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그만큼 여자의 독한 마음이 무섭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흥행 드라마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악녀' 들이다. 착한 여자들보다 확고한 개성과 색깔로 드라마를 휘어잡는 악녀들의 모습은 밉긴 하지만 결코 싫진 않다.


때로는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때로는 시청자들을 소름돋게 한 드라마 속 악녀들. 그녀들의 '악녀 열전' 속으로 들어가보자.




[엄뿔] 의 장미희 : '악녀지수' ★


2008년 [엄마가 뿔났다] 신드롬의 중심에는 '장미희' 가 있었다.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캐릭터인 고은아다. 어렸을 때부터 부잣집 외동딸로 자랐고, 남부러울 것 없는 외모와 재력을 가진 그녀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속물이자 천것으로 생각하는 마나님이다. 스스로를 귀족이라 칭하고, 며느리에게 "맘에 들지 않는다." 며 대놓고 구박을 하는 그녀는 [엄뿔] 의 대표적 악역이었다.


그러나 따박따박 따지는 며느리에게 말싸움에서 지기도 하고, 남편 앞에서 무릎을 꿇는 그녀의 모습은 악녀라기 보다는 철없는 재벌집 마나님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 남편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갖은 애교를 다 떨고, 사돈 앞에서 망신을 당하자 이탈리아 컴퍼니에 컴플레인을 걸어야겠다며 당황해 하던 그녀의 모습을 어찌 악녀라고만 칭할 수 있을까. 밉기보다는 귀여운 그녀 덕분에 [엄마가 뿔났다] 가 빛났던 것 같다.



[인어아가씨] 장서희 : 악녀지수 ★★☆


장서희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 놓은 드라마 [인어아가씨]. MBC 연기대상 통산 5관왕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했던 이 드라마에서 아버지에게 처절한 복수를 하는 '은아리영' 은 화면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을 자아낼 정도로 파괴력 있는 캐릭터였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 는 좌우명 아래 아버지와 바람난 한혜숙에게 온갖 망신을 다 주는 그녀의 모습은 비록 복수라는 미명 하에 행해졌지만 악독하고 무서웠던 것이 사실.


아버지에게 뺨을 맞자, 아버지의 처에게 그대로 복수를 하고 병을 깨 자해까지 하는 모습은 '독한 여자' 의 전형을 보는 듯 했다. 허나 바람 난 아버지때문에 처절한 어린 시절을 살았고, 눈까지 먼 엄마를 모시고 살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던 그녀의 인생을 살펴보자면 그녀의 악행조차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장희빈] 의 정선경 : 악녀지수 ★★★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 장희빈. 지나가던 삼척동자도 다 안다는 그 악명은 지금까지 대대로 이어지며 '드라마' 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정적이자 연적이었던 인현왕후를 제거하기 위해 갖은 모함과 누명을 다 씌웠던 그녀의 처절한 인생은 그 어떤 악녀들보다 지독한 느낌까지 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낱 역관의 딸로 태어나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야만 했던 그녀의 몸부림이 안쓰러워 보인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악행은 곤위를 차지하기 위해 그녀가 택했던 투쟁의 역사로 일변된다. 훗날 사관은 장희빈을 두고 "장희빈(嬪). 아명은 옥정, 본관은 인동. 효종 10년인 기해년 9월 19일, 한미한 중인이며 역관인 장형의 딸로 태어났다. 보잘것 없는 신분에서 몸을 일으켜 만민의 어미요, 지존의 짝인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었으나 인현왕후가 세상을 떠난 해, 숙종 27년 10월 10일 왕비를 저주한 죄로 자진하여 죽으니 그 때 장희빈의 나이 마흔셋이었다." 라고 적고 있다.


지금 그녀의 시신은 숙종, 인현왕후와 함께 서오릉에 묻혀 있고, 위패는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와 함께 칠궁에 모셔져 있다.




[아내의 유혹] 의 김서형 : 악녀지수 ★★★☆


2009년 상반기 화제의 드라마 [아내의 유혹]. 이 드라마의 진정한 주인공은 김서형이라 할 만 하다. 친구의 남편을 빼앗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친구의 죽음조차 묵인해 버리는 그녀의 악행은 드라마가 진행되어 갈수록 심해져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렀다. 여기에 시어머니에게 안하무인으로 대하고, 자신의 앞날에 문제가 되는 사람들은 모두 제거해버리는 그녀의 모습은 '진짜 악녀다'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몸싸움도 서슴지 않고 끝까지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장렬한 죽음을 선택했던 그녀의 모습은 처절하다 못해 추하기까지 했다. 아! 이 징그러운 악녀, 신애리!



[별은 내 가슴에] 의 박원숙 : 악녀지수 ★★★☆


故 최진실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로 사랑받고 있는 [별은 내 가슴에]. [질투] 와 함께 한국 트렌디물의 역사를 바꿔 놓은 작품으로 회자되는 이 작품에서 최진실에 대적하는 악역으로 나온 인물이 바로 박원숙이다. 당시에 박원숙, 조미령, 박철은 [별은 내 가슴에] 에서 가장 꼴보기 싫은 캐릭터 1, 2, 3위로 기록되기도 했는데 그만큼 그들의 악행이 시청자들의 감정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박원숙과 최진실이 치고 받고 싸웠던 '엘레베이터 씬' 은 두고두고 회자 될 명장면으로 긴박하지만 코믹했던 이 장면으로 그녀는 당대 가장 재미있고 귀여운 악녀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에 문이 닫힌지도 모르고 나가려다 문에 부딪히는 장면은 박원숙 캐릭터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코믹하지만 그만큼 꼴보기 싫었던 '악녀' 박원숙의 캐릭터를 완성했다 할 것이다.



[토마토] 의 김지영 : 악녀지수 ★★★★


[토마토] 의 김지영. 당시 '착한여자' 캐릭터는 도맡아 했던 김희선의 상대역을 하려 한다면 무조건 '악녀' 타이틀은 달고 시작해야 했다. 김지영 역시 김희선에게 맞서기 위해 스스로 악녀 캐릭터를 선택한 케이스로 [전원일기] 에서 푸근하고 순박했던 복길이 이미지를 벗어 던지는데 결정적 터닝 포인트가 됐다. 5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 덕택에 세련된 도시여성 이미지를 회복하는데도 성공했고 말이다.


김지영은 [토마토] 뿐 아니라 [전설의 고향] '구미호' 에서 구미호 역을 소화하며 악녀의 진수를 보여주기도 했는데 그러한 자기 변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김지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작년에는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에서 열연을 펼쳐 각종 영화제의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어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미스터 Q] 의 송윤아 : 악녀지수 ★★★★


[미스터 Q] 의 송윤아. 송윤아 역시 김지영과 같은 케이스로 '김희선' 과 맞서기 위해 악역을 선택한 배우 중 한명이다. 워낙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데다가 이미지 자체가 세련되고 깔끔해서 지적이면서도 교묘한 악녀 캐릭터를 절묘하게 소화해 냈다는 극찬을 받았다. 당시 김희선은 한 토크쇼에서 "송윤아 언니가 너무 착하고 이쁜 언닌데, 연기를 할 땐 어떻게 그런 연기를 하는지 놀랍다." 고 이야기 할 정도였다.


[미스터 Q] 의 대성공 이후에 송윤아는 연기자로서 자신의 이름값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리며 톱스타로서 확고한 자기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2008년에는 김하늘과 함께 주연으로 나섰던 드라마 [온에어] 가 히트하면서 다시 한 번 송윤아라는 배우의 이름을 각인시키기도 했다.



[대장금] 의 최상궁 : 악녀지수 ★★★★


[대장금] 을 이끈 것은 비단 이영애 뿐이 아니었다. 이영애의 뒤를 받쳐 준 한상궁 양미경과 최상궁 견미리가 없었다면 [대장금] 의 대성공은 결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무수한 악행들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최상궁 견미리의 활약은 대단한 것이어서 [대장금] 을 논할 때 결코 빼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상궁이 아름다운 스승상으로 이름을 날렸다면 최상궁은 가문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는 악녀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장금] 이전만 해도 너무 선한 이미지 덕분에 본의 아니게 제한적인 캐릭터만을 소화해 냈던 견미리는 [대장금] 에서의 최상궁 연기를 계기로 악녀 대표 연기자가 되며 [주몽][이산] 등에서도 악역을 연기해야 했다. 이제는 "악역말고 착한 연기 하고 싶다." 며 투정을 부리는 견미리를 보며 정말 팔색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찬란한 유산] 의 김미숙 : 악녀지수 ★★★★

 
요즘 '국민 드라마' 급 대우를 받고 있는 [찬란한 유산] 에 김미숙이 빠지면 섭섭하다. 천사 같은 은성이가 있다면 악마 같은 백성희도 있어야 제맛이다. 매번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막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고 위기에 몰리면 사실을 털어 놓기 보다는 오히려 정면 돌파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아주 얄미운 캐릭터인 백성희는 김미숙을 만나 지적이면서도 세련된 악녀로 재탄생 할 수 있었다.


최근 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백성희의 불안한 심리를 미묘하게 포착하며 악녀의 새로운 장을 써 내려가고 있는 김미숙은 본인 스스로의 말처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연기 변신을 통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이브의 모든것] 의 김소연 : 악행지수 ★★★★☆


[이브의 모든것] 의 '허영미' 김소연. 이름만큼 허영과 욕심에 가득찬 아나운서 '허영미' 캐릭터는 지금까지 두고두고 회자되는 악녀 대표다. 세련되고 지적인 외모 뒤에 숨겨져 있는 추악한 인간미와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차지하고자 하는 그녀의 악행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지독했던 것이 사실. 당시에 김소연이 이 캐릭터를 얼마나 잘 소화했냐하면 [이브의 모든것] 이 방송되는 날에는 방송국에 항의 전화가 불통을 이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어정쩡하고 우유부단한 착한여자 '진선미' 채림보다 차라리 자기 주장 확고하고 개성 뚜렷한 허영미가 훨씬 매력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는 채림이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김소연' 중심의 드라마로 흘러갈 정도로 김소연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작품이었다. 김소연은 [이브의 모든것] 이 후, 악녀 이미지를 깨부수기 위해 절치부심 했다고 알려졌다.



[진실] 의 박선영 : 악녀지수 ★★★★☆


[진실] 의 박선영. 박선영의 연기인생은 [진실]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진다. [진실] 이전만 해도 어정쩡한 이미지였던 그녀는 [진실] 이후 확실한 자기 색깔을 가진 연기파 배우로 성장했다. 젊은 나이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악녀 캐릭터를 확실하게 소화해 냈던 그녀는 톱스타로 이름을 날리던 최지우, 류시원의 연기가 무색할 정도로 혼신을 다한 연기를 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친구에게 수능을 대신 보게 하고, 자동차 사고 죄목까지 뒤집어 씌우는 박선영의 악행은 지금까지 악녀라면 누구든지 한번쯤은 해봐야(?)하는 행동으로 회자되고 있다.



[천국의 계단] 의 이휘향 : 악녀지수 ★★★★★


[천국의 계단] 의 이휘향을 이야기하면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넌 빠져!!" 라는 명대사 하나만 말해도 이휘향의 악명은 한국 뿐 아니라 일본, 대만, 홍콩, 중국, 베트남까지 찌르고도 남음이 있다. 그만큼 악녀하면 이휘향이 생각날 정도로 이휘향은 독기와 서슬 가득한 악녀 역할을 가장 제대로 소화해 내는 배우다. 이 또한 출중한 이휘향의 연기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이휘향은 [천국의 계단] 뿐 아니라 [봄날] 에서도 면도칼을 휘두르며 비열한 웃음을 짓는 악녀 또한 소화해 냈고, 작년에는 [행복합니다] 에서 허영많고 독살맞은 재벌집 마나님을 연기하며 특유의 '악녀연기' 의 진수를 보여줬다. 그녀는 역시 수많은 악녀들 중에서도 레전드 오브 레전드, 전설 중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멋진 '못된 배우' 에게 박수를!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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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산] 을 보다보면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와 극 중 성송연으로 출연하는 '의빈 성씨' 와의 갈등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견미리가 분하고 있는 혜경궁 홍씨는 사사건건 성송연을 궁지로 몰아 넣으며 정조의 총애를 빼앗아 가려하고 '지체 낮은 도화서 화원' 따위가 자신의 아들을 홀린 것에 대해 마땅치 않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심각한 고부 갈등 중 하나로 보이는데 과연 실제로도 혜경궁은 의빈 성씨를 구박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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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속 혜경궁 홍씨는 정조와 성송연의 관계를 떼어 놓기 위해 '원빈 홍씨' 와 '화빈 윤씨' 를 궁궐에 들여 놓는다. 명문가의 여식들을 궐 안에 들여 놓음으로써 상대적으로 성송연의 입지를 약화 시키려는 혜경궁의 '전략' 은 [이산] 의 또 다른 갈등축으로 긴장감까지 자아내고 있다. 혜경궁의 계략에 맞서 정조의 총애를 받는 송연의 고군분투와 그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고 있는 효의왕후의 모습 또한 드라마답게 아주 극적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드라마와는 달리 실제 혜경궁은 홍국영의 누이인 '원빈 홍씨' 의 입궐을 적극적으로 만류하던 사람 중 한명이었다. 혜경궁은 <한중록> 에서 "스스로 원빈이라고 칭하는 것부터 요사스럽더니...." 라는 글귀로 홍국영과 누이 원빈 홍씨를 싸잡아 비난한다. 홍국영이 자신의 아비와 숙부인 홍봉한과 홍인한의 제거에 앞장 섰던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혜경궁은 홍국영이 누이를 통해 권세를 누리려 하는 점을 대단히 마땅치 않게 생각했다.


그러니 정조와 성송연을 떼어 놓고 홍국영의 뒷배를 봐주기 위해 원빈 홍씨를 스스로 천거하는 [이산] 속 혜경궁의 모습은 '완벽한' 픽션으로 봐야만 한다. 원빈 홍씨의 이른 죽음과 그와 함께 몰락하는 홍국영의 처참한 최후를 보면서 가장 기뻐했던 것은 다름 아닌 혜경궁,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혜경궁에게 마땅히 '제거' 해야 할 대상은 성송연이 아니라 오히려 원빈과 그의 오라비 홍국영이었던 것이다.


이번 주에 송연의 '라이벌' 로 등장한 '화빈 윤씨' 역시 혜경궁에 의해 궐 안으로 들어 온 후궁은 아니었다. 화빈 윤씨는 14년 동안 아들을 낳지 못한 효의왕후 김씨가 직접 천거해 올린 후궁이었다.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상상 임신까지 했었던 효의왕후는 '대통을 이어야 한다' 는 책임을 지기 위해 후궁을 들여야 겠다고 생각했고 여기서 간택 된 사람이 바로 화빈 윤씨였다. 숙종-영조-정조로 이어지는 '삼종의 혈맥' 은 효의왕후로서 반드시 사수해야만 하는 절대 반지였다. 즉, 화빈 윤씨의 입궐은 혜경궁이 아니라 효의왕후의 주도로 이뤄진 것이다.


재밌는 것은 실제 역사 속에서는 화빈 윤씨의 나인으로 들어간 것이 바로 '성송연' 이고, 정조는 화빈의 처소에 들락거리다 성씨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이산] 에서는 화빈과 송연이 정조를 사이에 둔 라이벌로 그려지고 있지만 사실은 송연이 화빈의 침방 나인이었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간에 송연을 '제거' 하기 위해 화빈 윤씨를 일부러 소개하는 혜경궁의 모습 또한 작가가 만들어 낸 완전한 '허구' 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명문가 출신의 두 후궁과 달리 일개 나인 출신이었던 의빈 성씨에게 '출신 컴플렉스' 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확인된 바 없으나 혜경궁은 화빈 윤씨만큼이나 의빈 성씨를 사랑했다. 오히려 의빈 성씨의 미천한 신분은 '외척의 발호를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는 평가를 받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고 이것에 대해 혜경궁 역시 공감했다. 의빈 성씨가 아들을 낳았을 때, 혜경궁은 정조와 효의왕후 만큼이나 기뻐했다. "왕실의 흥복" 이라며 만면에 웃음꽃을 피웠던 혜경궁이 의빈 성씨를 구박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게다가 의빈 성씨는 '투기' 하지 않음으로 하여 효의왕후와 혜경궁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 나인 출신의 태생적 배경 때문인지 검소하고 겸손했던 의빈 성씨는 아들을 낳고서도 모든 공을 효의왕후에게 돌리는 미덕을 발휘했다. 혜경궁이 의빈 성씨의 온화한 성품에 감동한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 후 의빈이 죽은 뒤에도 "하늘도 무심하시도다." 라고 한탄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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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빈 성씨의 자애로운 성품 덕에 혜경궁이 그녀를 '미워할 이유' 도 없었겠지만 더욱 깊숙이 들어가보면 효의왕후와 의빈성씨, 그리고 혜경궁은 지금의 시각처럼 '고부 관계' 로 바라볼 수 없는 관계이기도 했다. 혜경궁은 정조의 어머니이자 효의왕후의 시어머니인 것은 확실했으나 엄밀히 따지자면 '대비' 가 아니었다. 즉, 대비와 같은 대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위치에 처해 있었다는 이야기다.


당시 내명부 수장은 누가 뭐래도 중궁인 효의왕후 김씨였다. 성품이 온화하고 강직하여 '내유외강' 의 기품을 품고 있던 효의왕후 김씨는 내명부의 수장으로 흔들리지 않는 '중심' 으로 자리했다. 원빈 홍씨, 화빈 윤씨, 의빈 성씨의 입궐 또한 '승인' 하고 '결제' 할 수 있었던 사람은 효의왕후 김씨, 단 한사람 뿐이었다. 대왕대비였던 정순왕후도, 정조의 모후인 혜경궁도 실질적 위계 권력 관계로 따지자면 효의왕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임금이 총애하고 중궁이 '승인' 한 후궁의 일에 대해서 궐 내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례를 따져봐도 대비가 임금의 후궁을 내치거나 벌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숙종조에 명성대비 김씨가 장희빈을 궐 밖으로 내친 일이 있기는 하나 이것은 아주 예외적인 일이며 대부분은 중전의 손에서 '즉결 심판' 식으로 처결 되는 것이 '원칙' 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혜경궁은 '사도세자를 죽인' 풍산 홍씨 가문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여성이었다. 남편이 죽음으로 몰릴 때까지 침묵하고 암묵적으로 동조했던 것은 혜경궁 그 자신이었고 자신의 아들인 정조가 즉위한 그 날부터 그녀는 그 '원죄' 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었다. 이것은 바꿔 말하자면 혜경궁이 실질적인 발언권이나 영향력을 거세게 행사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정조에게나, 효의왕후에게나 혜경궁은 도의적으로 '섬겨야' 할 인물이었지 명을 받들고 따라야 할 인물은 아니었다. 그것은 내명부의 수장으로 모든 일을 관장하는 효의왕후에게 더더욱 중요시 되는 원칙이었다. 효의왕후는 혜경궁과 정순왕후 모두에게 성심을 다함으로써 '효부' 소리까지 들었으나 내명부의 일만큼은 자신이 관장하며 혜경궁과 정순왕후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양보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효의왕후가 중궁으로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였고 자존심이었다.


그러니 [이산] 에서 '성송연' 을 구박하는 혜경궁의 모습은 실제로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맞다. 혜경궁은 품성 고운 의빈 성씨를 미워할 정도로 모난 인물이 아니었고, 실제로 미웠다고 해도 며느리인 효의왕후의 강력한 비호가 있는 한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기도 힘들었다. 만약 혜경궁이 다시 살아 돌아와 [이산]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면 어떤 말을 할까.


"난 저럴 이유도 없었고, 저럴 수도 없었어요." 하며 억울해 하지 않을까.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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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래서... 2008.05.07 0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극을 그닥 좋아하지않게되었음...다른건 몰라도 사극만큼은 실제역사에 최대한 근접시켜야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함. 요즘은 너무 자극적이고 충격적인소재에 목숨거는것같음....

  2. 2008.05.07 1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보다 더 재밌게 읽었습니다.
    완전 정독.. 짝짝짝!!

  3. 하늘아래 2008.05.07 1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두 너무 흥미있게 읽었어요..ㄳㄳ

  4. 이산 2008.05.07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행에 눈이 멀어 역사를 왜곡하는 드라마 작가들은 각성하시오....

  5. 한심의 극치... 2008.05.07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과 중국보고 역사외곡 어쩌구 저쩌구 맨날 하지말고 본국부터 먼저 역사를 제대로 알리지. 드라마의 이야기를 역사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얼만데, 이런거 보고 애들교육은 어떻게 하구. 한심한 인간들. 지 멋대로 역사를 바꾸고 지랄이야.

  6. 쿠키 2008.05.07 1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적극 공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산을 보면서 말이 안된다고 여겼던 부분입니다. 이 글을 쓰신 분은 많이 연구하신 분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단편적인 지식만을 갖고 있던 제가 보기에도, 대비도 아니고 오랜 세월 쥐죽은 듯 죄인으로 살던 혜경궁 홍씨가 저렇게 당당하고 도도하게 말이 안되는 행위들을 하는게 정말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중록 첫부분에도 그런식으로 표현됐던 것 같은데...
    요즘 그런식으로 하는 혜경궁을 보면서, 드라마 초반에 견미리가 안어울리는데 왜 혜경궁으로 나올까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저렇게, 저런 성격으로 풀어쓸려고 견미리를 등장시켰군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많이 억지스러워요.

  7. ㅇㅇ 2008.05.07 1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제가 알기론 정순왕후가 내명부의 수장일텐데요

    정조의 후궁 간택도 정순왕후가 '후사를 보는 것이 급하다'고 하여 간택하라는 명을 내렸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 세자르 2008.05.07 1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순왕후가 아니라 효의왕후가 맞습니다. 다만 내명부의 가장 큰어른이라고 하면 정순왕후죠..실제적으로 내명부의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은 중전입니다. 조선조 역사상에서 대비가 큰 힘을 발휘한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건 대부분 특수한 경우

  8. ^^ 2008.05.07 1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 같아.~

  9. 초위시 2008.05.07 1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역사를 그닥좋아하지않아(이런-_- 죄지은 것 같아..) 사극드라마는 잘 보지 않습니다. 게다가 허구적인 요소가 너무 많아 싫어하는데 얼마전부터 이산을 보기 시작했는데 님이 아니었다면 전 또 드라마 그대로 믿어버렸겠지요...혜경궁이 효의왕후 의견을 여러번 무시하는데서 진짜 저럴 수 있나 싶기는 했지만..이제서야 답을 알아가네요_^^감사해요...잼있네요

  10. 너무 잘 봤어요.드라마보다 실제가 더 잼난다. 2008.05.07 14: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밋어요.

  11. ares97 2008.05.07 14: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추~ 재미있는 역사의 진실이었습니다. 잘모르고 있던 허구에 대해 이렇게 속시원하게 풀어주시니... 드라마에서 속았다 생각하니까 혹시 이글도 허구?

  12. 옛날의 복잡한 상황을 알고있지 못한 상태에서는 2008.05.07 15: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드라마처럼 풀어가는 게 시청자 입장에서 쉽게 다가가기 때문에 이렇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혜경궁의 그런 입지를 이해시키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잖아요...중간에 티비를 시청한 사람들 입장에서도 이해안가는 부분이 많았을껍니다. 그래서 이렇게 내용을 바꾸지 않았을까요? 다 이해시키려면 너무나 긴 역사를 방영해야했을꺼예요.

  13. 구경꾼 2008.05.13 1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홋..안그래도 이산 보면서 혜경궁홍씨 역할에 고개가 갸우뚱할때가 많았는데..
    이글 보니 이해가 되네요.. 역시 사극도 그냥 허구드라마일뿐이네요

  14. 발해 2008.08.20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청난 글이군요.

  15. 호오라! 2008.11.21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가 더 재미있아요... 그러니까 왜 픽션을 가해서는 혜경궁 홍씨 나쁜 사람 만들어...

  16. 저도 2009.03.27 1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하는지라 그 부분을 여러 책으로 미리 접했었는데
    드라마 이산이 풀어나가는 방식을 보고 뭥미..했지요 ㅎㅎ
    한중록을 보면 후반부의 절반 이상이 홍국영과 그 누이인 원빈을 까는 얘기 뿐인데 말입니다.
    게다가 정조와 효의왕후가 효심이 깊어서 혜경궁을 잘 챙겨준 거지
    실제로 혜경궁은 궁내의 지위로 보나 정치적인 위상으로 보나 큰소리를 칠 군번이 아니었고 말이죠.

  17. Favicon of http://liposuccion-du-ventre.com BlogIcon Ardis 2012.02.16 0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사랑하는 내가 사랑 사용자 웹사이트 매우 으로 유명한 ! 공개

  18. Favicon of https://minihoppang.tistory.com BlogIcon 얄롱얄롱 2013.06.12 18: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이산을 다시 보고 있는데 궁금증이 생겨 이렇게 찾아보게 되었네요. 혜경궁 홍씨가 의빈성씨를 예뻐했다는 말을 언뜻 본 적이 있어서요. 고부 갈등은 드라마의 빠질 수 없는 코드인가봅니다.




"남편을 잃었는데 아들까지 잃겠습니까. 그 때의 아픔을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을겁니다."


[이산] 의 '혜경궁 홍씨' 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산] 속 혜경궁의 모습은 강인한 어머니이자 자애로운 부인이고, 당파에 남편을 잃고 아들까지 잃을 뻔한 비운의 여인이다. 그러나 역사 속 혜경궁의 모습은 과연 그러할까. 드라마 [이산] 이 벗기지 못한, 아니 어쩌면 벗기지 않은 혜경궁 홍씨의 '참모습'. [한중록] 으로 만들어 진 혜경궁의 가면을 벗겨보자.





남편을 버리다.


영조 20년 1월 9일. 열살의 '세자빈' 을 앞에 두고 장차 임금의 장인이 되는 홍봉한이 입을 열었다. "궁중에 들어가면 3전 섬김을 삼가고 조심해 효성으로 힘쓰고 동궁 섬김을 반드시 옳을 일로 돕고, 말씀을 더욱 삼가해 집과 나라에 복을 닦으소서." 어린 세자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집과 나라에 복을 닦으라." 라는 아버지의 당부를 가슴 깊이 새기고 어린 세자빈은 구중궁궐 속으로 들어갔다. 바로 이 사람이 영조와 정조, 순조의 시대를 관통한 여인, 혜경궁 홍씨였다.


이렇게 '집의 복을 닦으라.' 는 아버지 홍봉한의 말 한마디는 혜경궁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백두의 처지였던 홍봉한이 하루 아침에 세자의 장인이 되고, 숙부인 홍인한이 세도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면서 혜경궁은 자신의 가문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노론 명가로 일어나기 시작한 풍산 홍씨 가문을 위해 혜경궁은 나라와 남편과 자신을 모두 갖다 바쳐야 했다. 그것이 아버지의 성공이자, 숙부의 성공이었고 곧 자신의 성공이기도 했다.


'삼종(효종-현종-숙종)의 혈맥' 을 잇는 단 하나의 혈육, 그리고 장차 왕통을 이어나가야 할 사도세자와 세자빈 홍씨는 겉으로 보기엔 '최고의 결합' 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결합은 조선 최고의 비극을 불러 일으킬 수 밖에 없는 모순된 결합이었다. '소론' 을 지지하는 세자와 '노론' 명가의 세자빈은 섞일래야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혜경궁은 남편을 버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 에서 사도세자와 영조의 사이가 처음부터 좋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사도세자의 정신병이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사도세자는 불편한 몸을 치유하러 나간 온양 행궁에서조차 백성들의 찬사를 받을 정도로 '멀쩡한' 인물이었다. 사도세자가 혜경궁의 말처럼 그저 '미치광이' 에 불과한 정신병자였다면 영조가 10여년 동안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길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허나 혜경궁은 이상하게도 '일관되게' 사도세자 정신병자설을 고집했다.


혜경궁은 남편의 원대한 꿈을 가장 지척에서 지켜보았다. 사도세자의 꿈은 '노론정권' 을 뒤집어 엎고 새로운 '소론정권' 을 세우는 것이었다. 썩을대로 썩어버린 노론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자신을 지지하는 소론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치 역학구도를 구상하는 사도세자의 꿈은 혜경궁에게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위협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결국 그녀는 사도세자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노론의 '스파이' 로 활약하기로 결심했다. 사도세자의 일거수 일투족은 혜경궁의 입을 통해 궐 밖으로 빠져나갔고 노론은 혜경궁의 도움에 힘입어 사도세자 제거라는 무시무시한 음모를 아무렇지도 않게 꾸밀 수 있었다.


사도세자의 가장 큰 비극은 바로 이것이었다. 자신이 가장 믿고 의지해야 할 부인이 자신이 아닌 가문을 택했다는 처참한 상황에 영조의 어린 부인인 정순왕후 김씨가 가세하면서 사도세자의 입지는 더더욱 궁색해졌다. 사도세자는 노론이라는 강적이 밖에서 둘러 싸고 있는 위급한 형국에서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의 아들까지 낳은 부인 혜경궁과 법적인 어머니 정순왕후, 생모인 영빈 이씨 모두 바깥에서 이뤄지는 '사도세자 제거 음모' 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베겟머리 송사가 송사 중에 으뜸' 이라는 말처럼 그렇게 사도세자는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바깥과 안에서 함께 이루어지는 공격에 영조와 사도세자는 돌이킬 수 밖에 없는 강을 건넜다. 이것은 혜경궁 역시 마찬가지였다. 운명의 그날, 사도세자는 혜경궁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내 목숨이 그 날 마칠 것도 스스로 염려하여 세손을 경계 부탁하고 왔었는데 동궁(사도세자)께서는 생각과 다르게 나더러 하시는 말씀이 '아무래도 이상하니 자네는 잘 살게 하겠네. 그 뜻들이 무서워." 하시기에 내가 눈물이 드리워 말없이 허황해서 손을 비비고 앉았더니, 이 때 대조(영조)께서 휘령전으로 오셔서 동궁을 부르신다는 전갈이 왔더라.』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혜경궁을 향한 사도세자의 원망어린 발언이다. 지금의 말로 풀자면 "나는 죽는데 이상하게도 너는 살 것 같으니 너의 뜻이 참 무섭다." 는 한탄이었다. 이어서 사도세자는 혜경궁에게 이런 말까지 남긴다. "자네가 참으로 무섭고 흉한 사람일세. 자네는 세손 데리고 오래 살려 하기에 오늘 내가 나가서 죽겠기로 그것을 꺼려 휘향을 내게 안 씌우려는 그 심술을 알겠네."


'나는 죽는데 너는 안 죽으니 이상하다.' '참으로 무섭고 흉하다' '내 아들을 데리고 혼자 오래 사려고 한다' '심술이 가득하다' 는 폭언은 10여년 넘게 자신과 함께 살아 온 부인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도세자는 서슴없이 혜경궁에게 그런말을 퍼부었다. 운명의 그 날, 사도세자도 혜경궁도 사도세자가 영조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을 제거할 수 밖에 없는 혜경궁과 부인의 가문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만 하는 사도세자, 그들의 만남은 처음부터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비극적 결합이었던 것이다.






아들의 즉위를 방해하지 마라.


모두가 알다시피 사도세자는 영조의 명에 의해 뒤주 속에 갇혀 아사했다. 온 몸이 굳고, 손톱이 다 빠질 정도로 뒤주 속에서 고통의 시간을 지냈던 사도세자는 대처분 8일만에 목숨을 잃었다. 그 시간 세자의 장인이었던 홍봉한은 뱃놀이를 떠나 있었고, 혜경궁 홍씨는 그런 아버지에게 사도세자를 도운 인물이 소론 영수 조재호임을 고해바쳤다. 사도세자의 죽음과 상관없이 그렇게 혜경궁은 자신의 가문을 위해 성심을 다했다. 자신의 가문을 위한 충성의 반 만큼만 혜경궁이 사도세자에게 신경을 썼더라면 사도세자는 아마 그런 식으로 비명에 횡사하진 않았을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바로 사도세자를 죽인 '뒤주' 가 세자의 장인이자 혜경궁의 아버지인 홍봉한에 의해 역사 속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훗날 뒤주라는 단어를 꺼내기도 힘들어 '일물(一物)' 이라고 불리는 이 뒤주는 홍봉한이 직접 영조에게 귀뜸해 대처분 현장속으로 들여 놓았다. 그러나 혜경궁도, 홍봉한도 이 뒤주의 실체에 관해서는 조금의 말도 꺼내지 않았다. [한중록] 에서 볼 수 있듯 혜경궁은 그 처참한 현장을 지척에서 목격한 듯 구구절절한 변명만을 꺼내 놓을 뿐이다.


그렇게 노론의 '대처분' 은 사도세자를 제거하는 것으로 대단한 성과를 얻었다. 혜경궁은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혜경궁의 착각이었다. 사도세자를 죽인 마당에 노론이 사도세자의 아들, 세손까지 죽이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연산군의 비극에서 볼 수 있듯 세손이 살아 있는 세상은 노론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결국 노론은 사도세자에 이어 '세손' 까지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이른바 '택군의 정치' 였다.


"남편을 죽였으니 아들도 죽여라." 노론이 혜경궁에게 요구한 것은 바로 이 한가지였다. 허나 혜경궁은 차마 아들까지 버릴 순 없었다. 혜경궁은 노론과 가문의 '세손 제거 결정' 에 누구보다 강력하게 반발했다. 예상 외로 거센 혜경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노론은 세손을 제거해야만 했다. 사도세자가 자신들의 손에 의해 죽은 이상 어차피 세손과 노론은 한 하늘을 같이 이고 있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바로 혜경궁의 숙부 '홍인한' 이었다. 혜경궁의 남편인 사도세자를 죽이는데 앞장 선 것이 아버지 홍봉한이고, 혜경궁의 아들인 세손을 죽이는데 앞장선 것이 숙부 홍인한이라는 사실은 남편이 아닌 가문을 택한 혜경궁의 모순이었다. 사도세자 제거 음모와 달리 혜경궁은 가문의 일에 조금도 협조하지 않았다.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 넣었던 것처럼 세손을 살릴 수 있었던 것도 오직 혜경궁과 영조 뿐이었다.


영조 51년, 영조는 백관들을 불러 놓고 "어린 세손이 노론-소론-남인-소북을 알겠는가? 국사와 조사를 알겠는가? 병조 판서와 이조 판서를 누가 할만한지 알겠는가? 나는 어린 세손에게 그것들을 알게 하고 싶으며 또한 그것을 보고 싶다." 며 사실상 양위 의사를 밝혔다. 이는 노론에게 용납될 수 없는 '청천벽력' 과 같은 하명이었다. 영조의 이 질문에 가장 먼저 대답한 사람이 바로 혜경궁의 숙부 홍인한이었는데 그 대답이 그야말로 명언(?)이었다.


"동궁은 노론이나 소론을 알 필요가 없고, 이조 판서나 병조 판서를 누가 할 만한지 알 필요가 없으며, 더욱이 국사나 조사도 알 필요가 없습니다." 즉, 세손은 나랏일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알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는 세손이 절대 임금의 자리에 오를 수 없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즉위를 막고야 말겠다는 노론의 강인한 의지가 담긴 한 마디였다.


홍인한의 이 발언은 훗날 홍인한 몰락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데 현장에서 들은 영조와 세손 역시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영조는 "참으로 흉하다. 어찌 국사를 함께 논하겠는가." 라며 자리를 빠져나갔고 숙부의 기가막힌 발언을 들은 혜경궁은 숙부에게 "세손의 즉위를 방해하지 말라." 라는 경고문을 발송했다. 홍인한이 이 편지를 받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나와있는 바가 없으나 아마도 콧방귀를 뀌지 않았을까.


그러나 혜경궁 자신조차 용납할 수 없는 이 발언을 30년이 흐른 뒤 혜경궁은 [한중록] 에서 충성심 어린 발언으로 뒤바꿔 조작해 놨다. 세손이 이 세가지를 모두 안다고 대답하면 영조가 "내가 그리 금하는 당론을 세손이 안단 말이냐?" 라며 역정을 낼까 두려워 홍인한이 구구하게 변명했다는 것이다. [한중록] 의 이 구절을 보다보면 끝끝내 자신의 가문을 버릴 수 없었던 혜경궁의 처지가 절절하게 드러나 보여 한스럽기까지 하다.


이처럼 노론의 세손제거 공작은 대담하고 치밀했다. 다만, 다행인 것 한 가지는 노론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세손의 운명을 결정지을 결정권자 '영조' 가 세손을 지켜냈다는 것이었다. 영조는 삼종의 혈맥의 유일한 종손인 세손을 버릴 수 없었다. 아들의 처참한 죽음과 며느리의 간청을 지켜보며 영조는 끝내 세손에게 자신의 왕위를 물려주었고, 세손은 1777년 조선조 제 22대 왕이 된다. 바로 '명군' 정조의 탄생이었다.





자신의 아들이 무너뜨린 자신의 가문.


정조가 무사히 즉위할 수 있었던데에는 영조와 혜경궁 홍씨의 힘이 지대했다. 정순왕후 김씨를 위시한 외척가문의 발호와 풍산 홍씨 집안의 음모는 혜경궁에 의해 일차적으로 차단됐고, 영조에 의해 최종적으로 마무리됐다. 남편은 버려도 아들은 버리지 못했던 한 어머니의 절절한 모성이었다. 훗날 혜경궁은 자신의 가문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한 번 온 몸을 내 던지지만 적어도 정조의 즉위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그러나 사도세자의 죽음, 정조의 즉위로 이어지는 비극은 끝나지 않는 비극이었다. 사도세자 제거가 새로운 비극을 불러 일으켰던 것처럼 정조의 즉위는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었다. 정조의 즉위 일성은 노론에게도, 혜경궁에게도 가슴 철렁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아!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것이 바로 임금이 된 정조의 첫 마디였고 혜경궁은 그 발언과 함께 자신의 가문이 무너지리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빠르게 직감했다. 혜경궁의 예상처럼 정조의 '복수' 는 처절하게 감행됐다. 자신의 즉위를 방해했던 정순왕후 가문은 풍비박산 났고, 노론의 주요 대신들이 귀양길에 올랐다. 정조의 조용한 '복수' 의 마지막 타겟은 당연히 '세손은 아무것도 알 필요가 없다' 던 혜경궁의 숙부 홍인한이었다. 자신의 아들이 자신의 가문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면서 혜경궁이 받은 충격은 더할 나위 없이 컸다.


혜경궁이 정조의 '복수' 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단식투쟁' 밖에 없었다. 정순왕후 김씨가 오라비를 살리기 위해 단식을 감행한 것처럼 혜경궁 역시 아버지와 숙부를 살리기 위해 단식을 감행했다. 혜경궁의 단식 때마다 정조는 "아! 내가 있는 것은 곧 자궁(혜경궁)의 덕이니 어찌 자궁의 뜻을 거스르겠는가!" 라며 탄식했다. 홍봉한과 홍인한을 죽이는 순간 사도세자에게는 효도가, 혜경궁에게는 불효가 되는 것 역시 정조가 처한 딜레마라면 딜레마였다.


정조조에 이르러 풍산 홍씨 가문은 완전히 몰락했다. '망국동에 망정승' 이라고 불리던 홍봉한-홍인한 형제는 위풍당당한 위세에도 불구하고 손자에 의해 귀양길에 올랐고, 끝내 부활하지 못하고 비참한 생을 마감했다. 혜경궁으로서는 가슴을 칠 수 밖에 없는 통탄이었으나 대 놓고 불평할 순 없었다. 이미 혜경궁이 살고 있는 나라 조선은 풍산 홍씨의 나라가 아닌 '정조의 나라' 였기 때문이었다.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가문의 부활을 꿈꾸다.


혜경궁은 '가문의 부활' 을 23년 동안 꿈꿔왔다. 그러나 아들이 살아 있는 한 가문은 부활할 수 없었다. 아들이 임금이면서 자신의 가문은 몰락한 이 현실은 혜경궁 스스로 남편이 아닌 가문을 택한 것으로 자초한 일이었다. 혜경궁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가문의 부활을 곱씹었다. 그렇게 혜경궁이 꿈 꾼 '가문의 부활' 은 예상치 못하게 빨리 다가오고 있었다.


1800년 정조 24년 6월 28일, 종기로 투병 중이던 정조를 둘러싸고 치료상의 난맥이 드러난다. 정조 스스로 의학 지식이 뛰어난 군주였고 궁중 의원들이 즐비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조의 치료는 쉽사리 이뤄지지 못했다. 바로 정조의 최대 정적 중 한명이었던 정순왕후 김씨가 정조의 치료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기 대문이다. 궁중의 한낱 아녀자로서 임금의 치료에까지 간섭하는 것은 불경에 가까운 파격이었으나 노론 대신들은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이른바 '정조 독살설' 의 서막이었다.


정순왕후는 정조의 병세가 선조 병술년의 증세와 비슷하니 성향정기산이라는 탕약을 올려야 함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더욱 우스운 것은 정순왕후의 하달을 당시 도제조 이시수가 그대로 따랐다는 것이다. 의학 지식이 없는 아녀자의 말 한마디에 임금의 치료가 우왕좌왕 하는 우스운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 더 나아가 정순왕후는 내시를 데리고 정조의 안색을 살피겠다며 직접 대전에 발을 들여 놓기까지 했다. 말할 나위 없이 사태가 급박했다.


사태의 급박함을 먼저 알아차린 것은 누구보다도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이었다. 정조가 죽어야 가문을 살릴 수 있는 처지였음에도 혜경궁은 아들과 가문을 맞바꿀 정도로 비정한 어머니가 아니었다. 정순왕후가 대전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곤 혜경궁은 그 즉시 "동궁이 방금 소리쳐 울면서 나아가 안부를 묻고 싶어하므로 지금 함께 나아가려 하니 제신은 잠시 물러나 기다리도록 하시오." 라는 전교를 내리고 대전으로 향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처럼 외간의 대신들은 혜경궁의 얼굴을 직접 대면할 수 없었으므로 잠시 물러났고 정조를 둘러싼 노론 대신들의 방어벽은 혜경궁에 의해 다시금 허물어졌다. 혜경궁은 동궁을 데리고 정조의 안색을 살피기 위해 대전에 들어갔다. 정순왕후 김씨와 혜경궁 홍씨, 정조를 죽여야 하는자와 살리고자 하는 자의 밀고 당기는 기 싸움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혜경궁이 대전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정조의 안색을 살핀 혜경궁은 자전과 함께 처소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정순왕후를 견제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안심하기엔 그 시간이 너무 짧았다.


결국 혜경궁이 처소로 돌아간 뒤 정순왕후는 다시 한 번 정조의 치료 전면에 등장했다. "내가 직접 받들어 올려드리고 싶으니 경들은 잠시 물러가시오." 라는 명과 함께 방 안에는 정조와 정순왕후, 단 둘이 자리잡았다. 투병 중인 임금과 그 임금을 죽여야만 사는 대비의 운명은 그렇게 결정지어졌다. 잠시 뒤 방안에서는 정순왕후의 곡소리가 들렸고 정조의 임종을 지켜본 것은 정조를 낳은 혜경궁도, 부인인 효의왕후도 아닌 정조의 최대 정적, 정순왕후였다.





끝내 가문을 버리지 못했던 혜경궁 홍씨.


정조 사후, 어린 순조를 대신해 대왕대비인 정순왕후 김씨가 수렴청정했다. 정순왕후는 집권하자마자 자신의 가문을 살리는데 최대한의 노력을 기하는 한편 혜경궁 홍씨의 동생 홍낙임을 사사하는 등 풍산홍씨 가문에는 잔혹한 대처분을 내렸다. 외척은 자신의 집안 하나면 된다는 정순왕후의 철저한 개인주의는 다시금 혜경궁 홍씨를 절망에 빠뜨렸다. 훗날 혜경궁이 "흉하도다, 흉하도다." 라고 탄식한 정순왕후의 인품은 바로 이토록 잔혹했다.


혜경궁이 자신의 가문을 살릴 수 있었던 때는 정순왕후가 죽는 그 순간이었다. 정순왕후의 죽음과 함께 혜경궁은 사도세자의 비극과 정조의 죽음의 가장 생생한 목격자임을 자처하며 [한중록] 을 편찬했다. 그리고 순조에게 "내 아버지와 가문의 신원을 회복 시켜달라." 며 이는 "선왕의 유지" 라고 강변했다. 정조도, 혜경궁도, 정순왕후도 모르는 주장이었지만 혜경궁은 일방적으로 이것을 주장하며 자신의 가문을 일으켜 세웠다.


[한중록] 에서 펼쳐지는 풍산 홍씨 가문에 대한 혜경궁 홍씨의 절절한 변명과 순조에게 펼치는 생떼와 같은 일방적 주장은 어쩌면 사도세자의 비극 조차 외면하려 했던 혜경궁 홍씨의 자기 변명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혜경궁은 한 평생을 가문을 위해 살았다.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가문의 뜻을 저버린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70평생 혜경궁을 옥 죈 것은 '가문의 부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녀는 가문을 위해 남편을 버렸고, 가문을 위해 [한중록] 을 지었고, 가문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내던졌다. 그 업보가 사도세자의 죽음을 낳았고, 정조의 비극을 낳았고, 결국은 조선을 소통과 변화의 시대에서 폐쇄와 퇴보의 시대로 만드는 결정적 이유가 됐다.


지금껏 드라마에서의 혜경궁은 남편의 죽음에 눈물 흘리고,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현모양처의 표본으로 그려져왔다. 그러나 실제 혜경궁은 강인한 어머니는 되었을지언정 자애로운 부인이나 현명한 여성은 되지 못했다. 혜경궁이 처한 모순이 정조의 모순이었고, 그 모순이 결국 정조의 개혁을 주춤거리게 할 수 밖에 할 수 없었다. 만약 혜경궁이 그렇게 오래 살지 않았더라면 정조의 개혁은 조금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집의 복을 닦으라' 라는 아비의 말을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살았던 '풍산 홍씨' 의 여인. 그리고 그 운명 때문에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 넣을 수 밖에 없었던 잔혹한 여인. [한중록] 과는 전혀 다른 실제 역사 속 혜경궁 홍씨의 슬픈 가면은 지금도 사도세자와 정조의 절절한 삶을 정 반대로 대변하는 살아있는 '역사' 로 숨쉬고 있다.


참고자료 : [이한우 군주열전-정조, 조선의 혼이 지다] [이덕일 역사서-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 [이덕일-사도세자의 고백][신봉승-조선 정쟁사][혜경궁 홍씨-한중록][일성록] 등.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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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음.. 2008.02.24 1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도세자의 비행문제가 조정에서 시끄러울때 홍봉한은 제대로 간하지 않고 쉬쉬하고 엄폐한다고 오히려 비난받았습니다. 소론인 서명응은 성균관 대사성으로 사도세자의 평양문제를 비판했죠? 이덕일씨 책에서는 서명응을 노론이라고 하더군요. ㅎㅎ. 윤재겸은 홍봉한이 한마디도 그문제에 비판않고 도리어 그런말하는 자들을 욕한다고 상소로 비난했습니다. 그문제로 홍봉한이 인혐하려 하자 그럴필요 없다고 세자는 말했고요. 이 윤재겸의 상소는 이후 박치륭의 상소에서도 언급되는데 이때 사도세자의 평양서행을 은폐하려고 거짓말한 이영휘와 상소문의 서본을 고친 구윤옥마져 홍봉한이 사주했다며 홍봉한이 사도세자사태를 양성한 죄가 크다고 비난했는데 그책에선 이런이야긴 쏙빼고 홍봉한의 죄가 크다는 말만 언급해서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하더군요 -_-;
    그리고 사도세자가 유독 이런 상서들이 영조에게 알려질까 그런지 듣기 싫어한다며 비판한 상서도 있는걸로 봐서 홍봉한은 사도세자의 뜻을 받들어 영조에게 감추고 있었던 거죠. 홍봉한의 권력의 근원은 사도세자이고 사도세자를 낀 홍봉한의 반대파가 사도세자의 비행이라는 홍봉한의 약점을 잡아 공격했던것도 크겠죠.. 이런 사도세자에 대한 간쟁하는 상서들에 대해 사도세자 사후에 영조가 상까지 내렸고 박치륭의 비난으로 봐서도 홍봉한은 전후 사도세자를 위해 영조를 기만한 죄들로 위태로운 상황으로 떨어질수 있는 상황이고. 어떻게든 영조의 의심을 덜어야 하고 영조의 뜻을 오바해서라도 맞춰줬어야 했겠겠죠.

  3. 이쁜라면 2008.02.24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중록을 읽으면서.. 아무리 권력욕심이랄지라도 핏줄, 남편에게까지 비정한걸보면서
    참 어이없었더라는... 영조의 후궁이었던 영빈이 자기 아들 사도세자의 처분을 촉구한것도
    참 기가 막혔음.. 참 힘든시대.

  4. 음.. 2008.02.24 17: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득록이나 실록등등을 봐도 처음부터 홍인한등이 세손을 반대한게 아닌 서로 세손의 보호자를 자처하다가 세손이 홍인한의 사람됨을 싫어해서 배척하자 세손주위의 인물을 제거 하기위해 투서나 유언비어를 퍼트렸고. 이때문에 정조가 적으로 돌린거라고 했죠. 이사건들은대두분 영조 극 말년의 일들이고요.

  5. 냠냠.. 2008.02.24 1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고문헌에 있는 책, 모두 제가 읽어본 책 중의 하나네요.
    많은 사람들이 혜경궁홍씨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덕분에 잘 알려진것 같습니다.

  6. 정론 2008.02.24 1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게 정론이다. 바보들아 지맘대로 해석이라고? 책한권이나 제대로 접해봤으며, 국사수업은 들었는지 모르겠다.

  7. 음.. 2008.02.24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홍봉한이 망국동의 망정승이라 불리게 된건 김귀주가 홍봉한을 제거하려고 한유를 사주해서 올린 상소에서였죠.
    박세채의 종묘배향이나 산림이 당쟁의 근원이라는 등의 영조의 탕평책에 대한 노론의 불만이 당시 영상이던 홍봉한이 반대하지 않고 영조의 뜻만 쫓아 바른말하던 신하를 귀양보내고 핍박한다며 공격했죠...
    이덕일씨 책에서는 정순왕후가 들어올때 양가가 화목하길 바랬다고 쓴 구절만으로 억측해서 두가문이 합쳐서 죽음으로 몰았다고 주장하며.. 이두가문이 찢어진건 순조때라며 호도하지만. 실제로 김귀주는 사도세자 생전에 홍봉한이 사도세자의 평양서행을 간쟁않는다며 영조에게 직접 홍봉한을 비난한 인물이죠. 그런건 책에서 언급도 안하더만.. 김귀주는 영조때부터 한유를 사주해서 홍봉한을 참하라고 상소올렸고. 정후겸과 연합해서 홍봉한을 역적으로 죽이려고도 궁성을 호위까지 했고. 영조48년에도 육촌 김관주와 함께 어약문제와 사도세자를 추승하려 했다는등의 홍봉한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는데요. 이 사도세자 추승썰은 홍봉한이 당시 세손과 사석에서 이야기한것이기에 정조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 나중에 김귀주가 귀양간 빌미가 되었죠. 정조 즉위초에 홍봉한에 대한 공격도 대부분 김귀주 정파에서 주장한것들이고....
    정조가 죽어야 혜경궁의 가문이 부활한다고요? 홍봉한은 정조가 귀양보낸적이 없고 탄핵상소가 나올때에도 일성록보셨으면 알겠지만 수십차례 홍봉한의 집에 사람을 보내 돈유하고 있는데요. 혜경궁의 단식이 아니라도 애초에 있을수 없는 일인데요..무슨 죄목으로요? 홍인한이야 홍봉한과 멀어져서 대리청정반대한 죄목이 있다지만 홍봉한은 몇년전 김귀주의 공격으로 정계에서 물러난 상태였고 사도세자사건에 간범한 일도 없는데요.. 정조가 시호에 직접 제문까지내리고 홍봉한의 생전의 상소들을 모아 직접 어정까지해서 문집을 편찬중이었는데요. 익정공주고의 그 긴 서문들이 효심의 발로에서 나온거래도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적을수 있는 말들인가요. 한중록에 보면 정조가 사도세자 추숭을 준비했는데 그건 정약용의 문집에도 나오죠.. 사도세자로 추숭하면 혜경궁의 아버지는 부원군이 되는데 아들이 죽어야 가문이 산다구요? 아들이 죽자마자 그 모든게 물거품이 되면서 오히려 그 문제로 가문이 몰락했는데요? 홍낙임을 죽일때 죄중의 하나가 흉론을 주장한 소굴이라는거로. 사도세자 추숭과 영남 만인소에 연관된 썰들.. 다 믿을순 없겠지만 채제공과 결탁했다고까지 몰아세우는등 노론벽파의 시각에서는 흉적이었는데요. 정조 이전부터 홍씨가와 김씨가는 정적이었는데 정조의 죽음이 홍씨가문에 유리하다구요?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할텐데요?
    그리고 뒤주썰은 김귀주 정파에서 홍봉한을 공격한 소재였고 어떤 기록으로 남겨져 있거나 목격한 사실이 아닌 소문으로 영조도,순조도,정조도 긍정한적이 없는데요. 그말한 한유는 사형당했고 정이환은 정조에게 김귀주의 똘마니란 소리까지 들었고. 정조는 영조의 말까지 끌어들여 잘못된 사실이라며 부인했어요. 그후 그말은 쏙 들어가고 누구도 언급한적이 없죠. 한중록과 홍낙윤의 상소에서 정조가 그일이 허황된 소문임을 밝혀서 혜경궁집안에 내렸다고 하는데요. 상소문에선 순조께서도 보셨을꺼라 했으니 거짓말이 아니겠죠.

  8. 2008.02.24 1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9. 음.. 2008.02.24 2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즉위하자마자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창경궁 제일 높은지대에 자경전을 지어 어머니를 살도록 한게 보고 반성하라는 의미겠어요? 사도세자를 수원으로 천장할때 아버지의 무덤 바로 옆자리를 비워두고 나중에 옆자리에 어머니를 모시도록 마련한게 무덤속에서 반성하라는 의미겠어요? 19년 사도세자의 원행때 혜경궁이 현륭원에 처음올라가 그토록 서럽게 통곡한건 무슨의미겠어요? 정조가 신하들앞에서 어머니가 사도세자를 보호한 공을 외부에선 제대로 모른다고 한게 거짓말일런지?
    혜경궁이 세자사후부터 순조15년까지 권력을 가진적이나 있으며 그럴만한 성격이었을까요. 기록에 언급되는거래봤자 문효세자나옹주가 아플때 잠도 안자고 간호해서 정조가 걱정하는거나 아직까지 자기에 음식과 입을걸 직접 신경써주신다며 자랑하는 정조의 말, 사도세자천장시 정조가 너무 몸을 해칠까 염려하거나 이정도외에 ..정조가 세자빈간택할때 비유하기를 존엄하기로 자전과 같고 자애롭기는 자궁과 같고 장중하기로는 내전과 같다고 한걸로 봐도 성격자체가 대비나 중전에 비해서도 상당히 유한 성격인듯한데요.. 원행만 해도 조선시대에 여자가 그런식으로 먼곳으로 며칠밤을 유숙하며 참여한 전례가 없는데도 전례를 어겨가며 추진한건 정조가 어머니에 설움을 무엇보다 이해했기 때문아닐런지.. 사도세자 사후 50년간 권력을 가진 적이 없는데 무슨 권력을 누리려고 남편을 죽였다는건지....

  10. 아... 2008.02.24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수능공부하면서, 고3때 한중록을 시험 지문에서 봤었는데,
    왜 혜경궁 홍씨가 적극적으로 사도세자의 죽음을 막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점이 있었는데..
    가문을 위한 것이었군요..
    다만 위에 어떤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어쩔 수 없었다고 봅니다..
    문학작품의 힘때문인지...혜경궁 홍씨의 이미지를 바꾸기가 쉽지 않네요 ㅎㅎ;;

  11. .............. 2008.02.24 2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산에서의 모습이 한중록과 달라서 놀랬습죠 그래서 티비로 보는 사극은 거의 픽션이니 그냥 즐겨봐야합니다 ㅋㅋㅋㅋ 곧이곧대로 믿지말고 더 나아가 역사적 인물에 대해 알아보며 아 드라마와 역사는 이렇게 다르구나를 알기 바랍니다

  12. 와.,,, 2008.02.24 2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이런내용이 있었다니 긴글이었지만 정말 재밌게 보고갑니다.고등학교때 한중록
    배우면서...아 진짜 불쌍한 여자구나 라고 생각했는데...헐이네요//.. 복사해가요 !!!!!

  13. 음.. 2008.02.24 2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도세자의 고백에선 잘한건 무조건 소론이고 나쁜건 죄다 노론, 소론계가 사도세자를 비판하면 이름만 언급하거나 아예 당색을 바꿔버리기도하고 노론계가 사도세자를 위하는 말은 대부분 언급안하지만 어떤건 슬그머니 그사람을 소론이라고말하고. 초판본엔 그랬는데 이후 나온책에선 고쳤는지는 모르겠네요. 홍봉한을 철저히 가해자로 몰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이러저러 사건에서 홍봉한이 조금이라도 사도세자에게 호의적으로 보일수 있는말은 철저히 생략하더군요. 상소문을 인용할때는 그부분만 빼고 인용하기도... 한번은 한중록에서 세자를 능행에 데려가지 않았다는걸 거짓말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태묘에 간걸 태묘가 태조릉이라며 한중록이 거짓말이라고 몰아가던데.. 태묘는 궁궐 근처에 있던 종묘인데도 그걸 과연 이덕일씨는 몰라서 태묘를 태조릉이라고 주장했을까요?. 실록에 한중록에서 밝힌 영조32년 능행이 세자의 첫 능행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덕일씨는 실록은 안읽은것일지. 알고도 감춘것일지... 이건 작년 사도세자의 편지에서도 증명된 사실이죠. 사도세자가 직접 능행을 못가서 서럽다는 편지를 남겼으니 ㅎㅎ..

  14. 음.. 2008.02.24 2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재호와 사도세자의 죽음이 상관이 있을까요. 영조가 폐세자 시키고 결단내린후 사도세자가 뒤주에 갖히고도 한참후에 벌어진 사태인데. 이미 어찌할수 없는 상황에서 자기에게 쏟아질지도 모르는 비난을 그쪽으로 돌리기 위한 반전용아니었을까요.. 홍봉한과 조재호가 이전부터 교류가 있었고 이창임을 매개로 해서 홍봉한이 조재호를 불러올렸다는 썰도 있더군요(임오화변의 발생과 정조대 사도세의 재평가). 홍봉한은 조재호외에 옥사의 확대를 막았고 조재호에게 사람보내라고 말한 이창임을 끝까지 보호했죠. 옥사가 한창중일때도 친한사람을 보내 조재호를 몰래 만난적도 있었고, 홍봉한은 소론인 정휘량과도 잘 지냈고 정휘량의 주인이 조재호. 한중록에는 홍봉한이 사도세자를 편들다 파직당한후에(윤5-2일) 조재호를 불러올렸다고 적혀있는데요.. 시기적으로 그럴듯도 하지 않나요
    그리고 사도세자의 평양행은 워낙 시끄럽게 떠나서 백성들이 사도세자를 알아볼 정도였는데 홍봉한의 반대파는 모두 손빨고 있고 혜경궁이 나서서 일러바쳤다 한들 홍봉한이 이걸 영조에게 고하지 않았고 도리어 고하지 않는다고 욕을 먹었는데 혜경궁 관련썰이란게 도대체어디에서 근거하는것인지, 한중록의 몇명 구절을 곡해해 해석한외에 도데체 어디있는거죠? 한중록의 몇몇 구절이 저런식으로 해석될지 혜경궁이 한중록 쓰면서도 생각이나 했을까요. 그렇게 교활한 여자라면 그런식으로 기록했을런지 ㅎㅎ. 사도세자만 죽으면 자기랑 아들이 무사하다고 혜경궁이 생각했다면 바보아닌지. 최대한 영조의 의심을 걷고 처분에 불만이 없음을 영조에게 확신시켜줘야 할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이고 혹 세손이 영조의 총애를 잃어 세자와 같은길을 밟을까 자기의 품에서 억지로 떼어내서 영조에게 보낼수 밖에 없었는데 왕비자리까지 포기하고 그럴상황을 자청했을까요? 혜경궁에게 힘이 있고 권력지향적이었다면 영조에게 보내는게 아닌 세손을 끼고 앉아서 확실히 자기편으로 만들었어야죠.
    사도세자가 소론편을 들어서 노론이 모함했다는것도 하나의 학설일뿐이고.. 설사 소론편이라해도 같은 노론에게 노론우위의 의리를 방기하고 영조에게 아첨만 한다는 홍봉한이 세자의 장인이라는 기득권을 다 포기하고 그걸 주도했다니요.게다가 영빈의 생모는 당파도 없는 한미한 가문인데 뭐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여라고 말했을까요. 세자를 잡고있다가 다같이 죽느냐. 세손이라도 보존하느냐의 선택상황이 아니라면요... 사도세자가 소론의 나라를 꿈꿨는데 왜 그 아들인 정조는 영조때의 처분에 한술더떠 신임옥사가 노론의 영조에 대한 충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확정짓고 경종실록을 다시 개수하기까지 했죠. 감히 아버지를 경종을 독살했다며 군대를 일으킨 이들을 아들인 사도세자가 동정했다면 그건 조선사회에서 용납받을수 있는 사태일까요.. 사도세자의뜻이 온건소론과의 탕평이라면 더더욱 바로 홍봉한이 그당으로 분류되어 반탕평파로부터 공격받았는데 반대할리가 없지요.. 영조초 노론세상에 잇따른 소론계의 반역이 벌어져도 선의왕후나 그 부원군은 멀쩡히 살아남았는데 소론세상을 만든다고 부인이나 장인을 제거할까요? 홍봉한은 노론중에도 온건한 소론과의 탕평을 인정한 노론 온건탕평파인데요...
    그리고 정말 사도세자가 "멀쩡한" 인물일까요. 실제 수시로 사람살해했고(영조34년3월기록참조) 본인이 자기의정신병을 언급하고(편지,37년실록도) 영조가 언급하고 아들인 정조가 간접적으로 언급하고(즉위년 5-13일) 소론인 서명선이 언급한걸(5년 2-10)요. 사도세자는 결함이 많은인물로 그렇게 초래한 영조의 과한 성격은 한중록 말고도 실록에서도 충분히 읽혀져요.영조가 사람을 심하게 편애한것도 사실이고. 한중록에서도 정신병이 발동했을때가 아닌 평소엔 멀쩡하고 훌륭했다고 말했고 아버지와 궁궐을 벗어난 온양행궁에서의 몇몇 정사로 사도세자의 정신병을 부인할 근거는 못되죠..

  15. 착한여고생 2008.02.24 2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게 잘읽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16. . 2008.02.24 2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블로그의 원래 글보다 "음.." 님의 덧글에 더 신뢰가 가는군요. "음.." 님은 사학을 전공하셨나요? 영/정조대의 실록을 직접 인용하실 정도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전 '이산' 의 혜경궁 홍씨가 아니라 이 블로그 글에서 묘사한 혜경궁을 알고 있었는데 "음.." 님의 글을 읽고나니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 "음.."님께서 블로그를 가지고 계시다면 관련 내용을 잘 정리해서 독립된 포스트로 올려도 괜찮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아예 책을 하나 쓰셔도 되지 않을지요. 요새 나온 책들은 이 블로그와 같은 의견이 주를 이루는 것 같은데, 반대되는 책이 하나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17. 다이아 2008.02.24 2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국사선생님이 혜경궁 홍씨를 보면서 아주 쌍욕을 했죠. 그년때매 이렇게 된거라고,,,,저위의 내용들을

    얘기해주면서.....그래도 잘한게 딱하나 있다면 정조를 살린거라 하더군요.

    예전이나.....지금이나.....정치란.......진실을 가리는 법인가 봐요...

    • 지나가다 2008.02.25 0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국사선생님은 모름지기 역사학자로서의 자격이 없군요. 편견에 가득차면 진실이 보이지 않는 것이고 함부로 단정지을 수 없는 게 역사라는 걸알고 있어야 하는데...여러면에서 객관적인 시각을 전달하지 못하고 그런 식이라면 선생으로서의 자질이 아주 심히 의심되네요. 우리나라의 주입식 국사교육은 정말 바뀌어야 합니다.

  18. 절헌.. 2008.02.25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얼핏 알기에 사도세자의 미친 행동들은 혜경궁이 왜곡되게 썼다고 들었었죠. 그래서 이산 보면서 얼레..이랬어요. 음. 뭐 조선사회의 모순이 한두가지가 아니었겠지만 암튼 정순왕후 김씨부터 슬슬 조선이 돌이 킬수 없는 길로 향한 것 같습니다. 안동 김씨....전통있는 가문일지는 모르겠지만 쩝. .

  19. 집안에잘못들어온건 정순왕후뿐만아니라 2008.02.25 0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홍씨도포함이되는군요.
    우연찮게 본 글 정말 인상깊게 잘봤습니다.
    저는 혜경궁홍씨를 남편이 죽고 그로인해 찔릴바늘가시속에서 아들을 임금으로 앉힌
    참으로 강인하고 현명한 어머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이산에서도 혜경궁홍씨역에 유약하지않는이미지의 견미리씨를 앉혔다고생각했습니다.
    근데 이 글을 읽어보니 꼭 그런것만은 아닌것같네요
    평소드라마에서 악역을 주로맡으신 견미리씨의 이미지로 혜경궁홍씨에대해 침묵적인 인물묘사를보인건아닐지
    뭐 제생각이 제작진이 의도한바와는 맞을지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전 그런생각이듭니다.
    드라마 '이산' 은 사도세자일을 처음부터 보인게아니라 이미 일이 벌어지고난뒤부터 시작되기때문에
    혜경궁홍씨에대해 그닥 구체적인 묘사는없었잖아요 이글을읽어보니 드라마로도 보고싶다는생각이드는군요

    아마 영조가 며느리를 선택할때 잘선택했다면 이런결과를 낳았을까요
    집안에 여자가 잘못들어와 조선말의 역사가 처참해지네요
    영조는 자기아들인 사도세자가 소론을지지하고 며느리인 혜경궁홍씨는 노론가문인걸 몰랐을까요?
    그게 참 의문입니다.
    하긴 열살난 아들이 어디파를 지지하고있는지 알수있었을까요
    영조는 당파를싫어했지만 당파에대해서 확실하게알았더라면 이런일은 또 없었을거란생각이드네요
    싫어한만큼 그것에대해 자세히만알았었더라면말이죠 -_-

    결론적으로 영조는 여자보는 눈이 참 없었던듯
    그리고 위에글에서 좀 놀란게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이씨도 사도세자의죽음에가담했나요?
    아무튼 늘 드라마를보면서 실록의 기록들이 참 궁금했었는데
    사도세자가 혜경궁홍씨에게 하는말도 새로웠고 나름 조선왕조에는 자신있다고생각했었는데
    새로운사실들을 많이알고가네요 정말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20. Favicon of http://labirona.tistory.com BlogIcon 라비로나 2008.02.25 10: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로운 글 잘 읽고 갑니다:) 저도 이산을 볼 때마다 한중록을 읽고 제가 상상한 혜경궁과 이미지가
    너무 달라 가끔 당황해요..

  21. 이더길 2008.02.25 1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덕일의 거짓에 낚이는 자들이 뭐 이렇게들 많아??

    더 황당한 것은 그의 거짓이 요즘 유행하는 팩션들을 통해 역사를 모르는 일반 대중에게 주입되고, 그것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의 작가도 예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