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의 김연아가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김연아’에 가장 근접한 인물을 꼽으라면 리듬체조의 요정으로 불리는 손연재일 것이다. 손연재는 깜찍하고 귀여운 얼굴로 단숨에 주목을 받으며 각종 광고에 출연하고 숱한 화제를 몰고 왔다.

 

지금도 그의 주목도는 김연아를 제외한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훨씬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연예인이 아님에도 졸업사진까지 포털사이트 메인을 장식하는 선수는 드물다. 손연재는 그렇게 스포츠 스타의 자리에 매김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손연재의 스타성은 김연아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김연아의 경우, 김연아의 인기는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피겨 볼모지에서 나온 피겨 천재라는 이미지와 올림픽 챔피언이라는 강력한 실력이 결합되어 대중들의 관심의 중심에 섰다. 김연아의 인기는 물론 김연아의 외모에서도 기인했지만 피겨라는 종목에서 우리나라에서 나오기 힘든 인물이라는 희소성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다.

 

실력과 외모, 희소성이라는 삼박자가 고루 갖춰졌을 대 김연아가 갖는 스타성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수많은 광고가 쏟아졌고 그의 행보가 모두 주목받기에 이르렀다. 모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님을 상기해 볼 때 김연아의 경우 역시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라 불릴 만하다. 그러나 이런 관심은 어디까지나 김연아가 ‘현역 피겨 스케이트 선수’로서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위치에 올라섰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손연재의 경우는 이와는 다르다.

 

손연재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큰 대회에서 받은 실적과 성적보다는 그의 예쁜 외모와 광고에 더 그 비중이 쏠린다. 마치 스포츠 스타가 소비되는 방식보다는 아이돌 가수가 소비되는 방식과 더 가깝다. 물론 손연재는 스포츠 스타로서는 드물게 귀엽고 깜찍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웬만한 아이돌 가수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그 외모만큼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손연재는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성적만이 스포츠 스타를 탄생시키는 절대적인 기준이라고는 할 수 없다. 러시아 출신의 테니스 선수 안나 쿠르니코바는 단식에서 단 한차례도 우승한 적이 없지만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었다. 그는 테니스 실력보다는 관능적인 외모와 스타성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테니스 선수를 은퇴하고도 모델로도 활동하는 등, 자신의 외모를 활용한 마케팅 전략을 펼친 스포츠 스타였다.

 

손연재도 예쁘고 귀여운 외모로 주목을 받은 경우기 때문에 이 둘의 행보는 얼핏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손연재는 안나 쿠르니코바와는 약간 다른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안나 쿠르니코바는 대중이 먼저 그를 발견하고 주목한 케이스다. 테니스의 인기와 더불어 그가 단식에서 4강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자 대중들은 그의 외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 관심은 자연스레 테니스에 대한 인기로까지 연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상 손연재의 인기는 대중에 의해 발견되고 탄생된 것이라기보다는 꾸준한 기삿거리와 광고등의 노출에 더 큰 빚을 지고 있다. 안나 쿠르니코바는 자신의 인기로 인해 테니스에 대한 관심역시 증가시켰지만 사실상 손연재로 인해 리듬체조에 대한 주목도나 인기가 올라갔다고 보기도 힘들다. 세계적인 관심은 물론, 손연재가 그토록 인기있다는 한국에서도 리듬체조에 대한 인기는 여전히 미미하다.

 

손연재에 관해 쏟아지는 기사만 보더라도 손연재가 대중에게 관심을 끄는 방식을 알 수 있다. 손연재는 훈련이나 성적에 관련된 기사보다는 행사나 출국, 광고촬영과 같은 소재에 머물러 있다. 손연재가 주목할 만한 성적을 거둔 경우는 B급 대회거나 아시안 게임 정도다. 올림픽 같은 경우도 5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냈지만 국가별 쿼터제로 한 국가 당 두 명 이상 참가할 수 없다는 규칙이 강력히 도움 됐다.

 

손연재는 그동안 우리나라가 배출한 리듬선수들 중에는 가장 뛰어난 성적을 내기는 했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열에 든 선수라고 볼 수는 없다. 더군다나 리듬체조 선수는 스무 살이 넘어서면 선수로서의 생명력도 하향세에 접어든다. 리듬체조의 여제로 불리는 러시아의 예브게니아 카나예바가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은 그의 나이 우리 나이로 갓 스무 살도 채 되지 않던 때였다. 그리고 그가 올림픽 2연패를 한 뒤 은퇴를 선언한 것은 우리 나이로 갓 23살이 되었던 해다. 그렇게 따져보면 이제 스무 살이 된 손연재는 이미 완성된 형태의 리듬체조 선수인 것이다. 더 이상 발전할 가능성은 적다. 나이가 들면서 유연성이나 지구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리듬체조 자체도 세계적으로 폭발력을 자랑하는 인기 종목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피겨 스케이팅처럼 고급 스포츠로 인식되기 보다는 단순한 올림픽 종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예전에는 스포츠라기 보다는 레크레이션이란 형태로 더 즐기기도 했다. 안나쿠르니코바처럼 테니스에 대한 인기를 타고 급상승한 선수와는 달리 손연재에 대한 관심이 리듬체조로 인해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는 것 역시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성적에 대한 꾸준한 성과를 내기 힘든 손연재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된 언론의 버프가 필요하다. 예쁜 얼굴과 날씬한 몸매라는 무기만으로 ‘운동선수’ 보다는 ‘연예인’에 가까운 취급을 해야만 눈에 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중들의 관심은 불러일으키는 기폭제가 되는 동시에 대중들의 반감을 사는 행동이 되고 말았다. 자연스럽지 못한 인기는 단순히 더욱 큰 화젯거리를 만들기 위한 언론플레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손연재에 대한 관심과 인기역시 증가하지만 그런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세계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선수들 보다 손연재가 더 주목받고 꾸준한 기사가 나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것은 대중이 원해서라기보다는 손연재가 가진 스타성을 부풀리려는 전략에 불과하다. 인기를 이용해 광고를 찍고 행사를 참여하는 것은 좋지만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 미묘한 상황을 연출하는 손연재를 대중들은 스포츠 스타로 대해야 하는지 연예인으로 대우해야 하는지 헷갈리기만 한다.

 

자신의 분야에서 해야 하는 일은 확실히 해 놓은 다음에 하는 부수적인 일들은 인정하기 쉽지만 자신의 분야를 등한시한 채, 오로지 잿밥에만 관심 있는 모습은 긍정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리듬체조 선수’인 것을 강조하는 그의 모습은 얼핏 이중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약 그가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런 이미지 메이킹은 잘못되어도 한 참 잘못된 형태다. 스포츠 스타로서의 매력이 부족하니 결국 외모와 광고만으로 그 매력을 대체 하려는 것이다. 이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형태에 불과하다. 지금은 반짝 인기가 있을 수 있지만 선수의 장래를 생각해 봤을 때도 그다지 바람직한 모습이라고는 할 수가 없다. 그는 과연 스포츠 스타인가, 아니면 연예인인가 하는 의문만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대중의 수요가 있었던 선수와 대중의 수요보다는 부풀리고 과장된 허울로 유지되는 선수는 차이가 있다. 대중이 진정으로 환호하고 인정한 경우라면 손연재가 그의 주장처럼 국민여동생이 못될 것도 없다. 그러나 손연재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자연스럽기 보다는 만들어지고 가공된 느낌이 짙다. 이런 상황에서 손연재를 국민여동생으로 강요하는 언론플레이는 대중들의 차가운 시선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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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근영은 아직 국민여동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상 그를 국민여동생이라 칭하기에 이미 문근영은 지나치게 나이가 들어버린 감도 있고 이제 더이상 '국민 여동생'이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문근영이 떠오르지 않게 되기도 했다. 그러나 수년간 달고 있었던 문근영의 국민여동생 캐릭터가 의도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문근영은 많은 빚을 지고있다.  그러므로 문근영이 국민여동생이라는 이미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아직까지 받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마냥 어려보이는 이미지도 그렇지만 문근영은, 아직도 국민여동생을 뛰어 넘어서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나지 못했다. 그것이 문근영의 고민인 듯 요새들어 문근영이 하는 작품은 모두 기존의 문근영의 이미지를 배반하는 성질의 것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에 기반한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이제 문근영의 캐릭터들은 점점 더 까칠해 지고 반항적이고 심지어 농염하기까지 하다. 


 이런 문근영의 변신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고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회의적인 시선들은 문근영이 지나친 변신욕심에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어울리지 않은 역할로 인해 이미지의 괴리감에서 오는 불편함이 결국 문근영에게 독이 될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틀린말이 아니다. 실제로 [신데렐라 언니]에서 보여준 까칠한 문근영은 천사 문근영 보다 매력이 덜 했다. 연기력 자체에 큰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문근영이라는 캐릭터가 사실상 악녀의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쉽게 독설을 내뱉는 모습은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다. 특히나 [신데렐라 언니]의 은조는 후반으로 갈수록 이해 하지 못할 반항으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며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주는 초반에 비해 단지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 반항하는 사춘기 소녀의 느낌을 주며 그 매력에 있어서 일관성을 찾지 못했다. 



 물론 이것을 전부 문근영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연기한 캐릭터로 평가받을 수 밖에 없는 배우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반가운 일이라고는 할 수가 없다.



 문근영은 [신데렐라 언니]에서 처음 변신을 시도 한 것이 아니다. [바람의 화원]의 남장 여자 역할은 문근영이라는 배우에게 기대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물론 기존의 성격이나 이미지를 한 방에 뒤집는 역할은 아니었으나 자연스러운 남성을 연기한다는 것은 일종의 도전이었고 나쁘지 않은 평가를 얻었다. 시청률에서는 고전했으나 문근영이 보여주었던 가능성은 실로 대단했던 것이다. 이 작품으로 문근영은 그해 연말 연기대상을 수상하는 의외의 결과를 얻는다. 수상직후 바들 바들 떨면서 눈물을 흘리는 문근영의 모습은 화제를 낳기도 했다. 


  문근영이 연극 [클로져]로 돌아온 것은 그래서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만약 비슷한 성질의 영화라면 노출이나 애정신의 수위가 더 높아질 수 밖에 없는데 연극이라는 공간에서 문근영은 실제로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완전히 옷을 벗지 않아도 성인 연기를 할 수 있는 이점을 얻게 된다. 문근영은 지금 변신에 목말라 있는 느낌이다. 문근영은 이미 자신은 국민여동생이 아니며 그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벗어 날 것이라고 수차례 말해 왔는데 그러면서도 문근영은 자신이 맡을 것 같지 않던 역할에 눈을 돌리며 파격적인 변신을 택했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다. 문근영이라는 이름에 티켓은 매진되고 일부 관객들은 만족했다. 하지만 문근영이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씻어 내는데는 실패했다. 차근 차근 진행되지 않은 변신의 여정은, 그러나 이정도 선에서도 만족할만한 성과다. 사실상 국민여동생으로 주목받은 배우에게 그 굴레는 클 수 밖에 없다. 지금 문근영이 성인 연기자로서 인정 받고 있는 것만 해도 상당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물론 문근영이 계속 무리한 도전을 선택한다면 그가 가진 장점마저도 죽여버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지금 문근영이 하고 있을 고민은 문근영에게 있어서 그것 자체로 속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근영이 정말 똑똑한 배우라면 자신이 가진것을 활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을 활용하여 다른 이미지를 덧붙이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근영이 보여주는 모습은 일견 뿌듯하다. 그가 자신이 가진 한계를 알고 그 한계돌파를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것 자체에 돌을 던질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이 이제 더 이상 국민여동생이라는 스타성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자각하고 연기의 길로 들어서려는 노력을 하는 문근영은 결코 쉽게 사라질 배우가 아니라는 신뢰를 하게 해 준다. 


 안주하는 것 보다는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옳은 선택이다. 문근영이 낸 성과는 비록 그 자신에게 있어 아직 만족할만한 것이 아니겠지만 그가 걸어가는 길에서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그 성과들을 조금씩 쌓여문근영이라는 연기자를 더욱 더 신뢰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도 있을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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