 드라마에서 느낄 수 없는 온정과 따듯함, 눈물이 [무한도전] 에게는 있습니다.
씁쓸합니다. 그리고 무섭기까지 합니다. 드라마 답지 않은 드라마가 TV 속에서 버젓이 방송되고 있다는 사실과 '주제 파악' 조차 하지 못한 작가의 글이 그대로 방영되고 있는 현실이 말입니다. 우리는 언제쯤이면 제대로 된 임성한 드라마를 만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정말 어쩌면 그녀가 절필을 하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임성한 식 인간들의 '섬뜩한 대사' 를 들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이 아주 많이, 정말 많이 씁쓸하고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