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양이 출연한 드라마 [싸인]이 호평과 좋은 스토리에도 불구,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며 논란을 낳았다.


 박신양과 김아중, 두 주연배우가 불참한 탓도 있겠으나 전체적으로 드라마 스페셜 부문에서 정겨운이 남자 우수상을 수상한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상도 수상하지 못해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상을 꼭 수상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눠먹기식 수상 결과가 남발되는 과정에서도 싸인이 이런 홀대를 받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힘들다. 


  MBC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로열패밀리로 호평을 들었던 염정아가 무관에 그치며 시청자들의 의아함을 자아낸 것이다. 그들의 연기력으로 보나 흥행력으로 보나 무관에 그칠 성적은 아니었는데 다른 드라마에 화제성이나 시기 면에서 밀리고 만 것이다. 이는 연기대상이 곧 줏대없고 기준 없는 그렇고 그런 연말 시상식이라는 점을 증명하고 만 것이다.


 박신양은 연기대상에 불참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같이 호흡을 맞췄던 김아중 역시 연기대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일단 이 부분에서 수상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은 알아야 한다. 하지만 수애가 불참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을 두 개나 거머쥔 것을 보면 박신양이나 김아중이 굳이 수상을 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진정 연기력으로만 승부하는 연기대상이라면 박신양이 적어도 하나 정도는 수상을 했어야 했다는 얘기다.


 반면에 사회를 맡은 지성과 최강희가 출연한 보스를 지켜라는 무려 7개의 상을 가져가는 저력을 발휘했다. 누가 보더라도 몰아주기식 수상이 아닐 수 없었다.


 염정아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말해서 MBC 드라마 여자 주인공 중에서 염정아를 능가하는 연기력을 보인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염정아는 로열패밀리에서 구박받고 핍박받는 며느리에서 야망과 욕망을 숨긴 철의 여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엄청난 호평을 들었다. 하지만 결국 염정아는 이런 연기력과 상관없이 잊혀진 얼굴이 되고 말았다. 화제성면에서 더 뛰어났던 다른 드라마들에 가려서 염정아는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아쉬운 점은 또 있었다. 결국 중견연기자들이 수상할 수 없는 한계를 이번 연기대상은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연기력 하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김해숙이나 김영철이 단 하나의 상도 수상하지 못하면서 연기대상 역시 연기력이 아닌, 젊은 배우 붙들어 놓기에 쓰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연기대상이라는 의미가 무얼까. 그 해를 빛냈던 작품을 치하하는 의미도 분명히 있을 것이지만 그 본질은 진정으로 연기를 제대로 해 낸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시청률도 중요하고 화제성도 중요하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맡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들, 시청자들이 인정한 연기를 한 사람들을 외면한다는 것은 연기대상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말해서 연기대상 시상식은 점차 그 권위가 떨어져가고 있다. 차라리 삼사를 통합하여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이 선정한 연기대상 시상식을 여는 편이 훨씬 더 긴장감있고 의미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각 방송사가 따로 진행하며 자신들의 수상 남발을 어떤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참으로 눈꼴시린 일이 아닐 수 없다.

 박신양의 불참은 어쩌면 이런 의미일지도 모른다. 박신양은 이미 SBS에서만 두번이나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모두 좋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몰고 온 작품에 출연한 탓이었다. 박신양은 그 상이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가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연기대상이 그를 버린 것이 아니라 그가 연기대상을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박신양이나 염정아가 무조건 수상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상 결과가 결국은 나눠먹기식 방송사 입맛 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면 굳이 연기대상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부터 제대로 해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연기대상 시상식이 점점 전파낭비, 시간낭비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점점 보고 싶어지지 않는 연기대상, 시청자들이 외면하는 연기대상을 이제는 그만 만들고 좀더 다채롭고 흥미로운 시상식이 될 수 있도록 방송사가 노력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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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 2012.01.01 2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가지 드라마 모두...권력있고 돈있는 사람들의 악행을 꼬집는 내용...상을 거부했을 수도 있지만 애시당초 가능성 자체가 제로였을지도..상받으면 사람들이 드라마를 다시보다 던가 이슈화 될수있으니 사전에 막은걸수도 이런 음모설을 감히 올리는 이유는 특히 박신양을 비롯한 "싸인"자체에 대한 홀대때문..ㅠㅠ

  2. 시엘 2012.01.02 0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로열 패밀리>가 재벌 이야기를 꺼내서 심기에 거슬린 걸까요?
    그래도 김영애 님은 특별상이라도 받으셨던데 (대상감이었지만),
    염정아의 연기를 이렇게 홀대하다니...
    그 전부터 작품에 상 준다 해서 기대 안 했지만, 그래도 염정아는 줄 줄 알았어요.
    염정아, 참 안타까워요. 그런 배역 맡기도 힘든데...

    그래도 M사는 올해 예능부터 엉망이라 그렇다 쳐도.

    SBS는 예능에서 칭찬 받더니, 연기대상에선 전체적으로 실망시키는 군요.
    대상은 제대로 줬지만, SBS가 박신양과 <싸인>을 이렇게까지 홀대할 줄 몰랐어요.
    <싸인>은 <뿌리깊은 나무>와 함께 올해의 명품 드라마 아닌가요?
    전 시상식에서 이 두 작품에 상을 몰아줄 줄 알았어요.
    게다가 박신양이 SBS에서 시청률로 대박 터뜨린 드라마가 몇 갠데. 너무하네요.

  3. 시청자 2012.01.02 1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신양씨나 염정아씨의 연기는 대상감이였습니다. 참 씁쓸했습니다.




[공주의 남자]가 마지막 회만을 앞두고 있다.


이시애의 난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가운데, 주인공들의 갈등 역시 최고조에 오르고 있다.


[공주의 남자] 5일 방송분에서 정희왕후는 관비로 전락해 있는 경혜공주를 찾아가 면천을 시켜줄테니 아이를 위해서라도 다시 서울로 올라오라고 설득한다.


그런데 정말 경혜공주는 공주에서 노비로 전락했었을까? 관비로 생활한 것은 사실이었을까?


경혜공주는 문종의 유일한 딸로 단종조에 이르기까지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문종의 총애는 총애이거니와 단종에게도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왕실의 유일한 적통 공주로서 경혜공주의 위상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이는 세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세조가 단종을 핍박하는 와중에도 경혜공주만은 보호하려 했던 것도 왕족으로서 경혜공주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상당히 중요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종 3년 경혜공주의 남편이었던 영양위 정종이 금성대군과 함께 단종 복위 역모를 획책하였을 때에도 세조는 금성대군만을 처벌하였을 뿐 정종과 경혜공주에게는 큰 벌을 내리지 않았다. 세조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문종의 자식들을 괴롭힌다는 항간의 시선이 달갑지 않았을 뿐더러, 자칫 경혜공주를 건드렸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였는지 세조는 정종을 유배하라는 명만 내렸을 뿐 기실 정종과 경혜공주는 한양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실록에 적혀있는 바에 따르면 세조 1년 8월까지 경혜공주는 정종과 함께 서울 모처 자신의 집에서 생활했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경혜공주가 세조에게 석고대죄를 올려 사형 위기에 몰린 정종을 겨우 구해내는 걸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세조의 배려로 인해 정종과 경혜공주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셈이다. 이 때 경혜공주는 병을 핑계삼아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이 때문에 유배지로도 떠나지 않았다.


허나 경혜공주와 정종이 서울 한복판에 살고 있음을 불길하게 생각한 한명회 등은 "경혜공주의 병이 다 나았으니 정종과 경혜공주를 유배지로 돌려 보내라" 며 세조에게 항의했다. 허나 이 때에도 세조는 즉답을 피한채 "생각해 보겠다"는 답변만을 내놓았다. 정종과 경혜공주를 끝끝내 유배 보내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그 해 9월에는 사냥에서 잡은 짐승을 경혜공주에게 선물로 줬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하지만 세조 2년 상황이 급변한다. 정종이 사육신 등과 함께 단종 복위 모의를 하였음이 발각되면서 세조의 진노를 사게 된 것이다. 정종과 경혜공주에게 크나큰 배신감을 느낀 세조는 정종을 광주로 유배보내고 경혜공주 역시 정종을 따라가게 만든다. 경혜공주가 본격적으로 정치적 탄압을 받은 것도 바로 이 때부터다. 이 시기 실록에 경혜공주는 '정종의 처'로 기록되어 있다. 공식적으로 작호가 거둬진 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야사에서처럼 순천 노비로 전락했단 이야기는 남아있지 않다.


게다가 정종을 따라 유배 보내질 때 경혜공주는 걸어가지 않고 교자를 타고 내려갔다. "가마를 사용하는 것을 허한다"는 세조의 특별한 명령에 따라 가마를 타고 광주까지 내려간 것이다. 칭호는 정종의 처로 격하되었으나 왕족으로서 최소한의 대우는 허락한 셈이다. 이 후, 정종이 능지처참 당하고 나자 세조는 다시 경혜공주를 서울로 불러들였다. [공주의 남자]가 그린 것처럼 정희왕후가 경혜공주를 면천하여 데리고 온 것이 아니라 세조 스스로 경혜공주를 다시 데리고 온 것이다.


다만, 실록의 기록에서는 신료들의 반발을 의식한 세조가 정희왕후 윤씨의 간청임을 핑계 삼아 "정종의 처는 문종의 유일한 적녀로서 죄가 없으니 박해하지 말 것이며, 집과 곡식을 내리도록 하라" 라는 명령을 내린 것으로 되어있다. 어찌되었든 세조로선 단종 문제와는 별개로 경혜공주에게는 최선의 노력을 다한 셈이다. 이 시기 실록은 경혜공주를 정종의 처에서 영양위 공주로 기록하다가 1462년부터 다시 '경혜공주'라는 정식 명칭을 사용한다.


이 뿐 아니라 세조는 사위인 정현조에게 경혜공주가 살만한 큰 집을 마련하라고 명령했을 뿐 아니라 속공노비 50명과 녹봉을 지급하라는 명령까지 내린다. 세조가 죽은 뒤에도 경혜공주에 대한 왕실 차원의 후한 대접은 계속되어 정종의 반란으로 빼앗겼던 재물과 백금 등을 돌려 받았고, 그녀의 아들인 정미수의 벼슬길 역시 열리게 된다. 왕실 차원에서 마땅히 서용하라는 예종의 명령에 따라 정미수가 본격적인 관리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세조 실록이 다소 세조를 미화한 측면이 없다곤 할 수 없으나 실질적으로 경혜공주에 대한 세조의 태도는 그리 박한 편이 아니었다. 부인이었던 정희왕후 윤씨나 아들 예종은 물론이거니와 세조 그 스스로도 경혜공주를 문종의 유일한 적녀로서 존중하고 대우했다. 정종의 반란으로 그녀를 유배보낸 적은 있으나 관비로 전락시켰다는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단 점에서 공식적으로 그녀가 노비 생활을 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만약 노비생활을 했더라도 그 기간은 매우 짧았을 뿐더러, 형식상의 형벌이라고 보여진다.


혼란의 난세에 태어나 동생과 남편을 모두 세조의 손에 잃으며 회한의 삶을 살았던 경혜공주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와 그녀의 아들딸의 목숨을 살려낸 것 또한 세조였다. 경혜공주는 1473년 33살의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었으나 그녀의 아들은 훗날 부원군의 자리까지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고, 왕실 역시 그녀의 장례 뿐 아니라 자식들에게까지 후한 대접을 아끼지 않았다. 공주로서 최소한의 명예만은 지키게 된 셈이다.


지금 경혜공주의 묘는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에 머물러 있으며, 그녀의 남편 정종 역시 그녀 곁에 안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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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license119.com/newki BlogIcon 자격증무료자료받기클릭 2012.05.27 1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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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정종이 능지처참을 당했다.


경혜공주와 함께 단종 복위에 모든 인생을 걸었던 그는 끝내 재기하지 못하고 세조에 의해 한 많은 인생을 다하게 됐다.


눈길이 가는 것은 정종 사망 당시 경혜공주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인데, 그렇다면 경혜공주와 정종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정종과 경혜공주의 삶처럼 그들 사이의 자식들 역시 비참한 삶을 살았을까.


[공주의 남자]의 설정과 달리 정종과 경혜공주는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정종이 귀양을 갈 때, 경혜공주가 딸을 데리고 같이 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볼 때 이미 그들 사이에 자식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성종이 즉위한 뒤 경혜공주의 딸이 혼인을 할 때 왕실 차원에서 도움을 주었다는 기록 역시 남아있다. 그들의 딸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남아있는 바 없으나 존재근거는 찾을 수 있는 셈이다.


흥미가 가는 것은 정종과 경혜공주의 아들이다. 경혜공주의 아들인 '정미수'는 정종이 능지처참을 당한 뒤 태어났다. 경혜공주가 정종을 낳았을 때, 그녀는 관비로 전락해 있었고 그녀의 아들 정미수 역시 관비의 아들로 자랄 수 밖에 없었다. 엄연한 왕실의 가족이자, 문종이 아끼고 사랑했던 경혜공주의 유일한 아들이었으나 피바람이 몰아치는 냉혹한 권력 앞에 그의 운명 역시 풍전등화가 된 셈이다.


이 후, 세조에 의해 다시 한양으로 올라오게 된 경혜공주와 정미수는 세조로부터 집과 재산 등을 사사 받았고 예종 즉위 후에는 왕실의 가족으로 예우받았다. 정미수는 세조의 부인인 정희왕후 윤씨의 명을 받아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이었던 자을산군의 시중을 들었는데 훗날 자을산군이 성종으로 즉위하게 되자 정미수 역시 그 인연으로 벼슬자리에 오르게 된다.


성종에게 각별한 총애를 받았던 정미수는 형조정랑을 시작으로 중부참봉을 거쳐 이듬해에는 선전관이 되었고 그뒤 사헌부장령·충청도관찰사·도승지·공조참판·한성부판윤 등을 지냈다. 성종 사후에는 연산군에게 중용되어 의정부참찬 겸 판의금부사를 지냈고, 중종 반정으로 중종이 즉위하자 우찬성으로서 공이 크다하여 정국공신 3등에 책록되고 해평부원군에 봉해졌다.


허나 시련이 없지는 않았다. 당시 성종조의 원상이었던 한명회와 신숙주 등이 경혜공주의 아들인 정미수가 벼슬자리를 하는 것을 그리 탐탁치 않아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미수를 반역죄인 정종과 경혜공주의 자식이라 하여 여러 번 탄핵하였는데 그 때마다 성종과 정희왕후 윤씨가 강력히 비호하여 관리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세조는 정미수의 아버지를 죽였지만, 세조의 손자와 부인만큼은 정미수를 차마 버리지 못한 셈이 됐다.


야사에서는 이런 기록도 남아있다. 


경혜공주가 자식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세조가 "아들이면 죽이고, 딸이면 살리라"고 명령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정희왕후 윤씨가 정미수를 여자처럼 꾸며 몰래 성종의 시중을 들게 했다고 한다. 이 후, 정미수를 본 세조가 "저 여자아이는 심히 남성스럽다"고 하자 정희왕후가 그제서야 사실을 실토했고 인간적인 정리를 느낀 세조가 정미수를 불러 오래살라는 뜻으로 "미수" 라는 이름을 붙여줬다는 이야기도 있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옥 중에 있던 정종이 정미수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으로 그려졌는데 야사의 기록에서는 오히려 세조가 정미수의 이름을 지어준 것으로 그리고 있다. 어찌되었든 정미수는 그 이름만큼이나 상당히 '탄탄대로'를 걸으며 평탄한 삶을 누렸고, 죄인의 자식이라는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정국공신 3등에 책봉되는 등 왕족으로서 남부럽지 않은 영화를 누린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정종이 반란죄로 능지처참 당하고, 어머니 경혜공주가 순천 관비로 전락하는 와중에서도 그의 아들만큼은 정희왕후의 강력한 비호와 관리 속에서 왕족으로서 '제대로' 성장한 셈이니 한 많은 경혜공주의 삶 속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정미수는 훗날 단종비 정순왕후의 양자로 들어가 정순왕후를 보필하는데 남은 힘을 다하였으며 단종의 제사를 모시기도 하였다. 피바람 몰아치는 조선 초기, 힘없는 왕족으로 태어나 스스로 몸을 일으켜 부원군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정미수. 그는 56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무리했고, 그의 어머니 경혜공주는 영조 대에 이르러서야 복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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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희 2011.09.30 1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방송을 보고 앞으로 공주가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했는데 말년에는 잘 풀렸군요 ㅎㅎ 포스팅 잘 봤습니다^^

    • Favicon of http://license119.com/newki BlogIcon 자격증무료자료받기클릭 2012.05.27 1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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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가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달아 가고 있다.


사육신의 반란과 세령의 반항에 점점 더 평정심을 잃어가고 있는 세조의 모습과 그에 대항하는 김승유 집단의 단종복위계획이 구체화 되면서 갈등이 고조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22일 방송분에서는 세조의 맏아들인 의경세자가 병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장면이 방송됐다.


세령은 이를 두고 아버지인 세조에게 "당신의 업보를 자식들이 받아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라고 일갈한다. 그렇다면 세령의 말처럼 세조의 자식들은 정말 일찍 죽었을까?


세조는 정비인 정희왕후 윤씨에게 2남 1녀를, 후궁인 근빈 박씨에게 2남을 두어 총 4남 1녀를 두었다. 여기서 세령 캐릭터의 모티브가 된 세희공주까지 합치면 4남 2녀다. 그렇다면 생몰년이 미상인데다가 여전히 실존 여부를 두고 말이 많은 세희 공주를 제외한 나머지 세조의 자식들은 몇 살에 세상을 떠났을까.


우선 세조의 맏아들인 의경세자(훗날 추존왕 덕종)은 20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해서에 능하고 영민하다 알려졌으나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 그는 계유정난 이 후, 더욱 건강이 나빠져 병상에 눕는 일이 잦았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의경세자가 아팠다는 사실을 세조가 뒤늦게 알게 되는 것으로 그렸는데, 사실 세조 부부는 맏아들인 의경세자의 건강 때문에 애초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다 단종폐위사건을 전후해 극심한 죄책감과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의경세자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얼마 되지 않아 숨을 거두게 된다. 의경세자는 꿈 속에서 자주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권씨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이 때문에 당시 사람들에게 의경세자의 혼을 현덕왕후의 귀신이 데리고 갔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이 소문에 격분한 세조는 현덕왕후를 폐위시키고 그녀의 무덤을 파헤치는 패륜을 저질렀는데, 이는 시동생이 형수의 무덤을 파헤친 것으로 강상과 윤리를 치도의 근본으로 삼는 조선의 예법상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를 사료해볼 때 당시 세조가 의경세자의 죽음에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헤아려 볼 수 있다. 의경세자의 부인은 그 유명한 인수대비(소혜왕후) 한씨이며, 그의 둘째 아들은 성종이다. 그는 훗날 덕종임금으로 추존된다.


세조의 둘째 아들은 예종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의경세자와 마찬가지로 잩은 병치레로 세조 부부의 애간장을 태웠던 그는 재위 1년만에 19살의 나이로 갑자기 승하했다. 모후인 정희왕후 윤씨조차 "주상의 병이 이토록 심각한지 몰랐다"고 경악할 정도로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허나 그가 재위 시절 내내 발바닥과 엉덩이에 난 종기로 크게 고생했고,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밤잠을 설치는 일이 많았던 것으로 볼 때 예종의 승하는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었던 일이 아닌가 싶다.


예종이 너무 이른 나이에 흉서하자 많은 백성들은 또 다시 "세조의 업보를 자식들이 대신 받는다"며 두려워했다. 당시 백성들의 인식과 달리 최근 몇몇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예종을 둘러싼 정치역학관계를 두고 예종 독살설 또한 주목을 받고 있다. 예종의 형수이자 의경세자의 부인이었던 수빈(훗날의 인수대비)한씨는 사돈이었던 한명회, 대훈신 신숙주와 결탁해 자신의 둘째아들인 자을산군을 왕으로 추대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종의 죽음은 필수적이었다. 결국 수빈은 훈구파를 움직여 예종을 정치적으로 압박하는 한편, 시어머니 정희왕후를 제 편으로 포섭해 든든한 왕실세력의 뒷받침을 얻어냈다. 끊임없는 정치 공격과 남이-귀성군으로 대표되는 신진세력의 몰락 등으로 큰 충격을 받은 예종은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건강이 더 악화되었고 곧 숨을 거뒀다.


이를 두고 김인호 교수는 "결국 예종의 세력은 훈구세력을 등에 업은 인수대비의 세력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리하여 예종은 '암살'이라는 여운을 남기며 요절하였고, 자신의 아들이 아닌 인수대비의 둘째아들 성종에게 왕위를 넘길 수 밖에 없었다" 고 평가했다. 어찌되었든 예종 역시 열 아홉이라는 짧디짧은 생애를 마치고 간 비운의 임금인 셈이다.


세조의 두 아들과 달리 유일한 딸이었던 의숙공주는 비교적 오래 살았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일 뿐, 의숙공주가 숨을 거둘 당시 그녀의 나이는 고작 33살이었다. 정인지의 아들인 정현조의 부인으로 들어갔던 의숙공주는 결혼 이 후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어 오랜 시간동안 병치레를 하다 숨을 거두었다. 게다가 그녀는 여자로서 단 한명의 아이도 생산하지 못한 석녀였다. 여성으로선 불행하기 짝이 없는 운명이었다.


후궁인 근빈 박씨에게서 얻은 두 아들 역시 요절한 것은 마찬가지다. 형인 덕원군의 생몰년은 미상이나, 둘째인 창원군은 28살 한창 나이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써 세조의 아들들은 30살이 되기 이전 모두 세상을 떠난 셈이 됐고, 특히 정비인 정희왕후 윤씨에게 얻은 두 아들은 모두 20살을 넘기지 못하고 요절했다. 단종을 죽인 업보요, 현덕왕후의 복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이른 죽음이었다.


신기한 것은 세조와 함께 계유정난-단종폐위를 주도했던 1등공신 한명회의 자식들 역시 대부분 빨리 요절했단 사실이다. 한명회는 셋째 딸과 넷째 딸을 각각 예종과 성종에게 시집 보내 두번이나 자신의 집안에서 왕비를 탄생시켰지만 그녀들은 모두 채 스물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운명이었다. 예종비 장순왕후는 17세의 나이에 산후병에 걸려 승하했고, 그가 낳은 해양대군도 14개월 만에 운명을 달리했다. 성종비 공혜왕후 역시 19세의 나이로 후사 없이 승하했으니 한명회로선 통탄할만한 노릇이었다. 그야말로 '천벌'이라 할 만했다.


신숙주 역시 생전에 자식을 잃는 슬픔을 겪었다. [공주의 남자]에서 세령-승유와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신면이 바로 그다. 신면은 세조조의 대표적인 반란이었던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다 반란 세력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다. 당시 신숙주는 이시애가 퍼뜨린 헛소문 때문에 반란세력으로 지목당해 옥살이를 하던 중이었다. 말 그대로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자식을 잃은 것이다.


이처럼 세조와 측근들의 자식들은 정말 부모의 '업보'를 떠맡은 냥 너무 빨리, 너무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세조가 말년에 정신병에 걸리고 건강이 악화되는 등 고생을 한 것도 자식들의 요절에 의한 상처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김종서, 안평대군, 금성대군 등 희대의 권신과 왕족들을 모두 죽이고 피로써 차지한 왕위였지만 세조 역시 인간적인 죄책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던 셈이다.


세조와 그 자식들은 정말 [공주의 남자] 속 세령의 말처럼 "세조의 업보를 지고" 저승으로 끌려간 것일까. 문득 하늘의 지엄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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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주의 남자 2011.09.23 1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피로 흥한자 피로 망하리라(제 생각입니다)

  2. 1234 2011.10.05 08: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종은 덕종이 죽은 후에 죽었는데.




[
공주의 남자]가 본격적으로 수양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단종 왕위 찬탈부터 이시애의 난까지 숨 가쁜 역사의 격랑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 드라마는 김승유와 세령의 사랑을 더욱 비극으로 몰고가며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태세다
.


그러나 김승유-세령 커플보다 더욱 비극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커플이 있다. 바로 주인공보다 더 빛나는 커플, 경혜공주와 정종이 그들이다
.


[공주의 남자]에서 경혜공주는 수양대군의 계략에 빠져 어수룩하기 짝이 없어보이는 정종과 결혼한다. 처음부터 원치 않았던 결혼을 한 경혜공주는 정종을 냉대하지만, 선한 마음을 가진 정종은 부인인 경혜공주를 끝까지 존중하고 사랑한다. 그런 정종에게 경혜공주 역시 점점 마음을 열어가고 있는 중이다. 마침내 서로를 진정한 부부로 인정하는 과정에 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서로를 위하면 위할수록,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비극의 세기는 점점 강렬해진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원수의 집안에서 태어나 비극적 사랑을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김승유-세령 커플과 달리 경혜공주와 정종은 원수도 아니었고, 비극적인 사랑을 할 이유도 없었다. 다만,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역사의 물줄기가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을 뿐이다
.

 


유일한 조력자였던 김종서를 잃어버린 뒤 단종과 경혜공주의 정치적 고립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수양대군은 경혜공주를 두고 더 이상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놓고 협박하고 있고, 한명회-신숙주 등은 이미 수양의 왕위 등극 계획을 차근차근 세워 놓고 있다. 권력을 둘러싼 파워 게임에서 패배한 그들에게 가혹한 보복과 숙청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윤씨부인의 말처럼 정치란 죽여야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가혹한 운명 앞에 경혜공주와 정종이 서 있다. 한 나라의 공주요, 부마이지만 그들에게는 이 없다. 거대한 역사의 격랑 앞에 기꺼이 몸을 던졌지만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없이 투쟁한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다. 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싸우는 것이다. 이거야 말로 진정한 비극이다
.


특히 정종이 보여주는 경혜공주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존경은 단순한 애정이 아닌 인간에 대한 경이로운 사랑으로까지 느껴진다. 엄밀히 말해서 그는 비정한 권력 투쟁과는 상관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고, 풍류를 즐겼던 그는 어쩌면 그저 그런 호색한으로 맘 편히 인생을 즐기고 싶었던 인물이었을터다.


그런데 경혜공주를 만나면서부터 그의 인생이 180도 뒤바뀌어 버렸다. 경혜공주, 더 나아가 단종이 겪어내야 할 정치적 험로를 함께 걸어가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경혜공주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비극적 운명에 맞서며 경혜공주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가고 있다. 정종이야말로 진짜 남자 중의 남자, 로맨티스트 중의 로맨티스트인 셈이다
.


이제 그는 더더욱 힘든 상황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왕위를 찬탈하려는 수양대군의 야욕은 점점 더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낼 것이고, 단종과 경혜공주의 정치적 입지 역시 날이 갈수록 좁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믿음직스런 이유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꺼이 몸을 내던질 줄 아는 희생정신과 자신의 운명을 회피하지 않는 당당함을 갖춘 멋진 사나이기 때문이다
.


이쯤에서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역할을 실감나게 연기하는 배우 이민우의 내공에도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아역 시절부터 탄탄한 연기력으로 주목받았던 이민우는 순진하고 찌질해 보이면서도 진중하고 믿음직스런 정종 캐릭터를 200% 소화해 내고 있다.
하나의 얼굴에 다양한 색깔의 감정을 담아내는 그를 보노라면 진짜 팔색조 연기가 무엇인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배우란 역시, 연기로 빛나는 사람이다!


실제 역사 속에서 정종은 단종 복위를 위해 힘쓰다 세조에게 덜미를 잡혀 사약을 받았다. 한 나라의 부마로서는 비참한 죽음이었으나, 역사는 그를 충신이라 기록했다. [공주의 남자] 속 정종 역시 마찬가지의 길을 걸을 것이다. 사랑하는 부인인 경혜공주와 처남인 단종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온 몸을 던지면서도 한 점 후회를 남기지 않는 멋지고 당당한 일국의 '부마'의 삶 말이다.


비극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누구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이 남자 '정종'. 때론 주인공보다 더 멋진 그에게 열렬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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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다 2011.08.19 0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종은 능지처참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거열형요.

  2. 쫑이 2011.09.01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의 글에 넘 공감하고 갑니다 진정한 '공주의 남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피비린내나는 운명에 당당히 맞선 정종이 아닐까 하네요

  3. Stella 2011.09.01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종처럼 매력적인 인물도 드문 것 같아요 귀엽고 마냥 사람좋아보이다가 진중해질땐 엄청 카리스마 발휘하는 속이 찬 사람... ( 근데 꿈이 호색한은 아닌 것 같아요 가난한 기세에 돈벌려구 노름했구 아직도 숫총각이시니....^^) 정종을 제대로 그려주시는 이민우씨의 연기가 정말 빛이나는 듯합니다

  4. 유리의 성 2011.09.01 1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이민우 씨 덕분에 팔색조 정종 의 매력이 잘 살아나는 듯합니다 글 쓰신대로 역을 200% 소화하고 계시는 듯 해요 공주의 남자 덕분에 이민우씨를 다시 봤습니다

  5. Ail 2011.09.01 1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꺅!! 다 동감! 김승유보다 빛나는 로맨티스트 정종!

  6. ㅎㅎㅎ 2011.09.02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혜공주와 정종은 원수도 아니었고, 비극적인 사랑을 할 이유도 없었다. 다만,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역사의 물줄기가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을 뿐이다 ... 공감가는 글귀네요. 운명앞에 당당히 맞서 끝까지 충신으로 죽은 로맨티스트 정종 ㅠㅠ

  7. 주인공보다빛나 2011.09.02 0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배우는 연기로 빛나는가 봅니다 분량도 별로 없는 정종과 경혜 공주가 많은 팬들을 양성한 건 실제 역사 속의 비극성과 짧은 대사 와 표정 속에 놀랍도록 많은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명배우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8. Dragon 2011.09.02 2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 회 3분 남짓한 분량에도 정종-경혜 커플이 대세가 된 이유는 실제 역사 속의 안타까운 운명과 두분의 신들린 연기 덕분이 아닐까해요 진짜 분량대비 임팩트 갑!




[공주의 남자]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단종시대의 최고 비극인 '계유정난'이 마무리 되며 거목 김종서가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특히 17일 방송에선 김종서가 생존해 있단 걸 안 수양대군이 그를 다시 한 번 제거하는 내용이 방송됐다.


그렇다면 실제 역사 속에서도 철퇴를 맞은 김종서는 살아 있었을까? 수양대군은 정녕 김종서를 두 번 죽였을까? 수양대군을 경악케 한 김종서의 생존은 진짜 있었던 일이었을까?


계유정난이 일어나던 밤, 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급박하게 돌아갔다. 김종서의 집에 불시에 찾아간 수양대군은 김종서가 잠시 방심하던 틈을 타 철퇴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백두산 대호'라 불리던 김종서는 그 자리에 쓰러졌고, 수양대군은 다시 한 번 철퇴로 김종서를 내리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김종서 대신 그의 맏아들인 김승규가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김종서 부자가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진 것을 확인한 수양대군과 그 일파는 서둘러 궁궐로 향했다. 궁궐로 향한 수양대군은 일거에 권력을 장악했다. 수양대군으로부터 김종서의 죽음을 전해들은 한명회 역시 분주하게 움직엿다. 그는 김종서 일파를 궁궐로 불러들여 살생부에 따라 차례로 살해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었던 영의정 황보인이 제거됐고 민신, 조극관 등 단종에게 충성을 맹세한 인물들 또한 모두 목이 날아갔다. 말 그대로 하룻밤 새에 세상이 뒤집어 진 것이다.


수양대군 일파는 승리감에 도취됐다. '금상 위에 좌상'이라 불리던 김종서 가문을 하루 아침에 멸족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단종을 떠받들던 신료집단을 한번에 쓸어낸 것에 대한 만족감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수양대군을 경악하게 하는 일이 벌어진다. 바로 김종서의 시신이 없어진 것이다. 김종서의 시신을 수습하러 갔다가 그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홍윤성은 기함할 수 밖에 없었다.


홍윤성은 수양대군 일파의 컨트롤 타워인 한명회에게 김종서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전했고, 한명회는 직감적으로 김종서가 생존해 있음을 깨달았다. 용의주도하고 냉철한 판단력으로 계유정난의 모든 것을 진두지휘했던 한명회였으나 이 때만큼은 다소 당황했는지 수양대군과 수양대군의 보디가드격인 임운, 양정에게 "김종서가 죽은 것을 확인하셨소이까?" 라고 몇 번이나 캐물었다 한다.


한명회의 직감처럼 김종서는 철퇴를 맞고 쓰러진 뒤에도 숨이 붙어 있었다. 4군 6진을 개척하며 '백두산 호랑이'라 불리던 천하장사 김종서였다. 철퇴 한 번으로 제거하기엔 너무나 강한 상대였던 셈이다. 김종서는 급한대로 철퇴를 맞은 부분에 응급처치를 하고 서둘러 입궐하고자 했다. 수양대군이 궁궐을 장악하기 전에 먼저 단종의 신변을 보호해야만 수양대군의 쿠데타를 막을 수 있단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김종서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도성의 8대문은 모두 수양대군에게 장악됐고, 김종서가 입궐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차단되었다. 김종서를 태운 가마가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돈의문이었다. "환자가 있으니 문을 열어주시오" 라며 간청하는 김종서의 하인에게 돈의문 수문 갑사는 "수양대군의 명이 있을 때까진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는 차가운 답변만을 내놓았다.


돈의문이 차단되었음을 확인한 김종서는 급히 가마를 돌려 서소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환자가 있으니 문을 열어달라는 김종서의 하인에게 "수양대군의 명이 없이는 성문을 열지 못한다" 는 답변만이 되풀이 되었다. 이 때, 김종서는 노기를 참지 못하고 "내가 일국의 좌상 김종서니라! 당장 문을 열거라!" 라고 일갈했다. 허나 문은 굳게 잠겨 열리지 않았다.


일이 틀어진 것을 직감한 김종서는 아들 김승벽의 처가에 몸을 숨겼다. 환부를 치료한 뒤 차후의 일을 도모할 생각이었다. 허나 김종서를 가만히 둘 한명회가 아니었다. 김종서의 생존을 확인한 한명회는 도성 전반을 샅샅이 뒤져 김종서의 은신처를 확보했고 양정, 이흥적, 이흥상으로 이뤄진 자객단을 보내 김종서의 주살을 명령했다. 김종서로선 수양대군 일파에 의해 '두 번' 죽게 된 셈이었다.


결국 김종서는 끝끝내 단종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수양대군 일파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됐다. 세종에게 "육진의 개척은 내가 있어도 종서가 없으면 되지 않았을 일이며, 종서가 있어도 내가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야" 라며 총애받았던 인물, 명재상 황희에게 "내 뒤를 이을 인물은 단 하나, 종서 뿐이다" 라고 극찬받았던 인물, 두만강변을 평정하고 육진을 개척하며 고려사를 개수했던, 문무에 모두 능통했던 충신 중의 충신 김종서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절재 김종서.


그의 생애는 장중하면서도 화려했다. 충절, 거목, 원훈 등의 찬사를 받기에도 모자람이 없는 인품이었다. 그는 고려 왕조가 망하기 2년 전인 공양왕 2년 도총 김제추의 아들로 태어나, 조선조 태종 5년 약관 16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에 등용된 엘리트였다. 그는 말 그대로 문무를 겸비한 준재였고, 태종-세종-문종-단종 네 임금을 지척에서 모신 명재상이었다.


임금의 비서격인 대언을 비롯하여 내직은 언제나 문반이었고, 함길도 도절제사와 같은 외직으로 나가면 무반으로서의 책무를 완벽히 수행하여 후진들로부터 끊임없는 존경을 받았다. 단종조에 이르러 권력의 정점에 섬으로써 국정을 전횡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으나 그의 강직한 성품으로 미루어 볼 때 이는 흔들림 없이 국사를 운영하려던 그의 태도를 오해한 것으로 사료된다.


64세. 백두산 대호 김종서는 그렇게 아들 김승규, 김승벽과 함께 일찍이 그 자신이 노래했던 "삭풍은 나무 끝에서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와 흡사한 늦가을 찬바람 속에서 멸문의 화를 입었다. 그의 부재는 곧 단종시대의 종말을 예고했고, 이로써 조선 왕조는 급격히 난세로 빠져들게 되었다.


임금도 장상도 한번은 죽어야 한다. 생애가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했다고 할지라도 그 죽음까지 아름답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죽음은 오로지 비통할 뿐이다. 그러기에 절재 김종서의 죽음이 더더욱 한없는 아쉬움을 남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공주의 남자]는 김종서의 퇴장과 함께 '제 2라운드'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승유와 세령의 사랑은 더욱 비극으로 치달을 것이고, 수양대군 일파의 왕위 찬탈 음모도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과연 [공주의 남자]는 이 역사적 비극을 어떤 식으로 담아낼 것인가. [공주의 남자]의 내용이 자못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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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7788dud 2011.08.18 0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재밌는 드라마 하나 건졌네요. 이렇게 알아 듣기 쉽게 글을 써 주시니 감사합니다 '공주의 남자' 정말 궁굼합니다 기다려지네요.

  2. 2011.08.18 0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종서에 대한 평이 너무 치우쳐져 있네요
    조선왕조실록을 직접 읽어보셔야 할 듯

  3. 와우 2011.09.02 0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궁금했었는데, 좋은 자료 올려 주셔서 감사해요! 김종서의 최후는 정말 비극적이고 슬프네요 ㅠㅠㅠ

  4. 으갸갸 2012.01.02 18: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역사란 진짜 누구의 입장에서 쓰느냐에 따라 해석이 많이 달라질수 있을듯 하네....
    한 나라의 왕은 가장 큰 힘과 이엄을 갖 춰야 국가가 안정될듯함.
    문종이 가장 큰 잘못, 어리석은 짓을 한것 같다...자기 어린 불쌍한 자식을 위해서라도 욕심을
    버리고 동생에게 정당하게 임금자리를 내주었으면, 조선왕조의 많은 피비린내나는 역사를
    접할 필요가 없었을텐데....
    한 나라의 권력을 잡는것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생존권의 문제이니....늬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을수밖에 없는 운명들....이런때는 그저 아주 평범한 가늘고 긴 삶을 살수있는 우리
    민초가 훨씬 낳은것도 같음.



[공주의 남자]의 시청률이 폭등했다.


9~10%대에 맴돌던 시청률이 [시티헌터] 종영과 함께 무려 8% 가까이 오른 것이다.


이로써 [공주의 남자]는 [시티헌터] 종영의 최대 수혜자이자, 수목 드라마 전쟁에서 값진 1승을 거두게 됐다.


그런데 [공주의 남자]를 보다보면 다소 아쉬운 부분이 눈에 띠는데, 그 중 가장 불편한 것이 바로 '깡패두목'처럼 그려지는 한명회의 모습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이희도가 연기하고 있는 '한명회'의 모습은 천박하고 경망스럽기 그지 없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저잣거리 깡패들을 끌고 가 대신들을 협박하는 건 물론이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면서 온갖 악행은 다 저지르고 다닌다. 마치 조폭 집단의 '행동대장'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수양을 둘러싼 대부분의 인물이 그렇지만 한명회의 모습은 특히나 극악무도한 인간성 상실의 냄새를 뿜어낸다.


그런데 아무리 '작가의 재창조'라고 해도 이건 너무 과한 것 아닌가 싶다. 이효정이 연기하는 신숙주가 진중하면서도 출세지향적인 양면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에 반해, 한명회 캐릭터는 너무 1차원 적인데다가 그에 대한 폄훼가 도를 지나칠 정도로 심하다. 수양대군이 "나의 자방" 이라고까지 칭했던 한명회가 이런 식으로 단선적으로 그려지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주의 남자]는 수양대군의 '브레인'을 신숙주로 설정하고 있지만, 실상 수양대군의 최측근이자 최고참모는 누가뭐래도 한명회였다. 절친한 친구였던 권람의 소개로 수양대군과 운명적으로 조우한 뒤,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양대군과 그 일족을 지척에서 보필했던 그는 조선 역사를 통틀어 가장 도드라진 길을 걸은 대훈신이요, 지략가였다.


한명회는 수양대군파의 '컨트롤 타워'였다. 김종서 제거, 단종 제거, 세조 즉위 등이 모두 한명회의 머릿속에서 구상됐고 이는 그대로 피 비린내 나는 조선의 역사가 됐다. 수양의 측근 가운데 그는 가장 적극적인 인물이었다. 김종서 제거를 다소 망설이는 수양을 '계유정난' 의 역사 한 복판으로 밀어 넣은 것도 그였고, 살생부를 직접 작성해 김종서와 함께 단종 사수파의 최고 권신이었던 황보인 등을 주살한 것도 그였다. 수양대군이 한명회를 일컬어 "나의 자방" 이라고 한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명회는 수양대군을 왕위로 옹립하는 데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숙부와 조카 사이였던 세조와 단종 사이에서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이어 사사하는데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단종을 지지하는 파에서 보면 한명회만한 '역적'이 없었으나, 세조 입장에서 보면 한명회만한 '공신'이 없었다. 훗날 사육신이 된 성삼문이 "모두 다 죽일필요도 없이 한명회만 죽이면 일은 끝나게 되어 있다" 고 이야기 한 것도 한명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 어떤 측근들보다도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한명회는 '권력욕의 화신'이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쉽게 출세할 수 없었던 그는 왕위에 야욕을 가진 수양대군을 보필하며 국가 체제를 완전히 전복시키는 것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180도 바꿔 버렸다. 그는 말년을 제외하곤 언제나 국가 권력의 최정상에 올라가 있었다. 3번의 공신책봉, 2번의 영의정 재임에도 모자라 자신의 딸을 왕비로 올리고, 사돈이었던 정희왕후-인수대비와 결탁해 국정 전반을 총괄했던 그의 존재감은 조선조 어떤 대훈신보다도 묵직한 무게감을 선보이고 있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한명회는 대단한 '권력가'였으나, 역사에 길이 남을 '간신'은 아니었다. 특히나 [공주의 남자]에서 보여지듯 악행만을 저지른 인물은 더더욱 아니었다. 물론 단종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명회가 간신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단종 이 후, 세조-예종-성종을 보필했던 한명회의 모습은 간신배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한명회는 세조 재위 시절 함경도, 평안도 등의 북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지방을 전전하는 일이 가장 많은 사람이었다. 희대의 권신이었지만 그가 재물축적에만 열을 올리고, 국정을 전횡하는 등의 간신배는 아니었단 이야기다. 한명회는 자진해서 불안정한 지방을 안정화 시키기 위해 도성을 비우는 일이 잦았고, 또 한 번 맡은 일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최선의 결과를 뽑아내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는 동시에 성삼문 등 사육신들이 일으킨 '단종 복위 계획'을 무산시키고, 반대파를 제거함으로써 체제 안정을 꾀하는 과단성을 선보였던 그는 예종조와 성종조에는 정승의 자리에 올라 국정 전반에 대해 임금에게 고언을 아끼지 않는 역량있는 원로였다. 특히 성종조에 내탕금이 바닥나는 등 왕실의 재정 상태가 심각해지자 자신의 전 재산을 문서 편찬과 왕실 안정을 위해 바치는 등 조선 왕조와 체제 안정에 대한 한명회의 열망은 거의 절대적인 것이었다.


사실 조선왕조의 역사에서 한명회만큼 극단의 평가를 받는 이도 드물 것이다. 악행만큼 공도 많고, 과실만큼 업적도 많은 그의 행보는 이렇다 저렇다 하는 흑백논리로 평가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성질의 것이다. 그렇기에 [공주의 남자]처럼 한명회를 극단적이면서 단편적인 '악인'으로 몰고가는 건 조금 지양할 필요가 있다. 특히나 한명회처럼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실존인물이라면 그 존재감에 맞는 합당한 인물 설명과 성격 묘사를 하는 것이 옳다.


이제 [공주의 남자]는 수양과 김종서의 대결이 격화되며 훨씬 비극적인 상황에 치닫게 될 것이다. 이 가운데에서 지금까지 '깡패두목'처럼만 보여졌던 한명회가 어떤 매력으로 극 중에 등장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나름의 관전포인트가 될 듯 싶다. [공주의 남자]의 고군분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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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헐... 2011.08.07 04: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희도씨 역이 한명회라고요?? 제가 알고 있던 사실과 너무 달라 생각도 못했네요..드라마를 즐겨 보는게 아니고 대충 채널 돌릴때 하면 보는 타입인지라..
    헐... 작가 완전 역사의식 없나봐요 ;;

  3. 역적 때려잡기 2011.08.07 1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명회는 자기 딸들를 마치 포주 처럼 이놈저놈주고 자기가 출세한 포주놈 같은 행실도 있다.

    • 어리석기는.. 2011.09.22 0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시절에는 다만 한명회만 딸을 정략결혼했을까?
      이미 당신은 작가가 보여주는 연출의도에 흘러들어간 사람일뿐

  4. 간적한명회 2011.08.09 2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왕권강화를 명분으로 거병했으나 정작 유생.학식있는 신하들의 지지를 받지못하고 정권자체가 정통성이 없었기에 능력있는 학자들을 처형한 반역자요 한명회같은 계유정난 꼴통공신들에게 철저히 의지하여 자기 스스로 자기거병의 명분을 배신한 인물이 세조요... 세조사후 계유정난공신들이 판치는 시스템을 물려준게 세조임다 왕권강화? 풉..지나가는 개가 웃을 노릇... 한명회를 부관참시한게 연산군의 유일할 업적아닌가 그생각까지 들게 만드빈다

  5. 2011.08.11 1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한명회라는 드라마에 주인공이 이덕화씨였었나 인상 깊었는데 말이죠. 그 이미지가 파격적이면서 지략가였던 것 같아요. 주인공으로 다룬거니까 당연하긴 하겠지만 근데 정말 오래 산단 느낌도... 연산군 나오는데에서도 한명회 묘비를 파헤친다던가 이런 식으로 언급됬던 것 같은데..

  6. 시대에 따라 인물을 보는 눈 2011.08.11 2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명회가 대단한 지략가로서 역사극에서 멋지게 그려졌던 시대가 바로 전두환 노태우 정권때였죠.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시대.... 아마 서로 비슷한 점들이 많아서??? 한명회를 마치 대단한 위인처럼 그렸던 것은 아닐지... 님은 그 시선에 너무 동화되어있었던게 아닐까요?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기르셔야할 듯... 개인의 권력욕과 야망이 한 사람의 목숨보다도 더 소중한 것인지? 세조의 반정과 현대의 쿠데타가 과연 국가와 국민의 번영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개인의 영달과 부귀영화를 향한 권력욕의 결과였을까요?

  7. 유현수 2011.08.16 2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이 글 쓰신 분 한씨신가요? 역사관이 지나치게 주관적이신듯 보입니다. 다른분들 댓글 내용대로 한명회의 지략이란 것이 깡패와 다를것이 무엇입니까? 상기 드라마에서 작가의 설정이 약간 치우친 점은 인정되나 실망스러울 정도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 정도는 창작의 묘 정도에서 인정되어 보여집니다.

  8. 유현수 2011.08.16 2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이 글 쓰신 분 한씨신가요? 역사관이 지나치게 주관적이신듯 보입니다. 다른분들 댓글 내용대로 한명회의 지략이란 것이 깡패와 다를것이 무엇입니까? 상기 드라마에서 작가의 설정이 약간 치우친 점은 인정되나 실망스러울 정도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 정도는 창작의 묘 정도에서 인정되어 보여집니다.

  9. 역사관이 왜 그따구냐 2011.08.26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명회는 권신 그 이상 이하도 아님 오늘날로 치면 독재자에게 빌붙어 착취하던 자를 훌륭하다 칭송하는꼴.. 한명회의 공?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른 것도 공이라 봐야하나? 한명회는 그런 공도 얼마 없음. 오히려 훈구척신들을 양성해서 훗날 조선의 정치를 혼란에 빠뜨리게 한 놈인데 얼어죽을.. 역사관이 왜 그따위임 헛공부했네 제대로 좀 하길

    • 역사관? 2011.09.22 0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신이나 똑바로 공부하시오.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니..
      글쓴이 말대로 정말 1차원적이군요!!!!
      드라마보고 좀 감정잡으시는것같은데. '한명회'라는
      드라마도 한번 보시지요. 드라마보고만 믿는거 같으니까..ㅋㅋ

    • Urchin's Dad 2011.09.30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싸우지 마로.여의도 바보들처럼^.^ 국사공부를 하는 셈치고 사극을 보시라구요. 명태라는 울 가곡은 어떠하오? 그 곡은 한 때 금지곡이었다오.

  10. 주동현 2011.08.31 2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도 잘 읽었고 덧글도 더더욱 잘 읽었네요.나름대로의 균형잡힌 사고를 하게 되었지만 한명회가 벌인 피바람을 그이후에 약간의 치적으로 덮을순 없다고 생각되네요

  11. 시리우스 2011.09.09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주의 남자를 매번 보지는 않아서 이희도씨가 한명회역이었다는 건 몰랐지만요. 님의 역사관은 좀 더 성숙해져야 할 것 같네요.
    역사관이 주관적이신 것 같아요. 위의 유현수님 말씀처럼 혹시 글 쓰신 분이 청주 한씨인게 아닌지 궁금하군요...- -

  12. 윤아름 2011.09.15 0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같은분이 조선시대에 태어나셨다면 신숙주 한명회 김질 이되는거임ㅋ

  13. 한기영 2011.09.15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공감되는 내용입니다 회사에서 요즘 공주의 남자 때문에 핍박 당하고 있었는데..ㅜ,ㅜ

  14. 한명회는 역적 맞습니다 2011.09.18 1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객관적으로 역사공부를 한다면 한명회는 조선 최악의 패륜적인 인물입니다
    지략가? 책략가? 말도안됩니다. 공주의남자가 픽션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역사인물에 대한 묘사는 잘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만..

    • Urchin's Dad 2011.09.30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목이란 울 가곡을 아시오? 초연이 쓸고간 깊은 계곡~
      그러면 그네라는 울 가곡은?

  15. 박종건 2011.09.19 0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시대 안 살아본분들 아갈 다물^^
    저도 다물고 있으니^^

  16. 2011.09.30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7. Urchin's Dad 2011.09.30 1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컨트롤 타워가 아니고 쉽게, 우리말로, 책사, 안평대군의 책사는 이현로임.
    삼국지를 한 번이라도 읽어 보시고. 공명, 제갈공명은 죽어서도 사마중달을 혼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뭔말인줄 아시죠? 책과 벗하기 좋은 철입니다.

  18. 에휴 2011.10.07 1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Urchin's dad 꼭 어딜가나 이런사람들이 있죠 남들보다 그까지거 좀 더안다고 깝죽대고 자기랑 다른의견이면 개무시하고 비꼬고 딱봐도 친구없을타입 그깟 습자지식 별것도 아닌거가지고 대단한거 안다는냥 나대지마세요 ㅋ

  19. 만약 당신이라면? 2011.10.28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명회이든.. 사육신의 성삼문이든..

    그 누구던간에.. 당신이 바로 그였다면...

    누구나 시대적인 상황이 있는것이고.. 그 상황을 이해하고 행동했을것입니다.

    역사를 두고.. 옳고 그름을 논하다 보면.. 명확히 밝힐수 있는것도 있지만..

    더욱 더 혼란스러워지는것도 있지요...

    그 시대의 상황을 이해하고 인물을 평가하세요..

    만약 당신이 그들이였다면....????

  20. 나도1500억원 2011.11.20 0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500억원만 투척하면 자연스레 대통령직에 다가설텐데.
    수양처럼 한명회처럼 피뿌리지않고...
    1천500억원만 뿌릴 수 있다면...정치에 문외한이고 도와주는 정치인들 주변에 별로 없어도...대통령으로 뽑아줄 10대 20대 30대 많으니 될 수 있을텐데.
    인상도 선하고 말도 제법 잘 하고 은근히 신뢰감도 가는 타입인데...사회에 환원할 1500억원이 없네 ㅠ.ㅠ

    아니 그럼 암에 걸렸어도 의사한테 가지말고 인상도 선하고 말도 잘하며 기부도 잘하는 김장훈에게 가서 수술해달라고하지 왜...

    나라경영같은 중차대한 일도 인상선하고 생각참신할것같은 정치초보자에게 맡길거면...
    그나저나 난 황금어장보고 황금을 돌같이 보며 참신하고 진취적인 사고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뛰어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정말 좋아했더니...
    하기야 3천억원이 넘는 돈을 가지고 이자와 배당금만으로 사회1%의 삶을 살고 있으니 그렇게 여유로웠겠지 ㅠ.ㅠ

    그것도 대선의 유혹이 현실에 가까워지니 반 뚝떼서 투척하는 과감함도 가진 야망인이었네 ㅠ.ㅠ

    아 진짜 실망아닌 실망이다.

  21. 안티 Urchin's Dad 2011.12.23 04: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Urchin's Dad 이분.. 글쓰는거 정신분열증 환자같다.. ㄷㄷ
    지 정신세계를 표현하기전에 남들한테 말하는 화법부터 고쳐야할듯.. 졸라 유식한척하면서 실상 별것도 없는 빛좋은 개살구일뿐인데 유식한척만 쩌는 사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