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작품 속에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으면서 권력에 저항하는 주인공들의 위기를 그리며시청자들의 뒷통수를 치는 반전으로 호평을 받던 박경수 작가의 신작 <귓속말>은 이보영과 이상윤이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면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을 수 있었다.

 

 

 


<귓속말>역시 박경수 작가의 특징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정의로운 판사였던 이동준(이상윤 분)은 정의롭다고 여겼던 판결 때문에 법정에 서지 못할 위기를 맞고 이 때문에 양심에 거스르는 판결을 내리는 조건으로 대기업 회장인 최일환(김갑수 분)이 내민 손을 잡을 수밖에 없게 된다.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 지는 지점에서 생겨난 피해자 신영주(이보영 분)는 아버지에 대한 불합리한 판결을 인정할 수 없고 복수의 칼날을 들이댄다. 선과 악, 그리고 권력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가 강렬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강약조절에 실패한 스토리..주인공들의 매력도 반감

 

 

 

 


초반부 스토리는 이동준이 받는 압박으로 흘러간다. 이동준은 신념을 버렸다는 양심에 가책을 받는 것은 물론, 신영주, 최일환의 딸 최수연(박세영 분), 최수연의 연인 강정일(권율 분)등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다.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삶이지만 그 삶은 지옥이다. 여기에서 <귓속말>의 첫 번째 오류가 생겨난다. 남자 주인공이 사방에서 받는 압박을 드라마를 시청하는 내내 숨이 막힐 정도로 몰아붙이고, 숨 쉴틈이 없는 상황 속에서 드라마는 오히려 피곤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섹스비디오’로 협박을 하는 여주인공 신영주는 초반부터 매력발산에 실패한다.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부당한 판결을 한 것에 대한 분노는 이해할 수 있지만, 신영주의 ‘막무가내 식’ 몰아붙이기는 캐릭터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소다. 상황과 현실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만들어진 계획이 아니라 상대방의 약점을 잡고 무조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라며 떼를 쓰는 모습은 여주인공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을 방해한다.

 

 

 

 

초반부의 답답한 전개를 딛고 이동준과 신영주는 서로 같은 편에 서게 되고 두 사람의 멜로는 진행되지만 드라마의 서사는 이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도록 만들지 못한다. 매회 일어나는 사건들과 반전들은 시청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기 보다는 지치게 만든다. 일이 해결될 때 쯤에 터지는 위기나 반전은 놀라움이 아닌 ‘반전을 위한 반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는 사건의 강약조절에 실패한 스토리라인의 탓이 가장 크다. 적절한 순간에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은 찬사를 받지만, 마치 패턴처럼 반복되는 반전에 대한 호기심은 일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반전에 대한 긴장감이 사라지고 의례히 이쯤에서 다른 상황이 터져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되고야만다.

 

 

 

 



주인공보다 악역에 집중되는 이야기 구조...시청포인트가 애매모호해지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을 연기하는 이보영과 이상윤의 연기마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인다. 형사 출신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보영의 말투나 액션은 캐릭터를 돋보이게 만들기 보다는 이전의 지적이고 깔끔한 이보영의 이미지에 갇혀있고, 이상윤의 심각한 표정과 낮게 깔린 목소리는 지나치다 싶을만큼 기계적으로 느껴진다. 오히려 이야기의 흐름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악역을 소화한 권율이다. 권율이 소화한 강정일이라는 캐릭터는 주인공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을 보여준다. 애인의 배신이나 아버지의 죽음등을 계기로 복잡해지는 감정의 진폭을 표현하는 권율의 연기는 ‘재발견’이라는 평가가 나올만큼 상당히 인상적이다. 

 

 

 


주인공들에 대한 매력이 반감되고 악역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가자 드라마의 중심축이 흔들린다. 악인을 처단하는 통쾌함에 초점을 맞출 수도 없고, 주인공들의 처절한 고군분투에 공감이 가지도 않는다. 이야기의 흐름이 애매모호해지면서 드라마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진다.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으나 과연 작가와 배우의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 낸 드라마인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주인공들에 대한 힘이 떨어지자 멜로라인에 대한 관심 역시 줄어든다. ‘성인의 멜로’를 보여주겠다는 포부가 무색할 정도로 두 사람이 서로에게 빠지는 상황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두 사람의 멜로에도 감정이입을 하기 힘들다. 결국 드라마는 주인공들에 대한 매력을 설명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귓속말>은 그동안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으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 냈던 박경수 작가의 작품 중, 가장 그 구성이 열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소의 억지와 개연성 부족을 드라마의 휘몰아치는 메시지와 구성력으로 극복하던 박경수 작가의 필력이 이번만큼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것이다.

 

 

 


결국 <귓속말>은 주인공을 위한 드라마가 되지 못했다. 명작이라고 부르기엔 배우들의 매력과 작가의 역량이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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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은 갈등을 유발하고 드라마의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 중 하나다. 각종 악역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지금 방영되고 있는 월화드라마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이하<역적>), <완벽한 아내><귓속말>에 등장하는 악역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악역들은 조금 특별하다. ‘사이코 패스’에 가까운 캐릭터로 주인공 이상의 존재감을 발휘하는 큰 위력을 가진 캐릭터들이기에 그렇다. 사실상 세 드라마 모두 악역의 힘으로 밀어 붙이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역적>-가장 강력한 적, 사이코 패스 연산군

 

 

 


<역적>은 삼사 월화 드라마 중 가장 스토리의 결이 매끄럽다. 사극이지만 시의성을 반영하여 권력에 대항하는 힘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감정을 파고드는 부분이다. 영웅이 되어가는 홍길동(윤균상 분)은 백성에 대한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살리고자하고 그런 백성들의 반란을 폭동으로 여기는 연산군(김지석 분)은 절대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으로 대표되며 절대 악으로 묘사된다.

 

 

 


그동안 연산군은 수많은 드라마에서 되풀이되어온 캐릭터다.  폐비 윤 씨의 사사,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등 드라마를 수놓을 수 있는 극적인 사건들이 충분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김지석의 연산군은 광폭한 폭군으로 수없이 묘사되었던 연산군의 계보를 잇고 있지만, 단순히 어떤 계기로 인해 폭군이 되었다기 보다는 애초에 보편적인 감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이코 패스’ 기질이 있는 것처럼 묘사된다.

 

 

 


‘인간 사냥’을 통해 홍길동의 몸을 부수는 연산군의 표정에는 죄책감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인간을 사냥하며 짐승취급하는 연산군의 모습은 그의 내면이 짐승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서늘하고 소름끼치는 감정표현으로 김지석은 악역임에도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평을 들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을 놀이 취급 할 만큼의 사이코 패스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와중에서도 자신의 위치가 무너질까 두려워 초조한 왕의 심리가 극적으로 표현되며 김지석의 연산군은 드라마 후반부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완벽한 아내>-막장으로 달리는 스토리 안에서도 소름끼치는 ‘사이코’

 

 

 


이 드라마는 후반부로 갈수록 제목이 왜 <완벽한 아내>인지 조차 모호한 스토리로 뒷심을 잃어버렸지만, 이은희 역할을 연기하는 조여정만큼은 끝까지 연기의 중심을 놓치지 않는다. 이은희는 극 초반부터 웃음을 가장하고 있지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캐릭터로서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조여정은 이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를 시청자들에게 설득시킨 일등 공신이었다. 주인공 심재복(고소영 분)의 이혼에 기뻐하며 혼자 웃으며 춤을 추거나, 웃음 뒤에 언뜻 보이는 서늘한 무표정은 이 캐릭터의 심리 상태를 제대로 표현해 낸 것이었다.이은희의 정체를 숨기면서도 그 캐릭터가 안에 숨겨진 정상적이지 않은 자아를 표현해 내는데 조여정은 더할나위 없는 적역이었다.

 

 

 


이은희는 주인공 심재복 보다 훨씬 더 주목도가 높은 캐릭터다. 이은희가 벌이는 사건이 이 드라마에 가장 큰 중심 축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갈수록 정신병원에 심재복과 이은희를 가두며 다소 어이없는 전개로 흘러간 것은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 안에서도 조여정은 소름끼치는 연기력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뇌리에 각인된다. 불안한 정신상태로 다른 사람을 상처입히며 즐거워 하는 ‘사이코’ 캐릭터는 <완벽한 아내>의 최고의 수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귓속말>-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이코’

 

 

 


이보영, 이상윤 주연에 박경수 작가가 집필하여 화제가 된 <귓속말>은 작가의 색채가 짙게 배어 나오지만 전작들에 비해 부족한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사건은 사건의 꼬리를 물고 연속적으로 터지지만 반복되는 위기 상황 속에서 긴장감은 오히려 줄어든다. 사건을 터뜨리는 부분에서 강약 조절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탓이다.

 

 

 


특히 이보영이 연기하는 신영주 캐릭터에는 오류가 많다.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고, 불치병까지 걸린 마당에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것은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너무 앞뒤없이 사건에 덤벼드는 탓에 오히려 사건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고 만다. 뚜렷한 대책이나 계획 없이 무작정 달려드는 여자 주인공의 행동은 오히려 시청자들의 호감도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는 것은 악역 캐릭터인 강정일(권율 분)과 최일환(김갑수 분)이다. 강정일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는 인물로, 자신이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빼앗기자 점차 괴물이 되어간다. 어떻게 보면 사랑 때문에 누군가를 위해 저지른 악행으로 시작된 일이지만, 그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고 그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이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에 분노하는 모습은 결코 인간적이지 않다.

 

 

 


그러나 악역 악역의 심리와 고뇌를 놓치지 않는 스토리 라인 덕분에 ‘섹시한 악역’으로서 평가받으며 주목을 받고 있다. 강정일을 연기하는 권율 역시, 이 드라마로 그동안의 순수하고 착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연기 변신을 인정받는 호연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두 드라마에서 보다 감정적으로 절제된 캐릭터지만  어쩌면 주인공보다 더욱 주목받는 악역이다.

 

 


그 뒤에 있는 절대 악 최일환은 <귓속말>에서 가장 큰 사건을 만들어 내는 최종보스격 악의 축이다. 최일환은 신영주의 아버지 사건을 조작한데 이어서 이제는 강정일의 유일한 혈육이었던 강유택(김홍파 분)마저 살해했다. 자신의 이익과 성공을 위해서라면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는 그의 캐릭터가 주는 무게감은 드라마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

 

 

 


강정일이 괴물이라면 최일환은 악마에 비견된다. 김갑수의 뛰어난 명불허전 연기력은 캐릭터의 존재감을 더욱 키우며 절대권력을 가진 가장 강력한 벽으로서의 역할을 확실하게 표현해 낸다.

 

 

 


주연보다 주목받는 악역, 공통점이 있다.

 

 

 


지금 주목받고 있는 악역들은 단순히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갖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감정을 쏟아내며 악행과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 악역이 아닌,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감정을 포기한 캐릭터들이다. 자신들이 잘못을 하지만 그 잘못이 실제로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남들의 고통에 대한 이해는 없으며 자신이 처한 고통은 참지 못하는 ‘사이코 패스’ 성격의 캐릭터들이 대세로 떠오른 것이다.

  

 

 

 

이런 악역들이 드라마 안에서 주목받고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연기자의 인기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시청자들이 그들에게 현실적인 감정이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생활에 마주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닌, 드라마 안에서 존재하는 무지막지한 ‘사이코’ 캐릭터들은 ‘역할’로서 각인될 수 있다. 그런 캐릭터를 소화해 내는 배우들에 대한 찬사 역시 경험해 보지 못한 영역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에 대한 놀라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악역에 힘을 지나치게 실어준 나머지 스토리 구조상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역시 적지 않다. 주인공의 존재감이 약해지는 것은 물론 캐릭터의 붕괴역시 일어날 수 있다. 주목받는 악역을 만들어 내는 것 보다 그 캐릭터를 스토리 안에서 어떻게 잘 공존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드라마에서 먼저 선행되어야 할 고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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